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⑨

 

9. 우린 같은 기계의 부속품이야…… (2)

   
 

푸코는 주먹다짐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용기란 육체적인 것 말고는 없다”고 규정했다. 용기, 그것은 용기 있는 육체다. (……) 노동자 계급의 노동이 아니라, 육체가 착취당한다. 시민들은 군대식 규율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들의 육체는 훈육되고 길들여지며 그 위에 권력이 행사된다. 감금 체계는 육체들을 가둔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222쪽. 

 
   

   자신을 죽이러 온 요원을 살해한 후, 제이슨 본은 비로소 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한다. 나와 관련 있는 모든 사람들이 위험해질 것이다. 지금 가장 위험한 사람은 내 곁의 그녀, 마리다. 그는 마리의 가족들을 대피시키면서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돈을 마리에게 주기로 작정한다. 트레드스톤의 보이지 않는 원형 감옥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돈이니까. “모두 가져가요. 끝없는 싸움이에요, 마리. 당신은 빠져요, 나한테서 떠나요. 먹고 살기에 충분한 돈이 들었어요. 마음껏 쓰면서 살아요.” 마리는 자신을 향한 제이슨의 진심을 읽어내고 망설이지만,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일단 목숨을 보장받을 수 없다. 

   오랫동안 잃어버린 기억을 찾았을 때, 비로소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때, 그렇게 찾은 내가 결코 ‘내가 원하는 나’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까. 차라리 나를 찾지 않는 것만 못하다면, 잃어버리는 것이 훨씬 나은 나라면 어떻게 할까. 제이슨은 아직 자신을 완전히 되찾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육체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본래 이름도 가족도 출생지도 생각나지 않지만, 나는 분명 나 자신의 인생보다 조직의 목표를 위해 훈련된 인간일 것이다.
   마리를 떠나보낸 후, 제이슨은 트레드스톤과 직접 교섭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제 나를 찾기 위한 수동적인 대처가 아니라,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싸움을 걸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인연을 끊는 것이다. 나는 나를 잘 모르지만 ‘과거의 나’가 결코 되찾고 싶지 않은 나라는 것만은 알 것 같다. 제이슨은 자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마리를 살리기 위해서 마리를 ‘이미 죽은 사람’으로 만든다. 


   제이슨 : 네가 보낸 사내는 죽었다. 그러니 어서 대화를 시작하자. 
   콩클린 : 그 여자는?
   제이슨 : 그녀는 죽었어.
   콩클린 : 안됐군, 어쩌다 죽었어?
   제이슨 : 방해가 되더군. (……) 파리에서 5시 반에 만나. 오늘, 퐁네프에서. 혼자 와, 다리 한가운데까지 혼자 와서 거기서 재킷을 벗고 동쪽을 봐.

   그러나 콩클린은 약속 장소에 혼자 오지 않는다. 그는 조직의 기동력과 조직의 권력 없이는 한시도 안심할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조직의 허물을 벗기고 나면 한없이 나약하고 겁 많은 존재일 것만 같다. 조직의 권력이 곧 나 자신의 권력이라 착각하는 인물의 전형인 것이다. 반면 제이슨 본은 조직의 허물을 벗겼을 때 비로소 진면목이 드러나는 인간이다. 비록 엄청난 사건 뒤의 충격으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제이슨의 등에 두 발의 총을 쏜 움보시 덕분(?)에 제이슨은 비로소 잃어버린 자신을 찾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이슨은 결코 조직의 논리로 자신의 삶을 덮어버릴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제이슨은 결국 콩클린의 숙소에 직접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조직의 견고한 탈을 벗긴 인간 콩클린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그가 잠들기 직전일 테니. 제이슨의 갑작스런 등장에 겁에 질린 콩클린, 이제 그의 입에서 제이슨의 비밀이 누설될 차례다. 

    제이슨 : (겁에 질린 콩클린을 향해 총을 겨누며) 총 버려!
    콩클린 :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듯 두리번거리며) 그러지,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제이슨 : (……) 네가 트레드스톤이야?
    콩클린 : 내가 트레드스톤이냐구? 무슨 얼어 죽을 소리람? 아주 미쳤군.
    제이슨 : 당장 설명하란 말이야!
    콩클린 : 우린 한편이었잖아.  
    제이슨 : 어떻게 한편이었지?
    콩클린 :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단 말이야?
    제이슨 : 기억이 안 난단 말이지! 난 누구지?
    콩클린 : 넌 미국 정부의 소유물이야! 통제 불능의 삼천만 달러짜리 무기지! 넌 빌어먹을 대 실패작이야! 하지만 이 지경이 돼버렸어도, 넌 나에게 경과보고를 해야 해. 대놓고 죽이라고 널 보낸 게 아니야.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라고 널 보낸 거야. 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널 보낸 거야!

