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불꽃 - 개정판
마타요시 나오키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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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의 영원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외로움

괴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_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중에서

스무 살 언저리에 읽은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여전히 그 무렵을 떠올리게 하는 마들렌 같은 역할을 하곤 한다. 최승자의 『즐거운 일기』처럼 불안, 괴로움, 불안, 허무, 죽음 같은 단어의 멱살을 움켜쥐고 패대기 치고 싶던 시절이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서른일곱이 된 어느 날 문득, 와타나베가 생각났지만 별 감흥은 없었다. 이제 인생의 정점을 지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과거지향형 인간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노래를 듣고 철 지난 영화를 다시 보곤 한다. 그건 아마도 그리움과 추억, 아쉬움이나 회한 따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자기 삶을 투영한 해석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이거나.

아쿠타가와 수상작 역대 판매량 1위였던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제치고 300만부가 팔렸다는 이 소설의 제목도 몰랐다. 10년 전에 있었던 일들을 화두로 일본 소설과 잘 팔리는 소설에 대한 소감들이 오갔으나 300만 명의 속내를 알 수는 없다. 그것도 일본인의 감성과 취향을 추측하는 건 별 의미가 없기도 하다. 출판 문화 산업 진흥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으므로. 압도적 재미도, 정교한 구성도, 기막힌 반전도 없기 때문에 궁금했을 수도.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매료됐다는 저자는 코미디언이다. 방송에 출연할 만큼 유명했던 마타요시 나오키는 오랜 시간 독서와 글쓰기로 자기 삶을 채운 후에 데뷔작으로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했고 역대급 판매량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그가 위대한 작가가 되고 싶었을 거라는 짐작은 하기 어렵다. 가미야처럼 그저 삶에 대한 열정과 흐름에 몸을 맡긴 게 아니었을까. 특이한 이력과 소설 외적 요소들로 시작된 이야기는 언제나 그러하듯 자기만의 해석과 타인들의 독법이 버무려진다. 주변의 숱한 가미야들, 순수한 열정이 전부였던 각자의 20대, 리얼리스트가 되버린 오늘의 나와 화해하는 법에 대하여 고민했던 시간을 뒤로 한 채 사람들은 또 어떻게 오늘을 살아낼까.

1인칭 화자 도쿠나가는 스무 살에 네 살 많은 가미야를 만난다. 사제지간으로 관계를 규정한 그들은 20대를 고스란히 공유한다. 야마시타와 오바야시, 카미와 유키 등 주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 소설은 오롯이 ‘나’, 그러니까 도쿠나가에 관한 이야기다. 혼란과 방황이 청춘의 전매특허라고 우겨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 살 것인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 중 하나로 읽어도 좋다. 현대판 인격 실격의 주인공 같은 가미야든, 삶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철학적 성찰이든 해석은 언제나 각자의 몫이지만 자기 삶의 ‘하나비’가 아니라 ‘히바나’가 언제였는지 돌아보는 시간이었으면 충분해 보입니다.

스파크가 일어났던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알아채는 일보다 중요한 건 그로 인한 변화와 전환이겠죠. 흐르는 대로 흐르는 무난한 삶을 지향하든, 가미야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든 선택의 결과가 모여 자기 삶이 됩니다. 타고난 재능과 천재성과 피땀 어린 노력과 열정의 비율을 따지기 힘들고 상황과 맥락과 환경과 우연의 요소들을 계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원인을 찾고 이유를 알고 싶어합니다. 심리학에서는 귀인이론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결과는 부분의 합보다 큽니다.

