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의 팡세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숙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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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리’. 우리는 더 이상 그 무게를 감당하고 싶지도, 그것에 속거나 공범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쉼표 하나를 위하여 죽게 되는 세상을 동경한다. - P. 8(언어의 위축)

  아포리즘aphorism은 시에 가까운 짧은 산문이다. 뚜렷한 하나의 생각이나 가치를 특별한 시선이나 생각을 압축적이고 간결하게 표현한 글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특별한 생각을 한다. 공감할 수 있는 자기만의 언어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면 아포리즘이 된다. 그러니까 일차적으로 생각과 시선의 문제이고 이차적으로는 표현의 문제와 결부된다. 짧은 단상을 수첩이나 일기장에 적어놓은 것들이 하나의 일관된 생각으로 모아지기도 하고 하나의 주제나 대상에 대해 갖고 있는 다양한 관점들을 표현하면 아포리즘이 된다.

  형식은 내용을 규정한다. 짧고 간결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긴 글보다 더욱 정확하고 치밀한 표현이 요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래 생각하고 낯선 시각과 자신만의 언어가 필요하다. 형식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내용만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아포리즘에 담긴 말들은 작가의 영혼을 대변하고 내면의 고백을 드러낸다.

  이성복의 아포리즘 <그대에게 가는 먼 길>을 두고두고 오래 읽은 기억이 난다. 사랑에 관한 문학에 관한 시인의 내밀한 고백은 그의 시보다 직설적으로 표현되어 깊은 감동을 주었다. 산문집과 달리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고백과 같았다. 오랫동안 전해오던 사소함들을 모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쓴다는 것은 오랜 글쓰기 훈련과 탄탄한 문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1976년 65세의 나이에 쓴 에밀 시오랑의 <독설의 팡세>는 신비로운 역설과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철학적 사유로 빚어낸 짧은 글들은 오래 두고 곱씹어 볼 만한 언어들로 가득하다. 시간, 고독, 종교, 사랑, 음악, 역사, 공허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삶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내밀한 고백과 시니컬한 시각, 독설에 가까운 비틀기는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관점들에 대한 반성을 요구한다.

  우울증과 자살에 관한 심각한 후유증이나 니체에 대한 몰입 등 그의 젊은 날이 이 책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누구나 겪게 되는 삶에 대한 회의나 인생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모두 철학자를 만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그저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시간의 벽 앞에서 우왕좌왕하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나 일말의 ‘희망’을 볼모로 삶을 지탱해나가고 있다. 긍정적인 태도와 유쾌한 웃음 뒤에 숨은 진실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면서.

  에밀 시오랑은 슬픔과 우울 그리고 불면과 절망 속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작은 고백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개인적 삶이 평범하지 못했고 세상을 비극적으로 인식한 듯한 태도와 달리 그의 글은 아름다운 언어의 서정으로 가득하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그의 삶을 지탱해 준 유일한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80세가 넘도록 살아낸 것도 아이러니 하지만 젊은 나이에 조국을 떠나 40세이 이르도록 직업도 갖지 않고 대학 구내 식당을 전전하며 그가 고민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주 오래 전에 쓴 아포리즘이 지금 읽히는 것은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역설이 빛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삶은 때때로 비극적 환상을 심어주기도 하고 눈부신 기대로 유혹하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어떻게 펼쳐지든 켜켜이 먼지 앉은 세월의 두께를 이겨내야 하는 시찌프스의 형벌이 인간의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침대에서 일어나면서 기적 같은 일로 오늘 하루를 채우겠다고 결심하는 마술사가 된다. 그러고는 침대에 다시 누워 사랑, 돈…… 난처한 문제들을 저녁까지 되씹는다.

*

실망하기를 거부하는 인간보다 저질의 인간은 없다. - P. 89(고독의 서커스)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은 그 사람과의 대화를 의미한다. 대면적 접촉을 넘어 깊은 사색의 영역을 공유한다는 면에서 일상적인 대화보다 한 인간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모든 것이 객관적이고 수치화될 수는 없다. 특히 인간의 내면에 관한 한.

