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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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 대상이면서도 이 땅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도 없고 규정되지도 않는 존재가 엄마다. 어머니와는 또 다른 느낌인 이 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고 진화의 과정에서 생물학적 관계로 설명되어질 수도 있는 존재가 엄마일 것이다. 눈에 보이고 살아있는 존재지만 정서적으로만 감당할 수 있는 말이 엄마다.

  아주 오랜만에 신경숙의 소설을 읽었다. 잊고 있던 친구의 편지를 받은 것처럼 반갑고 쑥쓰러웠다. <엄마를 부탁해>. ‘고양이를 부탁해’도 아니고 엄마를 부탁한다니. 

  첫 페이지부터 심상치 않더니 이 소설은 이제 많은 사람들의 숨겨 둔 눈물 보따리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것 같다. 세상에 엄마가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눈물나는’ 엄마가 숨겨져 있다. 돈이 많고 적음 때문도 아니고 직업 유무 때문도 아니다. 자식에게 엄마는 그저 엄마일 뿐이다. 전 존재의 완전한 합일로만 이해할 수 있는 엄마의 모습들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떠 올릴 것이다. 

  나도 이 책을 읽는 내내 ‘엄마’를 생각했다. 몇 번이나 눈물이 나려고 해서 곤란했다. 눈물을 흘릴 상황이 아니었고 애써 참으려니 견딜만했다. 감정이입이나 동일시된 감정들을 건드리고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요소들을 담아낸 작가의 선택과 집중은 탁월하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다시 읽게 할 수 있고 가슴 뭉클하게 만들 수 있는 따뜻한 소설 한 권을 만났다. 마지막 페이지가 다가올수록  아까운 책을 만난 기쁨이 적지 않았다. 

  아마 농촌에서 부모님이 생활하시고 도시에서 생활하는 자식들이 오가는 형태의 가족도 머지않아 없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농업 문제가 다른 형태로 해결되지 않으면 농촌의 생활 모습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시골에 사시는 엄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될 지도 모르겠다. 

  가슴에 묻어둔 엄마의 이야기를 이렇게 절절하게 풀어낼 줄 아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기만 하다. 잃어버린 엄마의 이야기는 폐부를 찌르고, 간결하고 쉬운 문장들은 가슴을 적신다. 촉촉한 가을비를 바라보며 읽다가는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야할 지 모르니 조심해야겠다.
개인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이 가을에 엄마를 생각해 보는 일이 새삼스럽지만 아주 소중한 일이 될 것이다. 

  장편 소설의 중심축은 서울역에 내린 엄마의 실종으로 시작된다. 아버지와 서울역에 내려 지하철을 못탔고 아버지가 두 정거장을 지나 다시 서울역에 돌아왔으나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소설을 쓰는 나레이터가 직접 나선다. 신경숙은 스스로 화자가 되어 엄마의 이야기에 몰입했을 것이다. 소설가인 큰 딸은 ‘너’라는 2인칭으로 소설을 시작한다. 다소 낯선 형식이지만 화자를 객관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나친 감상과 주관적 서술에 치우칠 수 있는 내용을 경계한 탓일 것이다. 

  오빠 형철이와 아버지도 화자로 나서 어머니와 아내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이 소설이 장편이면서도 지루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잃어버린 엄마에 대한 다소 일반적인 단순한 사건을 이끌어 나가는 힘은 시점의 이동에서 보여주는 놀라운 섬세함이다. 각자의 입장에서 엄마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또 남편의 입장에서 그것들을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소소한 일상들을 배경으로 이 땅의 모든 어머니를 교묘하게 조합해 놓은 주인공 ‘엄마’는 우리 민족의 엄마로 거듭난다. 

  엄마는 자식들이 부르는 엄마다.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실존적 존재, 여자로 볼 수 없는 가족 관계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엄마다. 그 엄마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은 낯선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다. 기대고 의지하고 물과 공기처럼 늘 그 자리에 있어 준 사람의 이름을 우리는 엄마라고 부른다. 그래서 엄마가 없는 사람은 그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는 빈 자리를 안고 살아가며 엄마의 부재는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소설은 엄마를 찾아 나선 자식들의 기억과 반성과 회한으로 메워진다. 일반화 시켜 내어 놓은 상황들 속에 독자들은 몰입할 것이고 내면의 풍경들이 을씨년스럽게 펼쳐지는 소설의 공간에는 눈물이 배어든다. 엄마의 한 생애를 돌아보는 일은 모든 자식들에게 슬픔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들이 모여 읽는 사람을 먹먹하게 하는 것이다. 영원히 가장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될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소설이다. 

