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리라이팅 클래식 15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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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생존의 주체이며 생존의 수단이기도 한 몸. 원시사회에서 몸과 현대 사회의 몸은 전혀 다르게 인식된다. 몸에 대한 미적 기준이 달라졌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능력에 대한 중요성도 달라졌다. 근대 이후 질병에 대한 관점은 그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다. 병원이라는 분리 공간이 생기면서 감시와 관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미셀 푸코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정신 질환에 대한 서구 사회의 편견을 드러낸다. 이성 중심의 서구 사회가 포용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격리, 배척했던 역사를 통해 질병에 대한 음험한 시선을 유추할 수 있다.

17세기는 진실의 상실에서 광기를 발견했다. 즉, 자연이 아니라 자유에 속하는 인간에게서 각성과 주의력의 역량만이 문제시되는 온통 부정적인 가능성을 발견했다. 18세기 말은 광기의 가능성을 환경의 구성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즉, 광기는 잃어버린 자연이고 빗나간 감성, 욕망의 일탈, 척도를 박탈당한 시간이며 매개의 무한 속에서 상실된 직접성이다. - 미셀 푸코, 광기의 역사, 586

이성 중심의 서구 사회는 몸에 생긴 모든 질병을 분리와 치료의 대상으로 보았으며 서양의학은 세포단위로 환원하여 끝없이 세분화하여 처방한다. 해부학의 발달로 우리의 몸은 개인적인 특성과 분리되어 표준화 일반화된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었고 매뉴얼에 따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된다. 다양한 의료기기의 발달과 의술의 발전은 새로운 질병을 끊임없이 발명해 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어떤 사람도 병원에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아보면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넓은 범위의 ‘환자’로 살아간다. 임신되는 순간부터 산부인과의 도움은 시작되며 의사의 사망선고로 공식적인 생을 마감한다. 우리는 몸의 주인인가, 아닌가. 어떻게 하면 내 몸의 주체적 주인이 될 수 있으며 어떤 관점으로 몸과 병의 관계를 살펴야 할 것인가.

전통적 직업개념으로 규정할 수 없으나 가장 자유롭고 진정한 의미의 공부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고미숙이 이번에는 몸에 관심을 가지고 『동의보감』을 이야기한다. 그린비의 리라이팅 열 다섯 번째 시리즈로 나온 이 책은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라는 부제로 요약되어 있다. 의학에 대한 관심과 접근이 아니라 우리의 몸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5편(篇) 106문(門)으로 구성된 허준의 역작을 활용하는 방법과 관점은 다양할 것이다. ‘고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방식과 다양한 관점을 갖춘 고미숙의 해설은 동의보감이 주는 새로운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고전은 언제나 현재적 유용성을 가질 때만 의미가 있다. 우리가 잊고 있는 몸의 중요성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책이 아니라 몸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갖게 하는 책이다. 우리의 몸은 개별적 존재로 살아온 환경, 먹었던 음식 그리고 체질과 생활조건이 다르다. 그렇다면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도 조금씩 달라야 하지 않을까. 콧물이 흐르고 두통이 있고 몸살 기운이 생겨 병원에 가면 한 번에 한 숟가락쯤 되는 약을 지어준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일주일 안 먹으면 7일 이라는 말이 있다. 균형과 리듬이 깨진 몸을 돌보라는 신호라는 뜻이다. 심한 경우 합병증이 생기고 심각해 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환절기만 되면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기계적인 방식으로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지켜나갈 수는 없다.

의학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신성한 영역처럼 그들만의 암호가 오고가고 언제부터인가 의사는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되었으며 의료산업에서 책정되는 가격은 아무도 적정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비싼 의료 장비와 수많은 검사와 검사료, 적절성을 상식적으로 판단하기 힘든 수많은 수술요법과 치료약들……. 예를 들어 고미숙은 자궁 적출 수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자궁 근종 등 여성 질환의 경우 질병의 근원 자체를 없애버리는 수술을 시행하는 데 이것은 원천 봉쇄의 오류가 아닌가. 임신여부와 무관하더라도 자궁은 필요 없는 기관인가를 묻고 있다. 저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한마디이다. 과잉진료, 과다복용은 자연치유보다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은 오늘도 안녕한가.

