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보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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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화로운 삶이란 무엇인가? 넓고 전망 좋은 아파트, 안전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 고급 승용차, 억대 연봉이 조화를 이루면 되는 걸까? 늘어놓고 보니 돈만 있으면 가능한 삶이다. 시니컬하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이런 삶이 대부분 사람들의 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능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사실 이런 현실을 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고 느낄까? 욕망의 크기 때문인가? 아니면 삶의 목적과 방법 때문인가?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는 우리는 늘 자신을 돌아보며 미래를 설계하고 과거를 성찰한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작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아무도 불행해지기를 원하지 않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봐야 바늘 하나 꽂을 곳이 없는 틀에 박힌 일상에서 한낱 공상에 불과한 생각들로 머리만 복잡하다. 이건 아닌데 싶지만 전혀 다른 삶을 꿈꿀 수도 없다. 현실과 상황은 만만치 않으니 그만 오늘과 타협하고 만다. 견고한 사회 구조 안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함께 꿈꾸고 같이 걷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삶이다.

  헬렌과 스코트 니어링이 버몬트 숲 속에서 살았던 20년간의 기록을 적은 <조화로운 삶>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머나먼 미국에서 대공황이 최악으로 치닫던 1932년, 두 사람은 뉴욕에서 버몬트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외부적인 조건이 두 사람의 삶에 변화를 가져왔지만 대학 교수였던 스코트 니어링과 그의 제자에서 아내가 된 헬렌 니어링이 전혀 다른 삶에 도전하는 과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스코트 니어링은 1883년 펜실베니아에서 태어나 펜실베니아 대학 교수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친다. 아동 노동을 착취하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 해직되고, 톨레도 대학에서 정치학 교수와 예술대학장을 맡았으나,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 대전을 일으킨 것에 반대하다가 또다시 해직된다. 아내 헬렌 니어링은 1904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바이올린을 공부했으며, 명상과 우주의 질서에 관심이 많았다. 한때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었으며 스물네 살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삶의 길을 바꾸게 됐다. 마흔 다섯 살의 스코트 니어링은 헬렌보다 스물한 살이 많았다. 두 사람은 가난한 뉴욕 생활을 청산하고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농장을 일궈냈다. 스코트는 1983년 세상을 떠났고, 헬렌은 그로부터 8년 뒤에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를 썼으며, 1995년 헬렌도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조용한 청교도적 삶을 살아가는 듯한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나는 인생이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엉뚱하지만 조금씩만 욕심을 덜어내고 생의 조건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을 조금만 더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상적인 꿈이라고 비웃을 수 있지만 불가능한 꿈조차 없다면 현실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살지 전혀 신경 쓰지 말라. 우리는 서로 잡아먹을 듯이 경쟁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우선 이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이나 더욱 슬기롭고 사람다워질 미래에는 더욱 냉철하고, 규모 있고, 쓸모 있게, 사회를 생각하면서 살리라.”
이것은 터무니없는 말이다. 우리가 지금 이러저러하게 살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현재를 이어받아 미래의 모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 P. 199


  누구의 말을 인용했는지 알 수 없으나, 우리는 터무니없는 이 말을 믿고 산다. 현재는 미래의 거울이다. 우리의 지금을 살펴보자. 버몬트에서 직접 집을 짓고 채식을 하며 공동체를 꾸리던 부부는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우자 훗날 메인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다.

  사회를 등지고 살자는 말이 아니라 “인생의 어느 시점까지 열심히 산 사람들이 더욱 성숙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으로서(이것은 인생의 여러 단계에 대한 동양 사람들의 생각과 같은데, 그 사람들은 한 집안의 가장 노릇을 마치고 나면 다음 단계는 성인이나 은둔자의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 일과 취미 생활을 동시에 하면서 슬기롭고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부부의 말은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저 특별한 20세기 미국인 부부의 삶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21세기에도 사람이 산다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깊은 밤 이 부부기 20년간 버몬트 생활을 마무리 하는 말을 되새겨 본다.

