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미래 - AI라는 유혹적 글쓰기 도구의 등장, 그 이후
나오미 배런 지음, 배동근 옮김, 엄기호 해제 / 북트리거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를 돌아보지 않으면 인간은 컨베이어 벨트 위의 일개 부품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대가 도래하자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1937)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기계적 삶을 풍자했다. ‘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은 인간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인공지능은 생활 곳곳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인간의 편견과 착각, 확증편향 같은 주관적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업무와 직업은 이제 오차 없는 합리와 논리적 판단이 가능한 인공지능이 대체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세무, 회계 분야는 물론 법률, 의학 분야까지 이른바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분야부터 지각 변동이 시작될 것이다. 하물며 일상생활과 검색 등은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아주 잠깐이면 발표 자료를 만들고 수업용 PPT를 내놓는 ChatGPT에 감탄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수집과 요약 능력이 뛰어나니 책 내용이나 특정 분야의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데도 탁월하다. 굳이 독서와 글쓰기도 필요 없고, 밤새워 자료를 조사하고 필요한 내용을 선별해서 정리하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졌을까. 도움을 받는다면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졸저 읽기의 미래는 유튜브 시대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통해 뇌를 점령하면서 책은 살아 남을 것인가, 독서는 왜 필요한가, 미디어 리터러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같은 맥락에서 쓰기의 미래는 쓰는 인간과 쓰는 기계를 고찰한다. 읽기에서 한발 나아가 쓰기로 를 확인하고 증명하며 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야 하는 인간에게 인공지능은 무엇이며 어떤 변화를 일으킬 것인가.

 

작곡은 물론 그림까지 그려주는 기계, 대신 레포트를 써주고 보고서를 정리하며 수업 준비를 해주는 기계, 집안일을 대신하고 어렵고 귀찮고 힘든 일을 시킬 수 있는 기계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변화를 직시하며 적응하고 적절히 활용하는 능력은 현대 사회에서 꼭 필요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여기에도 해당한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 기계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문해력에 관한 논의와 책들이 쏟아진지 오래다. 문해력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이제 글쓰기로 그 초점이 넘어간다는 반증일까. 기자라는 직업이 왜 필요한가. 뉴스는 무엇인가. 글쓰기는 설레는 일일까.

 

