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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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것이 힘이다’와 ‘모르는 게 약이다’의 대결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는 만큼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왕성한 호기심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을 알아낸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별로 달라지지 않는 것들도 많고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뻔한 것들도 많다. 인류 공헌의 측면에서 문명의 발달사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지식의 발견이나 깨달음의 기쁨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이 되어 돌아온 과학의 발달과 발견들은 수없이 많다.

 로빈 베이커의 <정자 전쟁>은 생물학자가 쓴 인간의 문화사에 관한 보고서로 볼 수 있다. 특히 섹스와 관련된 인간의 거의 모든 상황과 유형들을 상황으로 설정하여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책이다. ‘종족 보존’이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들여다보는 ‘인간’이라는 종의 성생활은 기막히게 동물적이다. 이런 종류의 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먼저 과학적 사실들이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 흥미와 공감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허구와 상상이 아닌 실험과 관찰에 의한 사실들은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며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두 번째로 저자의 글 솜씨이다. 아무리 연구를 많이 하고 좋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로빈 베이커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연구 논문으로 도서관에 처박혀 몇몇 학자들에게나 인용되는 죽은(?) 지식에 안타까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들을 전하고 싶은 욕구를 과감하게 실행에 옮기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충족되어야 하는 조건들을 이 책은 고루 갖추고 있다.

 학문적인 논문과 대중적인 저작들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자 하는 노력은 때로 위험해 보인다. 딱딱하고 지루한 주제와 논리적인 귀결들은 수면제로 사용되거나 아예 팔리지 않는다. 한편 허구와 가상이 주가 되어 흥미 위주의 저널리즘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많은 학자들이 이 간격을 메우지 못하거나 시도하지 않는다. 학문의 거탑 안에 숨어 먼지를 마시며 죽어가거나 밖으로 뛰쳐나와 연예인 수준의 글쓰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 두 가지 요소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다. 오래 공들여 쓴 책은 독자가 먼저 그 내공에 감탄한다. 모두 37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을 제시한다. 각 장들은 이렇게 독자들의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저자가 이 상황을 분석하고 해석한다. 철저하게 ‘종족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유전자 번식’을 위한 섹스에 관해서만 말하고 있다. 예술과 외설의 논란을 교묘하게 비껴가고 있거나 한 복판을 걸어가고 있다. 흥미로운 방법이다.

 십년 전에 출판된 이 책은 사회 문화적 측면의 관심과 시선의 변화에 의해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시대를 조금 앞섰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예민한 부분을, 선뜻 말하기 어려운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저널리스트가 아닌 학자의 입장에서 스스로 연구하고 관찰해 온 사실들을 진지하고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 용기가 인정받을 만하다.

 인간이 평생 살아가면서 2,000~3,000회의 섹스를 하면서 매번 수억 개의 정자를 쏟아내면서 왜 고작 7명 내외의 자녀밖에 두지 못하는가? 남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여자가 원하지 않으면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방패막이, 정자잡이, 난자잡이 정자가 있어 정말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는가? 등 정말 궁금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과학적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것들이 빚어내는 미시적인 과학의 세계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거리가 있기 때문에 동물행동학에 바탕을 두고 다른 포유류나 조류와 비교하면서 원인과 이유들을 살펴보고 있다.

 유전자가 원하는 것은 영속적이고 적극적인 종족의 보존과 번식이다. 이 하나의 분명한 원칙을 기준으로 정자가 난자와 결합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그것이 알게 모르게 남자와 여자의 행동으로 실현되는 과정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러 가지 의문은 남아 있다. 피임과 강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인간의 모든 섹스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과연 단 하나의 기준과 가능성만을 가지고 인간 행동의 패턴과 행동들을 읽어낼 수는 없다. 그 한계와 문제점을 밝히지 못하고 있으며 부작용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유감스럽다. 늘상 그렇지만 단 한 권의 책을 통해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이렇게 집중적이고 뚜렷한 하나의 주제를 폭넓게 이야기하는 신선한 관점의 책을 만나기도 어렵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섹스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전쟁’들에 관해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심리적 차이만큼 섹스의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차이를 보여준다. 오로지 살아남기 위한 종족 보존의 생존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정자들은 끊임없이 소리없는 전쟁을 치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대한 오래된 기억은 태어나면서부터 현실생활에서 반복된다. 그 아득한 경쟁의 본능을 일깨워 오늘도 삶의 전쟁터로 모두들 뛰어 나간다. 우리들의 자화상은 이미 정자가 난자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된 ‘전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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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0 1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비뫼 2007-03-20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여러 편 읽었습니다. 읽어볼까 아직 망설이고 있었죠. 님의 서평 잘 읽었습니다. 뚜껑을 열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

sceptic 2007-03-2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ntaclausly님 늘 과찬이시구요. 리뷰와 페이퍼 늘 잘 보고 있습니다. 댓글 안달고 계속 봐도 되죠?

