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②

  

 

2. ‘미션 임파서블’과의 조우 : 내 안의 중심을 잃어버릴 때, 여행은 시작된다

 

   
 

제 막내아들 녀석이 <스타워즈>를 스무 번 아니면 서른 번쯤 본 것을 알고는, 제가 “너 그 영화를 왜 그렇게 많이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녀석 대답이, “이유는 아빠가 평생 <구약성서>를 읽는 것과 같지, 뭐”였습니다. 그러니까 제 막내아들은 새로운 신화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빌 모이어스, 이윤기 역, <신화의 힘>, 이끌리오, 2002, 54쪽.

 

 

   

  


 

   만약 인어공주가 바다를 떠나 왕자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웬디가 피터팬을 따라가지 않았더라면, 포르도가 반지원정대와 함께 길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은 안락하게, 이미 주어진 시스템 속에서 살아갈 수는 있었겠지만, 우리의 유년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언제든 기억의 서랍 속에서 꺼내볼 때마다 가슴 떨리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될 수 없지 않았을까. 끊임없이 영화나 드라마로 리메이크되는 옛이야기나 판타지물들은 저마다 드라마틱한 영웅서사의 플롯을 갖추고 있다. 이 영웅의 내러티브는 성인군자나 위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통과의례의 원형이다. <센과 치히로의 모험>의 도입부 또한 이런 영웅의 전형적인 모험의 서사를 품고 있다. 치히로는 헐리웃 블록버스터식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내면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는 어린 소녀를 깨워낸다.  

   치히로는 엄마, 아빠와 함께 이사를 가던 중 길을 잘못 짚어 낡은 터널을 지나게 된다. 자동차 뒷자석에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엄마, 아빠에게 심심하면 칭얼거리는 평범한 어린 소녀 치히로. 그녀는 낯선 학교로 전학가기가 싫어 심술이 잔뜩 난 상태다. 터널 저편에 어떤 세계가 있을까, 호기심이 일긴 하지만 아직은 새로운 세계가 마냥 두렵다. 엄마, 아빠와 함께 터널 저편으로 걸어가자, 폐허가 된 테마파크처럼 보이는 거대한 공터가 나타난다. 아버지는 무서워하는 치히로에게 호연지기를 가지라는 듯,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껏 잘난 척을 한다. “이건 테마파크 잔해야. 90년대 초 우후죽순같이 생기더니 거품경제 때문에 전부 망했지. 그 중 하나일 거야.” 그러나 왠지 괴기스럽고 음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공터의 분위기가 싫어, 치히로는 빨리 돌아가자고 한다.

   이때 아버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혹의 손길이 다가온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모퉁이를 돌아보니 음식점들이 빼곡히 도열해 있다. 주인도, 종업원도 없는데 음식 냄새의 유혹을 참지 못해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는 아빠와 엄마. “주인 오면 그때 돈 내지 뭐!” “그러지 뭐! 정말 맛있어. 너도 먹어봐.” 부창부수로 죽이 잘 맞는 엄마, 아빠는 치히로의 마뜩찮은 표정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마구 음식을 먹어댄다. 불안해진 치히로는 엄마, 아빠를 설득한다. “돌아가, 주인이 화낼 거야.” 아빠는 음식 맛에 취해 이미 정신이 없다. “괜찮아. 아빠가 있으니까. 카드도 있고 지갑도 있어. 너도 어서 먹으렴!” 게걸스레 주인 없는 음식을 먹어치우는 어른들의 탐욕에 놀란 치히로는 혼자 되돌아가겠다며 음식점을 나선다. 하지만 혼자서 돌아가기가 무서워진 어린 소녀 치히로는 다시 엄마, 아빠에게 돌아오는데.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엄마, 아빠의 얼굴이 돼지로 변해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이건 꿈일 거야, 빨리 깨어나자, 치히로는 스스로를 다그치지만 본래의 엄마, 아빠는 어디에도 없다.

   공포에 질려 엄마, 아빠에게서 도망치는 치히로 앞에 낯선 소년이 나타난다. 치히로를 보자 깜짝 놀란 소년이 외친다. “여긴 오면 안 돼! 어서 돌아가! 곧 어두워져, 그전에 돌아가!” 엄마, 아빠는 돼지로 변하고, 난생 처음 보는 아이는 ‘이곳은 출입 금지야’라는 메시지를 다급하게 보내고, 돌아가는 길은 알 수 없어져버린 치히로. 겁에 질려 정신을 잃을 지경인 치히로의 손을 잡고 소년은 일단 달린다. 그러나 허둥지둥하는 동안 이미 해는 져버리고, 낯선 소년은 치히로에게 무언가를 먹이려 한다. “입 벌려. 이걸 빨리 먹어. 이 세계의 것을 안 먹으면 넌 사라져.” 치히로는 도리질하지만 소년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어낸다. 모든 게 꿈이라고 믿고 싶지만 목구멍을 넘어가는 음식의 뻣뻣한 질감을 느끼며 비로소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지만 설마 엄마, 아빠가 돼지로 변한 것은 아니겠지, 내가 잘못 본 것이 아닐까. “우리 부모가 돼지로 변한 건 아니지?” 소년은 전혀 놀라지 않고, 이 세계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듯, 소녀를 위로한다. “지금은 힘들지만 꼭 만나게 돼.”

