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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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Vulnerant omnes, ultma necat.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마침내 죽는다. - 254
  
공부한다는 것살아간다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아지랑이를 보는 일입니다그리고 이 단어가 원래 의미하는 대로 보잘것없는 것’, ‘허풍과 같은 마음의 현상도 들여다보기를 바랍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가르치려 들지만 배우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라틴어를 기막히게 가르치는 교수법의 달인이었다면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은 다른 내용이었을 겁니다한때 지나가는 바람인지 오래오래 대기를 순환시킬만한 움직임인지 지켜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이 책도 그랬습니다베스트셀러에 대한 호기심과 매번 부딪치는 실망감 사이에서 자신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넉넉하게 점수를 주자면 배울 게 없는 책은 없습니다책의 형태로 묶였다면 굳이 욕할 필요도 없이 나름의 장점이 있을 겁니다단 한 가지라도하지만 책을 고르고 돈 들여 구입하고 시간을 내 읽는 수고를 갈음할만한 배움도 깨달음도 감동도 없을 때가 더 많습니다제 평가가 짠 탓은 아마도 기대가 크고 늘 두근거리며 무언가 배우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이겠죠한동일 선생님은 수강생에게 어떤 이야기를 어떤 목소리로 들려주었는지 모르지만 제가 책으로 만난 라틴어 수업은 전공과 이력이 주는 희소성오프라인 수강생의 반응이 더 커보였습니다기대가 너무 컸던 탓입니다아마 어떤 독자도 이 책을 통해 라틴어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기대하지는 않았을 겁니다문법 체계와 교수법을 공부하고 싶었던 독자가 있었을까요쉽게 접하지 못하는 라틴어 문화권의 이야기가 궁금했을 겁니다제가 그랬거든요그 기대만큼은 충분히 충족할 수 있는 책입니다한 편 한 편의 이야기가 라틴어 단어 하나문장 하나를 통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이 책이 좋았던 건 한동일의 태도였습니다. ‘공부한 사람의 포부는 좀 더 크고 넓은 차원의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나만 생각하기보다 더 많은 사람더 넓은 세계의 행복을 위해 자기 능력이 쓰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한 차원 높은 가치를 추구했으면 좋겠습니다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과 달라야 하는 지점은 배움을 나 혼자 잘 살기 위해 쓰느냐 나눔으로 승화시키느냐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이 얼마나 좋은가요. ‘배워서 남 주는’ 그 고귀한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성인이 아닐까요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인을 될 수 있으나 그 지식을 나누고 실천할 줄 모르면 지성인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너무나 당연한 말이지요제 한 몸 출세를 위해 몸부림치고제 가족의 잇속을 챙기고입으로는 그럴듯한 가치를 내세우면서 부와 명예를 챙기는 사람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습니다진보와 보수젊은이와 노인여자와 남자기독교와 불교한국과 미국백인과 흑인 가릴 것 없습니다사람은 저마다 다른 프레임으로 세상을 봅니다이념종교직업나이성별학벌인종국가......그게 무엇이든 틀렸습니다나눔과 실천배려와 소통은 입으로 내세울 수 없습니다제가 가진 인간에 대한 평가 기준은 명확합니다누구의 이익에 복무하는가이타적인 삶이웃을 위한 희생더 나은 가치를 위한 실천 등 보통 사람이 흉내내기 어려운 삶의 목적을 설정했느냐를 따지는 게 아닙니다결국 자신의 이익을 위해, ‘출세와 명예를 지키고, ‘이 되는 쪽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너무 많이 본 탓일까요진영 논리도이념의 잣대도 이 큰 틀을 허물지 못합니다어디든 분쟁이 생기고 갈등이 심화되고 고통이 따르는 이유는 욕망과 이익 때문이 아닐까요그래서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조금 맑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출판사가 내세운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라는 타이틀 운운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노동자로서 자세를 바로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그 마음이 그 태도가 물론 수강생과 독자들에게 전달되었다고 믿습니다
  
