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림이 말했다 - 생활인을 위한 공감 백배 인생 미술
우정아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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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 1960년대 벌어졌던 문학의 순수-참여’ 논쟁은 이어령과 김수영 개인의 의견 대립이 아니라 오랫동안 예술가들에게 던져진 숙제였다당대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현실’ 반영 문제는 누구에게나 고민거리였을 것이다문학은 물론 그림과 음악도 마찬가지다예술은 현실 너머의 숭고한 대상을 표현할 수도 있으나 지금-여기에 발 딛고 서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얻기 힘들 수도 있다그렇다고 비루한 일상참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없다예술은 그 자체로 목적이면서 때로는 도구로 활용된다어느 쪽이든 프로파간다다.
  
예술을 보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우선 미술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기원전 3000년 전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5천여 년에 걸친 인류 문명사에 얼마나 많은 예술 작품이 있겠는가각 시대별 특징과 유파를 고전주의부터 팝아트까지 일별할 수 있는 지식은 작품 감상을 풍부하게 만든다여기에 당대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이해작가의 생애를 더하면 충분하다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볼 것을 권유한다미술관이라는 특정 장소에 가야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책과 인터넷으로 눈요기를 즐긴다일상에서 친숙하게 그림과 조각을 접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오늘그림이 말했다』 같은 책이 아니면 설명을 듣기도 쉽지 않다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휘트니 채드윅의 여성미술사회가 아니면 진중권이주헌박홍순 등이 쓴 해설가가 주종을 이룬다각각의 그림에 대한 개별적인 감상다른 관점을 보여주는 책은 거의 없다그림에 대한 간단한 지식미술사의 위치개인의 일상을 함께 소개하는 정도다이런 류의 책들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이유는 언제든 찾아가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일정 기간 동안 기획 전시되는 그림을 보고 나면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몇 달 쯤 유럽의 미술관에 처박혀 그림만 보는 생각을 하곤 했다사적인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오늘그림이 말했다를 펼쳤다.
  
그런데 오늘은 없었다. ‘생활인을 위한 공감 백배 인생 미술이라는 부제까지 생활밀착형 그림 설명을 기대했으나 현실이 없었다. ‘소재를 고르면서는 때마다의 사회적 이슈와 연결되도록이라는 머리말에 기대가 부풀었으나 그림과 현실의 접점이라는 가장 큰 특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현재적 관점으로 그림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이 가끔 눈에 띄긴 했으나 다른 그림 해설서와 뚜렷이 차별화되는 지점이 없어 안타까웠다적당한 지식과 감상을 보여주는 문안한 책으로 보면 충분하다
  
신문에 연재 특성상 일반적으로 적절한 깊이로 조절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특정한 키워드로 단단하게 묶거나 시대와 유파를 넘어 저자 나름의 관점을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그림을 보는 전문가의 안목을 빌려 사람들은 흥미를 갖게 되고 미술관을 찾는다풍부한 서사가 곁들여지든일반적인 감상에서 벗어나더라도 독특한 관점이 드러나는 책이 기다려진다순전히 개인적이 취향일 수 있으나 박홍순의 생각의 미술관이 오히려 그림을 재밌게 감상하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상상의 힘과 여지를 남겨 주거나 어떤 식으로든 자기 관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서양 미술에는 수없이 많은 여자가 등장하지만 그들은 딱 세 부류로 나뉜다예쁜 여자나쁜 여자 그리고 어머니다…… 예쁜 여자의 전형은 비너스이고 나쁜 여자의 대표는 이브이며 어머니의 신은 성모마리아다. -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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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 삶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시간 배철현 인문에세이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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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위할 것인가?

내가 나 자신을 위한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힐렐, 선조들의 어록, 114

 

이제는 이십대 후반이 된 녀석들과 추억을 더듬었다. 생각나지도 않는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듣고 있자니 민망하면서도 아련했다. 그 무렵 내게 간절했던 건 통찰력이었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20, 30대를 거치면서 저절로 흐르는 시간에 맡긴다고 해서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을 뿐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먹고살기 위한 몸부림, 고통을 견뎌야 했던 경험, 혼자라는 사실을 깨다는 과정이 나이를 먹는 과정이지만 저절로 혜안이 생기지는 않는다. 특정 정당, 종교, 이념, 가치, 윤리에 빠진 사람들을 자주 본다. 흔들리지 않는 그들의 신념은 아무도 깨트릴 수 없는 도그마로 굳어진다. 경험과 나이를 내세우는 천박함, 지위와 권력을 드러내는 허접함, 돈과 물질을 앞세우는 비루함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로 세상은 가득하다.

