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 한번 하자.
  - 싫어.


  도입부가 황당한 소설이다. 독자들은 어리둥절한 채 ‘한번 하자’의 목적어를 찾기 시작한다. 작가는 모른 척하고 주인공의 일상을 서술하기 시작한다. 눈을 뜨자마자 담배를 찾다가 ‘명호씨’의 것을 슬쩍 하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고3 남학생이다. 수능이 끝나고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는 주인공 ‘준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섹스’밖에 없다. 여자 친구 ‘서영’이게 ‘한번 하자’고 조르는 고3 남학생의 모습은 너무나 적나라하여 오히려 코믹하게 읽힌다.

  청소년들에게 ‘성(性)’에 관한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내려놓을 수도 먹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 사춘기를 겪으면서 성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최고조에 이른다. 보통명사가 되어버린 ‘야동’은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최고의 성교육 학습 자료다. 인간의 신체 발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 현실에서 답을 구할 수 없어 생기는 괴리현상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입시와 취직 전쟁을 피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 소설조차 드물다. 현실은 고사하고 문학에서조차 금지되어 있는 청소년들의 성문제를 본격적인 주제로 다루고 있는 박현욱의 <동정 없는 세상>이 빛나는 첫 번째 이유가 여기 있다.

  인 에릭 로샹의 영화 『동정(同情) 없는 세상』을 『동정(童貞) 없는 세상』으로 표현한 이 소설은 제6회 문학동네작가상 당선작이며 박현욱의 데뷔작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소설이 영화화되어 주목받기도 했는데 현실적 인간, 사회적 제도 문제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 듯싶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는 인간이 성장하고 발달하는 과정을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나가는 과정으로 설명했다. 그는 먼저 인간 본성에 대해 세 가지 가정을 하고 있다.

1. 인간은 만족할 수 없는 욕구를 갖고 있다.
2. 인간의 행동은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3. 인간의 욕구는 기본욕구(생리적인 욕구, 안전욕구)에서부터 상위욕구(소속과 애정욕구, 자아 욕구, 자기실현의 욕구)까지 5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욕구 충족에는 위계가 있어서, 마치 우리가 양동이에 물을 부으면 아래로부터 위로 물이 차오르듯이, 반드시 하위에 있는 욕구가 먼저 충족되고 나서야 상위 수준의 욕구를 추구할 수 있다고 한다.

  서론이 너무 장황했나? 생리적인 욕구가 해결되지 않고 이해도 설명도 해결도 되지 않는데 어른들은 대학 입시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요구한다. 청소년들의 성문제는 단순한 억압이나 교육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결혼하는 나이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는 점점 더 높은 학력과 교육과정이 요구된다. 대한민국에서는 군대까지 갔다 와서 최소 20대 후반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소설의 미덕은 첫째가 ‘재미’다. 이 소설은 재미도 분량도 서점에 서서 두어 시간이면 읽고 나올 수 있다. 우선 책읽기의 재미를 붙이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찾는 다면 가볍게 <동정 없는 세상>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성장 소설이라고 불리는 소설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이 소설은 가장 직접적이고 솔직하다. 정공법을 선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지름길인 경우가 많다. 에둘러 설명으로 하품나는 성교육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을 지루하게 하는 것보다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상담과 문제 해결 방법을 고민할 때다.

  이 소설은 단순하고 재미있는 ‘준호’의 성장 소설만으로 볼 수는 없다. 준호는 아버지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게다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백수 삼촌을 ‘명호씨’라고 부르고 어머니를 ‘숙경씨’라고 부른다. 막나가는 학생이라는 뜻이 아니다. 개방적이고 우호적인 어머니의 태도는 준호의 ‘대학’ 고민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만든다. 적어도 부모의 기대나 억압 때문에 좌절하거나 고통스러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준호의 고민은 오늘도 내일도 한 번 하는 것뿐이다. ‘엄친딸’인 여자 친구 서영이는 잘 생긴 나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하지만 그녀 역시 남자친구 문제로 고민했을 것이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대한민국의 학벌문제, 한 부모 가정, 청년실업까지 읽어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준호나 서영이의 상담역으로 등장하는 삼촌 ‘명호씨’는 십 년째 박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다. 준호의 성문제를 상담하는 내용이나 대학에 가야하는 이유에 대한 짤막한 충고가 이 소설을 가볍게만 볼 수 없게 하는 요소가 된다. ‘한번 하자’로 시작해서 ‘한번 하자’로 끝나는 재미있고 유쾌한 소설을 통해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현주소를 짚어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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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레종 데트르 - 쿨한 남자 김갑수의 종횡무진 독서 오디세이
김갑수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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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쿨하지 않은 남자 김갑수의 쿨한 책읽기. <나의 레종 데트르>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 의한 독서 편력기이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든지 우리는 ‘나’의 존재의 근원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순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지난한 과정들. 그것이 삶이 아닌가 싶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가족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대체로 책 속에서 새로운 만남을 갖는다. 존경할 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부터 괴짜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만나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나는 그래서 책을 읽는다.

