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AD 비트겐슈타인 How To Read 시리즈
레이 몽크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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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지깽이를 들고 칼 포퍼를 위협했다는 선정적인 내용 때문에 처음 읽은 책이 <비트겐슈타인은 왜?>였다.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칼 포퍼는 전체주의와 폭력에 의한 혁명을 혹독하게 비판하며 ‘닫힌 사회’로 규정지었다. 개인주의를 옹호하고 점진적인 개혁에 의한 ‘열린사회’를 꿈꾸었던 이 책의 저자는 초청 강연을 위해 캠브리지에 대학을 방문했다. 10분에 비트겐슈타인이 한 판 뜨자고 덤빈 이유가 궁금해서 펼쳐든 책으로 기억한다.

  철학자의 삶과 기질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시작해서 천재라고 명명되는 이유가 궁금했다. <논리-철학 논고>를 읽으면서 참 독특한 형식과 내용의 철학책이라고 생각했다. 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명제를 분석하는 장은 어차피 내 능력 밖의 범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포기하고 흐름을 따라 읽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구절을 멋대로 해석하며 전혀 다른 상황에도 적용해보며 내가 얼마나 용감하고 무식하게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 대한 호기심과 사유의 흐름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얼마전 <청갈색책>에 도전했으나 비슷한 낭패감을 맛보았고 다른 방법을 고민하며 날개를 접었다.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띠는 ‘How to read……'시리즈를 보고 다시 <How to read 비트겐슈타인>에 또 다시 현혹됐다. 도대체 이 철학자의 매력은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했지만 그의 철학이 주는 매력은 독특하다. 특히 ‘언어에 대한 감각과 개념에 대해서 조금씩 그 의미들을 짚어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이 책에게 감사한다. 하나의 텍스를 간접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에 개인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깨지더라도 일단 부딪히고 만져보고 냄새 맡고 엉겨봐야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뭔가 아쉽고 부족한 부분들이 보인다. 그때, 이런 종류의 책들을 접하면 가뭄에 단비처럼 거의 모든 것들이 흡수되고 이전의 남아있던 의문들과 모호함이 안개처럼 사라진다.

  나머지 시리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의 저작을 읽지 않고 이 책들을 읽는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간접적인 독서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이 읽은 내용의 해설을 엿듣고 그 텍스트를 읽은 것으로 착각하거나 오히려 주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후기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적 탐구>보다 오히려 그가 생의 마지막에 관심을 가졌던 ‘심리철학’이 보고 싶어졌다. 기회가 될 때마다 부딪히며 생각하고 한 줄 한 줄 음미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면 기꺼이 비트겐슈타인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

  철학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생각하며 철학을 떠났던 비트겐슈타인이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다. 이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의 갈등과 고민 속에서 철학의 문제를 단지 해결해야할 과제 정도로 여겼던 그의 생각들을 짐작하는 데 또 하나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말할 수 있는 것과 보여줄 수 있는 것들 사이의 간극을 아직도 확실하게 정리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언어와 사물과의 관계, 사물들과 사실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그가 가졌던 깊은 고민과 철학적 해결 방법들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고마운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레이 몽크는 영구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비트겐슈타인의 전기도 썼다. 한 인가의 삶과 사상에 대해 지극한 애정과 객관적인 시선으로 독자들에게 이해의 폭과 깊이를 더해 주는 좋은 안내서를 제공해 준 그에게 감사해야겠다.

