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 - 미래를 위한 자기발전 독서법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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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의 운명에 관한 이런 얘기가 있다. ‘출판되는 책의 반만 팔리고 팔린 책의 반만 읽히며 읽히는 책의 반만 이해되며 이해된 책의 반만 활용된다.’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있다. 누구한 한번쯤 질문한다. 책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책 속에 묻혀 사는 사람들은 한번쯤 회의하게 된다. 독서의 목적과 방법, 그 효용에 대한 진지한 성찰! 실용적인 목적에서부터 자아발견과 시간 때우기까지 폭넓은 대답이 있을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목적에 따라 다양한 독서 방법이 있을 것이고 그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자신과 생활을 변화 발전시킬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집단 구성원의 인지·판단·행동의 성향 체계인 아비투스에 따라 개별적 독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 다양한 독서 목적과 방법들, 거두고자 하는 효과를 한 방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생산적 책읽기 50>의 저자 안상헌은 그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언제나 책을 들고 다녀라’부터 ‘자신만의 독서법’을 써보라까지 50가지의 방법론이 그것이다. 일반적인 방법이므로 새겨두고 독서를 하는데 지침으로 삼는다면 크게 해가 될 것은 없는 방법들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필요한 방법들이 아니며 누구나 지킬 수도 없는 방법들이다.

  책도 결국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내가 읽은 책과 남이 읽은 책을 비교해서 그 책을 읽지 않을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내가 읽은 책을 자랑스러워할 필요는 없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혹은 자신의 경쟁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책읽기 전략을 선택한 사람들이라며 나름의 독서 전략과 방법을 세워 실용적이고 생산적인 책읽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이 전하는 방법이 반드시 뚜렷한 목적을 위한 독서의 방법론을 제시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독서행위 자체와 목적 보다는 과정과 방법론을 중시한 독서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아쉽다.

  물론 목적 없는 행위가 어디 있을까마는 표정훈의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나 <탐서주의자의 책>과는 다른 목적과 방법을 제시한다. 생산적이라는 말은 실용적이라는 말이다. 지식을 생산하고 정보를 선점해야 살아 남을 수 있을 듯한 미래 사회에서 꼭 필요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직업과 성향, 책을 읽는 목적은 일반화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독자는 누구나 제 나름의 독서 목적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 <생산적 책읽기 50>은 그런 의미에서 풍성한 식탁의 양념처럼 읽으면 된다. 허다한 책들 속에서 문득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매거나 보다 효율적인 독서 방법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책이다.

  ‘아무리 위대한 책이라도 그 반은 독자가 만든다’는 볼테르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읽은 책의 반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 사실 가장 어렵고 실질적인 독서가 된다. 밑줄긋고 옮겨적고 생각하고 음미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야말로 독서의 참맛이 아닐까 싶다. 오세영의 ‘한 줄의 시’에서처럼 ‘행간을 건너뛰는 두개의 콤마’를 찾아내는 것이 바른 독서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작가가 글로서 말하지 못한 그 행간을 읽어내는 방법과 재미가 내겐 늘 관심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책을 선택하는 기준과 방법이 늘 고민이다. 그것은 목적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이겠으나 아직도 쉽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 저 책을 읽지 못하니 인생이 짧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일 것이다.

  ‘辭盡意不盡’이라는 말이 있다. 말을 다 하였으나 말하고 싶은 뜻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말이다. 저자가 말한 많이 읽고 많이 기억하는 1단계를 걸쳐 적게 읽고 많이 생각하는 2단계를 지나고 적게 읽고 많이 쓰는 3단계에 이르지도 못했으나 많이 읽고 충분히 생각하며 적게 쓰는 나만의 방법을 찾고 싶은 것은 나만의 욕심일까?