  내가 알고 있는 쥐꼬리만한 지식과 세상에 대한 인식의 틀은 모두 책 속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차적으로 나를 키워준 부모님과 내 가족과 학교 교육과정과 직업에서 기인하는 정체성은 표면적으로 사회적 ‘나’를 말해준다. 하지만 나는 책을 통해 인격을 형성하고 세상을 알았으며 삶의 태도와 방법을 배웠고 생의 의미를 깨달았다.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관점을 통해 내 존재 의미를 생각하고 내일을 꿈꾼다. 거창한 꿈을 꾼 적도 없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내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돌아보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그러나 책은 어쩌면 또 다른 욕망의 블랙홀과도 같다. 책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책을 통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점이 변화하고 책 속에서 절망한다. 또 다시 끊임없는 상상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나 스스로를 간서치라고 명명하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책 읽는 인간은 현실을 조금 먼 거리에서 바라보게 된다는 게 나만의 착각일까. 투명한 유리벽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세상이 아득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도 책은 내 삶의 도구이고 길잡이며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배설구이다.

  음악 듣고 책 읽는 사람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의 갈피들은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상적인 것들이다. 그가 소개하는 수많은 책들을 읽었고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생각들을 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눈빛으로 빛났을 것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는 그가 분명히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책도 일이 되면 힘들고 지겹기도 할 것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즐거움을 감출 수는 없다.

  이 책은 대체로 태어난 지 10여 년 언저리를 넘나드는 책들과 고전들이 뒤섞여 있는 변주들이다. 하나의 주제 혹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들을 엮어 책의 내용들을 소개하고 특징을 잡아내며 해석을 보태고 있다. 읽었던 사람은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연관된 책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호기심과 관심을 유도한다.

  전체 16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성교로 시작해서 민족주의의 그늘로 끝난다. 시작은 다분히 자극적이지만 소개된 책과 그것을 분석하는 내용은 오히려 슬프다. <카사노바 나의 편력>,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악마>, <나도 때론 포르노그래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나는 솔직하게 살고 싶다>, <문학으로 보는 성>, <사랑은 진할수록 아름답다>가 첫 번째 채널에 소개된 책이다. 면면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성에 대한 담론을 중심에 두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돌아본다. 나와 우리를 살펴보는 것은 책을 통한 세상 읽기이다. 솔직하고 돌발적인 발언들이 조심스러움으로 포장되어 있다.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문장이나 적극적이고 계몽적인 표현과 거리가 멀다. 감성적인 인간의 책읽기가 빚어낸 이성적인 글쓰기가 독자들에게 적당한 자극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한다.

  한 채널에 예닐곱 권이 소개되어 있으니 줄잡아 백여 권이 소개되어 있다. 재미나는 인생, 멜로디를 넘어서, 소설, 고전의 미로, 영혼의 문제, 사람들, 운명 등 특별히 계통성 있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자유롭고 즐거운 책읽기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심각하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읽은 책은 요약적이거나 교훈적이다. 하지만 그의 책읽기는 목적이 없는 유목이며 공허한 영혼을 달래기 위한 처방전과 같다.

  휴가철이나 방학이 되면 추천도서 목록이 넘친다. 책읽기가 취미라니! 일년에 잠시 여유 시간이 있을 때만 독서를 즐기는 사람은 책을 화려한 파티복이나 보석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포장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책읽기는 본질적인 독서의 즐거움을 잃어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부터 책읽기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책읽기에 관한 책이나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 한 권을 권하고 싶다.

  무슨 책을 어떻게 왜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은 김갑수식의 종횡무진 책읽기를 권한다. 주제별로 유사한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좌충우돌 읽은 책들의 한줄 꿰기. 만만한 작업도 쉬운 방법도 아니지만 책 자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더디지만 가장 행복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 바쁜 세상에 정처 없이 길을 나서는 일이 어디 쉽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이유를 말할 수 없듯이 책을 읽는 이유를 말하기도 어렵다.

