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장 피에르 카르티에.라셀 카르티에 지음, 길잡이 늑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콘크리트 냄새 자욱한 섬에 떠 있다. 현대판 공중부양.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메마르다. 성냥갑처럼 똑같이 생긴 집을 쌓아놓고 똑같은 위치에 앉아 밥을 먹고 잠을 자고 TV를 본다. 아침에 일어나 똑같은 입구에서 쏟아져 나왔다가 저녁에 똑같은 입구로 들어간다. 병정놀이 하듯 현대인의 삶은 기계적이다. 노동에 바쳐지는 시간과 휴식에 바쳐지는 시간들로 나뉘어 서로 비교하고 경쟁하다가 비슷한 종류의 행복을 느끼거나 비슷한 종류의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우울해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고독을 즐기기도 한다.

 아파트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콘크리트 덩어리들은 어둠속에 괴물처럼 솟아 있다. 칸칸이 불 밝힌 대한민국의 저녁은 안녕한가.

 피에르 라비의 삶을 그린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는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그의 삶은 우리의 그것과 많이 다르다. 나무와 바람과 대지와 하늘을 무대로 펼쳐지는 그의 인생은 도시와 문명 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에게는 흉내낼 수 없는 삶으로 보인다. 거대한 감옥에 갇혀 사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는 손쉽게 혹은 낭만에 기대어 전원생활을 상상한다. 하지만 피에르 라비에게 자연은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어머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숨을 쉬고 있는 동안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생을 영위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물음들과 대면하게 되면 낭패감을 느끼게 된다. 알제리 오아시스 출신의 피에르 라비는 프랑스 부부교사에게 입양되어 문명의 혜택을 받지만 그의 피부색과 출신 성분을 숨길 수는 없다. 이방인에 대한 차별과 문명에 대한 혐오는 피에르 라비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한다.

 척박한 땅을 일구어 뿌린 만큼 거두고 자식을 낳고 기르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의 이야기는 귀농한 한 외국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과는 사뭇 다르다. 자신이 경험한 삶의 방식과 땅을 대하는 법을 나눈다. 그 속에서 깨달은 생의 의미를 이웃과 나누고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질적 풍요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없을까. 다국적 기업과 거대 자본에 의한 농업과 기계식 산업이 불러온 재앙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마치 성자와 같다. 뚜렷한 목표와 진지한 태도는 미래의 농업과 자연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분명하고 맑은 정신을 소유한 피에르 라비의 삶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한 편의 시와 같다. 낭만적인 태도로 그의 삶을 기웃거리자는 말이 아니다. 현실 속에 발딛고 사는 우리들이 한 번쯤 먹거리를 위한 자세와 태도를 고민해 보자는 뜻이다.

 장 피에르 카르티에와 라셀 카르티에 부부가 그를 찾아가 보낸 일주일간의 기록이 이 책의 내용이다. 피에르 라비의 말과 생각을 관찰하고 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두 부부의 태도는 진지하다.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삶을 소개하는 흥밋거리가 아니라 우리들 안에 살고 있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겸허한 반성의 목소리로 들린다.

 돈 주고 사는 주말 농장이나 노년을 자연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들 속에는 땅에 대한 인간들의 원형적인 그리움이 내재해 있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한 지침서나 참고서가 아니라 생에 대한 태도와 도시에서의 척박한 삶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생길 때 이 책은 고민의 단초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삶을 돌아보게 하는 피에르 라비의 삶은 우리를 경건하기에 충분하다.