  욕심내지 않고 기본에 충실하며 빠진 이를 채우듯 이해하지 못한 고전을 다시 읽고 새로운 책에서 영감을 얻는 즐거움을 무엇과 바꿀수 있을까? 흐르는 물처럼 시간은 흐르고 내 생의 의미 찾기는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 누가 그렇지 않을까마는 자신이 선택한 행복한 생의 방법을 찾아 오늘도 책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200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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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현암사 동양고전
홍자성 지음, 조지훈 엮음 / 현암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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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맛을 속속들이 알면 비가 되든 구름이 되든 다 맡겨 둘 뿐 눈 뜨고 보는 것조차 귀찮아지고, 인정이 무엇임을 다 알고 나면 소라고 하거나 말이라고 하거나 부르는 대로 맡기고 그저 머리만 끄덕일 뿐이로다.(후80)

  야채의 뿌리를 뜻하는 ‘菜根’. 기름진 고기와 배부른 일상에서 야채의 뿌리를 씹듯 그 향과 그윽한 맛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 이야기가 ‘菜根譚’이다.

  홍자성의 이 책은 다른 고전과 달리 그 뜻이 쉽고 명쾌하며 일상 생활속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적절한 마음가짐과 몸가짐에 대한 충고이자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특정한 사상과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일반적인 인간의 속성에 대한 경고와 금언들이 마음밭의 행복을 찾아준다. 그래서 때로는 울림과 감동이 없는 따분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채근담은 전집 225장과 후집 134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것을 시인 조지훈이 자연의 섭리, 도의 마음, 수신과 성찰, 세상 사는 법도로 다시 순서를 재배열하고 역주를 다는 방식으로 엮었다. 각 장 사이에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뒤섞어 다시 배열하고 주제별로 묶어 놓아도 그 뜻에 손색이 없다. 조지훈의 역주 또한 읽을만해서 단순한 주석과 도움말의 의미를 넘어서고 있다. 

나아가는 곳에서 문득 물러섬을 생각하며 울타리에 걸리는 재앙을 면할 것이요, 손 댈 때 문득 손 놓음을 꾀하면 호랑이를 타는 위험에서 벗어나리라.(후29)

이름을 자랑하는 것이 어찌 이름에서 숨는 것만 하겠으며, 일에 익숙한 것이 어찌 일을 줄여 한가로움을 누림만 하랴.(후31)

  읽다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강조하는 면도 있어 지루하기도 하다. 시대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인간 삶에 대한 통찰과 수신의 덕목들로 가득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며 생의 목적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데 도움이 될 만하다. 곁에 두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한번씩 읽을 때마다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책이다. 

남의 작은 허물을 꾸짖지 말고 남의 비밀을 드러내지 말며 남의 지난 잘못을 생각지 말라. 이 셋으로써 덕을 기르고 해를 멀리할 수 있다.(전105)

공을 세우고 업을 일으키는 사람은 대개 허심탄회하고 원만하나, 일에 실패하고 기회를 잃는 사람은 반드시 집착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전197)

성질이 조급하고 마음이 거친 사람은 한 가지 일도 이룰 수 없고, 마음이 온화하고 기질이 평안한 사람은 백 가지 복이 절로 모인다.(전209)

남의 나쁜 점을 꾸짖되 너무 엄해서는 안 되니, 그 말을 받아서 감당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전23)

사람들의 경우를 보면 갖춘 이도 있고 못 갖춘 이도 있거늘 어찌 나 홀로 모두 갖추기를 바라겠는가.(전53)

  밑줄 친 내용들이 모두 생활 속에서 공감할 수 있는 당연한(?) 내용들이다. 되짚어 곰곰이 생각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행동의 지침으로 삼는다면 물질적인 행복이 아닌 참다운 마음의 평화와 안전을 찾을 수 있겠다. 쉬운 일은 아니겠으나 끊임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삶의 자세를 가다듬을 수 있겠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설과 반어, 대구와 대조, 적절하고 화려한 비유 때문에 어렵고 공허한 도덕적, 실천적 삶의 원리들이 오히려 쉽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 장점이다. 무엇보다도 전체를 읽지 않아도 그 뜻과 의미를 새겨가며 반복해서 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책 중의 하나가 될 듯 싶다. 내용을 평가해서 무엇하랴. 그저 나름대로의 의미는 얼마든 새겨지는 것이고 밑줄이 늘어갈 수록 세월이 흐른다는 이야기가 될 테지만.