  책의 형식과 분량은 가볍다. 비트겐슈타인의 첫 리뷰인 <케임브리지 리뷰>에서부터 <철학적 탐구>에 이르기까지 연대기별로 발표된 저작들을 인용하면서 그의 핵심 사상을 설명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사이사이 그의 생애를 사상과 연결시키고 있지만 평전이 아니기 때문에 간략하게 정리하며 그의 철학적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데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부분들을 발췌하고 그 부분들이 전체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레이 몽크의 해설이 전부일 수 없겠지만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날카롭고 예리한 분석과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글쓰기는 읽는 사람들에게 깊은 신뢰감을 갖게 한다. 잘 차려진 밥상이 아니라 숟가락 같은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책이지만 숟가락 없이 밥을 먹기도 곤란하다. 좋은 숟가락은 맛있는 밥을 위해 준비된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070705-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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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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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알고도 외면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동아시아에 속해있다는 지정학적 사실은 우리 민족 혹은 국가의 운명을 질곡의 세월로 이끌었다. 물론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수동적이고 피학적인 전제가 깔려있으나 수백여 차례의 외침을 받고도 근근이 버텨온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면 동아시아는 단순히 지리적인 범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특히 근현대사에서 동아시의 역할과 한계 그리고 그 의미를 제대로 규명하는 작업은 여러 사람에 의해 지속적으로 시도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삐뚤어진 시각과 좁은 시야에 갇혀 오리엔탈리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0세기 초 일본의 군국주의의 군화발에 짓밟힌 민중들과 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허황된 주장에 현혹된 위정자들이 겪은 동아시아의 역사는 동일하지 않다.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는 또 하나의 시원한 외침이다. 박노자를 벽안의 외부인으로 평가하는 사람은 이제 없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학자라고 명명하고 싶다. 한국적이라는 말은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에 정통하며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고 학문적 깊이가 만만치 않다는 말이다. 한 개인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주관적이다. 역사에 객관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승리자의 것이든, 민중들에 의한 것이든 모두를 담아내든 하나의 관점은 좁은 견해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모든 관점들이 비슷하거나 방향만 달리한다고 해서 폭넓은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거나 객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박노자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신선하다. 적어도 그의 책을 읽는 사람들은 무언가 새로운 시각과 비판적 관점을 갈망한다.

  독서는 저자와 끊임없는 대화의 과정이다. 의사 소통의 행위로서 독서는 읽는 과정에서 수많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으며 독자를 깊은 사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때로는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나누고 때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품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진정한 독서가 이루어지고 깊은 감동과 내면의 울림이 이어진다. 독자 개개인의 성향과 역사에 대한 관점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설득력있는 이야기와 사실에 근거한 의견들은 진정 ‘우리가 몰랐던’ 역사에 대해 한 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휴머니즘, 20세기에 대한 기억들, ‘근대’의 문제,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 제국주의와 개인 그리고 양심 등 폭넓은 주제들에 관한 박노자의 단상들은 귀화 한국인 박노자를 가장 한국에 대해 잘 아는 한국인으로 보이게 한다. 단순한 저자에 대한 호감과 감탄을 넘어서 그가 말하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세계 안에서의 모습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춰보는 거울이 된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나 <나를 배반한 역사>에서 보여주었던 시각들이 불편했던 독자라면 이 책 역시 쉽고 만만하게 그의 논리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관점을 갖는다는 것은 가장 나쁜 관점은 아닐까? 구석구석 숨어있는 인물들과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관심 그리고 역사가 흘러온 과정 속에서 그 흐름을 읽어내고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혁명에 관한 논의는 흥미롭다.

  미래 상황에 대한 가정법과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본 역사 속에서 우리는 많은 교훈과 미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자본주의와 개방의 물결은 사회체제 자체를 변화시킬 것이다. 경제개발을 빌미로 부의 양극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모순들을 해결해 나간다 해도 그들의 미래를 그려내기는 어렵다. 또다시 ‘혁명’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가능성과 타당성이 있는 미래다. 한 번 경험한 민중들의 힘과 의지는 향후 두 나라의 사회체제의 변화와 모순 극복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주변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하나의 가능성만으로 치부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적으로 지리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나 연합이 이루진 적이 없지만 지리적 여건과 문화적 교류 때문에 끊임없는 상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동아시에 대한 박노자의 이야기는 내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비참하고 우울했던 우리의 역사가 동아시아라는 환경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 특히 근대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일본제국주의의 광기에 피 흘리며 쓰러졌던 민중들, 위정자들의 부패와 한계는 여전히 아픈 현재로 남아있다. 단순한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 인식을 위해 알아야 할 내용들이 충실하게 담겨 있는 이 책은 동아시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필요한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070703-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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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와 인간 사이에 질문을 던지다 - 한국 최고의 과학지성들이 현대과학의 난제에 도전한다!
김정욱 지음, 정재승 기획 / 해나무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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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문과 지식의 대중화는 인쇄술이라는 혁명 이후에도 꾸준히 다른 방법을 찾아왔다. 축적된 지식과 정보들은 인류의 진보와 진화를 위한 밑거름이 되었지만 일반인들과는 점점 멀어져갔다. 전문적인 학문 영역은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렸고 연구자가 아니면 접근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용어와 개념들로 가득하다. 심층적이고 복잡한 지식의 구조들은 보다 깊고 체계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하지만 학문의 외연이 넓어지고 전문 영역들간의 통섭이 이루어지는 바람직한 현상들 속에서 대중은 외면된다. 무엇 무엇의 대중화는 때대로 유행처럼 번진다. 그것이 철학의 대중화든 수학의 대중화는 과학은 가장 어려운 영역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다. 청소년들의 필독서로 스테디셀러가 되어버린 이유는 간단하다.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과학의 중요성과 역할 그리고 일상에서 과학이 지니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정재승이 새로 기획한 책 <우주와 인간 사이에 질문을 던지다>는 멋진 제목의 책은 어른들을 위한 <과학콘서트>를 표방하고 있는 듯하다.