  소설 말미에 새가 된 어머니의 시선이나 소설가인 큰 딸이 장미묵주를 사는 장면들이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작위적으로 느껴져 거북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혹은 철저하게 자식들의 입장과 남편의 시선으로만 엄마와 아내의 부재에 대해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부자연스럽거나 어색하지는 않지만 긴장감이 결여된 듯 하고 성모마리아의 등장으로 종교적 색채가 덧씌워져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결말이 못내 아쉽다. 물론 개인적이 취향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의 재미와 의미가 퇴색한다고 볼 수는 없다. 

  간만에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장편 하나를 만났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인간의 이성의 아니라 잠자고 있는 감성의 바다에 돌을 던지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삭막한 도시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농촌에 계신 어머니가 그리울 때가 있는 사람,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가끔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은 조심해서 읽어야 할 소설이다. 언제 어디서 눈물을 보이게 될지 모른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일평생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 P.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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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길들이기 - 로마 몰락에서 유럽 통합까지 다시 쓰는 민족주의의 역사
장문석 지음 / 지식의풍경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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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지 않은 지 10년 쯤 됐다. 공식 행사에서도 가슴에 손을 올리지 않고 그냥 서 있다. 입으로 맹세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단순한 치기와 저항이 아니다. 민족은 무엇이며 내개 조국은 무엇인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고 지금도 그러하다. 맹목적인 충성과 복종의 강요는 군대에서부터 아니 생내적으로 심한 구토를 유발한다. 모든 억압과 굴종으로부터 개인은 자유로워야 한다. 보이지 않는 지배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의 음모는 계속된다. 그것은 기득권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체제와 현상을 미화하고 내면화시키려는 시도가 지속된다. 그러나 그 마지막 향수와 추억은 과거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억압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 한 ‘민족주의’라는 쓰레기는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역사의 교훈과 시행착오 속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광기와 폭력이었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근대와 탈근대적 민족주의와 파시즘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채 여전히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의 문제는 단순히 볼 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한 것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개인이 속한 계급적 이익과 사회적 상황 속에서 자리한 위치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철학의 부재와 얄팍한 지식은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고 넓고 깊은 통찰의 부족으로 나타난다.

  민족주의가 정리되었다. 쉽게 말문이 트이지 않겠지만 이 한 권의 책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객관적 시각과 안목이 생겼다. 특별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하는 책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밝혀야겠다. 미셸 푸코는 <광기의 역사>, <성의 역사 1~3>, <감시와 처벌> 등을 통해 역사철학적 방법으로 현대 사회의 현상들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었다. 인류가 밟아온 지난한 과거를 통해 하나의 현상을 고찰하는 일은 가자 알기 쉬운 방법이면서 가장 힘들고 고단한 작업이다.

  장문석은 <민족주의 길들이기>에서 ‘민족주의’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더듬고 있다. 부제에서 밝히고 있듯이 로마 몰락에서 유럽 통합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의 역사를 꼼꼼하게 더듬고 있다. 민족주의에 관한 책을 원할 때 필독서로 권장할 만하다. 저자의 수고와 내공이 녹아 있는 책으로 칭찬 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아니 내가 상식 수준에서 알고 있던 민족주의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정점을 이루었고 근대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산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었다. 물론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통해 얻은 지식과 어줍잖은 사유의 결과물들이기도 하지만. 그 실체가 불분명한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가 우리에게 어떻게 형성되어왔고 최근까지 분쟁 지역에서 어떤 힘과 영향을 발휘했는지 살펴보는 일은 차라리 고통스럽다.