음침하게 말이 없는 선비를 만나거든 아직 속마음을 보이지 말라. 발끈하여 성을 잘 내는 사람이 잘난 체하거든 모름지기 입을 다물라.(전122)

몸가짐은 지나치게 깨끗하지 말 것이니, 모든 더러움과 욕됨을 다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할 것이요, 사람과 사귐에는 너무 분명하지 말 것이니 착한 사람과, 몹쓸 사람 또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를 모두 포용해야 한다.(전188)

냉철한 눈으로 사람을 보고, 냉철한 귀로 말을 들으며, 냉철한 뜻으로 느낌을 감당하고, 냉철한 마음으로 이치를 생각하라.(전206)

  풀뿌리를 씹어가며 살 수 없고 공기청정기를 메고 다니며 호흡할 순 없으나 가끔은 머리를 맑고 시원하게 해 줄 수 있는 영혼의 청량 음료가 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200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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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공산당 선언 세계를 뒤흔든 선언 1
데이비드 보일 지음, 유강은 옮김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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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물아홉 살의 청년 맑스와 스물일곱 살의 청년 엥겔스는 1848년 <공산당 선언>(이하 <선언>)을 발표한다. 혁명의 해를 기억하기 위해 나는 ‘이판사판’으로 그 해를 기억했었다. 150여전에 발표된 선언의 혁명 정신과 계급 의식은 여전히 이 시대에도 유효하며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의미를 간직할 것이라고 믿는다. 세계 곳곳에서는 아직도, 공장체제로 인한 인간 소외는 <선언>이 제기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며, 21세기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는 맑스의 말은 <선언>의 기초가 된다. 역사 발전 과정 속에서 문제는 늘 행동과 실천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침묵하는 대중에게는 언제나 행동하는 혁명가가 필요하다. 인간의 삶과 사회의 불안정을 경제적 불평등과 자본의 소수 집중의 문제로 보았던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만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라고 <선언>을 시작했으며,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고 <선언>을 끝맺고 있는 것이다.

  맑스의 장례식에서 엥겔스는 “다윈이 유기체의 발전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맑스는 인간 역사의 발전 법칙을 발견했다”고 그의 삶을 요약한 것처럼 인류의 삶에 결정적 <선언>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1917년 혁명가 레닌에 의해 러시아에서 현실로 나타났고 뒤이어 마오에 의해 중국에서도 성공을 거두었으며 동구 유럽에서 도미노 현상처럼 실현되었다. 쿠바의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우리는 마지막 공산주의 혁명가로 기억한다. 선언의 현실은 스탈린과 같은 전체주의와 1인 독재에 의해 왜곡되기도 하고 이전의 상황보도 훨씬 더 지독한 고통을 인류에게 안겨 주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두 번째 세계 혁명의 해였던 1968년의 실패 뒤로 맑스주의는 대학으로 들어가 버렸고, 이제는 학문의 영역으로 남겨져 버린 느낌이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둘 다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확신 속에서 <선언>은 작성 되었으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정치적 지배권을 이용하여 부르주아지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로 빼앗을 것이다. 그리고 생산도구를 국가의 수중에, 즉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중에 집중시키며 가능한 한 신속히 생산력을 증대시킬 것이다.”라는 핵심 실천 강령을 통해 노동자 계급에게 <선언> 되었다. 원문에 나타나는 당시의 노동 계급에 대한 맑스의 견해는 분명했고, <선언>의 대중성과 선동성은 지금까지의 어떤 다른 선언과도 비교할 수 없다. 물론 이십대의 청년 맑스의 상징성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평생을 이 선언에 대한 이론적 작업에 몰두한 것이 <자본Das Kapita>이다. 박제가 되어버린 혁명과 선언이라고 하기엔 그가 인류에게 미친 영향이 너무 크다. 현재에도 미래에도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유지 되는한 그의 선언은 언제나 유효하다고 믿는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의 견해를 감추는 일을 경멸한다”고 원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맑스는 혁명을 역사 발전의 필연 법칙으로 인식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당하게 견해를 밝히고 “현존하는 사회 ․ 정치 질서에 반대하는 모든 혁명운동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이다.