  그리하여 한 사람은 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을 알게 될 수록 사랑하게 된다. 모든 관계가 그러하진 않겠지만, 어쩌면 모든 고통과 비극의 시작은 사랑이다. 그래서 에밀 시오랑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랑의 존엄성이란 흥분의 순간이 지나고 남아 있는 허탈한 애정에서 오는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무한을 내포하고 있다. - P. 137(사랑의 생명력)



09032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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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양피지 - 캅베드
헤르메스 김 지음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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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반신반의 하는 경우 대개 실패할 확률이 높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선입견일 지도 모르지만 경험상 그렇다.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이지만 세상이 이성과 논리로만 살아지지는 않는 법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선택의 순간은 잔인하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만 망설이다 보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후회라는 대가를 치르거나 다른 가능성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만든다.

  책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고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행복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만 행복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른 갈등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예상하지 못한 난관에 부딪치고 어쩔 수 없는 길을 걷기도 하며 엉뚱한 행운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인생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법이다. 계획된 길을 순서대로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생의 이면에 숨은 진실이 있는 법이다.

  그것을 알려주겠다고 나선 많은 사람들과 책들과 예언가들이 있다. 믿어도 그만 믿지 않아도 그만이지만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알면서도 끊임없이 그 방법에 대해, 지름길에 관해 알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한다. 그 틈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들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만큼이나 많다. 헤르메스 김의 <기적의 양피지 캅베드>도 그러하다.

  철학자 김용규의 필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이전의 저작들에 대한 믿음과 자기계발 종류의 책 사이에서 한참 망설이다. 출판사가 보내주겠다는 책을 받아보기로 했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떨치지 못하는 이 묘한 느낌을 뭐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은 책의 의도와 글 사이의 조화만큼 기묘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은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 주는 책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는 것이 철학의 궁극적인 의무라면 가장 직접적이고 실천적인 정답을 제공하는 책이다. 철학자 김용규는 에둘러 말하기보다 대중 속으로 들어가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삶의 원리 몇 가지를 제공하고 있다. 여전히 갈등하고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 나온 지혜를 빌릴 수도 있을 것이고 인생의 비밀을 알고 난 후의 허무함이나 그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괴감을 동시에 느낄 수도 있다.

  책 속의 주인공 아리의 정식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오나시스’다. 참 재미있는 이름이다. 선박왕 오나시스의 본명에 두 명의 철학자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리는 도움을 준 어느 랍비로부터 양피지 두루마리를 얻게 된다. 양피지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비법이 숨겨진 놀라운 내용이 적혀있다. 아리는 양피지에 적힌 대로 실천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돈을 벌게되고 원하는 여자를 얻게 된다.

  윈스턴 처칠과의 세대를 뛰어넘는 우정은 물론 그레타 가르보와 마리아 칼라스, 그레이스 켈리, 재클린 케네디에 이르기까지 그의 여성 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도대체 무일푼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그의 인생 역정은 영화나 드라마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그에게는 특별한 삶의 원리가 실제로 존재했고 그것을 실천해 옮겼다. 당연히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고 그 행동과 실천의 결과 그가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성공한 실존 인물에 대한 자서전이 아니다. 저자 특유의 인문학적 지식과 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철저한 자료조사로 빚어낸 팩션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쉽고 편안하게 읽히는 문장과 치밀한 구성은 저자의 수고와 노력을 알 수 있게 한다.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의 목표를 세우지 못하는 사람에게 한 번쯤 권해 줄 수도 있는 책이다.

  이 정도 노력과 공이 든 책이라면 자기 계발서든 성공담이든 읽어 줄 용의가 있다. 유독 돈벌이에 관한 혹은 자기 계발에 관한 책들이 잘 팔리는 대한민국이고 보면 특별히 그런 종류의 책을 싫어하는 내게도 문제가 있겠다. 이 책은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좋은 책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는 딜레마에 빠졌다.

  양피지에 적힌 내용들은 너무 당연해서 하품이 나올만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오히려 설득력이 없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노력과 실천인데 실증적인 사례로 든 것이 바로 오나시의 삶이다. 그는 선한 의도로 얻었듯이 바닷가를 찾아온 사람에게 전하는데 그가 바로 빌 게이츠의 아버지다. 그런데 과연 세상이 노력과 실천만하면 그에 합당한 결과를 가져다 줄까? 지극히 개인적인 노력만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을까?

