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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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에 출판되는 책들 중에 옥석을 가려내는 일은 정말 힘들다. 나름의 기준이 있겠지만 누구에겐가 책을 추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구나 불특정 다수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공감할 만한 좋은 책들을 여기저기서 추천한다. 연말이면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일이지만 잘 선별해서 나중에 후회할만한 책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선택한 책 중의 하나가 김용규의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이다.

김용석이나 김용규나 대중에게 익숙한 철학자들의 책은 쉽고 편안하다. 어렵게 접근하지 않고 그야말로 가벼운 읽을거리 이상의 의미를 던져준다. 다만 이렇게 누워서 떡을 먹다보면 체하기 쉽다는 반성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13편의 고전 문학을 거론한다. 파우스트, 데미안, 어린왕자, 오셀로, 변신, 구토, 고도를 기다리며, 페스트, 유토피아, 당신들의 천국, 멋진 신세계, 1984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그것이다.

특별한 기준도 이유도 없다. 저자가 읽어온 문학 작품에 대한 나름의 견해와 분석이 담겨 있다. 그 이야기들의 색깔이 독특하고 재미있다. 딱딱하고 어려운 이야기로 독자를 주눅들게 아니다. 영화나 음악 이야기가 튀어나오기도 하도 주관적인 감상으로 흐르기도 하며 시를 인용하기도 한다. 잡탕찌게처럼 끓고 있지만 맛은 특별하다.

그러나 아무리 기막힌 해설과 맛깔스런 양념이 더해져도 그 작품을 읽는것만 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은 읽었던 작품들을 다시 음미하고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 다른 사람의 책읽기를 들여다 보는 일도 즐거울 수 있고 때때로 그 과정과 이야기 속에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다면 그것도 즐거운 일이다.

다만 이런 종류의 책들을 통해 읽지 않은 고전을 이해한 것으로 착각하는 우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책들이 겪는 본의 아닌 부작용이다. 재미와 상관없이 교양과 다른 목적으로 읽어내기에도 충분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이유가 다양한 만큼 읽는 목적에 따라 같은 책이 달리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을 비난할 수만은 없지만.

안 그래도 바쁜 철학이 카페에서 문학을 이야기할 때 귀 기울여 들을만한 사람이 있을까? 아니 어쩌면 철학은 한가하다. 카페에서 문학 얘기나하고 예술도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것이 철학 본연의 임무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삶을 지혜를 전해주고 새롭게 생각하게 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철학은 우리에게 의미있게 다가올 지도 모르겠다.

이론과 개념 속에서 헤매는 철학을 가깝게 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문학이나 예술을 통해서는 직접적인 삶의 모습들을 통해서든 말이다. 철학의 목적과 역할을 어떻게 생각하든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의 문제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하는 것이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다.

토막난 단상처럼 보이지만 깊이와 통찰력을 두루 갖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보면 문학도 예술도 철학도 한 동네 사람처럼 정겨워 보인다. 결국 이들의 공통점은 당연하게도 인간과 삶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둥이만 살아있는 수많은 사람들이나 목적도 생각도 없이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이나 삶이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한가하게 카페에 앉아 철학이나 문학을 논할 시간이 없는 계급에 속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우울한 메시지가 아니길 바란다.

이 책은 유한 계층의 담소용으로 이해되기보다 색다른 방식으로 문학 읽기가 타당하다. 문학은 사람이 중심이 된다. 삶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당연하다. 둘이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누든 잘 들어보면 들을만한 이야기가 나올법하다. 다만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과 방법은 저자의 몫이고 독자들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를 판단한다.

추천하긴 어렵지만 정확하게 중간등급으로 어정쩡한 자세로 한번쯤 읽어보세요라고 권할만한 커피 한 잔 같은 책이다. 커피는 취향에 따라 다르게 마시면 그 뿐이다. 커피 마시면서 특별이 할 일이 없는 분들게 추천한다.


