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일상 창비시선 294
백무산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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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봄날이었다. 점심 식사 후 나른한 5교시. 절인 배추처럼 늘어진 아이들에게 한문 선생님은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으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읽어주시는 시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흘러 친구들이 볼까봐 얼른 닦았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었다. 사회에 막 눈을 뜰 무렵 박노해와 백무산은 노동문학의 선두주자였고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은 시대를 반영하는 기념비였다. 80년대의 뜨거움이 사라졌지만 시간 속에 모든 것이 묻혀 버리는 것은 아니다.

  백무산의 시를 참 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프로필 사진 속 시인의 모습은 세월을 웅변한다.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그는 시인이며 시를 통해 세상과 만나고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다양한 시의 색깔들만큼 시대가 변했고 세월이 흘렀나보다.

내게도 벌써 여러 봄과
여러 겨울이 지났네
지난 계절들 내 손으로 다 거두어온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나의 낯선 생이 바람 속
빈 둥지처럼 나뒹굴고 있네
나는 지나온 나의 전부가 아니네

내 온몸이 통과해왔건만 낯선 생이
불쑥 낯익은 바람에 타인의 것인 양 흩어지고 있네

나는 그걸 하나의 생이라고 우겨왔네
저기 다른 생이 또 하나 밀려오네
- ‘생의 다른 생’ 중에서


  <거대한 일상>의 서시에 해당하는 시의 일부다. 또 하나의 생이 밀려오고 있다는 것은 한 사람의 후반생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 아니라 시대의 도도한 흐름 앞에서 선 개인의 슬픔을 드러내기도 하는 일이다. 낯선 생이 낯익은 바람에 흩어지는 모습은 처연하다. 누가 누구의 생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시간 앞에 모든 생은 겸허해 지고 한 시대의 끝자락에서 지난 시대를 바라보는 일은 허망할 뿐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꿈을 꾼다. 꿈꾸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그것은 시인이든 아니든 어느 시대를 살고 있든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인은 꿈을 꾸지 않으면 절망도 없다고 냉정하게 말하는 듯하다.

꿈꾸지 않는 자의 절망은 절망이 아니다

마음에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비구니는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순결한 것은 스스로 기댈 곳이 없다
- ‘기대와 기댈 곳’ 중에서


  삶의 일상성은 불온한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이 시대를 무어라 정의할 수 없지만 시인에게는 여전히 세계는 불안한 곳이고 부조리한 상태다. 그러한 인식은 부정적 세계관이 아니라 비판적이고 깨어있는 의식을 대변한다. 폭압적 정치 현실에서 벗어나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전쟁과 기아에 허덕인다. 그 침략 전쟁에 군대를 파병하고 이웃들의 굶주림과 가난을 외면한다. 생존 경쟁을 넘어 개인주의적 욕망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쓸쓸하기만 하다.

  누군가를 쏘아야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는 총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 총을 뺐기지 않으려면 쏘아야 한다. 그것이 정의다. 정의의 이름으로 쏘는 것은 불가능하다. ‘쏘다’가 정의라는 역설적 인식은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며 우리들의 아픈 자화상이다.

전쟁 때문에 군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군대가 있으므로 전쟁을 생각하는 것이다
총을 든 자에게는
‘쏘다’와 ‘정의’는 언제나 같은 말이다

세상의 어떤 침략전쟁도
정의의 전쟁이 아닌 것이 없고
성전(聖戰)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므로 정의의 ‘쏘다’는 없다
‘쏘다’가 정의인 것이다
- ‘‘쏘다’가 정의다’ 중에서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왔노라고 노래하지만
그러나 아직도 그가 승리하고 있다
- ‘위인전’ 중에서

  시대가 변했다. 시간이 흐른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아이들은 자라며 노인은 죽는다. 그러나 아직도 그가 승리하는 시대는 계속된다. 역사는 순환하는 수레바퀴와 같은 것일까? 오욕의 세월을 견뎌낸 사람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혹은 절망적이고 처절한 시대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이 시대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고 싶다. 그가 사라지는 순간 희망이 시작되는 것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환상과 장밋빛 미래에 대한 그들만의 축제를 구경하는 방관자가 되어야 하는지.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는 온다. 그 시대가 어떤 시대이든. 다만 우리는 그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를 생각해야 한다. 아니 그 시대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야 최소한 ‘순결한 분노’를 느끼지 않겠는가. 분노가 없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냉정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다. 좋은 게 좋은 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에게 분노는 필요 없다.