  구조적 모순이나 문제점을 모두 개인의 탓으로 돌리게 되는 의도하지 않은 오류를 범하게 된다는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단한 노력과 열정만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이렇게 말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허탈감은 그래서 생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력해도 안되는 일은 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 누구나 같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비애를 가르쳐 주는 책은 없을까?

아리는 분명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겠다는 자신의 순수했던 소망보다는 세속적인 욕망으로 눈을 돌렸다. - P. 203

  이 책이 자기모순에 빠진 대표적인 문장이다. 컨텍스트를 고려하지 않고 하나의 문장만으로 문제를 지적하자는 게 아니다. 아리는 엄청난 부를 획득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겠다는 것이 순수한 ‘소망’이라면 세속적인 ‘욕망’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물에 반사되는 햇빛의 속성은 눈의 높낮이와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뿐이다.

  어쨌든 캅베드에 적힌 내용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서점으로 달려가 중간 중간에 삽입된 황금색 바탕의 양피지 내용들을 읽어보고 판단하고 선택할 것을 권한다. 책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그렇게 살 것인가 말 것인가!


090317-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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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코스키가 간다 - 제2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한재호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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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날과 비오는 날 중 언제를 좋아하시나요? 누가 묻는다면 나는 비오는 날이라고 대답한다. 그건 날씨의 문제가 아니다. 정서의 문제이고 태도의 문제다. 날씨와 정서라니? 날씨와 삶의 태도라니?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귀찮을 때 사람들은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비오는 날이 그냥 좋은 거다. rainy라는 아이디를 오랬동안 썼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뭐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비가 좋다는 정도. 굳이 찾으려면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과연 그러한 이유들 때문일까 싶기도 하고.

  그녀를 만날 때면 언제나 비가 내렸다. 이렇게 시작하는 연애 소설이 아니라, “말도 안 돼.”로 시작하는 말도 안 되는 소설이 <부코스키가 간다>라는 한재호의 장편 소설이다. 제 2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이 소설은 ‘말도 안 돼’로 시작해서 말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다. 모든 문학이 그러하듯이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해석되거나 혹은 의도적 오류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시대를 벗어난 소설이 존재할 수 없듯이 이 소설도 불안한 21세기의 한 복판을, 지금 우리들의 자화상을 통렬하게 비꼬는 듯하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은 시대를 거스를 수 없을 것처럼 강렬하다. 고용 없는 성장과 승자 독식의 시대로 표현되기도 하는 이 시대의 괴물과 맞서 싸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싸움의 대상도 모호하고 자본의 그림자에 포섭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어느 시대에나 그렇듯이 움직이지 않는 다수와 발 빠르게 적응하게 살아남는 소수 그리고 이건 아니라고 외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이 소설의 주인공은 ‘88만원 세대’의 전형이다. 소설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30대 소년’은 시대의 산물이다. 대학졸업 3년차, 예비군 6년차인 주인공의 일상은 이력서 쓰기와 웹서핑으로 요약된다. 무임금 노동이지만 시대를 견뎌내는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하다. 개인이 손 쓸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 늙은 소년의 이야기가 바로 <부코스키가 간다>의 화자다.

  주인공으로 나선 부코스키는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며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모든 등장 인물을 이끈다. 보이지 않는 괴물이 보이는 실체로 등장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고 없는 대상을 구체적 인물로 등장 시킨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부코스키의 정체도 존재도 알 수 없고 그 의미는 점점 모호해지면 캐릭터는 흐려지고 사라진다. 적어도 내 안에서 부코스키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오롯이 청년 백수만 남았다.