07011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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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지기 2007-01-3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한 번쯤 읽어보려고 했던 책이에요^^ 솔직한 리뷰 덕분에 많은 참고가 되었습니당~ㅎㅎ

sceptic 2007-01-31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가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희망의 인문학 - 클레멘트 코스 기적을 만들다
얼 쇼리스 지음, 이병곤.고병헌.임정아 옮김 / 이매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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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치에 지독하게 민감하다. 그러면서 정치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 뉴스에 보도되는 정당과 정치인들의 행위를 술안주 삼아 씹어대지만 우리의 사유와 태도와 그리고 행동 방식은 정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도 한나라당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조선일보의 관점으로 현실을 비판하며 자신의 생각으로 착각한다. 왜 그럴까? 라이히는 <파시즘의 대중심리>에서 억압된 가부장적 생활 양식때문이라는 성정치학을 주장했지만 자신의 계급과 모순된 사고방식과 정치 행태를 쉽게 진단하기는 어렵다. 이런 현실은 지속되며 쉽게 바뀌지 않는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 자신의 위치와 생활을 확인하고 삶의 근본적인 목표와 태도를 결정하는 일은 어디에서 배워야 하는 것일까?

정규 학교 교육을 통해서 난 이런 것들을 배우지 못했다. 하물며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교육의 혜택을 제대로 입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는 더 할 것이다. 얼 쇼리스는 인문학을 통해, 정치적 삶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가난 때문에 겪는 고립적 삶을 벗어나 민주 시민으로서 정치적 삶을 누리고 그 안에서 희망과 행동하는 삶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을 통해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얼 쇼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확신을 행동으로 옮긴다.

미국에서 시작된 클레멘트 인문학 코스는 이제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얼 쇼리스의 작지만 엄청난 실험은 성공적이었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또다른 대안으로 자리잡았다. “최고의 학생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은 곧 모든 이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이다.”라는 허친스의 말을 교육 방법으로 굳게 믿고 기적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삶을 행동하는 삶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왜냐하면 정치적 삶은 질서와 자유 사이의 공간을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행동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인데, 이것이 바로 정치, 또는 중용이기 때문이다. - P. 67

수강생들로 하여금 공적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 가난한 탓에 겪는 고립에서 벗어나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교육목표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이다. 클레멘트 인문학 코스는 여러 학문 분야를 통합한 형태의, 대학 수준의 강좌인데, 교수 방법으로는 여전히 소크라테스식 방법론이 활용되고 있다. - P. 202


책을 읽으면서 부족한 인문학 지식에 부끄러워진다. 서양의 문화와 그들의 정신을 모두 이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철학과 역사, 예술 일반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과 지식을 얻을 기회가 없었다. ‘철학아카데미’나 ‘연구공간 수유너머’와 같은 곳을 통해 자발적인 노력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엉뚱한 발상이지만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인문학은 절대로 필요하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정신적 흐름과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예술에 대한 안목은 가난한 삶을 벗어나기 위한 헛된 방법론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우리도 시행하고 있다. 과명시 평생학습원과 노숙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의 인문학 과정이 그것이다. 인문학은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의 이유로 살아가는 삶의 희망을 갖게 한다.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에 대한 자각은 가난한 사람들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잃고 살아가는 바로 우리들의 과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얼쇼리스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의 행복을 보장하는 일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으로써 민주주의는 모든 것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이다. - P. 426

민주주의가 세상의 절대 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수많은 모순과 단점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민주적 삶에 대한 가치와 목표를 공유해야 한다는 당위와 만나게 된다. 타자의 행복을 위해 무릅쓸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이라면 기꺼이 그 위험 속으로 뛰어들고 싶다. 자그마한 실천과 노력으로 함께 행복할 수 있다. 인문학 과정의 전폭적인 지지와 동참이 아니더라도 모두 함께 가는 길을 찾아야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당연한 우리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07011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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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2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인문학자들과 우리나라 인문학자들은 질적으로 다르지요.

sceptic 2007-01-1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인문학자를 찾기 힘들죠.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살림지식총서 248
박종성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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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에서 내가 감지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지 않다. 아니,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기도 한다. 책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다. 간접적인 수단으로 책만 한 것은 없다. 하지만 책은 직접적인 분석과 접촉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 가상현실 속을 헤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하다. 그것은 물론 책의 분량과 내용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안개처럼 모호했던 개념들을 명확하게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전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책이 전해주는 지적 유희는 어디에서도 찾기 힘들다.