  김갑수가 적극 추천했던 아직 못 읽는 책들, 읽었지만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책들이 또 다시 도서목록에 오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이렇게 책 읽기과 사람읽기, 세상읽기의 안내자가 되어준 사람들의 목록을 한번 적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내게는 그들이 삶의 나침반이고 길잡이며 고마운 스승이다.


090803-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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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문학과지성 시인선 358
정일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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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초가 길 때

사랑이 위대한 것은
번쩍,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나를 찌르기 때문이다
서정시가 위대한 건
시 한 편을 읽는 그 짧은 순간
사람의 영혼, 자연의 색깔로
달궈지기 때문이다
나를 찔러 쓰러뜨리지 못하는 사랑은
나를 달구지 못하는 서정시는
그건 실패한 암살범과 같다
사랑은 목표물 향해 이미 당겨진 방아쇠
서정시는 전부를 쓰러뜨리는 한순간의 감염
테러리스트여 번개처럼 나를 찔러라
당신의 칼끝 나를 치명상 입히는 데
1초도 긴 시간이니


  서정시를 읽는 여름밤, 창밖의 내린 어둠만큼이나 가슴이 먹먹해진다. 산다는 일이 ‘그립다’는 말 한마디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여전히 따뜻한 가슴으로 움직여진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랑’을 이야기 한다. 서정시는 사랑이다. 1초도 긴 시간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것은 사랑의 역설이다. 폐부 깊숙이, 단번에 찌를 수 없다면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속도가 승부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승부가 결정되고 난 뒤 속도의 문제가 남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읽히고 머리를 거쳐 발에 도달한다. 다른 글과 구별되는 시의 특징은 전달 방식이 아니라 속도와 여운에 있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처럼 따뜻하게 전해지고 의미가 구성되고 전체가 다가오며 천천히 감동이 밀려오지 않는다. 이해되기 전에 전달된다는 엘리어트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서정시가 내게 도달하는 시간은 1초도 길다.

  정일근의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를 1초 만에 읽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누구나 기다리는 일이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무엇을 기다렸을까? 아니 무엇을 기다리며 사는 것일까? 기다릴 줄은 아는 것일까? 먼 바다에 나가 고래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다.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먼 바다로 나가 하루 종일
고래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사랑이 한 마리 고래라는 것을
망망대해에서 검은 일 획 그으며
반짝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지는 고래는
첫사랑처럼 환호하며 찾아왔다
이뤄지지 못할 사랑처럼 아프게 사라진다
생의 엔진을 모두 끄고
흔들리는 파도 따라 함께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뜨거운 바다 위에서
떠나간 고래를 다시 기다리는 일은
그 긴 골목길 마지막 외등
한 발자국 물러난 캄캄한 어둠 속에 서서
너를 기다렸던 일
그때 나는 얼마나 너를 열망했던가
온몸이 귀가 되어 너의 구둣발 소리 기다렸듯
팽팽한 수평선 걸어 내게로 돌아올
그 소리 다시 기다리는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고래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에서부터 푸른 어둠이 내리고
떠나온 점등인의 별로 돌아가며
이제 떠나간 것은 기다리지 않기로 한다
지금 고래가 배의 꼬리를 따라올지라도
네가 울며 내 이름 부르며 따라올지라도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사람의 서러운 사랑 바다로 가
한 마리 고래가 되었기에
고래는 기다리는 사랑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기에


  하지만 고래는 기다리는 사랑이 아니라 놓아주어야 하는 바다의 사랑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있을까? 삶의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정일근의 이번 시집은 온몸으로 신음소리를 낸다. 기다림은 이별 이후에 찾아오는 고통의 화인같은 것이다. 그의 시집 곳곳에 숨어 있는 삶의 고통과 허망함은 우리의 그것들과 구별되지 않는다. 울산 ‘은현리’라는 예쁜 이름의 동네에서 살고 있는 시인이 보인다. 기다림과 그리움 사이에 서 있는 시인의 모습이.

  시집을 다 읽고 난 후 홍정선의 해설을 본문만큼 재미있게 읽었다. 시집 곳곳에 묻어 있는 상처를 확인하고 그의 생을 들여다보는 일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시인에 대해 말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홍정선을 용감하게 그리고 차분하게 헤쳐 나간다. 시인을 통해 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통해 시인을 말하는 일이 위험천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있게 그리고 차분하고 꼼꼼한 시읽기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우주를 이해하는 일이다. 생의 진솔한 기록이기도 한 시를 통해 시인을 읽어내는 일은 아프지만 감동적이다. 서정시는 시인의 영혼을 기록한 것이다. 그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알 수 있고 그의 말과 숨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더구나 그가 보여주는 세상과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한다면 두 말할 나위 없다.