   
 

요컨대, 범죄의 존재는 다행스럽게도 ‘인간성의 강인함’을 나타내며, 그런 만큼 실제의 범죄에서 보아야할 것은 유약함이나 질병이라기보다는 굽힘없이 솟구치는 에너지, 즉 모든 사람들의 눈에 이상한 매력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인간 개인의 강력한 저항’이다. (……) 범죄는 흑인해방의 경우처럼, 때에 따라서는 우리 사회의 해방을 위해서도 소중한 정치적 수단이 될 수 있다. 흑인 해방이 범죄 없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독약, 방화, 그리고 때때로 폭동까지도 사회적 조건의 극단적인 비참을 입증하는 것이다. 
  

 -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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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1-25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용기 있는 육체"와 세 번째 사진이 연결되면.....음.....

둥이 2009-11-25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손체조님 무슨 상상을...
우리 마눌님은 나에게 "용기 있는 육체"이길 바라는건가^^
난 겁쟁이^^

starsailor 2009-11-25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용기 있는 육체, 아, 그것만 있다면 마치 만능열쇠를 얻은 듯 할 텐데. 이노무 귀차니즘에다가 먹고사니즘 때문에^^

doingnow12 2009-12-03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있는육체가 되려고 이렇게 살이 찌는걸까요? ㅠ_ㅠ아 괴롭다..ㅋㅋㅋ 저도 귀차니즘에 먹고자기즘..ㅋㅋㅋ

love hurts 2009-12-14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먹고자기즘! ㅋㅎㅎ 완전 웃겨요^^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⑧

 

8. 우린 같은 기계의 부속품이야…… (1)

   
 

날마다 응접실에서 ‘상벌수여’가 이루어진다. 아무리 사소한 반항에도 징벌이 가해지는데, 중대한 위반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무리 가벼운 과실이라도 매우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이다. 메트래에서는 심지어 쓸데없는 말 한마디까지도 처벌된다. 부과되는 처벌 가운데 주된 것은 독방 수감이다. 

 
 -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6쪽.

 
   

   푸코는 근대적 감옥 시스템의 초기 모델을 메트래(Mettray) 소년감화원에서 찾는다. 수도원과 감옥과 학교와 군대의 훈육 프로그램이 황금 비율로 결합되어 있는 곳. 수감된 아이들이 ‘매를 맞느니 차라리 독방 수감이 훨씬 좋다!’고 절규하던 곳. 메트래 소년감화원이 문을 연 1840년이야말로 푸코가 규정하는 ‘근대적 감옥의 탄생원년’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 현대인들은 ‘좀더 나은 감옥’을 갖게 되었는가. 마리와 크루츠를 추격하던 트레드스톤의 행동대장 콩클린의 태도를 보면, 현대인은 언제든 감옥 바깥에서도 감옥 못지않게 철저히 감금될 수 있는 신체가 된 것 같다. 현대사회가 원하는 순종적인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 굳이 감옥의 각종 시설을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인터넷만으로도 우리는 훌륭한 정보화 감옥의 죄수가 된다. 


    콩클린 : (지도 위의 노란 표적을 가리키며) 그래, 이 노란 표적은 뭐지?
   요원 : 그녀가 97년에 몇 개월 머문 곳입니다. 리옹 시에서 가까운 곳입니다.
    콩클린 : 이곳들이 표적이야! 구걸, 탈취, 구타, 도청, 신호 위반! 뭘 해도 좋아! 이 장소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게 보고할 수만 있다면 말이네.
 (……)
    요원 : 국제전화를 포함해, 그녀 가족들의 통화 내역을 모두 조회했습니다. 그들은 새벽 2시에 파리에 있었어요. 비행기는 못 탔을 거예요, 기차는 들킬 위험이 너무 많고 그는 추적당할 염려가 없는 곳으로 가려고 할 테죠. 우리의 추측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이슨과 마리를 찾기 위해 그들은 모든 악행을 정당화 한다. 구걸, 탈취, 구타, 도청, 신호위반. 그 모든 것이 허용된다. 어디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현대사회는 감옥 바깥조차 감옥의 시스템으로 통치되는 개방형 원형감옥일지도 모른다. 마리 가족들의 전화를 깡그리 도청하고 마리의 최근 행적을 조회해본 결과, 제이슨과 마리의 위치는 도주한 지 하루도 안 되어 발각되고 만다. 극도로 예민한 제이슨 또한 마리의 오빠 집에서 편안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아무도 없을 줄 알고 방문한 이 집에 마리의 오빠뿐 아니라 아이들까지 모두 있다니. 혹시 나 때문에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어딜 가나 그들은 분명 곧 나를 찾아낼 텐데, 아무리 도망친들 뭐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꼭 밝혀야만 할까?

