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사 전(傳) - 한국사에 남겨진 조선의 발자취
김경수 지음 / 수막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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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속사나 생활사와 같은 미시사가 아니라 왕조 중심의 거시적 안목에서 바라보는 역사는 왠지 허망한 신화나 전설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 통탄할 만한 우리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린다. 21세기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삶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의 속도에 어지럼증을 느낄 만큼 세상은 달라지고 있지만  때때로 우리는 부적응의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먼 미래에 역사가들은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조선 왕조 500년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위정자들의 이야기는 인간 본성의 가장 극악한 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김경수의 <조선 왕조사 傳>은 철저하게 왕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傳’이라는 형식이 황제나 영웅의 일대기를 걸출한 문장가가 쓴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전傳’이 갖추어야할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다.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부터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망해버릴 때까지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에 이르기까지 스물일곱 명의 조선 왕조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에 해당하는 책이다. 단 한 명의 왕도 빼놓지 않고 연대기 순으로 재임 기간을 충실하게 적시하고 있다. 종실의 관계와 권력의 암투 과정, 당쟁과 세도 정치 사이에서 풍전등화와 같았던 조선의 왕들은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동정의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왕의 지위는 인간과 하늘의 매개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왕조시대는 끔찍했을 것이다. 장자라는 이유만으로 한 나라를 책임져야 했고, 가신들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독살 되기도 했던 조선의 왕들은 백성들과는 무관한 저 높은 곳의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스물일곱 명의 왕 중에서 뛰어난 능력과 훌륭한 인격을 겸비한 왕을 우리는 얼마나 손꼽을 수 있을까? 조선 왕조 500년을 통틀어 최고의 르네상스였다고 평가받는 세종과 정조 정도를 제외하면 객관적인 평가 자체가 무의미하다. 물론 개인적인 능력만을 놓고 평가하는 것은 역사적 상황과 맥락을 무시한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피맺힌 한을 가슴에 담고 위정자들에게 억눌려 살았던, 자신의 운명을 온통 그들에게 내맡겨야 했던 백성들의 한숨과 눈물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무얼까?

  이 책은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들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사람들에게 구슬을 꿰는 실과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상황들을 모두 설명해 줄 수 없는 한계가 있는 대신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 왕조 전체를 조망하고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와 해석, 평가 보다는 객관적인 사실들의 전후 관계와 인과 관계를 연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통시적인 관점에서 조선왕조 전체를 일괄할 수 있는 책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미시사가 각광을 받았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구체적인 역사, 생활 속의 역사, 민중들의 역사, 여성의 역사가 우리의 삶이고 과거라는 것은 자명하다. 위정자 중심, 승리자 중심, 왕권 중심의 역사라는 본류를 무시할 수 없지만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외시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생활사박물관>이 그래서 주목을 받았고 최근 이덕일의 저작들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신명호의 <조선 왕비 신록>은 이 책과 좋은 짝이 될 만하다. 남성이 있다면 인류의 절반은 여성이다. 왕이 있으면 왕비가 있다. 당연한 이치지만 왕을 둘러싼 권력의 승계와 암투에는 왕비의 역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한 것이 아닐까? ‘조선 왕조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왕비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두 책은 비교해가면서 읽을 수 있는 흥미 있는 관계에 놓여있다. 서로 다른 저자의 책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왕조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서로 보완하며 읽을 만하다.

  왕들의 삶은 결코 행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왕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인 세자 책봉에서부터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교육과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는 한 인간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왕위에 오르더라도 자신의 뜻과 이상만으로 조선을 통치할 수도 없었고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으나 백성들의 삶과 국가 전체의 운명을 뒤흔들만큼 일사분란하게 영향을 미칠 수도 없었다. 국내외 정세와 정치적인 상황들이 한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나 절대 고독과 개인적인 고뇌를 느끼며 운명을 달리했던 수많은 조선의 왕들을 하나씩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사실들의 나열과 대표적인 사건들 중심의 전개라는 특징 없는 책이라는 아쉬움도 남는 책이다. 그래도 조선왕조와 세계사를 비교한 연표나 당쟁의 출발과 전개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부분들은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국사에 남겨진 조선 왕조의 뚜렷한 족적들은 결국 근현대사에 어두운 그림자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먼 과거의 미래였다. 미래의 과거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은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의 역사는 대통령과 정부의 역사가 아니라 이 땅에 발 딛고 서 있는 사람들 모두의 역사이다. 21세기의 역사를 우리는 지금 여기에 발로 써 나가고 있는 것이다.


