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귀신 죽이기
박홍규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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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는 인간들의 꿈과 환상이 빚어낸 배설물이다.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미래가 불안했던 시절에 사람들은 믿고 싶은 이야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고통스런 현실을 견뎌내거나 종교적 믿음을 위한 상징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모든 부족 혹은 민족에게 신화는 자부심과 긍지를 만들어 주었고 후손들에게 경외감과 존경심을 갖게 해주었다. 실제 가능성을 생각해보지 않고 맹목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신화의 세계는 여전히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이며 먼 과거에 대한 꿈의 세계라고 믿는다.

  토마스 불핀치의 『그리스 ․ 로마 신화』를 처음 읽었던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삽화 한 장 없이 빽빽한 글씨로 채워진 책장을 넘기며 처음 듣는 신들의 긴 이름과 거의 콩가루 집안인 족보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읽자니 장난이 아니었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이 있다면 이 책은 후자에 해당된다고 믿었다. 어렴풋한 흐름만 이해하고 몇몇 장면만 기억에 남는다. 이후 단편적인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다시 만난 것은 그림을 통해서이다. 중세, 르네상스, 고전주의에 이르는 유럽의 예술은 신화의 시대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물론 시대를 뛰어넘는 파격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신화와 종교는 서양 예술의 근간을 이루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알지 못하고 유럽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새롭게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오게 했으며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에 열광하는 초등학생이 부럽기도 했다. 불황을 모르는 학습만화 시장은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고 읽을 거리가 많지 않았던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했다.

  상식과 교양의 이름으로 맹목적으로 그리스나 로마의 신화를 알아야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은 없다. 그림에 담겨있는 수많은 알레고리가 마치 수수께끼처럼 풀릴 때의 신기함 정도로 시작된 관심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것들이 필요에 의해 읽혀졌다. 하지만 한 번도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태도로 왜 ‘그리스, 로마 신화’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박홍규의 『그리스 귀신 죽이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뒤집고 비틀어보기를 시도한다.

이제 우리 민주주의에 필요한 사람은 그런 영웅이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이 아니라 착하고 성실할 줄 아는 진정한 보통사람들, 즉 신화 밖의 평범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그리스 신화를 읽지 않아도 좋지만 꼭 그것을 읽는 경우에는 비판적으로 읽을 줄 알아야 한다. - P. 72

  개인적으로 박홍규의 저작들을 통해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오리엔탈리즘』, 『학교없는 사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와 같은 번역서는 물론이고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예술, 정치를 만나다』, 『아나키즘 이야기』, 『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등 그의 인문학적 저작들은 새로운 시각과 비판적 관점,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책들이었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반성 없이 ‘교양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접근하는 신들의 행태에 대해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그리스 신화는 끊임없이 반인륜적 폭력의 권력투쟁 과정을 보여준다. 적대, 경쟁, 전쟁, 정복, 침략, 복수, 음모, 계략, 살인, 절도, 사기, 약취, 유괴, 강간, 간통, 차별 등 온갖 범죄와 부도덕의 결정판으로 볼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접근하게 해서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는 충격적인 내용이 많다는 데에는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지적대로 그리스의 귀신이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저자는 삼층 차별구조로 그리스 신화 전체를 다시 들여다본다. 신과 영웅에 대비되는 괴물과 인간, 지배자와 남성의 반대편에 서 있는 피지배자와 여성, 서양의 주변에 머물러 있는 비서양이 그것이다. 이렇게 뚜렷한 차별적 구조를 가진 신화는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으로 볼 수는 없다. 신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성성에 대한 비난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리스 신화가 가지고 있는 다른 신화와의 차별점에 대한 이야기다. 부분적으로 각 민족의 신화는 현재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없다. 하지만 신화를 비판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분석하고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다.