  스물일곱 명의 국내 과학자들이 주제별로 일반인을 위한 간단한 강좌를 열었다. ‘한국 최고의 과학지성들이 현대과학의 난제에 도전한다!’라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이것은 편집자의 오버에 불과하다. 한국 최고의 과학자들에 의해 난제가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대의 정상과학이 밝혀낸 첨단 과학의 장면들을 화려하게 소개하고 그 한계와 미래의 전망을 보여준다는 데 의의가 있는 책이다.

  그래서 쉽게 ?와 !를 표지에 넣을 수 있는 주제는 하나도 없다. 이 책에서는 크게 다섯 개의 주제로 열띤 강의가 펼쳐진다. 우주, 자연, 생명, 과학, 인간 - 우리가 과학에 대해 궁금한 가장 기본적인 주제를 가지고 각 분야의 전문 과학자들이 전공 분야의 최신 연구 성과와 지금까지 축적된 지식들을 알기 쉽게 풀어내고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더불어 미래의 전망과 계획 그리고 가능성까지 짚어주고 있으니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조금 어렵지만 귀담아 들을 내용이 아주 많다.

  다만 스물일곱 명의 글쓰기가 고르지 못하다는 아쉬움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한 권의 책에서 만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다. 전공 관련 용어들을 설명 없이 사용하거나 생소한 과학적 지식과 개념들을 그대로 노출시켜 이해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글들도 더러 섞여있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상세하게 전달하려는 노력과 흔적들은 곳곳에 배어있다.

  익히 알고 있는 개념들이나 이제는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주제들도 있기 때문에 모두가 낯설고 새로운 이야기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주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이고 그 의미를 풀어주는 요령이다. 시각의 다양성은 어느 학문 분야에서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과학분야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시선들을 한 권의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뷔페같은 책이다. 겉핥기식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겠지만 주제별로 간단한 워밍업을 한다고 생각하면 더없이 볼만한 책이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나 진화론의 문제, 의학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동물들의 예술 행위 같은 이야기들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학문의 울타리를 넘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을 만한 책을 전하고 지식을 풀어낼 수 있는, 역량 있는 과학 전문 저술가가 많이 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대체로 외국인의 책을 번역하거나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에 풍부하고 다양한 독서는 어렵다. 미래를 알고 싶은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아야한다. 진화론에 관한 책들을 좀 더 찾아 틈나는 대로 즐겨야겠다.

  우주와 인간 사이에 던진 질문들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책은 아니지만 ‘질문’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 무엇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과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우리들의 인식의 폭을 넓혀주고 인문학적 지식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의 틀을 제공한다.

  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에만 1000억 개가 넘는 별들이 빛난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 그런 은하가 1000억 개 넘는다고 하니 밤하늘에는 보이든 보이지 않든 1000억×1000억 개의 별이 존재하는 셈이다. 지구라는 조그마한 별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고 나를 돌아보는 것은 순순히 상상력의 힘이다. 과학은 지식 이전에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상력의 세계이다. 쿼크 단위의 미시 세계이든 우주와 같이 거대한 세계이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나라는 존재는 점으로도 찍을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070629-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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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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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본능에 가깝다. 10만 년 전에 인류가 등장하고 겨우 1만 년 전에 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잠재된 욕망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현대인의 일상은 과거에 비해 상상을 초월할 만큼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정보의 대중화로 인해 언제든 거침없이 달릴 수 있고,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교통수단이 발달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은 누구에게나 보편화되었고 대중화되었다.

  여행의 목적지는 출발지이다. 돌아오지 않기 위해 떠나는 것을 우리는 여행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과정들을 여행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원점으로 회귀하는 방식의 좀 더 먼 거리로의 여행은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일탈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거나 특정 공간을 순환하면서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행의 욕구를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목민이나 집시처럼 떠도는 사람들에게는 삶이 곧 길고 지루한 여행일 뿐이다.

