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시간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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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것, 항상 알았던 것,

피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은

옷장만큼이나 명백하다.

한쪽은 사라져야 한다.

필립 라킨, 「새벽의 노래Aubade」

창밖에 가을이 당도했다. 계절의 한쪽인 여름이 사라졌다. 가을도 명백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유발 하라리의 지적대로, 인간은 상상의 질서를 받아들여 정교한 제도와 규범을 만들었고, 이야기에 ‘환장’하는 본능이 문명발달의 초석을 만들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혹은 쏟아지는 빗줄기와 잿빛 하늘이 만든 풍경은 인간의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지배한다. 어디 그뿐인가. 별이 바람에 스치우기도 하고, 길섶에 핀 꽃 한 송이에 눈길이 가기도 한다. 무엇을 먹고 어디를 바라보며 걷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제각각 완강한 희망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이 마음에 들어 클레어 키건의 책을 한 권 더 읽었다. 『너무 늦은 시간』은 3개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창작 연도와 무관하게,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클레어 키건은 ‘여성’ 문제를 수면 위로 떠올리고 때로는 표면 아래에 둔다. 표제작 「너무 늦은 시간」은 결혼을 앞둔 카헐과 사빈의 이야기다. 여성 혐오는 ‘차별’의 카테고리 안에 있다. 관점과 시선이 바뀌지 않으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대상과 개념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사람보다 그것이 자기 신념 혹은 진심인 사람은 당해내지 못한다. 대개 정치와 종교가 그런 분야다. 하지만 사회에서 벌어진 질서와 규범 문제는 이들이 지켜야 하는 마지노 선이다. 우리는 여전히, 아니 영국도 옛날부터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건 아닐까. 신생국 미국도 다르지 않다.

「길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하인리히 뵐 하우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선정된 여성 작가의 이야기다. 한국 단편 중에서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경험을 다룬 작품이 여럿이다. 창작의 고통, 그곳의 에피소드, 작가의 사유와 창작 과정 등을 살필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을 주기도 한다. 클레어 키건은 특별히 교훈을 담거나 진지한 성찰로 독자들에게 반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무심한 장면과 객관적 시선으로 여운을 남긴다.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으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여자는 집을 떠날 때마다 다른 남자와 자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남극」의 첫 문장이다. 일탈을 꿈꾸던 가정주부의 호기심이 비극을 만든다는 교훈은 물론 아니다. 사랑과 욕망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그것은 남녀의 권력관계로 해석하거나, 기울기가 다른 감정의 불균형으로 다루는 클리셰도 아니다. 물리적 힘의 차이, 사랑하는 방식과 태도의 개별성 문제에 기인한다. 그것을 남성 혹은 여성으로 일반화할 수 있을까. 그렇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깊은 논쟁과 토론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쉽게 결론에 도달하긴 힘들어 보인다.

안온한 일상, 별일 없는 하루, 평화로운 인생을 꿈꾼다면 소설은 언제나 강 건너 불구경, 내가 겪지 않아서 좋은 슬픔, 나른한 재즈를 배경으로 차 한 잔의 여유에 필요한 가십거리 정도가 아닐까. 혹자는 네가 무얼 먹었는지 말해주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네가 무엇을 읽었는지 말해주면 네가 어떤 사람인 말해주겠다고 한다. 아날로그 시대에나 통용되는 말일 것이다. 이제는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가 말한 대로 구글창을 뒤져보거나 유튜브 목록을 털어보면 한 사람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도 여전히 소설책을 뒤적이는 부류의 사람들끼리 교환하는 음험한 눈빛 혹은 그들만의 소통 방식 또한 사라지지 않을 터. 안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이영도와 유치환을 떠올리거나,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다시 듣거나, 곧 스쳐 지나갈 가을을 즐길 시간이 너무 늦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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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해 왔다 교양 100그램 8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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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 블로어 (whistle blower). 진실을 밝힐 목적으로 자신이 속한 기업이나 조직의 불법 또는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은 동서양을 막론한다. 동명의 책이 국내에 소개된 바 있으나 우리에겐 ‘내부 고발자’ 등의 명명법으로 더 익숙하다. 좌파 혹은 진보라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익숙한 개념이지만 모든 이념과 정파를 넘어 모든 인간과 모든 조직은 잠재적 기득권자, 권력자, 앙시앙 레짐이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풍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가까운 곳에서 수없이 목격한 그들은 대체로 도덕과 가치를 명분으로 그럴듯한 포장지로 자신과 조직을 감싸며 태도를 바꾼다. 결국 이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며, 선택과 결정 뒤에서 웃는 자를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건 한참 후의 일이다. 고인 물은 썩고, 오래 머문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