  시인이 말하는 분노는 사회적 명상을 말한다. 기사(騎士)는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로 내가 아니 당신이 기사일 지도 모른다. 기다림에 앞서 순결한 분노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거울을 보고 바로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얼굴 표정을 먼저 살펴야 한다. 그리고 눈을 감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통해 그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지 말이다.


순결한 분노

꿈을 꾸는 일은 분노하는 일이다
책을 읽는 일은 분노하는 일이다
고요에 드는 일은 분노하는 일이다
노동을 하는 일은 분노하는 일이다
글을 쓰는 일은 분노하는 일이다

소유 욕망의 성냄이 아니다
탐욕에 치미는 화가 아니다

순결한 분노는 사회적 명상이다

이제,
그들이 온다

기사(騎士)들이 온다



081128-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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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 내 몸을 바꾸는 에로스혁명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6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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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잠시 움찔하게 된다. 대상과 범위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막연한 질문은 근본적인 고민에 빠지게 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사랑은 그만큼 절대적이고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우리가 그 사랑에 대해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있을까? 누구에게 배워 본 적도 없고 그 실체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본 적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 아는 것은 보잘것 없다.

  인간을 규정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놀이하는 인간, 정치적 인간, 언어적 인간 등등. 그 많은 특징 중에 고미숙은 ‘사랑’을 집어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고미숙의 사랑 타령은 깊이 새겨 들을 만하다. <호모 에로스>는 그렇게 탄생한 책이다. 인간에게 사랑이 무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 사랑의 비법과 관점들을 쏟아내고 있는 책이다. 하지만 속된 사랑의 노래를 제창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의 사랑이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보고 그 대안을 찾아보자는 이야기다. 사랑도 철학이 필요하고 구체적인 방법도 필요하며 방향과 목적도 필요하다.

  공부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도 아니라는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성 사랑, 쇼핑에 중독된 사랑법에 대한 일침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똑같은 패턴과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아니 영원한 사랑은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그나마 자신을 찾지 못하고 타인에게 기대고 의존하는 것은 감정의 소모일 뿐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사랑의 슬픔은 이별에서 오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자아의 존재감을 잃어버린 듯 한 상실감은 지나치게 타인에게 의존하는 데서 그 비극이 시작된다.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문제라는 사실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랑은 누가 하는가? 사랑의 주체는 누구인가?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어 나에게서 끝이 난다.

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한 마디로 대상만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한 건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고, 아직까지 사랑을 못해 본 건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참으로 신기한 인과론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판에 나는 몸만 쏙! 들어가면 되는가? 실패한 다음엔 다시 몸만 쏙! 빠져나와 복수극을 펼치면 되고? 이렇게 지독한 이기주의가 또 있을까? 상대를 잘못 만나 인생을 망쳤다면, 그런 상대를 선택한 ‘나’라는 존재는 대체 뭔가? - P. 15

  사랑을 하려거든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하여 보아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던 대학 신입생 시절이 떠오른다. 목숨은 사랑하는 대상에게 거는 것이 아니라는 자각을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고 깨닫지도 못했다. 불멸의 사랑은 망상 중의 망상이라는 생각이 체계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참 많은 경험과 상처가 필요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사랑만큼 중요한 것을 왜 공부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자만심 때문일까? 아니면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일까? 알아도 몰라도 일단 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면 똑같은 증상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알수 없는 노릇이다.

‘불멸의 사랑’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건 마치 어린 아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어른이 된 다음에도 계속 끼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다. - P. 16

  저자는 이러한 사랑의 출발점을 ‘나’로부터 시작한다. 실연은 행운이며 에로스는 쿵푸라는 선언은 가벼운 장난처럼 들리지만 실전에서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하는 사랑을 경계하는 선언들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러한 사랑의 의미를 근본부터 파헤치고 있다.