   소년은 이곳이 인간에게 금지된 구역이며 ‘유바바’라는 마녀가 지배하는 영토임을 알려준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고. 가마 할아범을 찾아가 일을 시켜달라고 부탁하라고, 힘들어도 참고 기회를 기다리라고. “그분께 일하고 싶다고 부탁해. 거절해도 끝까지 졸라. 일 안하면 유바바가 너를 동물로 만들 거야.” 소년의 말은 하나같이 알아듣기 힘들지만 치히로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자신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시련이 닥쳐왔으며 이 혼란스러운 미궁을 지금은 결코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이 세상의 가장 편안한 울타리였던 부모님에게도, 이사 오기 전의 그리운 친구들에게도 연락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소년은 나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내 이름을 부른다. “치히로. 내 이름은 하쿠야. 난 널 알아.” 우리는 정말 만난 적이 있었던 걸까.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세계에서 이 소년만은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나처럼 어리고 작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의 비밀을 알아버린 듯한, 서늘하면서도 외로운 인상을 풍기는 이 소년은, 마치 어떤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하러 날아온 전령 같다. 치히로 앞에는 어떤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영웅의 여정은 항상 부름으로 시작된다. 인도자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아라. 너는 지금 ‘잠든 땅’에 있다. 깨어나라. 여행을 떠나라. 저곳에 너의 의식의, 또한 너의 존재의 온전한 측면이 있건만, 아직 한 번도 손댄 적이 없었다. 그러니 너는 여기서 그냥 머물 것이냐?” (……) 그렇게 해서 여정이 시작된다. 모험에의 소명(부름)을 알리는 전령관 혹은 고지자는 어둡고, 징그럽고, 무섭고, 세상의 버림을 받은 존재인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소명에 다르면, 낮의 장벽을 통과해 보석이 빛나는 밤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부름은 곧 어떤 사회적 지위로부터 떠나라는, 즉 여러분 자신의 외로움 속으로 들어가 보석을 찾으라는, 즉 여러분이 사회적으로 속박되어 있을 때에는 찾기가 불가능한 것을 찾으라는 것이다. (……) 영웅이 뭔가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고, 그걸 찾으러 갈 때, 그게 바로 출발인 것이다. 여러분은 문턱을 넘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간다.  


-조셉 캠벨, 다이앤 오스본 편,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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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black 2009-08-25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식 속 썩이는 부모는 정말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you and I 2009-08-2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ㅋㅎㅎ 아무래도 치히로의 깨달음을 위해 부모님이 잠시 희생제물로 바쳐진 듯.^^* 어른들은 까먹어버린 아이들의 모험을 그리는 게 미야자키 하야오식인가봐요.

맨손체조 2009-08-25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문턱을 넘고 싶어요.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유럽으로 가고 싶어요^^* 그럼 다른 삶과 조우할 수 있을까요?

sotkfkd 2009-09-13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상자, 조셉 캠벨의 글 인용 부분, 둘째 문단 첫 번 째 줄 '다르면'은 '따르면'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잘 읽었습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Joseph Campbell) ①

  

 

1.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은 자라지 않는다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조셉 캠벨

 

 

   

   바야흐로 ‘소녀들의 전성시대’다. ‘국민 여동생’이라는 한국형 신조어는 21세기 대중문화의 트렌드를 압축하는 핵심적 문화적 코드가 되었다. 보아-문근영-김연아-원더걸스-소녀시대 등 성인을 압도하는 초특급 스타들로 이루어진 국민 여동생의 계보. 그들에 대한 대중의 열광 속에는 ‘영원히 자라지 않(고 싶어 하)는 우리 안의 소녀들’에 대한 키덜트(Kidult)적 감수성이 묻어 있다. 또한 인생의 복잡다단한 통과의례를 10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단기간 속성 코스로 끝내버리고자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속도의 정치’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한국의 소녀 스타들 뿐 아니라 <아이 엠 샘>을 통해 단숨에 전 세계 영화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다코타 패닝, <해리 포터>의 헤르미온느 역을 통해 10대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 엠마 왓슨 등도 이 ‘소녀 시대’의 문화적 트렌드가 단지 한국형 신드롬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10대에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을 다 경험해버린 듯한 이 소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은 하루도 빠짐없이 ‘검색어 순위’에 랭크되곤 한다. 

 

   언젠가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될지라도, 영원히 자라지 않는 우리 안의 소녀들에 대한 아련한 노스탤지아는 재패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감수성이기도 하다. 이 ‘국민 여동생’에 대한 대중의 열광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라지 않는 소녀들’의 차이라면, 그의 애니메이션 속 소녀들은 ‘실제 인물’을 대변하거나 ‘대중적 스타’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신화적 상징’을 품은 소녀들이라는 것이다. 몸은 10대 소녀지만 마음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급인 원령공주와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의 올망졸망한 자매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소피’, <천공의 성 라퓨타>의 ‘시타’나 <미래소년 코난>의 ‘라나’처럼 ‘구원의 여신’을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공동체의 신화에 등장하는 원형적 인물들이다. 이 소녀들은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그림체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현대화된 신화적 모티브를 구현한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유독 ‘소녀들’의 이미지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그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자연과 인간의 관계, 신화와 인간의 네트워크에 가장 친밀하게 맞닿아 있는 존재들이 바로 소녀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은 가공할 살상 무기나 엄청난 자본 없이도, 이 스펙터클한 무한 미디어의 세계에 균열을 내는 거대한 인류학적 화두를 감당해낸다. 이 작고 여린 소녀들이 감당해온 엄청난 테마들은 바로 문명의 빛이 죽여버린 어둠, 혹은 제국의 총칼이 훑고 지나간 야생의 지대, 그리고 자본의 미사일이 황폐화시킨 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어처구니없는 귀여움과 비현실적인 조숙함이 공존하는 이 소녀들을 보면,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 신화와 현실의 경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물샐 틈 없이 구분하던 ‘합리적 이성’의 방패를 슬그머니 내려놓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애니메이션을 만들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성인 관객들이 훨씬 많은 이유도, 어른들이 이 소녀들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들을 바라보면 이 무한 경쟁에서 다만 살아남기 위해 더럽혀진 어른들의 남루한 삶이 새삼 부끄러워진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낸 소녀들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피터팬 콤플렉스’와는 사뭇 다르다. 피터팬 콤플렉스가 ‘나름 괜찮았던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향수에 가깝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들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자기애적’이라기보다 ‘자기를 애지중지하느라 돌보지 못한 타인’에 대한 사랑을 환기시킨다. 