은비뫼님 이 책은 네이버 북꼼 서평 도서라서 많이 보셨을겁니다. 생각보다 한번쯤 볼만하다고 권할 수 있습니다...즐거운 책읽기 하시기 바랍니다...^^

 
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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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 전 영화를 예매하듯이 나올 예정인 책을 예약 주문하는 것은 오로지 필자에 대한 믿음만으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처음처럼>은 많이 망설였다. 필자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출판 의도와 내용에 대한 의심은 지울 수가 없었다. <엽서> 영인본이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그림과 함께 엮었다면 재탕 출판의 전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영복’이라는 또 하나의 상업 브랜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었다. 원저자의 의도와 달리 가볍고 빠른 템포로 독자에게 접근하는 책들을 무수히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민을 하다가 결국 예약 주문을 하고 한 달 이상 책을 묵혔다가 책장을 열었다. 1시간 남짓 선생님의 글과 그림 그리고 글씨에 취한다. 전날 마신 ‘처음처럼’의 부드러운 목넘김을 떠올렸지만 <처음처럼>의 글들은 목에 턱턱 걸려버린다.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재탕에 대한 우려와 내용을 부분적으로 드러내면서 감수해야 하는 위험성을 깊이 우려했던 작가의 고민이 전해진다. 그래서 안심하고 본문을 열었다. 새로 쓰고 그린 60여편이 있다니 그만하면 충분하겠다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시각적 이미지가 전해주는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에게 선생님의 글씨나 그림은 편안함 이상을 전해준다. 글씨의 내용과 글씨의 모양새가 어우러져 ‘더불어함께’가는 모습이다. 형식과 내용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결합이라고 볼 만하다. 오랜 수형기간을 ‘나의 대학 시절’이라고 밝히시는 내용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살과 살을 부대끼며 온몸으로 부딪혀 인간을 배우고 펜대나 굴리면서 현장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던 삶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이 곳곳에 배어 있다.

 내용과 글씨들은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하다. 저자의 책들을 읽고 강연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다시 사서 볼 필요가 없다. 이 책의 목적은 내용에 있지 않고 조화와 연합에 있다. 글씨와 그림들이 내용을 바탕으로 연합군이 되어 드러내는 힘은 예상치 못한 효과가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30, 40대를 넘어 10대와 20대에게도 하방연대의 힘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자신을 세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는 우직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보는 시간을 마련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낸 노인의 재미없는 책이 아니라 친근하고 편안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책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지극히 주관적으로 희망해 본다. 랜덤하우스의 기획과 신영복이라는 이름이 결합되어 탄생한 책이지만 외적 조건들보다 서화에세이가 갖는 파괴력쪽에 힘을 실어 주고 싶은 바람이다. 책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부담없이 권할 수 있는 책도 한 권쯤 필요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 P. 18

 처음이 갖는 무수히 많은 의미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 술을 처음 마실때처럼 아침에도 개운하고 뒤끝이 없는 소주의 의미도 마찬가지겠지만. 언제나 새날인것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다른 의미에서 하루살이가 되고 싶다. 오늘과 다른 새로운 희망으로 시작할 수 있는 매일 매일은 얼마나 근사한가. 근사한 꿈은 꿀수록 좋은 것이 아닌지.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입니다.
현장이며 숲입니다. - P. 50

 말없이 깊이 공감하며 실천으로 대답할 일이다. 머릿속의 앎과 지식들이 손과 발로 실천되지 못하거나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의미 없는 일이다. 살아가면서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갑론을박하고 있다. ‘더불어함께’라는 방법론은 더더욱 모호하고 어렵기만하다. 실천적인 사람들의 일관된 모습을 부럽기보다 두렵다. 그곳에서 찾을 수 있는 보람과 행복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으니 그곳에 있을 것이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지도 못했는데 ‘발’까지는 언제 가나……