  털없는 원숭이들의 미신과도 같은 민족에 대한 신념은 우습고 안타깝기까지 하다. nation의 번역어이다. 어휘와 개념에 대한 설명들이 곁들어졌지만 국가 보다는 민족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 기원에 걸맞는 듯하다. 이 책에서 민족은 서구의 차가운 민족주의와 동양의 뜨거운 민족주의로 나뉜다. 여기서 차갑다는 말은 정치 공동체에 기반한 민족을 의미하고 뜨겁다는 말은 종족적 기준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이것은 데모스(민주주의)와 에트노스(종족)의 차이이기도하다. 물론 서양 안에서도 영국과 프랑스는 데모스적 성향이 강하고 독일과 이탈리아는 에트노스에 가깝다고 분류한다. 하지만 이 냉정과 열정의 차이는 이분법적으로 적용될 수 없으며 다양하고 복잡한 정치, 역사적 상황 맥락 안에서 뒤집히고 흔들리며 접점을 찾아가는 고단한 시간을 거쳐왔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에 대한 충실한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전체 6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9세기 초 본격적인 민족주의가 등장했던 독일과 이탈리아를 중심에 두고 있다. 1장은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과 연구사를 정리하고 있어 다소 딱딱하지만 주의깊게 읽어두면 나머지 장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2, 3장은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이전 유럽의 역사에서 종족과 민족을 다루고 있다. 중세유럽과 영국과 프랑스가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5장과 6장은 민족주의 이후 남동 유럽과 파시즘의 등장 그리고 공동체로 거듭나는 유럽연합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유럽의 역사가 전제되어 객관적인 사실을 정교하게 다듬고 그것을 해석하여 하나의 흐름을 이끌어내는 솜씨는 전적으로 저자에게 달려있다. 지루하지 않고 쉽고 재미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흑백이나마 그림이 삽입되어 있고 영화 이야기도 간간히 등장한다. 저자의 땀방울이 곳곳에 배어 있는 책을 넘기는 독자는 행복하다. 이 책은 오래 두고 참고할 만하고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에필로그로 쓴 ‘반쪼가리 자작의 우화’가 인상적이다. 민족은 어쩌면 선과 악의 봉합되지 않는 몸뚱아리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불편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저자의 말대로 종족이 민족으로 리모델링 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고 싶어졌다. 인류의 역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회는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역사를 만들어간다. 민족주의도 과거를 통해 미래를 조금은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유럽 통합을 넘어 새롭게 번져 나가는 제국주의의 망령과 파시즘의 부활 조짐은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는 심상치 않는 기운이다. 꺼진불도 다시 봐야 한다!

  “민족주의는 개인이 최고의 충성을 마땅히 민족에 바쳐야 한다고 믿는 신조이다.”(P. 25)라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민족들의 공존과 공영을 위한 문화적 노력 외에도 국가 구조를 민주화하는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다. 좀 더 많은 대표성과 민주주의야말로 민족주의를 길들이는 가장 유력한 방식일 것이다. 역설은 그런 대표성과 민주주의를 증진시킨 것이 민족주의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P. 344)는 말로 끝나는 이 책은 뱀이 꼬리를 물고 있는 것처럼 순환고리를 형성하는 듯하다. 제목처럼 민족주의를 길들이는 일은 뱀이 제 꼬리를 물고 제자리를 도는 일과 같지는 않겠지만 억압과 폭력이 아니라 대표성과 민주주의의 결합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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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없는 원숭이 - 동물학적 인간론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예춘추(네모북)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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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옷 입는 원숭이들은 오늘도 안녕하신가? 인간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말로 들리는 이 인사가 흑인들의 “What's up?"처럼 지구 인류 문명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들릴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은 지나친 비관주의일까?

  어떤 어려움과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생존해 왔으며 진화하고 있다는 믿음은 굳건하다. 교에 기대든 과학기술에 의존하든 이 믿음은 영원히 유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잠시 빌려 쓰는 행성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종족이 멸종하지 않고 지속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193종의 원숭이와 유인원 가운데 유일하게 털이 없는 원숭이인 인간에 대한 본질은 무엇일까?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고 전제한다면 데즈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는 인간에 대한 주관적 해석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물학이라는 학문적 관점에서 인간을 하나의 동물로 간주하고 관찰하자면 문명사에서 위치를 지워버려야 한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관점을 가지고서는 이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다.

  결국, 언어를 사용하며 정교한 손을 사용할 줄 알며 이성이 발달했다는 몇 가지 특성을 제외하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털없는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평가는 정확해 보인다. 1967년에 출판될 당시의 논란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 자체가 인간에 대한 모독이며 신성 모독이라는 평가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 같은 한 동물학자의 도발적 발언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본질이다.

  21세기에 <털없는 원숭이>를 털없는 원숭이는 숭고함을 느낀다. 아무리 미사여구와 화려한 수사로 포장해도 인간은 한 마리 원숭이에 불과하다. 본능에 내재한 숨겨진 동물적 속성들은 당연한 것이면서도 충격적인 사실들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는 숲에서 도대체 몇 발짝이나 벗어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외계인이 존재한다면 인간에 대한 필독서 1위에 오를 만하다. 지금까지 인간의 영혼 혹은 지적 영역에서 다루어진 우리들의 본질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동물학적 인간론은 너무나 적나라하고 솔직하며 기발하고 자극적이다. 독창적인 관점과 놀랄만한 호기심으로 인간을 관찰하고 있는 듯 한 이 책은 비범한 종인 인간의 모든 것을 해부한다.

