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조, 파시즘을 쏘다: - 세계 15개국 헌법으로 본 민주주의의 얼굴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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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임명직이 아니다. 자격시험도 없다. 그러나 언론은 유형, 무형의 권력을 누리기 시작한 지 오래다. 레거시 미디어는 비판과 감시 기능 대신 행정, 입법, 사법 혹은 자본 권력과 공생 관계를 이뤄, 아니 기생한 지 오래다. 인터넷과 함께 뉴미디어 시대가 열렸고 순기능과 역기능이 혼재하는 현실에서 필터링은 이제 개인의 몫으로 남겨진 듯하다. 필터 버블 현상을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는 길들어진 관점으로 살 수밖에 없다. 비판적 사고력은 주체적인 삶을 위한 필수 도구다. 생각의 근육은 헬스장에서도 기를 수 없다. 학력과 상관없는 사유 능력과 판단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검찰과 사법부의 부패는 공화국을 위태롭게 하지만 그들의 거대한 카르텔은 진영의 논리로 해결하기 어렵다. 감시와 처벌은 요원하고 제 기능을 상실한 공권력의 해악은(아니 그 제도를 운용하는 자들이 스스로 권력기관이라 착각하는) 일상생활 곳곳에 침투하여 타인과 세상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흔들고 공동체의 질서와 규범에 균열을 일으킨다. 어쩌면, 동서양의 역사를 막론하고 기득권의 공고한 암묵적 카르텔보다 무서운 건 그 카르텔에 편입하기 위한 각자도생의 경쟁이 아닐까. 상식과 공동체의 질서는 난해하거나 복잡하지 않다. 대체로 상식과 진리는 단순하고 간명하다.

변화와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고 온건주의자와 혁명가들의 충돌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영을 넘어 삶의 태도와 방향으로 나타난다. 직업과 나이, 성별과 지역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이성적 판단 능력과 논리적 사유의 문제다. 허나 현실은 서로 이해할 수 없는 ‘해석’의 문제로 귀결된다. 어떤 현상에 대한 관점과 인과 관계가 엇갈리면 더 이상 토론과 합의는 가능하지 않다. 최소한의 합의로 굴러가는 민주정과 법치는 보이지 않는 ‘선line’이 존재한다. 진보와 보수는 단순한 관점의 차이다. 오프사이드offside 룰을 어겼는지에 관한 심판 판정에 불만이 있을 수는 있으나 오프 사이드 라인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다를 수는 없다. 타인과의 갈등, 세상에서 벌어지는 부패와 범죄를 ‘해석’의 문제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대체로 질서를 위반하고 범죄를 저지른 자일 확률이 높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근대 국가의 틀을 형성하면서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합의한 하한선, 마지노선, 최저선이 헌법이다. 말하자면 최소한의 합의에 해당한다. 링 위에서 상대 선수의 귀를 물어뜯은 타이슨도 있고, 박치기로 상대 선수의 코피를 터트린 축구 선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 패배자가 되고 더 이상의 게임은 무의미해진다. 현실이 스포츠와 같을 수는 없으나 진영 논리에 갇힌 사람들의 주관적 해석과 갈등 국면에서 각자의 억울함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헌법이 그 판단 기준이라면 현상과 사건을 해석하는 헌법재판소는 또 어떤가. 또다시 제도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환원되는 걸까.

온 국민이 헌법을 공부하는 시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시작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다시, 각자 ‘해석’해 보자. 이 문장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떤 의미일까. 유행처럼 출판된 헌법 관련 책들이 차고 넘친다. 법과 관련된 책들을 꾸준히 읽어 온 사람도 새삼스럽게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증거다. 박홍규 선생님의 책을 집어든 건 순전히 개인적 취향이겠으나 ‘파시즘’이라는 키워드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살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15개국의 헌법을 살피면서 다시 한번 정치가 아니라 각자의 삶과 현실을 점검해야 한다. 법은 법률가들의 소유가 아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과 합리성을 바탕에 둔 법률이 아니라면 언제든 수정 가능한 약속에 불과한 법의 적용 문제는 무지의 베일이 적용돼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담긴 이야기만으로도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법을 각자 점검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숨 쉬는 공기는 물론 내 몸의 뼛속까지 정치적이다.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을 언제든 바꿀 수 없다면 자기 도그마에 갇혀 살 수밖에 없다.