자연론

풀 한 포기 밟기 두려울 때가 온다

살아 있는 것의 목숨 하나하나 소중해지고

어제 무심히 꺾었던 꽃의 아픔

오늘 몸이 먼저 안다

스스로 그것이 죄인 것을 아는 시간 온다

그 죄에 마음 저미며 불안해지는 시간 온다

불안해하는 순간부터 사람도 자연이다


  은현리에 사는 시인은 은현리의 일부가 되었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생의 어떤 원리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닌지. 쉽고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세계를 우리는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닌지. 꾸며진 말과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인 불안을 알고 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자꾸만 부끄워진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나와 먼 미래의 내가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시를 읽으며 떠올린 상념과 끝간데 없이 달려가는 상상을 넘어 허상, 공상, 망상의 세계조차 즐겁다. 연결고리 없이 퍼져나간 생각의 자락들은 돌아올 줄 모른다. 한 편의 시는 생의 나침반이며 거울이고 연인이며 일기가 되기도 한다.

갈림길

길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다

너에게로 가는 길이 나에게 있었다
나에게로 가는 길이 너에게 있었다

지금 가장 멀고 험한 길 걸어
너는 너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나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이승에서의 갈림길은 여기부터 시작이다

이제 이쯤에서 작별하자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것이 길이니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것이 길이니


  생의 모든 순간에 마주하는 이별에 대하여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갈림길에 서서 시인은 이쯤에서 작별하자고 말한다. 길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으니 갈림길에 도착하면 작별해야 한다. 갈림길에 도착할 때까지 함께 걷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아닐까?

  그리하여 어느 날, 갈림길인 줄도 모르고 혹은 서로를 보지도 못하고 갈림길에 도착하게 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밤하늘에 달이 밝다. 부끄러운 듯 반쯤 얼굴을 가린 달빛은 언제나 그만큼의 밝기로 비춘다. 지구의 반대편에서도 같은 밝기와 크기와 모습인지 모르겠으나 서로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전혀 다른 하늘 아래서 함께 바라볼 수는 있을 것이다. 쓸쓸한 섬처럼 외롭게 놓여있는 달빛이 유난히 쓸쓸하다.

  시인의 신음소리만큼 아픈 소리를 내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가 가득한 정일근의 시집이 1초 만에 읽힌 이유는 달에게 물었다.

쓸쓸한 섬

우리는 서로를 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서로 바라보고 있다 믿었던 옛날에도
나는 그대 뒤편의 물을
그대는 내 뒤편의 먼 바다를
아득히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섬이다
그대는 아직 내릴 곳을 찾지 못해 떠도는
저녁 바다 갈매기다

우리는 아직 서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내 밤은 오고 모두 아프게 사무칠 것이다

 

09073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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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사회학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김영선 옮김 / 김영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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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침과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 그리고 가난은 감출 수가 없다고 한다. 기침과 사랑은 감출 필요도 없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은 가난을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굳이 내세울만한 것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다만 삶의 방식과 태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겠지만 가난을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게으름과 무지의 소치로 치부하는 관습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부끄러워해야 한다. 가난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사회의 문제이고 구조적 모순이며 계급 구조의 문제이다.

  노력하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져 있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사회에서 가난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돈을 벌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져 있지만 그 기회를 얻기 위한 경쟁과정이 과연 공정하기만 할까? 언제든 노력만 하면 지금 내 부모와 나와 내 자식이 가진 가난의 고리를 쉽게 끊어버릴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행복한 나라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미국처럼 다인종 국가에서 흑인은 어떤 존재일까?

  프랑스의 좌파 사회학자들은 가정에서 부모가 사용하는 언어의 수준이나 생득적으로 습득하는 문화의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한 개인의 언어 능력을 공평하는 측정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언어영역’ 시험은 이미 태어나는 문화 자본과 성장 과정에서 습득하는 환경에 따라 결정될 수 있다는 주목할 만한 문제제기이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것을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문화적 상징 자본이 다른 상태에서 학습은 이미 불공정한 게임인 것이다. 이 사회학자는 개인의 노력이 시작되면서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수학’ 과목에 가중치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나친 ‘평등’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과 사회적 환경들은 결코 공평한 시스템과 거리가 멀다. 이 문제의 핵심에는 물론 사교육 문제가 놓여있고 입시 제도의 문제가 버티고 있다.