 

배철현의 수련은 출판사의 기획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깊은 성찰과 고민의 시간을 갖고 싶었던 독자에게는 아쉬움이 많다. 전체 428개의 키워드는 그 자체로 충분히 깊고 넓은 함의를 가진다. 하지만 300페이지가 넘는 책에서 본문은 200페이지도 안 된다. 이 작은 판형의 하드커버로 담아놓은 책의 분량을 문제 삼는 것은 화려한 학벌과 방송으로 알려진 이름값으로 기획한 냄새가 심하기 때문이다. 심연에 이어 수련이 나왔으니 곧 정적과 승화도 나올테다.

 

저자에겐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고전 문헌학자의 진정성은 간략한 원고에도 충분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위대한 개인을 발견하고 완성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네 가지 단계인 심연-수련-정적-승화중 두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수련에는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 감추고 싶은 나를 마주하는 시간인 직시, 삼의 군더더기를 버리는 연습인 유기, 본질을 찾아가는 훈련인 추상, 나를 지탱해주는 삶의 문법인 패기가 그것이다. 정교한 그물처럼 각각 7개의 실천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의 고민과 수고로움이 배어 나오는 대신 숙성과 깊이가 드러나지 못해 아쉽다. 조금 천천히 쓰더라도, 독자들의 호흡이 짧아지더라도, 여전히 길고 느린 호흡으로 숨을 쉬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필요하다.

 

교황이 즉위식에서 건네받는 지팡이의 이름인 ‘sic transit gloria mundi! 세상의 영광은 어찌 이리 빨리 사라지는가!’는 최고의 종교 지도자로서 삼가야 하는 태도가 아니라 우리처럼 평범한 범인들에게 더욱 필요한 삶의 지침이 아닌가. 아주 잠시 머물다 간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수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 찰나의 순간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의 고민이 담겨 있다.

 

내일은 오늘과 다를 바 없다. 어제가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았듯이. 수련은 오늘의 나를 변화시키는 훈련이다. 그 변화는 물론, 내 안에서 시작된다. 군더더기를 버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욕망을 덜어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덕목이다. 덜고 비우는 연습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자신의 욕망조차 알기 어렵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는가. 왜 그러한가.

 

지적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간과해버린 삶의 태도를 점검할 수는 있다. 부디 자기 안에 쌓인 이기심을 포장하지 말고 수련을 통해 거듭날 수 있기를. 타인의 말과 행동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거울 앞에 설 용기를. 절대 진리와 영원한 가치가 없다는 정도는 파악하기를. 무엇보다 먼저 헛되고 헛됨을 확인하는 수련의 시간이 필요하기를.

 

저는 인간이 고통을 당하거나 창피를 당할 때마다, 그런 고통과 창피를 당하는 장소에서 항상 침묵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편을 들어야 합니다.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압제자를 돕는 것이지 피해자를 돕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침묵은 폭력의 주동자를 독려합니다. - 102, 엘리 위젤Elie Wie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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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편한 당신에게 - 남과 여의 아들러 심리학
이와이 도시노리 지음, 최서희 옮김 / 알투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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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는 공감이란 타인의 눈으로 보고, 타인의 귀로 듣고, 타인의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공동체 감각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인식한 것이지요. 다르게 표현하면, 공감능력이 없는 사람은 공동체 감각이 결여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 감각이란 공동체(예를 들어 가정, 지역, 친구와의 모임)에 대한 소속감, 공감, 신뢰감, 공헌감을 총칭하는 감각이며 감정입니다. - 121

 

원제 남자와 여자의 아들러 심리학이 어떻게 이런 제목으로 출간되었는지 의심스럽다. 요즘 남성의 70%, 여성의 60%가 독신이며 연인이 없다는 내용의 프롤로그 제목 때문일 텐데 이는 사회 현상에 대한 통계학적 오류와 그 원인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전제 자체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까지 숱한 연애 자기 계발서, 남녀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 뇌과학에 근거한 생각과 행동 방식의 차이를 지겹도록 읽었지만 인과 관계의 분석에 사회학적 접근이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다. 부모의 양육 태도, 남녀에 대한 오해와 편견과 차별, 사회 경제적 구조와 시스템이 오히려 연애와 결혼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닐까. 청년실업, 교육, 내집 마련, 노후대책 등 삶의 질적 조건과 경제적 여건이 더 큰 요소가 아닐까.