비교는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상대적 관점을 갖게 하는 것이고, 이로써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그 여러 가지에 내재하는 공통된 보편성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 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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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이시봉의 짧고 투쟁 없는 삶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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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무렵,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다. 이후로 어떤 동물도 키워본 적이 없다. 202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약 15%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개, 고양이, 물고기, 거북이, 새…….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에서 ‘자기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들의 생존 전략을 소개한다. 호모 사피엔스는 친화력과 협력을 기반으로 진화했다. 이 ‘친화력’은 생존에 필요한 요소로 작용했으며, 특히 개의 경우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특화돼 있다. 노력보다 본능에 가까운, DNA에 새겨진 ‘다정함’은 무엇일까. 이해와 배려, 친절과 웃음을 넘어 희생과 이타적 태도까지 확장할 수 있는 우리 편을 향한 다정함은 다른 집단에 대한 공격성과 혐오로 표출되기도 한다. 나와 다름을 확인하거나 생각이 다르거나 조금이라도 손해를 보면 돌변하는 선택적 다정함도 본능일까.

그러나 인간과 달리 맹목적 다정함 덩어리처럼 보이는 강아지 앞에서 사람들은 무장 해제되곤 한다. 격일로 가는 헬스장에 소설의 주인공 비숑 프리제를 똑 닮은 강아지 한 마리가 회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적극적으로 손 내밀지 않고 멀리서 손을 한번 흔들어 주고 눈인사만 하는 사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설 때 고개를 들어 눈길을 주는 그 강아지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은 헬스장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고 느낀다. 말없이 게으르게 엎드려 조는 모습이 가장 보기 좋다. 이 소설을 읽은 후부터 그녀석을 속으로 이시봉이라 부른다. 일상에서 만나는 실제 강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으면 이 소설을 즐기는데 도움이 된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프란시스코 고야의 《알바 공작부인》은 흑백으로 실려 있어 이시봉을 구체적 이미지로 떠올리기 쉽지 않다.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스페인 카를로스 4세와 왕비와 재상 마누엘 고도이 그리고 알바 공작 부인 등 실존 인물과 역사를 속에 스며든 이시봉의 족보 추적기 그리고 만 스무 살 알콜 중독자인 이시습과 정채민의 앙시앙 하우스 등 대한민국의 현재 이야기. 소설에 한 번 등장하는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G단조에 어울리는 소설 속의 소설을 읽는 액자 구성은 익숙하지만 또 하나의 재미다. 500쪽이 넘는 장편의 지루함을 덜고 색다른 서사에 힘을 보탠다. 어느 쪽이든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과 재미는 언제나 글 쓰는 이의 몫이 아닌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부터 『눈감지 마라』에 이르기까지 이기호가 보여준 재치 있는 문장과 대상을 향한 다정함이 곳곳에 묻어있어 평소 그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넉넉하고 흐믓하게 즐기기 충분하다.

스페인 왕가의 치정극, 비숑 프리제와 얽힌 비화는 고야와 알바 공작 부인의 실제 관계를 알지 못해도 정채민과 박유정과 김상민의 관계를 통해 반복 재생되는 일들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시봉의 주변 인물들인 이시습, 정용, 수아, 리다는 정채민과 앙시앙 하우스 사람들과 다르다. 한발 떨어져 나를, 아니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객관적 시선은 불가능할까. 소설 속 허구의 인물들이 언제나 상징과 알레고리로 작동하는 건 아니다.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하면 충분하지만 긴 여운을 남기거나 현실 속의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인간은 다양한 상황에서 각각의 면면이 드러나며 다채롭게 반응하지만 소설에서 만나는 입체적 인물은 반갑지 않을 때도 많다. 소설에서는 일관된 캐릭터가 오히려 마음 편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그리고 가수는 노래로, 배우는 연기로, 작가는 책으로 만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현실에서 이기호가 키우는 이시봉을 확인하거나 다른 호기심을 충족한다고 해서 소설이 더 재밌거나 감동이 배가 되지는 않는다.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모호할 때,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상상력을 즐기는 게 더 낫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많겠으나 문학은, 아니 예술의 목적과 역할은…….