  수디르 벤카테시의 <괴짜 사회학>은 자연스럽게 <괴짜 경제학>을 떠오르게 했다. 책장을 여니 <괴짜 경제학>을 쓴 저자의 추천사가 책머리에 놓여있다. <괴짜 경제학>은  스티븐 레빗과 스티븐 더브너의 역작이다. 상식과 통념을 깨는 경제학자들의 세상 읽기에 관한 책이다. 유사한 제목을 달고 있는 <괴짜 사회학> 또한 통계와 연구실을 뛰쳐나온 사회학자의 거리 사회학이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순진한 중산층 대학원생 수디르 벤카테시는 거리로 나선다. 오로지 공부를 위한 목적으로!

  이제는 컬럼비아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가 되어 있는 저자가 경험한 일들은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이미 사회학 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으나 판권이 팔렸다고 하니 재밌는 일이다. 이 책은 기존의 사회학 서적들과 분명하게 구별된다. 그래서 ‘괴짜’라는 제목이 붙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통계나 현상을 분석하고 질문지나 면접을 통해 상황을 이해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 책은 빈민가의 삶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간 사회학자의 생생한 기록이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사실적이고 생생한 기록이어서 오히려 이질감이 느껴진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이 책은 그들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지침서가 되겠다. 우리와 다른 인종 문제는 뿌리깊은 사회 문제다. 정책적으로 풀어낼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도 없는 듯하다. 10년 전의 경험과 기록이니 많이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화적 편견이나 사회적 차별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것을 정확하게 들여다보고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해법을 나가는 것이 왜 필요한 것인지 이 책은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빈곤 문제는 무엇인가? 이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88만원 세대로 명명되는 청년 실업 문제, 사교육비를 통한 부와 계급의 재생산, 양극화의 심화 등 우리 사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갈등과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돌아볼 때 과연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그들의 문제와 고민을 다루고 있는 학자가 있는지 궁금하다. 대학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숫자 놀이를 하거나 설문지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 대한 신선한 도전과 낯선 즐거움을 주는 책이 바로 <괴짜 사회학>이다.

  미국의 시카고는 최악의 빈민가로 손꼽힌다. 로버트 테일러 홈스는 고층 공영 주택단지이지만 방대한 공터에 의해 도시의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이곳에는 경찰이나 구급차 조차 오지 않는다. ‘빈곤의 섬’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비참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규칙과 질서에 의해 삶을 이어간다.

  저자는 청년 사회학자로서 우연히 설문 조사를 하러 왔다가 마약 판매 갱단 블랙 킹스의 보스와 만나게 된다. 사회학자와 갱단의 보스 제이티는 그후 10여 년 동안 어울리며 빈민가 주민들을 면담하고 동고동락을 함께한다. 객관적 사회학자로서, 때로는 그들의 심정적 동조자로서 갈등하는 저자의 인간적인 모습도 간간이 배어 나온다. 학자적 신념과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혹은 제이티와 나눈 우정과 신뢰 관계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들을 로버트 테일러 홈스의 다른 주민들과 나눈 관계만큼이나 현실적이고 흥미롭다.

  남겨진 문제는 이런 접근 방법이 실제 사회를 바꾸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냐이다. 단순히 현상만을 분석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첫 번째 순서일 수 있겠지만 한 사회학자의 호기심이나 용기에 대한 박수로 그칠 수만은 없다. 사회학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드러난 문제점과 원인의 분석과 기술은 필수적이다. 이 책에는 그것이 없다. 저널리즘을 위한 책이라는 한계가 있겠지만 단순한 현상의 분석에만 그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가난은 개인의 책임인가? 사회의 책임인가? 어디까지 함께 책임져야 하는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하는 어려운 문제지만 우리에게도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생존의 문제이며 바로 우리들의 문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090728-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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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 비타 악티바 : 개념사 2
하승우 지음 / 책세상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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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만히 생각해보아도 나의 아나키즘 성향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가 없다. ‘직접 행동direct action’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직업과 상황의 한계를 핑계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은 나의 게으름 탓이다.

