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론 살림지식총서 246
이종오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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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는 저자와의 대화다. 글을 읽으면 그 글을 쓴 사람의 영혼을 이해하게 된다. 말보다 글이 더 깊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진다. 사용된 낱말과 문장의 구조 그리고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글을 이해한다는 것은 글을 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글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글을 쓰지 않아서도 안 된다. 가장 솔직한 영혼의 고백이고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행위가 글쓰기다. 독자는 글을 쓴 사람과 말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한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다른 부분을 확인하며 때로는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속 깊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눠도 미진한 부분들까지 들춰내는 글을 만나면 부끄러워진다. 마음의 갈피들을 집어 낸 문장들을 읽다가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이런 문학적인 글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하고 드러낸 내용보다 그것을 말하는 방식이나 문장의 구조, 사용된 어휘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고 사유의 방식을 설명하는 책들도 마찬가지다. 행간을 건너뛰는 의미가 없다면 책은 컴퓨터를 비롯한 다른 매체에 비해 비효율적이고 가장 지루한 도구가 될 것이다. 하나의 어휘, 하나의 문장이 이루어내는 의미를 포착하고 단락의 의도를 확인하고 글 전체의 내용을 유추하는 과정은 능동적이고 지속적인 사고 활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저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가 답을 구해야 한다. 수동적으로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독자는 같은 책을 통해서도 가져가는 것이 별로 없을 수 있다.

  동일한 내용을 다르게 표현하는 방식이 문체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흔히 문체라고 하면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는 글의 형식을 말한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문체라는 것이 쉽게 정의되지도 않거니와 쉽게 파악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물론 문체 자체에 관심이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이종오의 <문체론>은 의미가 없는 책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에서부터 출발한 문체론이 갑자기 궁금해진 것은 아니고 그것을 파악하는 방식이 궁금했다. 이 책에서는 세 가지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독자들이 쉽게 적용하거나 누구의 문체가 어떠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문장이나 글을 독해하고 분석하는 방법론으로 활용할 수는 있겠으나 실용적인 분야는 아니다. 학문적인 접근으로 이해하고 대강의 의미를 파악하는 정도로 충분한 내용이다.

  이 책을 통해 글을 쓰는 사람의 스타일이나 글의 형식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체론에서 주로 다루는 것이 무엇인지, 그 대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글을 다르게 보일 수 있겠다. 이론적인 접근이 다소 딱딱하긴 하지만 호기심을 채우는 정도의 관심이라면 충분하다.

  문체론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수사학에서 문체론까지의 간략하게 설명한다. 본격적으로 바이이의 ‘표현 문체론’, 스피제의 ‘관념 문체론’, 리파테르의 ‘구조 문체론’에 대해 살펴본다. 기준과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문체론의 기능과 종류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누구의 무슨 이론이든 목적과 방법에 따라 형식적 특성과 기능을 살피면 그만이다. 이론적 고찰과 규명은 글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겠는가.

  타인의 글을 살필 때 그가 사용하는 어휘의 빈도수나 저자의 영혼과 직관을 통해 그 글을 전체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독자들은 내용에 바탕을 두겠으나 감각적으로 저자의 스타일을 받아들인다. 그것은 고스란히 작가나 저자의 개성이며 그것을 문체라고 이해한다면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어떤 문체적 특징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문체론은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틀을 제공하기 이전에 글을 쓰는데 있어 하나의 가능성과 방향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쓰여진 텍스트에 대한 분석과 접근일 수밖에 없는 분야지만 그것을 통해 보다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글의 형식적 틀을 제시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마간산으로 읽어 내려가면서 지나치게 약술해 놓은 책이기 때문에 그 이상을 생각하면 오히려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기회가 되면 좀 더 깊이 고찰해 볼 내용이다. 여하튼 글을 쓰는 저자의 영혼의 반영이라는 ‘관념 문체론’에 가장 공감했다. 직관과 통찰은 객관적 사실보다 우선할 때가 많다는 편견이 내 안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나를 표현하는 것은 외모나 목소리가 아니라 내가 사용하는 문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체는 존재를 드러내는 정체성의 다른 이름일까?


