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

 

1. ‘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1)

   
 

본성은 한정되어 있으나, 욕망에 있어서는 무한대를 달리는 인간은, 천국을 기억하는 타락한 신이다. 


 - 알퐁스 드 라마르틴(프랑스의 시인)

 
   
   
   
 

 만약 세계 한가운데서 살고자 한다면 세계를 창건해야만 한다. 


 - 엘리아데

 
   

   다가오는 시험이 걱정스럽고, 줄어드는 통장 잔고가 걱정스럽고, 가족들의 잔병치레가 걱정스러운 이 ‘일상적 고통의 차원’을 뛰어넘는 고통이 있다. 이런 걱정들은 각각 시험이 끝나면 해결되고 월급이 입금되면 잊히며 건강이 회복되면 사라진다. 그저 열심히 살아서는 해결될 수 없는 고통, ‘나 하나’의 개인적 안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욕망.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세속적 일상을 질주하다가도 문득 ‘아, 이게 전부가 아닌데.’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저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이 똑같은 일상이 내 인생의 전부이면 어떡하지? 회사나 학교의 스케줄에 따라 복종하는 이 틀에 박힌 일상으로 내 인생이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이렇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데 이 모든 난리법석에 아무런 ‘의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삶이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을 때, 아무리 안간힘 써도 나의 운명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될 때. 우리는 이렇게 ‘위로받을 수 없는 두려움’에 빠진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토마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회사생활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해커’라는 ‘제2의 가면’을 쓰고 자기만의 또 다른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그는 낮에는 유능한 회사원으로, 밤에는 지하세계에서 유명한 ‘네오’라는 이름의 해커로 살아간다. 그는 눈에 보이는 이 세속적 일상 너머에 어딘가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를 나만의 신화, 나만의 성스러운 삶의 목표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컴퓨터 해킹을 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떠도는 정체불명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둘도 없는 친구인 컴퓨터가, 그에게 정말 ‘말’을 걸어온다. 그는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컴퓨터 : 일어나, 네오…….
    토마스 : 뭐야?
    컴퓨터 : 넌 매트릭스에게 사로잡혔다.
    토마스 : 그게 무슨 소리지?
    컴퓨터 : 흰 토끼를 쫓아라!
    토마스 : 흰 토끼를 쫓으라고?
    (갑자기 토마스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토마스는 자신이 해킹한 프로그램을 왈패들에게 넘겨주다가 문득 그들 중 한 명의 몸에 하얀 토끼 문신이 그려져 있음을 발견한다. 마치 신성한 계시를 따라가듯, 신비로운 주문에 홀린 듯 자신도 모르게 하얀 토끼가 그려진 여인을 따라가는 토마스. 그는 왈패들을 따라 간 술집에서 매혹적인 여인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를 만난다. 트리니티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를 너무도 잘 알아왔다는 듯한 친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트리니티를 만나는 순간 그는 자연스럽게 ‘토마스’가 아니라 ‘네오’가 된다. 트리니티가 찾는 것도 토마스가 아니라 네오였기 때문이다. 아마 신화학자 엘리아데가 이 장면을 목격했더라면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네오는 지금 ‘성(聖)’과 ‘속(俗)’ 사이에 놓인 ‘문지방’을 넘어가고 있는 거라고. 엘리아데는 세속에서 신성으로 넘어가는 경계의 특성을 교회의 내부로 열려 있는 ‘문지방’의 공간적 은유를 통해 설명한다.

   
 

두 개의 공간을 갈라놓는 문지방은(……)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 사이의 거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 문지방은 한계점이요 경계선이며, 두 개의 세계를 갈라놓고 대립시키는 구분선이다. 동시에 그것은 이들 세계가 교섭을 갖고, 세속적인 것에서 거룩한 것에로의 전이 가능성을 얻게 되는 역설적인 장소이기도 한다. (……) 몇몇 고대 문명(바빌론, 이집트, 이스라엘)에서는 판결의 장소를 문지방 위에 위치시켰다. 문지방, 문은 공간에 있어서의 연속성의 단절을 직접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여기서 그것이 갖는 커다란 종교적 중요성이 유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이행의 상징이자 동시에 매개자가 되기 때문이다.  


 -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23쪽. 

 
   



    트리니티 : 안녕, 네오! 
    네오 : 날 어떻게 알지?  
    트리니티 : 난 널 잘 알아. 난 트리니티야.
    네오 : 그 트리니티? 국세청을 해킹했던?
    트리니티 : 오래 전 얘기지.
    네오 : 맙소사.
    트리니티 : 왜?
    네오 : 남자인 줄 알았거든.
    트리니티 : 다들 그래.
    네오 :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지? 어떻게 한 거야?
    트리니티 : 중요한 건, 넌 지금 위험하다는 거야. 경고하려고 불렀어.
    네오 : 무슨 경고?
    트리니티 : 그들이 널 보고 있어.
    네오 :누가?
    트리니티 : (네오의 귀 가까이로 바싹 다가오며 속삭인다.) 그냥 듣기만 해. 네가 왜 여기 왔는지 알아. 네가 뭘 했으며 왜 잠을 못 자고 왜 혼자 살며 밤이면 밤마다 왜 컴퓨터 앞에 앉는지도. 넌 그를 찾고 있어. 난 알아, 나도 한때 그랬으니까. 그가 날 찾았을 때 그는 내가 찾아낸 건 자기가 아니라 해답이랬어. 우릴 움직이는 건 질문이지. 그게 널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거야. 넌 그 질문이 뭔지 알아. 
    네오 : 매트릭스란 뭐지?
    트리니티 : 정답은 어딘가에 있어. 그것은 널 찾고 있고 곧 찾을 거야. 네가 정말 원한다면. 

