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힘이 세다 - 죽어있는 일상을 구원해줄 단 하나의 손길, 심미안
피에로 페르치 지음, 윤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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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장면 1.

  작지도 크지도 않으며 깊지도 넓지도 않은 강이 흐르면서 돌들과 부딪치는 소리. 짐승이 웅크린 것처럼 거대한 산 능선이 만들어낸 실루엣. 희뿌윰한 달빛과 드문드문 박혀 있던 몇 개의 별빛. 버드나무 벤치 아래 그 광경을 잊을 수 없겠다고 생각하던 순간 그녀가 처음 말을 건넸다. 거짓말처럼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장면 2.

스무 살. 강릉 경포에서 버스로 한참을 더 가다가 바닷가 민박을 보고 내렸다. 민박집 방에 비스듬이 기대면 미닫이 유리문을 통해 하늘, 바다, 모래가 3분의 1씩 보였다. 그렇게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다 죽으려던 순간이 있었다.

장면 3.

수색중대의 겨울, 비무장지대(DMZ)의 15시간 매복 작전. 영하 20도가 넘는 칼바람과 긴장. 완전한 어둠속에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밤하늘에 박혀있던 별들. 파랗게 밝아오는 새벽과 함께 철수. GOP 통문을 향해 산등성이를 오르다 뒤를 돌아본 일출. 해발 1,000고지가 넘는 능선 아래 안개는 강물처럼 일렁이고 산봉우리들은 군데군데 섬처럼 떠 있는데 붉은 해가 솟구치던 찰라, 이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아가는 동안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면을 떠올린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기막힌 경험에 대한 이야기다. 그 장면, 그 상황, 그 느낌은 경험하고 있는 모든 사람마다 다르다. 개별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심미안’은 공통적인 부분이 있고 그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운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구별한다. 이것은 유아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심리 실험을 통해 증명된 사실이다. 물론 아름다움에 관한 선호는 시각적인 것에 한정시킬 수는 없다. 아름답다는 것도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아름다움은 사물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 P. 23

  피에로 페루치는 <아름다움은 힘이 세다beauty and the soul>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우리들의 ‘존재 방식’에 관한 책이다. 정신분석과 명상법을 통해 종합심리요법의 권위자라는 저자의 이야기는 깊고도 정교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거나 확인할 수 있는 단순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아름다움이 갖는 특별한 효과에 대해 광범위하게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우선 추상적인 개념의 아름다움에 대해 필요성과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어떻게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은 우리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확인시켜 준다. 주관적 인식을 토대로 한 개별적 취향이 아름다움은 아닐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아니, 아름다움을 통해 우리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아름다움에 관한 책이 아니라 사람과 인생에 관한 책인 것이다.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서 교양이 있거나 똑똑할 필요는 없다. 종종 교양이나 지성이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미학적 경험이 강하고, 진실되고,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려면 오히려 자신의 판단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아름다움과 점차 친밀해지면서 자신과의 접촉을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 P. 95

  사실 정신분석, 명상, 심리 등은 모두 인간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아름다움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움의 힘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시작이다.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 치유와 구원, 관계와 공감, 인식의 창이라는 장들을 통해 저자는 독자들에게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제공한다.

  마치 혼자 산책을 하며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미소 지으며 아름다운 삶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듯하다. 나는 누구이며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영혼과 무의식의 세계에 신비한 힘을 가져다주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호소하는 듯하다.

감정이 승리하면 우리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반면에 이성이 승리하면 냉혹하고 단절된 사람이 될 위험이 있다. - P. 273

  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지만 상처받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이성에 기대게 된다. 아름다운 것이 감정적인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성이 냉혹하고 단절된 사람을 만들기 쉬운 것처럼 보이는 아름다움과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

  촛불을 켜 놓은 채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나를 돌아보고 세계를 관찰하는 일이 아름다운 명상의 시작은 아닐까. 비밀스런 의식이나 환상적 종교체험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나를 돌아보고 지극한 아름다움을 통해 맑은 영혼을 가꾸어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시작되어야 한다.