 

물론 이와이 도시노리는 오랜 시간동안 실제 상담 경험을 통해 남녀 사이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개인과 사회와의 관점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들러는 사랑이란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보다 나은 인간관계의 부산물이다.’라고 선언했다. 연애와 결혼도 결국 첫눈에 벼락을 맞은 순간적인 전율이 아니라 관계를 통해 점차 발전하고 생성되는 결과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 책은 남자와 여자가 엇갈리는 이유, 서로 상처 받는 이유, 여성과 남성의 속성, 행복에 이르는 비법을 제시한다. 처음 연애하는 사람, 결혼을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일부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대체로 일반적인 수준의 이야기를 넘어서지 않는다. 심리학과 뇌과학의 관점으로 심층적으로 다룬 책들이 넘치니 오히려 쉽고 가볍게 일별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적절한 정도의 내용이다. 책 제목처럼 혼자가 편한 이유가 다른 성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전제 하에.

 

그러나 인간관계는 몰라서 틀어지는 게 아니라 충분히 알고 이해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너는 너이고 나는 나다. 개인과 개인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서로를 이해하면 자기반성과 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심연이 존재하고 건널 수 없는 강물이 흐른다. 책 속에 등장하는 어느 부부의 사례처럼 사랑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뼈아픈 고백도 가능하다. 상대를 인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시작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없을 때 끝난다.

 

사랑이란 감정이 아니라 관계다”(루돌프 드라이커스)라는 말은 시공을 초월한 지혜다. 관계는 경청에서 비롯된다. 타인이 하는 말을 듣고 그 말에 대한 생각을 전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귀를 닫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모든 관계는 자동차 사고와 유사하다. 100:0의 관계는 흔치 않다. 수많은 경우의 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하는 순간 오류가 발생한다. 그래서 최악의 연애 상담가는 베프다. 공감과 경청 이외 어떤 말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없다. 마치 풍선효과처럼 문제의 총량은 변화가 없는데 이리저리 누르고 매만져도 모양만 바뀔 뿐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연애와 결혼 지침서가 있는지 모르겠다. 성격도 상황도 감정도 저마다 다른 데도 일반적이고 대체적으로 지켜야할 만한 룰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이 도시노리도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하고는 있지만 각각의 남녀가 살아온 환경, 심리적 배경, 현실적 상황이 제각각이다.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는 있겠으나 본질적으로 유일무이한 그 혹은 그녀와의 관계는 오로지 두 사람만이 풀어갈 수 있을 뿐이다. 가족, 친구, 지인의 충고와 조언은 자기 경험과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주관적 견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공부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대체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문제는 이미 경험한 후에 관찰하고 돌아보는 방식이다. 경험을 통해 배우고 시행착오를 줄일 수는 있으나 매번 사람도 상황도 변한다. 그래서 아들러 심리학 연구의 일인자가 조언하는 연애와 결혼의 해법이라는 부제는 사람에 따라 시간 낭비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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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랑의 실험 - 독일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알렉산더 클루게 외 지음, 임홍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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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당 문고에서 나온 독일 문학 단편선(제목은 정확하지 않다)을 기억한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지와 사랑(골트문트 운트 나르치스) 그리고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유일하게 다른 전공을 고민하게 한 책들이었다. 다시 접한 독일 단편소설은 예전에 읽었던 소설이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 열 일곱편의 독일 단편 소설은 한편, 한편 깊이와 넓이를 가늠하며 읽었다. 괴테, 토마스 만, 헤쎄, 브로흐, 하인리히 뵐, 잉에보르크 바흐만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작가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졌다.

