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네껜 아이들 푸른도서관 33
문영숙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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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사는 우리의 삶을 고스란히 기억한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역사와 기억에 새겨진 역사가 다른 것은 개인적 경험과 해석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가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지나온 삶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다. 나와 우리가 ‘지금-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를 고민하는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켜켜이 먼지 묻은 과거를 들추는 일은 고루하고 지루한 퇴행이 아니다. 내가 살아가는 방법과 이유를 되새기고 미래를 전망하는 출발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역사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과 목적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기도 한다. 근대 이후 역사는 다양한 방법과 시각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지배자와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만 기록되지도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모습이 반영되어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실제 사람들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대다수의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그 원인을 제공했던 국가권력과 통치자의 행위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겨진다.

  조선 왕조가 쇠퇴하고 흔들리고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우리 선조들의 삶은 위태롭게 흔들린다.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문화가 여전히 살아있고 근대화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한 조선은 결국 일본에 의해 강제로 국권을 잃게된다.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의 운명과 근본 원인을 살펴보는 것은 역사가에게 맡겨 둘 문제만은 아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고통받고 절규하는 민중들의 삶이다. 그들은 어떻게 한 시대를 살아냈는가? 그들은 왜 그렇게 살아가야만 했는가? 위정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릴 수는 없지만 100여년 전 조선의 가장 안타까운 시대를 돌아보는 일은 우리에게 많은 아픔과 상처 그리고 교훈과 통찰을 전해준다.

  1905년 4월 4일 조선사람 1,033명을 태운 일포드호는 제물포 앞바다에 뱃고동을 길게 울리며 묵서가로 떠난다. 문영숙의 <에네껜 아이들>은 바로 이들의 삶을 추적한 소설이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떠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조선에서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만주, 러시아, 멕시코 등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는 우리 역사의 아픔이며 씻을  수 없는 상처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은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며 아버지며 할아버지였다. 이 사람들의 역사가 어떤 식으로 기록될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불과 100년 전의 일을 까맣게 잊고 사는 우리들의 기억력을 탓할 수도 없지만 바로 전 세대의 아픔과 상처를 잊는다면 역사는 반복될지도 모른다. 교훈을 얻기 위해서 역사가 필요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작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색다른 방식으로 전해준다. 이야기의 중심에 아이들을 앞세운다. 사회적 상황과 어른들의 다양한 이해방식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백정의 아들 덕배와 고아 봉삼이, 옥당대감의 아들 윤재 그리고 병약한 딸을 중심으로 한 이 소설은 에네껜 농장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을 그려낸다. 출발부터 농장에서의 삶을 3인칭의 관점으로 살펴본다. 덕배 아버지와 감초 아저씨 그리고 옥당대감은 아이들을 이끌고 서로 다른 목적으로 일포드호에 오른다. 역사적 관점에서 이들의 삶을 신산스럽게 그려낸 김영하의 <검은 꽃>과 달리 이 소설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에네껜 농장의 삶을 보여준다. 제물포에서 출발한 소설은 메리다 조선인 학교에서 끝을 맺는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인간의 삶은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에게 그들의 삶이 전해주는 뼈아픈 교훈과 감동은 잊어서는 안될 소중한 역사다.

  덕배와 봉삼 그리고 윤재의 만남은 시대적 상황을 극복해가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웅변하는 듯하다. 신분을 넘어 인간의 본성을 확인하고 삶의 본질을 확인하는 과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역사의 아픔을 기억하고자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잊혀지기 쉽다. 하지만 우리들 삶의 조각들이 모여 진정한 역사가 이루어지고 미래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면 그들이 바로 우리의 과거이고 역사일 것이다.

  객관적 사실을 넘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삶의 단면을 드러내는 소설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 청소년 소설이 아이들의 고민과 방황을 그려내고 그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또 다른 삶의 조건들을 보여주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소설은 현재와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과거의 기억으로 많은 아이들에게 읽힐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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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다윈혁명 - 우리 사회 지성 19인이 전하는 다윈 혁명의 현장
최재천 외 18인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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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념이 가득한 자, 자신이 정의롭다고 확신하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의문이 가득한 자를 신뢰한다.” - 김훈

  무슨 책인지 잡지인지 알 수 없지만 소설가 김훈의 한 마디가 사무쳤다. 잘 적어 놓은 걸 보니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실천에 대해 고민이 있었나보다. 어떤 글이든 사람이든 ‘때’를 만나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좋은 사람, 훌륭한 글을 읽어도 마음에 닿지 않는 때가 있고 보잘 것 없는 사소한 인연이지만 평생 함께하는 인연이 되기도 하고 평범한 한 줄의 글이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는 것은 ‘언제’인가가 중요하다.

