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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착각 - 인간 본능이 빚어낸 집단사고의 오류와 광기에 대하여
토드 로즈 지음, 노정태 옮김 / 21세기북스 / 2023년 5월
평점 :
목소리 큰 소수가 집단 전체를 잘못 대변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 15쪽
『평균의 종말』에서 토드 로즈가 보여준 탁월한 통찰을 잊을 수가 없다. 최초의 발견이거나 새로운 발명이어서가 아니다. 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와 그간의 연구 성과를 비교 분석하는 엄밀함, 인간의 삶과 현실에 적용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모든 책이 후질 수 있으나 훌륭한 책을 사람의 모든 책이 좋을 수도 없다. 그래서 믿을 만한 저자, 믿고 보는 작가가 내게는 없다. 책 선택의 어려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독서는 시간과의 싸움이며, 밥벌이를 위한 노동처럼 자기 삶의 일부와 맞바꾸는 행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어주는 행위는 무언가를 하기 위한 노력만큼 숭고한 일이다.
저자의 이력이 순탄하지 않은 건, 배우가 삶의 경험을 연기에 녹여내는 상황과 유사하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생각과 감정이 반영되고 지향점과 방향이 색다르기 때문이다. 평범한 저자들의 책이 모두 평범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연구자의 태도 또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정교하고 엄정한 결과에 대한 해석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토드 로즈의 관점과 태도는 우리에게도 충분한 울림을 준다. 집단 착각에 빠진 현대인을 향한 저자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강렬하다. 침묵하는 다수에 대한 경구, 휘둘리는 당신을 위한 세네카의 조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관습적 사고에 젖은 사람, 밴드 왜건 효과에 익숙한 사람, 필터 버블로 에코 탬버에 갇힌 사람을 위한 도구다.
그러나 언제나 중요한 건 독자의 태도다. 스스로 자기 점검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선택하기 어렵고, 선택한다 해도 자기 객관화 능력이 없다면 남의 얘기로 치부할 수 있다. 남들이 다 그렇게 말한다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경계와 선이 분명하며 나만의 기준이 확실하다는 판단과 선택의 오만함,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지 분명한 도덕적 기준, 자기 자신을 잘 안다는 착각에서 우리는 자유로운가. 자기 검열에 시달리며 지나치게 경계하고 끊임없이 살피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을까.
전체 3부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집단 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진영 논리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점검할 수 있는 소중한 지침서다.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이 전가의 보도는 아니지만 객관성을 확보하며 공론장에서 합리적 토론을 가능케 하는 지침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논리적 사고 훈련이 미흡하면 나이, 직업 등과 무관하게 ‘감정’에 휩쓸려 진실을 묻어버리고 자기 이익에 충실한 아비규환의 세상이 되기 쉽다. 우리가 문명사회로 한발씩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공동체의 합의, 타인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존중, 다른 의견을 말할 권리 등이 보장된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업, 학교, 국가 등 어떤 조직도 집단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지속 가능할 수 없다. 뒤처지거나 자연스럽게 도태되거나 자멸하는 지름길은 독단과 고집, 일방적 의사소통, 침묵과 순응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심리학적 질문을 아끼지 않는다. ‘다수의 무지Pluralistic Ignorance’, ‘집단 착각Colletive Illusions’, ‘동료 압박Peer Pressure’으로 인해 우리가, 아니 ‘나’가 얻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가 잃는 것은 무엇일까. ‘따라쟁이의 함정Copycat Trap’이 본능에 가까운 생존 전략이라면 집단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모방의 연쇄Copying Cascade’, ‘침묵의 나선Spiral Of Silence’ 등 이론과 개념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아니, 어쩌면 몰라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어차피 우리가, 현실에서, 수없이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한 명명법에 불과하니까. 문제는 언제나 해결책과 대안이다.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고치지 않으면 그대로다. 그래서 때때로 ‘읽는’ 행위 덧없음과 허무함이 밀려온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이대로 괜찮은가. 이 질문만 반복한다.
삶에서 어떤 처지에 놓여 있든 상관없다. 사적인 자아와 공적인 자아를 정렬하는 일은 언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조화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헌신할 때,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더 나은 삶을 살게 된다. 그렇게 내면과 외면이 일치하는 이들은 집단 착각을 만들고 키워나가는 데 기여하지 않는다. 집단 착각에 빠져 있는 다른 사람들이 탈출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 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