070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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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여기 머문다 - 2007년 제3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전경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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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수상하는 문학상은 단 한 명에게 수상을 안겨주어야 한다. 당연한 규칙이지만 많은 것을 함의한다. 당해연도에 발표된 소설들의 편차와 무관하게 습관적으로 누구에겐가는 상을 안겨야 한다. 이것이 문학상의 가장 큰 딜레마이다. 매년 수상하는 작품들이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매력적이고 뛰어난 작품이 나온 해도 있고, 기대 이하의 작품이 수상하기도 한다. ‘올해의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은 없습니다’라고 발표할 만한 용기(?)는 없을까? 문학상의 권위를 떠나 수상작이 출판사에 안겨줄 경제적 이익과 수상자가 안게 될 명예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른 한 번째 이상 문학상,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가 나왔다. 책꽂이 한 켠에 스물 한 권째가 꽂혔다. 이상 문학상과 함께 세월이 흘러간다. 시간의 흐름은 문학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게한다. 하지만 매년 작품집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감동과 감회는 부침이 심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별 감동도 큰 울림도 없었다.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상처는 일상적이다. 매일 벌어지는 일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일이다. 비극적인 상황 인식이지만 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이될 뿐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감정의 결들은 미세한 떨림과 섬세한 울림으로 표현된다. 섹스에 탐닉하고 상대를 속박하는 결혼관계가 결국 파경을 몰고 오고 머나먼 이국에서 섹스없는 백색결혼을 고민하던 주인공에게 빛의 환영이 보인다. 그녀에게 사랑과 결혼은 무엇인가를 점검해야한다. 아니,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확인해 보아야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지닌 내용을 너머선 문학적 성과에 있다. 수상 선정 이유에서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밝히고 있지만, 그것이 이해되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과 이해는 거리가 멀다. 엘리트 소설과 대중 소설의 벽을 허물었다는 이태동의 평가보다는 허무과 열기를 내뿜고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온당하다. 보는 시각에 따라 혹은 태도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만장일치로 한 작품을 선정하면 핵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독자의 평가도 달라진다. 어쨌든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 미흡하는 쪽에 과감하게 한 표 던진다.

 내용과 관계없지만 우수상 수상작의 순서를 등단순서로 한 것은 엽기다. 이전처럼 가나다순이 합리적이다. 군대도 아니고 문단 짬밥 순으로 우수상 수상작 순서를 정하다니 어이가 없다. 문단 권력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싹이 트고 내면화된다. 그들만의 서열과 위계가 자리잡아가는 과정이 이렇게 스치듯 비춰진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나?

 한창훈의 ‘아버지와 아들’이 내뿜는 사투리의 힘. 입말이 보여주는 구수함과 부자 간의 대화가 생활의 일부로 녹아들어 감칠맛이 난다. 김연수의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발상이 기발하며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소도시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주인공을 오히려 에피소드 형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취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적절한 배치가 흥미롭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는 젊은 작가의 발랄함이 그대로 묻어나면서도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백이 날카롭고 진지하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했다는 권여선의 ‘약콩이 끓는 동안’이나 편혜영의 ‘첫번째 기념일’은 밋밋하게 다가왔고, 천운영의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는 감각에 의존하고 있어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유일하게 매년 구입하는 책에 대한 느낌도 생각도 매년 달라진다. 시간이 흐르고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소설과 문학상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 작가의 문학적 성과와 미래에 대한 격려가 내포된 것이 문학상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쏟아지는, 혹은 명멸하는 숱한 단편들 중에서 매년 옥석을 가리는 작업의 힘겨움과 독자들과의 약속 사이에서 분명한 자세를 보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작과 함께 지난 해의 문학적 성과를 기억하는 책으로서 의미를 가진 책이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그냥 읽고 쓴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입맛과 손맛이 씁쓸한 것은 나 혼자 느끼는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070209-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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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魔 2007-03-04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이 책을 읽으신 소감이 저와는 틀리기에 이 주소를 제 블로그에 링크합니다. 저도 다른 분들의 시선을 통해 제 시야를 넓힐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벌써 21권째라니... 존경스럽습니다. 전 이제 겨우 5~6권째인듯 싶은데요.. by http://samma.org

sceptic 2007-03-05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간다는거죠...^^
 
