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선진화’ 되어 간다는 대한민국에서 과중한 학습과 시험부담, 학교와 부대 안에서의 폭력, 과로와 생계곤란, 경찰의 단속과 과잉 진압으로 목숨을 빼앗기거나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국내외 모슨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책의 서문이 숙연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은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사진을 찍을 때 높은 곳에서 아래를 조망할 때와 엎드려 낮은 각도에서 셔터를 누를 때 전혀 다른 사진이 찍히는 것처럼. 박노자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1, 2>를 통해 보여주었던 시선이 그대로 유지된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는 21세기가 시작된 후 우리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기준이 어디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겠지만 그는 왼쪽에서 우리 사회를 바라본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지향점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같을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많이 다른 게 현실이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장치가 완전하지는 않지만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으기 위해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제를 기본으로 사회를 유지한다. 지나온 역사를 돌아보면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더듬어 볼 수 있다. 한국사를 전공한 박노자의 시선은 항상 ‘외부자의 시선’으로 느껴진다. 뼛속까지 한국인인 경우와 귀화 한국인의 생각이 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것이 반드시 태어나고 자라온 환경의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박노자는 러시아 태생으로 1991년 국내 대학에서 3개월간 유학생활을 경험한다. 1996년에 국내 대학의 러시아어과 전임강사를 거쳐 2000년부터는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한국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생활한 것은 4년 남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과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한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과 직접 체험은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부분들까지 꼼꼼하게 진단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의 의식과 문화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이 왜 그의 눈에는 낯설게 보이는지 깨닫게 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에 해당한다. 앞선 그의 저작들이 보여주었던 날카로운 비판 정신과 우리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충고는 귀담아 듣고 공론화할 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이 땅에서 부대끼고 아파하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귀화한 한국인임에 틀림없지만 대한민국의 운명 공동체로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개인적인 판단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복지국가’와 ‘진보정치’라는 두 개의 화두를 제시한다. 여러 지면에 발표한 칼럼과 그의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모은 이 책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있는 현실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으로 ‘개혁’을 외치던 대한민국은 다시 보수정권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교롭게도 두 전직 대통령이 한꺼번에 사망한 2009년에 우리는 지난 10년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을까. 무엇보다도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과 지표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삶이 상식과 보편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한국에서 대중적 진보 정당을 한다는 것은 가시밭길이지만 꼭 가야 할 가시밭길이다. 성패 여부와 무관하게, ‘의미 있는 소수’로 존재해도 좋다. 그 소수로부터의 압력마저 없다면 대한민국은 오늘날보다 더 야만적인 ‘중간급 소제국’이 될 것이다. - P. 44

‘개혁’ 담론이라는 게 한국에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물론 제2, 제3의 노무현이 집권을 할 수야 있지만, 그 실적은 제1대 노무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그 무슨 ‘개혁’ 이야기를 들먹여도 ‘한국적 체제’ - 군사 ․ 안보 국가, 부동산 과열, 토건 집중, 관료들에 대한 대자본의 지배, ‘명문대’ 학벌 우대, ‘현대판 천민(비정규직)’ 과중 착취 등등 - 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 P. 55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대한민국에 진보정당이 설 자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실천적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본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롭고 극소수의 기득권층이 아닌 대다수의 서민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우리는 이제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박노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일상의 문제점과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불편한 진실들을 토해낸다.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다함께 잘 살아가려는 노력이 부족한 현실은 도대체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 속 시원한 대안과 해답을 한 마디로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치인과 재벌 총수에게 모든 희망을 걸어볼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남과 같이 소비하지 않으면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고, 혼자 조용하게 있으면서 ‘나’의 존재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삼성공화국의 배부른 노예 대다수에게 이 이야기는 아마도 내향적 성격 때문에 사회와 어울릴 줄 모르는 낙오자의 설교로 들릴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자신들의 진정한 존재(실존)로부터도 소외되어 인간으로서의 ‘나’를 상실하고 만다. 이런 기성세대가 있기에 수만 명의 10대들이 온라인 게임의 중독자가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이미 폐인이 돼가는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텔레비전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없는 우리의 노예적 현실에 대한 반성이 절실하다. - P. 125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먹고 산다. 기대할 내일이 없다면 현실의 고통과 불편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 하지만 그 희망이라는 괴물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고 기대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지 잠시 생각해보자. 그리고 과연 ‘왼쪽’이 정치적 이념을 의미하는 것인지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인지 따져보자. 박노자의 목소리는 공허한 울림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방향 지시등일지도 모른다.