올바른 인식은 과학적 분석이나 많은 정보가 아니라
대상과 필자가 맺는 ‘관계’로부터 옵니다.
애정의 젖줄로 연결되거나 운명의 핏줄로 연결됨이 없이
대상을 관찰하는 관계는 ‘관계없는’ 것과 같습니다. - P. 191

 누구나 살아가면서 어려워하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다는 ‘관계’를 잘 맺지 못하는 성향의 나 같은 사람은 사회생활이 힘들다. ‘관계없는’ 것으로 전제하면 편하지만 ‘이성’과 ‘감성’ 부분의 부조화는 개인의 성향을 넘어 ‘관계’의 기본을 부정한다. 관계 맺기의 기본이 타인에 대한 관심과 이해인지 믿음과 배려인지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진다. 어려운 일이지만 올바른 ‘인식’은 과학적 분석이나 많은 정보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관계’로부터 온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가슴’을 만나면 곧바로 ‘발’에게 가야겠다.


070317-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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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7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7-03-20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약주문하고 받은후 얼핏 넘긴 책장에서 기존의 책과는 다른 약간은 재탕 형식의 분위기가 있지 않나 싶어서 아직 펼치지 않고 있었는데 그 불식을 없애주는군요.

sceptic 2007-03-20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 살다보면 헷갈릴수 있지요...^^

잉크냄새님, 출판사가 마케팅에 능한 회사라서 좀 삐딱한 시선으로 보지만 책은 걱정보다 괜찮았다는 생각입니다.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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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속 위반 스티커와 부고의 공통점은 상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현실 속으로 날아든다. 과속이나 주차 위반, 버스 전용차로 위반의 경우 과거의 기억 속에서 현실과의 접점을 찾아내지만 부고는 훨씬 강한 충격으로 삶을 순간적인 혼돈에 빠트린다. 시공을 초월해서 과거를 헤매다가 현실로 돌아오거나 메트릭스 밖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온다거나. 친구의 부음은 그렇게 비현실적으로 전해졌다. 오늘 오후에.

 죽음은 종교만큼이나 숭고하거나 거룩한 삶의 종착점이다. 연속적인 세계관에서 생각하면 죽음은 생의 연장이며 또 다른 삶의 형태일 수 있다.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일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생의 마감이며 존재의 소멸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야말로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없어질 때의 고통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이 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다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말을 한다. 나 살아 있다고, 그 사람이 죽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불교에 대한 오해와 종교 일반에 대한 잘못된 인식들은 불신과 갈등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래서 자신의 종교와 무관하게 종교에 대해 올바로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장 오래된 전통적인 불교도 우리에게 오해의 대상이기는 마찬가지다. 호국 불교, 기복 불교로서 오로지 현실에서의 복덕과 행운을 기대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경우 그 종교는 반드시 왜곡된 형태로 중생을 미혹하게 한다. 불교를 올바로 알고 이해하는 일은 종교인으로서 기본적인 자세일 뿐만 아니라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일반인들도 마찬가지다. 종교의 허와 실을 바르게 인식해야 하는 당위가 생긴다. 왜냐하면 종교는 현실의 도피처도 아니고 종교와 현실이 종속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역사는 물론 서양의 역사에서 종교가 인간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진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종교 자체의 영향이라기보다 종교인의 자질 문제, 종교를 이용한 정치의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어찌됐든 현실 세계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관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소승불교와 대승 불교에 관해서는 숭산 스님의 <선의 나침반>이 좋은 안내서가 된다. 비종교인의 관점에서 불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아주 쉽고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숭산의 글이 객관적일 수는 없다. 불교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인식의 틀을 엿볼 수 있는 입문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에 비해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강해>는 불교의 핵심 경전이라 할 수 있는 고려대장경 판본을 바탕으로 한 불교의 진수를 선보인다. 여러 판본과 원전의 철저한 해석과 분석을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설픈 전문가는 맞대거리 하기가 힘든 것이 도올 저작들의 특징이다. 이 책 또한 해박한 도올의 설명이 특유의 어법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지나쳐 요설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의 해석은 주관적이고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기독교 교리와의 공통점 뿐만 아니라 종교 자체에 대한 기본 인식이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비판적이고 냉정한 분석과 논리적인 주장은 새겨 들을만하다.