천사는 여기 머문다 - 2007년 제31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전경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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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수상하는 문학상은 단 한 명에게 수상을 안겨주어야 한다. 당연한 규칙이지만 많은 것을 함의한다. 당해연도에 발표된 소설들의 편차와 무관하게 습관적으로 누구에겐가는 상을 안겨야 한다. 이것이 문학상의 가장 큰 딜레마이다. 매년 수상하는 작품들이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룩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매력적이고 뛰어난 작품이 나온 해도 있고, 기대 이하의 작품이 수상하기도 한다. ‘올해의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은 없습니다’라고 발표할 만한 용기(?)는 없을까? 문학상의 권위를 떠나 수상작이 출판사에 안겨줄 경제적 이익과 수상자가 안게 될 명예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른 한 번째 이상 문학상,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가 나왔다. 책꽂이 한 켠에 스물 한 권째가 꽂혔다. 이상 문학상과 함께 세월이 흘러간다. 시간의 흐름은 문학상에 권위를 부여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게한다. 하지만 매년 작품집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감동과 감회는 부침이 심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겠지만 별 감동도 큰 울림도 없었다.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상처는 일상적이다. 매일 벌어지는 일이고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일이다. 비극적인 상황 인식이지만 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변이될 뿐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감정의 결들은 미세한 떨림과 섬세한 울림으로 표현된다. 섹스에 탐닉하고 상대를 속박하는 결혼관계가 결국 파경을 몰고 오고 머나먼 이국에서 섹스없는 백색결혼을 고민하던 주인공에게 빛의 환영이 보인다. 그녀에게 사랑과 결혼은 무엇인가를 점검해야한다. 아니,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확인해 보아야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지닌 내용을 너머선 문학적 성과에 있다. 수상 선정 이유에서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밝히고 있지만, 그것이 이해되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공감과 이해는 거리가 멀다. 엘리트 소설과 대중 소설의 벽을 허물었다는 이태동의 평가보다는 허무과 열기를 내뿜고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온당하다. 보는 시각에 따라 혹은 태도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만장일치로 한 작품을 선정하면 핵복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독자의 평가도 달라진다. 어쨌든 전경린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 미흡하는 쪽에 과감하게 한 표 던진다.

 내용과 관계없지만 우수상 수상작의 순서를 등단순서로 한 것은 엽기다. 이전처럼 가나다순이 합리적이다. 군대도 아니고 문단 짬밥 순으로 우수상 수상작 순서를 정하다니 어이가 없다. 문단 권력은 이렇게 작은 곳에서 싹이 트고 내면화된다. 그들만의 서열과 위계가 자리잡아가는 과정이 이렇게 스치듯 비춰진다.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나?

 한창훈의 ‘아버지와 아들’이 내뿜는 사투리의 힘. 입말이 보여주는 구수함과 부자 간의 대화가 생활의 일부로 녹아들어 감칠맛이 난다. 김연수의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발상이 기발하며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소도시의 도서관을 중심으로 주인공을 오히려 에피소드 형식으로 처리하는 방식을 취한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적절한 배치가 흥미롭다.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는 젊은 작가의 발랄함이 그대로 묻어나면서도 인간의 ‘관계’에 대한 고백이 날카롭고 진지하다. 심사위원들이 주목했다는 권여선의 ‘약콩이 끓는 동안’이나 편혜영의 ‘첫번째 기념일’은 밋밋하게 다가왔고, 천운영의 ‘소년 J의 말끔한 허벅지’는 감각에 의존하고 있어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문학상 수상 작품집으로 유일하게 매년 구입하는 책에 대한 느낌도 생각도 매년 달라진다. 시간이 흐르고 생각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소설과 문학상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한 작가의 문학적 성과와 미래에 대한 격려가 내포된 것이 문학상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쏟아지는, 혹은 명멸하는 숱한 단편들 중에서 매년 옥석을 가리는 작업의 힘겨움과 독자들과의 약속 사이에서 분명한 자세를 보았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작과 함께 지난 해의 문학적 성과를 기억하는 책으로서 의미를 가진 책이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그냥 읽고 쓴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입맛과 손맛이 씁쓸한 것은 나 혼자 느끼는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


