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 평화론 - 하나의 철학적 기획, 개정판
임마누엘 칸트 지음, 이한구 옮김 / 서광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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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철학적 기획’이라는 부제가 붙은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 평화론』에 영구는 없다. 현실적으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듯, 평화는 멀고 전쟁은 가깝다. 칸트가 말하는 인류의 영구 평화는 이상적 소망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갈등과 투쟁의 역사가 인류 문명을 이룩하는 데 토대가 되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잠시 호흡을 멈춘다. 과연 법과 질서를 준수하는 세계 시민 사회의 평화는 가능할까.

홉스는 자연 상태를 전쟁의 상태로 보았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 논리가 성립한다. 국제법이 없는 자연 상태의 세계질서는 상상보다 동물적일 수 있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현실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가 이를 충분하고 남을 만큼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며 갈등과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한 칸트의 고민은 높이 살 만하다.

칸트가 말하는 공화정의 세 가지 원리는 법의 지배, 삼권분립, 대의 제도다. 이 조건이 갖춰진 국가가 국가 간 영구 평화를 위한 첫 번째 확정 조건이다. 그렇다면 공화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국가와 공화정을 채택한 국가 간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또한 영구 평화를 위해 칸트는 국내법, 국제법 그리고 세계 시민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영원한 평화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논증하려는 칸트의 노력은 현실 적용 문제에 설득력을 잃는다. 이론적 논문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엔 현실이 참혹하고 영구 평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동의하기엔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역사는 인류가 야만 상태에서 국가로, 그리고 세계주의로 점차 진보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과정은 치열한 투쟁과 야만의 시간을 거쳤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치와 도덕의 관계에서 (1) 행하라. 그리고 변명하라. (2) 만일 당신이 그것을 했거든, 부정하라. (3) 분할하라. 그리고 지배하라. 이 세 가지 원칙은 정치가들이 사용하는 궤변들이다. 권력을 거머쥔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술책이다. 이런 일반적 처세술은 정치에서 도덕이 부재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전혀 도덕적이지 않은 정치인에게 가장 숭고한 가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개인과 정파적 이익, 기득권 보호를 위한 노력이 뻔히 보여도 눈감고 표를 던지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보다 우선 그러한 현실을 거부하는 태도와 고장 비판적 감시 기능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게 아닐까.

칸트의 영구 평화론은 ‘예비 조항’ 여섯 가지와 ‘확정 조항’ 세 가지를 제시한다. 예비 조항은 “~~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형식이고, 확정 조항은 “~~를 하여야 한다”라는 형식이다. 금기와 당위는 하나의 거대한 꿈이다. 먼 훗날 제1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맹,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합과 유럽연합의 결성으로 구현되는 칸트의 원대한 이상은 아직 미완성이지만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한 철학적 기초를 정립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칸트가 주장하는 실천 철학의 형식적 원리는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게 할 수 있도록 행위 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치는 도덕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영원한 세계 평화의 근본적 토대다. 또한 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보증해 주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예술가인 자연”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자연은 현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이념으로서의 자연이다. 역자 이한구는 기계론적 자연이 아니라 반성적 판단력의 대상이 되는 유기적 전체로서의 자연이라고 분석한다. 이기적, 감정적 동물인 인간에게 기대가 너무 큰 칸트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한 적이 없다. 전쟁과 평화도 마찬가지다. 영구 평화가 아니라 일시적 평화라도 좋다. 평화를 위한 노력 혹은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 중요하다. 변명하고 부정하고 지배하려는 자들의 말과 행동을 걸러내고 일상에서 평화를 위한 노력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 간의 평화는 국민들의 생각과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개인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성찰 없는 정치인과 정부는 전쟁보다 위험하다. 일상을 무너뜨리고 꿈과 희망을 빼앗는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길고 긴 법 고전 산책이 끝났다. 마무리가 칸트의 영구 평화론이라는 건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놓칠 수 없는 희망 고문 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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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이다의 이유 7
체사레 베카리아 지음, 김용준 옮김, 볼테르 해설 / 이다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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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8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26세 때인 1764년 『범죄와 형벌』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책은 억측과 예단, 종교적 편견으로 뒤덮인 야만적인 행형제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기념비적 저서로 남아 있다. 한마디로 전근대적인 범죄와 형벌에 대한 전근대적 시스템 자체를 뒤흔들고 사회계약설에 의한 국가형벌권, 죄형법정주의를 확립했다. 자연스럽게 고문과 사형과 같은 잔혹한 형벌 제도를 비판했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체사레 베카리아는 한 사람의 용기와 첫걸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듯하다.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의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유럽은 계몽주의, 즉 이성의 찬란한 빛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법은 사회적 합의를 지속하는 조건이며, 형벌은 범죄를 억제하고 예방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생각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설』(1762)의 이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종교적 의미의 원죄 의식과 절대왕정의 핍박에 시달리던 중세적 개념의 전근대적 범죄와 형벌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된 이 책의 의미는 현대 사법 체계와 형법에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