정말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맹렬한 속도와 분량으로 ‘살림지식총서’는 계속된다. 248권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은 작지만 커다란 의미를 지닌 책이다. 물론 나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 등 탈식민주의 이론가들에 대한 분석과 해설은 이 책의 압권이다. 짧고 간명하게 그리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핵심을 짚어내고 비교할 수 있는 내공은 하루 이틀 만에 쌓인 것이 아니다. 요약 정리식의 논의로 볼 수도 있으나 푸코, 파농, 사이드에 대한 견해와 비판은 핵심을 깊숙이 찌르고 있다. 바바와 스피박은 읽은 적이 없어 말할 수 없지만 방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박종성은 탈식민주의에 대한 개념과 독법들을 선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질은 양을 담보로 한다는 생각을 잠깐 잊게 해준다. 현재 우리의 상황에 적용 문제나 깊은 성찰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의 목적은 어차피 그런 쪽이 아니므로. 간단하고 명확한 이해와 전체적인 조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살림지식총서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

식민주의는 열등감과 불평등 및 역사의 왜곡을 낳으며,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비극을 초래했다. 이런 식민주의를 비판적 시선으로 읽어내려는 ‘대응담론’이 바로 탈식민주의이다. - P. 4

탈식민화란 “모든 형태의 식민주의자의 권력을 드러내고 해체하는 과정”이다. - P. 45


19세기 서구 열강에 의한 세계 식민지 쟁탈전은 올림픽을 연상시킨다. 근대화와 문명화의 이름으로 자행된 만행의 역사는 21세기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상처는 무수한 인류의 고통으로 남아 있다. 탈식민이든 신식민이든 용어의 개념도 중요하겠지만 신자유주의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지속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제국주의 횡포는 여전히 계속된다. 그것이 우리들 삶과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이 문제다. 거시적인 담론들을 외면하면 내가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쉽게 찾아 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 청산은 요원하기만하다. 식민주의의 그늘은 아직도 검고 짙게 드리워져 있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현실 속에서 우리끼리 부대낀다. 친일파 문제 하나만 놓고 생각해도 현실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사람들의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아직도 식민주의자의 권력을 드러내고 해체하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은 아닐까?

그렇다면 결국 탈식민주의도 저자의 말대로 실천의 문제로 귀결된다. 미제국주의의 눈치를 보며 이라크 파병했고, 한미FTA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현실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역사가 말해준다고 하지만 결코 다수의 행복을 위해 움직여주지 않는다. 누가 무엇을 위해 저항할 것이며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인가?

탈식민주의는 저항담론이며 실천담론이다. …… 탈식민주의 이론이 세상 읽기의 유효한 방식이 되고, 현실 참여의 영역과 맞물려 있어야 의미가 있다. 반성과 토론만 하다가 투쟁이나 실천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면 진보는 위기에 처한다. - P. 86

최근 벌어지고 있는 진보의 위기에 대한 저자의 일침은 매섭다. 투쟁과 실천의 문제, 현실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 진보는 미래가 없다. 답답한 현실은 계속되고 현실은 외면하고 싶지만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대로 희망은 있고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한방이냐 천천히 조금씩이냐의 문제일 뿐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우리가 처한 신자유의와 신제국주의에 대한 상황을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노력이 탈식민주의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는다. 주권과 자율성을 지키는데 꼭 필요한 실천담론으로서 탈식민주의는 미래 지향적 프로젝트라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결코 좌파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해석이다.


07011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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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이야기 - 이국적인 유혹의 역사 살림지식총서 251
정한진 지음 / 살림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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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초콜릿과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달콤한 맛의 유혹과 부드러움에 대한 강렬한 이끌림을 떨치기 힘들다. 어떤 형태로든 초콜릿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외래 음식은 먹는 기호 식품이라기보다 하나의 상징이다.

