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클레이 셔키 지음, 송연석 옮김 / 갤리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가끔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한다. 사람들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본능처럼 만들어낸다. 그 시절은 선악과 오호의 판단을 넘어 아련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다. 디지털과 네트워크로 무장된 신인류의 삶을 과거와 비교할 때 단순히 진보했다거나 행복해졌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 시절의 문법이 있었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가 있었고, 연락이 닿지 않아 애태우는 밤이 존재했으며 친구나 가족의 소중함은 지금과는 다른 형식으로 다가왔다. 인관관계는 전면적이었고 타인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은 진지하고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지만 이제 즉흥적이고 감각적이라고 할 만큼 관계를 맺는 방식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맺는 관계의 수가 아니라 관계의 질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관계의 수가 많아지면 질적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고 관계 맺는 방식에 따라 그 의미도 달라진다. 네트워크 세상은 시간과 공간의 벽을 허물었다. 지구의 끝에 사는 사람들과도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의 흐름을 간파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이 요구되는가.

  클레이 서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Here comes everybody>는 우리말 동사를 활용하여 인터넷의 특성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모든 사람이 모인 곳은 시장이나 교회가 아니라 인터넷이다. 네트워크 공간을 맹신하라는 뜻이 아니라 필수적인 관계망의 현장으로 그리고 세상의 변화가능성의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 이곳을 떠나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졌다.

  무엇을 상상하든 우리는 그 이상을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있다. 상상만으로 그치지 않고 시도해보고 부딪혀 보고 대화를 나누고 행동에 옮겨보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생각의 속도를 뛰어넘을 듯이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정확한 흐름을 읽어내야 한다. 그 방향과 목적에 따라 거시적인 안목에서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눈뜬 장님처럼 살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현실세계와 구별되는 네트워크 세상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정확히 해석함으로써 다음 세대와 모호한 미래를 에둘러 짐작하게 한다. 비판적이고 예리한 판단력은 현실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사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법이다. 저자는 이런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새로운 사회는 결국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말한다. 세대를 점검하는 말들이 유행처럼 퍼진다. X세대, 신세대, 386세대, 네트워크세대…. 사회적 의미와 정치적 목적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붙었지만 실상 우리의 머리에 떠오르는 감각적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람들은 깊이 있게 분석하거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에 익숙하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피상적인 이미지와 감각적 분위기로 그들을 파악한다. 그래서 선입견과 편견은 죽순처럼 자라나고 긍정 혹은 부정처럼 흑백논리로 그들을 재단한다.

  가장 최근의 예로 촛불시위를 들 수 있다. 배후에 전교조가 있다는 말에서부터(전교조가 정말로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 국민들을 동원할 수 있다면 세상은 확연히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경찰이 유모차부대까지 수사하는 현실에 이르면 할 말을 잊게 한다.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고 현실을 읽어내려는 무지한 사람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또 다른 그들을 양산하기 위해 조중동과 기득권 세력은 얼마나 피눈물나게 노력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책의 서두에서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사람들의 사례가 등장한다. 그것은 인테넷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고 21세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변화들이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가 되었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인터넷 보급률이 높다. 노무현은 당선된 것만으로도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결국 역사의 물결이 거꾸로 흐르고 있지만 그 현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국민들의 댓가는 너무 크다. 요즘 입버릇처럼 말한다. 당신들이 뽑은 대통령, 5년간 온몸으로 느껴보라. 물론 대통령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노란 고름처럼 터지지도 않고 고여서 딱딱하게 굳어가는 상처의 주변이 더욱 심각하다.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대중의 탄생은 공유의 혁명과 실천하는 커뮤니티로부터 출발한다. 브리태니커를 비웃는 위키피디아 방식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다음 세대 혹은 현실 세계의 큰 부분에 대해서 눈을 감게 되는 것이다. 혁명에는 반드시 손해 보는 사람이 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절대 도래하지 않는다. 커다란 행복을 누리는 소수의 몰락은 필연이다. 그들의 세금정책과 부동산 정책, 교육 정책과 대북 정책을 들여다보라.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정책인가? 새로운 사회는 실천하는 대중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기적 욕망의 절제와 사적 소유에 대한 반성이 없이는 ‘공유’할 수 없다. 공유하고 실천하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현실에서 변화 가능성을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미래를 준비한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바람직한(?) 혹은 행복한 미래는 저절로 다가오지 않는다. 타인과의 경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가치도 아니다.

