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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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는 거짓말을 일삼고 몸은 과장을 좋아한다. 눈빛은 정직하다. 눈빛은 거짓말을 못한다. 속이려고 해도 속여지지가 않는 것이 눈빛이다. 눈빛을 읽으면 진실과 가까워진다. 눈빛을 읽어야 한다. - P 15

전 인류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아우슈비츠는 어쩌면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 20세기에 벌어진 대량 학살과 인종청소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어떤 말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을 남기고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존재의 탐구가 책읽기를 통해 가능하지 않겠지만 오늘도 여전히 수많은 작가들은 인간을 탐구한다. 그것이 문학이고 역사이고 철학이 아닐까 싶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천운영의 『생강』을 읽는 동안 가슴이 미어졌다. 왼쪽 가슴 아래께서 시작된 통증은 온몸으로 퍼졌고 순간순간 전율했다. 작가는 얼마나 큰 아픔 속에서 이 소설을 만들었을까.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천운영의 ‘첫 소설’처럼 느껴졌다. 이 소설은 우리 문학이 잃어버릴 수도 있는 사회 현실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다. 역사적 진실에 대한 웅숭깊은 고뇌가 문학이라고 믿는 독자라면 마땅히 읽어야만 할 것이다.

이근안은 경기도경찰청 공안분실장이던 1988년 12월 24일 국민회의 김근태 의원을 비롯한 숱한 사람들을 고문한 고문기술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뒤 잠적할 때까지 16차례에 걸쳐 표창을 받으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그 후 10년 10개월 만인 1999년 10월 28일에 자수했고 지금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목사가 되었다. 이근안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책을 읽는 내내 끝없이 이어지는 의문과 자괴감이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다.

작가는 고문 피해자의 시선으로 이근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근안 자신을 서술자로 선택했다. 그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일을 기억한다. 10년 다락방에 숨어 사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만드는 고문기술이나 피해자가 당한 고통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체험은 문학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적 상상력을 극대화할 수 없다면 애초에 이근안의 입장에서 이 소설이 쓰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심리를 읽어내고 공포를 극대화하는 그의 능력(?)은 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룬다. 작가는 악마의 탄생과정을 통해 집단 무의식과 인간성의 바닥에 대해 고민한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소설의 주인공 ‘안’이 도피생활을 시작할 무렵 갓 대학에 입학하는 신입생 딸 ‘선’이 등장한다. 선이 서른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축이다. 아버지와 딸.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면서 이 소설은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객관화한다. 타인의 고통이 내 것일 수 없는 한계가 ‘선’의 한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다락방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통해 ‘안’을 은폐한 후 드러낼 수 없는 개인과 타인, 가족과 사회의 문제를 폭로한다. 행간을 건너뛰는 섬세한 심리묘사, 아내와 딸을 통해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에 대한 부끄러움을 드러낸다. 망가진 육체와 유폐된 영혼이 빚어내는 참담한 비극은 인류의 역사가 반복해온 가장 통렬한 분노이다.

악마의 발톱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역설한 악의 평범성은 우리 안에 내재한 놀라운 본능이 아닐까. 역겨움을 넘어 무기력한 슬픔에 빠뜨리는 주인공 ‘안’은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아마 그것이 작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아닐까 싶다.

『바늘』, 『명랑』, 『그녀의 눈물 사용법』을 통해 천운영은 인간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과 보이지 않는 심연을 탐구해 왔다. 『생강』을 통해 나는 천운영이라는 작가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김치를 먹다가 잘못 씹어버린 생강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생강처럼 잘근잘근 씹어먹었으면 좋겠다. 눈 내리는 3월의 검은 밤이 서럽도록 아름다운 희망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110324-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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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고 행복하라
비노바 바베 지음, 사티쉬 쿠마르 엮음, 김문호 옮김 / 산해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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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울 뿐이다. 태양은 누구에게도 자기 빛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만물이 그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갈 뿐이다. - P. 31

