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 철학 수고
칼 마르크스 지음, 강유원 옮김 / 이론과실천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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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자본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괴물은 모든 것들을 삼켜 버렸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이기주의에 기대게 되었다. 그것은 사유재산의 축적을 통해 그리고 토지와 생산 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로 컴퓨터처럼 2진법으로 분류되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르크스의 주장은 대체로 틀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을 확인했다. 부르주아든 프롤레타리아든 단 두 개의 팀으로 분류한 방법은 혁명을 위한 준비단계로 마르크스의 탁월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든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라는 책은 1844년 집필된 책으로 1867년 <자본>이 나오기 이전의 파리 시대의 그의 사상적 흐름을 읽어낼 수 있는 책이다. 청년 마르크스에게 당시의 경제 이론들은 자본이라는 큰 틀에 대한 기본적인 관점과 신념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지금은 당시의 경제 상황과 다르게 파악될 수 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큰 틀이 바뀌지는 않았다. 어쨌든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관심은 자본의 소유에 대한 방법과 사용법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아니 이제든 국가의 경계마저 허물어졌다. 그 자본이 미치는 파괴력은 산업시대의 그것과 확연하게 구분된다.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은 증대되었고 자본에 접근하기는 더욱 어려워졌으며 자본의 형태와 소유 방식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여전히 자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고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하며 토지와 생산수단 이외의 금융자본 등 상상을 초월하는 자본들이 생겼다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노동자로 머물러 있다. 자본을 이해하는 것은 내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본의 힘에 경배할지어다.

2. 노동

 육체적인 노동의 댓가로 먹고사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직종과 업무에 상관없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노조가 없는 무노조 경영을 표방하는 삼성맨들의 프라이드를 보면 알 수 있다. 불쌍한 노동 기계. 그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비참하고 부정적인 현실 인식이 아니라 분명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또 다른 현실이 시작된다.

 노동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부를 창출하고 자본을 형성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엄한 놈이 챙긴다. 단순하고 상식적인 논리와 마르크스의 주장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보이지 않는다. 어렵고 따분한 말로 길게 서술되어 있으며 스미스의 경제이론을 인용하고 반박하고 있지만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이 좋다. 내가 이해하는 방식은 그래서 어쩌자는 말인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노동의 역할과 가치를 알고 산출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동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과 현실에서의 역할을 찾고 싶은 것이다.


3. 지대

이제는 우스운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땅이라니? 땅이 자본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나? 나이키 같은 다국적 기업은 마케팅과 서비스만 제공한다. 생산을 공장과 토지는 값싼 노동력을 따라 지구를 떠돈다. 또 헌법에 토지 공개념을 포함하자는 노무현의 논리는 어떤가? 여전히 땅땅거리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노동과 지대는 부를 축적하기 위한 기본 요소이며 현재에도 유효하다.

 시대가 달라지고 상황이 변하고 IT가 어떠니 인터넷이 어쩌니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과 다른 것은 땅은 늘거나 줄지 않는 데 있다. 문제는 다시 노동이다. 토지는 소외되지 않지만 노동을 통해 인간은 자본으로부터 소외된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노동자는 불쌍한 노동 기계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4. 사유재산

 인간의 본능이다. 공산주의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에 대한 본능을 간과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유 재산은 영원할 것이다. 이기적 욕망과 사적 소유의 관계는 경제 문제에서 당연한 전제가 된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소비하거나 구매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경제 원리가 가장 정확하다. 사유 재산은 노동하는 인간에게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제공한다. 오늘을 버티게 하는 마약 혹은 환상.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거나 소유할 가능성이 없는 경우,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경우를 우리는 매일 뉴스를 통해 확인한다. 그리고 그 현실을 살아간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우리가 책임질 수 있으며 제도의 개선을 통해 보완한다고 해결될 수 있을지 오른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5. 화폐

 새로 나온 만 원권을 교환하기 위해 3박4일 동안 한국은행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라. 그것의 교환가치나 상품가치를 떠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단면이다. 화폐의 기능과 속성을 아는 것보다 화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좌절감.

