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살림지식총서 222
이진홍 지음 / 살림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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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시절 문예반 시화전에 걸었던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사춘기의 우울한 자화상의 반영이기도 하고 생에 대한 환멸을 다른 다른 방식으로 표현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자살과 살자를 뒤짚어 결국 ‘살자’로 결론 내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죽음을 염려하거나 두려하는 것과 자살은 다른 문제이다. 생명의 탄생과 소멸 과정을 생의 자연스런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들의 운명이다. 그 자연스러움에 대한 반역이 자살이다.

 자신의 생에 대한 주체적 권리로서 자살을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자살의 문제를 개인과 사회,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물론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킨다 하더라도 자유인의 권리인지 아니면 불가피한 선택인지의 문제는 남게 된다. 인간이 자신에게 행사할 수 있는 마지막 자유인가, 생의 극단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절망인가.

 2005년 통계에 따르면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자살로 사망한 사람이 1.5배나 된다.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시간마다 마주하는 교통사고와 사망자들의 모습 이면에 감추어진 자살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1만 2천여 명이 한 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대한민국에서만 매일 30여명이 자살로 죽는다는 이야기다. 최근의 연예인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해 뉴스에 오르내리지만 신분과 나이, 직업, 종교와 무관하게 지속되는 자살은 무엇인가.

 이진홍의 <자살>은 사회적 측면에서 그리고 문화와 환경, 윤리적 측면에서 다각도로 자살의 의미를 살펴보는 책이다. 살림지식총서의 특성상 제한된 분량이지만 에밀 뒤르깽의 <자살론>이나 죽음과 관련된 책들이 부담스럽다면 가볍게 접근해 볼만 책이다. 자살을 역사적 측면에서 고차원적으로 바라보는 책도 아니고 심리적 배경이나 사회 문화적 관점으로 깊이있게 다루고 있지는 못하지만 가볍게 그러나 진지하게 읽을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살은 설사 그 사람 자신에 있어서는 부정한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국가에 대해서는 하나의 부정이다”라고 단언했다.(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 15장) - P. 25

아주 오래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말은 자살을 개인이 아닌 국가의 차원에서 바라본다. 개인의 인권보다 국가의 권력이 우선시되던 시대이니 당연한 말이다. 관점은 달라졌지만 종교와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때로는 유행처럼 번져나가기도 한다. 주변에서 마주치는 사고사나 병사, 자연사와 달리 자살은 그 휴유증과 파장이 만만치 않다.

대개의 경우에는 오직 스스로를 파괴해 버리고자 했던 강력한 의지를 제외한 다른 분명한 해독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살의 원인은 영원한 비밀로 남을 뿐이다. - P. 53

유서로 밝혀진 단순한 이유만으로 알 수 없는 자살의 원인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생에 대한 욕망을 극복할 만한 강렬한 유혹은 무엇일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은 자살의 유혹이나 충동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비록 미수에 그치건 성공하건 개인의 운명은 이후에 극명하게 갈라지게 된다. 그것은 단순한 생과 사의 문제가 아니라 죽음과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하고 더 쉽게 잊는다. 지나간 시간들과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망각은 생을 좀 더 행복하고 단순하게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이 되는지도 모르지만 묻혀버린 진실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 이진홍은 이런 말로 <자살>이라는 책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극지에 서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이다.”(태공망, 文師)


07022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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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소설 외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59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책세상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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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가장 불효했던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난센스 퀴즈의 답은 에밀 졸라.

 소설보다 먼저 드레퓌스 사건 당시 <나는 고발한다>는 선언문을 통해 행동하는 양심과 지식인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프랑스 문학과 지성사에 빛나는 별들 중에 가장 문제적인 소설가 중 한 사람이었던 에밀 졸라는 <목로 주점>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책세상’에서 나온 <실험소설 외>는 ‘실험소설’과 ‘소설에 대하여’, ‘비평에 대하여’, ‘공화국과 문학’을 포함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 대한 견해과 문학 정신의 뿌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글들이 묶여 있다.

 계몽 철학의 시대를 거쳐 도달한 19세기는 다양하고 중요한 문예사조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자연주의’는 낯설고 새롭다. 기존의 문학에 대한 통념이 사라지고 자연과학적 방법을 문학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과격하기까지 하다. 자연과학적인 실험과 관찰의 방법을 그대로 문학에 적용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는 ‘실험소설’은 과학과 문학의 만남을 필연적이라고 강변한다. 클로드 베르나르의 ‘실험의학 연구 입문’을 읽고 깊이 감명받은 에밀 졸라는 의사를 소설가로 바꾸어 놓으면 그대로 자신의 주장이 된다고 말한다. 작가의 개성과 생각을 이렇게 강렬하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은 용기에 해당한다.