자기 말과 행동을 돌아보지 않는 삶은 어떤가요. 가미야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도쿠나가는 세상과 불화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 타인과 관계 맺기에 성공했을까요. 소설 속 주인공들의 후일담이 궁금한 게 아니라 읽는 행위 그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 그걸 통해 변화와 성장의 기회가 되는 게 가당키나 한 건지 지적 유희와 합리화의 도구일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두렵습니다. 이제 책이 제게 건네는 말들이 때때로 지겹고 버겁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투덜거려도 말없이 그들은 쉼 없이 그래도 괜찮은 거냐고 묻습니다. 이제 빽빽한 책숲에서 벗어날 때가 된 건지 그 끝과 시작을 천천히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도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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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유전자 - 세계사를 뒤바꾼 문제적 유전자 바로 읽기
정우현 지음 / 이른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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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환원주의적 방식 중 하나가 ‘유전자’에 대한 관심이다. 삼십 대에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 때문이든, 『종의 기원』이 정유정의 장편 소설로 아는 사람이든 존재론적 고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만한 나이가 됐으나 포기하지 않고 집착에 가까운 몰입에 성공한 사람들은 정답이 아니라도 자기만의 생각과 주체적 삶의 태도를 갖추게 된다. 모든 게 호르몬 때문이라는 책도, 생존 기계에 불과한 인간의 삶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는 주장도, 결국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랑을 나누는 게 행복의 전부라는 진화심리학자의 말도 읽고 듣는 사람의 ‘태도’와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임승수와 정우현 덕분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연말에 위로가 된다. 임승수는 빨갱이고 정우현은 과학자다.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과 세상을 설명한다. ‘나’를 분석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해서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 덜 중요할 수는 없다.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두 권의 책은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추천하고 싶다. 과학에 관한 기초 이론과 지식을 전하는 책은 이제 시간을 많이 투자할 필요가 없어진 지 오래다. 그러나 ‘책’을 읽어야 할 이유를 알고 싶다면 정우현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으나 인문학이 바탕이 된 과학자들의 책은 연구 결과나 새로운 이론과 주장을 정갈하게 담은 책과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갖추고 있다. 논문이나 학술서가 아니라면 독자의 입장에서 과학이 ‘삶’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서 나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 변화 가능성은 무엇인지, 알고 난 후에 어떻게 선택이 달라지는지 말이다. 그 현실적 유용성이 이제 ‘책’을 선택하는 실제 기준이 되지 않을까. 소설의 재미를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가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하진 않다. 나름의 이유로 선택된 매체의 차이일 테니까. 하지만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분야의 논픽션은 인공지능 시대의 생존법을 모색해야 한다. 지식과 정보의 합종연횡, 통섭과 상상력이 없는 텍스트는 나무에 대한 예의로부터 멀어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우현은 예의 바른 저자다. 과학에 관심 있는 독자들이라면 익숙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 소재들이다. 어쩌면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다만 유전자를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인간 본성과 양육과 환경에 대한 논쟁이나 인종과 동성애에 관한 편견,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오해 등 과학은 현실이며 삶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철학, 역사, 문학, 심리학, 인류학 등 인간과 세상에 관한 다양한 교양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연결하는 지점이 매력적이다. 뷔페를 싫어하는 사람의 취향도 존중해야 하지만 ‘읽는 인간’들의 욕구와 취향을 저격하는 이런 맛있는 책을 거부하긴 쉽지 않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고 읽기와 쓰기의 시간도 독자와 글쓴이가 갈아 넣는 생의 일부다. 서로 씁쓸하지 않도록, 새해에도 계속 그렇게, 남은 시간을 즐기고 싶은 나뿐이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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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자본론 - 풍요의 이름으로 우리가 놓친 모든 것에 대하여
임승수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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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민주당 당원이다. 당비를 내는 정도가 의사 표시의 거의 전부지만 지향점에 대한 확인이자 공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을 멈춘 적이 없다. 매우 이기적이며 현실적이며 냉정하고 논리적인 판단 성향을 가진 인간의 지향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자연선택이 아니라 집단선택을 하는 유전자처럼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지속가능한, 보다 넓은 의미의 장기적 행복의 바탕은 ‘나만’이 아니라 ‘함께’에 수렴한다. 인류 역사가 증명한 태도이며 먼저 살다 간 현자들의 결론이다.