특히 고문에 의한 자백은 진실을 밝히지 못하며 부당하다고 강조한다.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에서 주장한 내용은 250년이 지난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영화 『1987』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박정희 군사 독재 시절에서 전두환 쿠데타 정권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자행되던 야만적인 고문과 비인간적 수사 관행이 사라진 건 오래전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는 지금도 믿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고, 여전히 그 시절에 향수를 느끼거나 그 시절에 뿌리를 둔 정권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은 현실은 더욱 놀랍다. 베카리아는 절대왕정 시기에 이 같은 목소리를 높였으니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출간 즉시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베카리아 자신도 이 책의 반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니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출간했다.

근대 형법의 토대를 마련한 베카리아의 용기는 현실에 대한 과격한 저항이었으며 합리적 이성을 향한 인류의 매우 중요한 진보였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시대를 앞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대체로 기득권의 탄압과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승인한 이후에야 실명으로 책을 출판했던 당대 유럽은 그래도 동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아니었을까. 18세기 유럽의 지성사와 사회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관용론』(1763)의 저자 볼테르는 이 책을 계몽주의 시대 가장 중요한 저서라고 평가했으며 직접 해설을 썼을 만큼 깊은 애정을 보였다. 베카리아의 본문 분량만큼 기나긴 볼테르의 해설은 또 단순한 설명이 아닌 또 하나의 사회론이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원고와 피고에 따라 관점과 태도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으나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고 해서 원칙이 달라진다면 법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이며 범죄와 형벌 사이에 놓인 생각의 차이는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20대 청년, 체사레 베카리아 생각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실적 문제와 고민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18세기 중반 유럽의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는 프랑스혁명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적 개인이 이성에 눈을 뜬 계몽의 시대에 절대왕정과 신의 권능의 자리는 위태롭기만 하다. 종교개혁과 인쇄술의 발달이 가져온 지식의 대중화는 왕과 성직자, 귀족들이 오랫동안 거머쥔 헤게모니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1764)과 볼테르의 해설(1766년)은 인류문명을 진일보를 위한 기폭제라 할 것이다. 개인과 국가의 관계 설정에 따라 범죄와 형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형벌의 기원부터 법률의 해석, 범죄의 구분, 형벌의 목적, 고문, 명예훼손, 사형, 자살, 파산, 사면에 이르기까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익숙하고 현실에서도 논쟁이 되는 대목이 많다. 그래서 놀랍다. 26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이성의 힘, 아니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고민의 흔적은 시대와 무관하게 계속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공공의 이익, 인간애, 참된 종교를 열망하는 한 사람이 쓴, 죄 없는 여성들의 결백을 옹호하는 글에 따르면, 기독교 종교 재판에서 10만 명이 넘는 마녀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 합법적인 대학살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된 이단자들을 더한다면 지구상에서 유럽은 판사, 경비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형집행자와 희생자로 꽉 찬 거대한 처형대처럼 보일 것이다. - 볼테르 해설, 221쪽

1761년 10월, 툴루즈의 평범한 상인 장 칼라스의 아들 마크 앙투안이 집에서 자살한 사건이 벌어진다. 가톨릭 신자들은 개신교 신자인 장 칼라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는 아들을 살해했다고 모함했다. 칼라스 가족이 모두 체포되어 신문을 받았고 자살이 심각한 범죄였던 당대의 법 때문에 가족들은 앙투안이 살해됐다고 진술했다. 결국 아버지 장 칼라스는 살인 혐의로 수레바퀴에 묶여 사지가 찢기는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종교의 이름으로 규정된 범죄와 형벌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유럽의 역사는 잔인한 종교 전쟁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볼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구명운동에 나서 재판정에서 앙투안은 도박 빚 때문에 자살했으며 장 칼라스는 반가톨릭 광신자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결국 1764년 프랑스 황제 루이 15세는 사형을 선고한 재판관을 파면하고 칼라스의 무죄를 선고했다.