 우회적인 방법은 안전하지만 개성이 없다. 에밀 졸라의 선명한 주장이 담고 있는 위험성만큼이나 매력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소설에서 직접 적용했지만 그의 시대는 길지 않았다. 그를 따르는 소설가가 많지 않았고 문학적인 성취가 뛰어난 작품이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는 순환하고 역사는 반복된다.

 작가는 의사처럼 사회의 메커니즘을 파악해서 처방전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은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놀라운 주장이다. 작가의 역할과 문학의 효용에 대한 지루하고 역사적인 논의와 관련해서 이렇게 명쾌하고 자신있는 주장을 했던 사람이 있을까 싶다. 뚜렷한 목적의식과 작가의 소명의식은 작품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에밀 졸라는 구체적인 작품들을 통해 그것을 실천한다.

 졸라의 ‘실험소설’에서 주장하는 핵심적인 주장은 다음의 문장에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타인의 다른 행동들을 통해 검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정한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고찰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실험적 방법에 의존한다.(클로드 베르나르, 실험의학 연구 입문)” 내가 앞서 말한 모든 것은 과학자의 문장인 이 마지막 세 문장에 요약되어 있다. - P. 25

고전주의적, 낭만주의적 문학이 스콜라 철학과 신학 시대의 문학이었던 것처럼, 실험소설은 한마디로 우리 과학 시대의 문학이다. 이제 응용과 윤리라는 중요한 문제로 넘어가자. - P. 37

 인물들의 태도나 행동은 자연과학적인 실험과 관찰, 즉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현상으로 나타난 결과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고 밝혀 나가는 것이 소설의 역할이라고 에밀 졸라는 주장한다. 소설을 읽는 목적과 대하는 태도가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현대 소설은 에밀 졸라에게 일정 부분 빚지고 있는 부분이 많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설가들에게 내면화 되어 있는 부분들을 읽어낼 수 있다면 에밀 졸라의 영향력을 확인하게 된다.

 현실의 문제를 재현하고 우리의 처한 상황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돕는 역할을 소설은 할 수 있다. 그것을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작가의 역할이며 사명이다. 그의 주장이 과격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낭만주의와 계몽주의 소설이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영역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연주의로 분류되는 그의 주장이 가진 문제점은 사실주의와의 변별점이다. 현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해야 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면서 자연주의는 보다 과학적이고 인과적인 관계에 무게를 둔다. 실험과 관찰이라는 과학적 방법에 철저히 기대고 있지만 이전의 소설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사실적이고 치밀한 완결성을 보여준다. 명확하게 분류할 수는 없지만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경계를 가르는 것이 초점은 아니다.

 <실험 소설 외>는 에밀 졸라의 소설과 비평 그리고 문학에 대한 생각들을 명확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또한 역자 유기환의 해설은 에밀 졸라의 생애와 그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에 도움을 준다. 가보지 않은 길을 누군가 먼저 걸었다면 그 결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무관하게 용기와 박수를 보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자신의 신념에 기댄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더더욱.


07022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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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랜덤 시선 16
김경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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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시인으로부터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라는 찬사를 받은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단 한 줄에 기대어 시집을 샀다. 우연히 만난 젊은 시인에 대한 평가 때문에 책을 사는 일이 드문데 무모할 정도의 평가에 호기심이 동했다. 게다가 ‘랜덤하우스중앙’에서 발간한 시집이었으니 뒤적거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종의 편견이지겠지만 창비나 문지, 실천문학사나 민음사 등 몇 개의 출판사는 시집을 선택하는 데 있어 내게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편식과 편견은 귀차니즘과도 연결되어 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돌아다니며 찾아 나서는 게 귀찮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좋은 책을 놓칠 기회도 많아진다.

 김경주의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는 너무 거창한 평가와 기대 때문에 편안한 읽기가 불가능했다. 시집 전체를 훑어내거나 단편들 속에서 명문을 찾아내거나 하는 재미를 잃어버렸고 초조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특이한 경험이었다.