지배민족=그리스=서양=중심=문명=미와 선=정상
…신과 영웅=왕과 귀족 및 장군=주인=미와 선=정상
…남신-남자영웅-남자인간=정신 지성 문명=공적 정치세계=국가

피지배민족=비非 그리스 =비非 서양=주변=야만=추와 악=비정상
…괴물과 인간=노예 및 외국인=주변=추와 악=비정상
…여신-여성인간=육체 감성 자연=사적 가정세계=사회

이러한 도식화는 세계사를 서양사 중심으로 설정하고, 비서양사를 서양의 비서양 지배사로 날조하게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이 세계사이지만 아직까지도 비서양은 서양과 관련되는 경우에만 그 객체나 타자로 등장하고, 세계사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서양일 뿐이지 비서양이 아니다. - P. 274


  저자의 관점에 대한 다양한 논란과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 자체에 대한 비판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밖에 없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을 전제하지 않은 맹목적 수용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경고로 들린다.

  낯설게 바라보고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 읽어볼 만한 책이다.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느냐의 문제로 언제나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조차 가지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091129-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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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30 16: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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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3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3 0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03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녕, 엘레나 - 2010년 제41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김인숙 지음 / 창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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痛入骨髓.

  고통이 뼈에 스민다는 한 마디가 진한 여운으로 남는다. 김인숙의 소설집 『안녕, 엘레나』에 수록된 단편 ‘조동옥, 파비안느’를 읽다가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과 유사한 기분을 느꼈다. 이 단편은 엉뚱하게도 고려시대 수령옹주가 공녀로 바쳐지면서 어머니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사랑과 고통은 투명한 기름종이처럼 서로 스미고 겹친다. 한 몸으로 뒤엉켜 지독한 사랑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낳는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 이별을 걱정하듯이.

  브라질로 이민 간 어머니 조동옥 아니 파비안느는 주인공의 딸을 데려가 키우다 멀리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한다. 동생이면서 딸인 아이는 포르투갈어로 주인공에게 긴 편지를 보낸다. 16년의 세월을 그 편지와 함께 묻는 것이 통입골수.

  모든 사랑의 밑바탕에는 두근거림과 떨림보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 이상의 충만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벅찬 감동을 전해주는 파도소리이다. 한없이 밀려왔다가 사라지고 아쉬움을 남기고 사라지지만 어느새 또 다시 발을 적시는 바닷물과 같다.

  아마 모든 소설은 젖은 발로 모래사장을 걸으며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올라오는 모래 알갱이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털어버리기엔 그 불편한 감각들이 살아있는 듯하고 그냥 걷기에는 발다닥이 따끔거린다. 현실에서 부딪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소설이 되기도 하고 소설같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훨씬 더 드라마틱하고 비현실적인 일들을 통해 상상력이 고갈되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수많은 엘레나가 있다. 수많은 철수와 영희가 있는 것처럼. 표제작이 된 ‘안녕, 엘레나’는 원양어선을 탄 이름모를 아버지의 엘레나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세상의 모든 엘레나를 사진으로 보내오는 친구를 통해 존재의 근원을 묻고 있는 이야기다. 김인숙의 소설은 시간 앞에 초라해지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엇갈린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의 불가해함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지 모른다.

  가족으로 만난 인간 관계는 천형이다. ‘숨-악몽’, ‘어느 찬란한 오후’, ‘조동옥, 파비안느’는 모두 가족 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괴기 영화처럼 음습하고 환한 대낮에 피를 흘리는 장면이 슬로모션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때때로 우리의 인생은 난잡하기만 하다. 가족으로 묶여 덩어리로 살아야 하는 피곤함과 끊을 수 없는 사슬에 질질 끌려다녀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존재 이유를 느끼게 해 줄 수도 있는 게 가족이지만 평생 악몽같은 관계일 수도 있는게 가족이기도 하다.