예술은 ‘경험의 절정’ 혹은 ‘몰입’으로 쉽게 인식을 확장시킨다. 또 예술은 학습 동기를 자극한다. 협동심만큼 독립심도 키워준다. 사회성을 향상시키고, 분석과 통합 같은 지적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훈련시켜준다. - P. 280

아름다움과 지식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있다. 바로 신념이다. 신념은 아름답다. 신념은 아주 중요하고, 많은 사람의 인생에 도달할 수 있고, 사람들을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신념은 문명의 안내자다. - P. 281


  예술만큼 아름다운 것이 신념이다. 신념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만 영혼을 팔아 개인적 이익이나 현실적인 욕망을 얻는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이 있을까. 책을 읽고 나서도 아름다움의 힘을 실감하거나 심미안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무엇이 아름답고 그렇지 않은 지는 누구나 안다. 다만 그것이 사라져가는 현실, 우리 안의 건조한 바람이 문제는 아닐까 싶다.


091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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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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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을 만들다가 제 맛이 나지 않으면 양념을 더 넣거나 식재료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릇을 엎어버리고 새로 만드는 일이 혁명이다. 그릇을 엎어버린다니 부정적인 뉘앙스, 폭력성향, 예측 불가능성, 안정과 질서 등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떠오른다. 하지만 혁명을 어떻게 정의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인식의 폭을 확대하고 그 틀을 넓히는 것이 혁명이다.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그것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했다. 또, 하늘이 아니라 땅이 움직인다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명칭이야 어떠하든 일상적이고 관습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나야 혁명은 비로소 시작된다. 사람들은 흔히 레닌이나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마오쩌뚱을 떠올린다. 급격한 사회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삶의 뿌리가 흔들린다고 생각하는 불안은 오히려 삶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혁명을 꿈꾼 시대는 행복했을까? 장석준은 『혁명을 꿈꾼 시대』를 통해 20세기에 명멸했던 혁명가의 육성을 통해 인류 문명의 발전을 성찰하고 있다. 사실 급격한 변화와 변동의 다른 이름에 불과한 ‘혁명’은 새롭고 신선한 발상의 전환에 불과하다. 조금 더 실천적인 변화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누구든 언제 어디서든 혁명은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림자처럼 그곳에 놓여있는 혁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다.

  박권일과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는 경제학과 사회학이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꽃을 피운 매우 현실적인 책이다. 그래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성공을 둔 책이 되었으며 이 시대의 키워드가 되어버렸다. 이 땅의 20대에게 보내는 찬사와 갈채와 희망과 용기가 아니라 현실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비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냉철한 현실인식을 촉구하는 책으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소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설 같은 현실에 많은 20대가 공감했으며 기성세대는 구조적 모순과 현실에 대한 문제점들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이 책의 주장과 시각에 대한 반론과 다양한 논쟁들이 이뤄졌지만 발전적 방향을 위한 논의의 확대재생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에 대한 속편 혹은 구체적 해설서 같은 책이 『혁명은 조용히 이렇게』이다. 한기호의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와 더불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대의 슬픈 초상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슬픈 일이지만 현실을 직시하고 대안을 모색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현실에서 20대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인다. 기성세대가 누렸던 경제호황기의 추억은 다시 현실이 되지 않는다. 세상은 저절로 움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20대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석훈은 조한혜정의 제안으로 대학생들을 만난다. 우울한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고시, 공무원, 대기업의 바늘구멍을 뚫지 않으면 대안이 별로 없어 보인다. 예전의 학생 운동 세력과 비교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사회를 고민하고 현실의 문제점을 고민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몽상가나 이론적 혁명가가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에서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뚫어야할 현실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저자는 이것을 당사자 운동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순수성은 자기 이익과 무관한 대리인 운동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 스스로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 운동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비록 그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다음 세대 즉 지금의 10대가 20대가 되어서 혜택을 받더라도 지금 당사자 운동을 통해 스스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법을 찾아나가지 못한다면 20대의 전망은 점점 어두워질 수도 있다.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경쟁질서가 낳은 결과를 토대로 미래를 전망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다. 경제학자인 우석훈은 비관적 전망을 단순하게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원인과 해법을 이 시대의 대학생들과 함께 고민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의 자식들인 20대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고 군인과 CEO 영웅시대를 살고 있는 그들에게 과연 희망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구조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말하고 있다. 우석훈과 함께 『성난 서울』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과 만난 일본의 아마미야 카린은 일본 사회의 심각성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헤쳐나가고 있는 혁명가로 볼 수 있다. 변화의 중심에서 내가 먼저 행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요지부동이다. 우정과 환대의 공간을 마련하고 서로 믿을 수 있는 관계를 복원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 또 무엇을 통해 우리가 구조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구조 앞에 개인은 늘 나약하다. 그러므로, 구조에는 구조로 맞서는 것이 가장 고전적이고 오래된 해법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20대에게는 그들이 움직이거나 기댈 구조가 없다. - P. 26