070209-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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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2-09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1년째 이상 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계시군요. 저도 78년 것을 산 적이 있는데(물론 제가 그때 산 건 아니고 고등학교 때 예전 것을 산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때 1년에 한권이라도 소설을 읽자는 생각에서 매년 살 생각을 했었는데...작년 것 한번 훑어보고 사볼 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sceptic 2007-02-0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9년부터 매년 구입했고 그 이전 것이 몇 권 있어서 그렇게 됐습니다. 이제 번호가 빠지는 게 싫어서 그냥 사게 되네요...ㅋ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이제이북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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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살아가는 동안 왜 사느냐는 질문을 심장 박동수 만큼 하게 된다. 숨쉬는 모든 순간에 묻는다. 왜 사느냐고, 무엇 때문에 사느냐고. 인류가 살아오는 동안 축적된 모든 지식으로도 아직까지 이 한 문제를 풀지 못했다. 우매한 인간들! 수 천 년 전에 살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행복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아들 니코마코스에게 전해주고 싶은 아비의 심정을 헤아릴 필요는 없는 책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을 통해 인간 윤리의 목적과 궁극을 설명하지 않는다. 사유하는 방식과 윤리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내가 읽은 것은 바로 그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장 관심있는 ‘행복’의 문제로 이 책은 시작한다. 과연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얻어질 수 있으며,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느낌이어야 하는가.

행복은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되는 것일 게다. 탁월성을 획득하는 데 아주 불구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종류의 배움과 노력을 통해 행복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 36

 배움과 노력을 통해 배움을 성취할 수 있다는 말에 희망을 가져 본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 그것은 탁월성을 통해 가능하다고 한다. 이전에 덕(德)이라고 번역되었던 모호한 개념을 탁월성이라고 말한다. 흔히 윤리의 문제를 선과 악의 개념을 나누는 것으로 생각한다.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가. 절대적인 선과 악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면 그 굴레와 속박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저자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행복과 탁월성의 문제를 ‘좋음’을 기준으로 이야기한다. 

 악덕과 중용에 대해 말하는 기준은 모호하고 상대적이다. 동양 고전에서 말하는 중용과 거리가 먼 이 중용의 개념은 인간 윤리의 중간값을 말한다. 선과 악에 중간이 아니라 개별적인 인간 행동의 규범을 정의한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절제와 용기는 지나침과 모자람에 의해 파괴되고 중용(mesotes)에 의해 보존된다. - P. 55

라고 말한다. 절제와 용기가 완벽하게 통제되는 인간은 없다. 지나침과 모자람도 상대적이다. 그렇다면 결국 윤리라는 것은 사회적 합의와 개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인가. 실제로 현실에 존재하는 특별한 가치나 지향점을 윤리의 기본으로 볼 수 없다. 누구에게나 절대적인 가치가 있듯이 그것은 타인에게 상대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물론 모두가 합의할 만한, 혹은 의미심장한 지적도 눈에 띤다.

무절제한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촉각은 신체 전체에 관련한 것이 아니라 특정 부분들에 관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 115

 행복과 즐거움의 문제를 신체에 한정시킬 때 전체와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기준과 방법이 간명하며 동의할 만하다. 시대적 가치와 분리될 수 없는 윤리가 있을 수 없다.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도 아니고 철학적 깨달음도 아니다.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에 이르는 방법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과 접근 방법이다.

 공감적 이해와 실천적 지혜로부터 비롯되는 행복을 꿈꾸어 볼 뿐이다. 사람 생김새만큼 다양하게, 개인에게 주어진 모든 조건에서 ‘행복’은 시작된다. 그곳에서 사랑이 생긴다.

‘사랑을 구하는 사람’은 즐거움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유익 때문에 상대방을 사랑하는데, 이런 일[불평]들은 자신들이 사랑하게 된 이유가 된 것들을 갖지 못할 때 생겨난다. - P. 315