  짧은 생이지만 돌아보면 무수한 사람들과 만났고 헤어졌으며 많은 책을 읽고 잊어버렸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듯 잊고 싶지 않은 문장과 구절들이 이제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는 말이 새삼스러운 이유는 나이 탓이 아니라 기억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망각의 힘은 위대하지만 인간의 한계를 고백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잊고 사는지.

  굳은 신념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이제 겨우 150년이 흘렀기 때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 때문에 다윈을 찾는 것은 아닐까? 과연 다윈이 우리에게 길을 열어준다고 믿는 이 많은 사람들의 맹목은 또 다른 종교적 광신은 아닐까? 하지만 왜 여전히 다윈을 기억해야 하는지 우리는 가만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류에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죽음은 한 존재의 망각으로 완성된다고 한다면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은 불멸의 존재가 되어 누구보다도 열심히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다윈이다. 불과 150년 전인 1859년 11월 24일 영국 런던의 존 머레이 출판사가 <종의 기원>을 내 놓는다. 초판 1,170권은 당일 매진됐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에 코페르니쿠스적 충격을 가한 이 책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우리들의 고전이 되었다.

  특정 시기에 특정인을 기억하는 것은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상징이 만만치 않게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밝혀주고 있다. 이념을 넘어 다윈의 생각은 시대의 반역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회와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는 생각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변화도 발전도 즐거움도 없는 것은 아닐까?

  평생 병마와 싸우며 어린 딸을 잃고 신의 존재마저 부정하고 싶었던 불행한 남자의 책은 작가의 삶을 투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명의 탄생이 우연이라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말을 뱉어버리고 싶은 다윈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점점 지질학부터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학문을 넘나들며 그 명백한 증거들 앞에서 진실을 외친 다윈은 행복했을까?

  개인의 행복과 불행을 넘어 인류의 지적 토대 자체를 뒤흔든 대지진이 벌어진다.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함께 20세기를 뒤흔든 지구인 3명 중 하나인 다윈의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말을 건네며 살아있다. 다만 우리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귀를 막고 제 갈 길을 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뿐이다. <21세기 다윈 혁명>은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과 세계화를 통한 금융위기, 민주주의의 위기와 인문학의 위기, 환경 문제와 미래 사회를 내다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최재천을 비롯한 19명의 각 분야의 교수들이 21세기의 전망을 다윈코드에 맞춘다. 하나의 키워드로 이렇게 다양한 학문 분야를 섭렵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기만하다. 철학, 과학, 윤리학, 종교, 사회과학, 심리학, 법학, 정치학, 경제학, 인류학, 성, 문학, 미술, 음악, 지질학, 환경, 의학, 공학, 복잡계과학이 그것이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출판 150주년을 맞은 올 해 기념식처럼 출간된 이 책은 최재천의 기획과 주도로 이루어졌다. 제목만 들어도 토할 것 같은 쓰레기 신문에 연재되었지만 김지하와 박홍을 들러리 세우는 신문에 실렸던 모든 글이 다 나쁠 수는 없다. 다윈을 통한 지식 백화점을 둘러본 느낌이다. 새로운 미래 사회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각 분야에서 다윈은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학문을 통섭하는 다윈의 힘은 단순해서 아름다운 진화이론에서 나온다.

  그것은 고정 불변의 진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든 행복하고 즐겁게 춤출 수 있는 혁명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변화와 새로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 책도 다윈도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아니라 새로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을 따라 뛸 수 있는 체력과 열정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윈보다 다윈의 생각이 낳은 결과와 여전히 창조론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함께 생각했다. 진리는 각자 마음 속에 간직하면 그뿐이다. 다만 변하지 않는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생각조차 영원히 변하지 않을 수 있을지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09092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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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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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도 사람처럼 언제 읽느냐가 중요하다. 열여섯의 <데미안>, 열일곱의 <새벽편지>, 열여덟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열아홉의 <지와 사랑>, 스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떠오르는 것은 나이보다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것처럼 우리는 일생동안 많은 책을 읽고 잊어버린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작가는 바로 그 순간에 내가 듣고 싶은 말을 건넸기 때문일 것이다.