  비참한 현실이지만 대한민국의 20대에게는 구조가 없다. 저자는 날아보자고 외치지만 얼마나 많은 20대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68혁명과 차티스트 운동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지만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자의 말대로 상상력이다. 혁명이라는 것은 상상력의 승리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종류의 현실적 힘의 논리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명랑한 상상력의 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혁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러시아 혁명처럼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전환하기 위한 혁명이 한 종류고, 68로 상징되는 세계를 뒤엎었던 상상력의 혁명이 또 한 종류다. 물론 그 어느 쪽이라도 ‘혁명’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상상력의 클라이맥스다. 만약 최고의 혁명가 한 사람을 꼽으라면 여러분은 누구를 꼽으시겠는가? - P. 32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온 생애를 바쳐야 하는 20대는 오늘도 제로섬 게임에 몰두하고 있다. 누군가 경쟁에서 이기고 정규직이 되면 누군가는 패배자가 되고 비정규직이 된다. 이 책의 말미에 대학생들이 직접 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코코 샤넬의 혁명적 상상력이 우리들의 20대에게 꽃 필 수는 없는가? 아니 곧 20대가 되는 10대는 어쩌란 말인가?


09102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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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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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바람이 불고 해가지는 것처럼 사소한 일들이 매일 반복된다. 하지만 그 사소한 자연의 질서보다 위대한 인간의 일은 무엇일까? 구름 따라 흘러가듯 인생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던 시대가 따로 존재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조금 더 여유 있고 한가롭게 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가 20세기 이후에는 없었으리라.

  가끔 책에 관한 책을 읽는다. 고수들의 독서 편력이나 글 쓰는 사람들의 노하우를 공개하는 책들을 읽다보면 세상에 책이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싶어진다. 우선 학교가 없어지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를까? 사서들과 서점 직원들은 뭘 할까? 도서관과 서점은 뭘 팔아야할까? 가상 시나리오지만 책이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본다.

  일요일 아침은 유일하게 저절로 눈을 뜰 때까지 잘 수 있는 날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침대에서 뒹굴며 12시까지는 책만 본다. 절대독서시간. 평소에 읽는 것도 모자라 절대 독서 시간을 정해 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아무생각 없이 가장 편안한 자세로 책에 푹 빠져 있는 이 시간이 나는 가장 행복하다. 그 시간에 일을 해야 하는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등산을 하든, 산책을 하든, 공부를 하든, TV를 보든 사람들은 누구나 가장 행복한 일을 한다고 믿는다. 아무것도 안하고 매일 그렇게 살 수 있을 때까지 나는 가능하다면 일요일 오전의 편안한 책읽기 시간을 행복하게 즐기고 싶다.

  책에 관한 책이 눈에 띠면 여러 번 망설이다가 한 권씩 사서 읽는다. 임종업의 『한국의 책쟁이들』도 여러 번 망설이다 읽었다. 사실 어떤 특별함이 없기 때문이다. 책에 미친 사람들의 성향이나 방법은 정상인의 눈으로 보아 이해할 수 없을 테지만 그건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어떤 분야의 매니아가 되면 상식 수준을 넘게 된다. 다만 그것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따라 우리의 평가는 조금 달라질 수 있겠다. 하지만 세인들의 평가와 무관하게 지극한 행복과 한 우물을 파는 즐거움을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확인하기는 힘든 일이다.