  보통의 <여행의 기술>은 여행에 필요한 기술을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면 면에서 제목이 부적절하다.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미리 알아두어야 할 여행 정보지와는 물론 거리가 멀다. ‘알랭 드 보통’식의 여행에 관한 에세이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는 여행은 작은 제목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고 처음 접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저자에 대한 정보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를 이해하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책으로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보통 신드롬’을 만들어 낼 정도로 고정적이고 폭발적인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이 작가의 매력은 예민한 감수성과 철학자로서의 깊이 있는 사색에서 기인한다. 폭넓은 독서와 사유를 알기 쉽게 풀어내면서 감성적인 부분들과 결합시켜 나가는 방식이 서툴지 않고 고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은 후에 밀란 쿤데라의 책들을 기다린 기억이 난다. 최근의 <행복의 건축>에 이르기까지 기다리면서까지 마음 졸일 필요는 없지만 새 책이 나오면 별로 고민하지 않고 읽어보게 되는 작가가 되었다. 문학이 아니면서도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는 책을 꾸준히 써낼 수 있는 것은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 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단순한 호기심이나 대중적인 인기만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이라는 다섯 개의 주제는 여행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과정이다.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풍경들과 예술가들과 연관된 장소 그리고 독서를 통해 저장된 풍부한 상상력과 여행하면서 손에 들고간 파스칼의 <팡세>가 어우러진 책이다. 한 개인의 여행 과정을 따라가는 일은 사실 지루하고 재미없다. 내가 가본 장소들에 대한 추억을 더듬거나 여행 정보 수집 차원이 아니라면 말이다. 보통의 여행지도 런던에서부터 암스테르담, 마드리드, 프로방스 등 유럽에 국한되어 있고 유럽의 문학과 예술을 중심으로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내고 있기 때문에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나 감상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다만 여행을 위한 출발과 귀한 그리고 여정에서 보여준 생각의 흐름이나 감상들은 누구나 어디나 공통 분모가 되어 찾아 볼 수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에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인생을 여행에 많이 비유한다. 죽음을 최종 목적지로 한 멀고도 긴 여행. 행선지는 바꿀 수 있지만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 여행. 살아가면서 최소한의 비상구나 탈출구가 필요하다. 인간은 누구나 떠나고 싶어한다. 모태 회귀 본능처럼 바다를 동경하고 반복적인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의 본능에 따라 올 여름도 기형적인 휴가와 떠남과 돌아옴이 이어질 예정이다. 동시에 떠나는 여름 휴가! 그렇게라도 위안이 되고 정리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사치스런 투정일 수도 있겠지만.

  여행은 어디로 가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할 수도 있다. 다양한 방법과 요소들이 결합되어 평생 잊혀지지 않는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부딪히는 모든 풍경과 창 밖에 부는 바람소리가 여행지의 그것일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들로 이 책은 마무리 된다. 삶이 여행의 한 과정이든, 공간의 직접적인 이동 과정에서 만나는 수많은 풍경들과 낯선 사람들, 새로운 음식들이 생의 활력이 되고 목적과 방향을 수정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070627-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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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윤성희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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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한 감기에 걸려 본 사람들은 안다. 그 열병을 털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때, 뺨과 귓불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의 신선함을. 살아있다는 것은 그저 신열을 앓고 난 후에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는 공기의 시원함에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윤성희의 세 번째 소설집 <감기>는 구석구석 발라먹어야 하는 생선처럼 가시를 숨기고 있지만 예측할 수 있는 함정과 장치들이기 때문에 당혹스럽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소설을 읽으면서 낯설고 재미있는 스토리가 주는 감동은 사실 오래가지 않는다. 적어도 내 경우의 이야기지만 소설가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문체가 우선이다. 한 데 뒤섞여 있어도 분명하게 자기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윤성희가 가진 특징이고 매력이다.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턱대고 좋아지는가 하면 별 생각없이 빨려든다.