  인간의 편견은 무섭다. 문화와 종교, 관습과 규범들에 의해 사회가 유지된다고 하지만 비판적 관점 없이 살다보면 털 있는 원숭이들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저자는 편견이라는 거인의 잠을 깨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시도하는 용기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놀랍기만 하다. 무자비한 진보를 외치며 친척 동물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심지어 같은 인간끼리도 이유 없이 학살하는 유일한 종에 대한 반성은 이 책 영역 밖의 일이지만 생각의 갈피는 끝없이 뻗어나간다.

  기원, 짝짓기, 기르기, 모험심, 싸움, 먹기, 몸손질,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 등 전체 8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권 <인간 동물원>과 3권 <친교 행동> 등 3부작으로 마무리 된 이 시리즈는 철저하게 인간을 동물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또 다른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그 내용과 관점은 인간에 대해 고찰한 어떤 책보다 그 한계를 뛰고 넘고 있다.

  지구의 역사를 12시간으로 본다면 인류의 역사는 11시 59분에 시작됐다는 비유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짧은 시간동안 그만큼 비약적으로 진화한 인간에 대한 고찰은 끊임없이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최근 진화생물학에 대한 관심으로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라는 걸출한 역서를 만난 적이 있지만 이 책을 놓쳤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현대 사회의 복잡한 관계와 긴장감 속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사람은 천천히 이 책의 책장을 넘겨보아야 할 것이다. 심리학에 대한 관심만큼 진화론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측면에 대한 호기심은 지속될 것이다. 보다 솔직하고 다양한 관점의 책들이 여럿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의 내용만큼 직접적이고 정확하지는 않을 것이다.

  명불허전名不虛傳.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정받은 책들은 헛된 이름만을 전하는 법이 없다. 수많은 책들 속에서 옥석을 가리고 탁월한 저서들을 골라내고 소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쉽지 않고 만만치 않지만 안목은 저절로 생기지 않고 읽는다고 모두 내것이 되지는 않는다. 왜, 어떻게, 무엇을 읽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본다.

  한 마리 털 없는 원숭이는 오늘도 스스로가 원숭이인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뭔가 머릿속에 집어넣기 위해 책장을 넘기고 있으며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그 허망한 생이 지속되고 있다. 시니컬한 비관주의로 인도하는 책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을 읽고 난 아주 사적인 상념일 뿐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주 좁은 관계들을 돌아보고 주변의 모든 인간들을 털 없는 원숭이의 관점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있다.

우리에게는 다행히도 어린 시절의 창의성과 호기심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이 많다. 이들이야말로 인류가 계속 진보하고 팽창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다. - P. 168

08110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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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창비시선 292
고은 지음 / 창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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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를 50년쯤 쓰면 어떤 기분이 들까? 연필을 들면 저절로 시가 써질 것만 같으다. 모든 언어가 조화를 부려 종이에 펜을 대는 순간 막힘없이 자유롭게 배열될 것만 같으다. 고은의 50주년 기념 시집을 읽으며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시를 쓴 사람에 대한 경의로움에 젖는다.

  시간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그리고 여백을 남길 것이다. 모든 관계와 모든 사물들을 무화無化시킨다. 신작 시집 제목은 그래서 <허공>일까?

빈 공간에 그려내는 절제된 언어의 진경은 예사롭지 않고 나이를 넘어 그의 전성기가 어디인지 독자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고은이 보여주는 시는 지금부터까 아닐까?

추억 하나

사랑이든
사랑의 밑창
미움이든
그것 뛰어넘어서

너 거기 허공에 대고
총을 쏘아보았어?

나는 열일곱살 때 용케 살아남아
미 육군 이탈사병 오웰의 M1소총으로
허공
거기 대고
세 발
네 발 연발로 쏘아보았어

허공은 적이 아니더군
그 총알들 어디로 갔을까
오 킬로미터쯤
육 킬로미터쯤 갔을까
가는 동안의 직선이 포물선으로 바뀌어
끝내
검불 하나도 건드릴 힘 없이 툭 떨어질 때
거기가 내 저승일까 어디였을까

아직도 나 이승의 은산철벽(銀山鐵壁) 여기 줄곧 처박혀 있어


땅끝

해남 땅 끝에 왔습니다
살아온 날들
잘못 살아온 날들도 함께 왔습니다

천근의 회한 내버리고
여기 술 먹은 밤 파도소리에 먼저 온 누구의 이승이 혼자 떠 있습니다


  추억은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사랑도 미움도. 시간 속에 녹슬어 버린 기억의 편린들을 더듬어보는 老詩人에겐 무엇이 보였을까? 경험한 것 이상은 쓸 수 없는 것이 작가의 한계라지만 사유의 진폭은 직접 경험을 뛰어 넘어 환상과 상상의 공간을 오가기도 하고 생각의 갈피들을 헤집고 다니기도 한다.