081118-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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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권력전쟁 - 사이버 세계를 조종하는
잭 골드스미스 외 지음, 송연석 옮김 / NEWRUN(뉴런)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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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기술은 누구나 금방 손쉽게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정치적 국경을 사실상 지워버릴 것이며, 자유무역을 보편화시킬 것이다. 기술 발전 덕분에 이제는 더 이상 외국인이란 없으며, 우리는 점차 공동의 언어를 채택해나가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19세기 후반 전보가 발명되었을 때 나온 말이다. 그로부터 100년쯤 후에 우리는 인터넷을 만난다. 1990년대 중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첫 출근부를 인터넷에 찍어야했던 문화적 충격은 아득한 옛 추억이 되어버렸다. 넷스케이프 2.0의 아이콘은 등대였다. 캄캄한 정보의 바다를 비추는 등대는 상징적이었다. 10여년 만에 인터넷 세상은 상전벽해를 이루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인터넷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는 일은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어느 것의 역사든 과거는 늘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튼튼한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권력 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버 세계를 조정하는 권력에 대한 역사를 정리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인터넷은 미국의 국방부에서 탄생한 네트워크 시스템이다. 이것이 발전되면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살펴본다. 도메인 네임과 프로토콜 그리고 루트 서버에 관한 이야기는 마치 공상 과학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현실 세계의 강력한 실력자가 있고 그들에 의해 사이버 세계가 조금씩 확장되었다는 사실은 세상을 창조한 후 무한히 팽창되어 나가는 또 하나의 우주와 유사하다.

  이 무질서한 세상에는 항상 실제 권력과 자본들의 쟁탈이 치열했다. 현실 세계와 사이버 세계의 충돌은 인간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만큼이나 복잡하고 다양하며 흥미롭다. 각국의 법률과 문화는 국경 없는 인터넷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현실적으로 발생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았다.

  프랑스 법정에 선 야후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현실적인 국경과 영토로부터 해방을 시도하고 인터넷 혁명을 꿈꾸지만 결국 현실에 의해 지배되는 인터넷의 모습을 보여준다. 창조주 존 포스텔의 루트 권한 달환 시도는 싱겁게 끝나버린다. 결국 미국 정부 소유가 되어버린 인터넷은 국경 없는 아나키즘이 실현된 민주적인 유토피아가 아니다. 검은 그림자와 숨은 권력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더구나 사이버 공간의 자유와 질서는 보이지 않는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실적인 공간 개념과 지리적 구분은 인터넷에서도 통용된다. 서로 다른 문화와 법률이 충돌을 일으키면 분쟁이 생기고 각국의 제도와 법률에 따라 통제된다. 가장 극명한 예로 중국을 보여준다. 외부로부터 차단된 네트워크를 어떻게 운용하는지 알게 되었고 특히 자유주의를 표방했던 야후가 중국 정부의 통제 시스템의 하수인 역할을 하게 되는 과정은 우울해 보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돈과 권력의 힘은 현실을 너머 이미 사이버 공간을 장악한 지 오래라는 이야기다.

  결국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민족주의와 인터넷의 결합은 교묘하게 결합되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다. 적절한 통제와 눈부신 발전 속도는 중국 인터넷의 아이러니다. 재미를 너머 우려와 슬픔을 자아낸다. 소위 ‘통신비밀보호법’이라는 미명 아래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중국의 그것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통제와 관리는 자유롭과 자율적인 인터넷의 특성과 상극이다. 그 한계와 자정능력에 대해 모르는 바 아니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서는 안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미국판 소리바다 냅스터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파일 공유 운동의 시작과 결말은 음반업계의 막강한 로비와 자금력, 미국적 풍토, 저작권 등과 어우러져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객관적인 사실들만을 나열하지는 않았으나 비교적 많은 정보과 고민거리를 얻었다.