한 문장에 꽂혀 책을 찾아 있는 경우가 많다.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을 읽다가 한참 동안 멍하게 들여다보았던 문장이다. 늘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분명한 문장으로 만났을 때의 기이한 느낌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가르치지 않는 교사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이 말은 지식이 아니라 온몸으로 삶을 가르치는 교사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교과서 밖의 삶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고 그것을 행동에 옮겨 실천하는 교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몰라서 학교에 오는 아이는 없다. 객관적 사실을 판단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진실을 깨닫고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 교육이다. 태양은 스스로 빛난다. 만물이 그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는 것처럼 잠재적 교육과정을 통해 가르치지 않아도 배우는 학생들이 있어 교사는 늘 그들을 두려운 법이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를 만나 비폭력 사회 변혁 운동에 뛰어든 비노바 바베의 『버리고, 행복하라』는 오늘 하루를 경건함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그것은 내 삶에 대한 엄숙함이었고 일반적이고 익숙한 것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영적인 지도자로 추앙받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아 사티쉬 쿠마르가 엮은 이 책은 ‘교육, 권력, 정의, 평화, 자아’의 다섯 개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얄팍한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영혼의 찬물을 끼얹는 울림이 있는 책이다. 사람들은 보통 종교에 기대어 산다. 불안한 미래와 현실적 고통, 사후 세계에 대한 공포가 만들어낸 안식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 존재인 인간에게 영혼이란 무엇인지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욕망에 충실한 존재가 아니라 영혼의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삶을 고민해 본적이 있다면 버리자,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삶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21세기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실천 항목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다만 한 인간의 삶을 통해,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통해 나의 모습을 돌아 볼 수는 있다.

보편타당한 삶의 원칙과 태도는 시공을 초월해서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종교를 초월하며 인종과 민족의 범위를 넘어선 자리에서도 빛을 발한다. 비노바 바베는 종교를 앞세우지 않는다. 절대자의 말씀이나 권위를 빌리지 않고 온몸으로 실천하고 자신의 행동으로 말하기 때문에 더욱 경건해 보인다. 토지헌납운동을 통해 우리의 삶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성찰하게 한다.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소유하고 있다. 비노바 바베는 묻는다. 그것이 가능한 삶인가.

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교육 분야는 구름처럼 허망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한다. 현실 적용 문제를 떠나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공교육의 현실이다. 우리는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배우기 위해 그리 오랜 시간동안 학교에 다니는 것일까. 근본적인 질문을 통해 우리의 삶을 성찰해 보자. 사람들은 많이 가지고 싶어하며 경쟁에서 이기길 원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기라는 섬뜩한 문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책상위에 붙여놓은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부끄럽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이 땅의 교사와 학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만한 잠언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이 책은 거시적인 안목으로 현실 너머의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비노바 바베 혹은 그 어떤 영혼의 안내자의 말이라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책은 아이들에게 독이 될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경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삶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면, 내 생의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책이 아니라면 독서를 권할 이유가 없다. 창밖에 멀리 시선이 가는 날,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게 되는 날 비노바 바베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우리는 아이가 독서를 통해서 지식을 얻는다는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상 독서는 지식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독서는 우리를 현실세계와 갈라놓는 장막과도 같은 것이다. - P. 39


11032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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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 행복한 학교 유쾌한 교육 혁신을 말하다
김상곤.지승호 지음 / 시대의창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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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konkim 야자보충이 실질적인 자율과 선택으로 전환되어 오랫동안 꿈꾸며 싸워왔던 정상적인 학교의 모습을 찾아갑니다. 다함께 꿈을 꾸면 현실이된다는 훈데르트 바서의 말이 사무치는 밤입니다. 감회가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

트위터를 뒤적여 3월 7일에 김상곤 교육감에게 보낸 메시지를 찾아냈다. 3월 한 달 모든 담임선생님이 각 교실에 남아 모든 아이들이 자율학습을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하고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는 비난이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인문계 고등학교의 모습이었다. 회유와 협박에 가까운 반강제 자율학습 때문에 떠들고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생기고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더 많은 선생님들이 학교에 남아 학생들을 감시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대해 아무리 문제를 제기해도 고쳐지지 않았던 오래된 관행과 견고한 편견의 벽.