    마리 : 여기서 뭐해요?
    제이슨 : 애들 걱정이요, 잘 수가 없어요.  
    마리 : 애들 깨겠어요, 나갑시다.
    제이슨 : (전에 없이 흥분하여 평정을 잃고) 난 더 이상 내 존재가 궁금하지 않아요. 상관없어요, 알 필요 없다고요. 지금까지의 일은 다 잊겠어요. 내가 누구이든 무슨 짓을 했든 신경 안 써요! 우린 돈이 있어요! 숨어 살아요! 그럴 수 있겠어요? 당신도 그럴 수 있겠죠?
    마리 : (불안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모르겠어요…….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일을 완전히 포기해버리고 싶은, 그 길고도 긴 밤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제이슨은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이 숨 막히는 추격전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자신의 신원을 알든 모르든 그는 지금 ‘제거 대상’일 뿐이다. 마리와 제이슨에게 세상에서 가장 기나긴 밤이 끝나고 드디어 아침이 밝아온다. 이른 아침부터 제이슨은 자신을 둘러싼 ‘포식자’의 기운을 예리하게 감지한다. 제이슨은 마리와 가족들을 재빨리 대피시키고 자신을 추격하는 침략자를 멀리 야외로 유인한다.
   이번에 제이슨을 죽이기 위해 파견된 트레드스톤 요원(클라이브 오웬)은 한층 현란한 사격솜씨와 화려한 액션으로 제이슨을 압박한다. 둘 사이의 숨 막히는 추격전과 총격전이 한바탕 끝나고. 어떤 언어도 없이 오직 총으로만 ‘의사소통’하는 두 사람의 목숨을 건 총격전. 이제 총을 잡는 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우리의 제이슨 본은 마침내 요원을 죽음 직전으로까지 몰아간다. 죽어가는 요원에게 총신을 겨누고 마지막으로 질문하는 제이슨은 이제 더 이상 ‘내가 누군지 모르는 신원 미상의 부랑자’로 보이지 않는다. 이미 관객의 눈에 그는 최고의 첩보원으로 ‘완성’되었다. 

   제이슨 : 너 말고 또 누가 있지? 누구야? 전부 몇이나 돼?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요원 : 난 혼자서 일해, 너처럼. 우린 늘 혼자 작업하잖아.
    제이슨 : (‘우리’라는 단어에 흠칫 놀라) 무슨 말이야?
    요원 : 너나 나나 트레드스톤 소속이잖아.
    제이슨 : 트레드스톤?
 (……)
    요원 : 너, 늘 머리 아프지?
    제이슨 : 응.
    요원 : 나도 머리 아파 죽겠어. (……) 그가 널 죽이라고 했어. 나를 봐……. 그가 널 해치려는 것을 알겠지? 

   요원을 죽이고 제이슨은 살아남는다. 결국 그와 나는 같은 ‘훈육 프로그램’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끊임없는 훈육과 세뇌로, 기억을 상실했을 때조차 몸에 끈질기게 들러붙어 있는 이 엄청난 살인기술의 흔적들. 자기가 누구인지는 깡그리 잊었어도 남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죽이는지는 잊어버리지 않은 신체의 놀라운 기억. 제이슨은 정당방어의 논리로 상대방을 죽이긴 했지만, 마치 자신의 ‘형제’를 죽인 듯한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죽어버린 그도 역시 제이슨처럼 특수요원 훈련을 받은 트레드스톤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를 훈련시킨 프로그램은 정확히 제이슨을 훈련시킨 바로 그 훈육 프로그램이었던 것이다. 이 모든 처참한 살육을 ‘프로그래밍’한 자들은 마치 두 사람을 ‘게임의 파이터 1, 2’처럼 취급하며 멀리서 그들의 격투를 ‘관람’할 것이다. 프랑스의 악명 높은 메트래(Mettray) 소년감화원의 교육 프로그램만큼이나 트레드스톤의 ‘훈육 프로그램’ 또한 고도의 ‘정신 성형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메트래에서 원장과 부원장은(……) 행동을 다루는 기술자, 다시 말해서 품행을 다루는 기술자이자, 개개인을 뜯어고치는 정형외과 의사이다. 그들은 순종적이고 동시에 유능한 신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예컨대 그들은 하루 9~10시간의 노동을 통제하고, 분열식 · 체조  · 소대훈련 · 기상 · 취침, 그리고 나팔과 호각소리에 따른 행진을 지도할 뿐만 아니라, 운동을 시키고, 청결을 검사하고 목욕을 감독한다. (……) 신체의 조립방법은 개인의 구체적 지식을 형성하는 바탕이 되고, 기술의 습득은 행동방식을 결정하고, 적성의 획득은 권력관계의 확립과 뒤얽힌다.  

 -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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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day 2009-11-2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어떤 기계의 부속품인지 문득 궁금해지는 날. 괜시리 뒷목이 쭈뼛 섭니다.^^

맨손체조 2009-11-24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한동안 머물렀던 <군대>나, 제가 그래도 오랬동안 다녔던 '국민학교'나 그리 별반 다르지 않는 것 같아요? 손톱 길고, 때 꼈다고, 머리 감지 않았다고, 선생님께 30센티 자로 손톱을 맞았던.....