  이 문제도 결국은 정부의 규제와 법률을 통한 정리가 필요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므로 당연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인터넷의 영향력과 발전 속도는 단순하게 현실 생활과의 관계만으로 풀어낼 수 없는 대단히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이 상존한다. 생각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진화하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지속적이고 꾸준한 연구와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역으로 정부의 통제를 이용하여 성공한 이베이ebay를 저자는 승자라고 칭하고 있다. 무정부 상태와 독재 사이에서 늘 고민하는 것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전자상거래를 하는 사람들의 딜레마라면 결론은 쉽지 않다. 그 다양성을 토대로 각기 다른 룰을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여전히 국경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역외 적용성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이 간다. 세계법의 필요성과 한계를 통해 앞으로 정부의 통제와 세계화의 충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는 우리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한다.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 바로 고도로 발달된 인터넷 강국, 통신 인프라가 거의 완벽하게 갖춰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문제 특히 국가 간 분쟁의 소지가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인터넷의 권력 전쟁은 현실 세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치열하고 살벌하기까지 하다. 결국 인터넷은 또 하나의 세상을 꿈꾸었지만 현실의 연장선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여전히 인터넷은 혁명을 꿈꿀 수 있는 공간이고 보다 자유롭고 변화 가능성이 풍부한 가상 현실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그 꿈은 어떻게 전개 될 지 알 수 없으며, 변화의 진폭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08111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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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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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라. 네가 살아 있다면 그 무엇이든 사랑을 하라.” …… “서로의 심장을 꺼내놓고 싸우고 나면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될 테니까. 역사책이란 그런 사람들의 심장에서 뿜어난 피로 쓴 책이야.” - P. 25

  불가해한 인생을 소설로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 그 허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현실이며 매트릭스이고 심리적 실재인지도 모른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허구를 만나는 일은 그래서 불편하다. 현실을 허구로 만들고 공허한 이야기가 오히려 세계와 유사하다. 특히 역사적 사실은 또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 시간의 씨줄과 공간의 날줄이 만나 사실적 세계를 만든다. 역사와 소설이 만나면 완벽한 상상적 허구의 세계가 되거나 보이지 않는 진실의 세계를 더듬어보거나 당대에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소설이 읽을 만한 것이 되려면 단순하게 두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재미있거나 진실을 건드리거나. 두 가지가 결합된 책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부른다. 한 권의 소설을 통해 인생을 통찰하고 역사를 이해하며 삶의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독자들은 더없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개인적 취향이나 입맛에 따라 기호가 나뉘기도 하고 그 재미라는 것도 사실 기준과 성격이 모호하기는 하다. 어쨌든 ‘진실’에 관한 문제가 훨씬 복잡하다. 그것이 개인의 진실이든 역사적 진실이든 말이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바에야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김연수의 소설은 감수성의 표현이 탁월하고 문장이 생생하다. 구석구석 감정의 말초를 건드리고 사실을 드러내는 방법이 정확하고 세심하다. 특히 사적인 영역의 감정이나 상황에 부딪힌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나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필요한 미덕이겠으나 김연수의 그것은 잘 벼려진 칼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벤다. 그래서 서늘하고 시린 느낌이다. 나는 그 발랄함과 경쾌함 혹은 어눌하고 찌질한 감상의 편린들이 마음에 든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작년에 나온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확연하게 다른 이 소설이 1년 만에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가 후기에서 사정을 알게 되었지만 고민과 고통이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것은 읽는 동안 짐작할 수 있었다. 1930년 만주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물지 않은 근대사의 상처를 기억하자는 것이다. 민생단이라고 하는 생경한 이야기를 들춰내는 것은 역사가의 몫으로만 돌리기에 감춰진 아픔이 너무 크다. 아직도 진행형인 분단의 역사와 좌우 이념 갈등은 우리에게 해결되지 않은 숙제다. 어떤 소설가든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적어도 한반도의 문제를 인식한 작가라면.

  그 문제는 분단이나 식민 통치 혹은 한국전쟁이나 4.19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고 애정이다. 과거는 단순히 현재의 기억에 불과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작가에게 짐을 지워 주려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읽고 싶은 혹은 읽어야할 소설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런 종류의 소설들이 반드시 쓰여져야 한다고 믿는다.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들의, 아니 나의 지금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어제가 없는 오늘은 없다.

  1932년 9월 용정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1933년 4월 팔가자를 거쳐 7월 어랑촌 그리고 41년 8월 다시 용정에서 끝난다. 중국공산당과 일본 제국주의 사이에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무엇이었을까?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불안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처절한 사상투쟁이나 눈에 보이는 뚜렷한 적에 대한 분노보다 비참한 것은 불신이며 불안이다. 이 소설은 그 불안의 정체를 말하고 있다. 자신들조차 자신들의 정체를 몰랐던 그들은 아직도 역사의 그늘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영원히 자신들이 누구인지 모를지도 모른다.

