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의 철학 - 흔들리는 삶을 위한 16가지 인생의 자세
샤를 페팽 지음, 이주영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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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기 평가다. 삶은 계란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닭도 아니다. 아재 개그가 아니라 사람마다 순위가 다르다는 말이다. 닭이 먼저라고 우기는 사람이나 달걀이 먼저라고 고집하는 사람 중 누구의 손을 들어 줄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인생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각자의 기준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나눌 뿐이다. 물론 타인의 평가, 사회적 관점도 고려해야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각각이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자기 목표에 도달했는지, 기준에 부합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학력, 직업, 자산, 결혼, 자녀, 건강 등으로 쉽게 말할 수 없는 건 각자의 선택과 만족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나 육각형 인생을 원하지만 아무도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다. 인생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은 대개 혹독한 시련을 겪었거나 깊은 좌절을 맛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삶에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모두 녹아 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척도에 걸맞은 성공이 아니라 이제 보다 ‘좋은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실패échec’라는 말은 ‘왕이 죽었다al cheikh mat’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왔다. ‘왕이 놀랐다shat mat’라는 뜻의 페르시아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고, ‘전리품eschec’을 뜻하는 옛 프랑스어에서 온 말이라고도 한다. 어원이 어찌 됐든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것이 인생의 비밀 중 하나다. 다만 그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과 태도는 각자 다르다. 물론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게 반응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성공과 자기 계발의 비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비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프랑스의 철학자 샤를 페팽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실전 철학, 삶의 철학을 이야기한다. 성공한 삶을 위해서, 아니 좋은 삶을 위해서는 ‘실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험, 겸손, 변화, 욕망, 질문, 발견 등 16개의 주제에 관한 쉽고 짧은 글에는 에픽테토스, 장 폴 사르트르, 가스통 바슐라르, 노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크 라캉 등 16명의 철학자가 등장한다. 테니스 선수 안드레이 아가시,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 팝 가수 프린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분석하며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게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본다.

저자는 뻔한 성공 스토리와 지루한 철학 개념으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편안한 동네 아저씨처럼 어렵지 않은 이야기로 삶을 성찰한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저런 일도 있었다고. 그리고 독자에게 조용히 묻는 듯하다. 당신의 인생에서 찾고 싶은 전리품은 무엇이냐고.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부는 바람에 기꺼이 흔들려도 뿌리 뽑히지 않고 버티는 힘, 그 단단한 태도가 바로 당신의 인생을 빛나게 하는 게 아닐까. 불확실한 희망 대신 확실한 실패가 오히려 시련과 실패를 견디는 방법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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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서판 - 인간은 본성을 타고나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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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딥블루에게 체스의 제왕 자리를 내준 게리 카스파로프는 대국 결과에 대해 ‘인류의 종말’이라 평했다. 10년 후인 2016년 체스가 아니라 바둑판에서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길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빈 서판은 2002년,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인터넷이 상용화될 무렵 네트워크 세상에서 인공지능이 몸을 풀던 시절의 생각들이다. 물론,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짐작할 뿐이다. 타인에 대한 오해,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 작은 변화가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인류가 느린 걸음으로 진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븐 핑커의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며, 우리의 생각과 태도는 계속해서 바뀔 예정이다.

20세기 경제 공황을 파고를 넘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넘친다. 유례없는 경제적 호황으로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누렸지만 메카시즘의 광풍 등 사회적 혼란과 ‘인간’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계속됐다.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로 촉발된 논쟁은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로 극한 대립이 펼쳐진다. 사회생물학 인권과 평등, 사회 변혁을 향한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오해한 마르크스주의자들, 페미니시트의 태동, PC주의자들의 등장으로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아니 어쩌면 홀로코스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채 가시기 전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쌍욕을 먹던 진화심리학과 사회생물학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지렛대 역할을 했으며 뇌과학의 발달로 그 진정성에 대한 오해는 조금 풀린듯 싶다. 리처드 도킨스도 『이기적 유전자』를 들고 참전했으나 ‘인간 본성’에 관한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양육 가설에 대한 대담한 도전으로 비치는 스티븐 핑커의 주장은 그가 아무리 멋진 파마머리를 휘날려도 계속될 예정이다. 자유의지와 운명론을 뒷받침하려는 목적도 없고,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와 무관하지만 과학적 논의와 이성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허수아비 오류 공격은 일상에서도 반복되는 가장 무지한 태도 가운데 하나다. 다양한 종교적 교리, 이상적 사회주의, 인간에 대한 희망적 뇌피셜로 가득한 사람에겐 800쪽이 넘는 하드 커버 책은 대형 벽돌에 불과할 것이다.

