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 88만원 세대에게 전하는 한기호의 자기 생존 솔루션
한기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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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나름의 기능을 가진다. 한 시대를 정리하고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은 몇 권의 책을 통해 얻을 수 없는 특별한 혜안이다. 재밌고 즐거운 책읽기, 예술적 감동을 얻는 책읽기, 지식과 정보를 얻는 책읽기, 배움을 위한 책읽기, 시간을 보내기 위한 책읽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책읽기 등 다양한 이유로 사람들은 책을 읽는다. 하지만 책읽기를 통해 삶을 변화시키고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근본적으로 생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일이 책을 통해서 가능할까?

  중세의 봉건적 가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꿈꿔보기도 전에 제국주의에 유린당한 한반도는 해방이후 60여 년간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정치, 사회적으로는 물론 경제, 문화적으로도 급격한 변화가 이어졌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현재를 살펴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지식인의 책무일 것이다. 사르트르가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역설했듯이 스스로 변화의 주체와 민중들을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권력을 이용하고 안일하게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이념을 넘어 자신의 책무를 방기하는 파렴치한 행위이다. 지식인의 범주와 역할에 다양한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기성세대 혹은 어른이라고 불리는 세대는 다음 세대를 위해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한기호는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를 통해 대한민국 20대의 현실을 정확히 짚어냈고 현실적 대안은 물론 미래 사회의 방향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는 우리 사회의 경제현실과 젊은이들의 삶에 대해 수많은 논쟁을 불러왔다. 이 책도 어떻게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승자독식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자기계발서 틈바구니에서 20대의 손에 반드시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아니 그보다 곧 20대가 되는 10대에게 먼저 읽혀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트리나 포올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 한 마리 애벌레들은 모두 소중한 나비가 될 준비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 내몰려 있다. 일제고사와 수능 성적 공개는 누구를 위해 왜 필요한 것일까? 동물들의 생태계처럼 인간 사회에서도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원칙이다. 하지만 모든 문제를 경쟁 논리로 풀어내는 것이 과연 합당하고 가능한가? 공정한 경쟁 체제는 차치하고라도 삶의 목적과 방향을 가늠하지도 못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동일한 교재와 학습 내용을 가지고 그들의 능력을 한줄로 세우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가? 조금만 더 멀리 내다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누구든 금방 알 수 있는데도 아이들을 끝없이 국영수 경쟁체제로만 내모는 교육에는 희망이 없다.

  하워드 가드너는 다중지능 이론을 통해 인간의 지능과 능력을 다양하게 분석했다. 우리 인간은 다양한 흥미와 소질과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동일한 잣대와 기준으로 모두를 재단하는 방법은 문제가 있고 하나를 위해 모두가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일은 공멸의 지름길이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공감하면서도 그대로 방치한다면 명백한 기성세대의 직무유기다. 결국 10대와 20대가 가장 피해자가 되고 희생자가 될 것이다. 한번뿐인 인생에서 그들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미래 사회의 가치를 안내하는 것은 어른들의 당연한 책임이다.

  모든 애벌레는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교육은 불가능할까? 한기호는 그 대안으로 책읽기를 제시한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그의 주장은 현실과 동떨어 보이지만 현실에 대한 적확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의 근거를 갖추고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종횡무진 분야를 가리지 않고 넘나드는 책읽기와 정확한 분석능력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출판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무서울 정도의 독서력은 그의 혜안을 뒷받침한다. 다양한 분야의 책에서 인용하고 저자들의 이야기를 소화해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칼날처럼 예리하다. 그가 인용한 대부분의 책을 읽었기 때문에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슬프지는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20대의 비정규직화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학 입학에 동시에 어지간한 중산층 가정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등록금 부채가 시작된다. 85%라는 OECD 최고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사회구조도 문제지만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는 현실을 무한 경쟁체제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두가 애벌레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한 마리 나비가 되기위해 자신의 ‘컨셉력’을 갖춰야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에서는 앉아서 코풀기 위해 우수학생 유치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대학은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다양한 선발 방식을 통해 선발하고 그들을 제대로 교육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한기호는 이 책에서 대학 4년 동안 1주일에 한권씩 200권의 책을 읽으라고 주문한다. 인문학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분야의 교양을 통해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고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컨셉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형화된 취업 5종세트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자신의 스펙관리만 잘 한다고 해서 정규직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정확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