  희망과 비극이 교차했던 간도. 그곳에 살았던 네 명의 중학생과 화자인 김해연은 이 소설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다. 시대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거창한 타이틀보다 오히려 당대의 삶을 가장 치열하게 보여줄 수 있는 주변 인물들이다. 누가 그런 시대를 만들어 냈는지 시대의 진실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하다.

  작가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말하려 했든 나는 이 소설에서 오래된 기억과 현재의 아픔을 함께 읽었다. 희미한 등불처럼 저기 멀리서 비추는 작은 빛의 알갱이들이 모여 현재를 만들어냈다. 나는 지금을 살고 있고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과거를 살았지만 보이지 않는유리 큐브에 갇힌 진실의 미로 게임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하나의 세계를 완벽하게 믿고 싶어한다. 부끄러움도 모른 채.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 P. 42

  이 소설의 그 부끄러움의 세계를 조금 보여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김해연에게 그리고 이정희에게 사랑은 무엇이었으며 그들의 죽음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오늘의 우리에게 사랑과 죽음은 과연 어떤 것인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하나의 세계와 그 곳의 사랑과 죽음.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그것은 무엇인가?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 - P. 325


0811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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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라. 네가 살아 있다면 그 무엇이든 사랑을 하라.” …… “서로의 심장을 꺼내놓고 싸우고 나면 세계는 어떤 식으로든 정리될 테니까. 역사책이란 그런 사람들의 심장에서 뿜어난 피로 쓴 책이야.” - P. 25

이제는 알겠다. 사랑은 여분의 것이다. 인생이 모두 끝나고 난 뒤에도 남아 있는 찌꺼기와 같은 것이다. 자신이 사는 현실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P. 31

사랑에 빠지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전에 없이 더 또렷해진다는 건 바로 그때 알았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란 한 사람의 아름다움을 대체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결국 깨닫게 되는 것은 그 어떤 아름다움도 그리운 단 하나의 얼굴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 P. 36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 P. 42

먼저 사랑이 오고, 행복이 오고, 질투심과 분노가 오고, 그리고 뒤늦게 부끄러움은 찾아온다. - P. 48

행복은 자신이 속한 세계 안에 갇혀 있다. 슬픔의 냄새는 그 세계 바깥에서 번져온다. 행복하기만 하다면 삶은 거짓이라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냄새만은 견딜 수 없었다. - P. 60

“사람이란 자기 인생 행로에서 잊기 어려운 추억을 갖게 마련이지요. 이런 추억은 자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심금을 울려주면서 떠오르는 것이에요.” - P. 234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 247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지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 - P.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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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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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베스트셀러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궁금하면서 읽지 않는 버릇이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거나 타인의 취향과 다를 수 있거나 관심 영역이 아니거나! 그런 경우 대부분 금방 잊혀지거나 관심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책도 유행이 있고 흐름이 있어 그것을 쫓다보면 신간에 목숨 걸게 된다. 내가 책을 읽는 패턴도 신간과 고전 놓친 책들의 조화를 꾀하지만 쉽지 않다. 선택은 신중하지 못하고 편식을 하게 될 때도 있고 다양한 관점을 잃기 쉽다. 하지만 곧 잊혀지지 않거나 계속 관심이 가거나 호기심이 늘어나는 책은 읽는다. <88만원 세대>가 그런 책이다.

  <촌놈들의 제국주의>를 시작으로 <직선들의 대한민국>,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괴물의 탄생>를 읽고 <88만원 세대>를 읽는 느낌은 색다르다. 작년 8월 1일 처음 펴낸 책이 올 9월 22일에 14쇄를 찍었다. 내용에 앞서 눈에 띄는 놀라움이다. 많이 팔리긴 팔린 책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열었다.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1권에 해당하는 책이지만 3, 4권부터 읽고 올라와도 크게 차이가 나거나 다양한 관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시리즈의 처음에 걸맞게 거시적인 문제들과 사회 현상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참신하다. 거침없는 발언과 색다른 관점은 이 책이 많이 팔린 이유들을 증명하는 듯하다. 단순한 경제학 이론 서적이 아니라 경제학적 관점으로 바라본 2007년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이 될 듯하다.