   
 

누군가가 아무도 몰래
작은 길에 나무 열매를 심고서
작은 싹이 돋아난다면
그것은 비밀의 암호
숲으로 가는 패스포트
멋진 모험이 시작됩니다 이웃집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옛날부터 숲 속에 살고 있는
토토로 이웃집 토토로
어린 시절에만 찾아오는 신기한 만남
비 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흠뻑 젖은 토토로를 만난다면
당신의 우산을 빌려주세요
숲으로 가는 패스포트
마법의 문이 열립니다
이웃집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달이 뜬 밤에 피리를 분답니다
이웃집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토토로
만약 토토로를 만나게 된다면
멋진 행복이 당신을 찾아옵니다  


-<이웃집 토토로> 주제가.

 
   

   나는 가끔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며 그들끼리의 가상 인터뷰를 기획하고는 한다. 만약 언어의 장벽도 시간의 장벽도 공간의 장벽도 사라진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와 가장 대화가 잘 통할 것만 같은 캐릭터가 바로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아닐까. 숲의 날짐승과 길짐승, 나무와 풀잎 하나하나, 돌멩이와 벌레 하나하나까지 사랑하고 아끼고 지키려 하는 나우시카와 원령공주는 조셉 캠벨이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아메리칸 인디언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동물들과 곤충들을 향해 거리낌 없이 언외언(言外言)의 대화를 나누는 나우시카 vs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부르며 대화했던 아메리카 인디언들. 숲의 정령을 지키기 위해 인간이 떠받드는 기술과 자본의 엄청난 힘과 싸우는 원령공주 vs 문명화된 미국인들이 어떻게 대지와 하늘과 강과 바람을 ‘사고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인디언 추장 시애틀.   
     

   
 

인디언들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그대’라고 불렀어요. 들소는 물론이고 심지어 나무, 돌 같은 것도 그렇게 불렀지요. 사실 이 세상 만물을 다 ‘그대’라고 부를 수 있어요. 이렇게 부르면 우리의 마음 자체가 달라지는 걸 실감할 수 있지요? 2인칭인 ‘그대’를 보는 자아는 3인칭 ‘그것’을 보는 자아와 다를 수밖에 없어요. 어떤 나라와 전쟁에 돌입하게 될 때, 언론이 노출시키는 가장 중대한 문제는 적국의 국민을 순식간에 ‘그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랍니다.  


-조셉 캠벨.빌 모이어스, 이윤기 역, <신화의 힘>, 2002, 155~156쪽.

 
   

   우리가 오늘부터 함께 떠날 신화 여행은 현대 문명이 ‘귀신’을 몰아낸답시고 함께 몰아내버린, 우리 안의 가장 귀한 것들을 찾아 떠나는 모험이 될 것 같다. 이 모험에 가장 잘 어울리는 동반자는 바로 센과 치히로,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와 조셉 캠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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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 2009-08-24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 미야자키 하야오와 신화라. 그리고 자라지 않는 소녀들^^* 벌써 다음회가 궁금해 집니다.

mr.black 2009-08-24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천진한 영화에서부터 흘러나올 철학적 사유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도로로커피 2009-08-2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맨날 일본어 노래로 아무 생각 없이 들었는데, 가사에 저런 뜻이 있군요. 순수하기도 해라. ㅎㅎ

doingnow12 2009-09-10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자키작품들을 보며 왜그렇게 가슴에서 뭉실뭉실 감정들이 피어나오는지를 꼭집어 표현할 수 없었는데 속시원합니다..ㅎㅎ미야자키작품이 주는 묵직한 감동들은 여울님이 표현한 나를 애지중지하느라 돌보지못한 타인에 대한 사랑.. 그것이 움찔움찔 마음을 그렇게도 동하게 했나봅니당..(>_<)캬..멋지셔요

sotkfkd 2009-09-13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대,
아름다운 우리 말!

러브 미 텐더 2009-10-06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안의 잃어버린 소녀들을 찾아 떠나는 신화 여행. 미야자키 하야오는 언제나 광대한 영감의 보고이지요~^^
 

 


영화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 - ⑩

 

10.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이제 윌과 숀의 심리 상담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스물한 살이 된 윌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평생 그의 인생을 밝혀줄 소중한 멘토를 얻었다. 숀으로 인해 윌은 자신의 빛을 가리고 있던 어둠의 실체와 대면했다. 윌의 고통은 단지 과거의 상처들만이 아니었다. 윌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바로 ‘내가 고통의 근원이다’라는 죄책감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잇따라 일어나는 불행의 씨앗이 바로 자신의 존재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어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자신의 인생을 내팽개치고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자신을 떠나도록 방치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행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 그것은 ‘모든 게 내 탓이다’ 혹은 ‘나는 저주받은 존재다’라는 치명적인 죄책감을 낳았다. 숀은 그런 윌의 자책감을 알고 있다. 숀은 자신의 과거 또한 윌과 비슷한 상처로 얼룩져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윌도 처음으로 스스로의 상처를 담담하게 고백하기 시작한다. 

 

   숀 :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이셨다. 늘 고주망태였지. 완전히 술에 찌들어서, 두들겨 팰 사람을 찾곤 했지. 난 엄마와 동생이 맞지 않게 하려고 먼저 덤볐지. 반지를 끼고 계신 날이면 더 볼만했어.
   윌 : 그 남자는…… 늘 탁자에 렌치와 각목과 혁대를 늘어놓고는, 절더러 선택하라고 했죠.
   숀 : 나 같으면…… 혁대로 하겠다.
   윌 : 전 렌치를 택하곤 했어요.
   숀 : 왜?
   윌 :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이었죠.
   숀 : 네 양부였니?
   윌 : 네……. 제 평가 결과는 어때요? 애정 결핍 같은 건가요?
   숀 : 이 기록들…… 모두 다 헛소리야. 네 잘못이 아냐.
   윌 : 알아요.
   숀 :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봐. 네 잘못이 아니야.
   윌 : 알아요.
   숀 : (숀은 윌의 내장기관까지 다 뚫어버릴 듯한 깊은 눈빛으로 윌을 바라보며 다시금 힘주어 말한다) 네 잘못이 아냐.
   윌 : 안다고요!
   숀 : (숀은 점점 윌을 벽 쪽으로 몰아세운다) 아냐, 넌 몰라. 네 잘못이 아니다.
   윌 : (윌은 숀의 집요한 반복에 분노와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안다니까요!
   숀 : (다시금 소름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같은 문장이지만 매번 다른 울림으로 윌에게 다가간다) 네 잘못이 아냐.
   윌 : (감정이 폭발하며) 알았으니까 성질나게 하지 말라구요!
   숀 : 네 잘못이 아니야.
   윌 : (이제는 절규하는 윌) 제발, 성질나게 하지 말란 말이에요. 선생님만이라도!  