  소설을 통해 현실을 읽어내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것은 일견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소설의 재미는 거기에서 찾아지지 않는다. 이 소설의 즐거움은 부코스키의 정체에 있다. 그가 비오는 날 아침 아홉시가 되면 어김없이 길을 나서는 이유 때문에 독자들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의 뒤를 밟는 주인공 백수 청년의 시선으로 그를 따라간다. 도대체 ‘왜’라는 호기심을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 종반으로 치달을수록 부코스키의 정체보다 화자인 청년백수에게 시선이 옮아간다. 그가 살아온 시간이나 살아갈 과정이 아니라 지금 현재 그가 겪고 있는 혹은 견뎌내고 있는 시간들이 바로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대를 탓해 보아야 피해는 개인에게 남겨질 뿐이다. 구직행위는 힘겨운 무임금 노동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지만 대가없이 시간만 흐른다. 이 소설이 치기어린 백수의 세상 도전기와 다른 이유는 우리 시대가 양산해 놓은 넘을 수 없는 벽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노력하지 않거나 게으르거나 목표와 희망이 없어서 놀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청년백수가 견뎌야 하는 것은 개인의 아픔이 아니라 시대의 통증이다. 이 소설은 그렇게 새로운 세대와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른이나 먹은 늙은 소년을 통해 성장통을 읽어야 하는 독자 또한 마음이 편치 않다. 추리 소설적 요소가 개입되어 스토리를 이끌어 가고 화자의 반복적 일상과 경쾌한 문장과 표현들은 흡입력있게 독자들을 끌어들이지만 장편으로 끌어가기에는 허약한 이야기와 ‘거북이’의 캐릭터가 모호하다. 쫓는 자에서 쫓기는 자로 설정된 상황은 흥미롭지만 끝내 그 연쇄적인 고리의 의미를 드러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작가의 시작인 작품이니 많은 응원과 박수가 필요할 것 같다. 늘 그러하듯이 경쾌하고 가볍게 현실을 비틀고 웃음과 눈물을 비벼줄 수 있는 작품을 독자들은 항상 기다리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삶에 대한 질문들을 스스로 해결해 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다음 작품을 기다릴 수 있겠다. 정답은 없다. 다만 무언가를 쫓는 과정, 그 지난한 과정이 삶이 아닐까?

  그러면서 무언가에 쫓기는 인생. 우리는 그 영원한 순환 고리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시대를 넘어서 세월을 이겨내고 치열한 삶의 문제들을 풀어내는 과정은 결국 내 안에 있다는 사실만 확인할 지도 모르지만 문제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청년백수와 그 애인 그리고 놀이터에서 만난 민호와 부코스키는 모두 제 자리에서 그만큼의 무게를 짐 지고 있다.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소설가의 몫이 아니라 현실에서 우리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무엇인가 쫓고 있다면, 아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다면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봐야한다. 비가 오지 않는다면 오늘은 안심이다. 부코스키도 별 일 없이 가게를 지키고 앉았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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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방가르드 비타 악티바 : 개념사 5
노명우 지음 / 책세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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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나를 격동시키는 것은 오직 자유라는 말뿐이다.”(초현실주의 선언, 앙드레 브르통, 1924) - P. 84

  어디에도 길은 없었다. 처음부터 만들어진 길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 사람, 두 사람 걷다보면 길이 된다. 중요한 것은 길이 아닌 곳에 처음 발을 디디는 사람이다. 도전자, 개척자, 선구자로 명명되는 그들은 소리 없이 사라지기도 하고 역사에서 영웅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이 어떤 사명감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수하게 내적인 욕망이 넘치거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했을 것이라 믿는다.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이기적인 목적이라면 중간에 서 있으면 된다. 군대생활의 비법이라 전해지는 그것처럼.

  앞장 서는 사람은 외롭다. 때로는 혹독한 비난을 감수해야 하며 미쳤다는 소리도 들어야 한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에게 항상 격려와 박수가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행동한다고 해서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행동하다 보면 몸은 편하고 정신도 고달프지 않다. 하던 대로 하면 된다. 남들이 하던 대로. 그러면 최소한 중간은 가고 나에게 커다란 불이익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걸 철이 든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현실에 적응했다고 표현하기도 하며 나이가 들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긍정적 의미이든 부정적 의미이든 철들지 않는 게 나의 인생 목표 중 하나다. 나이 값 못하고 싶은 게 작은 바람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얄팍한 이기심과 눈앞에 이익만 생각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귀찮아서 혹은 몰라서 그렇게 사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만 이기적인 목적이나 뻔히 들여다보이는 이유 때문이라면 오래가지 못한다. 자신을 물론 주변 사람들도 금방 안다. 모른 척 해도. 문제는 그런 사람들의 삶의 방법과 태도가 확고한 신념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오르기도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불행이다. 그것을 깨뜨리기 위한 연대와 실천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혼자라도 나서 척후병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흔히 찾기 어렵다.