변화와 개혁을 부르지는 자들이 이러한데 자기 이익에 골몰하며 우리가 남이냐는 생각으로 거대한 이익 카르텔을 형성한 사람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혹자는 인적 네트워크, 관리된 인간관계, 뛰어난 사회생활 능력이라고 평가하지만 유형, 무형의 편의를 봐주고 이익을 공유하는 건 어떤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을 비난하는 자들도 결국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끼리끼리 문화를 만들고 그럴듯한 명분과 가치로 혹세무민하기 일쑤다. 대개 부패와 비리 사건이 보수 정권에서 빈번한 이유는 무엇일까.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과 태도로 인한 자연스런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길게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길고도 해묵은 뿌리를 들여다보기 전에 눈 앞에 펼쳐진 대환장 파티 같은 현실 때문이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어머니가 극우 유튜브에 빠진 아들을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해서 일반적 부모의 마음과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제목처럼 아들을 구출하기 위한 노력과 방법에는 조금 차이가 있을 거라는 짐작으로 책장을 여는 정도면 충분하다. 2025년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 다음 날 SNS에 올린 ‘내 아들을 구출해 왔다’라는 글로 극단주의에 빠진 10대 아들 이야기를 공유한 저자의 목소리는 흥분과 분노와 거리가 멀다.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논리와 이성에 근거한 사유가 문제를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인류는 변연계가 아니라 신피질이 두터워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으며 종교가 아니라 과학의 힘으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AI가 신의 자리를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예측까지 나온 지 오래지만, 현재는 유튜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에코 쳄버나 필터 버블에 관한 숱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니 그 말조차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오늘도 알고리즘이 창조한 세계 안에 갇혀 이미 100여 년 전에 알을 깨고 나오라고 외쳤던 헤르만 헤세의 조언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너는, 아니 우리는 지금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

평범한 엄마 권정민은 혐오와 극단주의를 몰아낼 건강한 대화법 7계명을 제시한다.

1. 일단 들어보자.

2. 이해와 공감을 말로 표현하자.

3.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연결해보자.

4. 새로운 정보는 서서히 소개하자.

5. ‘나도 모른다’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6. 상대의 관심사를 포착하자.

7. 생각을 되돌아볼 시간을 주자.

책갈피처럼 꽂혀 있는 종이 카드를 살피다 씁쓸해졌다. 극우 유튜브에 빠진 아들을 구출하기 위한 노하우가 아니라 너무나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대화의 예의가 아닌가. 그만큼 상식이고 일반적일 거라고 짐작하는 일들이 일상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대화와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유형을 몇 가지로 나눠보면, 첫째 내 생은 이런데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묻고 상대방의 말을 들는 사람이 있다. 둘째 이 문제는, 이런 상황, 이 사건은 이런데 너는 어떻게 그런 말을 하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다. 셋째 상대방이 어떤 말을 하거나 물어보지도 않고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추측을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는 없다. 지구에 사는 80억 명, 아니 대한민국 5천만 명을 70:20:10 정도의 비율로 나눌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게 많아 지키고 싶을수록 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있고, 세상은 어떤지 규정하며, 삶의 방법을 가르치려 한다. 단순히 ‘꼰대’라는 속어로 범주화할 수 없는 어른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계급을 배신하는 투표, 정치 유튜브에 쩐 뇌, 드라마와 영화조차 요약과 쇼츠로 소비하는 일상이 모이면 극우든 극좌든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도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태도가 본질이라는 말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비판적 사고력이 부족하고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과 사유의 시간을 갖지 못한 10대 아들이 단시간에 유사 알고리즘에 빠지는 현상은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그들을 구출해 낼 수 있는 특별한 노하우가 아니라 점점 좁아지는 우리들의 시야,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대화와 토론은 수업 시간에만 배우는 교육과정이 아니다. 특별한 스킬과 노하우를 습득할 필요도 없다. 타인을 향한 기본적인 예의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다. 다른 사람의 ‘진심’ 운운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감정을 추측하는 이 감별사들의 주관적 판단이 주는 해악은 이성적 토론을 무력화하는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디어는 언제든 다시 등장하고 새로 만들어진다. 사실과 의견(해석과 주장)은 다르다. 자기 생각을 말할 때, 주관적 감정이 섞어 사실 운운하는 사람을 멀리해야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수많은 유튜버들이 사용하는 프로파간다가 바로 그런 식이다. 기본적인 팩트체크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숨 쉬는 일만큼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극우 유튜브에서 아들을 구출하는 일만큼 극좌 유튜브에서 엄마를 구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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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 - 후회 없는 삶을 위한 지침서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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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개 죽음이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동차 거울의 경고문구처럼 생각보다 가까이 놓여 있다. 법의학자 유성호는 구체적으로 '엔딩 노트'를 준비하라고 충고한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첫 번째는 생물학적으로 숨이 멎었을 때, 그리고 두 번째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었을 때다. 이 노트는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일인칭 시점의 죽음에 관한 준비 과정이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죽음이란 무엇인가.

