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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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듣고 나면 코끼를 잊을 수가 없다.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 개념의 창시자쯤 된다. 심리학자 최인철의 『프레임』은 인간의 인지적 무의식에 관한 탁월한 대중서다. 제임스 서로위키가 말한 『대중의 지혜』에 설득당한 사람들은 에드워드 버네이스의 『프로파간다』 앞에서 주춤거린다. 우리는, 아니 나는 합리적인가. 사람은 못 돼도 괴물은 되지 말자던 영화 속 대사를 패러디하자면 지혜로운 성자는 못 돼도 어리석은 군중은 되지 않고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고 우리는 대체로 필터 버블에 갇혀 착각 속에 살아간다.

겸상도 힘들다는 정치적 좌파와 우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돈에 울고 사랑에 속는 게 아니라 무의식에 속고 의식에 또 속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 종의 한계다. 문화인류학자, 인지심리학자, 진화생물학자들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으나 이제 뇌과학자들이 전면에 나섰다. 다 시끄럽고 내가 ‘과학’으로 증명해 줄게!

2011년에 출간된 데이비드 이글먼의 이야기는 이제 익숙하다. 들은 건 믿지 말고 본 것도 절반만 믿으라는 애드거 앨런 포의 충고가 뇌과학에 기반하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감각을 인지하는 뇌의 착각과 한계는 여러 분야에서 검증이 끝났다. 독자들에게 남는 의문은 “그래서?” 세 글자다. 뇌과학은 어떻게 나를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린 지 오래지만 개별 독자의 생각과 현실 변화 가능성 앞에서 매번 냉소를 날릴 수는 없다. 알지 못하면 문제를 인식할 수 없고 해결책은 더더욱 난망하다. 사는 대로 생각하며 세상은 다 그런 거라고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라고 위로를 주고받다 죽는다.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책장을 넘기고 비 오는 토요일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 게 아닐까.(물잔과 콜라잔도!)

그것이 숭고한 대의나 거창한 이타심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삶의 변화와 타인과 세상에 관한 통찰을 얻기 위한 이기적 목적일지라도 확증편향을 의심하는 눈빛,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려는 태도, 어차피 죽을 거지만 피자에 꿀을 찍어 먹어도 무알콜 음료는 마시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모였던 기억이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과학이 곧 사실일 수도 없고 실험 결과나 통계 분석도 주관이 개입된다는 이야기를 소리 높여 외치는 저자들에게 경의를! 허나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넘나들며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 탄생과 소멸에 대해, 아니 각자의 삶에 자유 의지와 의식이 미치는 영향의 한계를 점검하는 정도면 넉넉하다. 보니 엠이 다들이불개고밥먹으라던By the rivers of Babylon 노래 소리가 아련한 일요일 아침이다. 우리는 모두 자기 기쁨과 슬픔을 감당하며 인지적 무의식에 속지 않기 위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산다고 믿는다. 그 선택과 방향이 비록 원하지 않는 길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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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잠깐 창비시선 52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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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면 사람들은 희망찬 새해를 설계하기 전에 뒤를 돌아본다. 좋은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개 아쉬운 일들을 성찰하고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다. 기억과 망각은 인간의 현존재를 지탱하는 철학적 기반이지만 무엇보다 미래를 위한 정리의 방법이기도 하다.

올 한해는 어떻게 살았으며 내년에는 또 어떻게 살 것인가. 일 년을 단위로 시간을 구분하는 이유는 하루, 한 달을 조금 더 충실하게 채우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면서 자기 삶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송구영신하는 마음을 다독여 보는 12월이다.

생각이 복잡하고 일상이 바쁠 때는 책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럴 때는 잠깐씩 시간이 날 때마다 시 몇 편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시인의 눈을 빌어 사물을 관찰하고 익숙한 일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순간 새해를 맞는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다.


현실을 닮은 허구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인물들 사이의 갈등이 소설을 읽는 재미라면 시는 개별 독자에게 그려지는 마음의 무늬다. 그 이미지를 따라 지나간 시간을 떠올리고 번잡한 마음을 정리하기 좋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인과관계를 따지고 합리적 이유를 생각해 보지만 대개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서 비롯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타인과 세상, 사랑과 이별, 하늘과 별에 관한 정호승의 시를 오랫동안 읽어 온 독자들은 편의점에서 잠깐 스치듯 읽어도 좋을만큼 따뜻한 시들이 반갑다. “나는 패배가 고맙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 살아남기 위해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패배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패배에 대하여」 중에서) 이 시집의 서시는 ‘패배’로 시작한다. 바라는 대로 세상이 성공한 인생, 행복한 일상으로 가득하다면 시인은 아마 시를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고독과 슬픔이 인생의 기본값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무렵인 사람들에게 정호승의 시는 뜨끈한 국밥 한 그릇, 쓴 소주 한 잔만큼 진하게 가슴에 닿는다. ‘희노애락애오욕’을 거치며 한 생을 견디는 사람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감동적인 위로를 건네는 시인이 곁에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나를 위해 울어줄 수 있을 것인가 누가 나의 상처에서 흐르는 분노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을 것인가”(「당신이 아니면」) 곁에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거나 지나간 인연을 생각나게 하는 수많은 ‘당신’은 누구인가. 만해 한용운의 말대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마음속에 그리운 것 하나씩 품고 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공감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라고 착각하지만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감정이기도 하다. 다만 시인은 그 폭과 넓이를 세상 전체로 확장하려는 사람일 뿐이다. 기막힌 표현과 반짝이는 언어가 아니라도 좋다. 우리가 내뱉는 말들이 시가 될 수도 있으려면 타인을 헤아리는 배려, 이기적 욕망에 대한 성찰이 먼저다.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고 했던 정호승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는다.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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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움직인다 창비시선 519
손택수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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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고독하게 날아온 돌이