전체 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동의보감』과 허준에 대해 상세히 알아 본 후에 『동의보감』의 구성과 내용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후 여성의 몸을 살피는 것으로 끝난다. 책 뒤에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을 저자가 직접 소개하고 있다. 본문 내용에서 자주 인용했고 『동의보감』과 허준에 대해 보다 상세한 내용이나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는 책을 더 참고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의 소개는 독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 ‘정精•기氣•신 神’으로 구성된 우리 몸의 비밀과 음양오행으로 풀어낸 오장육부의 신비 그리고 병과 약의 관계를 순서대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솜씨는 고미숙의 가장 큰 장점인 즐겁고 유쾌한 글쓰기 방식에서 비롯된다.

한 권의 책에서 깊이와 넓이를 모두 담보하려는 욕심만 버린다면 우리는 한 권의 책을 자신의 관점과 비교하며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단순히 새로운 정보를 얻고 앎의 세계를 넓히거나 다양한 관점을 얻는다는 추상적인 목적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지금 내 삶의 방법과 관점을 조율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책이다. 고미숙의 책은 ‘근대’에 대한 관심을 넘어 열하일기를 주유하고 공부와 사랑과 공부를 넘어 이제 몸속으로 뛰어들었다. 제한된 틀과 제도권에서 벗어난 고미숙의 삶과 공부에 언제나 부러움을 느낄 뿐이지만 그 결과물인 책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 다행이다. 최근 감이당을 개설하고 ‘수유+너머’와 결별을 선언한 이후에 활동도 주목된다. 고미숙의 책은 언제나 즐거운 여행과 같다. 늘 새로움과 자유로운 세계를 안내 받고 싶은 욕심이다. 『동의보감』에서 시작된 몸에 대한 관심과 공부를 조금 더 깊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이 책은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편작에서 융까지, 치유본능에 충실한 의사들의 전언은 한결같다. “병을 만든 것도, 그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도, 그리고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십시오!” 그리고 그것은 이 기나긴 여정을 이끌어 준 우리들의 멘토인 허준의 전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곧 정기신의 발현이자 존재의 원초적 명령이기 때문이다. - 438쪽


2011112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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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0-24 17:50 
    '두통에는 진통제', '우울증엔 항우울제', '불면증엔 수면제'라는 것이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의 두통과 학습우울증에 걸린 청소년의 두통이 과연 같은 질병일까. 또 시댁과 갈등을 겪는 주부에게 어깨 결림,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생리통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이는 각각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따로 해결해야 할 병일까. ─강용혁,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12쪽 예전에 손발이 너무..
 
 
 
이야기의 힘 -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
이창용 외 지음 / 황금물고기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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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프로그램, 동영상 그리고 종이책

EBS의 지식채널은 짧은 동영상만으로도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 못지 않은 감동과 정서적 충격, 지적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적어도 광우병관련 영상 때문에 경영진으로부터 보복 인사 조치를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기륭전자3년’을 마지막으로 지식채널을 떠난 김진혁PD가 곧 지식채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대를 비판하고 각성을 촉구하는 언론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남은 자들은 낮은 자세로 복지부동하거나 심한 자기 검열에 시달린다. 세월이 하 수상하니 누구를 탓하랴, 다만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될 뿐.

책으로도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EBS의 프로그램들은 자주 책으로도 독자들과 만나게 된다. 방송 시간을 놓친 시청자들이라면 다시 보기 동영상을 통해 보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 아닌가. 왜 종이로 된 책으로 내용을 살펴보고 싶은 것일까. 그것은 방송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깊이와 구체적인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닐까. 다큐 프라임 ‘이야기의 힘’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책은 책 나름의 원칙과 방법으로 독자와 만난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표지 디자인으로 책과 첫 대면을 하지만 기획에서 편집, 교정, 교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숨어 있다. 이것은 물론 책의 ‘꼴’에 대한 부분이다. 책의 ‘속’은 작가가 책임지지만 책의 꼴은 편집자의 몫이다. 그에 앞서 ‘출판기획’이 선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 모든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마지막 결과물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 결과물에는 가끔 ‘옥의티’가 있을 수 있다. 사극의 배경 하늘에 비행기가 지나가면 분위기가 확 깨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이 반복될 때 그 책의 속(내용)은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꼴(형식) 때문에 완전히 실망하게 될 때가 있다. 다음 몇 문장을 살펴보자.