베카리아의 이 책은 같은 해에 출간됐으니 볼테르의 슬픔과 분노가 길고 긴 해설에 자세히 나타나 있음은 물론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저질러진 만행들, 이를테면 마녀사냥 같은 구체적인 사건과 비이성적이고 무도한 처벌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볼테르는 베카리아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볼테르의 해설은 이단과 신성모독 등 종교의 이름으로 규정되는 범죄와 형벌에 대한 비판과 정치와 사회 관련 형벌과 집행에 대해 베카리아의 논의를 보충하고 현상적 분석을 가한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 일갈했던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지식과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며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칸트의 관념론으로 정리되는 듯했으나 존재론과 인식론, 합리론과 경험론은 이후에도 숱한 철학적 난제를 남겼다. 베카리아는 법과 사회, 아니 국가와 개인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던진 철학자가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단순히 역사와 전통에 따라 시대정신이 반영된 지금, 여기의 법이 존재하며 그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판단하는 사람들과 주권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정치와 경제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이 결정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여전히 헌법정신에 반영된 권력의 주체와 위임과정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가 양산하는 문제해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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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과 시민불복종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정치평론집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서경주 옮김 / 지에이소프트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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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법치주의를 외치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때때로 입법기관의 기능을 무력화하거나 사법부의 판단에 저항하지 않는가. 오히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않으며 스스로 한계를 만든다. 철저한 준법정신과 규정을 준수하는 태도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법이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완벽하게 규정할 수 없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도덕의 최소한으로서 법은 자본과 권력을 보호하거나 기득권의 이익에 복무하는 경우가 더 많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대다수 시민의 이익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침묵하고 외면하거나 분노하면서도 행동하지 않을까.

사백만 명의 노예는 독립전쟁을 통해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미국인에게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숨 쉬는 공기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인 제도가 아니었을까. 종교는 신의 이름을 팔아, 자본가들은 산업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정치가들은 상충하는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하며 노예제도를 공고히 했던 시절은 불과 160여 년 전 일이다. 노예제도가 상식이던 시대에도 몰상식한 존 브라운이 있었다. 폭력적이고 과격한 방법이 아니면 야만의 시대를 끝낼 수 없다고 판단했던 숭고한 정신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그 무모한 도전은 실패로 끝나지 않고 미국 남북전쟁(1861~1864)의 도화선이 되었다. 급진적 노예제도 폐지론자의 삶은 비현실적이다. 존 브라운은 아들을 포함해서 21명의 추종자들과 하퍼스 페리의 병기고를 급습한다. 병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로 노예들을 무장시켜 노예제도를 존치하려는 남부에 대항하려는 시도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반란을 일으키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1859년 12월 2일 처형됐으나 그가 보여준 용기와 노력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헨리데이비드 소로는 1859년 10월 30일,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 연설을 통해 10년 전 「시민불복종」(1849)에서 보여준 인간의 존엄성, 시민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정부의 역할, 사유하는 힘과 행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존 브라운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반란의 과정에서 보여준 실천과 태도는 단순히 법을 위반한, 사회 질서를 파괴한 범법자로 규정할 수 없게 만든다. 군주제의 전통과 유교 문화가 관습적 태도로 전해지는 한국인의 관점으로 존 브라운을 바라보면 어떨까. 찬반 투표를 거칠 필요도 없고, 논쟁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른다. 정부가 멕시코와의 전쟁 비용 충당을 목적으로 국민에게 인두세를 징수하자 세금납부를 거부하다 체포되어 투옥된 소로는 또 어떤 죄를 다스렸을까. 불순한 의도와 헌법 질서를 문란케 한 죄는 물론 선전선동을 일삼는 불순분자로 몰려 내란음모 내지 국보법 위반으로 중형을 선고받지 않았을까. 시절을 잘못 만났다면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수도 있다. 다행히 친척이 세금을 대답 후 풀려났지만, 소로는 스무 살에 하버드를 졸업하면서 5달러를 내야 졸업장을 준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졸업장을 거부했으니 될성부른 나무였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월든』(1854) 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소로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정부의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준 반항의 아이콘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속박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살아가야할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천부적 권리로서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와 개인 역시 지배와 복종의 불평등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소로의 핵심 사상이다. 원주민인 인디언을 정복하고 노예제도를 유지하는 정부에 대해 소로는 소비지상주의, 속물주의, 대중오락, 분별없는 기술의존에 반대했다. 월든 호숫가의 삶은 반문명적 생태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누구나 그런 삶을 꿈꾸지만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드 ‘맨헌트유나바머’의 주인공 테어도르 카진스키의 『산업사회와 그 미래』 등은 여전히 또 다른 세상, 현실 밖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곁가지를 마련해준다.