최소한 ‘Do ut Des’ 정도만 지켜도 세상은 달라집니다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한국인의 정서에는 야박한가요한국 사회에서 성장하고 배우고 벌었다면 그만큼 돌려주는 게 예의입니다그것이 지식이든 명예든 금전적 이익이든 말입니다저 혼자 잘나 그 자리에 오른 줄 아는 사람의 착각은 도 우트 데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이 책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경구도 많이 등장합니다익숙한 문장이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든 어느 지역에나 있는 금언이든 상관없습니다한동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그저 살아가는 일이란 수천 년 전 라틴어를 사용하던 로마 사람들이나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가 라틴어의 단수복수남성여성중성에 따른 격변화 단어를 어디에 쓰겠습니다한글이 얼마나 위대한 글자인지 다시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뿐입니다하지만 언어는 사고입니다그 자체가 생각의 틀입니다라틴어가 가진 특성이 문화이고 그들의 생각이며 문명의 기틀입니다한국어도 마찬가지일 테지요여러 사람이 지적했지만 개인적으로 저도 늘 안타깝게 생각하는 한국어의 약점은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동양 문화의 미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존대법입니다직장의 회의 장면을 떠올려 보세요예를 들어 직급이 낮은 사람은 부장님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하지만 직급이 높은 사람은 !’ 12글자와 두 글자아니 !’ 한 글자면 어떨까요과장해서 표현했나요의사표현 도구로서 언어는 출발부터 다릅니다평등하지 못한 인간관계 자기 생각을 말하고 표현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잘못된 교육가부장적 사회구조수직적 직급체계장유유서에 대한 사회적 관습 등 다양한 요소 때문이겠지만 그 출발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 때문이 아닐까요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닌 나이성별외모국적부모의 직업출신지역......’ 등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면서 차별을 구조화하는 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 될 요소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라틴어가 가장 우수한 언어라서 그 정신과 문화를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건 아닙니다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시간을 견뎌낸 언어가 안고 있는 문화와 전통그것이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볼 뿐입니다물론 제가 밑줄 친 곳은 뻔합니다이 책을 읽은 다른 분들은 어떤 라틴어 문장에 밑줄 그었는지 궁금합니다
  
In omnibus requiem quaesivi, et nusquam inveni nisi angulo cum libro.
내가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마침내 찾아낸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더 나은 곳은 없더라. - 토마스 아 켐피스(1380~1471), 독일의 수도자이자 종교사상가,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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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사람
우치다테 마키코 지음, 박승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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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지루한 소설을 읽었다마치 미드 브레이킹 배드를 1, 2회를 볼 때의 느낌이다느리고 더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끝난 사람(?)이라니 은 졸업일수도마무리일수도완성일수도 있다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으나 끝난 사람을 긍정적으로 읽는 사람은 없을 터소설의 주인공 다시로 소스케의 정년 퇴임식 날 소설이 시작된다우치다테 마키코는 이렇게 길고 지루한 소설을 통해 그리 특별하지 않게멀고도 험한 길을 끝까지 견딘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을까
  
한 번도 성공승진에 관심이 없었던 내게 주인공 다시로는 낯설다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세속적 욕망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많다다시로가 대통령이나 재벌이 되려고 한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출세의 길을 걷는다고향을 떠나 자기 실력과 노력으로 일본 최고 은행 임원 직전까지 실패를 모르고 승진을 거듭했던 다시로가 자회사로 좌천됐을 때 이미 그는 끝난 사람이었다인생의 목표와 방향이 잘못 된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방법을 고민한 적이 없었던 노동 기계그것은 박정희 시대 새마을 운동과 한강의 기적으로 미화되는 베이붐 세대(1955~1964년 사이에 태어난 900만명)의 삶이며일본 단카이 세대(1946~)의 활력과 희망을 상징한다가족을 위한 희생국가와 민족을 앞세운 사명감으로 무장했지만 개인의 삶은 무시되고 조직이 우선했던 세대다다시로의 속내는 그대로 우리 사회에도 적용된다퇴직의 시기와 방법이 다를 뿐 모든 직장인에게 닥칠 일이다
  