둥이 2009-11-25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날 아침 아무의미없이 출근하는 나도
누군가에게 훈련된 프로그램이 결과물인지...
그래서 난 떠 날 꺼 야!!를 늘 외침니다^^

doingnow12 2009-12-03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천리나만리나 어서 떠나세요 둥이님..ㅋㅋ
가끔 우리집 말고는 모든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보여지고'있다고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섬뜩!..하다못해 우린 운전을 할때도 보여지기 위해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곤하자나요..ㅎㅎ 이런게 바로 21세기형 윤리와 감옥일까요?ㅋ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⑦

 

7. 나는 위험인물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2)

   
 

범죄는 재판에 대한 감옥의 복수이다. 재판관을 어안이 벙벙하게 할 정도로 대단히 무시무시한 복수이다. 그때 범죄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390쪽.

 
   

   여동생의 애인을 처음 봤을 때 오빠나 아버지가 하고 싶은 질문 1위는 무엇일까. 애인이 무척 어리다면 ‘아버지는 뭐하시나?’일 것이고 애인이 충분히 성숙하다면 ‘자네 직업은 뭔가?’ 정도가 아닐까. 이 기준에 따르면 마리 크루츠가 사랑에 빠진 이 남자 제이슨 본은 결코 ‘바람직한’ 신랑감이 아니다. 직업이나 부모님의 자산 정도는 물론 가족이나 주소나 국적조차 확실하지 않은 이 남자. 결국 우리는 ‘본’ 시리즈 1편에서 주인공의 ‘진짜’ 이름조차 모르고 영화관을 나오게 될 정도니 말이다. 
 

   마리의 오빠 에몬은 어김없이 마리에게 질문한다. “저 사람 직업이 뭐야?” 직업도 확실하지 않고 이름과 국적조차 확실하지 않은 제이슨 본의 인적사항에 대해 마리는 대충 둘러댄다. “선박 회사 다녔었어.” 아마도 그것조차 ‘만들어진 정체성’임에 분명한, 제이슨 본이 파리에 있었을 때의 가짜 직장은 선박 회사였던 것이다. 검열의 장치는 감옥이나 CIA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알아가는 방식’, 타인에 대한 인식 방법 자체에 끈덕진 검열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베아스’라는 어느 부랑자의 1840년 재판 기록을 들추어낸다. 재판장은 집요하게 당신의 집은 어디이냐, 당신의 직업은 무엇이냐, 당신의 가족은 누구이냐 등등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외부적 조건을 묻는다. 그런데 이 부랑자 베아스는 재판장의 각종 질문 공세에 절대 쫄지 않는다. 유유자적하고 여유만만하게, 마치 이런 질문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 듯이, 재판장의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재판장 : 사람은 자기 집에서 잠을 자야 합니다.
   베아스 : 내가 집이 있겠습니까?
   재판장 : 피고는 언제까지나 떠돌이로 지낸다는 거군요.
   베아스 : 나는 일해서 먹고 삽니다.
   재판장 : 피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베아스 : 내 직업이라…… 우선 적어도 36개 정도가 되지요. 게다가 어느 일정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지 않습니다. (……) 나는 밤과 낮을 가라지 않고 일합니다. 예컨대 낮에는 모든 통행인들에게 자그마한 무료 인쇄물을 나눠 주기도 하고, 승합 마차가 도착하면 좇아가서 승객의 짐을 나르고, 뇌이이 거리에서 팔다리를 번갈아 짚어 가는 재주넘기를 하고, 밤에는 극장을 기웃거리고, 무대의 휘장을 열어주고, 극장의 외출권을 팔기도 합니다. 나는 무척 바쁜 사람입니다.
    재판장 :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일을 배우는 것이 피고에게는 더 나을 텐데요.
    베아스 : 천만에요. 좋은 직장, 견습, 그런 것은 지겨울 뿐이요. 그리고 부르주아가 되어도 늘 불평거리가 많고 또 자유도 없지 않습니까.
   재판장 : 피고의 아버지는 피고를 야단치지 않습니까?
    베아스 : 아버지가 없습니다.
    재판장 : 그렇다면 피고의 어머니는?
    베아스 : 없습니다. 친척도 친구도 없습니다. 나는 남의 속박을 싫어하는 자유인입니다. 

   
 

2년 징역 선고를 듣자, 베아스는 매우 험악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으나 곧 유쾌한 기분을 되찾고는 이렇게 말했다. “2년이라면 기껏해야 24개월밖에 안 되겠군요. 자, 일어서지요.” 


 -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1~442쪽. 