그러나 이제 변화가 시작되었다. 스스로 선택한 아이들의 자율학습은 감독이 필요 없을 정도다. 당연한 일이지만 각자 필요한 만큼 조용히 공부를 하면 감독이 아니라 관리만 조금 필요할 뿐, 조용하고 진지한 분위기는 감독 선생님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미안할 정도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토머스 페인이 말한 것처럼 ‘상식’과 ‘인권’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고 믿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담임을 신청했지만 2학년부장 업무를 맡게 되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의 임명권을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땅히 거절할 만한 불합리한 결정도 아니라서 어울리지 않는 일을 2년째 하고 있다. 나이 들어 학생들이 싫어할 때까지 담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상황에 따라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작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힘겹게 고민하고 싸우지 않아도 이제 자연스럽게 야간자율학습과 방과후 수준별 특기적성, 일명 보충수업이 실질적으로 자율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원칙적으로 자율학습이었으나 자율학습은 담임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의 가장 큰 마찰과 갈등요인이었다.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물결이 도도해도 학교에서는 내 돈을 내고 내가 듣고 싶지 않은 수업을 억지로 들어야하는 보충수업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커다란 변화의 물결은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결정이 가능한 학교를 만들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미래 사회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다. 단편적으로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란이나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 어떻게, 왜’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교육문제는 결국 동시대인들이 지향하는 미래의 목표이며 꿈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우리들의 미래라면 그 아이들이 자라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았으면 좋을까 생각해보자. 어렵지 않은 답이 나오지 않는가. 그런데 왜 우리는 교육문제에 대해 자꾸 이기적인 욕망이나 정치적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가.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의 『김상곤, 행복한 학교 유쾌한 교육 혁신을 말하다』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미래의 ‘교육’ 문제를 전망할 수 있는 책이다. 김상곤이라는 개인의 발자취, 경기도교육감이라는 역할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을 이끌어내고 있는 인터뷰는 지승호 특유의 성실하고 치밀한 사전 준비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상대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깨고 본격적으로 흥미 있게 한 사람을 탐구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 것은 개인적으로 지승호 때문이었다. 그의 책들을 읽어오면서 느낀 것은 한 개인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서 그러한 사회적 존재가 탄생하게 된 사회, 역사적 맥락이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그의 인터뷰는 세상을 통찰하는 프리즘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뷰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자기만의 색깔과 영역을 확보한 지승호의 이야기는 언제든 들어야할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번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은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직접 관련되어 있으니 더더욱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상곤교육감은 이제 경기도 교육감이라는 직책을 넘어 수많은 사회적 논란과 다양한 정치적 의제를 만들어 낸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김상곤교육감을 통해 대한민국의 교육과 인권 그리고 복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순히 경기도의 초중고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길에 대한 고민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교육 문제는 정권에 따라 개인적 이익과 욕망에 따라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내내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읽을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았다. 나의 삶이고 현실인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이면 또 다시 학교에 가 아이들을 만나고 수많은 눈동자와 마주친다. 감히 내가 무엇을 어떻게 왜 가르쳐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고민한다. 나부터 항상 노력하고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학생들보다 먼저 타성에 젖고 개인적 이익만 챙기는 교사가 되는 것은 너무 쉽기 때문이다. 열정과 희망을 가르칠 수 없다면 미래는 없다. 이 책의 서문처럼 지승호의 말을 빌리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바로 너야’라는 사실을 알려줘야겠다. 모든 아이들에게. 그러나 혼자서만 앞서가지 않기를.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습니다. 좀 더 다양한 방식의 가치 있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만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스스로 패배자라고 느끼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 ‘서문’ 중에서