나는 평화롭고 즐거운 여생을 즐길 수 없는 타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여생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산 사람에게 어찌 남은 인생이 있을 수 있나.
여든이건 아흔이건 혹 병이 들었건 살아 있는 한 그냥 인생이지 남은 인생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 - 228
  
평균 수명이 80세에 이른다노인의 기준과 개념도 달라졌다퇴직은 은퇴와 다른 개념이다스스로 은퇴시기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퇴직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여생도 다른 개념이다물론 주인공 다시로 소스케는 그 여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작은 회사에 고문으로 일하다가 사장을 맡고 회사가 도산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에는 반전도 임팩트도 없다로맨스그레이가 잠시 등장하지만 이 책은 지나치게 점잖고 노년의 사적 욕망과 세속적 욕심을 정밀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동양 문화권에서 우리 아버지 세대가 걸어온 길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지금 청춘이 느끼는 것과 다르듯이여생은 없다그냥 인생일 뿐누구나 소중한 인생지만 타의에 의해 여생이 될 수 있음에 주의하라는 경고일까.
  
작가는 철저하게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퇴직한 남자의 속내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더 일하고 싶은오로지 일밖에 몰랐던 평범한 직장인의 욕망일 테지만 그것은 치열한 생존 경쟁 시대를 견딘 남자의 수고로움과 거리가 멀다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싶은 욕망이 앞선다인정 욕구가 하늘을 찌르고 체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우치다테 마키코는 끝난 사람에서 정년퇴직을 생전 장례식이라고 명명한다욜로와 워라밸이 트렌드가 된 시대에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리겠지만일찍부터 게으를 수 있는 권리(폴 라파르그)를 주장했던 사람에겐 불쌍한 일중독자로 보이겠지만 주인공 다시로에게는 일이 곧 인생이었다성취감을 맛보고 삶의 보람을 일에서 찾았던 남자에게 퇴직 후의 여유는 고통이다연금과 저축으로 생계에 지장이 없는 주인공은 노년의 빈곤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치에 불과한 이야기다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별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구박받을 이야기다하지만 과연 그런가하루 세끼 밥만 먹고 잠잘 곳이 있으면 다 같은 인생인가
  
예순 셋젊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에 정년을 맞은 주인공의 문제는 끝낸 사람이 아니라 끝난 사람이라는 데 있다주체적으로 자기 일을 그만두고 정리했다면 갈등이 없다그러나 다시로 소스케는 끝내진 사람이다자기 자신이 끝내지 못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쓸쓸함과 공허함을 함부로 짐작할 수는 없다고통이든 고독이든 결국 추론에 의한 것일 뿐 공감은 불가능하다다시로 소스케와 유사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그와 동일한 감정을 느낄 수는 없다각자 가진 스스로에 대한 연민일과 휴식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모든 사람은 남은 시간을 알 수 없다나에게 혹은 바로 당신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평균 수명을 계산하지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다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자문해야하지 않을까그래서 다시로에게 여든아홉의 어머니가 한창때라고 하지 않는가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간다누구나 겪게 될 혹은 곧 현실이 될 노년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소스케너 올해 몇이나 됐냐?”
예순여섯.”
어머니는 감탄하듯이 말했다.
예순여섯아이고 한창때로구나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는 나이로세.” -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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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 -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본 자본주의 사회의 시간 싸움
류동민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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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이미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는 머물지 아니하므로 시간은 실재하지 않는다.”(폴 리쾨르시간과 이야기 1문학과지성사, 1993)는 회의론자의 추론은 타당한가경제학의 눈으로 바라본 시간은 물리적심리적 양상을 모두 반영한다일하며 느끼는 시간과 사생활의 시간은 층위가 다르다
  
류동민의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었는가?(착각하지 말자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는가?가 아니라 시간은 어떻게 돈이 되는가이다.)를 본 순간 류비세프의 일생을 들여다본 시간을 지배한 사나이가 떠올랐다. 1916년부터 1972년까지 매일 자신의 삶을 시간으로 기록한 사람의 이야기다시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는 측면에서 선구적인 자기 계발자에 해당한다하지만 그는 의무적인 일을 맡지 않는다시간에 쫓기는 일은 맡지 않는다피로를 느끼면 바로 일을 중단하고 휴식한다열 시간 정도 충분히 잠을 잔다힘든 일과 즐거운 일을 적당히 섞어 한다는 원칙대로 살았다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근대인이다시간을 지배한 사나이가 아니라 시간을 해부한 사나이다
  