외롭다는 것은 바닥에 누워 두 눈의 음(音)을 듣는 일이다 제 몸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다  - ‘우주로 날아가는 방1’중에서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게스트 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보는 밤, 내 몸의 이역(異域)들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  - ‘내 워크맨 속 갠지스’중에서

 다소 당황스럽다. 외로움에 대해 직설적으로 말하는 시를 오랜만에 만나는 기분이다.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서정시라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 시인의 능력이라지만 ‘외로움’이라는 단어 자체가 불러일으키는 파장 자체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러므로 외로움이란 한 생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사랑이다’라는 선언 앞에서 무력해진다.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에 대해 토해내는 시인들의 말이 이제는 진부할 만큼 감동과 울림이 없는 이유는 삭막해진 가슴 때문이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일 자체가 사치스러운 상황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시각적 이미지나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되는 시대에 외로움이나 고독이 설 자리는 많지 않아 보인다. 근원적인, 가장 밑바닥에 자리잡은 감정들에 대해 말해야 하는 ‘서정시’의 시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인지는 시인들만의 몫은 아니다. 전업작가로, 특히 시인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시를 길어 올리고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끌어내는가에 대한 관심과 개인적인 호기심을 넘어서 문학에 대한, 혹은 시에 대한 전망이 안개 낀 유리창과 같아 보인다.

 김경주의 첫 시집은 주목받을 만한 첫 시집은 그만한 찬사가 어울리든 아니든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것들에 대한 촘촘한 그물망과 마주하게 된다.

어쩌면 벽에 박혀 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에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중에서

 일상을 벗어나서 우주나 존재론적 측면에서 인간에 대해 접근하는 시들에게 주어진 사명과 김경주의 이 시집에 드러난 접근 방식은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한다. 한국어의 의미와 영역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끊임없이 실험하게 될 시인의 목소리는 이후에도 계속되리라 믿는다. 극찬과는 무관하게 묵묵히 그리고 자신의 길이 무엇이라는 생각도 없이 걸어가는 과정 속에서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들어볼 참이다.

‘이 무시무시한 신인의 등장은 한국 문학의 축복이자 저주다’라고 평가를 받은 시인이 도대체 다음에 어떤 시를 써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권혁웅 시인의 평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도 독자들의 몫이겠지만 프로스포츠 신인왕 2년차의 징크스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는 시인의 몫이다. 첫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고 박수치는 소리에 어리둥절하지 않기를. 한 동료시인의 주관적 박수소리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07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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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나다 -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
조안 드잔 지음, 최은정 옮김 / 지안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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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 14세를 그린 그림을 들여다보다가 구역질이 났다. 환갑이 넘은 나이의 노인네가 각선미를 드러내기 위해 망토를 들추고 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화려한 의상과 뮬을 신고 있는 그의 모습은 기괴하다. 미의 기준이 아무리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 할 지라도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17세기에 지구상에서 가장 멋진 사내였던 그를 바라보는 일은 괴로움에 가깝다.

 조안 드잔의 <스타일 나다>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유행의 근거지로 루이 14세를 지목한다. 가볍게 읽어낼 수 있는 미시사에 해당되는 이 책은 헤어드레서와 패션, 구두 부츠에서부터 샴페인, 거울, 우산, 향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를 대표하는 물건과 패션에 관련된 일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 기원을 찾는 일은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의 환영을 제거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거품과 허상이 빚어낸 꿈들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참고가 될만한 책이다.

 전우익 선생이 어느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사기 위해 산다고 말했다. 그걸 사면 버리고 또 사고 그리고 또 버리고 그러다 사람들이 죽는다고 했다. 물건의 노예가 된다고. 같은 물건이라도 같은 스타일이라도 모방 심리와 집단적 무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사람들에게 획일성과 유행이라는 선물을 안긴다. 일종의 정신병적 현상이다. 무리 사회에서 혼자만 고립된다는 두려움은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것을 이겨낼 만한 이념도 철학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더욱 그러하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얼마나 비슷한 것들을 추구하는지.

 전근대 사회에서 왕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의 사치와 허영을 들여다보는 일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일이다. 그들이 머리 모양이나 옷, 구두에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었던 토대를 마련했던 민중들의 삶은 검은 밤의 커튼 뒤에 가려져 있다. 생존을 위한 노동과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은 이면으로 사라지고 밝고 화려한 왕과 귀족들의 생활이 전면에 등장한다. 사람들은 그들을 동경하고 자연스럽게 모방하며 그들이 선도했던 패션과 스타일은 유행이 된다.