  저자는 변화의 과정을 점검하고 분석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 그 다음은 독자들의 몫이다. 이 책이 현실을 분석하는 가장 훌륭한 틀로 기능하지는 않는다. 인터넷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직업과 계층과 세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현실에 적용 문제는 당연히 개인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네트워크 세상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것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다. 여전히 끌리고, 쏠리고, 들끓고 있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어떤 현실과 미래를 꿈꾸는가?

  나는 이 책에서 ‘공유와 실천’이 없는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아주 작지만 중요한 사실 한 가지 키워드를 뽑아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을 확인하거나 미처 분석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한 정보는 차치하더라도 얼마나 소중한 말인가?


080920-1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 달팽이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가라는 대상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것은 군대에 가서였다. 비무장지대에서 니콘 쌍안경으로 북한군의 표정까지 바라보며 생활했다.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를 생각하며 군대의 조직과 남북 관계, 힘의 논리와 참담한 근현대사에 대해 또 다른 시각으로 고민했다. 수많은 책 속에서도 답을 구하기는 힘들었고 작계 5027도 정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거대한 폭력 조직의 말단 조직원으로 참여한 기분은 참담했다. 이후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우리 사회의 비극으로 보인다. 당연한 인간의 권리가 이제야 논란거리가 된다는 것은 친일파의 청산 문제보다 심각했다. 그들이 사회의 요직을 그대로 승계하고 해방 이후 극단적인 이념 대립으로 레드 콤플렉스를 조장하며 기득권을 유지해 오고 있는 현실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라. 경찰 국가, 병영 사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대한 민국은 군대라는 말은 과장이나 허풍이 아니다. 언제쯤 세대가 교체되며 억압과 폭력과 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학교에서 재생산되는 계급과 순종적이고 억압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는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 전수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폭력 집단은 영원할 수 있을까? 다소 과격한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피카소가 살아생전 공산당원이었음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헬렌 켈러는 삼중고를 이겨낸 철인이 아니라 사회 운동의 선봉에 섰던 여성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페르 톨스토이가 비폭력적 아나키스트였으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지금 우리가 <국가는 폭력이다>는 톨스토이의 외침에 귀기울여하는 것은 올봄 광화문을 뒤덮었던 촛불시위 때문이 아니다.

  국가는 집중되고 조직된 형태의 폭력을 대변한다. - 마하트마 간디

  세계적인 작가의 작품과 사상은 후대 인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마하트마 간디는 톨스토이의 평화와 비폭력에 대한 신념을 온몸으로 실천한다. 영국의 식민지배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이었지만 톨스토이의 외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지금도 여전히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보이지 않는 폭력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거두는 세금과 그것이 사용되는 방법과 그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을 보면, 군대가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뒤돌아보면 톨스토이의 주장이 헛된 망상이 아님을 알게 된다. 100여 년이 지났지만 19세기에 그의 생각은 21세기에도 달라지지 않았고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부와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일들이 우리를 오히려 불행하게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굳이 외면한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부터 아니, 유치원에 다닐때부터 애국가를 배우고 태극기 그리는 법을 배우며 맹목적인 충성심과 국민의 의무를 가슴 깊이 새긴다.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 입학하면 너무나 당연하게 국민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가르치고 순종적이고 억압적인 습관에 길들여진다. 지시하는 대상과 그것에 순종하는 학생이 있고 졸업 후에는 명령하는 상관과 복종하는 병사가 있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몸에 밴 노예근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장유유서와 서열에 의한 위계질서는 피부처럼 편안하게 우리를 감싼다.