   숀 : (숀은 여전히 놀라우리만큼 차분한 목소리로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한다. 네가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평생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숀은 이 짧은 문장으로 대신하는 듯하다) 네 잘못이 아니었어. 네 잘못이 아냐.
   윌 : (윌은 그제야 숀의 메시지를 알아듣고, 처음으로 울어버린다. 그리고 숀에게 안겨서 마음껏 운다) 젠장, 정말 죄송해요.
   윌 : (윌을 힘껏 품에 안으며) 다 잊어버려.

   내가 나를 해치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인간을 분석하는 그 어떤 이론도 살아 있는 인간의 상처에 완전히 다다를 수는 없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성실한 ‘개입’은 연민이나 분석, 해부나 비판이 아니라 다만 가만히 서로의 존재에 스미고 번지는 ‘행위’를 통해 천천히 일어난다. 겹겹이 쌓인 위악의 제스처들, 그 두터운 연기력의 각질을 벗겨내면, 윌의  상처의 뿌리, ‘죄책감’이 놓여 있다. 나는 재수 없는 아이, 내가 닿는 모든 것은 다치고 상하고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 어쩌면 처음부터 모든 것이 내 탓일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죄의식. 그곳을 향해 숀은 매번 다른 울림으로 번지는 주술적 언어, ‘네 잘못이 아니야!’로 다가갔다. 그 뿌리 깊은 죄의식을 떨쳐버리는 순간, 윌은 자유가 된다. 더 이상 심리 상담 같은 건 필요 없어진다. 상담 마지막 날, 윌은 자신이 ‘치료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배우려 하지 않던 이 오만한 청년은, 태어나 처음으로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게다가 그토록 윌의 취직을 바라던 램보 교수가 소개해준 굴지의 회사 ‘맥닐 사’에 입사하기로 결정한다. 드디어 윌은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발휘할 멋진 직장을 찾은 것이다.     

   윌 : 이걸로 끝인가요? 치료는 끝난 거예요?
   숀 : 그래. 넌 완치됐어. 이제 자유야.  
   윌 : 저기, 선생님께 정말…….
   숀 : 말 안 해도 알아. 네 마음을 따라 가렴. 그럼 괜찮을 거야. 
    

   윌은 부모도 형제도 없지만 그 어떤 부모 형제와도 바꿀 수 없는 친구 처키가 있음을 깨달았다. 사랑이라는 사슬로 자식을 옥죄는 부모가 아니라, 우정이라는 빛으로 친구의 어둠을 밝히는 처키와 그 일당들. 그들은 윌의 스물한 살 생일 선물로 자동차를 선물해준다. “축하한다, 짜샤!” 돈 없는 친구들이 여기저기 버려진 부속품들을 모아 뚝딱뚝딱 정성 들여 만든, ‘빈티지’형 자동차를 보며 윌은 자신이 이토록 큰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돈으로 살 수도 다시 기억하여 만들 수도 없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윌 헌팅 표 DIY 자동차. “나하고 빌리하고 부속을 모으고 모건이 매일 구걸을 좀 했지. 빌리하고 내가 엔진을 새로 만들었어. 스물한 살 생일 축하한다.” 태어나서 이렇게 못생긴 차는 처음 본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윌의 얼굴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던 덧없는 우울의 표정이 어느덧 완전히 걷혀 있다.  

   다음 날 아침, 처키는 여느 때처럼 어슬렁거리며 고물 자동차를 끌고 윌의 집으로 간다. 헤이, 윌, 어서 나와! 쿵쿵쿵!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늘 졸린 눈을 비비며 건들건들 처키를 향해 다가오던 윌이 보이지 않는다. 처키는 놀라움과 상실감이 복잡하게 얽힌 얼굴로 윌의 텅 빈 방을 바라본다. 이제 정말 내 소원이 이루어졌구나. 윌은 기별도 예고도 없이 떠났다. 누구의 말도 듣지 않던 윌이 드디어 내 소원을 들어주었다. 이제 윌을 볼 수 없지만 행복하다. 처키는 만족스러운 듯, 슬픔 따위는 이미 날려버린 듯, 여유롭게 웃으며 차에 탄다.

   한편, 골치 아픈 제자와의 아름다운 만남을 뒤로 하고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려던 숀은 우편함에 꽂혀 있는 쪽지를 발견한다.

 “선생님. 램보 교수님이 제 일자리 때문에 전화하시면,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꼭 잡아야 할 여자가 있거든요!”

   윌은 젊은 시절의 숀을 제법 그럴 듯하게 흉내낸 것이다. 첫눈에 반한 여자를 잡기 위해 역사상 최고의 야구 시합 입장권을 날려버린 숀의 로맨틱한 정신을 계승한 윌의 편지를 보며, 숀은 투덜거린다. “망할 자식, 감히 내 흉내를 내다니!” 숀은 그제야 모든 걱정을 덜어놓은 듯 행복한 표정이다. 윌은 멋진 직장으로의 취직을 포기하고, 스카일라를 찾아 떠난다. 취직은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에 치명상을 입고 홀로 떠난 연인 스카일라는 다시는 잡을 수 없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스스로 자폐를 선택한 천재 소년 윌 헌팅은 이제야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한다. 풀 패키지로 세팅되어 있는 완전한 사랑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두 사람이 만나 미래의 불안정함을 함께 견디는 것, 다만 둘이 함께 ‘시작’한다는 것이 소중한 일임을. 윌의 고물 DIY 자동차가 고속도로를 상쾌하게 활주하며 영화는  끝난다.