 
   

   베아스는 무려 36개의 직업을 가진, 말하자면 ‘홍반장’ 같은 사람이었나 보다. 이토록 바쁜 그를 재판장은 단지 주소가 없다는 이유로, ‘일정한’ 직업이 없다는 이유로,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위험한 인물’로 처리한다. 푸코의 말처럼 재판장은 자신이 주거를 공급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모든 사람에게 안정된 주거와 가정생활을 강요하고 있다.
    “피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피고뿐 아니라 우리가 ‘한 사람’을 인식할 때 필수적으로 입력하는 기본 데이터다. 이 질문 하나에 엄청난 이데올로기적 검열의 그물이 친친 감겨 있었던 셈이다. 이런 ‘근대적 직업관’에 따르면 베아스처럼 수십 개의 일용직을 가지고 있어도 그 사람은 통계적으로 무직자, 부랑자, 홈리스, 그러므로 ‘위험인물’로 낙인찍힌다. 사법기관을 비롯한 각종 국가장치가 보호하려는 것은 ‘안정된 사회의 기득권’이며 저 ‘하찮은’ 부랑자의 안위가 아니니까. 그는 주소와 직업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문명’을 거부한 ‘야만인’으로 선고받았다. 



   어젯밤 뉴스에서 ‘10대 청소년 가출, 한 해 10만 명으로 급증’이라는 뉴스 헤드라인을 봤다. 뉴스를 가만히 들어보니 ‘집계되는’ 가출 요인으로서 가장 많은 것은 ‘가정 폭력’이라고 한다.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매일 잔혹한 가정 폭력을 지켜보거나 당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서 버티는 것이 나을까, 적어도 내 가족에게 구타당하거나 내 가족이 구타당하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도망치는 것이 나을까. 
    그런데 그 뉴스의 결론이 압권이었다. “가출한 청소년들은 수없이 많은 범죄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수많은’ 가출 청소년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확실한 데이터도 제시하지 않은 채, 그 기사는 막연히 ‘가출 청소년 = 통제되지 않는 인구 = 위험인물군 = 미래의 범죄인’이라는 식의 도식을 전제하고 있었다. 단지 집을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들은 ‘잠재적 위험인물군’으로 처리된다.
    주소와 직업과 연락처……. 이런 가장 ‘기본적인’ 인적사항은 우리를 가장 뿌리 깊게 통제하고 있는 검열의 코드인 셈이다. 우리가 연락처와 주소, 직업과 가족 관계를 밝히는 것을 거부하는 순간, 우리는 누구라도 손쉽게 ‘위험인물군’에 편입될 수 있는 것이다. ‘이해될 수 있는 인물’의 행동 패턴을 그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문명사회의 이방인이 되어버린다. 사상 최대의 위험인물, 우리의 제이슨 본은 자신 앞에 놓인 이 ‘정체성의 원형감옥’을 어떻게 탈주할 것인가.

 


   
 

“피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사회에서 확립되는 질서의 가장 단순한 표현이다. 방랑생활은 질서에 어긋나고 사회를 교란시킨다. 따라서 모든 공격에 대항하여 사회를 튼튼하게 방위하기 위해서는, 중단되지 않는 장기간의 안정된 작업, 장래의 계획과 미래에 대한 설계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인이 있어야 하며 위계질서 속에 포함되어 제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사람은 일정한 지배관계 안에 고정된 상태로만 존재한다. “피고는 누구의 집에서 일합니까?”라는 물음은 다시 말하자면, 당신은 주인이 아니므로, 어떤 조건에서든 하인이 아니면 안 되며, 당신 자신의 만족이 아니라 질서의 유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4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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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finder 2009-11-23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방랑자 베아스 에피소드, 완전 웃깁니다 ㅋㅋ 나 같으면 재판장이 눈앞에 앉아 있기만 해도 엄청 쫄았을텐데^^

맨손체조 2009-11-2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주민등록증을 보니, 예전에 여권 다시 발급 받을 때가 생각납니다. 여권과에서 제 얼굴을 보면서, 예전 여권 사진에는 없는 쌍까풀이 있다며, 본인 추궁을 받았더랬습니다. 제가 맞다고 우겨도, 제가 무슨 범죄인인 듯한 표정으로 여기 저기 조회를 하더니, 30분만에 쌍까풀이 없던 예전 사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인물이라는 확인을 받았더랬습니다. 물론 전 쌍싸풀 수술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진이 그랬을 뿐!!!!

doingnow12 2009-12-03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길동의 여자친구가 홍길순이었군요..ㅋㅋ동생인가? 맨손체조님 혹시 쌍꺼풀수술 하신거 아니에요? 부끄러워말고 고백하세요ㅋㅋ

쿠쿠 2009-12-03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래요. 쌍꺼풀 수술이 뭐 대순가요^^ 고백하시죠 ㅋㅋ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⑥

 

6. 나는 위험인물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1)

   
 

나의 정치적 자유는 곧 나의 반대파의 정치적 자유다. 


 - 로자 룩셈부르크

 
   

   우리는 내 의견을 존중받고 싶어하는 만큼 나와 다른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배웠다. 그러나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자마자 우리는 실제로 그 ‘원칙’이 지켜지는 곳을 찾아내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을 배운다. 순전히 ‘나와 다르다’, 혹은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얼토당토 않은 비난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많이 목격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신상 정보와 활동 내역을 낱낱이 감시당할 위험에 처해야 한다. 미네르바 사건은 수십 년 동안 사문화되었던 정보통신법을 이용해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한 사람의 인생을 뿌리째 뒤흔든 한국판 제이슨 본 사건이었다.
   제이슨 본은 ‘그들의 이해관계’(CIA의 비밀조직 트레드스톤)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세계 어딜 가든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다. 그들의 이해관계에 맞추기 위해서는 제이슨 본이 계속 ‘죽었다’고 알려져 있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제이슨 본은 ‘나는 죽었다’는 ‘기록’과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제이슨은 이제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추격하고 살해하려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게다가 그들이 마리까지 추격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제이슨은 마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구해내려 한다. 