무엇을 쓸 것인가, 어떻게 쓸 것인가에 앞서 이제 누가쓸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되는 시점에 도달한 건 아닐까. 언어학자 나오미 배런은 수천 년 동안 애써온 인간의 노력을 돌아본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과 의사소통을 위해 쓰기 체계를 갖춰온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우리는 태어나 지금까지 또 얼마나 오랜 시간 공을 들여 글을 쓰기 위해 노력했는가. 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글쓰기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한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왜 공허한가 - 문제는 나인가, 세상인가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리가 묻지 않는 것들
멍칭옌 지음, 하은지 옮김 / 이든서재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고령화, 저출생, 사다리 걷어차기, 탈맥락화, 알고리즘의 지배, 우울에 갇힌 일상, 도구가 되어버린 집, 넘쳐나는 물욕, 외모 강박, 끊임없는 소비 욕망, 스마트폰 중독, 유튜브와 숏츠…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현대사회의 문제들을 더 열거할 필요가 있을까. 몰라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현안은 계속 쌓이고 해결책은 난망하다. 중국의 정법대학 사회학자 멍칭옌의 글은 가독성이 높다. 어렵지 않게 설명하며 문제의 핵심을 잘 짚는다. 문제 자체를 드러내는 일이 사회학자의 일이라면 그 해법을 고민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은 개인의 몫이다. 물론 그 개인이 모여 정부를 구성하고 국가를 운영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공허는 허무와 같으면서 다르다. 한자의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의 공허는 허무주의와 차이가 분명하다. 문제의 원인이 ‘나’에게 있는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사회에 있는 것인지 따질 필요는 없다. 타인을 진단할 순 없어도 각자 자신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문제의 원인을 누구 ‘탓’으로 돌리느냐의 문제는 해결 방법을 고민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지만, 둘 다 문제라는 식의 해법은 무의미하다. 개인과 사회, 각각을 짚어야 한다. 분리될 수 없으나 그 차이와 역할을 살피지 않으면 중국의 사회학자가 진단한 현대인, 고전과 역사로 길어 올린 전망이 무색해진다. 무엇을 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론 2016~2021년 사이에 미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주의가 퇴보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문장에서 몇 개만 바꾸면 “물론 2022~2024년 사이에 대한민국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주의가 퇴보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는 완벽한 문장이 성립한다. 놀랍게도 트럼프 당선 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썼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바이든 당선 후에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출간했고, 다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미국에서 살고 있다. 개인은 물론이고 한 국가, 인류의 역사도 아이러니하기는 마찬가지다. 합리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는 상황이 계속된다. 어쩌면 그런 지난한 과정의 반복, 후퇴보다 조금 더 전진하는 나선형 구조로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계엄을 향한 하인리히 법칙(1:29:300)에 주목했던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보여도 눈감았나, 알아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을까. 카이스트 입틀막 사건이 계엄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정권이 교체되면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지 않는 세상이 올까. 정도의 차이일 뿐일까. 직접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참여형 정책 결정 과정을 도입하지 않으면 철 지난 대의 민주주의는 정치인 개인의 역량에 기댈 수밖에 없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대체로 사람의 문제라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왜 시스템을 손보지 않는가. 정치와 정치인은 국민들의 ‘내돈내산’이다.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 수준의 정부와 정치인을 고용하게 돼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트럼프 시대를 지났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트럼프의 지배를 받는 미국처럼 탄핵의 강을 건넜다고 생각했다가 계엄을 맞는 수가 있다. 정신줄을 놓는 순간 더한 놈이 언제든 나타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생활의 역사 - 중세부터 현재까지 혼자의 시간을 지키려는 노력들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낭만적 은둔의 역사』를 쓴 데이비드 빈센트의 『사생활의 역사』는 프라이버시의 역사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로저 샤르티예Roger Chartier는 “1500년에서 1800년 사이에 인간이 문자와 맺는 관계가 달라지면서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물러나 혼자가 되어 새로운 사적 영역을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 바 있다. 그것은 개인의 내면에 대한 탐구가 증가하고 독립성이 커지는 과정이기도 했다.(67쪽) 16세기 인쇄술의 발명이 근대의 문을 열어젖혔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종교개혁과 민주화는 깨어있는 개인의 탄생이 촉발한 자연스런 결과였다. 사생활에 관한 기준과 한계는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달리 적용된다. 아니 각자 서로 다른 태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남이가’ 정서, 언니/오빠/형/누나 등의 일반적 호칭, 부부 일심동체라는 착각, 연인을 소유물로 생각하는 태도, 공적 마인드가 결여된 공무원과 정치인 등 한국적 정서와 문화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헛소리다. 혼자 있을 권리가 시작된 중세, 군중 속에서 나를 지켜야 하는 이유, 전화와 편지에 대한 호기심, 국가의 사찰 등을 살피는 저자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는다. 다만 인터넷 시대, 2025년을 사는 한국인들의 프라이버시는 무엇을 위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 살필 따름이다. 개인정보는 무엇이며 어디까지 노출이 허용할 수 있을까. 아니 친소 관계와 무관하게 사적인 질문은 어디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남이 하면 프라이버시 침해이고 내가 하면 관심인가. 사생활의 역사는 앞으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쓰이겠으나 기본에 대한 합의는 아득해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의 본질 - 현대 과학이 외면한 인간 본성과 도덕의 기원
로저 스크루턴 지음, 노정태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류의 역사는 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이제는 뇌과학과 진화생물학이 첨병에 섰다. 독서 모임을 하기 전에 chatGPT로 정보를 검색하는 시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게 지식과 정보일까.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진 않을 터. 영국의 철학자 로저 스크루턴은 리처드 도킨스 ‘밈’ 이론 등 생물학적 인간론은 물론 공리주의와 도덕적 문제로 환원시킨 피터 싱어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 존재를 규명한 존 롤스까지 치열한 논쟁을 거친 ‘인간의 본질’에 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 책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고유한 인간성에 대해, 타인과의 관계, 현대 윤리학의 오해, 신성한 인간적 삶에 대해 고민한다. 물론 정답이 없어 가능한 질문들이다. 아니, 질문하지 않는 인간들을 향한 경고다. 대개 인간의 본질은 생각보다 높이 평가하기 힘들다. 그 평가의 기준과 관점에 따라 다르겠으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태도가 본질을 흐리게 하는 대부분의 원인이다. 단단한 합리화, 논리적 착각 속에서 비판과 비난 사이를 헤매는 사람들을 위해 2013년 프린스턴대 특별 강연 내용이 도움이 좀 될지 모르겠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여기에 접힐 내용을 입력해주세요.

 

펼친 부분 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