  이 책은 세상을 읽고 분석하고, 생존의 솔루션을 찾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컨셉력’을 갈고 닦으라고 주문한다. 그 중심에는 책읽기가 놓여 있다. 시대가 달라지고 세상이 변해도 근본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책읽기다. 책만 읽으면 문제가 해결되겠냐는 반론은 차후의 문제다. 수능성적으로 평생이 좌우되고 승자독식의 경쟁체제와 경제적 능력만이 유일신이 된 세상에서 책읽기는 과연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은 인터넷 검색만으로 얻을 수가 없다. 진지한 책읽기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혜안에서 비롯된다. 관계와 소통을 통해 미래 사회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20대를 기대하려면 바로 지금 우리 주변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고민하는 힘이 필요한 시점이다. 


091018-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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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인 6색 인터뷰 특강 인터뷰 특강 시리즈 6
금태섭 외 지음, 오지혜 사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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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는 다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림 (화:畵)
재앙 (화:禍)
신발 (화:靴)
화 (化)
  변화
  합계의 옛말
화 (火)
  화요일의 준말
  불
  노여움
일본을 화(일본어: 和 와[*])라고 표현한다.

  위키백과에서 ‘화’를 찾아보았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웃고 또 화를 낸다. 나는 오늘 몇 번이나 화를 냈을까? 몇 번이나 웃었을까? 사람이 70까지 산다고 할 때 화내는 시간은 약 2년이라고 한다. 웃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하루에 열 번 웃으면 약 5분, 평생 88일 동안 웃는다고 한다. 석 달도 안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울한 통계가 아닐 수 없다.

  한겨레창간 15돌 기념 인터뷰 특강이 벌써 여섯 번째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인터뷰 특강을 듣지는 못하고 읽고 있다. 시대정신을 하나의 주제로 뽑아내고 그 주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인터뷰하는 형식의 특강은 내가 지금 여기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외면하고 싶고 부끄러운 현실일 수도 있지만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오히려 용기있는 행동이다. 올해의 주제는 ‘화’다. 얼마나 화나는 일이 많은가? 눈감고 귀닫고 생각하지 않고 살면 행복하게 살 수도 있다. 내게는 그런 바탕이 없는 것 같다. 작년 5월부터 뉴스조차 끊어버리고 TV를 보지 않고 살지만 신문과 인터넷 뉴스까지 외면할 수는 없다.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을 알아가면서 절망과 분노는 점점 심해지기만 한다. 마음 편하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살수 없는 마음밭을 타고 태어난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이다.

  공자는 『論語』 제 13편 자로(子路)
  자공이 묻기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한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싫어한다면 어떻습니까?”
  “아직 부족하다. 마을 사람들 중에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선하지 못한 사람이 싫어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불현 듯 생각나 먼지 묻은 논어를 꺼내 뒤적여 찾아낸 구절이다. 모든 사람에게 나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도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기막힌 가르침. 우리는 둥글게 둥글게를 외치지만 그 말은 적당한 타협과 비굴함을 은폐한 말이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개인적인 불이익의 감수를 의미한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새삼스럽게 공자님 말씀을 떠올리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고 있는지 아니면 ‘화’를 참고 있는지 갑자기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자인 진중권은 이제 대학 시간강사 자리에서 쫓겨났다. 3월에 특강을 할 때만 해도 교수라고 불리고 있으니 현실은 시시각각 ‘화’를 돋우고 있다. 윤도현과 김제동이 짤리고 이제는 손석희도 오락가락이다. 식물인간이 아니라 식물TV가 될 모양이다. 어떤 정권이든 언론을 길들이고 싶지 않겠나마는 각본 없는 코미디도 이만하면 수준급이다. 세상을 버리고 산속에 칩거했던 선인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가는 것은 내 성격의 결함 탓이거나 아직도 현실에 적응하지 소아병적 태도 때문인지도 모른다. 진중권은 ‘대중의 화’가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그 화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짚어준다. 대중의 분노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인 분노가 필요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표출하여 공적인 분노의 힘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은 아닌가?