독일 간첩 누명을 쓰고 투옥된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라고 주장하며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 공개선언문을 발표한(1898년) 시기보다 40여 년 앞서 소로는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 연설에 나선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은 소로가 아니라 존 브라운이다. 빅토르 위고는 이 소식을 듣고 1859년 12월 31일 《런던 뉴스》에 기고하면서 “존 브라운을 죽이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다. 그로 인해 연방에 잠재되어 있던 균열이 드러날 것이고, 머지않아 대혼란(실제로 ‘남북전쟁’이 터졌다)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먼 훗날 말콤 X 는 “흑인 민권 운동에 같이 참여할 만한 백인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없다. 혹시 존 브라운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몰라도.”라고 대답했다.

어느 시대나 현실을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좀 더 멀리 바라보며,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고, 변화를 시도했던 그들의 생각과 행동 때문에 인류는 조금씩 나은 세상을 만들어왔다. 존 브라운이 시도한 반란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인상적이고 역사적 사건이었다. 오늘, 이 시대의 존 브라운은 누구인지, 혹시 내 생각과 행동이 존 브라운을 닮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려면 그 목적과 방향 그리고 결국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노랫소리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존 브라운의 숭고한 ‘태도’는 여전히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Glory, Glory, hallelujah

His soul goes marching on

John Brown’s body lies a moldering in the g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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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정신
샤를 드 몽테스키외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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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가 말하는 법은 모든 이법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의 법’으로서 새로 만들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 상태도 되돌려야 하는 것이다. 그 궁극적 토대는 루소처럼 ‘사회계약’이라는 인간 사이의 합의가 아니라 신의 지혜에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완벽한 종교적 실현은 기독교에 의해 가능하다. 정치적 자유는 오직 법 이후에 존재하며 오직 법에 의해 결정될 뿐이라는 주장은 프랑스 혁명 이전 중세적 가치관의 끝물에 놓인 금수저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볼테르는 몽테스키외보다 다섯 살 연하고, 디드로와 루소는 23~24년 후에 태어났으니 완전히 다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단초를 제공했을 『사회계약론』과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비교할 수 없으나 사회를 보는 관점과 태도의 차이는 분명하며 법과 사회의 관계 설정도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법의 정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성과 실정법 사이의 간격을 이해한다는 주장이다. 개별적 존재로서 기능하는 다양한 개체들 사이의 합의된 질서와 규칙을 법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실정법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와 태도와 달리 자연법과 만민법은 공화정(귀족정과 민주정을 포함한 개념으로 사용), 군주정, 전제정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적용될 수 있는데 몽테스키외는 이 책에서 그 정체들 사이의 차이와 적용의 문제를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로마는 처음에 혼합된 귀족정체였다가 혼합된 민주정체로 바뀌고 영국의 정체는 공화국의 성격을 상당히 지는 ‘혼합형 군주정체’다. 몽테스키외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분류 방법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중도 군주제 형태를 띤 프랑스의 현실 정체와 유럽의 현실을 비교한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관찰하며 그 차이와 혼용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정치법과 종교법 그리고 정체에 따른 법의 의미를 분석한다. 전제정치(두려움)는 귀족적 전제정치와 국민적 전제정체로, 군주정체(명예)는 귀족정체와 민주정체로 나눌 수 있다. 공화정(덕성)은 이런 요소들이 뒤섞여 나타날 수도 있다. 몽테스키외는 미래를 예측하거나 더 나은 정체를 제안하는 대신 각 정체의 특징과 법의 역할을 설명하는데 치중한다. 물론 자유와 이성이 작동하는 범위와 한계, 그것이 제한받을 때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는다.