  톨스토이는 이런 모든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를 외친다. 세금도 내지 말고 정부기관에서 일하지 말아야 하며 군대에 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저하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비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소극적 저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가와 정부에 협력하지 않음으로서 그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연스럽게 국가와 정부를 없어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를 비판한 것은 단순히 그들의 선전선동과 급진적인 폭력 때문이었다. 그것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국가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혼란스런 무정부주의가 아니라 기독교적 공동체를 꿈꾸었던 톨스토이의 신념이 여전히 실현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그가 주장했던 자족적 공동체, 상호 호혜적이고 이타적인 작은 농촌 공동체는 우리들 삶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의 교리를 통해 우리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애국심과 정부, 아나키즘에 대해 톨스토이의 사상을 읽어낼 수 있다. 살인, 노예제, 사회주의, 기독교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일관되게 평화를 주장한다. 다가오는 혁명의 기운에 대해 말하는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톨스토이가 왜 여전히 우리 인류의 사상을 지배한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변혁의 과정과 역사의 현장을 온몸으로 겪어내면서 그는 어떤 형태의 폭력도 거부했으며 ‘평화’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책머리에 하승우가 쓴 ‘우직한 바보, 국가를 거스르다’는 글은 최근에 그가 쓴 <군대가 없다면 나라가 망할까?>와 겹쳐지면서 다시 한 번 톨스토이의 사상을 일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세상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부정적이고 암울한 시선으로 바라보자는 이야기로 몰아가는 외눈박이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힘들겠지만 건전한 비판정신과 역사적인 관점에서 길어올린 통찰력은 독자들에게 덤으로 주어진다.

  과연 톨스토이는 왜 그렇게 평화와 비폭력에 관해 깊은 사색에 잠겼을까? 사람들은 왜 권력의 폭력에 순응해야만 하는가? 국가와 정부가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을까? 이런 종류의 고민들이 황당한 질문이 아니라 ‘국가에 저항하라’고 외치는 톨스토이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전은 시대를 넘어 명불허전이다. 인류에게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깊은 통찰력을 제공한 톨스토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일단, 국기에 대한 맹세부터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학교에서는 아직도 애국조회가 거행된다면서요? 오호! 통재라!


080916-1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에게 반하다 - 자기성공을 이룬 나르키소스 12인
안병찬.안이영노 지음 / 도요새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안치환이 불러 유명해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정호승의 시이다. 잠언 형태의 구절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시인은 이 시에서 외로움을 말했다. 그러나, ‘수선화’라는 꽃을 통해 외로움의 정서를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수선화의 학명은 Narcissus.

  도도한 자기애(自己愛)로 인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나르키소스의 운명은 외로움과 조금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에서 사용하는 나르시즘의 어원이 되기도 한 이 신화 속의 주인공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에코를 외면한 죄로 네메시스의 저주를 받았다고 하지만 결국 나르키소스는 단 한 번도 진정한 사랑에 빠져 보지 못했다. 신화의 내용에 따르면 자신을 사랑하는 일은 불행의 시작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나르시즘은 자신감의 상징이며 경쟁력의 출발이 되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채 타인을 사랑하게 되면 맹목과 집착이 되고 그가 없으면 자신의 존재는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만 키우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존재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나르키소스는 과연 누구일까? 쉽게 말할 수 없을 수도 있고 너무 많아 헤아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언론인이자 언론학자 안병찬과 그의 아들 안이영노는 그들을 찾아 나섰고 그들을 만났으며 만나고 돌아와 대화를 나눴다. 그 결과물이 <나에게 반하다>라는 책으로 태어났다.