  한동안 토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북섹션이 들어왔다. 두고두고 일주일 내내 읽었는데 어느 날부터 사라졌다. 그 한 코너에 실린 글들과 빠졌든 글들을 모은 『한국의 책쟁이들』은 책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다. 책밖에 모르는 미련퉁이들의 이야기다. 누구보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을 읽는동안 부러움과 불편함이 동시대 밀려왔다. 그들의 이야기에 감탄하다가 비슷한 상황과 처지에 공감하기도 했다.

  이 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이 바뀌었거나 책 때문에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들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한 평생 책을 좋아하며 책 속에 묻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다. 저자는 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하고 그들이 아껴둔 책들을 사진으로 담아냈다. 주로 헌책방에서 정보를 얻고 알음알음으로 소개받아 찾아낸 사람들이지만 이 사람들을 통해 아날로그 시대 책의 운명과 책에 대한 마지막 사랑을 확인하는 것 같아 슬픈 감동을 느꼈다.

  스물 여덟명의 책쟁이들은 직업도 나이도 성별도 다양하지만 책에 미쳤다는 단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만화 마니아부터 동두천의 시인부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소개되었지만 내 눈길을 끌었던 사람은 단연 『전작주의자의 꿈』 조희봉씨. 화천에 내려가 아버지가 운영하던 우체국을 물려받아 상서우체국장이 된 조희봉씨의 변신도 생활도 반가웠다. 농촌에 내려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그의 삶이 이제 책이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책쟁이들의 공통점 중 한 가지는 가족들의 눈치를 본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다른 것에 미친 것보다 낫다는 위안을 삼으려 이들 곁을 지키는 가족들의 노고도 이해가 갔다. 읽고 난 후의 책은 단순하게 소유물에 대한 집착으로 껴안고 있는 것과 다르다. 얼마전 10여 년간 정기 구독했던 <현대문학> 세 박스를 집 밖으로 내놓았다. 책꽂이 이외의 공간은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2천권도 안 되는 책을 갖고도 이런 고민을 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책들은 또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안타깝다. 마니아들의 특징이라면 죽음 이후를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들도 모두 그런지 모르겠다.

  이 책을 통해서 대한민국의 책 고수들에게 배울 것은 단순하게 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나름의 비범한 독서 편력을 가지고 있다. 한 분야에 대해 혹은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 고수의 진가를 발휘하는 책 수집과 독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할만큼 각별하다. 작가의 세세하게 인터뷰해내지 못한 것들이 많아 답답하기도 했지만 행간에서 보여지는 공력과 그들의 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수많은 책들을 통해 독자들은 그들의 특별함과 비법을 짐작할 수 있다.

  책읽기에 관한 한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다만 곁눈질과 앞서 간 사람들의 방법을 참고할 뿐이다. 책쟁이들의 서재를 통해 슬쩍슬쩍 호기심 어린 눈길을 던져보는 재미와 그들의 생활이 묻어나는 모습을 몇 장의 사진을 통해 확인하는 일은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이다. 날이 저물고 밤이 깊어가면 모두들 책장을 펼쳐 들 시간이다.


09102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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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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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에 들러붙은 아우라는 예술이 아직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던 시절의 흔적이다. 근, 현대 미술에서 종교적 숭배가치는 사라지고 미술관에서 전시가치만 갖게 되었다. 하이데거는 이를 한탄했지만 벤야민은 아우라의 파괴를 긍정했다. 종교 가치에서 전시가치로 변하는 것은 진보적 현상이라는 해석이다.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가 미술작품의 ‘아우라’를 통해 정면으로 충돌한다.

  미술관에 전시회를 보러가는 행위는 종교적 순례와 유사하다. 인터넷을 통해 어디에서나 선명한  FULL-HD LCD 모니터를 통해 미술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특별한 전시 공간을 찾아가는 것은 원작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다. 기술복제 시대는 복제품을 예술 수용의 주체를 대중으로 바꾸어 놓았지만 원작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관객을 압도한다.