철 지난 이념 논쟁과 다른 경제 이야기다. 루카치의 ‘사물화’가 마르크스의 ‘인간 소외’로부터 영향을 받았듯 근대 이후 현생 인류의 거의 모든 학문과 삶에 영향을 드리운 진화론, 정신분석, 맑시즘은 ‘돈’과 직결된다. 부자가 되려면, 행복을 찾으려면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들이라면 사람들이 귀를 좀 기울일까. 『자본론』은 그런 책이다. 숱한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세월을 견디며 사회학적 상상력을 길어 올리는 샘물 같은 책이다.

이 자본론을 원숭이도 이해할 수 있게 알려주겠다는 임승수의 일관된 노력과 사회주의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오랜 시간 책으로 지켜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그의 책을 보면서 독학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순간들이 떠올랐고 와인에 심취해 거품을 무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안도했다. 『오십에 읽는 자본론』을 보면서 이제 편안하고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나를, 아니 저자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비록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한 번쯤 그들의 지향이나 노력에 관심을 가져볼 나이가 오십이 아닌가. 어차피 타인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생긴 나이가 오십이 아닌가.

고3 수험생을 둔 부자 아버지와 저자의 대화 형식으로 써내려 간 자본론은 이 악물고 무언가를 관철시켜야 했던 순간들, 깨지고 부서져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던 시간들, 이상과 신념으로 가득했던 청춘의 한 시절을 넘어 선 느낌이다. 도를 터득한 노인 같은, 부드럽고 유머러스한 아재의 넉넉함과 여유가 보이는 자본론 이야기는 어렵지 않고 쉽게 이해되는 자본론, 누구나 알아야 하는 자본론, 미래를 위해 필요한 자본론, 생활밀착형 자본론, 실천적 자본론이라 할 만하다. 소설 형식으로 쓰여 등장인물과 상황이 주어지자 죽은 마르크스가 되살아나 현실의 문제들을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자본주의가 이대로 괜찮으냐고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한때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꼰대가 아니라 먹고 살기 바빠서 잘 몰랐지만 도대체 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왜 빨갛게 변해가는지 또 아직도 그러한 지 궁금해서라도 한번쯤 읽어보면 어떨까. 내 친구와 이웃을 위해서라도. 엄빠, 삼촌, 이모, 조카, 선후배가 모두 모여 자본론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이제 대한민국은 갖고 있지 않은가.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때때로 고전에게 기대고 이런 책들에게 신세를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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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
옌스 포엘 지음, 이덕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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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낭만적 착각이다. ‘사실은 없다. 다만, 해석이 있을 뿐.’이라는 니체의 말 한마디를 오래 붙잡고 있었다. 단순히 맥락에 따른 상황 논리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수학적 공리와 자연 현상처럼 명백해 보이는 사실fact에 대한 의심은 가능한가. 하물며 진리truth 탐구에 도전이라니. 인류의 역사는 허망한 기대와 실현 불가능한 꿈에 도전했던 지난한 고통의 기록이 아닐까.

일상생활에서 사실과 의견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표명되며 현실에 영향을 줄까. 레거시 미디어가 무너진 자리에 들어선 뉴미디어 시대의 명암은 진영 논리에 따라 달라질까. 가짜 뉴스를 ‘대안적 사실’이라 명명한 트럼프 진영의 신박한 작명법에 진심으로 감탄한 적이 있다. 어차피 인간은 상상의 질서가 창조한 세계를 살아간다는 유발 하라리의 통찰이 아니라도 매일매일 벌어지는 숱한 개인적, 사회적 프로파간다의 홍수 속에 허우적거린다. 때로는 부모와 연인의 가스라이팅, 사회 경제적 전망에 대한 신뢰, 통계와 자료 분석에 기반한 확신, 정치 종교적 도그마로 인한 믿음 등 한 인간을 둘러싼 수많은 소음들.