   수전 손택은 고통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구호물자만이 아님을 강조했다.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삶을 버티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처럼’ 사랑하고, ‘아주 좋은 시절처럼’ 꿈꿀 수 있는 문화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단지 의식주뿐 아니라 아름다운 것, 즐거운 것, 감동적인 것을 꿈꿀 권리가 필요하다. 수전 손택이 감행했던 어떤 날카로운 평론보다 매혹적인 ‘평론 활동’은,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던 사라예보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했던 일이었다. 모두가 의심스런 눈초리로 수전 손택에게 물었다. 언제 폭탄이 떨어져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서, 연극이 가당키나 하겠냐고. 게다가 슬픔을 잊을 만한 유쾌한 공연도 아니고, <고도를 기다리며>라니, 너무 우울하지 않냐고. 도대체 사람들이 연극을 보러 오기는 하겠냐고. 수전 손택은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폭격으로 망가진 사라예보의 이미지만 생각하느라, 사라예보가 과거에 활기 넘치고 매력적인 수도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하다. (……) 재능 있는 배우들이 여전히 사라예보에 있듯이 교양 있는 관객들도 여전히 사라예보에 있다. 단지 과거와 차이가 있다면, 배우들과 관객들이 극장을 오가다 폭격을 맞거나 총격을 당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뿐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관 밖을 나섰을 때뿐만 아니라, 침실에서 잠을 잘 때, 부엌에 뭔가를 가지러 갈 때에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수전 손택, 김유경 역, <강조해야 할 것>, 시울, 2006, 407~408쪽.

 
   

   그녀는 오래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흡사 사라예보를 위해, 사라예보를 향해 창작된 듯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며 사라예보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다. 물도 없고 화장실도 고장난 열악한 상황에서, 매일 폭탄 소리를 들으면서도, 언제 우리가 공연 중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고도를 기다릴 수 있는 자유, 예술을 만끽할 수 있는 자유, ‘우리가 혼자가 아님’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유를, 사라예보 사람들은 생면부지의 뉴욕 비평가와 함께했다. 그녀는 전쟁의 고통에 빠진 사람들이 모두 현실도피적인 오락물만을 원할 것이라는 통념과 싸웠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사라예보 사람들도 자신이 처한 현실을 예술로 변형하고 확인하는 것에서 오히려 힘과 위안을 얻는다.” (위의 책, 409쪽) 전쟁이 일어나도, 내 옆의 사람이 죽어가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살아 있다는 것을 가장 뜨겁게 확인하는 길은, 단지 우리가 먹고 입고 싸는 동물만이 아님을 깨닫는 일은, ‘예술’과 함께하는 일임을, 수전 손택은 온몸으로 증명했다.

   
 

문화, 특히 진지한 문화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사라예보 사람들이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 존엄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 예를 들면 화장실이 오물통이 되지 않도록 변기에 물이 나오게 하는 데 거의 하루 종일 매달리면서 굴욕감을 느끼는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공공장소로 가서 줄을 서 떠온 물을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다. 이런 굴욕감은 공포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사라예보의 연극관계자들에게는 큰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해왔던 일을 계속한다는, 즉 자신들이 정상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고작 물 긷는 사람이나 인도주의적 원조를 받는 수동적인 사람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사라예보에서는 자신의 일을 계속 하는 사람을 가장 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와 배우들은 월급을 받지 않았다. 다른 연극인들도 기꺼이 우리 리허설에 참석하곤 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작품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매일 극장에 간다는 사실이 좋아서였다.
연극을 공연한다는 것은 하찮은 일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성을 표현하는 즐거운 일인 셈이다. 
 

-위의 책, 412~413쪽.

 
   


   월급은 꿈도 꾸지 못하고, 조명도 화장실도 물도 없는 무대에서, 배우가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호텔 식당 쓰레기통을 뒤져 빵을 찾아내 스텝들과 나눠 먹으며, 고도나 클린턴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오지 않는 소품을 기다리며, 수전 손택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문학은 우리 아닌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능력을 길러주고, 발휘하도록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이나 우리의 문제 아닌 다른 문제에 감응할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자신을 잊을 능력이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겠습니까?  


-수전 손택, 이재원 역,<타인의 고통>, 2004, 208쪽.

 
   

   내 몸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앓는다는 것. 그것은 연민이나 동정이나 분석이나 평가가 아니라, 그들 삶을 향한 완전한 몰입, 나를 잊어 너를 꿈꾸는 절실함이다. 아무런 ‘실용성’이 없지만, 나 아닌 타자의 욕망을 상상하게 만드는 공감의 장치, 내가 아닌 타자의 삶을 살아내는 망아(忘我)의 탈주. 그것이 예술의 힘 아닐까. 수잔 손택은 『문학은 자유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이 모든 불운의 감옥에서 탈주하여 자유의 공간으로 진입할 수 있는 여권이라고. “문학, 그것도 세계 문학에 다가간다는 것은 국가적 허영심, 속물 근성, 강제적인 편협성, 어리석은 교육, 불완전한 운명, 불운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은 광활한 현실로, 즉 자유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여권이었습니다. 문학은 자유였습니다. 특히 독서와 내면의 가치가 엄청난 도전을 받고 있는 이 시대에도 문학은 자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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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08-21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게도 그런 '여권'을 보내주세요, 여울님^^*

루비 2009-08-2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친구들이 만들어준 DIY 자동차, 완전 뭉클했지요. 윌에겐 그 고물자동차가 광활한 현실로 들어가는 멋진 여권....

기름종이 2009-08-2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익후, 이 영화 한 번 봐야겠네요. 줄거리 듣는 것만으로도 소름끼쳐.;; 재밌을 듯.

sotkfkd 2009-09-13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은 자유이다.
감동적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처키를 위해서 감사의 기도를!
잘 읽었습니다.

프라푸치노 2009-10-06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불운의 감옥에서 탈주하여 자유의 공간으로 떠날 수 있는 여권! 가슴이 마구마구 뜨거워집니다. 콩당콩당 두근두근....
 