재미있는 주장 중 하나는 풍토이론이다. 유럽과 아시아 더운 지역과 추운 지역을 대비시켜 과학적 결정론이라기보다 운명론에 가까운 자의적 주장은 위험해 보인다. 물론 당대에 이와 유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몽테스키외도 샤르댕의 《여행기》를 인용하며 자기 생각을 펼친다. 그러나 이는 결정론이라기 보다는 입법자들이 이러한 풍토에 맞서 효과적으로 법을 제정, 운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가깝다. 법의 정신은 풍토에 대한 혹은 일반적으로 물질적 원인에 대한 도덕의 승리여야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입법권과 집행권 그리고 사법권의 분리 이론은 이 책의 핵심 사상이다. 권력은 절제되고 중단될 수 있어야 하며 당연히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으로 작동한다. 권력 분립은 현대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핵심 중 하나다. 1789년 인권선언문 16조, “인권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거나 권력이 분리되지 않는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갖고 있지 않다.”라는 선언은 대한민국의 짧은 정치사와 오늘의 현실을 성찰하게 한다. 국민의 대표인 입법기관을 존중하지 않는 집행권자 대통령, 집행자들에게 영향을 받아 사법농단을 일으킨 판사들, 독립성을 상실한 입법권자들의 행태를 우리는 매일 목도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 따질 것 없이 진영 논리에 매몰되거나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만 날고기는 모습은 대한민국의 정체를 의심케 한다. 몽테스키외가 주장한 대로 삼권 분립의 균형과 견제가 이뤄진다면 적어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겠으나 비대한 대통령의 권한과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입법권과 사법권 또한 문제가 심각하다.

해설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몽테스키외를 사회학의 선구자로, 프랑스혁명의 선구자로, 자유주의의 선구자로 내세우는 것은 너무 성급한 해석이다.” 쓸데없이 덧붙여진 과장된 의미 부여와 지나치게 부풀려진 오독이 때때로 아전인수식 해석을 낳는다. 이는 아마도 몽테스키외가 전하고 싶은 생각과 주장이 방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서문에서 “나는 이 책을 수도 없이 시작했고, 수도 없이 포기했다.”고 고백하며 “20년 동안 나는 내 책이 시작하고, 커지고, 앞으로 나가고, 끝나는 것을 보았다.”고 설명한다. 이 지난한 시간 동안 유럽을 여행하고 세상을 경험하며 생각이 바뀌고 사회를 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물론 법이 갖는 역할과 의미도 일관성있게 유지될 수 없을 만큼 긴 세월이다. 전체 6부 31편으로 구성돼 있지만 내용은 1~13편(1~2부), 14~25편(3~5부), 26~31편(6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각각 구체적인 내용과 구성을 살피는 건 내 관심사가 아니나 다소 복잡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면이 있으나 정치 체제에 따른 사회의 특징과 법의 의미를 살피려는 노력, 삼권 분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논리적 주장, 당대 사회를 토대로 종교와 사회의 관계 그리고 법의 역할에 대한 깊은 고민과 그 결과는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생각의 화두를 삼기에 충분해 보인다.

몽테스키외(1689~1755)는 16세인 1715년 백부의 고등법원 판사직을 세습한다. 배타적 특권 계층으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몽테스키외는 자신의 계급적 지위와 기독교적 윤리에 바탕을 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1748년 60세가 되어 펴낸 이 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분류한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이 아니라 공화정, 군주정, 전제정이라는 세가지 정치체제를 중심으로 자신의 경험과 사유의 결과를 당대 현실에 맞춰 서술하고 있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공화국은 ‘덕성이 필요하고, 군주국에는 ‘명예’가, 전제국에는 ‘두려움이’이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사는 21세기는 이제 민주주의가 인류의 대세로 자리잡았으나 그 정체와 무관하게 인간과 사회, 그 공동체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충돌은 오늘 우리가 가진 법의 정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자연법, 만민법, 정치법, 종교법, 실정법 등 몽테스키외가 분류한 법들의 종류와 특징, 그 법들 사이의 논리적 모순과 현실 적용 문제를 적용하려는 데 이 책의 목적이 있는 건 아니다. 또한 법은 만들고 집행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것도 아니다. 시민들의 생각과 태도가 반영된 철학적 고민의 결과다. 정치 체제와 법의 정신은 바로 나, 우리가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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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 문예 인문클래식
루돌프 폰 예링 지음, 박홍규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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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고시로 상징되는 ‘불멸의 신성가족’(김두식)은 이제 정치 권력의 정점에 섰다. 청산되지 못한 일제 잔당들이 또다시 헤게모니를 거머쥔 채 경찰, 검찰, 사학은 대한민국 사회의 근간을 위태롭게 한다. 이념과 진영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상식과 현실은 그들만의 리그에 편입된 지 오래지만 언론과 대중은 비판적 안목없이 현실의 문제와 원인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생존 경쟁에 매몰된다.

