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인 9색 청소년에게 말걸기 - 생각하라 경험하라 반응하라
김용규 외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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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이라 명명된 나이의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일은 힘들다. 단순한 나이 차이 때문이 아니라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상황과 입장이 다르고 성장과정과 경험의 차이 때문이다. 세대 간 소통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다.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에게 항상 희망을 건다고 말한다. 그들이 우리들의 미래이기 때문이지만 기대만 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기성세대들은 미래의 주역이라고 추켜세우지만 정작 그들의 밝은 미래를 제공하지는 못하고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는다.

  반면에 청소년들 입장에서는 대부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길들여지고 있으며 국영수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를 깨뜨리기 힘들다. 일단 대학에 입학하거나 졸업 후에 자신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거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너무 늦다. 나 자신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세상을 알아가며 타인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내가 살아가야할 대한민국의 현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9인 9색 청소년에게 말걸기>는 여러모로 얄팍하지만 필요한 책이다. 우선 두께가 얄팍하고 내용과 깊이가 얄팍하다. 반면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재미와 무관한 내용이기 때문임을 감안할 때 적당하다고 볼 수도 있다. 어른보다 바쁜 청소년들에게 잠시 짬을 내어 읽어보도록 권할 만큼 적당한 분량이다. 이렇게 작은 시도들이 거듭되고 한두 번씩 고민의 단초를 제공하고 생각을 자극하는 일은 기성세대의 몫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거론되는 인사들의 이름도 중요했으리라 짐작된다. 검증된 저자들을 통해 안전하게 기획되었고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지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읽힐지 모르겠다. 당장의 점수도 중요하다. 대입제도 개선 없이는 초중고의 공교육은 개선될 수 없고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구조적인 변화 없이는 공염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거나 끊임없는 경쟁 구도 속에 아이들을 마냥 밀어 넣을 수만은 없다는 데 동의한다면 이런 종류의 책들은 청소년들에게 자꾸 읽혀야겠다.

  철학, 인권, 과학, 고전, 가치관, 환경, 독서, 여성, 문화라는 아홉 가지 주제를 김용규, 박홍규, 김동광, 정민, 안철수, 안철환, 이권우, 권인숙, 김동식이 풀어냈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름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고 뚜렷한 신념을 지니고 있는 저자들은 해당 분야에 관해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쉬운 말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왜 필요한지 무엇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도 있겠다.

  물론 이 책은 입문서에 불과하다. 지독하게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고민에서 비롯된 책으로 보인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이나 읽는다 해도 소설 이외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 아이들에게 권해줄 만한 책이다. 길쭉한 판형과 간단한 삽화로 지루함을 덜고자 애쓴 흔적이 보인다. 고육지책이라도 좋으니 이런 시도들이 계속되었으면 좋겠고 기성세대들도 필요성을 절식하게 인식했으면 좋겠다.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미래가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손놓고 현실주의자로만 살아갈 수도 없다. 보다 나은 미래와 희망을 제시하고 다양성 속에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우리들의 몫이다.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들의 거울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행태와 생각을 보고 배운대로 자신들의 행동과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청소년들이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사회, 자연 환경은 고스란히 미래의 후손들에게 돌아간다. 반성적 차원에서 기성세대의 고백도 필요하고 그들이 알아야 할 과거도 소개해야 한다.