◆ 경복궁은 말이야, 원래 1939년에 태조 이성계가 만들었어요. 1939년, 참 까마득…… 하지? - 35쪽
◆ 최고의 로맨스로 이야기되어지는 이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깊이 각인되는 기억을 선물해주었다. - 57쪽
◆ 백호 :(난처해하며) 아니, 그게 아니라…… 범인을 놓쳐가지고…….
남자 : (화를 내며) 됐어요! (아이를 안고 돌아서며) 자, 가자. 많이 놀랐지? - 76쪽
◆ 인간은 자신의 삶을 방향을 찾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 106쪽


1392년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여 1395년에 경복궁을 창건했다. 1939년?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치명적인 실수다. 두 번째 문장에서 ‘이야기가되어지는 이 이야기’가 무슨 말인가. ‘최고의 로맨스로 인정받은’, ‘최고의 로맨스로 평가받는’ 정도면 어색하지 않은 문장이 되었을 것이다. 세 번째, 대화 상황의 ‘백호’는 범인이다. 이 대사는 분명히 경찰인 ‘대찬’이다. 마지막 문장은 ‘인간은 자신의 삶의 방향을’로 고쳐도 어색하지만 ‘삶을 방향을’을 그대로 둘 수도 없다. 꼬인 문장을 풀어야 한다.

가독성을 해치고 책의 질을 완벽하게 떨어뜨리는 몇 개의 문장에 표시하며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을 쓰고 만들어 본 경험 때문이 아니라 ‘펴낸이’와 ‘기획’은 있으되 ‘편집’은 없는 이 책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는 2011년 11월 청소년권장도서로 선정했다. 입맛이 쓰다. 좋은 책의 절반은 편집자가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좋은 작가만큼 출판사도 꼼꼼하게 따져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야기, 소설 그리고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시간은 인관관계를 공간은 상황과 조건을 만든다. 여기에 사건이 결합되는 전통적 서사구조를 이야기라고 한다. 이야기는 문학이고 역사이며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하루 종일 뒷담화를 쫓아다니는 사람이나 입만 열면 무수한 소문에 상상력을 보태 전하는 사람처럼 미성숙한 인간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는 인간의 본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최근에 다양한 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다 보니 전통적인 서사와 소설 그리고 스토리텔링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졌을 뿐이다.

이야기란 ‘어느 순간 삶의 균형을 잃은 주인공이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어렵다.’를 다루는 것이다. 멜로, 액션, 스릴러 등 모든 장르의 영화와 아야기의 뼈대는 바로 이것이었다. - 5쪽

로버트 맥기는 “이야기란 어떤 사건에 의해 삶의 균형이 무너진 주인공이 그 균형을 회복하고자 여러 적대적인 것들과 맞서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고 한다. 이제 그의 책을 읽을 차례가 된 것 같다. 드라마와 영화를 기본으로 재미있는 이야기의 기본 골격을 떠올려 보자. 균형을 잃어버리고 적들과 맞서면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면 그것은 ‘이야기’의 기본 골격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 다른 사람의 인생에 열광하는 것일까. 한정된 범위에서 조금씩 움직이고 오로지 안정과 편리를 추구하는 현실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모든 인간의 욕망은 아닌가.

탄탄한 구조, 개성 있는 등장인물, 반전의 묘미, 비극을 이용한 공감대, 아이러니의 활용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갖추어야 할 요건들은 만화든 영화든 드라마든 소설이든 마찬가지다. 이 책은 이러한 이야기의 기본 조건을 알기 쉽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단계와 방법을 제시한다. 스토리텔링 시대를 분석하고 성공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마케팅과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점차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PD와 작가가 한 팀이 되어 아이디어를 내고 전체 구성과 구체적인 내용을 재미있게 제시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었을 과정이 짐작된다. 시청자들을 위해 알기 쉽게 구성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았다. 다만 매체를 뛰어넘어 시청자가 아닌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충분한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이야기 혹은 스토리텔링? 어디에 초점을 맞춘 것인지, 그것이 우리들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 조금 더 명쾌하고 깊이 있게 전달할 준비가 되었다면 ‘왕과 왕비’ 예문같은 진부한 소설의 이론을 제시하지는 않았으리라. 
 