 

괴테의 정직한 법관, 토마스 만의 루이스헨, 헤쎄의 짝짓기,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당대 사회를 이해하는 우회적 방식이다. 예나 지금이나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허위의식에 대한 고발은 작가의 중요한 의무였다.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탐구는 우리가 삶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일상적 현실에서 미래를 고민하며 일하고 돈 벌고 누군가를 만나고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소설은 이 현실을 다분히 과장하거나 비틀어 부각하지만 독자는 이를 통해 반면교사로 삼는다. 자기 삶의 오늘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기능하는 소설은 여전히 중요하다. 자각은 변화에 선행한다. 나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인가. 지금은 또 언제인가.

 

정직한 법관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욕망과 도덕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괴테는 품격 있고 고양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치는 자세를 취하지는 않는다. 토마스 만은 루이스 헨에서 이를 위악적으로 비틀어버린다. 짝짓기에서 헤쎄가 말하고 싶었던 부분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빨간 페터를 화자로 내세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인간의 자유를 출구로 치환한다. 삶의 조건이 어떠하더라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문제는 자유로운 삶이다. 그것은 물질적 풍요로움이나 높은 직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누군가에게 억지로 웃지 않을 자유, 타인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장님 제로니모와 그의 형,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주워온 자식은 시대와 공간을 넘어 인간과 인간의 신뢰 문제를 다룬다. 타인의 말 한 마디, 세속적 욕망 때문에 의심과 증오를 넘어 죽음에 이르는 사건 사고는 매일 접하는 일상이다. 문학의 보편성은 인간에 대한 진지한 탐구에서 확보된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통찰은 인간과 세계를 바로 보게 한다. 화려한 포장지를 찢고 나면 추악한 형상만 남는다. 보잘 것 없는 인간의 삶에 대한 반성과 겸손을 갖추지 못한 태도는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거창한 담론, 그럴듯한 가치를 내세우는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이기적 욕심과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하지만 포장하지 않고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 실격에서 태어난 일에 대한 죄스러움에 통탄한다. 자기 존재에 무작위성, 우연에 기댄 삶의 조건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인간에게 아름다움이란 단어를 찾기는 힘들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만날 모양이다. 한국전쟁 종전 65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는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의 현실은 동서독의 통일 이전과 이후를 살펴보면서 지혜를 조금 얻을 수도 있겠다. 헤르만 브로흐의 바르바라, 지크르피트 렌츠의 발라톤 호수의 물결등은 대한민국의 분단문학과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상처와 삶의 현실을 드러내는 수작이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다. 가족 이기주의에 함몰된 우리 현실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책무 사이에서 우리는 종종 길을 잃는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등등 운운하는 위정자들을 속내들을 들여다보면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잉에보르크 바흐만은 개 짖는 소리를 통해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 개 짖는 소리는 환청에 불과하다. 요르단 노파의 삶은 희생과 봉사로 점철된 어머니의 역할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이 불가능한 여성의 삶을 폭넓게 대변한다. 남녀차별, 성평등의 지난한 과정을 성찰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당대를 살아가는 개별 소수자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문제의 해결은 연대와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 증오와 혐오의 언어를 쏟아내는 소수자는 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고립과 비난을 초래할 뿐이다. 불특정 다수를 적으로 돌려세울 때는 목숨을 건 투쟁과 당당함이 준비되어야 한다.

 

표제작 알렉산더 클루케의 어느 사랑의 실험은 게르만민족의 트라우마 아우슈비츠에 대한 우화다. 실제 실험을 바탕으로 했으나 이 짧은 소설은 우화에 가깝다. 이 밖에도 인상 깊은 단편 소설로 가득 한 독일 단편 소설 선집은 역자 임홍배의 해설과 더불어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훌륭한 앤솔로지로 탄생했다. 점점 더 책을 고르고 읽기 어려워진다. 사람도 세상도 변하니 자연스런 변화일 수 있으나 책이 가진 미덕과 가치는 변함없이 소수자가 독점할 수 있는 특권이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에 치우친 생각, 좁고 얕은 안목, 맹목적 믿음, 이미 정해 놓은 정답을 향해 오늘도 개미방아ants mill를 돌 것인가. 언제나 선택은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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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원점
다카노 에쓰코 지음, 전화윤 옮김 / 테오리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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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다. 빛바랜 사진, 연필로 쓴 낡은 엽서, 바늘이 LP을 긁을 때 나는 지지직 소리 이런 저런 흑백 추억은 누구나 한 두 장쯤 마음속에 지니고 산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겠지만. 스무 살이 그런 나이가 아닐까. fernweh! 먼 곳에의 그리움. 전혜린이 동경했던 그것처럼 스무 살은 알 수 없는 불안과 고민을 통해 성장한다. 뜨거운 열정과 충동에 휩쓸리며 자기모순에 괴로워하고 불합리한 세상에 돌을 던지는 시기다.