현대사회에서 시간은 돈이다프라이스리스의 시간인 여가도 기회비용으로 환산해 본 사람은 자본주의 경제학을 온몸으로 체감한 사람이다경제학자 류동민은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로 처음 만났다. ‘모든 혁명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과 함께 시작된 저자의 인문학적 감수성에 충분히 공감했던 책이다그런데 이번에는 기름기를 빼듯핵심을 전달하고 요약된 정보를 제공하듯 서술하고 있어 아쉽다. 200여페이지라는 얄팍한 책으로 태어나 부담을 줄이고 각 챕터의 분량이 짧아 읽기 편해졌다는 느낌보다 천천히 편안하게 저자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재미가 사라졌다물론 시간이라는 주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는 장점을 위해서였겠지만
  
처음 류동민의 책을 선택한 이유는 마르크스 전공자였기 때문이다자유한국당이나 보수진영에서는 여전히 이름만 들어도 딸꾹질을 한다김수행 교수로 대표되는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는 손에 꼽을 정도다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스스로 결정한다가정환경학교교육전공과 직업주변 분위기에 따라 사고와 행동이 결정되지만 읽고 쓰고 경험하면서 인간은 변한다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만이 아니다차이웨이의 말대로 머리를 써야 할 때 감정을 쓰지 마라’ 합리적 사고 논리적 판단은 생각보다 부단한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다자연과학의 실험과 결과에 대한 해석조차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지만사회과학적 사고의 토대는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우선이다억압된 감정을 표출하고 분노의 언어를 토해내면 속은 후련하지만 변화 가능성은 적다
  
자본주의적 삶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추적하라는 류동민의 프롤로그가 사실 이 책을 읽는 목적에 해당한다주체와 객체개별과 보편화폐와 물신시간의 밀도시간의 착취잉여의 시간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학적 관점으로 해석 가능한 시간의 온도와 밀도를 면밀히 살펴보는 동안 나의 시간을 돌아보았다분초 단위를 쪼개고 쪼개던 순간들이 떠올랐지만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프라이스리스의 시간이지만 잉여의 시간과 허구의 시간으로 살기로 했다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하루는 스물 네 시간이다그리고 언젠가 죽는다는 절대 평등
  
이 조건 안에서 우리는 남은 시간을 쓴다같은 시간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모든 사람이 노동의 자율성과 노동의 최소화를 고민한다저자의 말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화된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돈(화폐)이다돈은 그 자체로 시간이면서 일(노동)이 된다일을 한다는 것은 시간을 쓰는 것이며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돈을 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어떻게 쓸 것인가이전에 시간은 자본주의적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카스테라 한 조각을 뭉쳐 입에 넣어도 물리적인 양은 동일하지만 맛은 다르다이 책은 얇고 짧지만 그 깊이와 내용에 목이 막힐 수 있으니 유의 할 것사족이지만 표지디자인과 본문 디자인은 막힌 목을 풀어줄만한 우유가 아니라 건조기 바람처럼 서걱인다편안하고 부드럽게 포장한다고 내용이 달라지진 않지만 캐릭터일러스트요약정리 어떤 방법이든 조금 더 쉽고 간명한 요소가 곁들여졌다면 싶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같은 메뉴라도 음식점의 분위기와 주변에 놓인 요리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내기 때문이다
  
노동자에게 있어 착취당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상태는 착취해 줄 상대를 찾지 못할 때뿐이다.”라는 조앤 로빈슨의 시니컬한 지적이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착취 대상을 물색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더 큰 문제가 되는 상황이다곳곳에 인용한 책들에 군침만 삼켰다곁에 두고 참고 문헌을 참고할 만하다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처럼 경제학을 인문학이나 생활에 적용시킨 책을 더 잘 쓸 수 있는 저자의 다음 책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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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원할 자유 - 현대의학에 빼앗긴 죽을 권리를 찾아서
케이티 버틀러 지음, 전미영 옮김 / 명랑한지성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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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겪은 모든 문제들에 대한 답은 수용이다. 내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은 어떤 사람, 장소, 일 또는 상황(내 인생의 한 단면)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사람, 장소, 일 또는 상황은 그 순간에 정해진 방식대로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수용해야만 평온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일도, 신이 창조한 이 세상에서는 어떤 일도 결코 실수로 일어나지 않는다.