그 사람이 없으면 그리워하고 그의 현전을 열망할 때 에로스적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선의를 가진 사람이 되지 않고는 친구가 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선의를 가진 것만으로 친애적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 P. 327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적 요소와 상식에 호소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듣는 사람에게 호소력이 있게 전달되는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는 두고두고 새겨둘 만한다. 우리가 고전에서 얻을 수 있는 깨달음과 가치가 현재적 유용성에 있다면 먼지 묻은 책갈피를 들춰 고전의 향기를 음미하는 자세는 분명해진다. 그것은 실제 적용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틀을 변화시키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삶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용기는 산을 옮기는 것보다 어렵다고 믿는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깨어있는 존재로서의 의미를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두고 두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새겨둘 만한 부분과 전체적인 논리망에 갇힐 수 있는 위험성을 극복하는 것은 풀어야할 숙제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사람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이 행복에 있다는 데 일정부분 동의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천천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070207-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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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2-07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의 힘님 리뷰를 읽으니 이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철학에 관한 초심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가요?

sceptic 2007-02-0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리뷰가 친절하지 못했나보네요...일기처럼 그냥 쭉 생각나는대로 써버려서...용어의 개념과 새로운 번역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를테면 '덕'을 '탁월성'으로 번역한다든지 하는...새롭고 정밀한 느낌이 든다고 하는데 다른 판본을 꼼꼼하게 읽어본 적이 없어 비교는 불가능합니다. 전체적인 내용이나 흐름이 만만치 않습니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몇 페이지 읽어보시고 판단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초심잡니다.

짱꿀라 2007-02-08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광사에서 나온 책과는 느낌이 어떤가요.

sceptic 2007-02-08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판본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다만 부록으로 실린 해석들과 용어 설명으로 미뤄 짐작하고, 다른 책에서 인용됐던 개념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석이 신선하다는 정도입니다.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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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평생을 같은 일에 몰두해도 행복한 일이 있다면 좋겠다. 한 번도 고개 돌리지 않고 푹 파묻혀 뒤돌아보지 않고 한 우물만 파보아도 좋겠다. 하지만 프루스트의 ‘가지 않은 길’처럼 두 갈래 길에서 항상 선택의 고민과 갈등에 망설이게 된다. 시간이 흐른 후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19년 만에 시집을 펴내는 시인의 마음을 짐작해 본다. 시의 길을 걸으며 내쳐 달려오지 않았어도, 먼 길을 돌아 왔어도 시집 한 권 펴내는 일이 어려울 수 있지만 김사인의 <가만히 좋아하는>을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시 외적인 이야기가 호기심보다 시에 담긴 마음들이 눅눅하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비맞지 않고도 장마철에 습기를 머금은 장판처럼 쭈글쭈글한 마음의 켜들이 보인다. 어떤 형태로든 시간은 흘러가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바라볼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다. 바람처럼 흘러가는 마음 한 구석 어디로 보낼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리로 흘러가는지 굳이 묻지 않고 따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시인의 마음은 아닐는지.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는 시들은 아름답게 독자의 마음을 적신다. 슬픔과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시의 본령에 충실하다. 빠른 것 보다 느린 것에, 큰 것 보다 작은 것에 마음이 쓰이는 김사인의 시들은 읽는 동안 현실 속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죽음과 사랑, 일상과 기억으로 점철된 시의 편린들은 독자를 우울하게 한다. 이수익의 ‘우울한 샹송’과는 또 다른 의미의 애잔함이다.

깊이 묻다

사람들 가슴에
텅텅 빈 바다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길게 사무치는 노래 하나씩 있다
늙은 돌배나무 뒤틀어진 그림자 있다

사람들 가슴에
겁에 질린 얼굴 있다
충혈된 눈들 있다

사람들 가슴에
막다른 골목 날선 조선낫 하나씩 숨어 있다
파란 불꽃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에
후두둑 가을비 뿌리는 대숲 하나씩 있다

 사람들 가슴 속에 숨 쉬고 있는 텅 빈 바다 하나씩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정현종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단편이다. 시집의 대표작과는 거리가 멀지만 <가만히 좋아하는> 마음이 전해진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이 아니라 말해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구체적 표현들이 잔잔하게 끓어오른다. 애매하고 공허한 구절들보다 스치고 지나기 쉬운 것들에 대한 반 박자 느린 템포. 이 시집은 그렇게 사람들을 가만히 있게 만든다. 가만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게 한다.


07020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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