우리는 할 수 있다면 가장 품위 있고 친절하고 올바르고 질서 있고 짜임새 있게 살아야 한다. 어떤 처지에서도 사람은 옳게도 그르게도 행동할 수 있다. 어떤 환경이 주어지든, 미워하고 공격하고 부수고 무시하고 될 대로 되라고 내버려 두는 것 따위의 더욱 해로운 행동을 하기보다는, 사랑하고 창조하고 건설하며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대도시 한가운데보다는 산업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골 마을에서 더 훌륭하게 조화로운 삶을 꾸려 갈 수 있다고 믿었다. - P. 201


090903-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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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노래, 짧은 시
이시영 지음, 김정환 외 엮음 / 창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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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신 날에

가로수 잎들이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나는 문득
당신을 보고 싶습니다
그 옛날 우리가 새로 태어났던 날의 초록잎새처럼
아직은 푸르름이 채 가시지 않았을
당신의 맑은 얼굴을

  아득한 꿈을 꾸던 날들이 있었다. 벌써(?) 지난 시간을 돌아보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세상은 온통 초록빛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들이었다. 지나간 모든 시간은 아름다움으로 채색되기 마련이니 무엇이라 말해도, 모든 사람의 당신은 푸른 얼굴이고 물처럼 맑은 얼굴일 게다.

  이시영의 등단 40주년 시선집 <긴 노래, 짧은 시>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보고서처럼 읽힌다. 한 시인의 시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 독자들이 살아온 시간들도 조용히 반추하게 한다. 동일한 경험을 공유하지 않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온 시인의 감성은 내것처럼 잔잔하기만 하다. 긴 노래를 불렀지만 돌아보면 짧은 몇 편의 시만 남은 듯한 것이 삶이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소중한 시간은 흘러가고 한 시대를 살았던 흔적은 조용히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시영은 자신의 시를 통해 한 세월을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네 명의 시인이 엮은 이 책은 웅숭깊은 생각의 편린들이다.

공사장 끝에

“지금 부셔버릴까”
“안돼, 오늘밤은 자게 하고 내일 아침에……”
“안돼, 오늘밤은 오늘밤은이 벌써 며칠째야? 소장이 알면……”
“그래도 안돼……”
두런두런 인부들 목소리 꿈결처럼 섞이어 들려오는
루핑집 단칸 벽에 기대어 그 여자
작은 발이 삐져나온 어린것들을
불빛인 듯 덮어주고는
가만히 일어나 앉아
칠흑처럼 깜깜한 밖을 내다본다

  용산참사의 상흔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우리가 외면하는 동안 우리의 이웃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이 100쇄를 넘겨 여전히 이 시대에도 읽히는 것은 과거의 시대상황을 읽을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삶의 터전을 잃고 절규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있을까?

  이 한편의 시에는 처절한 분노도 성난 목소리도 드러나지 않지만 철거민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공사장 끝에는 작은 발이 삐져나온 어린 것들이 잠들어 있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법과 질서를 내세우는 권력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가 돌아볼 시간이다. 시인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오늘을 반성하게 한다.



화살 하나가 공중을 가르고 과녁에 박혀
전신을 떨 듯이
나는 나의 언어가
바람 속을 뚫고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
마구 떨리면서 깊어졌으면 좋겠다
불씨처럼
아니 온몸의 사랑의 첫 발성처럼


  이시영은 누군가의 가슴에 닿아 떨림이 깊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의 시는 큰 울림으로 우리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다. 시가 존재하는 이유는 머리가 아닌 우리의 가슴으로부터 진한 감동을 자아내는 데 있다. 그의 바람은 성공한 듯 보인다.