  이 책은 형식과 내용면에서 몇 가지 특별함을 갖고 있다. 안이영노가 세운 문화기획자들의 모임 ‘기분좋은 QX'에서 기획하고 80세 청년 안병찬의 인터뷰로 진행된 프로젝트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아들 안이영노와 후일담을 나누며 인물들을 다시 분석한다. 그 과정과 책이 나오는 과정이 하나의 놀이처럼 유쾌해 보인다. 힘겹고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인터뷰를 준비하는 저자와 그들을 묶어내는 일들이 즐거움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색다른 작업이 가능한 것은 안병찬의 에너지와 열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나이를 무색케 하는 그의 추동력은 삶에 대한 열정과 나르시즘 때문은 아닐까?

  아들의 취재 명령에 아버지가 현장을 뛰는 형식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책 제목처럼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책에 소개된 열 두 명의 나르키소스는 다양하다. 스물 여섯 살의 아가씨 이꽃별, 지천명의 나이가 넘어서 예술가의 길에 전부를 건 씨킴, 세상을 누비는 1인 프로덕션 김진혁, 언제나 화제의 중심에 섰던 백지연, 가수협회 회원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정두언, 우리를 즐겁게 했던 야동 순재 등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가진 끼와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종횡무진 시대를 질주하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인터뷰어에게는 더없이 행복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치밀한 준비와 꼼꼼한 분석이 뒷받침되어 인터뷰를 했겠지만 다만 아쉬운 것은 분량의 소략함이다. 지나치게 요약하고 대강의 인상만을 적었으니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분량과 형식의 제약이 선행되는 신문매체의 특성을 잘 알지만 책으로 묶어낼 때는 후일담이나 보다 풍부한 내용을 담아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열 두 명의 초상에서 나르키소스를 읽어내고 그것을 세상과 예술 혹은 타인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모습들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든 아니든 그들의 인생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마지막 주자로 나선 안병찬이다. 스스로를 나르키소스 열 두 명 중 한 명으로 포함시킨 것은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책의 주제를 강변하고 있다.

  사람을 읽어내는 것은 세상의 어떤 텍스트보다 소중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 한 권이 지니는 소중함이나 책 자체의 의미보다 나는 이 책을 만들어 낸 과정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색다른 열정과 실험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 모두 나르키소스가 되어 미칠 듯이 자신을 사랑하고 여세를 몰아 자신의 삶은 물론 세상을 살아나갈 힘을 얻어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080911-1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있다면? 없다면! 생각이 자라는 나무 12
꿈꾸는과학.정재승 지음, 정훈이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고 꿈은 현실이 된다는 말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실천적 동력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행기보다 ‘이카루스의 날개’가 먼저였고, 잠수함보다 ‘해저 2만리’가 먼저 쓰였다. 상상은 창조의 원동력이고 행동으로 옮겨졌을 때 큰 힘을 발휘된다는 사실은 우리는 과학을 통해 확인해 왔다. 예술적 상상력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력과 결합될 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 상상력은 미래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몽사이(夢-sci)'라는 이름으로 ‘꿈꾸는 과학’을 실천하는 모임이 그간의 결과물을 책으로 묶었다. <과학콘서트>를 시작으로 과학의 대중화에 열중하고 있는 정재승이 이끄는 미래의 창조적 과학그룹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팀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상상하는 모든 것은 과학적 토론을 통해 이론적으로 점검된다. 얼마나 행복한 상상들인가? 놀이와 상상력은 과학의 무한한 자양분을 제공한다. 딱딱하고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기본적인 원리와 합리적 사고를 통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러한 이유를 찾아간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가능한 상상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말도 안되는 상상,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유쾌하고 웃음 가득한 여행이다. 하늘에서 주스비가 내린다면? <찰리와 초콜릿 공장>처럼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상상했던 이야기이다. 눈이 아니라 빵이나 떡가루가 내리고 비대신 하늘에서 주스가 쏟아지면 어떨까? 과학적으로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확인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점검한다. 현재 과학수준에서 어떤 원리로 그것이 가능한지 점검하는 과정은 토론이 아니라 상상의 향연이다.