080316-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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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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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가 변해가도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비판은 계속될 것이다. 강준만의 책은 그런 의미에서 유행에 대한 추적 조사 보고서가 아니라 비판적 안목을 제시하는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 적절한 시의성을 생명으로 하는 대중문화 들여다보기는 자칫하면 철지난 유행가 따라 부르기가 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 1>에서 다양한 매체와 미디어를 중심으로 폭넓은 문화 현상들을 분석했다면 <대중문화의 겉과 속 2>에서는 이론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두 책은 제목만 같을 뿐 별개의 책으로 묶여도 상관없다. 따라서 속편의 개념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 물론 대중문화라는 공통 분모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은 새롭다.

  1권에서는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매체별 특성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문화 현상의 속성들을 뒤집어 보는 데 주력했다. 맥루한의 “미디어가 곧 메시지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면 매체의 속성 자체가 대중문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볼 수 있었다. 2권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원인과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머리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미디어를 읽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리터러시는 ‘문식성’이라는 용어로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하는데 미디어에도 적용 가능한 개념으로 확대하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장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그리고 미셀 푸코의 판옵티콘까지 다양한 개념들을 대중문화와 접목시켜 이해의 잣대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 문화의 확장된 형태 혹은 부분 집합으로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대중문화라고 볼 수 있다.

  소비문화나 마케팅 측면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21C가 시작되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다양한 사례들과 더불어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다. 행복을 돈 주고 살 수 있고 돈이 곧 민주주의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볼 수 없지만 자본이 대중과 결합되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쇼윈도에 비친 우리들의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문화현상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정착되어 버린 인터넷에 대한 분석도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인터넷에 나타나는 다중인격이나 사이버 공간의 특성들을 살펴보고 하나의 권력으로 성장한 포털사이트나 경제 구조까지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인터넷과 더불어 휴대폰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는 세상이나 생활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세대에게는 그것이 없었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에 ‘인터넷과 휴대폰의 경제학’을 통해 디지털 격차와 인터넷 시간에 대해 분석한다. 한국이 왜 두 분야의 강국이 되었는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설명하며 책을 맺는다. 주로 ‘미디어’에 초점을 맞추고 대중문화 전반을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이것은 사회학이나 정치학으로 확산되고 전반적인 한국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공한다.

  문화는 결국 우리들 삶의 모습이다. 거미줄처럼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의 모든 현상들을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 1권보다 체계적이고 심도있게 ‘미디어’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현상들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정제되고 집약적인 느낌이다.

  뒤늦게 2003년에 나온 책을 통해 과거의 시점으로 현재를 돌아보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는 당시의 풍속사를 기록한 책으로도 읽힐 만하다. 지금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면 과거 혹은 다른 시대,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변화해 온 현재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이제 2006년에 나온 3권으로 마무리 할 차례다. 책 몇 권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여러 층위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는 제공해 줄 것이다. 모르고 휩쓸리고 알면서도 따라가는 것이 여러 사람들의 문화가 되고 사회를 이끌어 간다. 비판적 관점과 올바른 판단력은 아무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가며 고쳐 나가는 세상살이의 도구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한 방패 하나쯤 가지고 싶다. 책이 방패가 될 수 있을지는 늘 의문이지만.


2008031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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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 - 조재도의 교육 에세이
조재도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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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능력을 계량적으로 측정하는 모든 시험에 반대한다. 최근에는 벌어지는 반역사적이고 반인권적인 교육 행태는 울분을 참을 수 없다.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일제고사를 실시하다니 - 21C 대한민국은 시대를 거슬러 살고 있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즐기면서 바라보기만 해야 할까?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인간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이다. 성적이라는 숫자로 학생을 평가하고 그것이 전부가 되어버리는 세상이 과연 정상인지 묻고 싶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정상과학의 패러다임을 이야기했다.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이제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교육에서 특히 학교 공교육에서 추구하는 이념과 목적은 발전해 왔는지 묻고 싶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숫자 놀음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는 것일까?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간의 지능을 여덟 가지로 분류하면서 각각의 지능은 독립적이라고 주장했다. 수학을 못하는 학생이 자연친화적 지능이나 대인관계 지능이 뛰어나서 나름의 분야에서 최고의 재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우리의 교육 현실은 꼼짝 마라! 일단 국영수라는 삼발이를 굳건히 세워놓고 이야기하자는 논리이다.