  적당한 거리두기와 냉소적인 시선이 아니라 무덤덤한 목소리는 마른 모래 바람처럼 서걱인다. 좀체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의 숨소리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읽어내야 한다. 그 섬세한 숨결들을 놓쳐버리면 윤성희는 지루한 작가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내게 윤성희는 아주 매력적인 작가로 기억되었다. 그녀의 전작 소설집 <거기, 당신?>를 읽으면서 느꼈던 독특한 면들이 고스란히 살아 움직인다. 나는 계속 그녀의 소설을 읽을 것이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수다스럽지 않다. 말이 많은 캐릭터가 필요해도 작가는 중간에서 차단하고 몇 마디 말만을 골라 던져주거나 대화와 대화 사이의 간격을 쭉쭉 넓혀버린다. 상징이 아니라 비약은 가독성을 떨어뜨리지만 상상력을 배가시킨다. 절제된 언어는 시에만 필요한 게 아니다. 요설스럽지 않지만 할 말은 다하고 있다. 툭툭 내뱉는 어법과 어휘와 문장들 사이의 생략은 윤성희가 지닌 문체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나는 그래서 그녀가 마음에 든다. 어차피 작품이든 작가든 개인적인 취향일 수밖에 없다면, 마음에 든다고 말할 수 있다.

  한결같이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사람들의 내면을 답답하게 끌고 나가는 방식이 때론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사람들 사이에 뚫린 ‘구멍’을 읽어나가는 일은 현실 속에 모든 존재들을 읽어내는 방법이 될 수 있겠다. 감기에 걸려 재채기를 하든 죽은 사람에 대한 부채감으로 인생을 허비하든 상관없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가슴에 큰 구멍 하나씩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구멍을 숨기기 위해 크게 웃고 위선 혹은 위악을 부리거나 눈물을 흘린다. 옷으로 가려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슬쩍슬쩍 보이기도 하지만 서로 모른 채 하거나 알아도 눈을 감아버린다. 그 구멍들을 소설에서 직접 보여준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소설이 될까? 윤성희는 끝없이 빨려드는 블랙홀처럼 그 구멍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그 구멍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들에게 보물지도의 상징처럼 암호를 숨겨놓기도 하고 어휘나 문장들 사이에 숨어 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재미있다.

  단편 ‘구멍’이나 ‘하다 만 말’ 그리고 ‘저 너머’나 ‘무릎’에서는 가장 자주 부딪히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가장 큰 행복과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가족들이 때로는 생의 가장 큰 불행이 되기도 하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런 가족들 사이에서 확인되는 개인은 서로 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확인된다. 과거의 기억들과 현재의 삶은 끈끈하게 이어져 있지만 쉽게 분리되기도 한다. 같은 시공간에서 전혀 다른 생각을 하거나 말하지 않고 교감하거나 삶의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거나 어떤 타인도 내 생의 이유를 확인해 줄 수 없거나.

  부채감이나 열등감 혹은 몸과 마음의 이상 증세는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감기와 같다. 없다고 행복하지도 않고 있는 것을 자랑할 수도 없다.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인간 삶의 보편성이라고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윤성희가 보여주는 인물들은 그것들을 과장하고 확대하거나 지나치게 무시해 버린다.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으나 현실 밖의 세상과 이야기를 넘나든다. 그 경계가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순간을 무서워해야 해. 자네가 비겁해진 순간이 있었다면 그 한순간이 평생을 따라다닐 거야.” - ‘등 뒤에’중에서(P. 70)

  그래서 사람들은 모든 순간을 무서워해야 하는 것일까? 그 한 순간이 평생을 따라 다닐 것이라는 말은 무심한 순간들이 어쩌면 결정적 순간이라고 믿었던 모든 순간들을 밀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불확정성 때문에 사는게 두렵고 때때로 허탈하고 외로워진다. 그 ‘순간’을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능력이나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외부의 힘이나 타인이 될 수도 있다.

“고백을 해본 사람들은 고백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알게 되지.” - ‘재채기’중에서(P. 117)


  아무도 쉽게 고백하지 않는다. 고백을 하는 순간 승리하거나 패배하거나! 쉽게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노름판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패배의 낭패감을 견뎌낼 자신이 없는 것이다. 윤성희의 소설을 읽어가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단편들 사이사이, 소설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내면,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간격, 툭툭 내뱉는 간단한 대화, 쉽게 읽어낼 수 없는 웃음과 엉뚱한 결말. 이 모든 것들이 작가의 다음과 그 다음까지를 기다리게 한다. 변하지 않는 개성과 다양성을 함께 기대하는 이기적인 독자가 그녀를 기다린다.


070625-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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