  단편 ‘그날’은 역사적 인물 이완용을 세상 밖으로 불러낸다. 그가 당연히 가지고 있었을 인간적 고뇌와 시대 상황에 대한 이해를 역사적 관점이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 풍경을 통해 확인시켜 준다. 단순히 그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신선한 발상이 아니라 상황과 맥락 속에서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으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지 궁금해졌다. 말하고 싶으나 말 할 수 없는 존재들에게 입을 달아주는 것이 소설가의 의무라면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와 이야기 속에서 헤매야 할 것이다.

  ‘현기증’과 ‘산너머 남촌에는’도 크게 가족과 무관하지는 않다. 기러기 아빠로 사는 비행기 조종사의 현기증과 열두 남매를 낳아 길러야했던 어머니의 시선은 대체로 냉정하고 차가운 금속성의 말들을 쏟아낸다. 애틋하고 다감한 이야기들이 아니라 서걱이며 불협화음을 내는 관계 속에서 오히려 우리는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책의 말미에 붙어있는 해설에서,

김인숙이 그려낸 인물들은 모두 혀가 있으나 입술이 없는 존재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않는 존재로 그려진다. - P. 207, 정여울의 해설 ‘입술이 없는 존재의 상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중에서

 라고 말하는 정여울의 표현은 표현은 정확해 보인다.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통을 말하지 않는 존재’가 김인숙의 소설에만 등장할까?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아니 내가, 그런 존재가 아닐까?


09112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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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아프리카 -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의 서사시
조세프 케셀 지음, 유정애 옮김 / 서교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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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몇 마디 말로 설명하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회적 지위, 재산, 명예를 얻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가족들과의 작은 행복, 사회의 변화, 예술적 성취, 타인에 대한 봉사,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힘겨워하기도 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가치 사이에서 망설인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닐까?

  나는 때때로 투명한 유리 큐브 안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본다. 소통의 힘겨움과 언어의 한계 속에서 절망하기도 하고 현실과 이상의 거리만큼이나 허망한 생활들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사람들은 좀체로 그것을 얻는 방법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똑같은 욕망과 경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모든 인간의 욕망은 동일한 것일까?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거리가 먼 곳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 Fernweh! 전혜린은 일 년에 몇 달 아니 몇 주쯤 일상에서 벗어나 집시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동경과 기대가 없고 두근거리지 않는 삶을 견디지 못해 자살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 상황과 조건에 맞게 적응하게 되어 있다. 어떤 곳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미래의 불안한 신비가 찬란하다는 전혜린의 말이 새삼스러운 것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만큼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는 말일 것이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자.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 너머에는 늘 대자연이 우리를 품고 있다. 조금 높은 곳에서 내가 사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해본다. 다람쥐처럼 돌아가는 일상과 반복되는 생활들 -  그것이 전부다. 자연은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애오욕을 품고 묵묵히 바라본다. 오만한 인간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면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을 품고 있는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산자락에서 한 소녀가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 조세프 케셀의 『소울 아프리카』는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의 서사시이다. 이 소설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특별함을 갖고 있다.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지 묻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색다른 소설의 소재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깊은 감동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킬리만자로 자락에 위치한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는 아버지와 공원에서 살고 있는 소녀 파트리샤의 이야기다. 우연히 여행 중에 공원에 머물게 된 서술자의 눈에 비친 소녀는 동물들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영혼의 교감을 나눈다. 마사이족 등 원주민들과 소녀 그리고 다시 문명세계로 소녀를 보내고 싶어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초원의 왕이 된 사자를 매일 만나는 소녀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는 문명 사회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고민과 갈등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단순히 자연을 배경으로 한 감동 휴먼 드라마가 아니라 잃어버린 인간들의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1950년대의 생생한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벌써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신비스러운 자연의 모습과 화자의 독특한 목소리가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기 때문에 독특한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휴가나 여행의 장소로 떠올리는 자연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호흡하는 자연일 수는 없을까. 단 한 번도 땅을 밟지 못하고 매일매일 생활하는 나의 하루를 떠올렸다.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에도 이제 인조 잔디와 우레탄 트랙이 깔렸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운동장만큼 흙냄새는 사라졌다.