  이윤기를 전작주의로 삼은 조희봉은 <전작주의자의 꿈>을 통해 한 작가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해석을 통해 책읽기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방법은 조금씩 다양하겠지만 많은 독자들이 이렇게 한 작가에 탐닉하다가 이별하고 또 새로운 작가를 만나고 헤어진다. 헤르만 헤세, 정호승, 오규원, 황지우, 김지하, 김남주, 황석영, 밀란 쿤데라와 함께 사춘기를 보낸 기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파피용> 이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시큰둥해지고,  <어둠의 저편> 이후로 하루키의 소설에 하품을 하듯, <행복의 건축>을 거쳐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보통씨와 이별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발견했을 때의 놀라움으로 그의 책을 거의 다 읽었지만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재미도 감동도 없고 새로운 깨달음이나 지적 충격도 느껴지지 않는 책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슬럼프 없이 매년 4할을 넘기는 타자도 매력이 없긴 하지만, 보통씨와 이제 당분간 작별할 시간이 왔는보다. 점점 입맛만 까다로와지는 노인네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의 신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한국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배려가 곳곳에 배어 있다. 책머리에 정성스럽게 쓴 ‘한국의 독자들에게’ 말미에 적은 것처럼 집을 얻는 데 한국어판 인세가 큰 보탬이 된 것에 대한 보답처럼 느껴져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팬이 많기 많은가보다. 어쨌든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성격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이번에 나온 그의 책은 열 개의 장의 구별된 ‘일’에 관한 에세이다. 발로 쓴 에세이는 관념적이거나 감상적인 산문과 구별된다. 정확한 관찰과 꼼꼼한 기록 그리고 현장을 따라가는 탐방 기사같은 글들이 읽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일상에 묻혀있다 보면 주변에서 늘상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기 쉽다. 현관 문 밖에 신문이 슬라이딩 하는 소리를 듣는 새벽처럼.

  현대인의 삶은 바쁘다. 쉬지 않고 일하고 남들보다 열심히 뛴다. 특히 한국인의 부지런함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쉬고 즐기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쉰다. ‘일’은 우리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마치 종교와 같은 일의 숭고함을 쉽게 말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이 지속되는 한 일을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일이 어떤 일이든 무엇이든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은 화물선 관찰하기로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이야기한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로 느껴지는 ‘기쁨과 슬픔’이라는 제목은 ‘일’에 인격을 부여한다. 물류센터를 돌아보고 비스킷 공장을 찾아가며 직업 상담가를 만나고 로켓과학의 눈부신 성과를 살펴본 후 화가를 따라가기도 하고 송전탑을 따라 무작정 걸으며 회계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창업자들의 고단함과 항공 산업의 놀라움을 관찰한다.

  열 개의 장으로 구성된 에세이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도 조금 거리가 느껴지는 이야기들이다. 누군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며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있지만 실감하지 못하는 일들은 얼마나 많은가. 24시간 동안 톱니바퀴처럼 일사분란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얼마나 흥미진진한 곳인가. 보통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은 보통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흡인력있는 문장으로 독자들을 매혹시킬만하다. 사색적인 태도로 섬세하게 묘사하고 적절한 비유를 통해 차분하게 전달한다. 흥분하거나 강하게 밀어붙이는 일이 없고 속삭이듯 이야기하고 감각적이고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 책도 그가 보여주는 새로운 시각과 조우할 수 있는 신선함으로 가득하다.

  ‘일’이 줄 수 있는 기쁨과 슬픔은 독자 개개인이 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든지 저자가 말하는 열 개의 범주 너머에 존재하는 수많은 ‘노동자’의 삶은 자신의 정체성을 말해줄 것이고 현재의 삶을 보여주며 미래의 작은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책표지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갈라지고 메마른 사막에 놓인 붉은 여행 가방처럼 낯설게 내가 하는 일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책이었다.