  시대를 앞서 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진정한 아방가르드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근대 예술 분야에서 나타난 유일한 흐름만이 아방가르드는 아닐 것이다. 도도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미래를 향한 흐름을 읽어낸 사람들을 우리는 진정한 아방가르드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아방가르드라는 말은 전투의 선봉에 선 척후병을 이르는 말이었다. 미래의 예언자이며 후위 전체를 책임져야 하는 첨단의 위치에 선 사람을 의미하는 말이 아방가르드다. 예술사에서 전위부대가 등장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예술가들이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기에 등장한 자연스런 흐름이다. 패트런이나 궁정소속으로 신분 자체가 독립적이지 못한 예술가에게 아방가르드라는 말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끝없는 도전과 도발을 통해 기성 예술의 권위를 공격했고,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예술을 시도했던 사람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과거의 예술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예술을 시도하고 보여줬으며 온몸으로 실천했던 사람들이 아방가르드다. 회의적 시선과 비판적 관점이 아방가르드의 조건이다. 전통을 거부하고 민첩하고 용감하게 그리고 대범하게 행동으로 옮긴 예술 행위를 우리는 아방가르드라고 부른다.

  노명우의 <아방가르드>는 이러한 흐름과 예술사의 과거를 추억하는 책이다. 예술사는 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인류의 역사가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였듯이 말이다. 미술관과 박물관에 박제된 예술에 대한 도전과 반항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을까? 궁정 예술과 후원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예술은 어떠했을까? 책세상의 개념사 시리즈는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기획으로 좋은 책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미래파 선언, 초현실주의 선언 등 아방가르드의 도발이 시작된 것은 사회, 역사적 환경에서 비롯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회적 배경이나 문화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화장실 변기를 오브제로 사용하여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뒤샹을 누구 쳐다보기나 했겠는가? 이제 그 변기는 미술품 경매장에서 1700만 달러에 거래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방가르드는 지나간 역사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예술이다.

  더더욱 독창적이고 전위적인 예술적 시도가 오히려 예술 자체에 대한 회의를 품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거드름을 피우거나 미술관 안에 박제된 예술에 대한 거부는 계속될 것이다. 다변화되는 사회에서 고정된 예술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자본에 포섭된다. 역설적으로 기존의 질서와 권위에 대한 파괴로 명성을 얻은 예술품들이 이제는 가장 상업적인 미술품이 되어버렸다. 자본주의의 산업시스템은 모든 예술품을 화폐로 환산시키는 위력을 발휘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아방가르드의 미래를 걱정할 수밖에.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아니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언제나 아방가르드는 있다. 실패와 성공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감내하면서 우리는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동참할 준비를 해야한다. 한발 더 나아가 내가 아방가르드가 되어야 한다는 진취적인 생각과 행동이 세상을 조금 바꿀 수 있다. 나는, 아니 우리는 항상 그들이 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들이 전해주는 미래의 메시지를 기다린다. 아방가르드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0903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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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지승호 인터뷰어, 김수행 대담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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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은 읽으면서 감정이 기복이 심해진다. 한 사람이 저자와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며 울고 웃는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고 때로는 파안대소하며 하늘을 보며 웃는다. 잔잔한 미소와 쓴 웃음이 교차하기도 하고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겨우 참기도 한다. 한 인간에게 한 권의 책이 주는 영향은 지대하다. 영혼의 참된 스승은 종교가 아니라 책이라고 믿는다면 많은 종교인들에게 몰매를 맞을까?

  평생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확인할 수도 있는 한 권의 책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가. 앎의 세계는 끝이 없고 인식의 힘을 기르는 일은 내 존재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어렵고 난해한 철학책 한 권을 붙들고 평생 씨름할 수도 있고 재미있는 만화책을 하루에 수십 권씩 읽어낼 수도 있다. 문제는 내 영혼의 깨달음이다. 그 도구가 책이든 아니든 말이다. 가장 손쉽게 값싸게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는 여전히 책이 담당하고 있다.