2011111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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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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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엇이냐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다. - 25쪽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아주 먼 옛날, 300만 년에서 500만 년 사이에 원숭이들이 두 발로 서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자유로워진 두 손은 이제 무언가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방향감각이 더 예민해졌으며 더 넓은 시야가 확보되었다. 약 20만 년 전, 원숭이들은 뇌의 용량이 커졌고 드디어 현생 인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했다.

아프리카 대륙은 5억 5000만 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가장 오래된 대륙이고 가장 많은 지하자원을 품은 대륙이다. 인간은 여기서 처음으로 곧게 서서 걷는 법을 배운 것이다. 약 10만 년 전에 이들은 대륙을 떠나 중동으로 진출했고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던 베링을 통해 아시아에서 북아메리카로 이동했다. 유전적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빈곤과 기아, 각종 질병과 AIDS, 종교 분쟁과 정치적 혼란 등으로만 기억하는 대륙 아프리카.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을 떠올려보자. 아프리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갖게 된 편견은 아닐까. 인간이 다른 인간과 사물에 대해 갖게 되는 잘못된 판단과 심리적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이성의 힘은 아닌가.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너무 멀기 때문에 생활에 불편이 없기 때문에 이해와 관심이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다른 많은 편견처럼 아프리카는 그저 무관심한, 불필요한, 의미 없는, 보기싫은, 열등한 대륙인가. 우리 인류의 기원이 되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관심은 아닌가.

검은 대륙 아프리카, 그 고통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알지도 못하면서 갖게 된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한방에 날려주는 책은 아니다. 다만 편견과 의심 없이 아프리카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를 알게 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는 뜻이다. 유럽에 대한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프리카의 과거를 알게 된다면 우리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사라지지 않을까.

이 책은 케이프타운에서 거주하는 네덜란드계 독일인에 의해 씌어졌다. 저자는 잘못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거창한 의도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기쁨을 드러내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검정은 많은 색깔들을 갖는다.
우리가 찾는 빛깔은 검정,
검정은 아주 다채롭고
검정은 장님한테만 어둡게 보인다…….


함부르크 대학 기숙사에서 한 방을 쓰던 소년이 부르던 노래처럼 ‘검정’이라는 색깔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이야기에 불과한 책이다. 그 오랜 시간 아프리카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일들과 대륙에서 살아온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기에 이 한 권의 책은 너무 작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아프리카와 검정색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차별이 아닌 차이를 경험해야 한다. 인간의 탐욕과 폭력이 빚어낸 비참한 아프리카의 역사를 바로 보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이 갖는 아주 작은 의미이다.

기원전 5억 5000만 년 전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는 긴 시간을 개괄하며 검은 대륙 아프리카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저자 루츠 판 다이크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의 기원과 다양한 문명을 소개하는 데 절반을 할애했고 나머지 절반은 유럽 열강들의 침략과 아프리카의 해방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살육과 일방적인 폭력, 짐승처럼 팔려간 노예들의 역사는 어떤 비극적인 표현도 부족해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에 이르는 험난한 여정 또한 신산스럽다. 아직도 빈곤과 기아, 에이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검은 대륙은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그 원인을 알고 역사를 바로 보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세계사’를 단순히 승자의 역사로만 기억할 수는 없다. 수많은 패자의 눈물과 짐승처럼 죽어간 사람들의 피를 잊지 않는 것이 현재를 이해하는 출발점은 아닌가 싶다. 그들이 잃어버린 혹은 우리가 빼앗은 것이 무엇일까. 무지는 죄악이라는 말을 새삼스럽게 하는 책이다.