명랑한, 짧고 투쟁 없는 삶이라는 이시봉에 대한 규정이 반려견을 향한 일반적, 아니 ‘다정함’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닌지 싶었다. ‘개새끼’라는 욕설부터 ‘개 같은, 개만도 못한’ 혹은 접두사로 쓰이는 ‘개~~’ 등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개’는 반려견이나 강아지와 달리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시봉은 이씨 성을 가진 집안의 가족이다. 동물을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소설을 인간 삶에 대한 깊이와 무게를 느끼거나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돌아보지 않는다. 각각의 소설은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분명해야 좋다. 이시봉이 사형집행인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마치 점심 종소리가 들리자마자 이제까지의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급식실을 향해 돌진하는 고등학생처럼”이라고 묘사하는 이기호의 유머와 재치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1808년 스페인 민중봉기에 관심을 갖고 유럽 역사를 다시 들여다봐도 나쁘지 않다. 소설은, 아니 모든 책은 각각의 독자에게 전혀 다른 모습일 테니. 다만 나는 ‘그것’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이기호를 읽지 않았을 것이다. 성석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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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 1~2 세트 - 전2권 - 완결
산호 지음 / 고블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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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산 것보다 살아남은 것들이 더 많아.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해.

마음이 흩어지려 할 때, 말을 문진 삼아 내리누른다.

‘장래의 일정한 시기에 현품을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매매 계약을 하는 거래 종목’을 선물(先物) 이라 한다. 한자가 다른 의미의 선물(膳物, present)는 전통과 문화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매매 계약은 아니지만 선물(膳物)은 어쩌면 일정 부분 선물(先物)의 의미도 담고 있다. 돌려받을 목적으로 선물하는 경우는 많지 않겠으나 받는 사람은 어느 정도 부담스럽기도 하다. 생일 선물, 100일 기념 선물, 결혼기념일 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입학과 졸업 선물 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 감사, 축하, 위로 등을 담은 선물은 관계를 공고히 하거나 때로는 역효과를 일으키기도 한다. 주변을 돌아보면 부담스럽지 않은 선물로 마음을 잘 전하는 사람도 있고, 상대방의 고민을 덜어주려(?) 선물을 지정해서 요구하는 사람도 있고, 주고받는 선물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선물을...

책은 상대방의 취향, 지적 수준, 관심 분야, 독서 이력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부담스러울 가능성이 많은 선물이다. 관계에 따라 권위, 조언, 충고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 내용에 따라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읽히기도 해서 조심스럽고 신중한 선물이다. 물론 모든 선물은 관계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출판사, 편집자, 저자를 제외하면 책 선물을 받아본 지 참 오래됐다. “이 책 참 좋다, 읽어봐.”라는 의미로 말이다.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는 아주 오래된 지인에게 선물 받은 책이다. 이 책은 만화를 좋아하고 그리기도 하는 선한 분의 마음을 닮았다. 창밖에 내리는 가을비처럼.

그렇게 수집한 문장이 서랍 속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내 상상 속에서 오가는 대화의 끝에 당신은 닿지 못할 말들을 가여워하지 않으며 여전히 숨 쉰다.

슈피겔만의 『쥐』나 안토니오 알타리바와 킴의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처럼 사회성 짙은 그래픽 노블을 읽은 적은 있지만 게임과 만화를 즐기지 않는 성향에도 불구하고 산호의 글과 그림으로 큰 위로를 받았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본질적이고 고유한 성질이 있다. 본성에 반하는 삶은 그래서 불편하다. 그 대상은 스스로 무언가 의도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사람은 영향을 받는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를 환상적인 수법으로 그려낸 이야기와 그림이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언제 위기 아닌 상황이 있었으랴. 마녀들의 이야기가 모든 순간, 우리가 겪는 고통과 아픔이 아닌지 싶었다.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상대를 비난하고 난도질하거나, 개인과 조직을 싸잡아 주관적 해석으로 악마화하거나, 개발과 발전을 위해 희생은 당연하다고 주장하거나, 사회적 기회와 우연의 결과를 오로지 자기 능력과 성공으로 착각하거나......그렇게 신념과 확신으로 가득한 채 정해진 답과 길이 있거나...

그렇게 많은 사람과 사물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는 비현실적인 혹은 환상적인 상상력과 공상에 가까운 판타지가 오히려 현실을 견디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하는 게 아닐까. 매우 현실적이고 심각한 문제를 다룬 사회 소설에 가까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오독하든 그 또한 독자의 권리일 테니까.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는 죽은 무화과나무와 오천삼백 원짜리 애호박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오늘과 맞을지도 모르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이 책을 온전히 설명해 줄 수는 없다. 모든 책이 그러하듯 행간의 의미를 확장하고, 여백을 채우는 상상력은 읽은 이의 몫이다. 그것이 책이 아닌 무엇이더라도.

그러니 비록 전할 수 없다 해도 당신의 모서리를 더듬기 위해 쓴다.

초원.