화폐의 속성의 보편성은 그 본질의 전능성이다. 그런 까닭에 화폐는 전능한 존재로 간주된다…화폐는 욕구와 대상, 인간의 생활과 생활수단 사이의 뚜쟁이이다. 그러나 나에게 나의 삶을 매개해 주는 것, 그것은 나를 위해 다른 인간의 현존도 나에게 매개해 주며, 그것은 나에게는 다른 인간이다. - P. 174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전지전능하신 ‘화폐’의 위력을 실감한 마르크스의 혜안에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능성이 사라지지 않는 현실이 두렵다. 보다 많은 ‘화폐’가 행복의 척도이며 생의 목표이며 현실적 삶의 궁극이라는 데 모두 동의하십니까?

 청년 마르크스의 결정적 시기의 다듬어지지 않는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책의 내용보다 현실이 먼저 보이고 지나온 자본주의의 역사가 보인다. 우리가 고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느냐는 질문에 반대한다. 자본주의를 엎어버리자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가공할 위력에 몸 둘 모르는 사람들이 읽어야 할 책도 아니다. 난해한 번역문으로 머리가 어지럽고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드는 현실로 두통을 유발하는 책이다.


07012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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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우리의 미래를 말하다
노암 촘스키 외 지음, 강주헌 옮김 / 황금나침반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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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뉴스나 언론에서 비리를 고발할 때 사용하는 말이 ‘사회 지도층 인사’라는 말이다. 그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지도했으며 누가 지도층으로 인정했을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지식인이라는 용어도 마찬가지다. 명확한 기준 없이 사용되는 이 사람들을 나는 개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존경하고 받을 만한 지도층도 없고, 지식인도 거의 없다. 지식인은 단순히 지식의 양적 측면만을 고려해서 평가하지 않는다. 촘스키는 지식인을 이렇게 비아냥 거린다.

존경받는 지식인이 되면 뭐가 유리한 줄 아십니까? 무슨 말을 하더라도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른바 지식인이 쓴 글을 면밀히 읽고나서, 결론을 뒷받침해줄 만한 증거를 찾아보십시오.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P - 75

 나의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 편견의 결과, 많이 배운 놈들은 대체적으로 훨씬 이기적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타인과 사회에 심각하고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언어학의 거목으로 일가를 이룬 학자 촘스키가 아니라 비판적 지식인,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촘스키를 읽는다. 데이비드 바사미언이 인터뷰 한 내용을 정리한 책 <촘스키, 우리의 미래를 말하다>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무엇을 꿈꾸는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경고와 현실로 나타난 전쟁과 살상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래도 믿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대중의 생각을 조작하는 언론과 미디어의 프로파간다가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못을 지적하자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자는 문제가 아니다. 원인을 찾고 대안을 마련하고 현실을 바꿔나가자는 말이다. 촘스키는 이런 역할들을 오히려 국민들을 속이고 대중을 기만하는 효과적인 수법으로서 프로파간다에 주목한다. 얼마 전 국정 홍보처는 되고 농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제작한 한미 FTA 반대 광고는 안된다는 규정도 우습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미 FTA는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촘스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우리는 소극적으로 순종적인 추종자가 되라고 배웠습니다. 이런 관습의 틀을 깨지 않는 한 우리는 프로파간다의 피해자가 되기 십상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관습의 틀을 깨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P - 43