장기 기증, DNR(연명치료중단) 동의 여부, 유서 작성, 장례 방법 등 죽음에 관한 준비를 미리 하지 않으면 '나'의 죽음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가중한다. 이인칭, 삼인칭 관점에서 바라본 '죽음'은 일인칭 시점인 '나'의 죽음과 조금 다르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들여다본 법의학자가 자신에게도 머지않아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과 태도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가족, 친구들과의 이별 등 자기 삶의 마무리는 한 인간의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규정하게 한다. 죽음 이후에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물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년, 상실, 애도, 존엄사 등 죽음과 관련된 실제적인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감에 대하여, 이별과 죽음에 대하여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자기 삶의 마무리, 즉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좋은 삶'을 위한 다짐이 된다. 연명 치료와 장례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이 드신 부모님이나 노인들에게만 필요한 준비가 아니다. 죽음을 위한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고민과 준비가 오히려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의 바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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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한 법의학자가 수천의 인생을 마주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이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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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일어난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인생을 기쁨과 행복으로만 채울 수는 없는 법이다. 슬픔과 불행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온다,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공화정 시대, 개선장군의 화려한 행렬 맨 뒤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반복해서 외치는 노예를 두었다. 가장 찬란하고 빛나는 승리의 순간이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경고다. 눈부신 청춘의 뒤안길에서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죽음을 우리는 애써 외면하며 사는 게 아닐까.

오늘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내일을 즐기기 어렵다. 현재를 즐기라는 오래된 금언 "카르페 디엠carpe diem"은 순간순간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죽음을 생각하며 하루살이처럼 살라는 뜻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절대 진리 앞에 겸손하라는 조언이다. 망설이고 미루는 대신 도전하고 실천하라는 가르침이다.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모른 척하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하며 준비할 시간이다.


30여 년간 4천 구의 시신을 부검한 법의학자의 이야기 속에는 삶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모두 담겨있다. 수많은 죽음 앞에서 저자가 느꼈던 감정, 그로 인한 생각의 갈피들 속에는 '삶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가 스며있다.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으랴. 모든 시신에는 소설보다 극적인 사연이 숨어 있다. 원인을 알 수 없어 '사인 불명'이라고 표기하지만, 그 이면을 들춰보면 인간의 탐욕과 증오, 혐오와 공포 등 다양한 감정과 욕망이 꿈틀댄다. 각종 범죄와 연루된 시신은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증명하듯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법의학자 이호는 그 시신들을 부검하며 거짓과 진실을 가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정리한다.


죽은 자가 산 자들에게 주는 가르침은 생각보다 죽음이 삶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삶과 죽음은 어깨동무를 한 채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질병뿐만 아니라 사건, 사고 그리고 자연재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이 매일 죽는다. 그중에서도 갑작스럽고, 예상하지 않은 죽음이 남긴 의문을 푸는 법의학자라는 직업은 인문학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죽음을 해석한다.


그러나 과정과 방법은 달라도 누구에게나 결과는 같다. 저자가 경험으로 풀어낸 이야기들이지만 '죽음 수업'은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삶의 수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너무 늦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할 목적으로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자기 경험과 생각을 나누며 개별 독자들에게 이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라고 촉구하는 듯하다. 특히, 여름 햇살처럼 강렬하고 뜨거운 청춘이 지난 사람들이라면 재테크와 건강 관리보다 중요한 '죽음 수업'을 시작할 때가 아닐까.


사람들은 대개 죽음이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동차 거울의 경고문구처럼 생각보다 가까이 놓여 있다. 법의학자 유성호는 구체적으로 '엔딩 노트'를 준비하라고 충고한다.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첫 번째는 생물학적으로 숨이 멎었을 때, 그리고 두 번째는 그의 죽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었을 때다. 이 노트는 첫 번째 죽음을 맞이하는 일인칭 시점의 죽음에 관한 준비 과정이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죽음이란 무엇인가.