로크의 인간 오성론,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관에는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빈 서판 이론에 대한 전제가 깔려 있다. 인간은 고쳐 쓸 수 있는가. 교육과 문화, 전통과 사회화를 통해 전혀 다른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병원에서 애가 바뀌어 전혀 유전자와 무관하게 부모의 교육과 환경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가. 이런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이게 논쟁이 되느냐고 반문하는 다수의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스티븐 핑커는 긴 머리 휘날리며 친절하고도 꼼꼼하게 투머치 토킹을 이어간다. 선명한 주제, 확고한 신념, 틀림없는 이론과 무관한 심리학과 인류학, 진화의 증거들로 빈 서판으로 무장한 적들을 깨부술 수 있을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을 끼고 저자의 애처로운 호소와 설득을 구경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궁금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상태로 표지를 넘기기 시작했을까. 그리고 책장을 덮으며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사람은 책을 만들지만, 책은 과연 사람을 만들 수 있을까. 본성이든 양육이든 변증법적 변화를 체험한 이들의 간증조차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 주장할 것이 뻔하다. 따로 또 같이 사는 세상이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들과도 함께 살아야 한다. 도그마에 갇혀 나름의 합리성과 안정을 찾은 사람들에게 진화 심리학과 행동 유전학을 옹호하는 인지 과학자스티븐 핑커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비칠까.

“나는 여전히 인간의 전망은 유토피아보다는 비극 쪽을 향하고, 인간성이라는 비뚤어진 재목으로 똑바른 물건을 만들 수 없고, 우리는 티 없이 맑지 않거나 황금처럼 빛나지 않으며, 낙원으로 돌아갈 길은 어디에도 없다고 믿는다.”(2016년판 발문, 「인간 본성은 문제이기도 하고 답이기도 하다」) - 791쪽

결국 스티븐 핑커는 ‘빈 서판’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진짜 인간의 목소리, 즉 이성, 감정, 본능이 조화된 인간다움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개 거의 모든 학문은 인간의 추체험을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이미 벌어진 일들을 해석하는 일과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오늘을 살아야 하고 내일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은 날이 얼마든 각성과 성찰을 통해 성숙을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나이가 몇이든 곧 화석이 될지도 모른다. 본성과 양육과 교육과 문화가 어떻게 지금 현재의 ‘나’를 만들었을까. 아니 그걸 안 연후에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안물안궁이라면 할말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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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 문학과지성 시인선 608
유선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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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정은 “이 세상에 불행이 없다면 우리는 스스로 천국에 있다고 믿게 될 것이라.”라는 시몬 베유의 문장을 신에 비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우월성이 바로 고통이라고 해석한다. 그런가. 슬픔이 인생의 디폴트 값이라는 걸 포장한다고 해서 견뎌지는 건 아니다. 다만 나는, 아니 독자는 시 안에서 그걸 발견할 때마다, 아니 텍스트 안에 자기 고통과 슬픔을 언어의 감옥에 가둬버린다.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도 까마귀의 역설은 해결되지 않고 자기모순에 빠진 연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히 각자 해결할 문제다. 헛된 희망을 버려야 오솔길이라도 찾아 떠날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그러나 시는 현실 밖으로 뛰쳐나온 사람들을 위한 위로일 뿐이다. 시가 스스로 시가 되려면 사랑 대신 멸종으로 바꿔 읽어야 한다. 그러면 시시하지 않다.

까마귀의 역설*

인간 중에도 인류학자가 있듯 새들 사이에도 조류학자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어느 날 조류학 분야의 저명한 교수인 까마귀 R의 실종 소식이 보도되었다. 수색 결과 한 장의 편지가 발견되었으며 아래는 R이 남긴 편지의 전문이다.