 그러나 아무리 외쳐도 소극적이고 순종적인 추종자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다. 관습의 틀을 깨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늘상 프로파간다의 피해자로 살아간다. 우리 모두가 그 피해자고 알게 모르게 익숙해져 가고 골치 아픈 문제는 생각하기 싫어지고 당장 눈앞의 이익이나 이해득실을 계산하고 나에게 미칠 결과만을 고려한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이런 습성을 탓할 수는 없다. 다만 주변을 생각하고 조금 넓고 깊게 그리고 멀리 생각해 보면 답은 그렇게 쉽게 나오지 않는다. 단순한 문제가 아닌데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바로 촘스키의 말처럼 프로파간다의 피해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지름길은 패권주의를 인정하고 기득권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한 후에도 세계 경찰국가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들이 지목한 테러 지원 국가나 악의 축들은 정말 나쁜 나라들일까? 진정한 불량국가 미국의 모습을 들여다보면 된다. 역사에서 망각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선의의 정책을 내세운 이라크 침공은 결국 베트남보다 훨씬 더 큰 경제적 손실과 단기간의 인명을 살상하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이 순간도 여전히 진행형인 전쟁이며 우리의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들은 우리의 동생과 아들들을 지원군으로 파병했다. 그래도 여전히 국내에선 찬성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무엇이 문제일까.

 민주주의과 교육은 말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다. 생활 속에서 관습과 고정 관념의 틀을 깨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촘스키가 어렵지 않다고 얘기했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론에서 촘스키는 ‘새로운 세계는 가능하다’고 말한다. 세계 사회 포럼의 슬로건에 박수를 보낸다. 당연하다. 이대로 지구를 폭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고 암울한 전망이 예상되더라도 우리는 밝은 세상을 갈망한다. 아니 습관적으로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산다. 희망은 누가 주는 것도 아니며 저절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누가 우리에게 이런 희망과 미래를 절대로 만들어 주지 않는다. 대체적으로 현실에 비쳐진 미래는 비극적이며 인간을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다. 미래는 결국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내가 만들어가는 미래,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거창한 말이 아니라 작은 생각의 변화와 행동의 시작이 미래를 만든다. 촘스키가 아니라 동네 아저씨의 말 속에도 진리는 담겨 있다. 다만 그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문제는 산을 옮기는 것보다 더 어려울 뿐이다.


07012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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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24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소극적이고 순종적인 추종자가 대개는 '가치중립적' '합리적' '불편부당한' 이런 단어들로 포장하지요.때로는 '관념'이나 '예술'에 의탁해서 자신을 세상과 분리하기도 합니다..... 알지 못하는 것은 무능과 게으름이고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앎이 내것이 되지 못한 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sceptic 2007-01-2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능과 게으름보다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알고 실천하는 삶이 어렵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어렵습니다. 조금씩, 한 걸음씩 내디뎌봐야지요.
 
팔레스타인의 눈물 - 문학으로 읽는 아시아 문제 팔레스타인
수아드 아마리 외 지음, 자카리아 모하메드 엮음, 오수연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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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종교와 민족의 구별이 없다면 세계 평화는 가능한가.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한 마디로 재단할 수는 없다. 어느 편을 들어 줄 생각도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미흡하다. 객관적 시선이 불가능한 이 문제에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자신의 잣대로 실리를 계산하기 바쁘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그들을 바라볼까?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들었을 법한 이야기. 전쟁이 나면 이스라엘 유학생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짐을 싸고 아랍인들은 도망가기 위해 짐을 싼다는 이야기를 선생님들로부터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그렇게 가르쳤을까?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씁쓸하다. 이처럼 왜곡된 시선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본다면 그들은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는 셈이다.

 <팔레스타인의 눈물>은 수아드 아미리 등 여러 명의 팔레스타인 작가가 쓴 글들을 모아 펴낸 책이다. 자카리아 무함마드와 오수연이 엮은 책으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졌던 전쟁과 참상을 직,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문학이 수단이 될 순 없지만 또 다른 측면의 진실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들이 지금까지 겪었던 고통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타인의 고통’일 뿐이고, 지구촌 뉴스일 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남북 분단의 문제와 미국과의 관계를 짚어보는 타산지석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문제는 편 가르기를 넘어선 문제이다. 이라크와 더불러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면서 인류라는 종족이 살아온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밸푸어 선언으로 땅없는 민족이었던 유대인의 시오니즘은 희망의 등불을 켠다. 하지만 수천 년간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된 팔레스타인 지역 사람들에게는 침략자일 뿐이다.