“청소부와 이야기하든 장관과 이야기하든 똑같이 대하기. 어조, 태도, 말이 주는 느낌으로라도 인간을 차별하면 절대 안 된다.”(티모페에프-레소프스키) - P.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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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간에 옛글읽기 문학시간에 읽기
전국국어교사모임 엮음 / 나라말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한문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선인들의 옛글조차 원문으로 읽을 능력이 없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제대로 된 번역본을 꼼꼼하게 고르는 수밖에. 옛글을 읽는 즐거움은 시간을 견뎌낸 책과의 대화로 시작된다. 대부분 조선시대로 한정되긴 하지만 당대를 살아냈던 선조들의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글을 읽는 동안 우리는 시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선비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 착각을 하게 된다. 마음으로 읽는 글은 지식과 교훈보다 깨달음과 지혜를 전해준다. 좋은 옛글을 읽는 것은 조상들의 지혜를 전수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전국국어교사모임에서 펴낸 <문학시간에 옛글 읽기>는 고전의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좋은 글들이 엄선되어 있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청소년들에게 옛글을 읽히는 것은 더욱 어렵다.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편견 때문에 잘 읽지 않게 된다. 그 편견의 원인은 교과서다. 국정교과서로 국어를 배우고 문학교과서는 검인정 도서로 18종이나 된다. 내년부터는 중학교 1학년부터 국어교과서도 23종 검인정 시대를 맞이했다. 각급 학교에서는 교과서 선정이 한창이다. 교육과정이 바뀌고 새 교과서가 나올 때마다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검증된 작품이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 중에 바탕글이 선정된다.

  국어시간에 문학작품만 배우는 것은 아니다.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능력이 고루 갖춰져야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대학입시를 정점으로 모든 공교육은 피라미드 구조를 이룬다. 고등학교와 중학교, 초등학교는 이제 경쟁을 내면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운동부를 없애고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전학을 권유하고 초등학생에게 보충 수업을 시키는 당황스런 일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미치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모두 손을 놓고 불구경하듯 서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의 책임이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

  책을 읽는다는 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제대로 된 눈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다.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쓰레기에 불과하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가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 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인지 난감하다.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아니다. 진리는 변함없이 시간을 뛰어넘는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지나간 역사에서 그리고 고전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사람부터 책을 읽어야 한다. 거실에서 TV를 보며 아이들에게 방에 들어가 공부하라고 소리지르는 부모님, 책 한 권 읽지 않으면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생님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건방진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가르치는 사람이 책을 보지 않는다면 무엇을 가르치는지 나는 궁금하기만 하다. 능력있는 분들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을 때가 많다.

  이 책은 전체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는 사물과 현상을 통한 깨달음, 2장에는 어떤 일의 내력을 밝힌 글과 여행기, 3장은 편지글, 4장은 먼저 간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담은 글, 5장은 세상일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 6장은 삶과 세상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드러낸 글이 담겨있다.

나는 비로소 사람을 기르는 방도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먹을 것을 잘 먹여 기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잘 이끌어 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나는 눈먼 암탉이 병아리들을 기르는 것을 보고 사람을 기르는 도를 깨달았다. - P. 275 할계전(瞎鷄傳)