  지속가능한 인간의 삶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대책 없이 이대로 살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소설이 주는 아름다움과 무관한 현실적인 고민이다. 여유있는 삶, 조화로운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 사회의 희망은 아닐까? 청소년들에게 권할 만한 감동적인 소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고서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09112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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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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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디는 ‘cognize’이다. 인지하다, 인식하다는 의미를 가진 영어단어 ‘cognize’는 온라인에서 나의 지향점과 욕망을 드러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반영하는 사람들의 아이디는 첫인상을 좌우한다. 아이디를 통해 우리는 직업, 나이, 성격, 취미, 꿈 등을 유추할 수 있다. 나의 아이디는 어떤 대상, 즉 사물이나 사건, 상황을 인식한다는 뜻인데 단순하게 안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다양한 관점,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는 그 자체로도 어렵지만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더욱 어렵다.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지향점이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실제 상황, 즉 일상생활이나 업무, 대인관계 등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특별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오히려 독특한 사고 방식, 남들과 다른 인식체계로 인해 갈등을 유발하거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미덕을 해치게 된다. 자기 검열이 심해지거나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조용히 외면하기도 하고 나서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는 타협을 시도하게 된다면 세상을 잘 살아간다고 볼 수 있을까?

  더 위험한 것은 잘못된 생각의 함정에 빠져 신념이 되는 경우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여론 조사와 여야 합의에 의해 법제화된 세종시도 뜯어고칠 수 있으며 22조 5천억을 쏟아부어도 죽지도 않은 4대강을 살리겠다는 신념은 정말 무섭다. 우리는 누구나 인지함정에 빠질 수 있다. 정태적인 집착으로 실책을 이끄는 사고의 틀은 이와 같이 완고하고 타협없는 밀어붙이기 정책을 양산한다. 독재자의 정보독점이나 정보회피는 개인이 아니라 한 국가의 운명을 뒤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스럽고 무서운 일이다.

  자카리 쇼어의 <생각의 함정 BLUNDER:Why Smart People Make Bad Decisions>은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는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선택’의 순간에 우리의 마음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결정 기준이 충돌한다. 저자 자카리 쇼어는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이 아니라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다. 다른 심리학 책과 구별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역사로 남아 있는 사건들의 판단 기저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최근 세계적인 분쟁 지역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가 어떠한지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실수mistake는 부정확한 데이터로 인해 발생한 단순한 오류지만 실책blunder은 문제 해결을 시도하기 전보다 시도한 후에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실수가 아니라 실책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하지만 실수와 실책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이라고 믿었지만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실책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우리는 모두 실수도 할 수 있고 실책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각기 다르다. 생각의 함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실책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저자는 선택과 판단의 순간에 범하기 쉬운 인지함정 일곱가지를 제시한다. 노출불안, 원인혼란, 평면적인 관점, 만병통치주의, 정보집착증, 거울이미지가 그것이다. 인지 함정은 토마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에서 설명됐던 판단과 선택의 착오와 유사하다. 하지만 단순한 착각이나 실수와 다른 신중하고 정확한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면 자신의 믿음으로 변한다. 결과는 참혹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실수와 실책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인지함정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은 감정이입과 상상력의 결핍 두 가지다. 상상력은 우리가 세계를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와 타인의 삶이 어떻게 서로 다를 수 있는지를 고려할 수 있게 하고, 자신과 타인의 행동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할 수 있게 해준다. 상상력이 마음에 깃드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가슴에 깃드는 것이다. 감정이입은 타인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다른 사람의 감정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반응을 경험하는 것이다. - P. 103