  어른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시대에 청소년들에게 스승이나 선배로서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보자. 주체적 인간으로 가치관을 세우고 지혜를 쌓는 일이 지식의 양을 늘리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우리는 그들을 대입 중심의 교육제도 안에 통조림처럼 밀어 넣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의 인생을 깎고 다듬어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들의 꿈과 분노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일이 우선이다. 시행착오를 통한 경험을 들려주고 삶의 지혜를 후배들에게 전해 주는 일, 그것이 선배들의 의무이자 역할이다. 올바른 가치관과 비판 정신을 소유한 어른들을 소개해 주는 일이라고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모쪼록 훌륭한 아홉 명의 인생 선배들에게 삶의 지혜를 배우고 생각의 화두를 하나씩 얻어갈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 청소년들은 그들에게서 보다 넓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받고 넓은 세상에 대한 관심과 생각의 방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길들이기’가 왜 위험한 것인지 그것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 반성도 해보고 비판도 해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끝없는 보살핌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생각을 재단하고 하나의 틀 속에 가두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어른들부터 반성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어른들부터 읽고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실천하지 않으면서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080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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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콘서트 2 철학 콘서트 2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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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간의 의식은 보수적이다. 젊은 날 한번 익힌 사유와 가치의 체계는 평생 간다. 보수적인 당파의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보적인 인사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한번 지어놓은 사유의 집을 부수어버리고, 그 폐허의 자리에 새로운 사유의 집을 짓는 일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특정의 사유 체계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지독한 두려움을 견딜 수 있는 사람, 그가 곧 철학자다. - P. 113

  우리가 철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고 실천해야 하는 이유이다. 철학을 한다는 말은 의미 자체가 모순일지 모른다. 철학한다는 것은 앎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을 말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한다. 철학은 어렵고 머리 아프다고 생각하는 것은 용어에서 비롯되는 두려움이다. 개념을 이해하고 사유 과정을 통해 철학의 방법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철학사에 관한 지식이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트라이앵글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가 많다. 모든 학문의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와 그의 스승 플라톤의 차이를 안다고 해서 우리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앎의 태도와 방법은 그 연원을 밝혀 알아야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사고를 규정하는 모든 것들 속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인류의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것들을 더듬다보면 반드시 철학자들과 만나게 된다.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찾아내지만 그 바탕에는 반드시 생각하는 힘이 전제되어 있다. 생각하는 방법, 생각의 대상,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삶 등 우리는 여전히 2500여 년 전의 철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 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지식의 범위와 크기가 조금 커졌을 뿐이다. 다람쥐의 쳇바퀴처럼 비슷한 일상과 생활 환경 속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만 관심을 가지며 살아간다.

  철학은 단순하게 말하면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정신이든 물질이든, 사람이든 자연이든 사회든. 돈에 소외되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불행한 현실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고민과 몸부림은 계속된다. 누구나.

  안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는 않지만 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생각해 왔는지에 대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교는 여전히 헤게모니를 장악한 그들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 억압과 구속의 습속을 철저하게 길들이고 있다. 일제고사를 부활시켜 전 국민을 한 줄로 세워 등급과 계층을 고착화하고 내면화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괴감과 좌절감을 통해 자신의 한계와 위치를 인정한다. 입시가 끝나고 학교 정문에 내걸린 부끄러운 현수막에 이름이 오르지 못한 모든 졸업생은 행복하지 못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이런 현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영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공식을 암기하며 김소월 시의 특징을 정리한 참고서를 통해서만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이 땅의 청소년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교육의 방법과 목적과 방향에 대해 개떼처럼 떠들어대지만 현실은 완고하다. 결과는 참담하다. 점점 불행지며 점점 억압되고 점점 길들여진다. 모두 순종하라, 모두 한 줄로 서라, 20을 위해 80은 희생하라.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된다. 모두 공부만 해라. 수능 성적이 계급이다. 대학 간판이 평생을 좌우한다. 이것이 현실이다. 돈이 최고다.