  정재승은 우리 뇌에서 ‘화’가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디케의 눈』을 통해 우리나라 사법제도의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했던 금태섭은 ‘사형제’를 분노의 법으로 규정하며 그 실태를 통찰한다.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를 통해 만나보았던 홍기빈은 ‘돈’이 불러오는 ‘화’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안병수는 ‘화난 음식’에 대해 고발한다. 마지막 주자는 『건투를 빈다』의 김어준이다. 서민들의 화내기인 패러디와 풍자에 대해 말한다. 웃으면서 화내고 자기객관화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며 특강을 끝맺는다.

  여섯 명 모두 책으로 먼저 만났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더 좋았을 텐데 또다시 책으로 만나 아쉽기만 하다. 내년에는 어떤 주제로 특강이 이루어질지 궁금하다. 2009년을 하나의 주제어로 정리하면 내년의 주제는 무엇이 될 것인지. 화내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개인적인 차원의 화가 아니라 공적인 차원의 화가 될 때 문제다.

  개인적 차원의 고민과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화’가 훨씬 더 치명적일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사회적 차원의 화는 대책이 있어도 실천하기 어렵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경우는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후자의 경우가 건강을 해치고 있는 느낌이다. 하지만 좋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에게 매우 나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화내고 웃는 일이 더 많은 세상을 꿈꾸지 않는다면 오늘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09101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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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노래한다 창비청소년문학 20
권하은 지음 / 창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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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풍노도의 시기. 진부하고 습관적인 표현이지만 청소년기를 우리는 그렇게 표현한다. 잔잔한 수면에 물방울 하나가 잔을 넘치게도 하고 순간적으로 아름다운 왕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에릭슨은 이때를 ‘결정적 시기’라고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모든 것에 도전할 수 있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사춘기는 단순한 생각의 봄이 아니라 성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제 2의 탄생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민과 방황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런 시기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를 둘러싼 세계의 부조리에 눈에 띤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알게되고 세상은 불공평한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의 존재가 <변신>의 벌레처럼 하찮게 느껴져 비참해지고 삶의 목적과 이유를 찾지 못해 죽음을 생각하기도 한다.

  모두 그 시절을 겪었으면서 어른이 되고나면 시치미를 떼는 특징이 있다. 세대가 바뀌어도 부모나 선생님이 되고나면 자식과 학생들에게 자기가 들었던 이야기를 지겹게 반복한다. 자신들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세상에서 배운 삶의 테크닉과 경쟁의 질서를 일방적으로 주입한다. 말 잘 듣고 통제에 잘 따르며 반항하지 않는 순종적인 사람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불철주야 노력한다. 그게 바른 길로 인도하는 방법이라는 착각을 버리지 못한다.

  그들을 이해하지 않으려하고 어른의 기준과 잣대로 재단하는 버릇은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빵틀에 밀가루 반죽을 집어넣듯 모두 같은 모양과 맛을 내려한다. 대한민국 학교의 빵틀은 모두 똑같다. 부모들의 생각틀도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질식하지 않을까? 정말 묻고싶다. 국영수만 잘하면 행복해지고 잘 살게 되는거냐고?

  권하은의 <바람이 노래한다>는 아니라고 말한다. 부모없이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한쪽 팔이 없는 소주, 어머니 없이 주정뱅이 아버지와 함께 사는 석준 그리고 유복한 목사의 딸로 시골에 전학 온 주인공의 만남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어렵지만 그것은 외적 조건으로 판단한 어른들의 시선일 뿐이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범적인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아니고 사춘기에 겪게되는 첫사랑의 애틋함을 다룬 소설도 아니다. 작가는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아이들의 관계 속에서 삶의 길을 찾고 있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어디 있을까? 어떤 면으로 모든 아이들은 결핍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든 경제적 능력이든 우정이든 자존감이든 완벽하게 조건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라는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혹시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딘가 모자르거나 생각이 없는 아이가 아닐까 싶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인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목적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상처받은 세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거품과 과장을 걷어냈기 때문이다. 뻔한 결론이나 교훈을 들이대지도 않고 아름답고 예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생활을 있는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그려낸다. 작가의 첫 소설이기 때문에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말하기 어려지만 후속작을 기대할 만하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영역이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성인과 다른 환경, 시기,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특별한 존재다. 홀로서기가 불가능하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받기도 힘들다. 그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는 많은 작가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 소설은 물로 만나 불로 헤어지는 주인공들의 관계가 비극적으로 그려진다. 석준의 죽음으로 끝맺는 결론 때문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과 관계의 양상이 어른들의 그것처럼 한계를 보여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아프게 그려진다. 우정과 사랑이 전제되어 서로를 위해 희생하지만 결국 이들의 생은 제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단순히 비극적 세계인식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성인이 되는 과정과 현실을 희망적으로 포장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과 희망이 아니라 방황과 좌절의 과정을 보여주고 그것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식을 현실감있게 보여주는 소설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소설은 현실 너머의 세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그려보는 도화지같은 역할을 해야한다. 진실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삶의 아이러니와 부조리를 읽어낼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을 통해 아이들이 조금씩 더 자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진실은 항상 저 너머에 존재하는 법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며 부모의 말도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소설은 어디 없을까?