090927-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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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2 1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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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6 22: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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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고향옥 옮김 / 양철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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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 길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 가장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말이다. 우리들의 삶을 길에 비유하는 일이 많은데 한 사람의 길이 끝났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개인적인 일이 일단락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하고 학교를 졸업했다는 뜻이기도 하며 직업을 바꿨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막다른 길은 없다. 모든 길은 이어지고 끊임없이 길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결국 인간이 걸어야 할 길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처음부터 길은 없었다. 한 사람 두 사람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길이 만들어진다는 노신의 말은 삶의 방법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남들이 가는 길만 걸어가는 것은 재미도 없고 즐겁지도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새로운 길만 만들어 걸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많다. 우리는 걷고 또 걸으며 길에 대해 생각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삶이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도 가족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길이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형제나 친척을 선택할 수도 없다. 일본작가 시게마츠 기요시의 <졸업>은 우리의 삶에서 가족이 가지는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집이다. 네 편의 중편을 모아놓은 이 책은 가깝고도 먼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큰 기쁨와 위안을 주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씻을 수 없는 가장 큰 상처와 고통을 주는 존재이기도 한 가족 이야기는 진한 눈물과 잔잔한 미소를 선사한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졸업’은 한 인간의 성장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살한 아버지의 유복자로 태어나 14네 살이 된 아야는 죽은 아버지의 친구 와타나베를 찾아온다. 와타나베의 시각으로 서술되는 이 소설은 오래된 기억을 더듬으며 친구 딸의 아버지 찾기에 동참한다. 새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별탈 없이 성장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한 호기심과 애틋함은 사춘기 소녀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실존적 고민이다. 결국 아버지가 자살한 시간과 장소에서 유년기를 졸업한다는 내용이다. 우리에게 졸업은 학교를 마치는 일이 아니라 한 개인의 인생에서 어떤 시기가 끝났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 소설 ‘행진곡’은 어머니의 죽음을 앞둔 한 남자의 기억을 더듬는다. 어린 시절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 문제아가 된 여동생과 어머니의 관계를 통해 일류 중학교에 입학하고 ‘히키코모리’가 된 아들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내용이다. 잊혀진 유년의 기억과 가족 간의 관계를 깨닫는 과정은 부모가 자신에게 쏟았던 사랑만큼 자식에게 그 사랑을 물려주는 일과 다름없다. 물이 흐르듯 그렇게 사랑은 세대를 넘어 관계와 존재의 단단한 연결고리가 된다.

  ‘아버지의 마지막 수업’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중학교 교사인 아들이 서술자이다. 아버지 세대가 아이들을 다뤘던 방식에 대한 잔잔한 술회, 죽음과 시체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아이를 통해 아버지가 남긴 것은 무엇이고 아버지의 죽음의 의미는 아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살펴본다.

  마지막 단편 ‘추신’은 여섯 살에 어머니를 잃은 소설가의 이야기다. 어머니가 병상에서 남긴 노트를 중심으로 새엄마와의 해묵은 갈등과 화해를 다루고 있다. 새 어머니의 아들인 동생을 통해 인정할 수 없는 어머니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늘에 계신 어머니만을 인정했던 시간들을 돌아본다. 상상속의 어머니를 실존인물처럼 잡지에 연재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의 존재를 다시 생각한다. 이제 늙어버린 어머니의 잠든 모습을 보며 소설가가 된 어린 아들은 두 명의 어머니를 받아들이게 된다.

  네 편에 등장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마흔 살 먹은 남자다. 서로 다른 상황에 처해 있지만 가족이라는 연결 고리 안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발견하고 생의 진부함을 확인한다. 우리의 삶은 무엇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다. 때로는 안개 속을 헤매듯 방향을 알 수 없이 달려가다가 문득 주변을 돌아보면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끝없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존재의 출발점과 종착역은 가족일지도 모른다.