 

우울도 소비되는 세상이다. 외로움도 돈이 된다. 공감과 배려는 특효약이다. 개와 고양이가 인간이 줄 수 있는 위로와 행복을 대체한 지 오래다.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상처와 고통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해시태그를 달고 하트를 눌러 공감을 표시하며 온라인에서 받는 위로는 관련 상품 구매로 이어지고 책은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디지털 시대의 아이러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스무 살, 다카노 에쓰코는 시대의 우울을 견뎌야 했다. 내적 갈등과 자기 모순에 괴로워하고 새로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는 스무 살이다. 수없이 흔들리고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아주 조금씩 배워갈 수 있을까. 스무 살의 원점의 시작 부분이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비해 내가 너무 미숙한지도 모른다.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 물정을 안다는 말에는 체제에 순응하며 뻔뻔하게 살아간다는 의미가 어느 한쪽에 존재한다. ‘미숙하다, 바보다, 세상 물정을 모른다.’ 나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에쓰코, 그 무엇도 비하하지 마. 너 자신을 아껴야 해. 너는 서투르지만 무슨 일든 성실하고 진지하게 하잖아. 다른 사람을 사랑스럽게 여기고 아끼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잖아. 물론 네게도 단점은 있어. 자기 주장이 강하고, 아니 그것보다는 제멋대로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고, 스스로를 잘 다스리지도 못하고, 자존심도 아주 강하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

나는 길들여지는 인간이 아니라 창조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 ‘다카노 에쓰코가 되고 싶다. TV, 신문, 주간지, 잡지, 모든 것이 나를 길들이려 한다. 나는 내 의지로 결정한 일을 할 것이고, 모든 것에 부딪혀 있는 힘껏 버둥거리고, 노래를 부르고, 못 그리는 그림도 그리고, 웃고 울고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13

 

미숙하고 불합리한 자신을 발견하고, 모순된 세상에 눈을 뜨는 성장통을 겪지 않으면 스무 살은 무슨 의미일까. 학점과 스펙, 취업과 재테크가 20대를 점령한 세상은 끔찍하지 않은가. 밥벌이의 숭고함을 깨다는 일도 중요하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민하지 않는 스무 살은 남은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에쓰코는 미숙하고 불안하고 자존심이 강하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스무 살이다. 이 책은 그 아름답고 숭고한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196912일에 시작된 일기는 622일에 끝난다. 이틀 후 기차에 뛰어든 다카노 에쓰코. 30년 전에 살았던 스무 살 여대생의 6개월치 일기를 훔쳐보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어린 딸을 남기고 자살로 생을 마감한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잠 못 들던 사춘기의 밤이 먼저 떠올랐다. 창가에 기대 슈바빙의 파란 새벽이 밝아오는 장면을 따라하려고 시험 마지막 날 처음 밤을 새우고 새벽을 맞은 기억도 생생하다. 다카노 에쓰코의 스무 살은 자신의 내면과 외부 세계에 대한 갈등으로 가득하다. 나카무라와 스즈키에 대한 관심과 사랑보다 전공투(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에 대한 고민이 스무 살 여대생을 흔든다. 시대정신은 한 개인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내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기도 하는 법이다.

 

일기 형식으로 쓴 에세이가 아니라 자신의 일기장에 사유리라는 이름을 지어 줄 정도록 각별한 일기장은 다카노 에쓰코 사후 그대로 출간된다. 60대 후반 일본의 학생 운동 상황을 객관적 자료로 살펴보는 일은 스무 살 여대생의 일기와 비교할 수 없다. 마치 6.25 전쟁을 기록으로 검토하는 것과 하근찬의 수난이대나 윤흥길의 장마를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이 책을 단순히 시대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서브 자료로 이해하는 것은 올바른 독법이 아니다.