“형체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지 말라
이는 사도를 행함이니
결단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 - P. 401

 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선에서 불교를 이해하고 있어도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생에 대한 집착과 외물에 대한 유혹은 쉽게 벗어버릴 수도 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곧 해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수행 방법과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곳에 열반은 자리한다. 어떤 형체나 음성으로도 여래를 감각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도를 행하는 것이다. 내가 보았던 수많은 불상들과 목탁 소리에도 여래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순간을 사는 인간과 영원을 꿈꾸는 종교는 여전히 불협화음으로 불화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이 낳은 가장 비극적인 형태의 종교들이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 있다. 제대로 알고 바르게 믿을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면 나도 종교를 가질 수 있을까? 아무래도 어렵겠지만.


07031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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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리본의 시절
권여선 지음 / 창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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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하고 나른한 일상이 끝없이 펼쳐질 것 같지만 세상은 그리 녹록치 않다. 평화로운 수면 아래 오리의 발짓만큼 숨가쁘고 바쁘게 돌아가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정확하게 그만큼 일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만큼만 움직이며 마치 수면위에 그림처럼 떠다니는 청둥오리의 우아함은 부럽지 않다. 처량하고 슬퍼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지도 않는다. 나도 너도 다들 그렇게 그만큼씩만 바쁘게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바닥에 땀나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권여선의 새로운 소설집 <분홍리본의 시절>은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에 켜켜이 쌓여온 먼지들을 손톱으로 긁어내고 있다. 일상의 균열은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살면서 느꼈던 위기의 순간들은 사실 나의 위기일 뿐이었다.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타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믿었던 모든 일들이 나에게 비롯되었다는 낭패감.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내면은 불투명하고 쇳소리가 난다.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있지만 주인공들이 모두 삐걱이는 일상과의 불화를 나타낸다. ‘가을이 오면’의 여주인공의 삶이 특별히 불행하거나 환경이 특수하다고 볼 수 없다. 넓은 의미에서 평범한 불행과 일상들이라고 규정해버리면 주인공이 화를 낼까? 아프다고 지르는 비명 소리를 외면하는 것도 나쁜 독자의 요건이라면 나는 나쁜 독자다. 소리 지르는 사람에게 애정을 보이지 못하고 측은지심을 길어 올리지 못하는 내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분명 어딘가, 무언가 문제가 있는 내면의 풍경이다. 그것이 나의 내면이라도 어쩔 수가 없다. 노력한다고 달라지진 않기 때문이다. 다만 소리내지 않고 슬쩍슬쩍 엿볼 수 있도록 곁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장면을 통해 바라보는 타인의 불행과 슬픔이 놀랍도록 생생하게 전달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보여지는 고통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대표적으로 ‘가을이 오면’의 여주인공과 ‘약콩이 끓는 시절’의 여주인공이 겪는 내면의 풍경은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못한다.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결정적 단서도 없고, 그것을 무시한 채 소설 속에 침잠시킬만한 문체라고 볼 수도 없었다. 내면이 삭막해지면 소설이 읽혀지지 않는다. 내가 소설을 바라보는 눈이 변화하는 것인지, 소설이 독자를 끌어안는 방법이 달라져 가는지 모르겠다.

 ‘분홍 시절의 리본’은 윤대녕의 소설에서 보았던 장면이 연상되어 소설읽기에 방해가 되었다. 윤대녕의 단편 ‘못구멍’에서 보았던 ‘구멍’들의 반대편에서 그 구멍들을 들여다보는 것같은 착각은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이었다.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이 소설에서 분홍 리본의 추억은 아스라하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단 하나의 이미지나 기억만으로도 타인을 규정해버리는 버릇을 고치는 못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분홍 리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현실 속에서 수없이 부딪히는 환상 혹은 나비.

 나머지 단편들, ‘솔숲 사이로’, ‘반죽의 형상’, ‘문상’, ‘위험한 산책’에서도 작가는 일관되게 일상과 불협화음을 보이는 주인공들의 내면 풍경을 묘사한다. 그들이 겪는 심각한 현실과의 부조화는 겉으로 보기에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갈등과 고통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틈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모든 사람들과 생활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고 믿는 많은 사람들은 이들을 과연 어떤 눈으로 바라볼 것인지 궁금하다.

 단 한 순간의 실수와 헛발질로 세상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다만 허공에 붕 떴다가 착지하는 순간 깨닫게 된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와 너, 여기와 저기 모두가 무화된다. 소설에서, 혹은 현실에서 우리가 맹목적으로 찾으려는 그 무엇은 어디에도 없고 아무곳에나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양다리를 걸쳐 보아도, 그 경계를 넘어도 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이?