 


영화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 - ⑨

 

9. 나는 두렵다, 진짜 나 자신을, 만나게 될까 봐……   

   

   연민은 ‘고통받고 있는 타자’와 ‘아직 멀쩡한 자신’을 가르는 분계선이다. 연민은 고통받는 타자를 바라볼 때 주체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매우 편안한 안전장치다. 연민은 정치적으로 수동적인 혹은 보수적인 자신의 현상태를 은폐하며 ‘나는 여기에 있고, 너는 거기에 있다’는 괴리감을 심화시킨다.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할 수 없다’는 판단을 공고화한다. 나의 행복이 너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가능성으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심리, 거기서 연민이 탄생한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보는 것, 그래서 (……)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수전 손택, 이재원 역, <타인의 고통>, 이후, 2004, 154쪽.

 
   

    램보도 스카일라도 윌에 대한 연민을 멈추지 않는 한 그와 진정으로 대화할 수 없다. 윌은 스카일라의 사랑을 연민으로 오해하고, 그녀의 사랑이 지금은 진실일지라도, 언젠가는 연민으로 변질될까 봐 두려워한다. 램보는 윌의 천재적 두뇌가 세상에 유익하게 쓰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숀의 입장은 다르다. 숀은 스승이 제자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조작’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안다. 지금 윌에게 필요한 것은 연민의 함정을 뛰어넘어 타인과 당당한 관계를 맺는 것이며, 지식을 ‘어디에 쓸 것인가’보다 ‘어떻게 쓸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램보는 인정하지 않는다. 

   숀 : 이봐, 내 말 잘 들어. 윌이 왜 현실을 회피하고 왜 아무도 못 믿을까? 그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이야.
   램보 : 젠장! 프로이드 타령 그만 해! 
   숀 : 그 애가 어떤 앤 줄 아나? 사람들이 자길 떠나기 전에 먼저 떠나게 만들고 있어. 바로 방어 심리라구, 알아? 그 때문에 20년이나 외롭게 산 애야. 지금 자네가 그 앨 몰아치면 또 그 악순환이 반복돼.

    램보는 ‘빨리, 더 늦기 전에,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인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숀은 ‘아직 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며, 스스로 길을 찾도록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램보는 윌이 인생에서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지만, 숀은 윌이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이제 숀은 더 이상 에둘러가지 않고, 윌의 상처의 뿌리에 다다를 직선주로를 찾는다. 

 

   숀 : 세상에 너 혼자 있는 것 같니?
   윌 : 네? 
   숀 : 영혼의 짝이 있어? 
   윌 : 무슨 뜻이죠? 
   숀 :널 북돋아주는 사람 말야. 
   윌 : (약점을 들켜 뜨끔한 듯, 그러나 별로 망설이지 않는 척) 처키요. 
   숀 : 처키는 널 위해 목숨도 내놓을 가족 같은 애지. 그런데 영혼의 짝이란 네 마음을 열고 영감을 주는 존재야. 
   윌 : (당황한 눈치지만 대수롭지 않은 듯) 그런 친군 많아요. 
   숀 :이름을 대봐. 
   윌 : 셰익스피어, 니체, 프로스트, 칸트, 교황님, 로크 등! 
   숀 : 모두 죽은 사람들이잖아.  
   윌 : 제겐 아니에요. 
   숀 : 하지만 대화를 할 수 없잖니. 서로 교감할 수가 없어. 
   윌 : (시니컬한 표정으로) 뼈다귀만 남아 있겠죠. 
   숀 : 내 말이 바로 그거야. 네가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평생 그런 친구는 사귀지 못해. (……) 넌 무엇에 열정을 갖고 있지? 원하는 게 뭐야? 평생 벽돌공으로 산 사람들도 자식만큼은 너와 같은 기회를 얻길 바라고 있어. 
   윌 : 제가 원한 건 아니에요. 
   숀 : 그래, 타고났지. 그러니까 원치 않았다는 말로 빠져나갈 생각 마. 
   윌 : 빠져나가다니요? 게다가 벽돌공이 어때서요? 딴 사람의 집을 짓는 일은 고귀한 거라고요. 
   숀 : 알아, 우리 아버지도 벽돌공이었어. 날 교육시키려고 허리가 끊어져라 일하셨지. 
   윌 : 바로 그거예요. 아주 고귀한 직업이라고요. 정비공은 또 어때요? 덕분에 사람들이 출근하잖아요. 
   숀 : 그래. 모든 직업은 귀해. 40분씩 전철을 타고 가서 대학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청소부 일도 그렇지. 아마 그래서 네가 청소부를 택했을 거다. 하지만 한 가지 물어보마. 청소부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었어. 근데 왜 하필 세계 최고의 MIT에서 일하기로 했지? (비밀을 들켜 당황한 윌, 그런 윌을 집요하게 바라보는 숀.) 왜 밤에 칠판 앞에서 어슬렁대며 세계에서 몇 명만이 풀 수 있는 문제를 푼 거야?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는, 아니 모른 척하는 윌. 그는 진정으로 원하는 것 앞에 설 때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앞에 설 때마다, 딴청을 부리거나 위악의 제스쳐를 취한다. 그러나 아무리 숨기려 해도, 진정 원하는 것은 내 의지의 검열을 넘어 어떻게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야?”라는 단순명쾌한 질문 앞에서 윌은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댄다.
    그는 셰익스피어, 니체, 프로스트, 칸트, 교황님, 로크 등등 위대한 고인들과 멋들어진 가상 인터뷰를 나누지만 그의 곁에서 살아 숨 쉬는 여자 친구에게는 솔직한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죽은 멘토들에게는 밤마다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야기하면서 살아 있는 스승 숀과 램보에게는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윌. 정말 원하는 게 뭐냐고 다시 한 번 묻는 숀에게, 윌은 목동이 되어 양이나 치고 싶다며 느물거린다.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다보니 진짜 나의 모습이 원래 어땠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한편 스카일라는 캘리포니아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윌과 통화를 한다. 윌에게 그토록 박대를 당했건만 스카일라의 사랑은 오히려 깊어진 듯하다. 아직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윌과 함께 떠나고 싶어 한다. 그녀는 다시 한 번 윌에게 손을 내민다. 긴 말은 필요 없다. “윌, 사랑해…….”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널 사랑해, 혹은 네가 날 믿지 않아도 난 널 믿어,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스카일라의 속삭임은 그렇게 아프게 가슴을 할퀸다. 윌은 가슴이 터질 것 같지만 아직도 그녀에게로 완전히 스며들 용기가 없다. 스카일라는 떠나고 윌은 다시 혼자 남는다. 그러나 윌은 정말 혼자였을까?