 

이 책은 감수성 예민한 스무 살 여대생의 일기로 읽으면 충분하다. ‘인간은 불합리한 존재다.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다.’ ‘청춘을 잃으면 인간은 죽는다. 질질 끌려가며 타성에 젖어 살 필요는 없다. 서른이 되면 자살을 고민해봐야겠어.’, ‘자기창조를 완성할 때까지 나는 죽지 않겠습니다.’, ‘얻어맞으면 한 대 때릴 수 있을 정도로 자기애를 가질 것.’과 같은 내적 고백과 다짐이 가득하다. 우리가 통과했을 그 여리고 순수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날 것 그대로 배어나오는 문장들이다.

 

죽기 직전 6개월 동안 다카노 에쓰코를 괴롭힌 건 현실이다. 남자, 대학, 사회, 권력, 자본……. 부조리한 세상에 차츰 눈떠 가며 사람들은 흔히 현실과 타협을 택한다. 성공을 위해 달리고 더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한다. 자본주의가 설치한 욕망의 덫을 피하지 못하고 더 많은 권력과 더 높은 지위를 열망한다. 그리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법을 배운다. 다카노 에쓰코도 이기적인 욕망과 세상의 환멸에 혐오감을 느낀다. 섬세한 감정의 떨림과 내적 갈등의 원인은 전공투와 민청의 갈등도, 나카무라와 스즈키 사이의 고민도, 언니와 가족과의 싸움도 아닐지 모른다.

 

“‘혼자라는 것’, ‘미숙하다는 것’, 이것이 내 스무 살의 원점이다.”(26)라는 고백처럼 인생은 절대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고 영원히 진리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절감한 것이 아닐까. 1949년에 태어나 1969년까지 꼭 스무 해를 살았던 일본의 대학생 다카노 에쓰코은 이 책으로 여전히 숨쉬고 있다.

 

그녀가 남긴 아픔과 고통이 여전히 공감을 얻는 이유는 스무 살의 보편성때문이 아닐까. 알에서 껍질을 깨고 나오는 힘겨운 과정을 겪었던 시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유사한 경험이다.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충분히 고민하고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면 생각한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살게 된다. 부디 이 책이 보다 많은 20대에게 읽히기를.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고 고통의 근원을 끝까지 사유하는 도구가 되기를. 50년 전 스무 살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당부일 것이다.

 


인간은 불합리한 존재다.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는 육체가 있다.
육체는 합리성만으로 결론지을 수 없다.
육체를 떠나 인간은 존재하지 않고, 정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육체는 생명이 있다. - 19쪽

‘혼자라는 것’, ‘미숙하다는 것’, 이것이 내 스무 살의 원점이다. - 26쪽

태양이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진는 것은 가짜 현실이고, 지구가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는 것이 진짜 현실이다. 그렇게 인식할 때 비로소 주체성이 생기고 살아갈 현실이 생긴다. - 63쪽

청춘을 잃으면 인간은 죽는다. 질질 끌려가며 타성에 젖어 살 필요는 없다. 서른이 되면 자살을 고민해봐야겠어. 그런데 앞으로 십 년 동안 살아봐야 뭐가 될까? 지금처럼 아무 자극도 열정도 없는 상태에서 산다 한들 뭐가 될까? - 173쪽

왜 나는 자살하지 않는 걸까? 권력과 투쟁해봐야 어차피 허무한 저항밖에 더 되나? 왜 살아가는 걸까? 삶에 어떤 미련이 있는 걸까? 죽을 수가 없다. 왜! 사는 데 무슨 의미가 있다고. 추하고 죄 많고 수치스러운 동물들이 서로를 행햐 꿈틀거리는 이 세상! 무슨 미련이 있다고. - 223쪽

침묵은 금
마음속으로도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 것.
나는 나의 역사를 찾아 나서자. - 245쪽

자기창조를 완성할 때까지 나는 죽지 않겠습니다. - 267쪽

분노와 증오를 드러내며 항의의 의미로 자살을 시도하는 것만큼 몰주체적인 자만이 없다. 자살은 사람들에게 패배라는 단 한 마디로 전해질 뿐이다. - 303쪽

산다는 건 타협의 연속인가? 중요한 건 어느 지점에서 타협의 접점을 발견하는가 하는 것이다. - 313쪽

얻어맞으면 한 대 때릴 수 있을 정도로 자기애를 가질 것. - 3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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