  나는 수평적 인간관계에 익숙하다. 개인적인 관계에서 나이 차이와 무관하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직책이나 직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위가 아니라 아래를 보며 생활하는 버릇 탓인지 고개가 뻣뻣하거나 권위적인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기면서 토吐가 나온다. 우리 사회에는 워낙 그런 사람이 많고 그런 자리에 오르는 것이 삶의 목표인 사람들이 많으니 사람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권력과 권위의 힘은 사람들에게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이미 고정된 사회제도나 체제에 순응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정치적으로 중도 우파에서 중도 자파에 이르는 가장 폭넓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때때로 정부에 대한 지지와 불만을 동시에 가진다. 그 기준은 물론 개인적인 이익이다. 어제 강변북로의 한 아파트에 내걸린 초대형 현수막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독재자로 성토하고 있었다. 편견인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그 정도 아파트의 주민들이라면 대부분 그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철저하게 개인적 이익에 복무하는 투표 행위와 투표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이 복잡하게 떠올랐다.

  크로포트킨은 대의제 민주주의가 중간 계급, 즉 부르주아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선거를 통해 대표를 뽑는 체제가 민주적인 것으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대표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만을 대표하고 대다수 국민의 생각을 무시한다. 프랑스 사상가 루소J. J. Rousseau의 말처럼 우리는 선거를 할 때에만 자유롭다. 그리고 대표를 통해서만 말해야 한다는 원칙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줄 대표가 없는 사람들은 말을 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사회가 발달하고 이해관계가 다양해질수록 대의제 민주주의는 근원적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크로포트킨은 날카롭게 지적한다. - P. 85

  작금의 현실을 보면 답답함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정치적 이념이나 성향을 떠나 대다수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었지만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4년 동안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된다. 선거철이 되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이나 사회의 발전 방향, 정책과 미래 사회에 대한 큰 틀을 고민하지 않고 혈연, 지연, 학연 그리고 습관처럼 익숙하게 한 표를 던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 현실에 대해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한다. 어느 개인의 잘못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의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조직적으로 언론법을 손보고 전교조를 죽이고 인권위원회를 무력화시키고 4대강 개발을 통해 대기업에 이익을 몰아주는 정부는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과연 대다수 국민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보다 많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정부인가? 정권이 바뀐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변할까? 노무현 정부는 대다수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 주었을까? 국가라는 존재는 정부라는 단체는 우리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인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태도이다. 도대체 국가와 정부는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져서 국민 위에 군림하는가? 그들은 왜 우리의 권리를 마음대로 제한하며 어떻게 우리를 통제하는가? 언제부터였을까? 21세기에도 세상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또 다시 파시즘의 악령이 부활하는 조짐이 보이는 것처럼 힘과 권력으로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고 굳건하게 계급적 이익에 충실한 그들을 보며 우리는 왜 다시 아나키즘을 떠 올리는가?

  하승우의 <아나키즘>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작지만 큰 고민거리를 제공해 준다. 박홍규의 <아나키즘 이야기>가 아나키즘에 대한 성실하고 재미있는 해석이라면 하승우의 <아나키즘>은 책세상의 ‘Vita Activa실천하는 삶’ 개념사 시리즈다운 책이다. 적은 분량에 개념에 대한 이해와 요구가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어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기획시리즈들의 공통된 한계인 분량의 문제는 곧 깊이의 문제와 연결된다. 아나키즘에 대한 백화점식 나열과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머레이 북친, 신채호 등 아나키스트들의 저작을 통한 소개 등이 입맛을 돋우지만 간략한 소개나 안내 정도에 그치고 있어 오히려 아쉽다.

  4장 진화하는 아나키즘, 논쟁의 역사와 5장 아나키즘의 길 아나키스트의 길은 현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들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이다. 실용적이지 않은 지식은 무익하는 말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현재적 유용성을 가진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귀담아 들을만하다. 이론적 토대가 없어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생활에서 우리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과연 실천하는 삶을 통해 나와 이웃들이 연대하고 함께 같은 꿈을 꾸며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은 불가능한가.
 
  변화와 발전을 바라보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나키즘을 실현하는 방법도 다르게 발전해 왔지만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절대 선이며 진리가 아니라는 것 만큼이라도 인정해야 새로운 논의나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내가 무슨 힘이 있으며 나 혼자 생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은 하지 말자. 그래서 아나키즘은 자유와 자치 그리고 연대를 내세운다. 우리 사회에서도 작은 공동체는 이미 실현되고 있다. 다함께 꾸는 꿈이 현실이 되는 그날까지, 아니 모두 꿈이 비슷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만들고 싶은 세상에 대한 생각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긴다. 혹시 당신의 꿈은 부자인가? 그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세상도 가능하다는 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닐까? 어렵지도 않고 불가능한 미래도 아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바로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090726-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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