  좋은 글들이 너무 많아 손꼽기도 어렵다. 짤막한 글들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읽기 좋은 책이다. 그 가운데 나는 할계전의 한 토막을 적어본다. 애꾸눈이 된 어미닭이 병아리를 기르는 방식은 어쩔 수 없는 자신의 한계이지만 아이를 기르는 부모와 교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교육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주옥같은 옛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가슴 깊은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이 먼저 읽어보고 아이들이나 학생들에게 권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물론 옛글이라면 무조건 따분하다고 생각하는 일반인을 위해서도 일독을 권할 만한 책이다. 각 장 뒤에는 생각할 문제가 몇 가지 정리되어 있다. 사유의 깊이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생각을 넓히고 함께 고민하고 토론할 수 있다면 이 책은 더없이 좋은, 살아있는 문학 교과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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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견문록 - 에디오피아에서 브라질까지 어느 커피광이 5대륙을 누비며 쓴 커피의 문화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이창신 옮김 / 이마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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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문화는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지역이나 사회에서 습득된 가치나 기호는 개인의 선택과 무관한 문화적 취향이 된다. 어떤 곳에서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도구를 사용하며 어떤 의식을 갖고 사느냐에 따라 사물을 보는 태도와 관점이 달라진다. 문화는 사람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틀이며 사회를 변화방향을 예측할 수 있는 풍향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습관적인 행동과 즐겨먹는 음식, 재밌는 놀이가 모두 문화가 된다. 그 중에서도 음식만큼 세상 곳곳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먹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그래서 음식문화는 모든 문화의 척도가 될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왜 먹느냐에 따라 기후와 풍토를 살펴볼 수 있고 사람들의 기질과 풍습을 이해하기도 한다. 어떤 음식이든 우리가 먹는 것은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그 문화는 한 사회 구성원들의 결속을 다지기도 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관점을 만들어가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집단 무의식은 동일한 문화현상을 기초로 한다.

  근대이후 교통수단의 발달과 통신수단의 비약적 발전은 특정 지역의 문화를 세계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지구촌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거대한 세계화의 물결이 21세기를 지배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더불어 자본과 금융의 세계화뿐만 아니라 문화의 세계화도 진행되고 있다. 뒤섞이고 들끓는 속성은 문화가 가진 혹은 인류가 가진 교류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통합fusion’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튜어트 리 앨런의 <커피견문록>은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특별한 음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커피’라는 음료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저자는 지구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약 3만 킬로미터를 여행한다. 유럽 사람들은 언제부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으며, 커피는 어떤 음식을 대체했을까? 이 두툼한 하드커버의 커피책은 커피의 문화사라고 불러도 좋겠다.

  이 책과 함께 커피를 보고 듣고 마셔보자. 알고 마셔야하는 것이 어디 와인과 커피뿐일까만 전통 음식이 아니면서도 가장 즐겨 마시는, 생활의 일부가 된 커피에 대해 궁금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호기심이다. 자, 이제 저자와 함께 커피여행을 떠나보자.

  2,000년 전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에서 출발하기 위해서 우리는 에디오피아로 가야한다. 아디스바바바에서 하레르 지가지가로 이어지는 여행의 출발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혹은 가장 본질적인 형태의 커피를 확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커피는 이제 현대인의 기호품으로 생각하지만 과거에 커피는 특별한 효능을 가진 약품이었고 상류층만이 즐기는 기호식품이었다. 커피를 즐기는 자세와 맛에 대한 감각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즐기는 커피믹스는 엄밀한 의미에서 커피가 아니라 커피를 이용한 또 다른 신개발 음료다.

  ‘악마의 음료’라는 별명으로 출발해서 카페인으로 전 세계를 정복해버린 커피. 저자는 그 발자취를 따라 아프리카에서 예멘, 인도, 터키를 거쳐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를 거쳐 브라질을 경유한 후 미국의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더듬어간다. 그야말로 커피의, 커피에 의한, 커피를 위한 여정이다. 곳곳에서 맛보는 독특한 커피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저자의 열정은 읽는 사람에게 색다른 즐거움과 흥미를 선사한다.

  어떤 책이든 저자의 열정과 노력 그리고 직접 체험만큼 값진 결과를 낳는 것은 없다. 한 군데 머물러 안온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일생의 꿈인 사람이라면 저자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양한 업종을 경험하고 전 세계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살아가는 사람의 유목적 글쓰기는 생생한 현장감을 무기로 한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읽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친구와 노천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들이키며 늦은 시간까지 킬킬거리던 지난 월요일. 수많은 그 혹은 그녀와 함께 카페를 드나드는 사람들. 혼자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멍한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들. 우리들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피와 카페. 또 다시 월요일은 시작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한다. 어느 커피광처럼 5대륙을 누비며 커피를 따라 여행할 수는 없지만 ‘커피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 잠시 커피를 들고 이 책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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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즐거워지는 사진찍기 일상이 즐거워지는 시리즈 1
최정호 지음 / 홀로그램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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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문가가 찍은 훌륭한 작품 사진은 여러 사람을 감동시킨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찍은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은 스스로를 감동시킨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찍고 내가 행복한 사진. 가끔은 덤으로 내 주위의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감동시키는 그런 사진. 그 정도면 내가 사진기를 든 보답은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 곁에 사진기가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이제 그 행복을 당신이 느껴볼 차례다.