“마침내 이곳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시오!”(1895년 서아프리카 모시의 왕) - 140쪽


2011111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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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 산업혁명부터 지구화까지 25개 테마로 세계를 읽는다, 개정판
김윤태 지음 / 책과함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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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457쪽

하나의 세상, 두 개의 눈

저녁 무렵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 후 누군가를 만나 사고 소식을 전한다. 그러나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사고를 전달하게 된다. 뉴스에나 신문기사에 나오는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해 객관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늘상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하나의 세상을, 동일한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두 개다. 왼쪽과 오른쪽 눈의 시선이 겹쳐 입체감을 형성하고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안의 두 개의 눈이 다른데 다른 사람의 시선을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가로지르는 역사서술이란 무엇인가. 연대기 순으로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단선적인 방법에 익숙한 우리는 왕조중심의 한국사, 유럽중심의 세계사에 너무나 익숙하다.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인류의 역사를 성찰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넘나들며 상황을 파악하고 원인과 결과를 통해 그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역사가들만의 몫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살펴볼 수 있는 눈은 타인의 그것을 빌릴 수가 없다. 그래서 ‘과거가 없다면 현재도 없고 미래 또한 존재 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윤태의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의 마지막 문장은 당연하지만 의미심장하다.

세계사는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역사이다. 인종과 국가, 종교와 문화, 언어와 민족을 넘어 시간의 두께와 공간의 흐름을 읽어내는 세계사는 숱한 역사가들의 지적대로 두 가지 전제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나는 ‘선택’의 문제이다. 어떤 사건과 인물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세계사는 다르게 서술될 수 있다. 신문의 편집처럼 선택 자체가 주관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관점’의 문제이다. 왼쪽에서 볼 것인가 오른쪽에서 볼 것인가 위에서 볼 것인가 아래에서 볼 것인가에 따라 역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벌써 짐작했겠지만 ‘산업혁명부터 지구화까지 25개의 테마’로 읽는 이 세계사는 차례를 통해 저자의 관점과 책 전체의 흐름을 우선 음미할 필요가 있다. 맹자의 말대로 한 권의 책을 읽고 작가의 생각에 무조건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지 않겠는가. 진보적 관점에서 세계사의 주요 장면들을 해석한 이 책은 익숙한 인물과 사건들이 펼쳐져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의 문제가 관심의 초점이다.