 

   처키 :  교수님들과의 일은 어때? 다음 주면 스물한 살이 돼. 일자리 같은 거 마련해주신대?
   윌 : 그래, 앞으로 50년간 책상머리에 붙어 있으래.
   처키 : 그래도 돈은 많이 벌겠다.
   윌 : 실험실 생쥐 꼴이 되는 거지.
   처키 :  그래도 여기서 탈출할 순 있잖아.
   윌 :왜 탈출해? 난 평생 여기서 살 작정이야. 너하고 이웃에 살면서. 애도 낳고 리틀 야구장에도 함께 가고 말이야. 
   처키 :  넌 내 친구니까, 이런 말 한다고 오해하지 마. 20년 후에도 여기 살면서 노무자로 일하며 우리 집에 와서 비디오나 때리고 있으면 널 죽여버릴 거야. 장난 아냐. 정말 없애버릴 거야. 
   윌 : 젠장, 무슨 소리야? 
   처키 : 넌 우리한테 없는 재능을 가졌어. 
   윌 : 젠장, 다들 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난리야? 난 이 일이 좋다고! 
   처키 : 아냐, 이 빌어먹을 자식! 널 위해서 그러는 게 아냐. 날 위해서라고! 나이 50이 돼도 난 육체노동을 하고 있을 거야. 그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넌 지금 당첨된 복권을 깔고 앉아 너무 겁이 많아 돈으로 못 바꾸는 꼴이라고. 병신 같은 짓이지. 네게 있는 재주를 가질 수 있다면 난 뭐든 할 거야. 여기 친구들도 마찬가지야. 네가 여기서 20년이나 곯는 건 우리에 대한 모욕이야. (……) 매일 아침 너희 집에 들러 널 깨우고 같이 외출해서 한껏 취하며 웃는 것도 좋아. 하지만 내 생애 최고의 날이 언젠지 알아? 내가 너희 집 골목에 들어서서 네 집 문을 두드려도 네가 없을 때야. 안녕이란 말도, 작별의 말도 없이. 네가 떠났을 때라고. 적어도 그 순간만은 행복할 거야.

 

   이상하다. 두렵고 무섭다. 평생 나와 함께 술 마시고 마음껏 취하며 ‘세상 뒷담화’를 나누고 육두문자로 난무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몸싸움도 하고 음담패설을 하며 함께 늙어갈 것만 같던 배꼽 친구 처키. 내 친구 처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나보다 날 더 잘 아는 사람이, 너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는데. 예고도 인사도 없이 나와 헤어지는 것이 꿈이라니, 그게 너의 우정이라니. 나와는 평생 인연이 없었을 것 같은 구원, 혹은 희망이라는 단어가 늘 ‘함께 망가지던’ 친구 처키에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윌의 눈빛은 깊게 흔들린다. MIT 교수 램보와 최고의 정신과 의사 숀과 매력적인 하버드생 스카일라의 삼중협공에도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던 윌의 마음의 문이, 드디어 활짝 열리기 시작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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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2009-08-20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밴 에플렉의 저 대사, 정말 멋졌지요...저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이 영화에 나왔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 명대사, 캬...쏘주를 부르는. ㅋㅎㅎ

mr.black 2009-08-2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윌의 주변에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군요. 오늘은 나도 저녁에 나의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겠네요. ^^

sotkfkd 2009-09-13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민은 고통받고 있는 타자와 아직 멀쩡한 자신을 가르는 분계선이다.

우리 모두에게 각각 처키 같은 친구가 있기를!
 

 


영화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 - ⑧

 

8. 난, 널, 사랑하지 않아……

  

   
 

응시 

내 귀는 네 마음속에 있다.
그러니 어찌 네가 편할 것인가.
그리고 내게
네 마음밖에 그 무엇이 들리겠는가. 
 

―황인숙, <슬픔이 나를 깨운다>, 문학과지성사, 1994, 109쪽.

 
   

   사랑하면, 굳이 청진기를 갖다 대지 않아도 그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리고, 사랑하면, 굳이 녹음기를 틀지 않아도 그의 목소리를 재생할 수 있다. 스카일라의 귀도 윌의 마음 안에 있다. 늘 아무렇지 않은 듯 건들거리며 농담 따먹기를 일삼는 윌의 표정 뒤에 숨은 두려움을, 그녀는 듣는다. 윌도 편하지 않다. 그녀의 귀가 내 마음에 자리했으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녀에게 낱낱이 들키게 되어 있다. 그토록 감추고 또 감췄건만, 그녀는 내 두려움을 듣기 시작했다. 이제는 함께, 그 두려움의 터널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들은 처음으로 그 두려움의 실체를 마주한다.  