  그러나 사진과 영화는 대중들을 예술 수용의 주체로 그리고 예술 행위의 주체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 언제어디서나 주눅들지 않고 즐기고 감상하며 수용자에서 창조자로 변신이 가능하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보고 즐긴다. 더구나 인터넷은 이제 미술 전시의 공간까지도 변화를 가져온다. 예술 자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물론 감상과 수용 그리고 창작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는 혁명적 변화를 경험했으며 그 변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원작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그리고 고전주의와 바로크를 거쳐 낭만주의에 이르기까지 명멸했던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들 중에 영혼의 울림을 주는 원작과 대면하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마그리트, 다비드, 샤갈, 르누아르, 마티스 등 많은 화가들의 원작을 보러 다녔지만 ‘영혼의 울림’을 경험한 적은 거의 없다. 원작의 아우라에 압도당한 경험은 있지만 깊은 울림을 느끼지 못한 것은 순전히 가슴이 아닌 머리로 이해한 후의 감상태도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다. 라루스 서양미술사를 시대별로 읽었지만 수많은 전문가들의 미술과 예술에 대한 이론을 이해했지만 감상은 별개의 것이다. 이제는 여유 있는 마음과 배경지식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산책하듯 그림을 감상할 기회를 갖고 싶다. 그것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미술관을 찾아가는 원작에 대한 확인 작업과 구별되어야 한다.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는 내게 이런 생각들을 떠올렸다.

  “나의 영혼에 울림을 준 그림은 마치 원래 한 몸이었으나 세상에 태어나면서 둘로 쪼개져야 했던 자신의 반쪽과 같았다.”라는 진중권의 한 마디 때문에 책을 읽기도 전에 생각은 날개를 달아버렸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는 사진의 의미에 두 개의 충위가 있음을 지적한다. 하나는 ‘스투디움(Studium)’으로,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해석의 틀에 따라 읽어내는 의미다. 우리는 특정한 사진을 보고 그 사진이 뭘 의미하는지 금방 이해하곤 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그런 일반적 해석과 관계없이, 때로는 그것을 전복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과 머리를 찌르는 효과이다. 오직 보는 이 혼자만이 느끼는 이 절대적으로 ‘개별적’인 효과를 바르트는 ‘푼크툼(punctum)’이라 부른다. - 프롤로그 ‘푼크툼’으로서 그림

  사실 이 책은 조이한과 진중권이 함께 쓴 『천천히 그림읽기』와 비슷한 책으로 짐작했다.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진중권의 ‘푼크툼’을 빌려보려는 독자들에게 적합한 책이다. 이 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값진 경험을 하게 한다. 첫 번째는 새로운 그림 정보다. 익숙하거나 이미 알고 있는 그림도 몇 개 포함되어 있지만 처음 접하는 그림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크다.

  두 번째는 다양한 해석의 즐거움이다. 진중권도 인용했듯이 수잔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모든 해석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아닐 것이다. 보편적 구속력이 있는 정답으로 작품을 감싸버리면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 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작품의 의미를 자유롭게 풀어주자는 것이다. 특히 문학의 해석은 혼합주의 양상을 띠기 때문에 서로 상이한 해석과 해석들 사이의 모순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책의 가장 빛나는 부분으로 읽혀야 한다. 발랄한 진중권의 번뜩이는 재치가 아니라면 이 책을 읽을 이유가 없다. 결국 이 책은 그림에 대한 ‘해석’의 발견에 초점을 두고 읽어야 하겠다.

  <주의 얼굴에 침을 뱉은 자>부터 <고야의 개>까지 열 두 개의 그림은 정교한 알레고리를 통해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개별적 작품들의 해석이지만 한 권의 책으로 모여 즐거운 성찬이 된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원본을 감상하고 싶은 갈증만 높아졌다. 우연히 마주친 그림에서, 익숙했던 그림들 사이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무엇에 비할까. 여유 있고 풍요로운 삶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의 사물들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애정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편안한 신발과 간편한 복장으로 아무도 없는 미술관을 어슬렁거리고 싶은 밤이다.