 1948년 전쟁보다 1967년 전쟁으로 동예루살렘과 서안, 가자 지구를 점령한 이후의 비극은 특히 심각하며 2004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명백한 침략행위로 규정되어 불법 점령한 지역을 반환하고 이스라엘 국민들의 정착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은 여전히 팔레스타인에 장벽을 설치했고 불법 점령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 지역을 점령할 당시 국외에 있다가 수십 년간 가족과 생이별하거나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비참한 이야기들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탱크가 시내에 진입해서 폐허가 되고 생필품을 구하지 못해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사 속의 한국전쟁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해결되고 있지 않은 문제이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주장해온 이야기에 익숙한 우리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은 우리 편이고 그 반대편은 적으로 간주하는 단순하고 위험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 정체성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미국과의 관계를 거론하는 정치인들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우리의 문제로 귀결되며 미국의 패권적 이기주의는 위험 수준에 도달해 있다.

 굳이 한미FTA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에 개입하고 있는 미국과 그들의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의 시선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바라볼 수만은 없다. 그것은 편견이며 왜곡된 진실이다. 소설을 통해서 혹은 산문들을 통해서 직접 만나게 되는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는 또 다른 시야를 열어준다.

 2003년 이라크에 취재작가로 파견된 소설가 오수연과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가 만나 이 책을 기획했고 그 결과물은 한국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실감나는 목소리를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진지하고 커다란 감동으로 전해준다. ‘분쟁’ 지역이 아니라 ‘점령’ 지역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 삐뚤어진 우리들의 시선을 교정할 수 있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

 다양한 시선과 폭넓은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혀야 한다. 일방적인 주장만을 듣거나 분명한 의도와 시각으로 편집되어 전해지는 이야기들의 위험성을 간파해야 한다.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일 수 없고 진실은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07012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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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07-01-2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수연 작가 강연회에 참석한 적 있는데, 소설 얘긴 안 하고 줄곧 '팔레스타인의 눈물'에 대해서 얘기하더군요. 체험담이었는데 그것도 모자라 번역까지 한 것 보니 숙연해지더라구요.

sceptic 2007-01-24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곳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느낌이어서 좋은 책으로 추천할만 합니다.
 
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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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2만원이라는 가사를 듣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놀랄만큼 가까운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끼는 심리적 거리감에 새삼 놀라게 된다. 남북이 갈라선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같이 살자는 노력은 부족했다. 통일의 당위성을 실감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분단은 고착화될 위험성도 높다. 사는데 불편하지 않다는 이유로 남북 교류와 화해 협력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의 생각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어 보인다. 우리는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해답이 선행되어야 한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지구상에 이념의 대립으로 갈라진 유일한 나라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특별한 상황과 시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 많다. 북핵 문제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된 것처럼 비치는 것은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욕심과 북한의 태도 때문이다. 사회주의 국가의 가장 큰 희망이자 매력들은 사라져가고 굶주린 국민들은 체제가 전복될 만큼 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탈북자 문제와 사회 변화 문제는 북한이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 중 하나일 뿐이다. 체제 우위의 입장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시혜적인 태도에서 남북문제를 접근하는 것도 위험하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남북 화해와 교류 협력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에 파견된 작가 오영진의 <평양프로젝트>는 북한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만화가 주는 특별한 재미는 물론이고 짧은 주제를 통해 북한의 일상과 사람들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오공식과 남북 교류 협력단 조동만, 김철수 그리고 파견 나온 리순옥 등이 보여주는 대화 내용과 일상의 모습들을 통해 북한을 보다 실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조선 중앙 방송을 통해 선전용으로 보도되는 화면과 다른 것은 남한 사람의 시각으로 북한 사람들의 모습과 태도를 그려 낸다는 점이다. 우리와 다른 생활 방식과 생각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을 이해하고 우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가장 기본적인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나. 이산가족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확대되면 이질적인 문화가 극복되고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도 생길 것이다. 그렇게 쉼 없이 서두름 없이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십시일반>이나 <사이시옷> 등 만화를 통해 새로운 방법으로 인권 문제에 접근했듯이 <평양 프로젝트>를 통해 북의 실상을 이해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겠다. 재밌고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매체나 방법이 더 많이 요구된다. 얼렁뚱땅 오공식의 북한 기행은 민족이나 국가의 차원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의 개념으로 접근하게 된다. 서로 다른 체제와 이념의 장벽이 만만한 것은 아니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라면 적극적인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손 놓고 앉아 있으면 국가와 정부 차원에서 통일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민간 차원에서 노력하고 협력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이념의 골을 건너기가 쉽지 않다. 남한에서도 국가나 사회를 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고 다양한 이념이 존재한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북한 문제를 바라볼 수는 없지만 한 번은 건너야 하는 강이라는 동의한다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한 때가 되었다.