  꿈을 캠코더로 찍을 있고, 개가 입에서 불을 뿜는다는 생각은 기가 막히다. 사람에게 뿔이 나고 입이 배꼽 옆에 붙어 있다면 어떨까. 혀가 두배로 길어지고 손가락이 없어진다면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까. 방귀에 색깔이 있고 아기가 나무에서 열리는 상상은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배낭로켓을 타고 날아다니고, 태양이 두 개인 세상이지만 밤에는 가로등이 없다. 기발하고 엉뚱하고 희한하며 놀라운 상상력은 롤러코스트처럼 정신이 없다.

  마치 만화책을 보듯 황당하지만 도대체 우리가 할 수 없는 상상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듯 하다. 젊은 과학도들과 이런 놀이를 즐기고 있는 저자가 부럽기만 하다. 이 사람들이 어디 할 일이 없고 시간이 남아돌겠는가? 도대체 흥분되고 재밌는 일이 아니라면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가득해야 할까라고 묻는 것 같은 이들의 상상력은 분명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되리라 믿는다.

  아무리 불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생각도 끝없는 도전과 열망으로 현실이 된다. 우리는 그 과정을 과학의 발전이라 불렀고 창조적 상상력이라 명명했다. 이 책은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영어 단어 하나 수학 공식 하나를 외우고 1점을 위해 목숨 거는 공부가 아니라 영혼을 다해 즐기고 행복해지는 공부가 가능한 방법은 이런 방법으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작지만 위대한 실천과 노력의 결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먼 훗날 우리의 미래에 조금씩 나타날 것이라 믿는다. 이공계 대학생들의 상상 프로젝트는 지속되어야 한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상상력은 인간을 위한 이기적 욕망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들로 가득할 것이라는 희망이라고 믿고 싶다.

  글쓰기 공동체로 독서와 토론을 통해 일궈낸 결과물들이라는 데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든 공부의 마지막은 글쓰기이다. 과학을 대중화시켜 인간의 오만함을 자랑하고 과학이 지배하는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자연의 경이로움과 이를 밝혀내는 과학의 즐거움을 세상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공동체의 목표라는 데 누가 반대할 것인가.

  보다 열심히 고민하고 토론하고 글쓰는 과정이 자연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인간을 위한 과학이 되길 바랄 뿐이다.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세계로 떠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모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확인한다. 과학이 아니라 다른 주제와 목적들로 실천하는 공동체도 생겨나고 책읽고 토론하며 함께 나누는 즐거움이 배가 되는 자생적 공부 모임들이 늘어가는 상상을 해본다.

  어떻게 사느냐는 결국 무엇을 위한 과정일 수도 있다. 결과가 목적이 아닐 수 있는 삶이라면 얼마나 즐거운가. 정재승과 ‘몽사이’의 행복한 상상여행이 현실이 될 때까지 흥미진진한 놀이를 지켜보고 싶다. 아니 나도 과학이 아닌 그 무엇으로라도 즐거운 공동체에 참여하고 싶다. 한 번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080909-10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8-09-09 2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1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 나의 마나님
다비드 아비께르 지음, 김윤진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정호승의 시 ‘결혼에 대하여’의 마지막 부분이다.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약속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택한 삶의 형태가 가장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직 다른 대안은 없는 듯하다. 인류의 결혼 형태는 모계사회의 일처다부제, 가부장적 일부다처제를 거쳐 일부일처제로 정착된 듯하다. 인류학자들은 향후 백년 동안 사라지게 될 사회 제도 중 첫 번째로 일부일처제를 꼽기도 한다지만 아직까지는 가장 보편적이고 유효한 사회의 기본 구성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결혼은 도대체 한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쉽게 말할 수 없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행복은 하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불행은 수천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행복이나 불행을 가르는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결혼 생활 안에서도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관계와 삶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위험한 도전이다. 그러니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화수분처럼 소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대저 남녀 간의 사랑과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기본으로 하지 않는 소설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프랑스의 다비드 아비께르는 <오, 나의 마나님>을 통해 결혼한 남자로 살아가는 21세기형 남성 종족에 대해 말하고 있다. 원제 ‘인간 박물관’을 ‘남자 박물관’으로 오역한 것에 대한 번역자의 말에서도 공감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단순히 결혼한 남자의 푸념과 일상이 아니라 혼인 관계를 통해 남자 혹은 인간이 걸어온 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보여준다. 이 책은 소설도 에쎄이도 그렇다고 일기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이 뒤섞여있는 책이다. 모호한 장르적 특성을 가진 프랑스적 글쓰기의 새로운 변형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미있다.