  교육에 관해서라면 나름대로 모두가 전문가이고 철학과 가치관이 뚜렷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런 신념과 믿음들이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하는 올바른 방향인가? 해법은 제각각이고 현장에서 혹은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교육의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도 만만치도 않다. 대입 제도의 개선의 초, 중등 교육 환경 개선의 키워드라고 말할 수 있지만 과연 대입제도가 줄세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해서 대학교육을 통해 우수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재능있는 사람으로 교육하겠다는 자세가 되어 있는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괴감과 모순 투성이의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그것은 단순히 개인과 학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고민하고 합의해야 가능한 교육적 토대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필요성에서 비롯된다. 전교조 합법화 시절 해직교사였던 조재도 선생님이 다시 학교에 돌아와 오랜만에 담임을 맡으면서 써내려 간 교육 에세이 <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단숨에 한 호흡으로 읽힌다. 1년간의 담임 기록장에 불과한 이 책은 특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의 시선을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교사라는 직업이 갖는 특수성, 공교육에서 담임의 역할과 애환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현장감이다. 생생하게 전달되는 학교 교육 현장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 준다. 지역에 따라 학교급별로 상황이 다르겠지만 조재도 선생님이 느끼는 학교와 모순들은 일반적인 수준에서 모든 학교가 겪는 공통된 문제점이기도 하다.

  사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비판적인 시선은 다르다. 한 줄로 세우는 교육에서 일등은 참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일등은 얼마나 불안하고 위태로운 자리인가. 일등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제목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모든 학생이 제각기 다른 분야에서 일등을 할 수는 없을까? 쉽지 않지만 우리의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사의 역할과 기능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다만 좋은 교사가 되려는 노력은 교사마다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아니, 좋은 교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조차 제각각일 것이다. 자신이 그려놓은 훌륭한 교사상에 부합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이 많겠지만, 그려놓은 상(象) 자체에 문제가 있다면 우려할 만한 노릇이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수준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인식이 아니라 문제를 제대로 지적하고 합리적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조차 교사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아닐까?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주장과 과정들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본다고 한다면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좋은 교사는 지금 여기 그 아이의 존재 자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다. - P. 128

  책 전체를 통해 가장 훌륭한 문장이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존재 자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교사, 알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살아오면서 쌓여온 수많은 편견들과 학생이라면 이러해야 한다는 완고한 도덕적 틀과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보수적 관념들을 가진 교사를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모범생으로서 역할에 충실해서 체제 순응적인 교사 집단의 문제점은 내부적인 모순조차 해결이 되지 않는 상태이다. 전문가 집단이라고 하지만 상명하달, 교장 교감에 의한 전횡 등 구태연한 모습들은 20대의 교사와 60대의 관리자가 공존하는 학교의 가장 큰 딜레마이다. 학교가 변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변해야 하고 교사가 변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 대한 태도와 미래에 대한 안목과 열린 마음과 상대방을 인정할 줄 아는 똘레랑스의 정신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21C 교육 현장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사람을 다루는 직업인 교사는 성과를 쉽게 계량화 할 수 도 없고 측정하기도 힘들다. 그들이 변해야 학교가 변하고 학생이 변하고 세상이 변한다. 답답한 우리의 교육현실을 통해 무언가 변화의 필요성과 개혁의 단초를 확인했다면 이 책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어느 교사의 푸념이 아니라, 일년 동안의 학급 경영 보고서가 아니라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수만은 문제점과 학교라는 완고한 틀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공교육의 현장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오늘도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아침에 눈만 뜨면 학교로 질주한다. 그러나 아무도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됐어.”라고 서태지처럼 외치지 못하고 있다.


08031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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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3-13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 문장...며칠전 저희 아이가 일을 겪었기에 더욱 사무치네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표현 제 맘에 쏙 들어요.

sceptic 2008-03-13 22:50   좋아요 0 | URL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교사가 훨씬 많겠죠.