지식은 인류 사회 전체에 이득을 준다. 물질적 자산은 남에게 주면 줄어드나 무형의 지적 자산은 남에게 준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부와 권력은 유한하나 지식은 무한하다. 육체는 죽지만 지식은 영원하다. 지식의 기본은 타인을 배려하는 데 있다.(피타고라스) - P. 27

  피타고라스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 통탄할 일이다. 황광우의 <철학콘서트 2>는 이렇게 시작한다. 수학책에서 이름을 얻어 들은 피타고라스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저자의 관점이 훌륭하다. 단순히 철학적 지식을 씹어 뱉어주는 친절한 안내자의 역할이 아니다. 피타고라스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을 통해 그들의 생각과 노력들을 점검한다. 그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

  한 권의 책에서 10명을 다루다 보니 <철학콘서트>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약점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관되게 인류의 역사와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선입견을 지우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 청소년들을 위해 쓰인 이 책은 몸만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들에게도 훌륭한 철학 입문, 교양서로 손색이 없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중요한 것은 생각의 방향이다. 그리고 열린 마음이다. 순종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학교에서 가르친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유의해야겠다. 그것이 길이요, 진리요, 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위험한 책들이 더 많이 읽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 대상이 인간이건 자연이건, 영웅은 투쟁한다. 그리고 정복한다. 투쟁과 정복, 그 이면에 있는 부정negation의 정신, 이것이 서양인의 정신적 특질의 원형이 아닐까?
…… 불의 앞에서는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저항하라. 저항 정신은 자유인의 권리이자 덕목이다. - P. 37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가르침이 사실은 거짓이다. 영웅이 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저항할 줄 모르고 비판 정신이 없는 사람은 자유인이 아니다. 노예와 같은 삶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되는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은 철학자들에게 한 수 배울 수 있다. 그대로 살 순 없다. 적어도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았으며 그러한 삶이 어떤 삶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철학자들을 소개하며 그들의 주저에 대한 해석과 영향을 밝히고 있다. 더 좋은 태도는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저서를 직접 만나는 일이다. 메모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겠다. 제목이야 어떠하든 철학은 우리의 삶에 등대처럼 오롯한 불을 밝혀 주기를. 평생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주변을 돌아보고 행복을 찾고 싶다면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의 진정한 즐거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물론 철학자의 이름을 모른다고 해서 불행하지는 않다. 주변에는 이미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이, 학문적 업적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정 행복한 삶과 즐거움을 찾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다. 배움은 어디에나 있고 책은 최후의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전히 저자가 말한대로 내게는 책은 참 희한한 물건이다. 그래서 또 다시 시간 여행을 떠난다. 물론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꿈을 꾸며.

책이란 희한한 물건이다. 사람의 뇌에서 이상한 전류가 흘러, 그 전류가 사람의 손끝에서 글자로 바뀌고, 글자들이 모여 인간의 감정과 사상을 담아낸다. 책이란 정신의 물질화다. 알라딘이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듯, 우리는 책이라는 독특한 물건을 타고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여행을 즐긴다. - P. 235


09022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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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회전, 혹은 혁명 revolution [철학콘서트 2권]
    from 사필귀정 2010-08-16 01:53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그리고 믿는다. 그런데 정작 영어 단어 revolution의 유래는 잘 몰랐다. 그 유명한 코페르니쿠스가 꺼낸 말이었구나. 책을 보고나서 알았다. 언론이며 광고에서 발상의 전환이니, 생각을 뒤집니 하면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는 말을 상용어구 처럼 사용해서, 뭔가 흔하다고 생각했나보다. 흔하디 흔한(?) 위대한 과학자.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의식이 보편적이라서 오히려 나의 의식은 이 대단한 코페르니..
 
 
 
한국의 인터넷을 논하다 - 포털.이용환경 그리고 규제
권헌영 외 지음 / 서울경제경영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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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10여 년 동안 가장 급격한 변화를 꼽으라면 단연 인터넷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이제 인터넷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가 되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IT 강국을 표방하며 정보화 산업을 육성했기 때문이 아니다. 정부 주도하에 발전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선 것이 우리나라의 인터넷 환경이다. 모뎀을 이용해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을 사용하던 통신족들이 네티즌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했고 90년대 중반부터 폭발적으로 증가한 사용자들은 미래를 가늠할 수 없었다. 자본이 결합되면서 벤처산업이라는 이름으로 희망의 배를 띄웠다.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 상태로 접어든 듯하다. 포털로 대표되는 우리의 인터넷 사용 환경은 검색, 뉴스, 쇼핑이 한 번에 해결되는 구조다.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서비스가 한 곳에 모여 다양한 서비스로 확산되는 구조다. 원스톱 사용 환경을 표방하는 포털의 영향력은 점차 강력해지고 있다. 포털에서는 그 외에도 커뮤니티나 블로그, 미니홈피 등 다양한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이용자들은 다양한 컨텐츠를 생산해 내고 있다.