   제이슨 : 당신, 경찰한테 가요. 당장, 일이 악화되기 전에 가야 해요.
    마리 : 나 혼자서요?
    제이슨 : 괜찮을 거예요. 내 여권을 가져가요, 알겠죠? 이걸 보이란 말예요. (……) 있었던 대로만 진술해요. 경찰은 당신을 믿을 거예요. 믿어야만 해요. 마리, 여기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요. 안전하지 않다고요.
    마리 : (……) 도대체 그들이 우리가 함께 있는 걸 어떻게 알죠?
   제이슨: (설명하기 난처한 표정을 애써 숨기며) 난,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게 다예요.
    마리 : 날 위해? 경찰에 날 혼자 보내는 게 어떻게 최선이죠?
    제이슨 : 일부러 보내려는 것 같아요? 난 뭐 좋은 줄 아냐고요? (제이슨 본 자신을 현상수배하는 사진을 가리키며) 난 이 남자와 사진에 대해 전혀 몰라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단 말예요! 함께 도망 다닐 순 없어요. 안돼요. 평생 도망치면서 이렇게 살겠죠. 누구로부터의 도망인지도 모른 채. 날 쫓는 이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요. 네, 난 여기 있어야 해요, 어떻게 된 건지 알아봐야 해요. 

   마리는 본능적으로 경찰조차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 마리는 자신이 아무리 정직하게 진술해도 경찰이 자신을 믿어줄지 확신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녀는 하루 만에 자신이 믿어왔던 세상의 가치관이 완전히 전복되는 것을 경험해버렸다.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이제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마리의 입장에서는, 바로 어제 스위스 길거리에서 낯선 남자 제이슨과 이야기하던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촬영되어 바로 오늘 아침 프랑스 파리의 현상수배 전단지에 붙어 있는 것인지, 도대체 이 남자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저 이 남자와 함께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조차 수배대상이 된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마리의 본능은 역설적으로 지금 자신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이 남자뿐임을 직감한다. 아무런 가시적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좌충우돌하는 이 남자의 진심만은, 믿고 싶다. 운전대를 잡은 제이슨은 코앞에서 서성이는 경찰들을 보며 마지막으로 질문한다. “마리, 당신이 이 차에서 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예요.” 마리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안전벨트를 맨다. 나는 당신과 함께 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마리.
   제이슨은 이제 혼자가 아니다. 이제 제이슨은 두 배로, 아니 천 배로 더 위험해졌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숨까지 책임져야 하기에, 그러나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한 인간이 타인의 목숨까지 지킬 수는 없음을 알기에. 그날 밤 제이슨은 마리의 머리카락을 직접 잘라주고 염색해주며 어제보다 더욱 깊어진 마리의 서늘한 눈빛을 조용히 응시한다. 그들은 가장 위험한 순간에 사랑에 빠졌고, 그 위험만큼이나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한편 트레드스톤은 제이슨 본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왜냐하면 제이슨 본은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프로그램’ 자체니까. 제이슨이 기억을 상실해도 제이슨 본이라는 살인무기를 만들어낸 그들의 프로그램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다름없어요. 지휘 통제를 따르죠.” 이제 트레드스톤의 입장에서는 제이슨과 마리를 추격하기가 훨씬 쉬워졌다. 마리의 신상정보를 모조리 캐낸 그들은 마리의 동선을 예측함으로써 제이슨의 동선도 함께 예측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6년 동안 마리가 체류한 모든 장소를 샅샅이 찾아낸 트레드스톤은 마리의 가족들의 전화를 거리낌 없이 도청하고, 마침내 마리의 다음 행선지를 소름끼치도록 정확히 예측해낸다. 마리의 이복오빠 명의로 된 외딴 집, 그곳이 마리의 다음 행선지였고 그녀가 아는 한 가장 안전한 장소였던 것이다. 