비로그인 2008-03-13 23:07   좋아요 0 | URL
그건 그렇지요.
저도 지금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제 아이들에게 닥쳐있기 때문에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제껏 겪어본 바에 의하면 저 어렸을 때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보거든요.
최근에 저의 아이가 겪은 일 때문에 분노해서 위와 같은 댓글을 달게 된것이구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표현은 얼마전 옆지기에게도 들었기에 무슨 생각으로 그리 썼는지는 대충 감이 와서 그랬구요.
물론 제 생각과 다 같지는 않지만 멀리서 볼 때와 내 자식이 그 곳에 있다 생각할 때는 많이 다르지요.
학기초에는 더 예민해지고, 특히 1학년일 때는 더욱 예민해져서 그럴게요.
제가 지금 그러니까요.
두서없는 글 써버렸네요.

sceptic 2008-03-14 21:00   좋아요 0 | URL
처음 공교육에서 아이들이 받는 인상과 부모들이 받는 충격(?)이 이런대도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고 상식밖의 교사들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합니다.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모두의 합의와 노력이 요구되는 거대한 장벽을 마주한 기분이시겠죠.

쉽게 위로하거나 대안을 제시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하나씩 다른 학부모님들과 함께 고쳐 나가야겠죠. 힘내세요!
 
쿨하게 한걸음 -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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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작가는 비평가를 여름날 소 잔등에 달라붙는 파리에 비유했다. 소의 입장에서 보면 귀찮고 짜증나는 무익한 존재라는 뜻이다. 작가와 평론가의 관계는 적당한 긴장과 거리가 필요하다.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독려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 비평이다.

  한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공론의 장에 펼쳐진다. 어떤 의도로 왜 쓰였는지 오로지 작품으로만 말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이다. 평론가가 아닌 일반 독자의 평가는 그래서 더 두려운 법이다. 물론 전문적인 식견이 없거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작가와 작품을 평가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독자의 평가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믿을만한 출판사 중 하나인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을 단 서유미의 소설 <쿨하게 한걸음>을 단숨에 읽었다. 이 작가는 작년에 ‘제5회 문학수첩 작가상’까지 받으며 주목받는 신인으로 떠올랐다.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소설은 고급한 장르가 아니다. 탄생부터 지금까지 그래왔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애정과 관심을 갖게 되는 장르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당황스러웠다. 믿을만한 출판사의 책이기도 하거니와 거창한 타이틀까지 붙었으니 지나치게 기대를 한 것은 순전히 내 탓이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은 없습니다’라고 하면 안되나?

  서른 셋이라는 나이를 모티브로 출발한 이 소설은 계속해서 서른 셋인 주인공과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서른 셋으로 끝을 낸다. 사실 소설이 특정 나이나 주인공, 혹은 소재나 이야기 측면에서 진부할 수도 있고 더듬거릴 수도 있다. 문제는 감동이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느낌이 없다면 지적 호기심이나 자만감을 부풀릴 수 있을만큼 포만감을 안겨줘야하는 것은 아닐까?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할 일 없어 켜놓은 TV의 재방송 단막극 드라마같은 느낌이었다면 작가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것일까? 신산스런 고통의 산물인 작가의 작품을 무참하게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소설을 읽고 나면 입맛이 쓴게 아니라 화가 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애인과 헤어진 주인공 연수는 인수합병 절차를 거치는 회사에 사표를 던진다. 삼심대 싱글의 특권은 그것으로 끝이다. 다니던 대학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다가 공립도서관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대학 동기를 만난다. 오랜 친구들은 조연의 역할을 한다. 네버랜드의 피터 팬에서 웬디가 되어버린 선영과 뒤늦게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민경과 공부는 못했지만 빼어난 미모로 부자와 결혼한 사촌 연재 등 서른이 아니라 서른 셋이라는 확실한 삼십대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이십대 청춘의 저쪽에서 환멸스런 현실을 피할 수 없는 나이로 진입하는 서른 셋 친구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사춘기는 아련한 추억이지만 생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주인공은 삶은 현실이다. 생에 대한 따뜻한 애정보다 답답한 현실을 견뎌야만 하는 친구들의 모습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영화에 관한 공부를 다시 시작하며 늙어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돌아보고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작가는 일정부분 성공을 거둔 듯하다.

  무언가 기다리는 독자에게 작가는 끝까지 현재 상황과 여러 친구들의 삶을 통한 현실의 지겨움과 밥벌이의 고달픔과 뒤늦은 성장통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래서? 도대체 소설에서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그것은 가슴 시린 통증과 울림이거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슬픔이거나 미친듯이 킥킥거릴 수 있는 재미이거나 철학적 깨달음을 주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적어도 이 소설에 대한 나만의 느낌이라면 다행이겠다.