  온몸으로 사랑하는 일은 시인의 시가 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가 원하는 삶이다. 그 사랑이 어떤 것인가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여전히 사랑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간다. 이시영의 시를 통해 언어가 전해주는 깊은 감동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삶이 여전히 따뜻한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해야함을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나무에게

어느날 내게 바람 불어와
잎새들이 끄떡끄떡하는구나
내가 네 발밑에 오줌을 누고 돌아설 때
수많은 정다운 얼굴로 알은체를 하는구나
그러나 오늘은 돌아서자
수많은 오늘 같은 내일의 날이 지난 뒤
내가 불현듯 참다운 네가 되어 돌아오마


  하루를 살고 한 평생을 지내면서 나무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잎새들이 끄떡이는 모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참다운 삶에 대한 깨달음이며 정다운 얼굴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시인은 나무가 아닌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수많은 오늘같은 내일이 지난 뒤에도 거기 그렇게 서 있는 나무처럼 살아가자고.


09090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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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를 던지다 - 왕들의 살인과 다산의 탕론까지 고전과 함께 하는 세상 읽기
강명관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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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탁오는 어떤 진리도 스스로 자신만이 진리라고 주장할 때 그 진리는 더는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통렬하게 지적한 것이다. - P. 76

  ‘진리’를 논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세상에 객관이 존재하지 않듯이 진리는 현실밖에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굳게 믿고 있는 신념과 진리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밖에 없으며 어떤 사람도 그것을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시대에 비추어 보아야 하며 많은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다수결과 다르다. 잘못된 법과 제도가 통용된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이 전근대 사회에서는 자연스런 사회 현상이었지만 그것을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폭넓은 안목과 미래지향적인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최선의 가치일 수 없듯이 자유경쟁과 자본의 논리가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고 해서 미래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강명관의 <시비를 던지다>는 조선 사회를 통해 21세기 한국사회를 조망하고 있다. 한학자인 저자는 조선시대를 학문적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밝혀보지 않는다면 지식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처한 삶의 조건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만족스럽게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위해 역사가 필요하고 선인들의 글을 도구로 삼았다. 이 책은 그렇게 저자의 학문적 열정을 통해 바라본 21세기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먼저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선별하여 제공하는 글이지만 오늘에 되새겨 볼 만한 글을 읽다보면 책은 우리에게 영원한 길잡이며 삶의 교훈과 미래에 대한 지혜를 알려준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전체 4부로 나누어 노비와 비정규직을 비교하고 역대 왕들의 행적을 돌아보며, 학문적 진리를 논하고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선조들의 고민을 살펴본다.

  시대가 변하고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는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매일 일어나 숨 쉬고 살아가는 일상이 편리해졌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은 변하지 않았다. 조선시대에도 과거제도가 공평하게 치러지지 않았고 21세기 수능도 공평한 경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의 폐단을 지적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권력에 의해 억압되었으며 탐관오리와 지방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지배층의 백성 훈육과 입시에 짓눌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오늘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꿈꾼다.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몸부림치고 있다.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며 내일을 꿈꾼다. 하지만 소통과 어울림은 요원하기만하다. 그들만의 세상은 계속되고 있으며 백성은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나는 국민이란 명사를 들을 때면, 백성이란 명사가 떠오른다. 백성이 사실상 멸시받는 ‘상것’의 현실을 덮고 있는 호사스런 말이었던 것처럼, 국민이란 명사는 다른 어떤 명사를 그 속에 덮고 있는가. - P. 93

분명한 것은 돈과 권력, 학벌과 인척관계로 결합한 극소수 귀족층의 한국 사회 지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벌었는지, 외국 국적을 가진 자녀를 두고 있는지, 왜 특정 대학 출신들인지 묻는 것조차 이제는 어리석다. 이런 속성의 ‘고소영’과 ‘강부자’가 지배하는 세상이라면, 21세기 대한민국은 정확하게 19세기 조선의 연장이다. 세상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 P. 118

“일제고사 좋아하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산의 <하일대주(夏日對酒)>의 한 구절이 또렷이 떠올랐다. “그들만이 재상이 되고, 그들만이 판서와 감사가 되고, 그들만이 승자가 되고 그들만이 헌관(憲官)이 되네.” - P. 274