보통 발렌타인 데이는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제과 업체들이 노리는 대목이다. 19세기말 영국의 캐드버리사에 의해 시작된 발렌타인 데이의 선물용 포장 초콜릿은 이제는 보편적 현상이 되었다. 사랑을 고백하는 날에 초콜릿을 선물한다는 것은 그만큼 초콜릿의 맛과 향이 사랑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유혹은 초콜릿의 기원과도 무관하지 않다. 카카오 열매에서 분리된 씨앗을 갈아 마시는 초콜릿 음료는 멕시코에서 시작되었다. 잉카와 아스텍 족에 의해 신들의 음식으로 불리워진 이 음식은 콜럼부스가 1502년에 발견했지만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에 의해 본국에 전파된다. 이후 유럽으로 서서히 확산되었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이어 영국과 네덜란드 스위스로 퍼져 나가면서 초콜릿은 특권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음료였고 주로 몸에 좋은 약용이나 최음제의 효력이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카톨릭에서 종교인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기도 한 음료이다. 지금 우리가 먹는 판형 초콜릿은 1830년경 영국 프라이사와 캐드버리사에 의해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후 밀크 초콜릿과 액상 초콜릿을 부드럽게 하는 ‘콘킹’ 기술이 개발되어 지금에 이르게 된다. 벨기에나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다양한 제품이 개발되었고 특히 1920년대 미국의 허시에서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키세스 등에 의해 대중화 획일화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병사들에게 군용식량으로 초콜릿 바를 지급한다. 육이오 전쟁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초콜릿이 전해진다. 일반적으로 대량 생산된 초콜릿의 경우 설탕과 유제품의 함량이 많아 카카오 고유의 맛과 향을 느끼기 어렵다. 질 낮은 바닐라 향을 첨가한 초콜릿은 카카오에서 추출된 본래의 맛을 떨어뜨린다. 초콜릿은 당과류나 과자류로 변형되어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얼마전 롯데 제과에서 나온 ‘드림 카카오 56’는 대량생산 초콜릿의 맛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56, 73, 85, 99 등 카카오의 비율이 상당한 초콜릿을 판매 했으며 카카오의 성분이 건강에 이롭다는 말 한마디에 판매량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카카오 99% 초콜릿은 블랙에 가깝고 단맛은 거의 없으며 향이 강하고 거의 쓴맛에 가깝다. 차안에 두고 출출할 때 답답할 때 한 알씩 녹여먹는 비상 식량으로 손색이 없다. 드림 카카오 56은 자이리톨 이후 롯데의 대박 상품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책에는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종류 그리고 먹는 방법까지 다양하고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생리학과 심리학적 관점에서 초콜릿이 주는 의미를 살펴보는 부분이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는 부분이 너무 소략해서 아쉽지만 전체적인 궁금증을 풀어주는 데는 손색이 없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나 좋아하는 음식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짧고 간단하게 읽어낼 수 있는 시리즈의 장점을 잘 살린 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초콜릿은 여전히 달콤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다양한 제품들이 선보이고 다양한 가공 방법들이 생기겠지만 먹는 음식을 넘어서 하나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사회적 기호로서 초콜릿을 대하는 방식보다는 맛있는 음식으로 입안에서의 미각으로 먼저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커피와 더불어 생산과정에서 아프리카 노예들의 강제 이주와 노동으로 점철되어온 역사를 생각하면 입맛이 쓰다.

초콜릿이든 아이스크림이든 뭔가 달콤한 맛이 생각나는 날이다.


070109-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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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0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은 초콜릿이나 단팥이 든 빵, 단 것을 먹고 싶어지는 밤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sceptic 2007-01-10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행복하게 보내고 싶어요...님도 오늘은 초콜릿 한 조각 드세요...
 
천 개의 공감 - 김형경 심리 치유 에세이
김형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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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서로에게 무한한 행복을 주거나 극단적인 불행을 선물한다. 서로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은 이해되지 않으며 이해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는 관계가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찢어지고 갈라진 관계를 끊어버릴 수 없을 때 불행은 시작된다. 특히 헤어진다고 해결되지 않는 가족 관계가 가장 심각하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 관계는 물론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관계의 출발이다.