   스카일라 : 뭐가 그렇게 두려워?
   윌 : 뭐가 두렵냐고?
   스카일라 : 두려워하지 않는 게 있기나 해? 아무도 도전하지 않는 안전한 세계에 살면서 자신이 변하게 될까 봐 아무것도 못하잖아!
   윌 : 내 세계가 어떤지 뭘 안다고 그래? 어차피 난 네게 출신 천한 장난감일 뿐일 텐데. 결국엔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부자 놈과 결혼해서 친구들에게 재미 삼아 내 얘길 하게 되겠지.
   스카일라 : 왜 그런 잔인한 말을? 돈에 왜 그리 집착해? 내가 13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유산을 상속받았어.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가능하다면 그 돈을 돌려주고 싶었어……. 당장이라도 말야. 아버지와 하루라도 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말야. 두려워하는 건 너 자신이면서 괜히 내게 퍼붓지 마!
   윌 : 두려워 해? 대체 내가 뭘 두려워한단 거야?
   스카일라 : 날 두려워하잖아. 내가 사랑해주지 않을까 봐서! 하지만 나도 두려워! 하지만 노력은 해보고 싶어. 적어도 너에겐 정직하고 싶다고!
   윌 : 그럼 난 정직하지 못하단 거야?
   스카일라 : 형제가 열둘이란 거 정말이야? (당황한 윌은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자 아직 그들이 나눈 사랑의 온기가 식지 않은 스카일라의 방을 나가버리려 한다) 어딜 가는 거야? 가지 마!
   윌 : 알고 싶은 게 뭐야? 형제가 없다는 거? 내가 빌어먹을 고아라는 거? 까놓고 얘기할까? 어렸을 때 양부가 담뱃불로 피부를 지졌어. 이건 뭔 줄 알아? 수술 자국이 아니라 놈이 칼로 찌른 상처야! 정말 이따위 것들을 알고 싶어?
   스카일라 : (그녀는 어느새 흐느끼고 있다) 돕고 싶어서 그래!
   윌 : 돕겠다고? 내가 언제 도와달라고 한 적 있어? 내가 불쌍해 보여?
   스카일라 : 널 사랑하니까 함께 있고 싶을 뿐이야!
   윌 : 헛소리 집어 치워!
   스카일라 : 널 사랑해……. 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말해줘. 그러면 다시는 전화도 안 하고 영원히 사라져줄게…….
   윌 : 난, 널, 사랑하지 않아!

 

   윌의 마음에 잠긴 스카일라의 귀가 조금만 더 예민했다면, 그녀는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지금 윌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한 이분법적 판단이 아니다. 윌 자신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하지 않는 한, 그들의 사랑은 지속될 수 없다.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간 그녀의 귀가 조금만 더 밝았다면, ‘널 사랑하지 않는다’는 결의에 찬 고백이 곧 처음 만나는 사랑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워진 윌의 반어법이었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토록 괴로워할 이유도 없을 테니까. 사랑하지 않는다면, 온몸에 난 끔찍한 상처를 보여주기 싫어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자신의 내면을, 자신도 모르게 폭로해버릴 필요도 없을 테니까.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난 널 사랑하지 않아’라고 마치 자기 자신을 향해 저주를 내리듯 뇌까릴 필요가 없을 테니까. 그녀는 무방비상태에서 윌의 상처 속으로 돌진하다가 스스로 이마를 부딪쳐 치명상을 입고 만다.

   스카일라와 숀과의 만남으로 서광이 비쳤던 윌의 삶에는 다시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윌을 세상 밖으로 꺼낸 램보 교수는 윌에게 멋진 일자리를 주선해주지만 윌은 그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린다. 맥닐 사의 면접 당일에 친구 처키를 대신 보낸 윌의 만행(!)을 알고 천하의 모범생 램보 교수는 분노한다. “네 시간엔 뭐를 하든 상관 않겠다. 하지만 내가 주선하는 자리에 나타나지 않으면 내 신용까지 영향받게 돼.” 윌은 또 다시 반항기 가득한 표정으로 건들거리며 말한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주선하지 마세요.” 램보는 당혹스럽다. 윌을 감옥에서 꺼내준 것도, 숀과 만나게 해준 것도, 모두 램보 자신인데, 램보를 바라보는 윌의 눈길은 경멸로 가득하다. 더 이상 윌의 눈빛을 참기 힘든 램보도 히스테리컬하게 반응한다. “조금은 감사해야 하는 거 아냐?”
    윌은 감사는커녕 지겹다는 듯이 램보를 밀어붙인다. 윌이 누워서 떡 먹는 기분으로 쉽게 푼 문제를 램보가 풀지 못했다는 사실을 교활하게 이용한다. “감사요? 내게 이런 건 너무 쉬워서 장난 같다구요! 그걸 교수님이 못 풀다니 정말 안됐군요!” 윌은 자신이 푼 문제의 풀이과정을 적은 종이를 보란 듯이 태워버리고, 램보는 그동안 쌓아왔던 완벽한 젠틀맨의 이미지를 형편없이 구기며, 훨훨 타오르는 종이를 살려내느라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슬라이딩을 한다. 램보는 타버린 종이를 붙들고, 더 없이 비애로 가득 찬 표정으로 고백한다. “네 말이 맞아. 난 이걸 증명할 수 없다. 하지만 넌 재능이 있어. 솔직히 말하면 그걸 눈치 챌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된다. 널 차라리 못 만났더라면 할 때도 있어. 그럼 밤에 잠 못 이루지도, 세상엔 너 같은 인재들이 많을 거란 생각도, 안 했겠지. 재능을 헛되이 쓰는 걸 보지 않아도 되고 말야…….”

   램보는 질투와 연민과 애정으로 난마처럼 얽혀 있던 자신의 마음을 그제야 고백하지만 윌은 여전히 냉혹한 시선으로 램보를 쏘아보다 떠나버린다. 이제 모두가 깨달았다. 사랑스럽지만 두려운, 윌에 대한 연민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리 윌에게 진심을 보여준다 해도 윌이 스스로 위악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진심 어린 사랑 또한 윌의 마음에 가 닿지 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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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페 2009-08-19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황인숙 시인의 시가 텅 빈 가슴을 두드리네요...내 귀는 누구 마음에 들어갔는지...들어간 적이 있기는 한 건지...^^

mr.black 2009-08-1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아하면서도, 사랑하면서도 우리는 가끔 반대로 말하곤 하지요.

NA0217 2009-08-20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런 속 썩이는 남자 친구;; 정말 밉다능 ;ㅁ;

sotkfkd 2009-09-13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카일라, 램보의 노력이 더 필요하겠지요. 미미한 상처라도 당사자는 최고로 힘이 드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