  부정적 시각과 비판적 안목은 구별되어야 한다.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 무모함이 영원할 수는 없다. 국민과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먼 안목으로 환경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한 삶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꿈일 수도 있다. 겸손하지 못하고 오만과 독단으로 결정된 일들이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아이들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놓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념과 정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에 대해 고민해 볼 시간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뼈아픈 충고와 자기반성의 시간을 촉구한다. 멀지않은 과거였던 조선시대를 통해 오늘의 우리를 비춰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수많은 고민들은 어쩌면 얼마 전 선조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발짝만 비껴서서 스스로를 돌아보자. 나의 믿음과 진리에 시비를 걸어볼 시간이다.


09090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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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재구성
하지현 지음 / 궁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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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진정한 죽음은 망각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때 존재는 소멸하고 만다. 육체적 죽음과 별개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의미망에서 잊혀지면 그 사람은 비로소 더 이상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거꾸로 살아있다고 해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면 그 사람을 온전한 사람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 삶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나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 또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첫 번째 단계가 되기도 한다. 가족, 학교, 직장, 지역사회, 동호회, 각종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곧 한 사람의 삶이고 그 사람의 정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은 누구나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1차적 관계도 있고 직장동료 같은 사회적 관계도 맺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관계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 관계 안에서 충만한 사랑과 행복을 찾기도 하고 인생의 비극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현의 『관계의 재구성』은 바로 이런 관계들을 조망해 보는 책이다.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관계망 속에서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우리의 삶은 큐브의 한 조각과 같다. 상하, 좌우 서로 다른 색을 맞추고 정확한 위치를 찾아 제 몫을 해내야 한다. 변신로봇처럼 대상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페르소나를 통해 사회적 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에 힘겨울 때가 많다. 저자는 우리 주변에서 피할 수 없는 관계 양상들을 점검하고 그 관계의 특징들을 면밀하게 검토한다. 상처받는 이유와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자신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먼저 그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살펴보자. 우리 인생의 출발인 부모와의 관계다. 유년기에 맺은 부모와의 관계는 일생을 지배한다. 최초의 신뢰 대상이며 세상을 보는 창의 역할을 하는 부모는 나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의 기초를 형성한다. 형제라는 거울을 통해 다양한 페르소나를 익히고 친구를 통해 비밀을 공유하며 나의 또 다른 자아를 확인한다. 성장한 후에는 결혼을 통해 부부라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를 형성한다. 인생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밀려나는 중년에 일어나는 제 2의 사춘기는 현실의 벽을 인정하고 남은 후반생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이렇게 우리는 일생을 살면서 사랑, 공감, 후회, 상실 등 다양한 감정을 통해 기쁨과 행복, 좌절과 절망을 경험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한 인간은 성장하며 삶에 대해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된다. 따라서 ‘관계’는 우리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시작이며 결과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관계와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본다. 상황에 따라 또는 나이에 따라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지 그 관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확인해준다. 우리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들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이 문제를 풀어가는 도구로 사용한 것은 ‘영화’다. 그는 영화감독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굿 윌 헌팅>,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통해 유년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한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확인하고 <스타워즈>와 해리포터> 시리즈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정체를 밝힌다. <냉정과 열정 사이>, <봄날은 간다>는 사랑과 돌봄의 차이를 밝히는 도구가 되며, <나비효과>, <박하사탕>을 통해 후회라는 감정을 다룬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아들의 방>은 영원한 이별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인 상실이 주는 고통을 말해준다. 이 밖에도 다양한 영화 속의 관계를 빌려 실제 상황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관계 양상을 설명한다. 때로는 동일시를 통해 또 때로는 감정이입을 통해 울고 웃었던 영화들을 재해석하는 재미는 이 책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항상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가면서 관계 맺을 사람들에 대해 간접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비록 영화 속 인물이지만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거나 유사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책을 읽는 동안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주변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복잡한 수학 문제를 하나씩 풀어나가듯 그 원리와 근본적인 대책을 생각해 보는 것은 우리들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나를 알고 타인과의 관계 양상을 파악하면 주어진 숙명을 이해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090828-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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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유혹 수학의 유혹 2
강석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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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까지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같이 증명을 해보았다. 그 증명 과정이 너무나 간결하니까 여러분의 가슴 속에 잘 간직하길 바란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가슴, 이 증명을 외우라는 뜻이 아니라 그 느낌을 잘 간직하라는 뜻이다. - P. 280