  그러기위해서 우리가 우선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해 조목조목 비틀고 딴지걸면서 현실에서의 사랑법들을 비판한다.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을 가장 정확하게 진단해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이영애를 붙잡고 내뱉은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오랬동안 회자되었으며 기억에 남는 대사다. 많은 사람이 할 말이 많은 대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불멸의 판타지를 꿈꾸는 모든 연인들의 환상에서 비롯된 마약같은 주문일 뿐이다. 사랑은 변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집착이고 증오이며 상처이고 슬픔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을 가로막는 대상들이 무엇인가? 국가, 가족, 학교 그리고 쇼핑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욕망의 배치에 따라 연인들은 흘러가고 쇼핑 공간이 없는 곳에서는 사랑도 불가능하며 자동차가 곁들여지지 않은 사랑은 사랑도 아니라는 비참한 현실. 그래서 청년 문화는 사라지고 대학은 황폐화되고 있으며 모든 가치는 화폐로 환산되는 사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의 자화상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랑이라니? 김연수의 <사랑이라니, 선영아>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사랑법은 무엇인가? 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화폐권력에 저항하고 사랑하는 순간부터 책을 읽으라는 저자의 충고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다. 사랑의 주체가 되어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 나의 감정 타인과 나의 교류와 소통으로 보는 관점이 바로 저자의 사랑법이다. 그래서 감히 힘차게 외친다. 청춘이여, 욕망하라!고.

  사랑은 아무나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랑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류의 절반만큼 많은 수의 사랑법이 있겠으나 인문학적 관점에서 현재의 사랑을 통찰하는 방법 또한 신선하다. 사랑은 오늘도 계속되겠지만 사랑을 공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른다면 아는 척하지 말고 사랑 공부를 시작해 보자. 즐겁고 신나게. <호모 에로스>와 함께!

08112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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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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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사랑을 언제나 대상의 문제로 환원한다. 한 마디로 대상만 잘 고르면 만사형통이라 여기는 것이다. 사랑에 실패한 건 대상을 잘못 골랐기 때문이고, 아직까지 사랑을 못해 본 건 ‘이상형’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참으로 신기한 인과론이다.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판에 나는 몸만 쏙! 들어가면 되는가? 실패한 다음엔 다시 몸만 쏙! 빠져나와 복수극을 펼치면 되고? 이렇게 지독한 이기주의가 또 있을까? 상대를 잘못 만나 인생을 망쳤다면, 그런 상대를 선택한 ‘나’라는 존재는 대체 뭔가? - P. 15

‘불멸의 사랑’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건 마치 어린 아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어른이 된 다음에도 계속 끼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다. - P. 16

사랑이 둘만의 역학적 배치를 만들어 내는 건 맞다. 또 열정의 차이에 따라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것도 맞다. 헌데, 가장 중요한 건 시절인연이다. 말하자면, 대상이 누구냐보다 언제 어디서 만났느냐가 더 결정적이다. 즉, 어떤 특별한 ‘시공간적 배치’ 속에서 사랑이라는 특별한 감정이 생기고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만약 그 관계에 균열이 일어났다면, 즉 누군가 먼저 결별을 선언하게 생겼다는 걸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점에선 가해자, 피해자가 있을 수 없다. 둘 다 그 간극만큼의 번뇌를 감당해야 하는 까닭이다. - P. 52

에로스란 원초적 본능이자 욕망의 흐름 자체이다. 어떻게 절단되느냐에 따라 수많은 변이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절대 남녀 사이의 연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관계든, 어떤 활동영역이든 존재의 자유와 충만감이 분출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 에로스다. - P. 142

사랑이란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다, 즉, 내가 어떻게 관계를 구성하느냐가 사랑의 내용과 형식 모두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이 내 존재의 궤적을 만든다. 존재의 흐름과 궤적, 그것을 일러 운명이라고 말한다. 내 운명의 주인은? 바로 ‘나’다. 그러므로 시작에서 종결까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 P. 145