   마리의 오빠와 그의 귀여운 아이들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제이슨은 처음으로 차라리 나를 찾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의심한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정이 눈물겹게 부럽다. 혹시 나 때문에 이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까 두렵다. 차라리 모든 것을 잊고 새로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내가 누구인지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그러나 내 몸속에 입력된 이 소름끼치는 정보들은 무엇인가. 도대체 누가 날 이토록 무서운 인간병기로 만들었을까. 나는 과연 정신적으로 ‘건강한’ 인간인가. 나의 두뇌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세뇌되고 훈련된 것인가. 나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인간 병기인가. 제이슨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알기를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프랑스 철학계에서는 ‘제이슨 본’ 못지않게 신출귀몰했던 미셸 푸코는 자신이 ‘위험인물’로 분류되는 것을 역설적으로 자랑스러워했다. 푸코를 해고한 대학 당국은 물론, 푸코가 실천했던 각종 저항운동을 혐오했던 사람들에게 그는 제이슨 본만큼이나 위험한 인물이었다. 푸코는 자신을 ‘기성제도의 인식’의 그물로 가두려는 사람들 앞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언제나 그 그물을 빠져나오는 데서 저항의 쾌락을 찾았다. 그는 정신의 ‘건강’이라는 획일화된 기준 자체를 철저히 의심했다. ‘건강’이라는 또 하나의 획일적 기준이야말로 우리 인식의 복잡성과 모호성 그 자체가 지닌 창조적 긴장을 파괴하는 폭력이기 때문이었다.  

   
 

 Q : 선생님(푸코)께서는 왜 해고당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 내가 특별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몇몇 사람들이 나를 학생들의 지적 건강을 해치는 위험인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지적 활동에 있어서의 건강을 생각하기 시작할 때, 거기에 무엇인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의 비밀동조자이며 비합리주의자이고 허무주의자이기 때문에 위험한 인물입니다.   

 - 미셸 푸코, 럭스 마틴과의 대담 중에서, 1982년 10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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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2009-11-20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로자 룩셈부르크의 명언, 요즘 같은 때 더욱 가슴에 사무칩니다. 언젠가 유시민씨가 백분토론에서도 인용했던 말이지요^^

맨손체조 2009-11-20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제 <100분 토론>의 손석희가 환한 미소를 띄우며 떠나갔습니다. 유시민과 포옹을 하고. 그들을 떠나보내게 한 '그들은' 왜 그럴까요?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그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을 이해할 수 있기나 할까요? 오늘도 '본'을 생각하며, 으랏chachacha!!!

봉인 2009-11-21 05:20   좋아요 0 | URL
저두 손석희 고별방송을 봤네요. 참 손석희다운 마지막 인사라고 느꼈습니다. 마지막 인사조차도 너무 야속하다 싶을 정도로 깔끔했지요. 손석희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진행하는 백분토론은 아직까지 상상하기 어렵네요. 물론 예전에 유시민이 진행하는 걸 보기도 했지만. 점점,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게 되겠지요? 점점, 무뎌지게 되겠지요. 하지만 예상한 데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어서 그게 더 놀랄 따름입니다.

봉인 2009-11-21 0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 시리즈 은근 기대되네요. 얼티메이텀은 어떻게 분석하실지 기대할게요.^^

doingnow12 2009-12-03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다르게 살고 싶은데, 이미 세상의 틀에 맞춰 자라난 '나'는 다름에 대한 두려움과 무력함, 그리고 무지함을 느끼면서..점점더 멀어져만가는 것 같습니당.. 저같은 일반인은 그저 본제이슨을 바라보며 응원만할뿐..ㅎㅎ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⑤

 

5. ‘기억할 수 없는 나’가 ‘기억을 찾는 나’를 추격하다 (2)

   
 

과거의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은 새로운 나이다. (……) 자기 명시는 동시에 자기 파괴이다.  


 - 미셸 푸코, 이희원 역, <자기의 테크놀로지>, 동문선, 77쪽. 

 
   

    


   제이슨 본은 낯선 여자의 차를 힘겹게 얻어 타고 파리로 가면서 생각했을 것이다. 나를 찾기만 하면, 내가 잃어버린 나를 찾기만 하면,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될 것이라고. 그러나 과거 그가 거주했던 파리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질수록, 커져가는 두려움도 숨길 수 없다. 나를 찾기만 하면, 정말 이 모든 공포와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까. 나를 찾아내는 것이 꼭 좋은 일일까. 파리에 간다고 해도, 나를 찾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파리에 가면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기는 한 걸까.
   온갖 생각의 실타래로 난마처럼 얽혀 있는 제이슨의 머릿속. 지금 그에게 유일한 지인(知人)은 오직 1만 달러를 받고 취리히에서 파리까지 운전을 해주기로 한, 보헤미안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낯선 여성, 마리 크루츠뿐이다. 막상 파리로 도착하자 둘은 그냥 헤어지기에는 왠지 아쉬운, 서로의 감정을 동시에 알아차린다. 제이슨은 ‘내가 누구인지’를 혼자 알아내고 확인하기가 문득 두려워지고, 마리는 파리행 차비로 2만 달러를 아낌없이 내버리는 이 남자, 기억상실로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는 이 남자의 아이덴티티가 못 견디게 궁금해진다. 물론 두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네가 누구인지’ 모르는 낯선 남녀일 뿐이지만, 두 사람은 그 모든 외적 상황과 전혀 관계없이 매혹적으로 빛나는 서로의 싱그러운 육체를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린다.  
 