21세기에 들어 한국에서 전통적인 암기식 수험 중심의 법학을 타계하기 위해 학제적 방법을 통한 사회 현실의 인식과 사회개혁의 일환으로 로스쿨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예링이 지적한 대로 기계법학의 폐단은 여전하다. 거대한 고시학원으로 변질된 로스쿨은 한국의 수험법학 혹은 보수법학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너무 고급일지 모르지만, 그런 천박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예링의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읽을 필요가 있다는 박홍규의 맺음말로도 이 책의 의미는 충분히 설명된다.

“19세기 사람 예링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황당무계한 이따위의 현실, 즉 수사와 재판이 판검사와의 연줄이나 권력과의 관계로 움직이는 이 더러운 현실에서는 그런 연줄이나 뒷배가 있는 사람들만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소송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고, 정의를 지키는 법이니 재판이니 하는 소리는 그야말로 그런 자들을 위한 헛소리에 그칠 것이다.” 판검사는 ‘권력을 위한 투쟁’을, 변호사는 ‘고수입을 위한 투쟁’을, 로스쿨 학생들은 ‘출세를 위한 투쟁’을 가열차게 멈추지 않는 현실에서 ‘법과 권리를 위한 투쟁’은 가능할까. 아니, 시민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면 법은 ‘법치주의’를 외치며 밥그릇을 챙기는 자들의 몫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예링의 지적이 오늘 우리 현실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뼈아프다.

1872년 빈 대학을 떠나며 강연한 내용이 근간이 되어 출판된 이 책은 Recht, 법 혹은 권리가 개인과 공동체를 위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보수적인 개념법학에 대한 비판으로 써 내려간 짧은 글은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겪는 경찰과 검찰 혹은 변호사의 면면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법과 권리’를 대하는 시민들의 태도와 관점으로 바뀐다. 절대, 기득권을 내려놓거나 내부적인 변화와 개혁을 기다리는 헛된 꿈을 꾸지 말라. ‘투쟁에서 너의 법과 권리를 찾아라’는 예링의 모토는 시대와 상황과 무관한 삶의 태도와 방법으로 읽힌다.

예링은 “법과 권리의 목적은 평화이고, 평화에 이르는 수단은 투쟁이다.”라고 선언한다. 이 단호한 문장에 숨은 역설과 함의는 일반 시민들을 향한 가장 중요한 조언이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권리자 자신의 의무이며 이 의무를 지키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질서와 법체계가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은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법학을 현실로 끌어내려 인간의 권리감각을 일깨우고 법의 존재 이유와 현실적인 문제해결의 단초가 된다. 국가공동체의 의무의 기본이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위한 투쟁이라는 지적은 로마법에 근간을 이루는 시대정신의 재해석이다.

단순 명료한 주장에 군더더기가 없고 셰익스피어의 샤일록을 등장시켜 유대인의 편견과 재판관의 결정을 비판하는 대신 법이 추구하는 목적과 방향을 다시 점검한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합의에 따라 법은 계속해서 신설, 개정, 폐지된다. 법은 선악의 문제를 다루지 않으며 인간의 권리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250여 년 전 예링의 생각이 여전히 상식으로 자리 잡지 못한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지만, 너무 늦지 않게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소송 만능주의, 재판 제일주의로 예링을 오독하는 하는 사람은 없겠으나 21세기 법기술자들이 판치는 세상은 예링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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