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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ㅣ 역사 인물 찾기 10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5년 5월
평점 :
한 인간에 대한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은 무조건 오류다. 인간은 그렇게 한마디로 이해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에르네스트 체 게바라’를 한마디로 이름 붙힐 수는 없다. 다만 그가 살아온 길과 방법들에 대해 들여다볼 뿐이다. 단순한 구경꾼의 의미를 넘어 진행형의 역사에서 그를 자리매김하는 것은 물론 독자의 몫이고 실천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1928년에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의학박사 출신으로 쿠바 혁명에 가담하여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게릴라전을 성공시킨 인물인 체는 그 후, 아프리카 콩고를 거쳐 볼리비아 혁명을 실천하던 중 1967년에 사망한다. 그의 나이 서른 아홉이었다. 스무살을 전후하여 그의 친구와 함께 남미를 여행하며 그는 사상의 기초를 마련한다. 이 여행 과정을 그린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국내에서도 얼마전에 상영되었다. 혁명전사 체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다. 쿠바의 시에라마에스트라에서 아바나에 입성할때까지 숱한 전장에서도 체는 책을 놓지 않는다. 책과 사람을 통해 세상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체는 그렇게 했다.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성에 의해 인도 된다”고 말하는 체는 단순히 공산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로 규정할 수 없다. 지구상에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렇듯이. 수정주의, 교조주의, 네오맑시즘, 해방철학, 유로코뮤니즘등 공산주의 분파들은 엄청난 차이를 드러내며 현실속의 이데올로기로 살아 숨쉬기 때문이다. 구소련의 레닌과 트로츠키, 중국의 마오쩌둥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등 현실속에서 그들이 실현하고자 했던 이상과 방법들은 개별적 상황과 현상속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공존해왔다. 체의 사상을 한마디로 규정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어렵고 위험하다. 플라톤의 ‘이념속의 현실’에서 발원한 공산주의를 마르크스의 이론으로 실천한 사람도 국가도 없다. 그래서 지금, 체의 사상적 기저를 논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내가 주목한 것은 체의 실천성이다. 쿠바 혁명 과정과 그 이후에 그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두려움은 느끼게 한다. 누가 생각한대로 살 수 있단 말인가.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장 코르미에에 의해 10년간 수집된 자료가 기초가 되었다. 체의 딸(일디타)과 청소년기의 꿈과 이상을 공유했던 친구 로베르토 그라나도의 도움으로 쿠바를 답사하고 많은 주변인들과 인터뷰를 통해 저술된 책이기 때문에 이 책의 가치는 더욱 크다. 객관적이며 방대한 서술로 체의 삶을 연대기식으로 들여다 볼 수 있으며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고 체의 편지와 일기를 삽입해서 사실감을 높혔다. 평전이 가질 수 있는 영웅적 서술과 신비감을 드러내기 위한 주관적 서술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사례와 여러사람의 시각으로 한 혁명가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20대에 공산주의자(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바보이고, 서른 넘어서까지 공산주의자인 사람도 바보라는 어느 프랑스인의 말을 떠올려 본다. 과연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 나아가 이 지구상에 펼쳐지는 점점 더 복잡한 양상을 띠는 세상을 위한 이념과 체제는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냉정한 인식은 얼마나 필요한 것이며 그것은 어떤 형태로 내 삶의 모습에 반영되어야 할까? 나는 이제 서른이 훌쩍 넘어버렸고 마흔이라는 나이와도 만나게 될 것이다. 진보와 개혁을 외치는 모든 사람이 나이가 든다고 해서 보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듯이 자기 정체성과 실천의 문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생의 뜨거운 화두가 된다. 사춘기를 넘어서면서부터 시작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작은 고민.
베스트셀러와 유행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이라는 핑계로 이제야 탐독하게 된 책이지만 두고두고 가슴속에 오래 남을 만한 좋은 만남이었다. 체를 통해 느낀 것은 어쩌면 단순하고 당연한 논리이다. ‘사상의 종점은 행동이다’라는 명제. 항상 그것이 문제다. 그가 남긴 숙제 같은 한마디가 오래오래 가슴에 남는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우리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2005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