  또한 저자는 인지함정의 원인을 감정이입과 상상력의 결핍으로 요약하고 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갖춘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입과 상상력이 결합되어 열린 마음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을 키우는 것은 어떤 방법에 의해 가능할까?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문화적 경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 정확한 상황 판단 능력 등이 요구되지만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구나 정책 결정 과정이나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경우 단순하게 전문적 지식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의 견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대부분의 경우 지식의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이 아닐 수 있다는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는 실책들을 점검하고 또한 그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실책을 극복해 낸 역사적 사건들을 사례로 삼고 있다.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생각의 함정을 다루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언론법 개정, 4대강 사업, 세종시 추진, 이라크 재파병 문제의 결정과정이나 찬반의 논리들을 따져보자. 과연 인지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너도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상황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곰곰이 성찰해보라. 우리들은 모두 쉽고 명쾌한 해답을 원한다. 이것이 인지함정으로 유도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 P. 301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나의 기준과 생각을 정해놓고 틀에 맞추는 것은 아닌지, 항상 쉽고 명쾌한 답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본다. 인지함정에 빠지지 않고 유연한 사고를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우리들의 ‘생각’에 있다. 산을 옮기는 것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바꿔보자. 아니 최소한 인지함정에 빠지지는 말자.


09111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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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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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불안은 신중한 토론, 현명한 충고, 민주적 수단,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한 가지 요소로 인해 억제되었다. 바로 ‘상상력’이다. 한 주제, 한 범주 안에 속한 대상들 간의 다양한 차이를 식별해낼 수 있는 상상력,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마지막 요소였다. - P. 33

노출불안의 희생자는 오류를 인정하고 시정하는 것이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힘의 표시라는 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우를 범한 경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사람이 정직하고 책임감 있고 현명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 P. 41

인과관계의 혼란, 즉 원인혼란이란 복잡한 사건의 원인을 오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인혼란은 종종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과도한 단순화로 나가게 하는 인지함정으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종종 사건들 사이의 인과성과 연관관계를 혼동한다. 특정한 경과를 산출하는 사건의 연결고리를 착각한다는 말이다. - P. 48

원인혼란의 인지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닫힌 마음은 지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 P. 88

인지함정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은 감정이입과 상상력의 결핍 두 가지다. 상상력은 우리가 세계를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와 타인의 삶이 어떻게 서로 다를 수 있는지를 고려할 수 있게 하고, 자신과 타인의 행동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할 수 있게 해준다. 상상력이 마음에 깃드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가슴에 깃드는 것이다. 감정이입은 타인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다른 사람의 감정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반응을 경험하는 것이다. - P. 103

평면적인 관점의 함정은 상상력에 제한을 가하고 감정이입 능력을 박탈하여 편협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문제를 흑백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도록 몰아간다. 우리는 세계를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화한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 동조하지 않거나 혹은 상반된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면 그들을 분류하는 데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 P. 109

두 가지 정보집착증(정보독점과 정보회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강박증을 드러낸다. 양자 사이의 공통점 중 한 가지는 타인의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독점자들은 정보를 혼자 움켜쥐고 있는 것이 자신의 입장을 방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독점하고 있는 정보가 결과적으로 자신이 의도하는 목적을 침해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 P. 209

거울 이미지는 상대가 자신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가정하게 되는 인지함정의 일종으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과 남들이 그것을 지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기란 본능적으로 어렵다. - P. 217

신이 있어 우리에게 선물을 준다면 오죽 좋으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재능을 부여해준다면!
그랬더라면 우리가 저지르는 무수한 실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 로버트 번스

정태적 집착은 변화하는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인지함정이다. 이는 대상이나 현상에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우리의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게 만든다. 정태적 집착에 빠진 사람은 세계가 근본적으로 유동적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주변의 변화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적응하는 대신 변화에 저항한다. - P. 244

상황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곰곰이 성찰해보라. 우리들은 모두 쉽고 명쾌한 해답을 원한다. 이것이 인지함정으로 유도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 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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