오스카 와일드의 한 말씀.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그 자신을 속이는 일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남들을 속임으로써 그것의 종말을 고한다. 이게 바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로맨스의 본질이다.” - P. 154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영원히 너만을 사랑할게.” “이 순간을 영원히!” 우리는 을 이런 식의 구호에 포위되어 있다. 물론 말짱 거짓말이다. 사랑은 당연히 변한다. 사랑을 하는 마음과 몸이 변하기 때문이다. 모든 태어난 것은 자라고 병들고 늙고 죽는다. 마찬가지로 사랑 또한 나고 자라고 쇠하고 소멸한다. - P. 246

이탁오의 말 가운데 이런 게 있다. “스승이면서 친구가 아니면 스승이라고 할 수 없다. 친구이면서 스승처럼 배울 게 없다면 역시 친구라 할 수 없다.” - P.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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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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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역사는 민주주의 역사다’라는 동경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다. 평등과 자유가 가치가 실현된 복지 국가로 정의를 위해서만 주먹질을 하는 착한 나라 미국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스스로에게 묻지만 답을 구하기 모호하다. 공교육 기관을 통해 전해진 지식 속에는 분명 미국은 우방이며 6.25전쟁에서 한국을 구해 준 고마운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안심이 되지 않아 아직도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는 일본이 아니라 어쩌면 미국일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노른자위 땅 용산. 배산임수의 기막힌 자리에는 2008년 현재 아직도 미군이 자리 잡고 있다. 철수가 확정되었지만 철수비용을 둘러싼 소음과 잡음은 끊이질 않고 미군철수 문제나 SOFA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미국은 과연 대한민국의 친구일까?

  자선사업가도 날개 없는 천사도 아닌 미국에 대한 환상은 도대체 언제부터 그리고 누구로부터 시작되었을까? 단순히 경제적 원조, 무역의존도 때문이었을까? 정치적 민주화때문이었을까? 미군정의 한반도 분할 통치정책과 이승만의 집권은 지구 전체를 상대로 한 미제국의  패권주의 때문은 아니었을까?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논의는 역사가 말해 줄 것이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분석과 고민이 필요한 문제이다. 온정주의와 맹목적 사대주의 모두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유 없는 반미도 문제지만 조선시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에 버금가는 미국 섬기기는 더더욱 문제다. 경제나 군사 분야뿐 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와 학문에서도 미국 위주의 패권은 계속된다. 경계해야 할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은 미국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두 눈을 바로 뜨고 미국을 투명하게 바라보자.

  촘스키나 하워드 진이 한국인이라면 아마 오래 전에 국가보안법으로 장기수 신세가 되었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추악한 이면과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쏟아낸 그들의 말과 글은 결코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그 성과 또한 간과할 수 없다. 단순하게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색다른 시각 정도로 보아 넘길 수 없는 이들의 발언에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행동하는 양심이 아니라면 지식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존경받지도 못했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했을 것이다. 넓은 의미로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미국이라면 나는 미국을 부러워하고 싶다. 타인의 생각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견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열린 가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힐러리를 끌어안은 오마바에게 박수를 보낼 일이 아니라 민주당이 집권해도 공화당이 국무장관을 할 수 있는 미국인의 정치 풍토가 부럽기는 하다. 하지만 미국은 미국일 뿐이다.