상식과 교양 그리고 세계사

아주 먼 옛날 고등학교 영어시간에 ‘common sense’와 ‘good sense’의 차이를 설명하시던 영어 선생님이 떠올랐다. 상식과 양식 혹은 상식과 교양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갖춘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삶의 태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제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제목처럼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가 아니라 ‘교양인’이 되기 위한 세계사이다. 잡다한 상식과 역사적 사건, 과거의 인물에 대한 정보를 나열한 책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는 다양한 인문학적 지식과 풍부한 독서와 관련 분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통해 각각의 테마에 집중하고 있다. 시기로 말하자면 근현대 세계사에 해당한다. 아주 먼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우리들 삶의 조건을 형성하게 된 세계사를 짚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과거의 책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설명과 나열이 아니라 정확한 분석과 해석이다. 각각의 개념들을 짧은 분량으로 설명하는 것은 깊이도 없고 내용도 빈약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나름의 관점으로 명확하고 조리 있게 정리하고 그 의미를 분석한다. 어렵지 않게 읽히는 문장과 밀도 있는 해석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만큼 개성 있고 독특한 교양서로 손색이 없음을 증명한다. 각 장 끝에 ‘더 읽을 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코너이다.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잘 만들었는지, 저자는 또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관련 분야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볼 때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는 양서들이 소개되어 있어 큰 도움이 된다. 연표와 색인목록은 책의 꼴을 제대로 갖춘 마무리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책과 논문, 칼럼, 학술회의와 토론회의 내용이 일부 담겨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어색하거나 이질적인 느낌은 없다. 각각의 주제에 집중하면서도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을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성인과 청소년들에게 두루 맞춤한 책으로 추천할 만하다. 어떤 역사도 완전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다만 다양한 관점을 가진 책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역사란 어느 한 면만 보고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과거란 모조리 부정하거나, 무조건 수긍할 수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시각을 갖고 있는 한 과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합의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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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나선 - 생명에 대한 호기심으로 DNA를 발견한 이야기 궁리하는 과학 1
제임스 D. 왓슨 지음, 최돈찬 옮김 / 궁리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류 역사의 전환점이 된 수많은 사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다. 곰팡이에서 우연히 발견된 페니실린부터 유럽의 근대사를 뒤바꾼 드레퓌스 사건에 이르기까지 지금 우리들 삶의 조건은 숙명을 가장한 우연이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나비효과처럼 결과를 알 수 없는 원인과 결과가 반복되는 원인은 거슬러 또 다른 원인의 결과였을 것이고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과학적 발견이거나 철학적 성찰이거나 마찬가지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끝없는 열정,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는 집요한 탐구, 전혀 다른 방식의 창조적 상상력, 타인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이는 겸손한 자세,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독창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조건들이 지금 이 순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숱한 씨줄과 날줄이 모여 현재를 만들고 미래의 토대를 마련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세상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과학은 철학에서 출발한다. 모든 것의 기원을 찾고 사물을 바탕을 찾으려는 욕망이 과학자의 자세이다. ‘왜’라는 의문부호를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 과학자의 운명은 아닌지 모르겠다. 군대를 가지 않아 인생에서 가장 명민한 시절을 학문에 몰입할 수도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불과 23세의 나이로 코펜하겐을 거쳐 캠브리지에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제임스 왓슨 선택받은 조건을 갖춘 과학자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일반인들 머릿속에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 크릭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은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과학적 성취에 대한 실명 소설처럼 읽힌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1953년 4월 25일 <네이처>에 DNA 구조를 밝힌 짧은 논문을 발표하며 생명과학 분야에 놀라운 발자취를 남겼다. 제임스 왓슨은 이 과정을 다룬 『이중나선』은 딱딱한 과학 이론서가 아니다. 과학자들의 연구 과정과 개인적인 일상사가 그대로 드러난 이 책은 흥미진진한 과학사로 읽어도 무방하고 1950년대 캠브리지를 중심으로 한 과학자적 성과로 읽어도 좋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연구 분야에도 불구하고 DNA 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끊임없는 토론 과정은 학문을 대하는 본보기로 삼아도 좋을 만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미국의 폴링과 경쟁하는 장면은 흥미진진한 소설을 보는 재미도 있다. 과학 용어와 상식이 부족하지만 간단한 이론적 설명이나 그림이 삽입되어 있고 지루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아 읽는데 큰 지장은 없다.

짧은 분량의 이 책은 추천사를 쓴 최재천의 말대로 과학자에게 왜 글쓰기가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축적된 연구 성과와 역할로 볼 때 프랜시스 클릭이나 노벨상 공동수상자인 윌킨스에 비해 제임스 왓슨이 더 명성을 떨치게 된 이유는 대중을 상대로 한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 능력 덕분이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연구 성과를 좀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사회적 관심과 연구 지원 등 다양한 혜택으로 돌아왔고 그것은 또 다시 과학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순환고리의 역할을 해냈다. 과장된 포장이 아니라 1968년에 출간된 이 책이 고전으로 자리잡은 이유를 헤아리며 읽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전달되는 유전정보를 담은 분자들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들의 화학적 특징은 무엇일까. 이러한 생명의 비밀과 신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어 DNA 구조를 발견한 왓슨과 크릭의 이야기는 어떤 SF소설보다도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생존 인물들이 보여주는 과학과 과학자들의 세계 그리고 1950년대 영국과 유럽의 일상까지 읽어낼 수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에 과한 몇 권의 책에서 시작된 책읽기가 종횡무진 계속되겠지만 왓슨의 호기심을 불꽃처럼 타오르게 했다는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로 이끌어준다. 형이상학적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들만큼이나 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관심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어느 한 분야도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고 인류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노력해야 하는 분야가 많겠지만 생명의 본질에 대한 질문은 과학을 넘어 철학적 관점으로도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과학은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줄 수도 없고, 죽은 사람을 살려 낼 수도 없다. 하지만 무지한 인간에게 아주 작은 앎의 기쁨을 느끼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너와 나는 누구이며 우리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중나선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11110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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