11032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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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인문학 - 머니 게임의 시대, 부富의 근원을 되묻는다
김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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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나는 얼마쯤의 현금을 ‘만지게’ 될까? 텅빈 지갑을 며칠씩 들고 다닐 때도 흔치 않다. 은행 갈 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갑도 두꺼워 플라스틱 카드 한 장만 주머니에 넣고 외출한 적도 많다. 통장에 숫자가 찍혔다가 카드 명세에 나눠지고 그 숫자들은 곧 사라진다. 한 달을 단위로 정확하게 회전하는 숫자의 흐름은 재미있는 게임같이 느껴진다. 돈의 흐름은 마치 눈앞에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는 비온 뒤의 무지개보다 허무하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숫자들의 향연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수의 개념이 부족하고 숫자들과 친하지 않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도대체 한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내가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이 얼마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계산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거의 모든 물건을 인터넷으로 구매하고 현금을 사용할 일이 점점 줄어들자 가끔 나는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급여를 지급하는 주체도 모호하고 내가 사용한 내역에 따라 그것을 분배하는 과정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도 기막힌 타이밍과 시간을 맞춰 돈은 돌고 돈다. 그리고 나는 불편 없이 살아간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돈과 그리 관련이 없는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내 직업의 탓도 있겠지만 하나의 상징과 기호가 되어버린 현대사회의 화폐와 신용카드의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누런 월급봉투가 기억난다. 손으로 쓴 명세서가 봉투 겉면에 씌어있었고 그걸 안주머니에서 꺼내시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시절이 낭만적이었을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돈’과 무관한 사람은 없다. 아니 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폄훼할 생각도 없다. 다만 요즘 들어 유난히 돈과 관련된 책이 눈에 들어오고 자꾸 손이 가는 이유는 우리들의 ‘삶’이 궁금해서이다. 아이들은 돈 잘 버는 직업을 선호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돈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사회의 자화상을 인문학적으로 들여다보는 김찬호의 『돈의 인문학』은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와 짝을 이룰 만하다.

전작 『사회를 보는 논리』와 『문화의 발견』 등으로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들을 써온 사회학자의 책은 눈여겨 볼만했다. 읽으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주고 호기심을 갖게 하며 또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삶의 방향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가 인문학이라면 ‘돈’에 관한 인문학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돈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에서 출발해야 한다. 화폐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고 현대 사회에서 돈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내 삶에서 ‘돈’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성찰하게 된다.

인문학은 언어를 생산하는 학문이다. 언어는 생각을 빚어내고 삶을 가다듬는다. 언어와 생각과 삶이 어떻게 맞물리는가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 P. 9

인문학적 상상력이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세계를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실마리는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인문학을 삶의 토대로 삶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저자는 ‘돈’을 이야기하면서 행간에 ‘삶’을 숨겨 놓았다. 독자들이 읽어야 할 것은 돈에 관한 지식과 가치 너머에 있는 것은 아닐까. 같은 말일 수도 있겠으나 세태를 비판하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것은 돈을 ‘소유’가 아닌 ‘관계’로 바라보는 일이고 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방법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돈과 인문학, 돈과 책이라니! 하지만 둘 다 종이가 아닌가! 이 어이없는 비교는 물론 웃자고 한 말이다. 하지만 돈, 일, 삶이 모두 한 글자 안에 수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곧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통계자료와 실제 사례들은 우울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자유주의 물결과 무한 경쟁시대의 치열함을 넘어 비극에 가깝다. 삶의 태도와 방법을 조금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생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돈에 관한 한!

