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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상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ㅣ 21세기총서 3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평점 :
철 지난 유행가는 시간을 반추하는 대신 낡은 현재를 반증한다. 아직도 계급이냐고 묻는 사람들에 대한 항변이 아니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사회적 화두가 아니었던 적이 있을까. 어느 시대에나 평등한 세상을 외쳤지만 누구도 그런 세상에 살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향해 인류는 쉼 없이 달려온 게 아닐까. 가깝게는 정치체제와 경제 제도의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진 유럽의 사민주의와 북유럽의 복지 모델, 전세계로 파급된 68운동,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 등은 현실의 세세한 결을 만들고 켜켜이 쌓인 상식의 토대를 이뤘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영화 《프라하의 봄》이 아니어도 급진적 사회 변동으로 인한 파급 효과를 우리는 온몸으로 겪으며 살고 있다. 6.25전쟁의 후폭풍을 경험한 세대가 생존해 있으며 5.16과 10.26과 12.12를 거쳐 5.18과 6.29를 기억하며 1997년 IMF의 후유증이 남아 있다. 21세기 들어서도 2008년 금융위기를 거쳐 2017년 박근혜를 탄핵한 후에도 비상계엄의 시대를 맞이했다. 끝날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요기 베라의 말은 야구 경기가 아니라 인류의 삶에 대한 경고처럼 떠오른다.
다시, ‘생존’이 시대정신으로 평가될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지 알 수 없다. 1979년 출간된 피에르 부르디외의 저작은1996년에야 번역 출간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를 지나온 한국사회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층 갈등과 계급 투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장하성이 『왜 분노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듯 미국보다 지독하고 철저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취향’ 따위로 구별짓는다는 발상은 한가로워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취향에 대한 사회적 비판, 실천의 경제, 계급의 취향과 생활양식 등 3부로 나눠 설명하는 흙수저 피에르 부르디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듯하다. 여기는 어디이며, 나는 누구인지 확인하려는 욕망은 성찰과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빌파리지, 게르망트, 베르뒤랭 부인의 집에 출입 가능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한 ‘문화귀족’의 사례가 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문화자본은 가정에서 ‘상속’되거나 학교에서 ‘획득’된다. 공화정이 실시되면서 보편적 공교육이 자리 잡은 이후에도 차별적 교육은 상존한다. 귀족학교는 ‘학비’로 판명된다. 국제학교, 사립학교 등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부터 노는 물이 다른 현대판 귀족은 사회관계 자본을 대물림하며 끼리끼리 논다. 경제자본이 학력자본과 문화자본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2025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떠올릴 필요도 없다. 상징 투쟁으로서 ‘차별화의 감각’을 익힌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입고 들고 타고 사는 곳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네트워크 시대는 구별짓기가 공고화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신분질서가 무너진 근대 이후 현대인의 삶은 경제자본으로 거의 모든 게 ‘구별’ 지어진다. 이런 현실에 대한 평가와 대응방식을 개인의 태도로 환원할 수 없다. 삶의 목표와 가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철학의 빈곤은 앞으로도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생활양식은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에 시간축(통시적 관점)이 더해져 입체적으로 살아 숨쉰다.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오늘-여기를 사는 사람들의 ‘취향’, 즉 문화는 구별하고 차별한다. 문화는 섬세한 상징폭력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현실은 사회학 이론보다 차갑고 단단하다. 정치적 격변기를 거쳐 사회변동이 가능할 수도 있으나, 계급 이익과 무관한 이념 투쟁과 진영 논리의 벽이 허물어지지 않는 무지성의 시대를 감내해야 하는 건 고스란히 우리들의 몫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사다리를 기어오르는 수많은 개인을 향한 비난이 아니라,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고 사회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정치적 대증요법 앞에서 길을 잃는 위정자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그래도 봄은 오고 우리는 현실을 살아낼 것이다.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는 풀처럼.
*사족 : 20년 넘게 개역판을 내지 않고 책값만 내는 출판사와 조각 초역으로 완성한 번역자의 무책임 등등에 대한 이야기는 할많하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