  역사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는 미국 역사를 접근하기 쉽게 접근하고 있는 만화책이다. 그 소통의 수단과 도구는 접근 대상과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아이들에게 혹은 멍청이로 졸업한 성인들에게 미 제국주의 역사를 알려주기 위해서라도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관점이 달라지고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나는 안다. 한 번 고정된 시각과 뿌리박힌 고정관념은 총보다 무섭다. 죽어도 그것을 바꾸기 어려운 것이 신념인데 그 신념을 깊이 고민하거나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았는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서 민족주의 관점에서 나와 국가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이성적 판단 이전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애국적 민족주의는 근대 이후 형성된 가장 두려운 이념이며 개인을 옭죄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다. 그것은 어느 나라 국민이든 소속 국가에게 빚지고 있는 마음의 감옥이다. 자유주의 혹은 민주주의 국가의 대명사로 불리는 미국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외쳤지만 원주민인 인디언들 입장에서는 참 어이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무인도를 발견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모르던 땅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그리 큰 일이었을까마는 인디언들에게는 큰일이었다. 400년 쯤 후 1890년 운디드니 학살 사건은 미국의 본질을 보여주는 잔혹함 그 자체였다. 영국의 산업혁명 여파로 미국에도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밀어닥치고 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이고 가혹한 자본의 횡포가 시작된다. 미국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역사이며 노동자 탄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인과의 전쟁, 필리핀 침공, 1,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니카라과, 쿠바, 이라크 침공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사의 전쟁에 미국이 빠진 적이 없다. 석유와 산업화를 위한 원료 기지, 군수산업과 긴밀히 연결된 정치인들의 연결고리는 애국주의와 맞물린다. 백인 기독교로 대표되는 미국인과 달리 흑인들의 인권과 자유는 철저하게 외면당했고 더구나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은 전쟁과 억압의 대상이었을 뿐이다.

  바로 보기 위해서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이면의 숨은 진실을 보아야한다. 삐딱하고 왜곡된 시선은 맹목적인 믿음과 표면적인 현상에 대한 신뢰만큼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아니 왜곡된 사실이나 과장된 사건들에 이념의 옷을 입힐 때는 끔찍한 결과가 찾아온다. 바보가 되어버린 대중은 파시즘에 경도되고 전체주의에 함몰되며 그것을 민주주와 미국적 가치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과연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정책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라. 물처럼 투명한 진실이 드러난다. 눈 감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워드 진은 미국의 역사를 통해 미국의 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지나간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미국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진짜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제대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역사조차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는 현실에서 미국의 역사를 만화로라도 살펴보자는 말을 하자니 슬픔이 밀려온다.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는 오늘도 안녕하신가? 아니, 검인정제도는 오늘도 안녕하신가? 아니, 공정택에게 불려간 교장들은 오늘도 안녕하신가? 한국보다 미국, 미국보다 한국이 더 걱정이다. 아니, 오십보백보!


08112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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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문화사
로저 에커치 지음, 조한욱 옮김 / 돌베개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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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루 해가 지고 완전한 어둠이 내리기 전까지의 시간. 그 푸른 시간을 나는 좋아한다. 빛과 어둠의 경계이며 낮과 밤의 고비를 넘어가는 순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파스텔톤 여명의 그림자 때문이다. 어둠이 사라지고 파란 새벽이 밝아오는 시간보다 고즈넉한 해질녘이 훨씬 편안하고 여유롭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의 노동이 끝나고 휴식과 안정을 취할 수 있는 밤을 맞이하는 것을 누가 반기지 않겠는가. 밤은 그렇게 우리에게 또 하나의 세계를 선사한다.

  낮이 노동과 의무의 시간이라면 밤은 휴식과 자유의 시간이다. 사회적 관계로 얽매인 시간이 낮이라면 개인적인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밤이다. 밤은 한마디로 정의되지 않는 모호함과 마술의 시간이다. 현대인에게도 밤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진부한 말이 아니어도 개인이든 사회든 밤은 낮보다 대담하다.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감성의 시간이다. 만천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낮의 시간보다 모든 것을 신비로움 속에 감추어 두는 밤은 그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의 내면을 닮았다. 밤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였으며 어떤 역할을 했고 인류 역사에서 두려움의 존재로만 인식되었을까? 도대체 밤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렇게 인류 역사의 반쪽에 대한 궁금증은 당연해 보인다. 로저 에커치는 밤의 역사를 기막힌 솜씨로 풀어 정리했다. <밤의 문화사>는 근래 보기 드문 재밌는 책이다.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물론 정보와 재미를 선사한다. 인류 역사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전해준다.