지구를 파고들며 타오르듯이

갈 수 있을까 당신에게로

마주 보면 눈을 맞추는 글썽임

_「운석 찾는 사람」중에서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라던 김연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을 지났다. 익숙한 시인들도 이제는 그 그림자 안에서 유영하고 있을까. 오랜만에 읽는 손택수의 시집에 담긴 사유의 흔적,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차피 닿을 수 없는 것들을 향한 손짓, 알지 못하는 곳에 대한 동경, 만날 수 없는 사람을 향한 그리움이 뭉쳐버린 폐지처럼 나뒹굴어도 어쩔 수가 없다.

저녁을 짓다

짓는 것 중에 으뜸은 저녁이지

짓는 것으로야 집도 있고 문장도 있고 곡도 있겠지만

지으면 곧 사라지는 것이 저녁 아니겠나

사라질 것을 짓는 일이야말로 일생을 걸어볼 만한 사업이지

소멸을 짓는 일은 적어도 하늘의 일에 속하는 거니까

사람으로선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매일같이 연습해본다는 거니까

멸하는 것 가운데 뜨신 공깃밥을 안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 지상의 습관처럼 지극한 것도 없지

공깃밥이라는 말 좋지

무한을 식량으로

온 세상에 그득한 공기로 짓는 밥

저녁 짓는 일로 나는 내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네

짓는 걸 허물고 허물면서 짓는

저녁의 이름으로

빛이 고였다가 사라지는 시간, 매일 저녁이 지겨울 무렵에 문득,

혹시 내년 여름에도 수국을 볼 수 있을까.

수국

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

피어나는 수국은

내 헛된 비유들에 대한 위로 같은 것,

꽃을 시늉하는

궁리에 궁리 끝의 작위여

작위의 찬란이여

헛것이라면 참으로

헛헛한 속을 달래는 헛제삿밥의

고봉 같은 것이 있어

수국은 피어난다

나의 삶도 가설

나의 말도 헛것만 같을 때

지는 것이 꽃이라고,

아닌

꽃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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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백서 - 오늘도 귀여운 내향인입니다
김시옷 지음 / 파지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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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인간의 감성을 코끼리에, 이성을 기수에 비유한다. 이성은 자신이 감정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위에 올라타 있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의 교집합은 언제나 ‘합리’와 ‘논리’의 영역을 벗어나면 위험하다. 가족, 연인과 친구 등은 이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대개 착각에 불과하다. 2차적 관계는 말할 것도 없지만 혈연, 지연 관계로 맺어진 1차적 관계에서 발생한 갈등은 감정으로 뭉갤 수 있으나 대개는 잘잘못을 따지고 이성적으로 해결하려 시도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매 순간 고민한다. 감정의 영역인지 이성의 문제인지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그렇게 누적된 태도가 인격을 형성하고 자기 삶의 무늬를 만든다.

4년째 연재 중인 화성문화재단의 「주간 책편지」 모임에서 직접 뵌 김시옷 작가의 책을 천천히 읽었다. 『소심 백서』는 대문자 I 성향들을 위한 위로와 조언과 거리가 멀다. ‘나’를 중심에 둔 작가의 자기 고백이다. 유년부터 대학 시절, 직장생활에 이르는 삶의 과정을 돌아보며 ‘나’를 인정하는 과정이 놀랍다. 생각보다 어렵고 아무나 도달할 수 없는 ‘자기 객관화’에 성공한 사람의 글은 그대로 가슴에 스며든다. 어설픈 감동이나 공감이 아니라 메타인지를 통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주체적 인간의 탄생을 지켜보는 듯했다.

AB RH+, INTJ, HSP, Misophonia... 심리학부터 뇌과학까지 다양한 책들을 뒤적였다. ‘예민함’에 대하여 알고 싶어서. 아니 ‘나’를 이해하고 스스로 위로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책으로 인간과 세상을 이해할 수는 없다. 물론 경험과 추측 혹은 뇌피셜 등 각자의 도그마를 만들어 가는 건 관심 없으나 객관적 이론과 다양성을 이해하는 일은 게을리 하고 싶지 않다. 극도로 예민한 청각을 지녔으나 둔감한 후각을 가졌고 특정 분야에는 몰입과 기억이 뛰어나지만 사람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감성과 이성을 경계 지어 인과관계를 설명하지 못하고 상관 관계에 머물지라도 인간은 자기 성찰을 멈추는 순간 낡은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늙어도 낡지는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을 콤플렉스라 부르기도 하지만 아킬레스 건이 어디인지 알고 공격하는 이의 잔인함을 파악하는 건 사회적 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거리 두기를 실천하지 않으면 스스로 망가지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김시옷 작가처럼 자기의 소심함을 무기로 내세우거나 핑계 삼지 않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깨 겯고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부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물론 책과 사람은 다르다. 일상에서 작가가 겪는 아픔과 고통을 모두 알 수는 없으나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소심함과 조금 다른 예민함 덕분에.