09101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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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테리 트루먼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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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아빠’가 되었을 때의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죽기 전에 끊어지지 않는 보이지 않는 끈이 이어진 느낌이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했다는 신비로움과 살아 꿈틀거리는 한 가녀린 존재에 대한 애틋함보다 내 존재 의미를 되돌아보는 것이 세상 모든 아빠들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감정은 건강한 아이를 만나고 난 후의 개인적 소회에 불과하다. 기형이나 장애아를 기르는 부모의 심정이나 생활을 우리는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테리 트루먼의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는 매우 충격적인 제목의 청소년 소설이다. 외국 작가의 소설은 우리와 다른 성향과 문화적 기호로 인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최중증 장애아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어느 나라 부모든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워내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동반한다. 단순하게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고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는 의미다. 장애인 문제는 복지국가를 향한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관점과 문제의식을 제공한다. 그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더불어 함께 치료하고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는 모든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과 배려가 필요하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일까만 장애아를 키우는 일은 부모의 입장에서 평생의 업보가 된다. 또한 부모가 죽으면서도 마음 편하지 못하다. 그 아이의 나머지 생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죽은 후에도 고통받게 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과 가족의 고통은 물론 사회적 편견과 시선까지도 극복해야하는 이중고를 겪게된다.

  외모는 개인이 선택할 수 없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선천성 장애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장영희도 평생 장애와 싸웠다. 자전거를 타다가 심하게 넘어져 오른손을 기브스한 채 두달만에 왼손으로 젓가락을 사용하시는 분도 뵈었다. 하물며 평생 신체의 일부가 불편하다면 어떨까 생각해보자. 더구나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한 지적 장애의 경우는 가족이 거의 모든 것을 책임져야한다. 아무리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추진다해도 기본적으로 부모가 짐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소설은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꾸며내거나 신경숙의 <외딴방>처럼 실제 작가의 경험이 녹여낸다. 이 소설은 후자에 가깝다. 작가 테리 트루먼에게는 ‘헨리 쉬한 트루먼’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과 똑같은 중증 장애 아들과 멀쩡한 아들이 있다. 작가의 직접경험에서 길어올린 소설의 진정성은 어떤 감동과도 비교할 수 없다. 단순히 현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제목처럼 섬뜩한 이야기지만 그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숀이다. 열네살 남자아이에게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과 누나가 있다. 단란한 한 가정이 숀에 의해 어떤 고통을 받는지 실감나게 그려낼 것이라는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 소설의 화자는 바로 중증 장애아인 숀이다. 숀의 시선으로 가족들을 바라보고 세상을 말하는 방식은 낯설지만 신선하고 재미있게 그려진다. ‘숨겨진 천재’ 숀은 모든 것을 기억한다.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절대 잊지 않는다. 뛰어난 지능과 남다른 유머감각을 가진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곳일까? 이 소설은 장애의 원인과 대책을 찾기보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것을 요구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숀은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는 아이로 등장한다. 특히 아버지의 마음과 생각을 읽어내고 아버지가 쓴 모든 시를 감동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숀의 장애 때문에 아버지는 가족을 떠난다. 단지 힘겨운 삶의 고통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을 설명하는 방식이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 소설에는 실제 두 살짜리 아들을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킨 비정한 아버지가 등장한다. 그를 인터뷰하고 TV에 출연해서 숀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다가 숀은 또다시 발작을 일으킨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 고통받지 않게 해주고 싶다는 말을 옹호하는 숀의 아버지를 보고 숀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가끔 장애를 극복한다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가끔 뉴스에서는 사회적 편견이나 역경을 딛고 자신의 목표를 이룬 장애인들의 삶이 소개된다. 그 곁에는 항상 헌신과 희생으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장애가 있는 자식에게 바친 부모가 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자. 신체가 아니라 훨씬 더 심각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 그 가족들의 생활은 어떤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었다.