<천 개의 공감>은 김형경의 ‘심리 치유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타인에게 말걸기를 통해 자신을 치유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말을 걸어도 좋겠다. 다만 말을 걸 수 있는 적당한 대상과 방법이 있다면 말이다. 한겨레 지면에 연재되던 코너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짤막한 사연과 자기 상황에 대한 문제를 보내면 김형경이 상담과 조언을 해주는 형식의 글들을 모았다.

자기알기, 가족관계, 성과사랑, 관계맺기 등 4개로 나누어진 이 책은 아무 때나 어디를 펼쳐 읽어도 상관없다. 짧은 글들 속에 압축된 상황들은 대개의 경우 일반적인 80% 범위에서 벗어난 것들이다. 극도의 자기 부정이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철저하게 상처입는 사람들,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롭거나 대책이 없는 사람들의 괴로움은 생각보다 심각해 보인다. 김형경은 거의 모든 경우에 예외없이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적 용어를 사용하거나 시도하고 있다. 객관적인 분석이라는게 불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저자 나름의 잣대와 뚜렷한 방법이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으로 스스로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대응책을 제시하는 내용은 개별적인 상황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공감이 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일상에서 자기 스스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의 경우 생각보다 해답은 간단하다. 내면을 돌아보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면 갈등과 고민이 적어질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판단도 정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대책은 자기 안에 있으며 문제는 스스로 풀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은 어떤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당연히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단계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 사람들은 오히려 해법이 간단하다. 거울 마주보기를 통해 스스로를 인정하는 기본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족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 관한 문제는 쉽지 않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예상치 못한 상황과 감정들과 부딪히게 된다. 사회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다.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우리는 가장 큰 행복과 생의 충만감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신을 비추어 봅기도 하며 인생을 가꾸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관계 맺기에 실패할 경우 타인에 대한 혐오감을 넘어 지옥을 경험하게 된다. 특정인에 대한 관계가 전체로 확대되기도 하고 자신의 작은 문제가 타인들과의 관계 맺기에 지속적으로 간여하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고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 영역에 대한 문제 해결 방법에 대해 우리는 늘 고민하고 생각한다. 지혜롭게 그리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들의 생은 당연히 행복해 보이지만 그 방법은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먼저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하며 타인들과의 관계를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이해와 용기이다.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으면 타인을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용기가 없다면 실천할 수 없다. 저자가 요구하는 해결책들은 스스로의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부족한 상담자들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인가. 가장 큰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 용기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있을까?

김형경의 잣대는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에 있고 id, ego, super-ego 사이의 관계를 풀어내는 것에서 출발한다. 리비도와 집단무의식, 어린 시절의 억압과 어머니와 애정관계가 실마리가 된다. 그러나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특히 ‘가족관계’나 ‘성과사랑’에 관련된 문제들은 개별적이고 특수한 상황일 경우가 많다. 수많은 경우의 수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은 없겠지만 개인적 성향과 상황들이 모두 고려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반적인 처방이나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이 만능 열쇠가 될 수 없음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를 진단하는 역할을 넘어설 수 없는 우가 많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거의 대부분 여성의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남성 상담자의 경우 상담자 자체의 문제를 부각시키거나 지적하는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상대에게 원인을 찾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들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여성은 가족 관계에서나 사회적 관계에서 약자인 경우가 많다. 감정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에서 개별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부작용도 생길 수 있어 아쉽다.

전문 상담가나 의사가 상담자나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의 포괄적인 문제를 다룬 책으로서 ‘천 개의 공감’이 이루어지지는 않는 책이다.


070108-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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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1-0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님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었었는데, 작가분이 심리학 전공이신가요? 아무튼 좀 특별한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어요. 근데 천개의 공감은 소설이 아니라 신문에서 상담사례를 모은것이었군요.

sceptic 2007-01-09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김형경은 국문학 전공잡니다. 신문과 한겨레 상담 코너의 칼럼들을 모아놓았습니다. 꼭 여성들만의 입장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주로 여성들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