단순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그림, 반려묘의 이야기, 무해한 표정의 캐릭터, 재치 있는 대사와 감각적인 표현들이 잘 어우러진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조금 무뎌졌다. 소심해도 괜찮아, 예민하면 어때, 우울해도 힘을 내, 귀찮아도 일어 서,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쓸데없이 울컥하다가 겸연쩍게 킥킥거리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11월의 마지막 가을 하늘에 지나가는 비행기를 바라본다. 《왕좌의 게임》의 대사가 다시 돌아왔다. winter is co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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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의 역습 -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어두운 열정
라인하르트 할러 지음, 김희상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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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속에는 타인의 행복을 질투하는 감정, 즉 ‘르상티망ressentiment’이 깔려 있다. - 니체(Nietzshe)

물과 공기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띤 공공재다. 이렇게 자명한 사실 앞에서도 이익을 앞세우는 자들을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목도한다. 하물며 공공재가 아닌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공유지의 비극을 넘어 이해관계에 얽힌 모든 관계 앞에서 인간은 민낯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도덕과 가치 혹은 이념과 윤리를 표방하는 자들이 자기 속내를 들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증오는 대개 착각에서 유발되는 경우가 많으며 혐오에 동반된 감정적 사태다. 오스트리아의 법정신 의학자 라인하르트 할러는 감정이 개인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해온 저명한 정신과 의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모든 인간은 숨쉬고 먹고 마시고 잔다. 그 모든 과정에는 타인과의 ‘관계’가 형성된다. 불안, 우울, 나르시시즘, 망상, 중독 등이 벌어지는 원인은 대개 타인 혹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 발생한다. 그렇다면 증오는 감정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 문학, 철학을 넘나든다. 전공과 직업이 무엇이든 ‘인간’에 대한 탐구는 대단히 복합적인 인문학적 통찰이 선행돼야 한다는 사실을 매번 확인한다. 좁게는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고민에서 넓게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에 이르는 과정은 쉽지 않으며 대개 결론도 정답도 없다. 기존 이론과 주장에 대한 끊임없는 반박과 재규정을 통해 변증법적 통찰에 도달한 현재적 주장에 가까울 뿐이다. 논리적 증오와 이성적 분노,에 이르는 머나먼 길을 돌아 자기 말과 행동에 대한 합리적 판단에 이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건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일보다 범죄자의 자기 혐오와 증오를 오랫동안 관찰한 저자의 이야기는 건강한 삶과 공동체의 질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법과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서 인간의 진화, 혐오, 분노, 파괴, 절멸 등에 관한 사적 고찰로 이어지는 과정이 넓고 깊다. 증오의 뿌리를 찾는 일은 직업인으로 저자의 몫이겠으나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일은 일상에서의 벌어지는 LGBTQ, 외노자, 중국인, 장애인, 노동자, 경제적 취약계층, 탈모인, 비만인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다양한 혐오에 대한 개별 독자의 편견과 차별이다. 김지혜가 지적한 ‘선량한 차별주의자’ 정도라면 그나마 양반이다. 보이지 않는 각자의 프레임을 생각보다 좁고 견고하다. 신념이 확고한 자를 믿지 않는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을 패러디하자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본능에 내재한 이디오진크라지idiosynkrasie에 불과하다고 항변해도 소용없다. 문명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를 갖추지 못한 인간을 현대사회 공동체는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혐오 혹은 증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일까. 물론 저자의 희망과 결론 혹은 대안과 달리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또다시 각자 알아서 할 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다. 직업적, 사회적, 개인적 패륜 행위를 공론화하며 규율과 질서를 마련하고 감시와 처벌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법률적 통제를 넘어 사회적, 관계적 대처는 매우 중요하다. ‘천성적 증오’가 아닌 ‘반사적 증오’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문명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일 수도 있다.

우리는 공자님 가운데 토막도 아니고 생각하고 고뇌하며 살아가는 철학자가 되기도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염치’는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맹자는 이미 기원전에 염치가 없으면 인간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 아니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모르는 자, 너무 뻔뻔해서 부끄러움이 오히려 나의 몫이어야 하는 자들을 향한 혐오와 증오는 괜찮아야 하지 않느냐는 항변에 저자는 무어라고 답할까. 물론 ‘범죄’ 영역에 국한된 성찰이겠으나 일상을 견디는 나, 아니 우리 모두는 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데서 문제가 다시 시작된다.

‘증오’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과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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