  지승호는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인터뷰어다. 지금까지 지승호가 보여준 혹은 만난 사람들과 엮어낸 책들은 그것을 간단하게 증명한다. 전문 인터뷰어로서 한 우물을 파는 일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 많은 어려움과 고통들을 즐길 줄 아는 인터뷰어가 지승호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읽어온 지승호의 인터뷰집은 앞서 말한 책이 주는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고 있었다. 한 사람의 이름만을 믿고 책을 사게 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승호는 내게 그런 인터뷰어다.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경제를 말하다> 또한 기대에 부합하는 책이다. 인터뷰이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게 아니라 곤란한 질문도 하기 싫은 말도 해야 한다. 혼자서 잘 알거나 하고 싶은 말만 써 놓은 것을 읽어야 하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색다른 즐거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독자의 입장을 대신하는 인터뷰어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지승호의 인터뷰집은 인터뷰이에 대해 샅샅이 훑어낼 수 있는 지독한 근성과 철저한 준비가 돋보인다.

하여간 당신한테 잡히면 끝장을 봐야 돼. 이제 정말 끝난거야?(웃음) - P. 338

  인터뷰이 김수행의 마지막 말이다. 난 이 말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인터뷰어 지승호에게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있을까 싶다. 믿을만한 인터뷰어 지승호가 김수행으로부터 끌어낸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경제’ 이야기다. 1987년 ‘서울의 봄’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 김수행의 서울대 교수 임용은 상징적 사건이었다. 그가 이제 정년 퇴임을 했고 그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전공 교수는 아직 임용되지 않고 있고 임용될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인다. 주류 경제학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들만의 리그는 여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언제나 비주류와 소수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고 그들과 공감할 수 있어야 세상은 조금씩 따뜻해진다고 믿는 나는 지승호의 인터뷰가 가슴 아팠다. 2009년 대한민국의 경제 상황도 그가 던지는 질문의 깊이도 김수행의 대답도 모두 현실에 대한 뼈아픈 반성이며 새로운 사회에 대한 도전과 질문들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희망은 있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살아가지만 모두가 공감할 만한 정책도 대안도 부재한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했다.

  자본주의를 거쳐 사회주의로 그리고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간다는 마르크스의 생각이 21세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고 그의 이론들이 현재적 유용성을 가진 것인가부터 논란의 초점이 된다. 용도 폐기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구소련이 붕괴했고 중국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용인함으로써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자유주의 물결은 지구를 뒤덮었고 불평등한 게임인 시장의 논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믿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면 알려야 하고 알고 있다면 연대와 행동으로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 책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 고민의 단초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은 21세기 한국 경제를 위한 대안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은 마르크스 경제학에서 아이디어를 빌려 올 수 있다. 혁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믿는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넘어서는 상상력은 몽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 한다. 분명한 문제들이 노출되고 민중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는데 손 놓고 앉아 마냥 하늘만 쳐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점진적 혁명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말자. 세계적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허리띠만 졸라매면 되는 게 아니다. 대졸 초임 임금을 깎아 고용을 늘리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고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우리들이 원하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어쩌면 한 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현실과 살아갈 세상을 있는 그대로의 거역할 수 없는 고정된 실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우석훈과 김수행이 함께 나눈 대화들은 참담한 현실에 대한 확인이며 미래의 희망을 촛불에 담아내려는 뒷담화에 불과하지만 읽는 사람들에게 알고 행동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언제나 지식의 종착역은 행동이므로.

  민중들의 외침을 외면한 어떤 정권도 살아남지 못했으며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 걸음씩 이 사회를 이끌고 나아왔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이 땅의 참 주인인 민중들의 힘이었다. 노동자, 농민들이 삶의 현장에서 땀흘려 이루어낸 작은 결실들이 자본의 논리로 어처구니없는 힘의 논리로 사라져버리는 일이 없도록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 우리들 모두의 몫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아버지가 노동자, 농민이었고 우리들이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지승호는 우리에게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 긴 인터뷰를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090308-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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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4 17: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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