  세상을 바라볼 때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세상에 대한 인식 틀은 달라지게 마련이다. 이 책은 경제학이라는 관점의 안경 중에서도 특별하다. 그 특별함은 몇 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접근 방식이다. 경제학의 주제가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20대가 중심에 우뚝 서 있다. 그것을 둘러 싼 세대와 세대의 관계를 살펴보고 유럽의 사례를 통해 우리들의 문제를 짚어낸다. 또한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비교경제학의 관점으로 풀어낸다. 여기에는 물론 역사적 상황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전제된다.

  기업의 마케팅 대상으로나 관심을 받는 세대인 2007년 20대를 우석훈은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세대의 특성과 그들의 갖는 독톡한 경제적 상황과 시대적 배경을 꼼꼼하게 분석하다보면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짐작하게 된다. 이 책의 목적이 박권일의 말대로 20대에게 ‘희망고문’이 되지 않길 바란다. 하지만 내일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문을 닫을 수는 없지 않은가.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무리 승자독식 시대가 도래 한다고 하지만 시대의 중추에 설 날이 온다고 믿어야겠다. 그렇지 않다면 두 저자도 이 책을 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발칙하고 흥미로운 도입은 독자들에게 신선함을 넘어 충격을 준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극장 상영 전 ‘대한 늬우스’와 ‘애국가’가 시대의 코미디가 된 것처럼 10대들의 첫 섹스와 동거 문제는 당연한 현실에 대한 돌 던지기다. 동거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한국의 10대들이 왜 문제인지 침착하게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선진국의 사례를 들려주고 자연스럽게 대학등록금과 대학의 서열화 문제 그리고 1318 마케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우리에겐 꿈같은 대학 등록금 50만원. 공공의료와 교육 정책들이 이루어진 배경과 과정은 단순한 동경을 넘어 실현하기 어려운 먼 나라의 혁명으로 들린다. 아니, 혁명이 맞다. 다만 우리는 그 과정을 거치지 못했고 그 시기를 놓친 것은 아닌가 조바심이 날 뿐이다. 10대들이 이룩한 프랑스의 대학의 공립화와 번호 추점은 68세대의 힘을 넘어 선 엄숙함이 느껴진다.

  현실은 한 번도 우리에게 ‘꿈’을 말해 준 적이 없다. 그것은 어쩌면 어리석은 인간이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실현 가능한 꿈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고문에 가까울 때가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과장된 해석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우울한 미래와 10대로까지 이어지는 생존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이 땅의 모든 10대와 20대가 귀담아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문제는 그들의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이 세상에는 별로 없다는 데 있다. 이미 기득권과 헤게모니를 장악한 기성  세대들의 각성과 해법이 없다면 이 문제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엉킨 실타래가 될 것이다. 20대가 만나는 현재의 한국 사회는 암울하기만 하다. 자조와 절망을 안겨 준 것은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시대의 고통이고 우리 모두의 과제다.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눈물겹던 <촌놈들의 제국주의>의 닫는 글 ‘교육 파시즘의 시대, 학교 파시즘에 부쳐’가 생각난다. 지금의 20대가 겪어야 했던 혹은 그들을 양산한 세대들의 반성과 비판은 과연 합당한가. 10대와 20대는 지금 이러한 경제적 상황과 세대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는가. 그 대안과 합립적인 문제 해결 방법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가. 당연히 불가능한 무모한 질문이다. 일자리를 찾아, 알바를 위해 목숨을 건 무한 경쟁의 시대에 배부른 고민은 누가 해야 하는가?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넌 누구냐고, 어떻게 사느냐고, 그렇게 살거냐고, 우리 모두 이렇게 계속 지낼 수 있겠냐고.

  이 책의 핵심은 바로 제 2 부 3장 ‘바리케이드와 짱돌의 기원에 관한 고고학적이며 기능론적인 고찰’이다. 이 책의 제목이 된, 지금 우리 20대를 위한 명명법. 88만원 세대는 비정규직 평균 임금에서 20대가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토익, 토플, GRE 점수가 아니라 바리케이드와 짱돌이라고 선언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이다.

  어느 시대가 희망으로만 가득했겠는가? 역사에서 어쩌면 단 한 번도 그런 순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희망이 고문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로 변화하려면 내 목소리와 실천과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합의가 필요하다. 절망은 희망의 그림자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바보들의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똑똑한 척 하는 바보다. 그 사실만 빨리 인정한다면 길은 의외로 쉽게 만들어 질 수 있다. 88만원 세대는 오늘도 안녕하신가. 또 나는 어떤가?


081107-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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