  탄생에서 성장, 정착 과정이 워낙 다이나믹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변화 속도와 흐름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실 내일의 인터넷을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인터넷에 관한 수많은 논의들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고 어렵다는 말이다. 통상적으로 그 변화 가능성을 내다보거나 중요한 흐름을 짚고 싶을 때 쉬운 방법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지금까지 인터넷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조금은 예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터넷을 論하다>는 ‘인터넷 정책 연구그룹(인정연)’에서 펴낸 책이다. 법학을 전공한 권헌영, 홍승희, 황성기 교수와 사회학을 전공한 배영 교수가 공동 집필한 책이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하나의 주제로 쓴 책이 아니라 연구 그룹의 결과물을 묶어냈다. ‘포털, 이용환경 그리고 규제’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인터넷 실명제 문제 등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법적, 제도적 측면과 사회적 현상들을 두루 살펴보고 있어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들에 대한 궁금증과 원인과 대책들에 대해서도 고민거리를 제공한다.

  먼저 배영은 ‘인터넷과 한국사회’를 인터넷 포털서비스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의 진화와 포털의 진화는 그 맥을 함께 했다. 이제 문제는 콘텐츠다. 상생의 공간이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고민해 볼 부분이다. 권헌영은 ‘한국의 인터넷 규제 어떻게 전개되어 왔나?’라는 주제로 법률적 측면에서 인터넷 규제가 어떤 흐름과 전개 과정을 거쳐 왔는지 살펴보고 있다. 황성기는 ‘한국에서의 인터넷 규제’라는 주제로 포털 규제를 통해서 본 한국 인터넷 규제의 현재를 조망한다. 봉건제형 인터넷 규제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묻고 있지만 답은 우회적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인터넷은 어디로 갈 것인가? 홍승희는 ‘인터넷, 그 새로운 환경과 범죄의 온상?’이라는 주제로 클린 환경을 위한 처벌주의를 다시 고찰하고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네 명의 지상 토론을 정리하고 있다.

  보다 다양한 관점과 주제로 논의가 풍부하게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많은 사람들의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포퓰리즘에 휘말릴 수는 없다. 소위 ‘최진실 법’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살펴보았는지 그 부작용과 감정적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독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규제할 수 없고 규제해서는 안 되는 공간과 매체의 특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물론 포털 사업자나 일반 이용자들까지도 관점이 다르다. 이용목적이 다르고 각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일어날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인터넷이 어떤 공간이고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 발전적 전망과 규제의 범위와 대상 혹은 규제 자체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 이용자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며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이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인터넷은 산업적 측면이나 사회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에 이어 정치 공간으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2002년을 기점으로 현실로 드러난 웹 2.0 시대의 한국 정치는 규제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인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새로운 공동체의 도구가 될 것인가. 자율적인 규제와 자정작용만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법과 제도적 장치를 이용해서 규제 장치들을 늘려가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모두 동의할 수 있을까?

