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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신영복선생님의 '강의'를 읽다가 문득문득 인용했던 이 책의 초판이 나온것이 벌써 17년쯤 전이라니. 88년에 난 고3이었다.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특별 가석방으로 20년 20일만에 출소하신 분의 글들을 다시 읽는다. 사적 체험과 인식의 폭이 같은 책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스무살 무렵 이 책을 건성으로 읽을 때와의 느낌은 완연히 다르다. 69년 1월부터 88월 8월까지 감옥에서 쓴 글들을 읽어나가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감옥에 들어가 고3이 되던 해 여름 출소하실 때까지의 글들을 읽으며 그 끝에 적혀 있는 날짜를 답답하게 헤아리고 있었다. 마치 내가 수감된 사람처럼 88년의 여름을 기다리듯이... 3공화국 박정희를 거쳐 전두환, 노태우까지. 검열될만한 내용이 전혀 없고 그저 개인적으로 부모님과 형수, 계수에게 보내는 엽서 형식의 글들이다. 어찌보면 참으로 개인적이고 공감할 수 없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칼날같은 인식의 힘으로 그 긴 기간을 한결같이 꼿꼿하게 버텨내는 이성의 힘은 차라리 두렵기까지 하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삶이란 무엇인가? 세상살이에 대한 나약함과 안이함이 생활속에 스며들때 찬 얼음물같은 글들이다. 타인의 불행을 거울삼아 내 행복을 감사하게 여기자는 단순한 논리 이전에 두고두고 새겨 볼 이야기들이다. 인간과 인간에 대한 애정과 스스로에 대한 치열한 연찬. 그것은 긴 시간이 주어져 있고,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누구나 가져야하는 삶의 자세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글들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생활을 돌이켜 보고 어줍잖은 힘겨움과 고통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처럼 삶에 대한 태도와 자세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해답없는 문제에 대해 다시 고민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세상이라 이름 붙혀지 더 큰 감옥에서 생활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본다. 자유로운가? 어디가 감옥이고 어디가 세상인가? 스스로 만든 마음밭의 감옥속에 갇혀 사는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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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는 바꿔야 할 거짓말 인터뷰 특강 시리즈 3
김동광, 정희진, 박노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거짓말의 반대말은 사실일까, 진실일까?

문학에서는 통상적으로 사실fact와 진실truth을 구별한다. 사람들은 사실을 알고 싶어한다. 호기심이 생기면 견딜 수가 없다. 그것을 알고 싶어한다. 육하원칙에 의거해 마치 신문기사나 뉴스처럼 정확한 사실들을 알고 싶어한다. 경찰서나 법정에서도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진실은 늘 안개 저 너머에 있다. 심지어 사실조차 왜곡되는 시대에 진실을 알기란 더욱 힘들다. 우리는 사실과 진실 그리고 거짓말을 구별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시선과 입장에서 판단하고 있을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작은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들통나면 속은 사람은 물론이고 속인 사람도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세상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면 쉽게 속는다. 속이지 않아도 알아서 속아주는 경우도 있다. 의식하지 못한 채 일상 속에서 우리가 속고 있는 그 수많은 것들에 대해 사실 모두 알고 싶지도 않다. 안다고 달라지지도 않고 시니컬한 시선과 생각만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작은 거짓말들이 없다면 세상은 아름답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다. 아비규환과 아수라장의 현실이 될 것이다.

피노키오의 나라,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다면 거짓말 없는 세상을 꿈꾸어서는 안 된다. 거짓말에 대한 옹호론이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큰 거짓말들에 무감한 우리의 의식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

<21세기에는 바꿔야할 거짓말>은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과 함께 찾아왔다. 한겨레 인터뷰 특강을 책으로 묶어내기 시작한 것이 벌써 3년째다. 첫해에 ‘교양’ 다음에 ‘상상력’ 올해에는 ‘거짓말’이다. 황우석 사태라는 초유의 ‘거짓말’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성찰하는 화두로 삼았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우리가 속고 있는 거짓말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책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단숨에 읽어 버렸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사람에 대한 거짓말’로 특강을 시작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가장 기본적인 약속은 믿음이다. 어떤 종류의 어떤 방식의 믿음이냐가 중요하다.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거짓말이 가장 치명적인 것은 아닐까?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자기 기만과 타인에 대한 불만이 쌓여간다. 사회적 가면인 ‘페르소나persona’에 대한 강박증은 오히려 개인의 내면을 황폐화시킨다. 벗어버리지 못한 가면은 자아를 찾는 데 실패하기 쉽다. 적절한 가면 바꿔쓰기를 권유하는 정혜신의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나르시즘에서 비롯된 ‘투사projection’는 대책없는 고집불통을 만들어낸다. 모든게 남의 탓인 사람들의 전형을 재미있게 보여준다. 반대로 ‘내사introjection’가 강한 사람의 ‘내탓이오’도 문제가 된다. 커다란 범주에서 보면 모두 거짓말이 되는 셈이다.

김동광의 ‘과학에 대한 거짓말’, 특강 단골인 한홍구와 박노자의 ‘한국사의 거짓말’, 김두식의 ‘거짓말 권하는 사회’, 김형덕의 ‘북한에 대한 거짓말’, 정희진의 ‘남자의 거짓말과 말의 권력관계’, 프라풀 비드와이의 ‘인도에 대한 거짓말’ 등 8명이 보여주는 ‘거짓말’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은 우리 사회 곳곳을 성찰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인터뷰 특강 형식을 책으로 묶어내는 데는 분명 한계가 뒤따른다. 상황이 전달되지 않고 현장성이 떨어지고 청중과 호흡을 통해 전달되는 진지함이나 열기가 제외된다. 내년에는 꼭 시간을 내서 특강을 들어보고 싶다.

매년 이루어지는 이런 형식의 특강은 다양한 대중 강의를 보다 넓게 전파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책으로 만나도 결코 만만찮은 주제들을 쉽고 긴장감있게 읽어나갈 수 있다. 깊이를 논하자면 입맛이 좀 쓰지만 시선을 멀리두고 내가 서 있는 곳을 확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아주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국가와 정부가 국민에게 하는 거짓말, 기업주가 노동자에게 하는 거짓말, 정치가가 유권자에게 하는 거짓말에서부터 친구와 연인 사이의 거짓말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이 진실인지 확인조차 불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느낌마저 든다. 내가 믿는 진실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누군가와 공감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오늘 단 하루를 살아도 스스로에 대한 진실과 세상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지녔으면 싶다. 모두가 진실만을 말할 수 없다면 최소한 나 자신만은 속이지 않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 속기 전에 나에게 속기 쉽다. 나는 자기기만이 가장 무섭다.


06100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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