 

케이티 버틀러는 심박조율기를 달고 연명하는 아버지를 간호하는 어머니와 갈등을 겪는다. 남동생 조너선에게 전화를 걸어 험담을 늘어놓자 동생은 미국 알코올중독방지회에서 발행한 책자의 한 문단을 크게 읽어준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할까, 라고 생각해도 자신이 겪어야 하는 일을 과거로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수용은 아무나 도달할 수 있는 삶의 경지가 아니다. 부처님도 힘들다는 관용과 수용의 자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들은 실천하며 살고 있을까.

 

책장을 뒤적여 일단 죽음에 관한 책들을 뒤적인다. 직접 죽음을 다룬 책들이다.

 

1. 철학 : 죽음이란 무엇인가(셸리 케이건)

2. 철학 : 죽어가는 자의 고독(로베르트)

3. 의학 : 우리는 어떻게 죽고 싶은가(미하엘 데 리더)

4. 에세이 :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데이비드 실즈)

5. 문화 : 임사체험(다치바나 다카시)

6. 인문 : 죽음, 또 하나의 세계(최준식)

7. 인문 :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김열규)

 

책 모임을 통해 읽게 될 책은,

 

1. 문학 : 이반 일리치의 죽음(레프 톨스토이)

2. 사회 : 자살론(에밀 뒤르켐)

3. 철학 : 죽음에 이르는 병(키에르케고르)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책을 한 권 더 읽어볼 생각이다.

 

미국은 세계적인 의료 선진국이다.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메치니코프요구르트를 마시는 대신 각종 첨단 의료기기에 기대 집중치료실에서 발버둥치는 생의 마지막 장면은 비참하다. 이 책은 아버지의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심박조절기에 의존한 후 치매에 걸려 여든 다섯에 심박조절기를 끌 때까지의 기록이다. 간병에 지쳐 어머니의 남은 생은 피폐해졌고 경제적으로도 무너졌다. 이 책의 저자인 딸 케이티 버틀러 또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을 위해 빠른 죽음을 선택하라고 주장하는 책은 절대 아니다. 현대 의학이 우리의 품위있는 죽음을 어떻게 방해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병장수의 꿈은 인류의 오랜 꿈이다. 그러나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순간, 죽어야 하는 사람도 그 가족과 친지도 함께 불행해진다. 죽음을 터부시하는 동양의 오랜 전통으로 인해 우리는 서양보다 더 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삶은 죽음을 전제로 시작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안내자가 된다.

 

케이티의 아버지 제프리 어니스트 버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한쪽 팔을 잃고 미국으로 이주한 후 웨슬리안 대학의 교수가 된다.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이었지만 그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종교와 문화에 따라 죽음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이 다르다. ‘시작을 전제로 한다. 유한한 삶에 경배할 수 있어야 하루가 소중하다. 우리는 마지막이 언제인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 아니라 내일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미래다. 삶의 예측 불가능성이야말로 순간을 소중하게 사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뇌종양 진단을 받은 마틴과 골수암 말기의 루디는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한 번도 바다를 보지 못한 루디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이 실린 악당의 차인줄도 모르고 두 사람은 스포츠카를 훔쳐 타고 달린다. 어차피 미래가 없는 둘은 바다를 향해 질주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천국을 노크(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 1997)하러 떠난 게 아닐까.

 

현실 같은 영화보다, 영화 같은 현실은 매일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케이티 버틀러의 구구절절한 이야기와 부모와의 시시콜콜한 추억담까지 곁들여져 380여 페이지나 되지만 저자의 주장은 명료하다. 현대의학에게 빼앗긴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돌려 달라, 좋은 죽음이 무엇인지 고민하라, 어떻게 죽을 것인지 준비하라.