  고은의 시는 땅끝에서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다. 술 먹은 밤 파도소리를 들어 본 사람은 지난 날들과 회한에 대해 고개를 끄덕여 줄 것이다. 단정한 시들이 뿜어내는 조용한 목소리는 듣기 좋게 공명된다.

갈망

혼간 허울 바람에 날리는 영광들의 한 생애 얼룩졌다
번뇌들
맹신들
다 두고
여기 왔다

서해 저녁 밀물 앞에서 한동안 나는 올데갈데없다.


밤비 소리

천년 전 너는 너였고
천년 후 너는 나이리라 어김없으리라

이렇게 두 귀머거리로

너와 나
함께 귀 기울인다

밤비 소리


  자연에 몰입하는 노년의 일반적 경향으로는 볼 수 없다. 선시처럼 의미의 충돌과 비약이 없고 가볍거나 즉흥적이지 않다. 깊은 사색의 결과이며 언어 이전의 세계와 마주하는 느낌이다. 손에서 놓여난 모든 욕망들, 삶과 죽음들 속으로 천천히 산책하고 싶어진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의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아니어도 좋다. 가랑잎에 부대끼는 낮은 곳으로 흘러드는 모든 물소리, 소리들. 바다에 모이자는 약속들일지도 모르겠다. 한 편의 시는 끝없는 상상의 세계로 혹은 환상의 나라로 이끌어 주는 동화의 나라가 되기도 한다. 내게.

후배에게

국가는 섬세할 수 없단다 국가는 그냥 왈패란다
그럴수록 문학은 섬세해야 한단다
자네 문학이
행여나
떠밀리고 떠밀려
변방 읍내 호프집에 처박히게 될지라도
낙담 말게

더더욱 외따로 고개 저어 섬세하고 섬세할 노릇일세

장차 그 섬세함의 장관이라니


  고은의 작은 문학론은 그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국가가 왈패라면 문학은 섬세함이라는 단순한 언명이 깊이 울린다. 문학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고은이 보여준 이력들은 묵언으로 보여준다. 그가 노벨상 후보에 오르든 말든 중요한 것은 그의 시를 읽는 것이다. 세간에 관심은 노벨상이 아니라 그의 시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죽음’, ‘여생’, ‘무한’을 골랐다. 이쯤 되면 시인도 생의 황혼에 대해 죽음과 허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탐욕과 허욕으로부터 자유롭고 안과 밖이 구별되지 않는 두려움의 끝에 대해 가만가만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시인은 자유를 얻었을까?

죽음을 보며

오랜 두려움 끝
이제 두렵지않다
오전의 하늘에 없던 구름이 슬쩍 와 있다
구름 밑
산이 간다
산 밑
산그늘이 간다
그동안 내가 나에게 목숨 바쳤다

정말이지
죽음은 남이 아니다 아니구말구


여생

감히 고백하건대
저는 안이 아닙니다
밖입니다
저는 이 나라 안의 고아가 아닙니다
무한 밖의 미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무한

이 무한가능 하염없는 백지 없이는
저의 여생 하루도 한나절도 숨막혀 살 수 없습니다
탐욕이 아닙니다
허욕이 아닙니다
절절히 현실 뒤켠 아스라이 백척 낭떠러지입니다


  나는 자주, ‘하늘’을 바라보며 ‘자유’에 대해서 생각한다.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생기는 것인줄도 모른채 반편이처럼 자유에 대해 늘 고민한다. 자유는 어떤 상태나 상황이 아니라 완전한 무애無碍의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자유롭다는 의식조차 없어진 마음의 상태가 가능한지 모르지만 50년쯤 시를 쓰고 나면 혹여 그런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보았다. 고은의 詩와는 무관하게.