  수학은 아름답다. 아니, 질서와 규칙은 매혹적이다. 시험에서 벗어나 바라본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의 조화와 신비는 인간을 충분히 유혹할 만하다. 대자연의 일부에 불과한 우리들이 호기심을 느끼고 그 비밀을 풀어내고 싶은 욕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수학이야말로 “전 우주를 통해 통용될 수 있는 ‘범우주적(universal)’ 언어다(영화 <콘택트>에서 조디포스터의 대사)”라는 말에 공감한다.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벗어나 사물과 자연에 대한 관심은 수리적 사고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단 하루도 숫자를 사용하지 않는 날이 없다. 시계를 보며 학교나 직장에 갈 준비를 하고 버스나 지하철 요금을 계산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공부나 시험에서 벗어나 생활의 필요에 의해 그리고 사물에 대한 관심에서 수학을 시작한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ㅐ도로 수학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강석진의 『수학의 유혹』은 우리를 유혹한다. 저자는 수학이 얼마나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학문인지 보여주기 위해 신명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떤 분야의 책이든 저자의 열정과 노력은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 책은 어떤 수학책보다도 저자의 수학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묻어나는 책이다. 흥미위주의 생활 수학 이야기가 아니라 본격적인 수학이야기지만 전혀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수학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저자의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오랜 시간 수학에 미쳐 살아온 저자의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수학의 재미를 느끼고 어느덧 수학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다.

  브루스 윌리스는 <다이하드 3>에서 목숨을 걸고 수학문제를 푼다. 공원의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4갤런의 물을 올려놓아야 하는데 물통은 3갤런 짜리와 5갤런 짜리 2개다. 주어진 시간은 5분! 여러분도 이 문제를 풀어보자. 두 가지 방법이 있으니 목숨이 걸렸다고 문제를 해결해 보자. 풀지 못한 사람은 <다이하드 3>을 보거나, 이 책을 읽거나!

  저자는 수학이 멋있는 이유는 엄밀하고 자유롭고 실용적이기 때문에 멋있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수학은 우리가 설명하진 못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대부분 공감하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반론을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문제는 어렵다는 선입견이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에 부딪힌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고민한다. 때로는 주변의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며칠씩 잠을 설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대 수학자들이 철학자였다는 사실은 알면서도 생각하는 방법과 수학은 연결시키지 못한다. 수학적 사고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절차적인 사유 방법을 제공한다. 쉽게 말해서 수학은 생각하는 방법을 훈련시켜주고 논리적인 사고방식을 내면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공식과 계산에 얽매이지 말고 조금 여유 있는 마음으로 수학을 즐겨보겠다는 마음을 가져보자.

  이 책은 중학생 수준 정도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과 직접 연결되어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고 고등학생이라면 수학의 원리와 기초에 대해 다시 한번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시에나와 알렉산드리아의 나무 막대기의 그림자 때문에 지구가 둥글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구의 크기까지 측정했던 에라스토테네스를 토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에라스토테네스가 실험 결과와 수학적 추론을 통해서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을 수정하고 새로운 지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이 강의에서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 할 가장 큰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은 거울이다. 수학이라는 거울에 우리의 지식과 믿음의 여러 가지 모습을 비추어보면 우리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들의 참모습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수학은 이렇게 우리 인생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다. - P. 219

  이 말을 듣고 내가 내린 결론은 미친 사람들은 통한다는 것이다. 수학이 아니라 어떤 학문이 그렇지 않겠는가? 수학을 우리 인생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즐기고 미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우리 모두 수학에 미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아름다움을 즐길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090825-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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