07031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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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3-1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번 느끼는 거지만 참 잘쓰시네요...리뷰 잘봤습니다.

sceptic 2007-03-1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잖아요...과찬이신거...^^...드팀전님의 리뷰는 예술이죠...전 그렇게 정성들여 꼼꼼히 쓸 수 없어요...^^

프레이야 2007-03-15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상의 균열은 외부로부터 오지 않는다.. 인상적인 글귀입니다.
책표지 또한 멋지네요^^

sceptic 2007-03-16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항상 내문제고 나부터 시작해서 실마리가 보이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얼음장수 2007-03-23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러봅니다.
저는 이상문학상 수상집에 실린 '약콩이 끓는 동안'을 읽고 꽤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님의 리뷰를 읽으니 이 작품집 끌리네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낯선 사람들
김영현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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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강물처럼 흘러왔다’는 작가의 말이 잔잔한 물결에 작은 파문처럼 일렁인다. 김영현의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탐구이다. 아니 어떤 소설이 동물에 대한 탐구란 말인가라고 되묻는다면 할말이 없지만 이 책은 김영현이 바라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지닌 비의감을 드러낸다. 종교와 결부되어 왜 태어났니를 물어보면 참 난감하다. 인간의 탄생에는 선택이 없다.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할 수 있으니 죽음은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세상에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에 해답을 달라고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면 행복할까 불행할까. 그 대상이 신이어도 아니어도 좋겠지만 문제는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는 데 있다. 신산스런 삶에 때때로 환한 빛이 비춰지거나 제 길을 찾은 듯해도 길은 이내 끊겨버리고 벼랑이 기다리고 있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이후 처음인가 싶어 책날개를 살펴보지만 그간 김영현의 책을 읽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의 소설은 참으로 낯설고 생경하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해 분류할 수 없다. 다만 특별한 경우와 예외적인 상황들을 상상할 수는 있다. 그런 것들이 소설 속에서 독자들과 만나게 되면 현실감을 상실하거나 비현실적인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식상하고 지루한 일상의 재현에 불과하다. 물론 표현하는 태도나 언어의 사용 방식에 따라 일상에 탄력이 붙고 재미와 웃음이 더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은 스토리 자체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무딘 감각들을 일깨우며 발뒤꿈치를 간지럽게 한다.

 한 집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어떻게 모두 말할 수 있나. 그런 것들이 소설이 될 수 있나. 더구나 김영현이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나.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추리 소설의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은유는 죽어 있고 익숙하고 짐작할 만한 표현들은 독자를 지루하게 한다. 문장에 탄력이 떨어져 스토리를 중심으로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정상에 올라 소리 한 번 지를 목적으로 등산을 하는 것과 같다. 과정을 즐기지 못하고 겸허를 배우지 못하는 등산이 즐거울 리 없다. 독자는 소리를 지르기 위해 산 정상에 서지 않는다.

 인간 구원의 문제를 존재론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종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소설은 고전에서나 사용했던 방법이다. 방법이 지루해서가 아니라 읽는 것이 즐겁지 않다. 독자 개인의 성향이겠으나 즐겁지 않은 책읽기에 누가 나서겠는가? 낯선 사람들은 정말 낯선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구속되는 동연과 신부가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동생 성연을 중심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한 소읍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그 죄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확인시켜 준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누가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가.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죄의 기준이 있든지 간에. 하지만 이처럼 파렴치한 인간을 정점으로 그 주변 인물들을 살펴보는 방식은 지루하고 감동이 없다.

 탐욕과 물신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분명하며 인간의 삶은 과연 가치 있는가라는 질문은 성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다. 종교적 관점이나 철학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문제를 소설로 부딪히게 될 때 사람들은 당혹스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박자 늦게, 혹은 전혀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그 문제와 만나게 되길 바란다. 나의 바람일지 모르나 추리 소설 형식으로 충분히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무거운 주제에 비해 분량이 부족하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끈끈하지 못해 보인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가 있고, 시대와 상관없이 만나게 되는 문제가 있다. 후자를 다루고 있는 <낯선 사람들>은 읽을만 하지만 권할만하지 못하다. 이상하게 식상한 표현들과 죽어버린 은유가 눈에 거슬리는 문장들이 많았다. 소설의 내용과 형식 어느 쪽도 소홀이 할 수 없고 분리 될 수 없지만 어딘가에서 어긋나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2% 조금 넘게 부족한 소설을 만난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더욱 어렵다.


070309-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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