  한국의 인터넷은 특수성과 다른 나라와 다른 맥락 속에서 발전했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대안들도 제시될 수 있다. 모두 함께 꿈꿀 수 있는 재밌는 놀이터에 울타리를 칠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함께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특히 정보제공자와 매개자의 애매한 갈림길에 서 있는 포털들의 정체성에 대한 관점도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다음과 네이버로 대표되는 두 포털의 변신과 새로운 시도들이 절실하다. 정책이나 규제보다 한 발 앞선 변화는 오히려 그것들을 무력하게 할 수도 있다. 포털과 이용자는 그렇게 더 즐겁게 놀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처음 인터넷에 접속했던 넷스케이프 2.0의 아이콘은 등대였다. 검은 밤하늘을 비춰주던 희망의 불빛처럼 인터넷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환한 희망과 꿈을 현실 속에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꿈이 현실이 되고 다시 현실을 통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090216-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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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살림지식총서 324
이유선 지음 / 살림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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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속에서 대하는 용어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은 어렵다. 상황과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컨텍스트는 텍스트의 의미를 규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컨텍스트가 본래 의미를 훼손하는 경우에 있다. 빈번하게 사용하다 보면 본래 의미를 사라지고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사람들에게도 인식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는 언론이 한 몫을 제대로 한다. 지역 방언이 아니라 계층 방언처럼 비슷한 부류의 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나 특정 직업군의 사람들이 새로운 은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와 조금 다르다. 이미 존재하는 학술적인 용어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긍정적인 의미의 용어를 아전인수 식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곡학아세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실용주의는 철학 용어다. 퍼스가 처음 사용했고 듀이가 미국의 교육과 민주주의 문제를 다루면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후 언어분석철학의 물결로 쇠퇴했다가 로티에 의해 다시 주목 받는다. 실천적 유용성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우리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의미와 유사하다. 하지만 ‘프래그머티즘’이 나름의 원칙과 세계관을 가진 철학적 입장인데 비해 우리가 사용하는 실용주의는 특정한 태도를 말한다. 어떤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것을 최우선적인 가치로 삼으면서 이념이나 원칙 같은 것은 부수적인 것으로 본다.

  이쯤 되면 어디서 많이 듣던 흘러간 옛 노래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언론에서 혹은 특정 정치인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실용주의가 사실은 철학적 개념인 ‘프래그머티즘’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진짜 실용주의가 무엇이고 그것을 주장했던 철학자들이 대한민국에서 주창되고 있는 실용주의를 듣는다면 까무라 칠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용주의적 태도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실천적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공통분모도 있고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 적용대상과 범위에 대해서도 우리가 동의할 수 있을까? 이유선의 <실용주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실용주의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는 책이다. 표면적으로 실용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책이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시의적절한 신문 시평(時評)처럼 읽힌다. 이념과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통탄할 일들이 벌어지는 현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혹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점잖게 타이르는 듯하다. 때로는 날선 비판의 목소리로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학문적 입장에서 철학사상을 오도하는 현실에 분노했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실용주의의 참모습을 알리고 싶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각자가 처한 현실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현실은 달라진다고 믿는다. 그것을 아는 것이 먼저라면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추천할 만하다.

  살림지식총서의 한계라면 제한된 분량과 피상적인 논의의 수준일 텐데 오히려 머리 아프고 복잡하지 않다는 장점을 지닌다. 말하자면 실용적인 ‘실용주의’ 책이다. 핵심을 짚고 흐름을 파악하는데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개괄적인 수준에서 혹은 교양 수준에서 얄팍하다 싶겠지만 일반인들에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성이나 실용성 측면에서 뛰어나다.

  실용주의란 무엇인가를 말하고 태동과 전개 과정을 살펴 본 다음 실용주의적 관점들을 소개하나. 마지막으로 오늘날 우리에게 실용주의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당연하지만 마지막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이 뼈에 사무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제도와 규범을 넘어서서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실용주의자가 꿈꾸는 다원주의 사회는 이런 상상력이 억압되지 않고 마음껏 나래를 펼 수 있는 사회이다. - P. 19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개선시키는 것을 지식의 목표로 간주하는 실용주의자들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태생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에게 진보는 인간의 보편적 본성을 구현하는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극복해 나가는 실천의 문제이다. - P. 49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를 집어치우자. 모순된 말이지만 그리고 ‘실용주의’를 받아들이자. 위에서 언급한대로 제대로 된 실용주의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나간다.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실용주의를 실천하자. 인간의 자유를 옹호하고 단순한 돈벌이를 위한 실용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실용주의를 실천하자.