여름이 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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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서스 - 석기시대부터 AI까지, 정보 네트워크로 보는 인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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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정보가 신이 된 세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호모 데우스』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으로 현재와 미래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연결’, 즉 상호 접속된 네트워크를 의미하는 『넥서스nexus』는 컴퓨터와 AI가 만나는 네트워크 세상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진실이 사라진 시대,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역사학자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지식과 정보는 특정 계층이나 지식인, 전문가의 소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공공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네트워크로 촘촘하게 연결된 세상에서 정보는 더 이상 지혜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 같은 현실에 대한 경고와 우려를 담아 현실을 살피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와 민주주의 역사, 즉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점을 살피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인터넷으로 연결된 네트워크와 AI로 인해 달라질 세상에 대한 고민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쉽게 답을 얻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좋은 책은 정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물음표를 남깁니다. 호기심과 질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지 않는다면 글쓴이의 생각에 쉽게 동의하며 누군가 정해준 길을 걷게 됩니다. 유발 하라리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대신 현상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꼼꼼하게 살핍니다. 대안과 해결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입니다. 미래는 개별 독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대화와 합의를 통해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논쟁과 토론이 가능한 책은 지식의 축적 수단이 아니라 현실 개선의 도구로 기능합니다.

과학기술의 미래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는 변화와 위협을 극복하며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한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은 정치인과 전문가에게만 맡길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평범한 시민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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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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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단지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 2003년, 작가 윌리엄 깁슨이 한 말입니다. 과거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전망한다는 연속적 시간 개념에 익숙한 우리에게 미래가 이미 와 있다는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물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사람마다 미래에 도달하는 시간은 차이가 있겠죠. 누군가는 미래를 준비하고 만들어 가지만, 누군가는 현실에 적응하기도 버겁습니다. 점점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오늘 하루를 버티기도 힘겹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사는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2025년의 화두는 여전히 인공지능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예측했던 미래가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생성형 AI에서 에이전트 AI로 넘어가는 단계라고 하니 곧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물리적 형태를 갖춘 AI가 상용화될 겁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생활에 스며들어 조금씩 그 영역을 확대하는 인공지능의 미래는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필수가 된 인공지능, 그 활용 여부와 가치 판단에 관한 논쟁을 시작해야 합니다.

2016년 3월 9일은 특별한 날입니다. 알파고AlphaGO가 전 세계 바둑 일인자 이세돌 9단을 이긴 날이며, 동시에 불가능해 보이는 인간의 영역으로 인공지능이 진입한 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지 바둑 팬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당시 생중계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충격이 생생합니다. 체스와 달리 바둑은 경우의 수가 거의 무한대에 가까워 인공지능이 접근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건 착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소설가 장강명은 프로 바둑 기사 수십 명을 인터뷰하며 수천 년 동안 이어온 바둑의 전통과 역사를 살피며 과거와 현재를 돌아봅니다. 신문기자였던 저자는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고 기록합니다. 인공지능이 바꿔버린 현실, 아니 먼저 와 버린 미래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르포르타주가 훌륭합니다.

마치 디스토피아 SF의 도입부처럼 인간만이 펼칠 수 있는 예술이자 스포츠라 믿었던 바둑의 세계가 무너진 현실은 AI 이후 세계의 축소판 같아 보입니다. 바둑뿐만 아니라 문학, 음악,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와 같은 고민은 연쇄적으로 발생하며 논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공지능의 역할과 인간적인 삶의 의미일 것입니다. AI와 함께 살아갈 인류는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직로와 직업을 고민하는 청소년부터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세대는 물론 불안한 노후를 맞아야 하는 중장년층까지 AI는 희망과 기대보다 아직도 불안한 미래의 상징처럼 여겨집니다.

때때로 과학기술의 진보는 조금 더 공평하고 평평한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는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 변하지 않는 가치들이 모두 사라지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AI로 인해 급변하는 현실은 목적도 없고 방향을 잃은 채 흔들리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장강명은 이런 상황에서 AI를 향한 불안과 공포 대신 인간적인 삶의 방법과 태도를 묻고 있는 듯싶습니다. 특히 9장 ‘가치가 이끄는 기술’과 마지막 10장 ‘인공지능이 아직 하지 못하는 일’은 저자의 고민과 생각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먼저 시선을 돌려 깊이 들여다보고 관찰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후에야 비로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태도를 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올바른 선택을 위해 중요한 자세입니다. 그리하여 읽고 쓰는 삶의 중요성을 자각하고, 먼저 온 미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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