돈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은 가깝게는 내 생각의 변화에서부터, 멀게는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생각의 변화와 태도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구조와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해 온 사람에게 해결할 수 없는 높은 대학 등록금, 부족한 사회보장제도, 고용 없는 성장, 인색한 사회 환원, 성장위주의 경제정책, 부족한 복지제도…….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은 높고 ‘돈’은 돌고 돌지 않고 한 곳에 쌓인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가난한 사람은 책의 힘으로 부유해질 수 있고, 부자는 책의 힘으로 귀해질 수 있다.”(김찬호) - P. 271

돈과 책이라니! 저자의 마지막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면, 냉소적인 미소를 띠었다면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의 돈과 일과 삶을 돌아보라.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보자. 나는 누구이며 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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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로 글목을 돌다 - 2011년 제3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공지영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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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어스름 골목길을 돌아 친구의 집을 찾아 간 적이 있다. 익숙하지 않은데다 담에 막혀 다음 골목의 모양과 방향이 알 수 없어 답답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그렇게 방향을 바꿔야 할 때마다 고민한다. 그 끝을 알 수 없고 목적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과정과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가끔은 상상하지도 않았던 운명에게 허를 찔린다.

인류의 역사는 피의 역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잔혹한 동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증거는 너무 많다. 잔혹한 종교와 이념 전쟁,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로 대표되는 대량 학살 등이 그것이다. 프레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류의 악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아니어도, 80년 광주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잔인한 폭력 앞에서 수많은 예술가들은 ‘인간’의 존재를 성찰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

35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맨발로 글목을 돌다』는 공지영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지난한 세월을 견뎌낸 작가에게 각종 문학상은 걸어온 길에 대한 평가이고 걸어갈 길에 대한 채찍이다. 그렇다면 공지영의 수상은 전자일까 후자일까. 아마도 전자쪽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닌가 싶다. 블라인드 테스트로 수상작을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지난 1년간 발표된 소설 중 가장 탁월한 성취를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였을까.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읽으면서 부터였는지 한참 후에 『별들의 들판』,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를 읽고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공지영 소설은 불편하다. 그 불편함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불편이나 외면하고 싶은 진실에 대한 불편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과잉 때문이다. 후일담이나 사소설에 가깝기 때문이 아니라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까지 드러내려는 섬세함 때문이다. 그것은 소설적 평가 이전의 문제일수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재미있다, 감동적이다의 차원을 넘어 숨김과 거리의 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대중적 감응력과 조우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해부실 불빛에 드러난 장기처럼 낱낱의 것들을 고스란히 드러내려는 것 같은 문장은 아름답기보다 불편하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충분한 역량과 활동을 보여온 공지영에게 갈채를 보낼 수는 있으나 그의 소설을 이 시대 최고의 소설이라고 인정하기 싫은 이유를 나도 알 수가 없다.

수상작에 대한 찬사와 기대 다양한 해석은 ‘글목’에 모아진다. 치열한 개인적 삶은 결국 세계와 대결을 의미한다. 소설은 이것이 보여주는 다양한 양상을 드러낼 뿐이다. 작가마다 독특한 시선과 개성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우리는 그 찬란한 스펙트럼을 즐긴다. 켜켜이 먼지 묻은 세월의 두께와 발랄하고 신선한 감수성들이 충돌하고 과거와 현재가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그래서 소설은 여전히 우리 삶의 총체성을 짐작할 수 있는 최고의 고전이다.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얼마나 잘 담아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그것이 문학의 다양성이 사라진 시대라면 더더욱.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는 이유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문학적 감수성에 대한 흐름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독자마다 그 이유가 다르겠으나 대상 수상작 뿐만 아니라 우수상 수상작들이 바로 이 시대의 문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지아, 김경욱, 전성태, 김숨, 김언수, 김태용, 황정은 등이 바로 다음 수상 후보자이며 그들의 소설이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고통에 대한 통찰이 문학의 바탕은 아닐까. 공지영의 소설은 시대의 아픔을 넘어 이제 인간의 보편적 고통에 대한 불가해함을 통찰한다. 문장과 표현을 넘어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방식은 공지영의 소설을 읽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지금까지 지켜온 인간에 대한 애정과 세상의 폭력에 대한 저항은 앞으로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연민을 느끼게 한다. 물론 이 연민은 작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누구나 ‘평범성이 주는 온갖 열락을 향한 은밀하고 애타는 동경’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인간이 성장해가는 것은 운명이다!’

110313-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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