 넓지도 않는 땅에서 갈라져 사니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화해와 평화는 먼 나라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 현실의 문제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통일은 시기상의 문제일 뿐이다. 같이 살자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결 조건이나 상황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같이 살겠다는 마음과 의지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070118-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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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미셀러니 사전 - 동서양을 넘나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앤털 패러디 지음, 강미경 옮김 / 보누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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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모든 일들을 적어 놓은 책은 있을 수 없다. 한 권의 책에 한 가지씩 나누어도 전부 담을 수는 없다. 어차피 모든 역사책은 취사 선택의 결과물이다. 객관적인 역사 서술 방법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그 역사가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듯 무엇을 적을 것인가에 이미 사관이 개입된다. 역사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무수한 충고들 속에서도 우리는 이미 오래된 미래를 간과하기 쉽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의 중심에 인간이 놓여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인간을 중심으로 파악하는 것도 이기적인 인간들의 모습일 뿐이다.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명멸했겠는가. 앤터 패러디의 <역사 미셀러니 사전>은 조금 색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역사에 접근한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책에 대한 자신감이라기보다는 특징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자연사, 문화사, 생활사, 과학사 등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책은 잡학 사전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다.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할 목적이 아니다. 사전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지만 저자의 이름처럼 패러디와 풍자를 특징으로 삼고 있다. 재미있게 역사에 접근하자는 말이다. 머리 아프고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라 단순하고 쉽게 세상에 관한 역사를 조금씩 다른 시각과 방법으로 접근하자는 의도이다. 하나의 주제를 아주 짤막한 형식으로 정리해 놓는 방법으로 서술되어 있다. 누구든 쉽게 심심풀이용 혹은 잡학 상식 사전용으로 읽으면 된다.

 저자의 다른 책을 읽고 이런 방식의 글쓰기나 지식에 대한 접근 방식이 내키지 않는 독자라면 물론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기도 하다. 역사를 수필로 풀어내는 논문을 쓰든 독자 입장에서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한 법이다. 간단하고 명료한 방식으로 핵심을 전달하기 보다는 가볍고 재치있게 전해주는 내용이 그리 달갑지 않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다시 같은 형태의 책을 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진다.

 다만 이 책은 같은 대상이나 항목에 대해 다른 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시각과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구’를 ‘인간의 부질없는 욕심을 실현시키는 수단’이라고 정의하거나, ‘화장실’을 ‘정보와 소식을 주고 받았던 모임 장소’로 설명하는 방식 등이 그렇다. 같은 사물에 대한 다른 설명이 가능한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나 견해가 아니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에 대한 역사 서술 방식은 앤털 패러디처럼 독특하고 뚜렷한 관점이 아니라면 별 의미도 재미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가볍고 재밌는 잡학 상식 사전 이상을 기대하면 돈을 다칠 수 있다. 화장실에 비치해두고 읽을 만한 책이다. 저자의 목적이 그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수많은 방법 중의 하나를 선택했을 뿐이다.

070117-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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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19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한번 사서 봐야 겠네요. 행복한 주말 되세요.

sceptic 2007-01-21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심풀이로 읽을만 합니다. 즐거운 시간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