사실이 의견일 리 없고, 의견이 사실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독일의 신경심리학자 옌스 포엘이 ‘과학적으로 합의된 사실’과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의견’를 구별해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혹은 그러한 판단력을 갖추기 위한 비법 16가지를 소개하기 위해 이 책을 썼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 텍스트 너머의 진실, ‘행간을 건너뛰는 두 개의 콤마’에 방점을 둔 읽기 단계로 진입한 자들을 위한 전복적 제목이 오히려 사실과 진실에 대한 냉소적 진실을 드러내는 듯하다.

가짜와 진짜는 누가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그 모호한 경계를 이용하며 끊임없이 이익을 챙기는 자들은 누구일까.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사회는 끊임없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끊임없는 투쟁이다. 지식과 정보 과잉 시대에 오히려 사람들은 가짜와 진짜, 아니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경계를 지우고 전복을 시도한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 하는 놈은 절대 깨우지 못한다.

살펴보고(1부) 검증하고(2부) 해석한(3부) 다음 친구에게 말을 걸면(4부) 우리는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사실은 의견일 뿐이라는 말의 역설적 진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문장은 사실일까, 의견일까. 오해가 디폴트 값이라면 인간 언어의 한계가 전제 조건이라면 이해와 공감, 소통과 협력에 관한 내포된 위험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을 안다고 해서 달라질까. ‘앎이 곧 삶’이 되던 시대의 낭만은 모두 사라졌다. 오래 전부터 예언해 왔던 ‘인간 운전 금지 법안’은 시행까지 얼마나 걸릴까. 운전대에 손댈 수 없는 시대는 ‘소유의 종말’을 예고했던 제러미 리프킨의 말이 현실이 되는 시대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가 탄생의 이유이자 번식 기계로서 소명을 다해야 했던 ‘인간의 종말’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오늘도 무얼 보고 듣고 살피며 하루를 살았을까.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걸었을까. 물신 시대의 꿈이 사라지고 허무의 시대가 찾아온다면 사람들은 어떤 사실에 대해 또 어떤 의견을 내놓으며 목소리를 높일까. 그 또한 알 수 없으니 계속 책장이나 넘길 수밖에 없을까.

많은 사람은 자기들의 생각이 변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걸 싫어해. 그건 본인이 과거에는 틀렸고 지금은 맞다는 걸 받아들이는 꼴이라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생각의 변화는 ‘틀림에서 옳음으로의 과정’이 아니야.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언제나 ‘틀린’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어.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 - 영화 《사회학자와 곰돌이》에서 사회학자 이렌 테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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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연출의 사회학 -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어빙 고프먼 지음, 진수미 옮김 / 현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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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액면 그대로 바라보지 마라Don’t take the world at face value”

50cm, 사회적 거리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도 이 프라이빗한 거리 안으로 허용되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사적인 영역을 침범하거나 허락받지 않은 신체 접촉은 형사 처벌의 대상이다.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를 증명한다. 가족, 친구, 연인은 물론 선후배, 동료, 지인 사이에도 적용되는 일반적 거리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친근감을 포장한 무례와 범죄는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다’라는 변명에 불과하다. 관계는 물리적 거리로 입증되며 친밀함은 온기로 전해지는 법이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와의 거리에 대한 연구가 인류 전체에 적용될 순 없으나 이와 같은 일반론에 현대인의 일상은 대체로 포섭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욕망하지 않으면 비난 가능성도 낮아진다. 사랑받는 대신 사랑하라는 에리히 프롬의 조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고 싶은 마음 또한 자기 욕망의 반영에 불과하다. 대개 사랑으로 포장하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배 욕망, 배타적 소유욕이 채워지지 않으면 대상을 비난하기 일쑤다. 관계의 기본은 상대가 원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싫다는 것만 조심해도 인간관계는 그럭저럭 유지된다. 하지만 대체로 틀어진 관계로 상대를 비난할 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여기에 있다는 걸 차단된 후에도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을 연구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 결과들을 공부하거나 익히려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로 소비되는 처세술, 자기계발서의 얄팍한 술수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대증요법과 임기응변의 기술 연마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지 못할까. 자기 자신으로 사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어빙 고프먼의 이 책은 사회학 고전이다. 일상생활에서 자아를 연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 사회가 내재한 연극성 때문이다. 저자는 연극적 관점과 접근법으로 우리의 사회생활을 톺아본다. 현미경으로 나를 직면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개인의 타고난 성품이 인자하고 위엄 있으며 거들먹거리거나 착하고 난폭하고 합리적이거나 고지식하고 방탕하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사람일까 상황일까』에서 때와 장소, 즉 맥락에 따라 인간은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한다. 말과 행동이 동일한 사람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한 인간에게서 배신감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것은 대체로 사회적 조건과 환경에 적응하는 하나의 전략적 행동이라는 분석은 이제 심리학자나 사회학자 혹은 사회생물학자와 뇌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손에 고문 기구를 들고 아이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전화를 거는 모습이나 아우수비츠 죽음의 수용소 바로 옆 주택으로 귀가한 독일군 장교의 따뜻한 미소와 다정한 표정은 그들이 특별한 괴물이어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연출하는 사회적 가면의 일부가 아닐까.