    제이슨 : 태워줘서 고마워요.
    마리 : 천만에요.
    제이슨 : 뭐, 올라와도 돼요. 여기서 기다리든지요. 확인하고 올게요, 기다려요.
    마리 : 같이 가요,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당신은 아마 날 잊어버릴 거예요.
    제이슨 : 잊을 리가 있겠어요? 당신은 이 세상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인 걸요. 

 

   제이슨의 집 주인은 ‘본 선생’을 알아보고 엄청나게 반가워하지만, 제이슨은 정작 집주인 아주머니를 전혀 알아볼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호화로운 인테리어로 가득한 제이슨 본의 집안에서 저마다 ‘나의 흔적’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물건들을 하나도 알아볼 수가 없다. “세상에, 하나도 못 알아보겠군요.” 자신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곳에 와서도 기억을 떠올릴 수가 없자 제이슨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자신이 묵었다고 추정되는 호텔의 주소를 찾아 전화를 건다. 제이슨 본의 이름으로 투숙자를 찾아보니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또 다른 여권’의 이름 ‘마이클 케인’으로 찾아보니 드디어 자신의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천신만고 끝에 알게 된 소식은 청천벽력이었다. 호텔 프론트의 전화 너머로 들리는 직원의 메시지에 제이슨, 아니 아직 여전히 그저 ‘제이슨으로 추정될 뿐인 정체불명의 이 남자’는 절망한다. “안타깝게도, 마이클 케인 씨는 2주 전에 사망하셨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였습니다. 현장에서 즉사하셨습니다. 손님께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진심으로, 대단히 유감입니다.” 

   그토록 찾았던 ‘나’인데, 내 목숨을 걸고, 원치 않는 살인까지 해가며 죽을 힘을 다해 나를 찾았는데, 나를 찾는 순간 내가 죽어버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는 여기 살아있는데 내가 찾는 나는 죽어버렸다. 도대체 죽어버린 나와 살아 있는 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모든 기억을 다 상실해버렸는데도 왜 나는 ‘살인 기술’만은 잊지 않고 있는 것일까. 정말 ‘죽어버린 나’를 되찾아도 되는 것일까.
    급기야 안전한 줄만 알았던 이 파리의 아파트에까지 ‘괴한’이 침입해 들어오고, 겁에 질린 마리 앞에서 그는 자신과 마리를 동시에 죽이려는 그 괴한을 쓰러뜨리고 만다. 마리는 물론 제이슨 그 자신도 자신이 보유한 엄청난 ‘살인 능력’에 기가 질려버린다. 그는 점점 ‘자기가 찾고 있는 자신’이 무서워진다. 내가 누구기에 나는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이 상황에서도 이토록 엄청난 살인의 기술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일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누구일까. 도대체 어떤 무서운 훈련 과정을 거쳐야 온몸이 살인 무기인 나 같은 존재를 제조해낼 수 있는 것일까. 자기 자신이 너무 두려워진 제이슨은 마리에게 이 모든 두려움을 고백한다. 그가 알고 있는 이 세상 유일한 사람은 마리 한 사람뿐이니까. 

   제이슨 : 대체 어떤 사람이 돈과 여섯 개의 여권, 그리고 총으로 채워진 비밀계좌를 가지고 있죠? 누가 엉덩이에 은행 계좌번호를 박고 다니죠? 내가 여기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 일은 눈에 띄지 않는 자리와 비상구를 찾는 것이었죠. 밖에 주차된 자동차 여섯 대의 번호판을 외웠고, 웨이트리스가 왼손잡이라는 것도, 카운터에 앉아 있는 사내의 몸무게가 97.5kg이라는 것도 말할 수 있죠. 저기 회색 트럭 안에 총이 들어 있다는 것도 알아요. 또 이런 고도에선 난 800미터 정도는 끄떡없이 달릴 수 있다는 것도 알아요. 대체 내가 어떻게 이런 걸 아는 거죠? 난 내 자신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거죠? 

   
 

 개인별로 특징화하면서도 집단적으로 유용한 능력을 양성하기 위한 방법의 최초 핵심이 되었던 것은 아마도 교단적인 생활 방식과 구도 과정이었을 것이다. 신비주의적이거나 혹은 금욕적인 형식을 통하여, 수련은 구원을 얻기 위해 이 세상의 시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수련은 (……) 그 의미를 점차적으로 전도시키게 된다. 즉, 인생의 시간을 관리하고, 그것을 유용한 형태로 축적하며, 이렇게 조정된 시간은 인간에 대한 권력의 행사에 이바지한다. 신체와 시간에 관한 정치적 기술의 한 요소로 편입된 훈련은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완성되는 복종을 지향하는 것이다.    


 -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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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1-18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엉덩이에 박힌 은행계좌번호! 암만 생각해도 너무나 기발한 상상력^^*

심슨 2009-11-1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맞아요~ 저의 틀에박힌 상상력은 그게 '폭탄'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쿨럭~ㅋㅋ

doingnow12 2009-12-03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멋있네요 미셸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