친애하는 까마귀 여러분께

내가 오랫동안 주장해오고, 이 사회에서 하나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주장입니다. 검은 깃털 색은 우리 까마귀종의 유구한 정체성을 형성했습니다. 그것은 주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보편적인 진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내 날갯죽지 깊숙한 곳에서 흰 깃털 한 올을 발견한 것이지요. 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의심했습니다. 내가 드디어 미친 것일까요? 하지만 아시다시피 우리 까마귀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물 중 하나입니다. 인간들은 그것을 미러 테스트라고 부른다지요. 흰색 깃털은 선명했습니다. 나는 초조함에 사로잡혀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날개를 확인했습니다. 날이 지날수록 흰 깃털은 늘어만 갔습니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문장은 ‘모든 검지 않은 것은 까마귀가 아니다’라는 문장과 논리적으로 동일합니다. 흰 우유는 까마귀가 아니고, 흰 종이는 까마귀가 아니고, 흰 눈은 까마귀가 아니지요. 처음에는 깃털을 하나씩 뽑아보았습니다. 피부가 벌게지며 부어올랐죠. 고통스러웠습니다. 흰색 깃털은 주체할 수 없이 많아졌고 점점 나를 뒤덮는 흰 깃털들을 보며 고민했습니다. 흰색을 마주할 때마다 심장이 떨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깃털들이 내 몸 전체를 덮게 되는 날이 온다면…… 누군가가 내 흰색 깃털을 발견해버린다면……

물론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이론을 수정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론을 위해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바쳤습니다. 전 세계의 까마귀들을 보러 매일을 타지로 날아다녔고, 셀 수 없이 많은 동족의 시체를 해부해버렸죠. 그동안 저에게 지친 배우자와 자식들은 등을 돌렸고 나는 가정의 파탄을 명성과 맞바꾸었습니다. 유력한 정치가들도 나에게 자문을 구했죠. 이 이론을 포기하는 것은 나에 대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것을 완전히 증명했다고 믿습니다. 그 이론은 제 인생 그 자체이며, 나는 흰 까마귀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벌써 내 몸의 반절을 흰색이 덮어버렸습니다. 이제 더이상 깃털을 뽑는 방식으로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습니다. 깃털을 뽑은 자리에서 난 피를 닦는 일에도 이젠 지쳤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는 까마귀가 아니다.

이제 나를 까마귀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나는 분류될 수 없는 하나의 이상한 생물입니다. 여러분도 흰 까마귀를 발견하고 상식을 수정하는 불쾌한 일을 겪기를 원하지 않으실 겁니다. 따라서 저는 눈이 가득한 북쪽으로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완전히 하얘진다면………… 그곳에서는 아무도 저를 찾을 수 없겠지요. 거울에 비친 나는 투명해질 것입니다. 미러 테스트도 소용이 없도록 말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저의 이론을 수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까마귀가 아니고 따라서 여전히 모든 까마귀는 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젠 정체를 알 수 없는 R이

* 이 시는 철학자 카를 구스타프 헴이 가설의 귀납적 입증에 관해 제시한 '까마귀 역설'과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남겼다고 알려진 "새에게 조류학이 유용한 만큼 과학자들에게 과학철학이 유용하다"라는 발언의 영향 아래에서 씌어졌다. 실제로 파인먼이 이러한 발언을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철학적 좀비’는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가 1990년대에 제기했던 사고실험이다. 심리철학 분야에서 이론적 아이디어로 제시한 이 말은 외면적으로는 보통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지만 내면적인 경험이나 의식이 없는 인간이라는 설정. 현대인을 향한 조롱과 비난이 아니다. 물론 유선혜가 자기 시를 읽는 독자를 향해 날린 어퍼컷도 아니다. 그래도 두근대는 가슴팍, 조금 빠른 심박수, 조급한 박동이 없는 나와 너는?

빈맥

아이들은 놀이터가

철거될 예정이라는 것을 모르고

그네를 탄다 숨이 찬다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교복의 색이 다른 중학교로 흩어지면서

사인펜으로 쓴 롤링 페이퍼를 만지작거리고

동물은 인간보다 수명이 짧다는 걸

자기 전마다 생각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아이들

두근대는 가슴팍을 식히며

이별이라는 단어를

이해해본 적이 없다는 듯이

끝을 상상하는 능력을 모두 잃은

사랑을 시작하는 심장은

조금 빠른 심박수를 가졌다

나쁘다는 것도 모르고 아름답다는 것도 모르고

그저 소방차가 줄지어 달린다는 사실에

신이 나는 것처럼

성당의 양초를 쓰러뜨리고 간 사람을

하늘에서 쫓겨난 천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할아버지의 병실 의자에 앉아서

귤껍질을 까며 미래를 조잘거리는 아이는

어른이 된 자신을 보지 못하는 그의 병명을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고

사랑을 시작하는 심장은

졸업식에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나타난

혈관이 튀어나온 손등을 제멋대로 상상한다

죄다 끝나버린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조급한 박동으로 뛰어나가고

넘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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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기타
브야사 지음 / 여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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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양으로 승부하던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이제는 인간의 고유한 창조성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 정보 처리 능력이 아니라 정보 편집 능력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인문학적 소양과 내면의 가치를 강조하는 기업이 점점 늘고 있다. 현실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목적과 가치가 단단한 사람은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으며 불안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으며 살 수 있다.