  이제 문학상도 출판사도 믿을 수 없는 카라타니 고진의 말을 패러디 하자면 ‘소설의 종언’에 대해 이야기할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극단적인 비유겠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인간은 ‘이야기’ 없이 살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줄 것인가 고민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기다림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작가들이여 힘내시라. 여기 언제든 소설에 환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독자가 있으니 말이다. 이기적이지만 그래서 난 될 수 없는 작가보다 언제든 가능한 독자를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08031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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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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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함성.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대학 신입생 시절을 돌이켜 보면 소주와 막걸리 그리고 ‘오월의 노래’보다 이 노래가 먼저 떠오른다. 국민이라는 말에 익숙한 나에게 민중의 이름을 알게 했던 노래였고 이후 민중은 대중이라는 중화된 이름으로 내게 인식된다. 한 단어의 개념을 알고 어휘를 각인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와 추상적이고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경우로 대별된다. 국민과 민중과 대중 사이에 어떤 거리감이나 명확한 개념상의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경험적인 단어의 의미는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엉뚱하게도 <대중문화의 겉과 속 1>의 제목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은 문화가 아니라 대중에 관한 것들이었다. ‘대량 생산·대량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사람. 엘리트와 상대되는 개념으로, 수동적·감정적·비합리적인 특성을 가진다.’는 사전적 의미가 정확하진 않더라도 대중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 대중mass은 한마디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말한다. 특정한 이슈에 대해 의견을 가진 공중public과는 구별된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속에 널리 퍼진 문화 현상을 우리는 대중문화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것은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접근 가능하지만 대표적으로 미디어에 의한 문화 현상을 다룬 것이 강준만의 <대중문화의 겉과 속 1>이다.

  TV와 광고, 활자매체와 테크놀로지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현상들을 소개한 이 책은 벌써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읽으면서 대중문화의 속성상 시의성이 떨어져 지나간 시대를 돌아보는 느낌이었다. 예상 독자를 청소년으로 상정했기 때문에 책장은 신문이나 잡지처럼 스스륵 넘어가고 내용은 분석적이고 비판적이지만 어렵지 않게 설명되어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일은 흥미로운 작업이다.

  예를 들어 추억이 되어버린 스포츠 신문 기사와 관련된 분석을 보자.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스캔들이 알려지고 댓글을 통해 대중의 반응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프로야구 시즌이 끝나고 스토브리그가 시작되면 스포츠 신문은 연예인들의 스캔들로 먹고 살아야했다. 대중문화는 그 대상과 주체가 수동적이며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실체가 모호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체와 유사하다.

  강준만은 청소년과 대중문화를 시작으로 그 용어도 아련한 신세대와 X세대의 특징을 짚어내고 스타와 청소년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분석이다. 오빠부대로 대표되는 청소년과 연예인의 관계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왜 스타에 열광하는가? 또 스타란 무엇인가? 이것이 경제에 미치는 효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는 사실들은 우리는 애써 외면하거나 쉽게 포기해버린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이 책은 대중문화의 표면적 현상들에 감추어진 이면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현상에 나타난 본질을 이해하는 일은 어떤 사물과 대상을 인식하기 위한 기초적인 단계이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맹목적인 믿음과 가르침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을 위한 책으로 손색이 없다. 청소년들에게는 세상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텍스트이다. 읽어야 할 것들은 너무 많고 그 독법을 제시하는 책은 거의 없다. 논술 광풍에 휩쓸려 모든 책 앞에는 논술 대비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기 일쑤다. 이제 정시 논술을 보지 않는 대학들이 늘어가고 있으니 어떤 방법을 쓸지 궁금하기도 하다.

  읽을만한 책과 추천할 만한 책은 개인적 성향과 목적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독서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 나의 입장과 그것을 읽어야할 사람의 입장이 다르고 배경지식과 상황과 목적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책은 추천할 만한 책이다. 어렵지 않으니 책을 좋아하지 않는 청소년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내용 또한 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주변의 문화 현상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생각의 힘을 길러주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될 만하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변하면서 인용된 사건과 매체의 역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를 움직이는 기본적인 시스템과 대중들의 반응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는 측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현상 속에 감추어진 이면의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수레바퀴와 작은 톱니바퀴들로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시스템에서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작다. 본질을 통찰할 수 있는 인식의 힘을 키워나가는 연습은 바로 지금 시작해야 한다.


080309-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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