  선언 당시 혁명은 좌절되었으나 맑스와 그의 영원한 동반자 엥겔스는 한번도 역사 발전의 필연적 법칙을 의심하지 않은 듯하다. 그것은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시켜주고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이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진 혁명의 현장을 바라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선언>은 혁명으로 가는 길만을 보여줄 뿐, 혁명 이후의 정치나 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그래서 위험하고 선동적인 인식되었는지도 모른다.

  세계를 뒤흔든 <선언>은 당대의 ‘시대정신’을 가장 선명하게, 그리고 가장 급진적으로 드러낸 문서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선언>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도 나는 개인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위해 맑스가 제시한 꿈을 더 좋아한다. 그가 말한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가 진정한 유토피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사회제도나 경제 체제의 변화는 그가 살았던 당시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맑스가 다시 살아나 오늘의 세계를 돌아본다면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낼지도 모른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물결 속에 고통받고 눈물 흘리는 불평등한 노동자 계급과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노동 현장에 투입되는 제 3세계의 현실을 맑스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계급 투쟁’의 역사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선언할까 <선언>의 원문 마지막에서 맑스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잃을 것이라곤 족쇄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외쳤다. 극한 대립을 조장하는 선전선동의 구호가 아니라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울분에 호소한 말이다. 인류가 역사 발전을 끊임없이 지속하고 있다면, 맑스의 <선언>이 더 이상 과거의 추억(?)이 될 수 있다면 인류에게 진정한 평화와 행복이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하는 헛된 상상을 하며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아니 어쩌면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지도 모르는 불평등한 현실을 들여다본다.

  해제를 쓴 고병권의 마지막 평가로 이 책의 의미를 대신한다.

  나는 선언을 세 가지 이름으로 부른다. 그것은 위험한 책이자, 생산하는 책이며, 미래의 책이다. 그것은 위험한 복음이자, 혁명-기계이며, 영원회귀하는 유령이다. 하지만 누군가 하나의 이름으로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책’이다.



2005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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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대가들 - 역설과 위트, 논리와 상상력의 39가지 철학우화
로베르토 카사티.아킬레 바르치 지음, 이현경 옮김, 김영건 추천 / 열대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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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또 복권 당첨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첨될 확률을 수학적으로 계산하거나 거기에 투자하는 돈과 시간과 노력이 헛됨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면, ‘거꾸로시’의 시민들은 필요할 때 즐겨 복권을 산다. 거의 모든 복권이 1유로에 당첨된다. 물론 돈을 잃을 경우도 있으며 최대 백만 유로를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될 확률은 ‘똑바로시’의 시민들이 로또 1등에 당첨될 확률만큼 적기 때문에 누구도 걱정하지 않고 복권을 산다. 재미있는 발상이다. 세상을 조금만 뒤집어 생각하면 얼마나 즐거운 일이 가득한가.

  로베르토 카사티와 아킬레 바르치는 사회과학과 철학을 전공한 사람들로 이 책의 내용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의 ‘라 스팜타’지에 실렸던 우화들이다. 전체 8라운드의 논쟁 주제들로 묶어 각 주제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생활속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등장 인물은 ‘그’와 ‘그녀’ 그리고 ‘참견쟁이’ 셋이 대부분이다. 셋은 끊임없이 의견 충돌을 일으키며 서로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논쟁을 주도한다. 사고하는 주체에 대한 논쟁, 의식과 정체성에 대한 논쟁, 삶에 있어 우연성이 주는 논리적 가능성에 대한 논쟁, 시간과 공간에 관한 논쟁, 언어와 실재, 언어철학과 형이상학에 관한 논쟁, ‘대다수’라는 용어가 가진 모호함에 관한 논쟁, 논리적 역설에 관한 논쟁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논쟁의 중심에 <논쟁의 대가들>이 서 있다. 그 대가들은 우리 모두의 참여를 기다린다.