  ‘사진은 평범한 일상도 특별한 순간으로 재구성한다’는 저자의 말은 일상에서 우리가 찍는 사진의 의미를 규정한다. 일상은 평범할수록 빛이 나고 그 평범함은 사진으로 특별한 순간으로 간직된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하고 사진은 기록의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 된다. 우리의 일상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 했던 사람들과 잔잔한 웃음과 찰나의 기억 때문이다. 소중한 일상을 기억하려는 노력은 일기 혹은 사진으로 남겨진다.

  네이버 자문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함께 활동했던 저자의 책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조용하고 순수한 미소를 지닌 최정호위원의 사진들은 열정으로 가득하다. 무엇을 보여주려는 몸짓이 아니라 순간을 기억하고 일상을 즐기기 위한 사진들이다. 그가 찍은 사진이 갖는 특별함은 아마추어의 열정을 넘어 나름의 특별한 시각과 여유를 담아낸다. <일상이 즐거워지는 사진찍기>는 그렇게 사진과 함께하는 일상의 즐거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이제 특별한 도구가 아니다. 누구나 사진기를 들고 다닌다. 핸드폰에 대부분 포함된 기능이라 언제 어디서든 무엇이든 기록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이 단순한 기록장치로 볼 수는 없다. 증명사진이나 기록필름이 아닌 일상을 담은 사진들은 희미한 기억을 선명한 추억으로 되살린다.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바쁘고 지루하며 반복적인가 돌아보자.

  오래 된 사진 속의 나를 돌아보면 박제된 시간을 들여다보는 같아 불편하다. 지금의 나와 다른 타인처럼 어색하고 생경하다. 사진은 정지된 순간을 현재화하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불연속적인 흐름으로 나열하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들을 각색하기도 한다. 사진은 그렇게 우리들에게 소소한 일상을 들춰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일상의 즐거움, 사진의 즐거움.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찍는 방법과 그 순간의 분위기 그리고 담아내고 싶었던 의도를 말해준다. 사진을 시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입문서가 될 것이고 이제 막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사진의 재미와 찍고 싶은 마음을 선물한다.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조근조근 설명하는 저자의 목소리도 듣기 좋고 그가 찍은 사진과 설명은 더욱 보기 좋다.

  집에 오래된 카메라가 있거나 최신형 카메라를 사두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사진의 즐거움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일곱 개의 파트로 나눠져있다. 인물, 동물/식물, 풍경, 도시, 하늘/구름, 사물, 접사로 나뉘어 피사체에 따라 어떤 점을 유의해야 하고 또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빛과 앵글의 조화는 사진만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

  사진은 무엇을 담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저자의 사진들은 피사체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우선 피사체를 자세히 관찰하고 프레임과 빛을 생각하며 앵글과 효과를 감안하기 때문에 한 장, 한 장이 모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재미와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반복적 자극에 무감하다. 하지만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그렇게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즐거움과 알지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순간들을 사진을 통해 정지시켜보자. 나만의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사진기를 통해 무언가를 창조하는 재미는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

  낯선 곳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포착한 순간들이 내 삶을 말해준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일 수도 있다.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소소한 일상과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이 사진이다. 사진기로 무엇을 찍을 것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먼저 생각해보자. 그렇게 찍은 사진은 피사체가 아니라 바로 나를 담은 사진이 된다.


090909-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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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란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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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의 십년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다. 모두가 21세기 새시대를 구가하면서, 시대를 닮으려고 그 뒤를 좇아 달려가버렸을 때, 허무성은 자신이 해일이 쓸고 간 황량한 바닷가에 여기저기 뒹구는 잔해들 중의 하나처럼 느껴졌다. 잊혀진 시절이 남긴 초라한 잔해, 그것이 학생들의 눈에 비친 그의 존재방식이었다. 달라진 이 세상과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감정도 관념도 다른 사람이었다. - P. 91