  현실을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꿈과 이상만을 강조할 수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현실 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안에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우리가 창조해 낼 수 있는 삶의 모습은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니다. 각자 소중한 삶의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회는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 다원적이고 민주적인 사회는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삶의 모습이다. 저자의 말이 실용주의라는 철학적 개념에 대한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헛된 꿈을 꾸는 이상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실용주의적 태도만으로 사람들의 삶을 유린하거나 왜곡된 개념으로 국민들을 호도하는 짓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워낭소리’를 “교육을 통해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 했던 것이 우리의 저력이 됐고 외국인도 이에 놀라고 있다”(한겨레신문, 기사등록 : 2009-02-15 오후 07:20:08 권태호기자)고 말하는 대통령이 특목고와 자사고 확대를 통해 교육 기회 불균형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영어 광풍과 암묵적 고교 등급제, 편법 본고사의 부활을 조장, 묵인하는 실용주의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연 그가 말하는 실용주의란 무엇인가? 허리띠 졸라매고 ‘대한민국의 힘을 믿습니다’라고 외치는 재벌의 광고 속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 그들이 말하는 실용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과거로 회귀하는 급행열차는 오늘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껍데기는 가라. 가짜 실용주의자도 가라. 실용주의의 의미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실용주의자가 되자.


09021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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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물음은 어떤 지식이 참이냐 하는 물음이 아니라, 어떤 지식이 어떤 상황에서 유용하냐 하는 것이다. - P. 15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제도와 규범을 넘어서서 새로운 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실용주의자가 꿈꾸는 다원주의 사회는 이런 상상력이 억압되지 않고 마음껏 나래를 펼 수 있는 사회이다. - P. 19

인간의 삶을 끊임없이 개선시키는 것을 지식의 목표로 간주하는 실용주의자들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태생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들에게 진보는 인간의 보편적 본성을 구현하는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소들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극복해 나가는 실천의 문제이다. - P. 49

실용주의 철학자들은 전체적으로 사고하고, 경계를 넘어서 사고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수위 취업이 잘되는 실용적인 학과와 과목만으로 커리큘럼을 채우는 대학은 역설적이게도 실용주의적인 정신을 죽이게 될 것이다. - P. 83

실용주의적인 지식이란 현실에 순응해서 돈벌이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처한 한계에 도전하면서,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창조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대학이 실용주의적인 지식인을 키우고자 한다면, 단편적인 지식이나 기능을 숙달한 직업적 전문가를 키울 것이 아니라, 폭넓은 교양을 갖추고 문제해결능력을 습득한 실천적인 지혜를 갖춘 전문적인(all purpose) 지식인을 길러 내야 할 것이다. - P. 86

실용주의자가 꿈꾸는 사회는 황금만능주의 사회, 경제지상주의 사회가 아니라 각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삶의 가치를 추구할 자유가 보장되는 다원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이다. - P. 88

  만약에 한국이 제국주의적인 신자유주의에 순응함으로써 새로운 계급제도를 고착화시킨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리나라’라고 부를 나라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실용주의는 한계에 직면해서 새로운 미래를 창조해 내자고 하는 철학이다. 이러한 과제를 위해서는 자율적이며, 창조적이고, 관용적인 사회 구성원들이 다수가 되어야 한다. 실용주의적인 교육은 경제적인 실리만을 추구하는 직업적인 전문가를 키우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실용주의자들은 교육을 통해서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한국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민주주의적인 시민을 길러 내야 한다. 교육은 가진 자들의 출세수단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어야 한다.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의 도전에 직면해 있는 한국에서 실용주의는 특정한 계층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인 슬로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실용주의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국면이 제기하고 있는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질서에 맞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연대를 위한 구호가 되어야 한다. - P.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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