  여기에는 어려운 철학적 용어도 관념의 세계를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지금까지 가져왔던 모든 편견과 습관적으로 부딪혔던 문제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날짜 변경선과 적도가 만나는 지점으로 여행을 하거나 단 한명의 완벽한 표본이 가지는 여론 조사가 얼마나 위험한 지 보여주는 것은 일상 생활 속에 숨어 논리적 오류들을 교묘하게 철학적 주제와 연관 짓는다.

  하루하루 세상을 살아가며 만나게 되는 문제 상황들 속에서 얼마나 이성적이고 비판적 시선을 가지고 사건과 사물을 명확하게 인식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끊임없는 지적 훈련과 사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그 훈련 과정이 우리의 교육과정 속에는 없다. 그래서 감성적이고 무의식적인 편견에 사로잡힌 판단과 오류가 우리들 생활 곳곳을 지배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습관적인 사고 방식의 틀을 벗겨주는 재미있는 ‘철학 교과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만하다.

  어렵고 딱딱한 주제와 낯선 용어가 주는 거부감을 없애주면서 자연스럽게 관습적 사고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예를 들어 ‘위약효과(placebo effect)’를 눈치챈 환자와 약사와의 대화를 통해, 예측 불가능한 방문의 가능성에 대한 대화를 통해 생활속의 논리적 오류를 보여준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보여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논쟁과 논쟁 사이에 불필요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생각 상자를 통해 다시 한번 관점을 설명하고 핵심을 유도한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무감각한 오류를 일깨워 논리와 상상력의 즐거움을 알려준다. 그 방법으로 끊임없는 역설과 위트를 사용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상황속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지닌다. 출퇴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혹은 머리 아픈 수험생들도 39가지의 철학우화중 한편을 가볍게 읽어내는 것으로 시원한 이성의 휴식을 가져 볼 수 있겠다.

  세상에 쏟아지는 수많은 철학 서적과 인생에 관한 허다한 책들 속에서 보물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내 입맛에 맞는 스타일과 방법을 제시하는 책을 고르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논쟁의 대가들>이 최상의 책은 아니지만 분명 색다른 신선함을 준다는 사실에는 동의해야 할듯 싶다.



200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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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컴 X vs. 마틴 루터 킹 - 다르지만 같은 길 1
제임스 H. 콘 지음, 정철수 옮김 / 갑인공방(갑인미디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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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몇 십년전에 일어난 야만적인 미국의 일상사에 대한 고찰이다. 이 책은 두 인물을 통해 과연 미국의 전통과 가치가 무엇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하며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인종과 종교, 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교묘한 형태로 여전히 존재하는 이 시대는 과연 그들이 살았던 시대보다 나아졌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맬컴 X와 마틴 루터 킹의 삶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많은 부분에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남부 중류층에서 태어나 박사 학위를 받고 흑인 교회 목사로 흑인 민권 운동에 투신한 마틴은 비폭력 통합 주의를 표방한다. 반면 빈민가의 상징으로 백인에게 강간당한 외조모와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붉은 피부색을 지닌 맬컴은 철저한 폭력적 분리주의를 내세운다. 미국의 자유와 민주적 가치를 믿었던 마틴과 백인들의 차별에 폭력으로 저항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던 맬컴의 가치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보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마틴의 통합주의적 입장과는 반대로,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고 있는 흑인 대중”들의 관점에서 미국을 바라본 맬컴 엑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절대 다수를 위해서 악몽이라는 이미지에 호소하며 미국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묘사했다. (본문 75페이지)

  같은 시기에 미국의 아프리카계 흑인들을 위해 민권 운동을 펼쳤으나 전혀 다른 방법과 이념을 가졌던 두 사람은 미국이라는 가치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대표적 개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만을 위한 자유와 민주주의는 백인 우월주의로 나타났으며 이에 대한 극복은 두 사람에게 운명처럼 다가왔고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바탕으로 상호 보완적 관계를 이룬다. 단 한번 만났던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암살로 생을 마감한다.