 그렇게 시작된 미용 산업과 패션 등 전체적인 스타일을 위한 소품들은 하나의 산업이 되었고 그 중심에 선 사람들은 또다시 자본의 노예가 된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소소한 옷에 대한 관심과 생필품에 가까운 물건들이 걸어왔던 길을 돌아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이 되고 전부가 되어버린 현실은 어지러운 환각처럼 느껴진다.

 첨단 패션과 유행을 탄생시킨 루이 14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프랑스의 문화가 있었고, 그것을 흉내 낸 유럽의 문화가 탄생했다면 결코 기꺼운 마음으로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다. 하나의 현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이 필요하겠지만 마음 한 구석 삐딱한 시선을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쨌든 이 책은 패션과 유행에 관한 ‘스타일’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가진 사람에게는 필요한 책이다. 루이 14세와 당시의 프랑스를 중심에 놓고 그 이면과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꼼꼼한 정보와 흥미로운 이면사가 펼쳐진다. 스타일로 자신을 말하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스타일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과 현실에서 만나는 일들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책들이 많다. 특히 여성들의 입장에서 매일 매만지는 머리나 뿌리는 향수 그리고 보석이나 거울 하다못해 접는 우산에 이르기까지 그 기원을 들여다보는 일은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대답과 같은 책이다.  ‘스타일, 그것이 알고 싶다’

 어떤 패션과 유행이든 실용적인 목적과 미의식에 바탕을 두겠지만, 그것을 누리고 향유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상상할 수 없는 가격과 소위 명품에 눈이 먼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서는 또 다른 책과 현실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정신 병리학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이기도 해서 재미있는 주제가 될 수 있겠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추적 추적 내리는 빗소리로 충족되지 않는 사람들의 욕망의 실체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책 속에서 직접 찾아야 한다. 이 책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결국 독자의 몫일 뿐이다.


070216-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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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2-16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설 잘보내시기를.......

sceptic 2007-02-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 보내세요...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황대권 지음 / 열림원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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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장미를 연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화려한 외모와 강렬한 붉은 빛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서양의 꽃이지만 특별한 행사와 기념일을 위해 사람들은 장미를 준비한다. 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하지만 장미는 꽃이 진 후에 가장 흉한 모습을 보여준다. 거꾸로 뒤집어 정성스레 말려준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지저분한 낙화의 모습은 절정의 순간과 대비되어 참혹하기까지 하다.

 우리 나라 길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민들레와 장미를 비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손쉬운 대비 효과를 가져오지만 적절한 방법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장미는 장미대로, 민들레는 민들레대로 나름의 아름다움과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과 사회적 상징이 부여될 뿐이다. 민들레가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장미도 민들레를 부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야생초편지>의 작가 황대권의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는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시대에 대한 반론이다. 1985년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13년이나 복역한 작가의 이력은 신영복 선생의 그것처럼 책을 읽는 내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후광효과를 가지게 된다. 환경과 생태적 측면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인간 세상을 재단하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저자의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진 유토피아같은 얘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다.

 누군가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의 ‘현실성’ 측면에서 살펴보는 사람이 있고, 논리와 이성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서와 공감대를 맨 앞에 두는 사람도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고 어떤 측면에서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독자 개인의 문제로 돌려야겠다. ‘산처럼 생각하기, 똑바로 바라보기, 멀리 내다보기’라는 세 부분으로 엮인 책은 저자의 마음과 생각들을 담아낸 맑은 물과 같다. 농촌과 환경을 앞세워 맹목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과격하지도 않고 억지스럽지도 않다.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잃은 것이 없이 많은 것들을 성취하고 만들어가며 산다고 생각했던 도시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와는 다르면서도 유사한 측면이 많다. 스스로를 ‘생태 공동체 운동가’로 불리기를 원하는 작가의 생각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물론 이 책의 목적이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이론을 펼치는 책이 아니기는 하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와 다른 위치에서 바라보는 관점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신선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정확하고 분명한 목소리는 부족하고 책의 구성은 엉성하다.

 마음밭에 심어놓은 작은 풀꽃들이 피어난다고 해서 그것들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꺾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이 올 때까지, 아니면 필요한 꽃들만 꺾어야 한다. 그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사물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궁금한 사람들은 많지 않다. 정갈하고 깨끗한 마음의 결들을 담아내고 있지만 시골 냇가에서 맑은 물 한 잔을 마신 후의 덤덤함 이상은 얻지 못했다.


07021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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