  내가 보낸 이십대를 90년대를 작가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었다. 현기영의 소설 <누란>을 읽으면서 이 구절을 읽다가 한참 멍한 눈길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선배들을 따라 시위현장에서 발밑에 지랄탄을, 머리위에 페퍼포그 사과탄을 피해 골목길을 뛰어다니던 일은 이제 아득한 기억의 저편에 흑백 사진처럼 남아있다. 백골단에게 끌려가 곤봉으로 두들겨 맞고 닭장차에서 대가리를 처박고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허무성은 386세대의 막내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잊혀진 시절인 80년대를 기억하기 위해 허무성은 90년에도 황량한 바닷가의 잔해처럼 쓸쓸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그의 존재방식은 21세기 대학생은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비판과 저항 문화를 잃어버린,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대학생들이 허무성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허무성을 바라보는 작가에게 오늘의 대학생은 어떻게 비춰질까. 그 시선은 우리들의 시선과 많이 다를까.

  문단의 거목이 되어버린 현기영의 <누란>은 작심한 듯 지나간 지난 시대를 직선적으로 들여다본다. 우회적이고 상징적인 방법이 주는 나른함이 없다. 군데군데 마치 신인 작가의 치기어린 열정을 보는 것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 구절들이 보인다. 십년 만에 작품이든 준비기간이 얼마가 됐든 소설 외적인 부분에 대한 사실들이 소설을 대신할 수는 없다. 작가는 현실은 과거와 다른데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지 못하는 세대와 지난 시절을 철저하게 망각한 세대에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우리가 바꾸려했던 세상이 우리를 바꿔버렸다고.

  1999년 세기말의 불안을 넘어 2002년 월드컵 축제의 붉은 악마와 노무현의 당선으로 새로운 세기는 화려하게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모든 축제가 그러하듯 들뜬 분위기와 미칠 듯 끓어오르던 열정은 한 순간에 차갑게 식어버린다.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에게 남은 건 없었다. IMF의 충격은 부동산 가격폭등과 개혁의지 실종으로 이어져 다시 정권이 바뀌고 그들은 잃어버린 10년을 뒤찾기 위해 교과서를 바꾸고 강바닥을 뒤집고 있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의식 없는 국민에겐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돼있다. 파시즘의 재림을 꿈꾸는 권력이 무슨 짓을 하든 내 앞의 밥그릇과 평화로운 일상을 꿈꾸지만 그것이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노동하기 힘든 나라가 된다. 당신은 기업가인가 노동자인가? 기업가와 노동자의 비율은 어떤가? 대한민국의 국민 대다수가 기업가인가 노동자인가? 서민인가 부유층인가? 이것은 이데올로기도 그 무엇도 아니다. 그저 우리 이웃들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작은 고민일 뿐이다.

  고문과 인권 유린을 처절하게 고발하는 소설로 읽지 말자. 국가권력의 거대한 음모와 변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비판으로 읽지도 말자. 그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가장 소박하고 인간적인 우리의 상식을 확인하는 소설로 읽는 것은 어떨까?

  소설이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아주 오래된 명제를 떠 올릴 필요도 없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위태로운 현실을 거울로 비춰준다. 눈이 부셔 찡그리지만 그것이 곧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된다면 현기영의 소설은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소설의 제목은 계란을 쌓아올린 듯 위태로운 상황을 나타내는 ‘누란지세(累卵之勢)’와 중앙아시아에서 번성했던 모래사막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누란(樓蘭)’ 왕국의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일흔을 바라보는 작가의 입장에서 오랜 침묵을 깨고 발표한 소설이다. <누란>은 단순히 소설로만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지난 시대와 오늘의 우리들을 돌아보는 반성문이다.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합의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가치는 이념과 무관하다. 반목과 질시,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지난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한 자의 어리석음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불빛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다.

이 소설은 실패와 절망에 관한 기록이다.

  ‘작가의 말’의 첫 문장이다. 이 시대를 냉철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실패와 절망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한다. ‘수많은 개인들의 실패는 그 개인 자신의 탓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것이고, 그 구조는 세계화가 만들어놓은 부분이 크다. 즉 개인의 실패, 개인의 불행은 일국의 문제를 넘어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무력감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는 말은 현실에 대한 작가의 판단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가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희망을 불빛을 던지고 막연한 기대를 갖게하는 완강한 현실의 벽과는 다른 불씨를 보여주려는 것이 현기영의 <누란>은 아닐까?

절망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하게 절망하여 그 밑바닥에 닿으면 거기에는 새로운 정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고, 그때 우리는 바닥을 걷어차고 힘차게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 P. 300


090906-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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