  마틴의 ‘통합주의’ 철학의 핵심은 “사람들은 종종 서로 미워한다. 서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 두려워한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 잘 모른다. 소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통할 수 없다. 서로 나뉘어 있기 때문이다. (본문 72페이지)”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된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백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마틴은 196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에 비해 맬컴은 북부 빈민가 흑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남북전쟁 후 1870년, 링컨의 수정 헌법 15조에 의해 흑인에게 투표법이 주어졌으나 ‘짐 크로(Jim crow)’법에 의해 ‘분리는 하되 평등은 하다’는 흑인 분리(차별) 주의가 흑인의 90%가 살고 있던 남부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정착된다. 20세기 초부터 벌어진 흑인 민권 운동은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한 법적 투쟁부터 시작해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등으로 촉발된 실생활의 차별적 행위들에 대한 폭넓은 범위의 투쟁이었다. 두 사람은 이 시기의 미국의 참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바로미터다. “마틴의 신학이 사랑과 용서 그리고 흑인과 백인이 사랑 넘치는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얘기했다면, 맬컴의 신학은 엄격한 정의와 단호한 처벌 그리고 신이 백인종 전체를 절멸시킬 것이며 그리하여 평화와 선의의 세상을 모든 백인 가운데에 세워주리라는 희망을 강조했다. (본문 266페이지)”

  일라이저 무하마드의 이슬람 종교에 의지해 대중앞에 나선 맬컴은 결국 그와의 결별 이후 마틴의 주장과 흑인들간의 통합과 연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 암살 당한다. 맬컴 암살 이후 마틴은 미국의 베트남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미국의 절대 가치로 믿었던 자유와 인권을 바탕으로 한 인류애의 가치에 회의를 갖는다. 미국은 “평화를 얘기하면서 전쟁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유색인종과 여성, 어린이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하는 모습은 베트남에서 여실히 목격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됐던 인종주의 정책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인류 사회를 초토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본문 388페이지)” 베트남전을 통해 마틴은 “베트남에서 적군 병사 한 명을 죽이는 데 50만 달러를 쓰면서 자국 내의 가난한 시민에게는 단돈 50달러만 쓰는 나라”를 인식하고 미국은 자신의 도덕적 모순에 의해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미국의 이러한 이율 배반적인 모습은 걸프전과 최근의 이라크 침공등을 통해 아직도 변하지 않는 일관된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것이 교언영색하는 미국의 참모습이다.

  “어떤 입장에서 흑인 문제를 바라보든, 그러한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은 언제든 죽음의 위협과 마주합니다. 이는 ‘비폭력적인’ 킹 박사나 소위 ‘폭력적인’ 저나 마찬가지입니다” 맬컴의 죽음 이후 비로소 마틴은 자신의 아메리칸 드림에서 급진적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으며, 맬컴이 꾼 악몽의 공포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본문 351페이지)

  이러한 마틴의 변화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른다. 맬컴과 마틴처럼 혁명적인 예언가들은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대개 그들이 끊임없이 변화시키고자 노력했던 그 힘에 의해 살해당한다. 맬컴 액스는 그가 사랑했고 자기혐오에서 해방시키고자 노력했던 흑인 집단에 의해 죽음을 맞았다. 마틴 킹은 그가 사랑했고 인종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백인 집단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미국은 그때와 많이 다른가? 한반도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나라가 되어버린 미국의 가치와 본질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두 민권 운동가의 삶은 시대를 넘어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는 불평등한 가치를 극복하기 위한 거울이 될 수 있겠다. 늘 그러하듯이 이념이 아닌 순수한 동기와 가치에서 비롯된 헌신적 노력과 행동들이 작은 변화를 만들며 이러한 작은 변화들이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꾼다는 믿음은 나만의 것이 아니길 바란다.



2005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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