  먼 여행을 하고 돌아와 편히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생의 순간순간을 ‘졸업’하며 우리는 그 의미를 되새기고 다음 생을 준비한다. 시게마츠 기요시의 소설은 평온하고 잔잔한 음악처럼 낮은 목소리로 현대인의 삶에서 가족이 주는 의미를 묻고 있는 듯하다. 네 편의 소설을 통해 나는 가족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090924-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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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
고은우 외 지음, 따돌림사회연구모임 기획 / 양철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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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난무하는 폭력의 밑바닥에는 어른들의 폭력이 배어있다. 한 인간의 인성을 결정하는 요인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가정교육은 아이의 전인적 성장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은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간파한 말이다. 또래 집단에서 놀이를 통해 사회성을 기르고 타인과의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을 벗어나 주체적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수반한다.

  인간의 본성에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말은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이해관계 없이 구해주려는 마음이 든다는 본성과 맞닿아 있다. 어느 쪽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성장과정에서 혹은 교육과정에서 결정되는 성향일 뿐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런 성향은 직접적인 평화교육이나 폭력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는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는다. 경쟁과 이기심을 길러 살아남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는 환경에서 어떤 사람으로 자라게 될 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지적 발달이 정서발달보다 중요하다는 어른들의 침묵의 카르텔은 가장 위험한 폭력이다. 높은 성적과 경제적 부를 획득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사회적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와 성향은 경쟁과 효율로 길러지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인지, 어떻게 학교를 운영하며 그들을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수많은 담론은 결국 어른들의 취향에 따라 결정되어 버린다.

  우리가 겪어 온 대입제도와 교육제도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아무 교훈도 얻지 못한 것은 아닌가? 아직도 끊임없이 아이들을 문제풀이 기계로 만들고 있으며, 순종적이고 단정한 아이들로 키우고 싶어한다. 조금 다른 생각과 표현, 서로 다른 머리 길이와 공부 방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네모난 틀 안에 가두어 놓고 틀 밖에 아이들은 학교 밖으로 버린다. 자퇴하는 아이들은 어디로 갈까? 그들은 과연 이 사회의 낙오자들인가?

  현직 교사들이 모여 학생생활연구회를 조직하고 현장에서 경험한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이선생의 학교폭력 평정기>는 우울한 21세 대한민국 학교 교육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교사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교육 정책과 학교 현실은 19세기와 넓은 의미에서 보면 달라진 것이 없다. 교육의 목표와 방향은 정치 논리나 이데올로기로 결정되지 않아야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불법 판정을 받은 교과서를 밀어붙이는 교육부, 대학 입시에 올인하는 대한민국의 학생과 부모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결정되는 교육제도 속에서 과연 폭력은 사라질 수 있을까? 논리의 비약이 아니다. 삭막한 가슴에 꽃이 피어날 수 없다는 자명한 논리 앞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고은우, 김경욱, 윤수연, 이소운 선생님은 초, 중,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다. 실제 현장에서 겪은 사례들은 소설이 아닌 현실이다. 필명을 사용했고 자세한 소속을 밝힐 수 없을 만큼 학교폭력은 심각하다. 몇몇 학교에서 벌어지는 소수의 아이들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자녀를 살펴보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 없이 제도를 개선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대책일 뿐이다. 왕따, 언어폭력, 물리적 폭행은 한 가족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언론에서 주목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어야만 그 심각성을 인식하는 태도는 교육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최소 백년 후를 내다보지는 못할망정 당장 내 아이만을 위해 노력한다면 백년 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저자들은 희생과 고통을 수반하자는 말이 아니라 학교 폭력 근절 대책을 세우자는 말이 아니라 교육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다시 생각하자는 외치는 것은 아닐까? 하루에 7시간의 정규수업, 보충수업, 학원, 과외, 인강, 독서실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삶은 계속되어야하는 것일까?

  이 책의 등장하는 준혁이, 한나, 경민이, 규명이, 경태, 동훈이, 기민이, 정욱이는 바로 우리들의 아들이며 딸이고 조카이며 친척이다. 그 귀한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믿고 싶지 않지만 그들 뒤엔 반드시 문제적 부모와 환경이 기다리고 있다. 한 인간의 본성만을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하지 말자.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우생학적 논의는 관심 밖의 영역이다. 가만히 관찰하고 그 원인과 결과를 따라가보면 결국 기성세대의 문제가 드러난다. 학생 개인의 인성과 교사의 지도 능력으로 학교 폭력을 바라본다면 학교는 곧 지옥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090922-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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