  역사적인 사건과 영웅 중심의 거시적인 흐름에서 벗어나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참 재미있는 일이 많다. 생활사 혹은 미시사로 명명되는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진짜 역사에 대한 궁금증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바로 이런 이야기들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저자는 20여 년간 준비해온 자료와 연구를 통해 근대 이전의 ‘밤’이 어떠했는지 상세하게 밝혀놓았다. 그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어진다. 이 책의 진가는 읽는 동안 한 마디, 한 장면이 풍부한 상상력과 철저한 역사적 사료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비록 산업혁명 이전 서양 사회로 한정되어 있더라도 의미가 축소되는 것은아니다. 다른 지역의 밤에 대한 역사가 쓰여진다면 그 또한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기대해 본다.

  이 책은 공포로부터 시작된다. 1부의 ‘죽음의 그림자’는 밤의 위험에 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가로등도 없고 통금이 있던 시절 치안은 어떻게 유지되었을까. 야경꾼과 도둑 사이의 흥미진진한 관계는 한 편의 영화처럼 아득하다. 경찰이 만들어져 시민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보다 도둑맞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현대사회가 반증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약탈, 폭력, 방화로 대표되는 밤의 그림자는 죽음과 맞닿아 있었지만 말이다.

  ‘자연의 법칙’은 교회와 국가로 대표되는 공적인 기관에서 밤을 대하는 태도와 민간에서 밤을 맞이하는 방법은 조금 달랐다. 당국은 나약했고 가정은 요새가 되었다. 밤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금처럼 가로등도 없고 불빛도 없는 거리를 생각해 보면 과거의 밤은 지금과 밤과 많이 달랐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양초로 대표되는 불빛은 이제 인간의 노동시간 연장을 의미하기 시작한다. ‘밤의 영토’는 점점 넓어지며 모든 사람에게 사교와 성과 고독을 선사한다. 평민들에게도 밤의 시간이 주어지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여유와 휴식의 시간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방종과 쾌락에 빠지기도 하며 영주와 귀족에게는 그들만의 리그가 열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완전한 ‘사적인 세계’로 밤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은 18세기 이후의 일이다. 잠을 두 번에 나누어 잤다는 사실은 흥미롭기만 하다. 첫 잠을 깬 후 담배를 피우고 대화를 나누고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과거의 밤이다. 지금과는 삶의 리듬이 달랐고 인공 조명의 피해가 훨씬 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중세말기부터 19세기 초반에 이르는 밤의 역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공포로부터 점차 밝은 빛의 세계로 나아간다. 하지만 과연 낮의 연장이 완전히 실현된 24시간 체제의 현대가 그때보다 발전되거나 진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둠이 줄어들면서 사생활과 친밀감과 자아 성찰의 기회도 훨씬 드물어질 것이다. 기어이 그 밝은 날이 오는 순간, 우리는 시간을 뛰어넘는 소중한 우리 인간성의 절대 요소를 잃게 될 것이다. 이는 어두운 밤의 심연에서 지친 영혼이 숙고해봐야 할 절박한 전망이다. - P. 436

  밤은 여전히 우리에게 휴식과 안정의 시간으로 여겨진다. 직업과 상황에 따라 밤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오랜 습성을 인공조명으로 바꾸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고 즐거운 일도 아니다. 삶의 시간이 연장된다는 측면에서 밤을 이해할 수도 있지만 밤이라는 특별한 시간에 벌어지는 온갖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이제는 당연하기만 하다. 그것이 낮이든 밤이든 개의치 않는 것은 자본과 욕망뿐이다.

  독서와 사색을 즐기고 명상에 잠기는 밤은 매우 사적인 시간이다. <밤의 문화사>는 인류가 걸어온 한 시대의 밤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이며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밤’에 대한 오래된 기억들이다. 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밤에 무엇을 했으며 하루 일을 마치고 어떻게 지냈을 지 궁금하다.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꼼꼼한 자료와 꾸준한 연구를 통해 생생하게 살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동양의 밤이라고 해서 무어 그리 특별했을까마는 문화의 차이만큼은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그것이 낮이든 밤이든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인 것만은 틀림없다. 여전히.

0811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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