『바가바드 기타』는 오래된 인도의 경전이다. 이 책은 힌두교라는 특정 종교의 교리나 요가의 수련 방법이 아니라 삶의 지침서로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찬란하고 무용한 마음 공부의 한 방편으로 크리슈나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새로운 눈으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앎의 궁극 목표인 ‘나’를 찾는 것이 참다운 지혜다. ‘나’ 아닌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은 무지다.”(제13장 11절) 이런 문장을 곱씹다 보면 홍자성의 『채근담』에서 삶의 지혜를 얻듯이 자기 수양과 마음 챙김의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다가 문자로 기록된 고전들이 대개 그러하듯 바가바드 기타는 정본에 대한 논쟁이 많고 전하는 사람마다 그 의미를 조금씩 다르게 해석한다. 여기서는 최근에 출간된 책을 소개하지만 여러 판본을 살펴 마음에 드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바가바드 기타는 전체 1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르주나의 번민에서 시작해서 해탈에 이르는 과정으로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문답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족과 지역에 따라 역사, 문화, 전통이 다르게 발전해 왔다. 시대와 상황을 고려하여 이질적인 요소를 걸러내고 인간의 삶과 세상 사는 이치에 대한 부분에 집중한다면 이 책에서 색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네트워크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점 내면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는다. 고독과 마주하는 혼자만의 시간은 현대인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때때로 돌아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한 대로 살기 위해서는 물질과 육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정신과 마음의 영역을 돌볼 필요가 있다.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을 돌아보는 공부에 집중한다면 중년 이후의 삶에서 조금 다른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서 주인으로 살려면 세상일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세상일에 얽매여 분주한 사람은 결코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한다.(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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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하고 무용한 공부 - 내면의 삶을 기르는 배움에 대하여
제나 히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에트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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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호기심과 질문의 동물이다. 아주 먼 옛날부터 밤하늘의 빛나는 별빛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우리 삶에 의미가 있는지 등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그 작은 호기심이 과학기술 발전의 바탕이며 철학적 탐구의 시작이었다. 인류가 찬란한 문명을 이뤄 현재에 이른 과정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앎을 향한 욕망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 본능은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지만 우리는 대체로 현실에 적응하며 하나둘씩 질문을 잃어버리고 산다.

주입식, 강의식 학교 교육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공부’는 인내와 고통에 가까웠다. 경쟁과 점수로 각인된 공부는 암기와 동의어로 인식돼 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평생 배움의 연속이다. 음식을 만드는 레시피부터 핸드폰의 새로운 기능을 익히는 일까지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은 나이와 무관하게 매우 소중한 기쁨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지겨운 공부가 끝나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재밌는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

공부의 시작은 관심이다. 인생의 목적지와 방향에 맞춰 사람들의 관심사는 계속 변한다. 진학과 취업, 결혼과 자녀 교육, 부동산과 주식, 건강과 죽음 등 나이와 삶의 단계에 따라 현실적인 관심도 바뀐다. 생애 주기별 평생 교육은 21세기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필요에 의해 자기에게 맞는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직업을 찾고, 학위를 받고, 승진을 위한 공부 등은 우리가 경험하는 매우 현실적인 공부다. 이런 종류의 공부는 생존을 위한 경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도유망한 철학자이자 교육자로 20년 넘게 대학교수로 일하던 제나 히츠는 순수한 지적 욕구가 넘쳤던 시절을 지나 어느새 위계와 경쟁에 익숙해져 ‘배움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학계를 떠나 캐나다 동부 외딴 숲속에서 노동과 봉사를 수행하며 ‘작고 평범한 인간의 삶’을 실천한다. 그리고 성공이나 생산성으로 평가할 수 없는 자기 성찰과 진정한 가치에 대한 고민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책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이해관계를 떠나 사람과 사물을 향한 관심이 인간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진짜 공부가 아니냐고 묻는 듯하다. 금전적 이익을 계산하지 않는 배움, 나를 돌아보며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태도야말로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가 아닐까. 중년을 넘어 은퇴한 이후에도 내면의 삶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인생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평생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았는지, 노후 준비를 위한 자산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도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충고가 떠오르는 저자의 이야기가 새삼스레 삶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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