공연자는 현재 공연의 관객이 나중에 자기가 상반된 모습을 연출하게 될 공연에는 들어오지 않아야 편하고, 또 과거 자기의 공연을 본 관객은 그와 상반된 현재 공연을 보지 않아야 편하다. 현저하게 지위가 상승했거나 추락한 사람들은 단호하게 고향과 절연함으로써 관객을 분리한다. 공연자는 관객에 따라 배역 연기가 달라야 편하고, 같은 배역 연기라도 관객을 분리하는 게 더 편하다. - 175쪽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매일매일 자아를 연출한다. 고프먼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넘어선 견고한 실체라기보다 ‘지금, 여기’에서 개인들의 구체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실현, 유지, 변형되는 것이다. 10년 전 부모와 자식은 현재와 다른 모습이다. 친구와 연인은 물론 부부와 동료, 지인은 말할 것도 없다. 다른 공연을 하는 데 같은 사람이 들어오거나 같은 공연을 하는 데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면 자아는 불안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각각의 관객에 맞는 연출과 연기가 다르다. 고프먼은 우리의 삶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우리의 자아를 연출하는 공연과 같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인생을 고칠 수 없는 단 한 번의 연극에 비유한 저자의 관점이 독특하면서도 탁월하다. 실제 우리는 매일매일 똑같은 사람 혹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사회적 페르소나를 통해 실제같은 연기를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자연스러운 연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표정과 말과 행동은 관객의 반응과 상관없이 자아 만족감과 성취감을 통해 보상받는다. 그러나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가족, 친구, 연인 사이에서도 균열이 발생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반복 실험과 검증된 이론들은 모두 불가역적 사건과 시간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에 불과하다.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허망함이 대체로 여기에서 기인한다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소회일 수도 있으나, ‘그래서?’, ‘어떻게?’에는 답을 주기 어렵다. 그 결과를 예측한다고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다양한 개별 독자, 각각의 자아를 위한 분석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만하다. 결국, 모든 텍스트의 종착역에서는 ‘나’가 놓여 있다. 거울을 바라보는 일, 스스로 변화를 시도하고, 성장을 도모하거나, 지금 이대로를 외치든,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고집을 부려도 각자의 연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어떤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을지 ‘선택’은 모두 ‘나’에게 주어진 숙명 혹은 노력의 결과다. 점점 선택의 폭은 좁아지고 해가 저문다. 서로 다른 조건이지만 자아 연출 능력은 얼마든지 변화, 발전, 성장 가능하다. 성별, 외모, 국적, 인종, 부모 등 어차피 주어진 조건이 같지 않더라도 드라마,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서로 다르지 않은가. 관객들의 감탄과 박수가 주연과 조연, 여성과 남성, 외모와 나이를 가리지 않는 이유를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다만,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연기를 모니터링 하지 않거나 애써 외면할 뿐. 그것이 이 책이 우리, 아니 나에게 던져 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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