장기 기증, DNR(연명치료중단) 동의 여부, 유서 작성, 장례 방법 등 죽음에 관한 준비를 미리 하지 않으면 '나'의 죽음이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가중한다. 이인칭, 삼인칭 관점에서 바라본 '죽음'은 일인칭 시점인 '나'의 죽음과 조금 다르지 않은가.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들여다본 법의학자가 자신에게도 머지않아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과 태도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가족, 친구들과의 이별 등 자기 삶의 마무리는 한 인간의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규정하게 한다. 죽음 이후에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물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년, 상실, 애도, 존엄사 등 죽음과 관련된 실제적인 이야기를 통해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감에 대하여, 이별과 죽음에 대하여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자기 삶의 마무리, 즉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나이와 상관없이 '좋은 삶'을 위한 다짐이 된다. 연명 치료와 장례식에 관한 이야기가 나이 드신 부모님이나 노인들에게만 필요한 준비가 아니다. 죽음을 위한 일상적이고 실질적인 고민과 준비가 오히려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의 바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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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의 습격 - 편리와 효율, 멸균과 풍족의 시대가 우리에게서 앗아간 것들에 관하여
마이클 이스터 지음, 김원진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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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라디오가 대중에게 방송되자 처음으로 온종일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다. 권태의 탈출구가 생긴 것이다. 1950년대에는 위대한 텔레비전이 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운명의 2007년 6월 29일, 아이폰이 탄생하자 따분함은 영원하고 완전한 사망 선고를 받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의 상상력과 사회적 유대 또한 따분함과 운명을 함께했다.

계속 찾아 읽고 싶은 작가는 아니지만 한 권 정도는 더 읽어보고 싶었던 마이클 이스터의 책을 살폈다. 『가짜 결핍』에 이어 읽은 『편안함의 습격』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시인 김수영의 말을 패러디 하자면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끈기와 노력이다. 온몸으로 쓴 글은 독자에게 온몸으로 읽힌다. 소설이라면 ‘핍진성’이라 할 만한 ‘진정성’에 담긴 글이다. 그 함의는 ‘진심’이라는 피상적 의미와 결이 조금 다르다. 범죄자도 그를 변호하는 변호인도 ‘진심’을 담는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누구나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담지만 그 뜻과 의미는 차이가 크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전해진 ‘쿠이보노Cui bono’가 판단과 선택의 기준으로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너무 뻔하다. 현대사회에서는 경제적 이익이 그 최종 목적지다. 편안하게 이익을 얻으려는 마음, 익숙한 자리를 차지하며 위기를 외면하는 태도는 그대로 자기 삶의 결이 된다. 누가 쉽고 편한 삶을 마다하겠는가.

마이클 이스터는 알래스카로 사냥을 떠난다. 그 생생한 야생의 기록과 전하려는 이야기가 교차편집되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하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이야기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라는 단순한 자기계발식 충고가 아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너’라고 채찍질하며 게으른 태도를 버리라며 ‘킵고잉keep going!’을 외치지도 않는다. 다만 편안함이 선이고 불편함은 악이냐고 묻는다. 현대 문명의 정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 온통 야만의 역사로 느껴진다. 인터넷이 없던 아날로그 시대, 비행기가 없던 지구, 기차와 자동차가 없던 시절은 어떤가. 편리와 효율이 생존 본능과 감각을 삭제했다. 점점 더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길들여지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니 그보다 중요한 건 신체적 안전을 넘어 습관적 사고와 편향의 위험성이다. 나이와 성별, 학력과 직업, 인종과 종교를 넘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경고등은 지나친 정보가 아닐까. 검색과 요약으로 무장한 인공지능이 오히려 자기 확신을 강화시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한다. ‘내말이 정답’인 사람들이 과거에도 없지 않았으나 이제는 타인의 생각이나 주장을 경청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태도’의 문제로 귀결되며 지식과 정보의 총량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능력으로 환원된다. 너는, 아니 나는 어떤 존재인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가. 너무 당연하고 뻔해 보여 스스로 질문하지 않는 이 편안한 세상(아파트 브랜드 아님)에서 왜 마이클 이스터는 편안함이 곧 위기라고 경고하는 것일까.

알래스카 오지에서 33일간 극한 추위와 싸우며 순록 사냥을 떠난 그의 취재기는 뇌과학과 정신분석학, 진화심리학과 운동생리학과 인류학을 버무려 중독, 우울, 불안, 자살, 비만, 번아웃 등에 관한 현대인의 문제와 원인을 들여다본다. 물론 그 모든 문제의 원인이 편안함으로 귀결될 순 없으나 저자의 지적과 제안은 복합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과 대안을 마련하는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시키는 대로 하면 고민이 없고 불편하지 않다. 사람 사는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면 불만도 없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후자가 행복할 가능성이 크다.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이 모두 생각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문제를 외면하고 눈감는 사람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카스텔리오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무시했던 중세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는 편안함에 대한 도전이 인간을, 그리고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을 받으며 무임 승차한 대다수 구성원이 때때로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곤 한다. 나를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외치면서.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그 익숙함과 편안함으로부터 벗어나라고 경고하는 마이클 이스터 같은 사람들이 가끔은 당신, 아니 나의 삶에도 필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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