 

살아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물론 의학적 관점에서가 아닌 방법으로. 소설가 김연수는 하루키처럼 달린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그가 살아있다는 외침에 불과하다. 그가 누구든 사생활과 개인적인 취향에 관심이 없는 독서 취향상 이 책은 지루하다. 소설가의 경험과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살아가는 자세를 통해 배울 게 없다는 뜻이 아니다. 산문집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시켜야하는 이론서가 아니다. 하지만 주관적 감상과 판단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에겐 무용지물이다. 다만, 걷고 달리면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지 않는다 말은 이겼다는 말과 다르다. 비교 대상이 없다면, 승부를 걸지 않는다면 질 수 없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꼭 이겨야겠다는 말이 아니다. 성공이라늘 말과는 더욱 거리가 멀다. 김연수가 달리기를 통해 터득한 깨달음처럼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환호하는 사람이 없어도 좋다. 인생은 이기고 지는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도 한참이 걸린다. 승자독식 시대, 성공에 대한 집착과 욕망, 자기계발에 대한 환상은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지게 만든다. 자기 속도에 맞춰 결승점이 아니라 지금 달리고 있는 이 순간에 내 뺨을 스치는 바람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눈부신 햇살을 한 번쯤 올려다 보면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 누구도 지지 않아야 한다. 아무도 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이기는 사람이 생기겠는가. 스스로 이겼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사실은 졌다.

 

 

15-0104-0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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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면 따져봐 - 논리로 배우는 인권 이야기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최훈 지음 / 창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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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불편하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8살쯤으로 기억하는 어느 여름, 아버지가 쳐놓은 모기장 안에 앉아 흑백TV 화면을 바라보며 처음 그랬을지도 모른다. 익숙해질만도 한데 여전히 불편하다. 계속 불편할 것 같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다. 불편하게 살아와서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불편한 사람들은 대응 방식은 여러 가지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나면 타인의 얼굴이 보인다.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면서 그 불편함은 말할 수 없는 답답함이 되고 타인의 말과 행동,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기도 하며 그 반대로 타인의 말과 행동과 생각을 보고(그것이 주변 사람이든 동시대 인물이든 역사적 인물이든 상관없이) 열등감을 하종강 선생님의 표현대로 부채감을 느끼기도 한다.

 

책 속에는 답이 없다. 다만 수많은 선언과 아포리즘만 난무할 뿐이다. 강준만은 싸가지 없는 진보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던졌고 최훈은 장삼이사에게 불편하면 따져봐라고 충고한다. 책 머리에서 최훈은 우리 모두 따지스트가 되자고 부추긴다. ‘우리 모두 리얼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갖자는 체 게바라의 말을 패러디 했다. 그러나 따지스트가 되 본 사람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피곤한 삶인지를. 그 대상이 개인이든 직장이든 사회든 국가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잠시 숨을 고르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따지스트가 되었을 때 벌어질 개인적 고통과 기나긴 싸움의 시간을 누가 책임지겠는가.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태도와 방법의 문제다. 웃으면서 말하면 모른 척 눙치고 넘어가고 의도와 관계를 내세우며 침묵한다. 공동체에 대한 애정만 있다면 넘어갈 수 있다는 식이거나 그때그때 사람에 따라 기준과 잣대가 달라지면서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책은 불편하다. 너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편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 저자는 우리 모두 따지스트가 되자고 할 수 있을까. 사는 게 불편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책 때문이다. 책 속에서는 불편한 진실이 많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논리로 배우는 인권 이야기이다. 논리적으로 따지라고 충동질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어쩌면 악마의 유혹이다. 침묵하는 다수, 이해(利害) 계산, 사회적 관계, 성공의 욕망 등 세상을 살다보면 논리로 따져야 하는 일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 따져야하는 순간이 더 많지 않은가.