  재미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이 책은 시종일관 웃음을 유발한다. 그것은 상황에 대한 희화화 때문에 발생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들을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다. 탁월한 비유와 과장된 표현들이 프랑스 문화와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도 재미있다. 옮긴이가 부지런히 주석을 달고 있지만 문맥상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가도 무방한 정도이다. 유머는 진지한 성찰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무겁고 결론없는 인류학적 고민들을 가볍고 즐겁게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기도 한다.

  철저하게 남성이라는 종족의 입장에서 결혼에 대한 입장과 상황 그리고 가족에 대한 생각들을 가감없이 표현한다. 직설적이고 적나라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하고 여성의 입장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간파하고 있지만 때로는 의뭉스럽게 외면하고 때로는 슬쩍 넘겨짚기도 한다. 작가 특유의 경쾌하고 가벼운 문장들은 유쾌한 웃음과 느슨한 틈새를 만들어 준다.

  ‘태초에 유아용 콧물흡입기가 있었다’에서 출발해서 ‘인간박물과’으로 끝나는 이 책은 인류의 진화과정을 남성과 결혼이라는 측면에서 종횡무진 경쾌한 발걸음으로 누비고 있다. 형식에 구애받지도 않고 특별한 목적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사적인 경험을 일반화시키는 능력이 뛰어나서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흘려버릴 수만은 없다.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야하는 문제가 결혼이지만 이 책은 최소한 문명이 발달한 지구의 몇몇 종족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결혼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천양지차이다. 남녀간의 역할 분배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가정 내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비중 그리고 가사 노동의 분배 문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문화적 토양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고 프랑스의 그것이 모든 나라에 적용될 수는 없기 때문에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성의 지위 향상과 더불어 남성의 역할 축소 그리고 이 책의 주인공이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듯이 인류의 진화 과정이 원숭이에서 남성으로 그리고 여성으로 바뀌고 있다는 인식에 동의해도 좋을 듯하다. 극단적으로 남성이 없는 사회를 그려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물론 이 책에서 기술적인 문제나 미래 사회의 현상들에 대한 심각한 논의를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남성의 입장에서도 비명을 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그 비명이 정도에 따라서는 심각해 질 수 있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여성들의 입장에서 이 책은 어떻게 읽힐 것인가? 흥미로운 부분이다. 수많은 항변과 논란이 있을 수 있겠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사태를 제공한다.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의 차이와 행동의 차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 저자는 이 위험을 무릅쓰고 결혼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겁도 없이 자신의 아내를 팔아 책을 썼다. 무사한지 그의 건강이 궁금하다.

  결혼한 세상의 모든 남편과 아내, 결혼할 세상의 모든 남녀 모두 피해갈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 ‘남편’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다면 심심찮은 책으로 충분히 권할 만하다. 큭큭거리며 읽고 유쾌하게 웃음 지을 수 있으며 타인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것이다. 3부작 중 하나라고 하니 몇 번 더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080907-10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