  이 책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사랑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전제된 상태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소설의 끝부분은 열려있다. 아버지와 처음으로 대면한 숀. 아버지의 결정이 무엇이든 그리고 숀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결과가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들의 살아온 과정과 삶의 흔적들 그리고 그들의 미래가 어떠할지는 모든 독자가 마음속에 그려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 마음에는 어떤 장애가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091008-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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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 - 친구와 적에 대한 16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19
존 업다이크 외 지음, 달린 매캠벨 외 엮음, 이은선 옮김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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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 때문에 세계일주 후에 연락을 한다는 오래된 친구의 문자 한통. 아침에 느닷없이 재미있게 늙어가냐는 문자를 받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 녀석의 직장은 우리집에서 지하철 두 정거장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있지만 2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불현 듯 생각나면 전화나 문자로 안부를 전하기도 하지만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워낙 바쁘게 사는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일도 어색해질 때가 있다.

  이제 우정이라는 단어는 낡은 앨범 속에 숨어사는 친구들의 옛 이름이다. 부대끼고 자주 만날 수 있는 친구가 늘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원주로 여행을 갔다가 음표 모양의 풀꽃을 모아 붙인 편지를 새벽에 우리 집 우체통에 넣고 가던 친구에게 온 문자 한 통이 하루 온종일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동성 간의 사랑을 우정이라고 표현한 어느 작가의 말이 새삼스러운 것은 <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라는 도발적인 질문의 책을 만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를 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타인을 통해서다. 친구와 가족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나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지를 안다는 것은 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성찰이다. 타인의 눈에 비친 모습이 나의 전부일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눈은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될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뚜렷한 기준이 될 만한 것이 친구다. 친구의 직업이나 성격이 아니라 어떤 친구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확인해 보자.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존 업다이크를 비롯한 열 다섯명의 미국 작가의 단편을 모아놓은 <넌 네가 누구라고 생각해?>는 ‘우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나의 모습을 확인하는 이야기들을 모아 놓았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여러 명의 작가가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냈는지 그들의 작품 중에 선별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친구를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스무 살이 넘어 제각기 다른 삶의 방향을 찾고 다양한 직업을 선택하면서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진다. 심리적인 거리가 아니라 생활의 차이를 말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만난 친구와 그 이후에 만난 친구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머릿속에 각인된다. 감정이 앞서고 이성보다 행동이 앞섰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함께했던 친구는 무모함까지 받아들여준 기억을 공유한다. 말로 설명될 수 없는 관계가 세상에는 늘 존재하는 법이다. 그러나 스물 살 이후의 친구 관계는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라는 수식어는 염두해 둘 필요가 없다. 다만 짤막한 단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음미할 수 있다면 좋겠다. 에리 브래드버리의 ‘이럴수가’는 친구와의 이별을 이야기한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별하는 모습은 유년시절에 헤어진 친구들을 떠오르게 한다. 연인이든 친구든 이별의 아픔은 영원한 문학의 주제가 되어왔다. 한 인간의 성숙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처럼 여겨지는 이별은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그 대상과 무관하게 ‘고독’와 ‘외로움’의 경계를 알려준다.

  어린 시절 친구가 시간이 흘러 연인이 되기도 한다. 주디스 오티스코퍼의 ‘미국사’, 존 업다이크의 ‘악어 떼’, 기시 젠의 ‘바뀐다는 것의 의미’에 등장하는 친구는 어린시절 짝사랑 하던 남자 혹은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밖에도 짐이 되는 친구, 나이와 계층을 뛰어넘는 우정 등 다양한 ‘친구’와 ‘우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대형마트의 시식코너처럼 다양하게 나열하고 있다.

  한 가지 당황스런 점은 장편에서 발췌한 경우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합하고 다양한 관점과 흥미를 위해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황당한 편집이다. 쉽고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는 작품도 많다. 이 책은 현대 미국작가들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들이 보여주는 유년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내는데 목적을 두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작가의 작품을 접하고 또 한 작가를 깊이 있게 읽기 시작한다면 터미널의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다. 그 나이, 그 시절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삶의 일회성. 돈이나 권력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 관계맺음, 감성, 열정 - 그 모든 것을 위해 잠시 침묵한다.


091006-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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