 

완전한 세상은 없다. 완벽한 조직도 사람도 물론 없다. 그러나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기준과 조직은 문제가 생긴다. 아무리 작은 모임도 커다란 공동체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김두식이 불편해도 괜찮아라고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민주주의의 반대말이 공산주의가 아니라 독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말해버리면 간단할까. 아니다, 여전히 불편할 것이다. 선택은 스스로 할 일이다. 눈을 감고 혼자만 편하게 살든가. 눈을 뜨고 불편함을 논리적으로 따지는 따지스트가 되든가. 물론 알면서도 눈을 감는 게 아니라 그것이 틀린 일인 줄도 모르고 따질 일인지도 모르는 눈뜬 장님으로 살고 싶다면 얼른 책장을 덮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 감성 에세이나 애절한 소설을 펼칠 일이다.

 

인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 유무, 나이, 학번을 묻지 않는 것이 인권의 시작이다. 고향과 졸업한 학교를 묻는 것도 실례다. 오지랖은 관심이 아니라 무례함이다. 이런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사실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니라 교육부가 국정교과서로 채택해야 하면 좋겠다. 역사와 도덕을 감히 국민에게 가르치려 들지 말고.

 

모든 인간은 원래 자유롭게 살았다. 박홍규 선생님의 책 때문에 아나키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성향이 그곳에 닿아있었음을 확인한 것은 오래 전 일이다. 문학동네의 우리시대의 명강의 시리즈 일곱 번째로 나온 자유란 무엇인가는 자유의 A부터 Z까지 훑고 있다. 수많은 자유론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 좋은 안내서가 될 듯하다. 정치적, 법적인 자유가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 자유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내가 오늘을 사는 이유, 내일의 희망, 인생의 목적과 방법까지 달라질 수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롭게 산다는 것은 오로지 의 힘만으로 가능할까. 타인을 부자유스럽게 하는 나의 자유를 과연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자유는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다’(84)라는 선언이 새삼스럽다. 미뤄둘 수 없는 가치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앎은 실천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며 내 삶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이다. 그것을 어떻게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실현할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무엇을 알고 싶은가. 그리고 어떻게 살고 싶은가. 책장을 덮고 걷고 싶다. 저 창밖의 어둠 속으로 지구 끝까지. 이제, 니 차례다.

 

이것이 우리의 끝은 아니야

 

우리가 우리의 그림자로 밀려날 때 저 밑바닥으로부터 번져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우리의 어둠으로 몰려갈 때 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은 무엇인가. 뒷모습은 뒷모습으로 말한다. 뒷모습은 뒷모습으로 사라진다. 우리는 우리의 뒷모습으로 살아남아 오래전 그 해변을 걷고 있다. 누군가의 손이 누군가의 손을 잡았을 테고. 누군가의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렸을 테고. 누군가의 눈이 누군가의 눈을 지웠을 테고. 누군가의 말이 누군가의 말을 뒤덮을 테고. 노을은 우리의 뒤쪽에서부터 서서히 몰려왔고. 서서히 물들였고. 서서히 물러났고.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보려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마치 죽어가는 사람처럼. 언덕. 둔덕. 언덕. 둔덕. 언덕. 둔덕. 언덕. 둔덕.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진창에 빠지는 기분으로. 울음. 물음. 울음. 물음. 울음. 물음. 울음. 물음. 한 마디씩 내뱉을 때마다 점점 더 물러나는 기분으로. 그때에도. 이미. 벌써. 여전히. 아직도. 이것이 우리의 끝은 아니라고 믿는 마음이 있었을 테고. 순도 높은 목소리 사이사이로 몇 줄의 음이 차례차례로 울렸을 테고. 뒤가 없는 듯한. 이미 뒤가 되어버린 듯한. 어떤 나지막한 목소리 사이사이로. 어떤 풍경이. 어떤 얼굴이. 어떤 기억이. 어떤 울음이. 점점이 들렸을 테고. 귀신에 들리듯. 바람에 날리듯.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너는 지금 사라져가는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너는 지금 사라져가는 무언가를 듣고 있다고. 사라지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 사라지는 이 순간만이 오직 아름답다고. 우리가 우리의 목소리로 사라질 때 저 너머에서 다가오는 것은 무엇인가. 밤은 밤으로 다시 건너가고 있는데.

하루는 다시 기울고 있는데.

 

- 이제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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