081028-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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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가 되는 삶들 - 모더니티와 그 추방자들 What's Up 4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 / 새물결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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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을 소비의 과정으로 보면 참 재미있다. 무엇인가 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그것을 버리고 또 사기 위해 땀나게 돈을 번다. 또 사서 버리고 또 사고 버리고……. 지구를 빌려 쓰는 인간에게 무한한 특권이 부여된 적이 없으나 오만한 인간은 오늘도 땅 속은 물론 바다 속까지 샅샅이 훑어내고 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살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먼 미래에 대한 전망들이 난무하지만 오늘의 소비 욕망을 절대로, 멈출 생각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익숙한 생활 패턴 속에서 문제점을 발견하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고 소비는 또 다른 소비를 부르고 욕망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어찌할 것인가? 지금 이대로의 삶은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 지구는 인간을 위해 영원히 무한한 화석 에너지를 공급하고 인간은 자연을 정복했으니 지배할 수 있을까?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되어야 한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전우익 선생이 살아 생전에 TV 인터뷰 하는 장면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통해 선생이 말씀 하셨던 이야기들을 우리는 얼마나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은 인간 종족의 사회생활에 대한 통렬한 자아비판서이다. 삶의 방향과 목적에 대한 수많은 질문과 대답 속에서 보다 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조망한다. 매우 우울하고 슬픈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가슴이 서늘하다. 어디쯤 가고 있는지 우리 삶의 조감도를 볼 수 없어 답답할 때 이 책은 유용한 안내서가 될 듯하다. 그 효용가치를 다 하고 쓸모없는 것을 우리는 쓰레기라고 부른다. 세상에 널려 있는 쓰레기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가 쓰레기라고 분류하는 것들 중에 정말로 쓰레기라고 할 수 없는 것은 없을까?

  현대성(modernity)에 기초한 철학적 성찰로부터 출발한 이 책은 인간의 삶을 조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서 언급한 일상생활의 쓰레기와 무관하다. 생산과 소비적 측면의 인간을 비난하거나 생태학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놀랍게도 인간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난민을 비롯한 최하층 계급에 속해 현대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쓰레기’로 비유하고 있다. 제목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들 이웃들의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 도심 재개발과 뉴타운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 난민수용소에서 철저하게 분리된 채 넘어설 수 없는 장벽 안에서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현대 사회 정보의 쓰레기부터 인간 쓰레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쓰레기’들에 관한 비참한 이야기가 낱낱이 고발된다. 우리는 쓰레기가 되는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지만 과연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한지 의심스럽다. 저자의 진단은 모더니티에서 추방된 사람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 그 과정을 파헤치고 있다. 질서 구축 과정이 만들어내 쓰레기, 경제 발전이 만들어낸 쓰레기, 지구화가 만들어낸 쓰레기로 대별하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데 결국 쓰레기가 하나의 문화가 되어버린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

  “What's up?" 시리즈의 하나인 이 책은 “별 일 없었지?”라는 미국 흑인 노예제도의 폭력성에 대한 비극적 증언에서 출발한다. 안부 인사라고 하기엔 공포스럽다. 이 말이 이제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고단한 삶의 형태를 아우르는 말이 되고 있다. 감시와 처벌 속에 몸부림 치고 있는 우리에게 법의 준수와 제도적 안정이라는 말로 준엄한 심판을 내리고 있는 현실적 모순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연대와 우정이라는 가치로 폭력적 제도의 정당성을 깨트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모른척 외면할 수는 없는 일들이 일상화되어가고 있다. 내 한 몸 아무 일 없기를 바라다가는 나를 포함한 모두가 “What's up?"이라고 아침 인사를 해야 할 날이 멀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린스펀이 20년간의 경제 정책의 실수들을 고백하고 있지만 그 책임과 결과를 개인에게 돌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더더욱 암울하기만 하다.

  긍정적인 시선과 내일의 희망을 삶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는 원론적인 사탕발림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움직임들이 드러나야 한다. 실천적 지식인과 행동하는 대중들이 연대하지 않는 한 견고한 현실의 벽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점진적 변화든 급진적 개혁이든 목표와 방향을 잃고 헤매는 우리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가공할 만한 두려움으로 미래 사회가 진행될 것이라는 경고와 진단은 언제나 있어왔다. 비판적 관점과 문제점을 드러내는 방식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내어 놓으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많다.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어도 원인을 모르고 참담한 결과를 확인하고서야 다시 시작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한 사람의 견해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What's up?"이라는 인사말이 사라진 세상을 꿈꾸어야 한다. 이 책에서 인용한 폴 발레리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스스로의 생각을 다른 이의 표현을 따라 이해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는 힘부터 길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08102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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