091023-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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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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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은 내게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밤들을 떠올리게 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그 나라마저도 내게는 미칠 듯이 사랑스러웠으니까. 우린 연인이었다. 그 나라에서 케이케이가 왔다. -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중에서

  독자가 고민하지 않고 책을 사는 작가는 얼마나 행복한가. 또 얼마나 큰 부담일까. 김연수는 내게 그런 작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가 쓴 많은 소설과 산문을 통해 나는 그가 천상 소설가라는 생각을 했다. 은희경이나 김영하처럼 번개를 맞은 것처럼 우연히(?) 소설가가 된 경우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 습작과 준비를 거쳐 작가가 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김연수는 그 중간쯤 서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물론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작가가 되는 과정보다 독자들은 그의 작품만을 읽어낸다. 나이, 성별, 학력, 직업, 이력들이 작품 이해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철저하게 작가의 문장이 작가를 말해준다.

  나는 지금부터 나올 김연수의 소설이 더 궁금하다. 깊은 사유와 감각적인 인상, 꾸준한 인문학에 대한 독서를 통해 지적이면서도 섬세한 감수성의 세계를 보여준 그의 소설들은 그를 이상문학상 작가로 만들었고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하지만 나는 더 농익은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재능 없는 성실함처럼 답답한 일이 또 있을까? 게으른 천재의 잔재주도 짜증나기는 마찬가지다. 김연수는 그 중간쯤 서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신작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는 청춘의 중간 결산쯤 되는 소설집이 아닐까 싶다. 9편의 단편을 모아서 묶어낸 이 책은 작가가 견지해온 슬픔을 기저에 두고 있다. 사랑과 슬픔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작가의 천형이라면 김연수는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작가라고 볼 수 있다.

비록 형편없는 기억력 탓에 중간중간 여러 개의 톱니바퀴가 빠진 것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어쨌든 인생은 서로 물고 물리는 톱니바퀴 장치와 같으니까.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게 마련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야 최초의 톱니바퀴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 ‘세계의 끝 여자친구’ 중에서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처럼 ‘세계의 끝 여자친구’, ‘당신들 모두 서른이 됐을 때’, ‘달로 간 코미디언’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랑처럼 진부한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말은 문학에서 통용되지 않는다.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문제다. 삶의 이야기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로 사랑을 택했을 뿐 김연수의 이야기를 연애 소설로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모든 사랑의 슬픔을 끊임없이 설명하고 색다른 방식으로 수다를 떨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흔적이 남는다. 우리가 살아온 생의 이면에는 늘 깊은 생채기가 남고 켜켜이 세월의 흔적이 남겨진다. 김연수는 그 갈피와 무늬에 물을 부어 흐릿해지는 기억을 재생한다. 우리에게 과연 사랑은 무엇이고 그 사랑이 남긴 삶의 과정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전언이다. 나는 그렇게 김연수의 소설을 읽는다.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 ‘세계의 끝 여자친구’ 중에서

  그래서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로 산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생의 진실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속성을 갖고 태어난다. 타인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 타인이 아는 것을 나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식의 방법과 태도에 대한 오만이다.

  ‘내겐 휴가가 필요해’라고 말하는 주인공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듯하다. 바닷가 도서관에서 10년 동안 책을 읽었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바닷가에서 사체로 발견된 그는 현실 속에서 고문 경찰관이다. 하지만 존재의 근원도 세상의 진실도 어쩌면 책 속에서 찾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가 알아 낸 것을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책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 일깨워 줄 뿐이다. 책읽기가 때때로 무의미한 노동이 아닐까 싶은 자괴감이 드는 것은 타인의 진실을 알 수 있다는 허망한 믿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가가 무엇을 쓰려고 했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의 환상을 만들고 사람과 사랑과 세상에 대한 또 다른 벽을 절감했다.

  내게도 청춘이 지나가버렸다. 불안한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진부한 것은 참을 수 없었던 청춘이.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진부한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불안한 것은 참지 못한다. 꿈은 없어도 돈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모든 ‘나’에게 어울리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난 불안한 것 참을 수 있어도 진부한 건 도저히 못 참아. 꿈과 돈 사이에서 갈등하는 청춘이라는 건 너무 진부해. 나한테는 정말 안 어울려.  - ‘당신들 모두 서른 살이 됐을 때’ 중에서


091021-0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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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22 1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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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1 2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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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08 22: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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