   네오는 ‘하얀 토끼’를 따라감으로써 자신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뀔 것임을 예감한다. 그러나 아직 네오는 혼란스럽다.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자신이 어쩌면 ‘성스러운 세계’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는, 이 믿음은 아직 너무 많은 의혹들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네오는 지금 믿음이라기보다는 ‘유혹’이나 ‘의혹’에 가까운 감정으로 트리니티를 바라본다. 엘리아데를 비롯한 수많은 신화학자들이 말하는 신성은 객관적인 세계 바깥에서 외따로 고립되어 있는 신비가 아니다. 신성은 객관적 현실을 넘어선 어떤 것이 객관적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토마스 앤더슨이 ‘네오’가 되는 것은 단지 ‘세상 바깥’의 이질적인 세계가 출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쭉 찾아왔던 것, 그의 일상 속에서 늘 함께 하고 있었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이제야 비로소 ‘계시(revelation)’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그 모든 알 수 없는 신비와 공포와 경이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인생은 의미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뜻하는 말일 뿐이다.  


 - 아르투어 슈니츨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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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2-0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번엔 <매트릭스>!!!. 또 어떤 사유의 '문지방'을 넘으실런지 궁금^^*

viewfinder 2009-12-0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위로받을 수 없는 두려움. 그렇죠. 그것때문에 밤잠을 설칠 때가 있지요. 천국을 기억하는 타락한 신이 인간이라니. 요새는 천국도 잘 기억이 안날 지경입니다, 쿨럭~^^

둥이 2009-12-0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엔 저를 매트릭스의 세계로 초대하신 건가여?^^
그럼 저두 같이 빠져 볼께여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마지막 회

 

13. 나를 지워야 내가 될 수 있다 (2)

   
 

오후 7시 15분 푸코는 강의를 끝냈다. 학생들이 그의 책상으로 모여들었다. 그에게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녹음기를 끄기 위해서였다. 혼잡한 청강생들 틈에서 그는 혼자였다. (……) 나는 청중 앞에서 배우 또는 곡예사가 된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말할 수 없는 고독에 휩싸인다. 


 - 미셸 푸코, 박정자 역, <비정상인들>, 동문선, 2001, 6~7쪽. 

 
   

  제이슨 본은 인간 훈육 프로그램의 최고의 성공작이자 그 처절한 실패를 대변하는 양가적 인물이다.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이 탄생시킨 살아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제 1호였던 제이슨 본. 그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요원으로 거듭났지만 최악의 문제점을 노출하는 장본인이었다. 제이슨의 정신 건강을 체크했던 요원 니키는 ‘실험적 훈련 중’이던 요원들의 다양한 정신이상 증세를 보고한다. “행동 교정 훈련을 받던 요원들에게서 다양한 문제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우울증, 분노, 충동적 행동……. 심각한 신체적 증상도 나타났죠. 극심한 두통, 광(光) 과민증 등입니다.” 그리고 제이슨의 ‘기억상실증’이야말로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의 최대 약점으로 드러난다. 

   감옥이 인간을 완전히 길들일 수 없듯이, 학교가 학생을 철저히 통제할 수 없듯이, CIA는 인간을 완벽한 인조인간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얼굴들이 보여…….  내가 죽인 사람들의 얼굴……. 이름은 기억이 안 나……. 속죄하려고 노력했어, 내가 한 짓을, 내 삶을…….” 죄책감에 잠 못 이루며 자신이 죽인 사람들의 환상에 시달리는 것, 스스로의 삶 전체를 속죄하고 싶어 하는 제이슨. 이렇게 방황하고, 반성하고, 분열되고, 좌절하는 것은 그들의 ‘행동 교정 프로그램’에 결코 포함되지 않았던 예측불허의 이상행동이었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끈질긴 두뇌게임 끝에 마침내 트레드스톤의 창조주와 대면하게 된 제이슨 본. 그는 도대체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왜 하필 ‘나’를 선택했는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그토록 무서운 인간 병기로 제조했는지를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그런데 그가 만나는 트레드스톤의 책임자들은 하나같이 이 모든 우여곡절의 기원은 바로 제이슨 본, ‘바로 너’라고 외친다. 그들은 한결같이 책임을 회피한다. “마리를 죽인 건 너야. 그녀의 차에 네가 탄 그 순간, 네가 그녀의 인생에 끼어든 그 순간 그녀는 죽은 거야.” 

   제이슨은 항변한다. “우릴 내버려두라고 했잖아. 난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고 있었다고.” 제이슨 본에게 트레드스톤의 실패를 전가하고 싶었던 애보트는 말한다. “넌 과거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해. 삶은 그런 거야. 인정해, 제이슨. 넌 살인자야.” 제이슨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애보트, 제이슨에게 살인누명까지 씌우며 수없는 살인 명령을 일삼았던 애보트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할까. “난 애국자야. 난 국가를 위해 봉사했어. 난 죄책감 없어.” 그들은 자신에겐 절대로 ‘죄’가 없으며 이 모든 것의 ‘대의명분’은 바로 그들의 대단한 ‘애국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제이슨이나 제이슨을 죽이려는 자들이나 양측 모두 이 모든 끔찍한 살인을 합리화하는 명목이 ‘애국심’이라는 것이다. 총명한 젊은이 데이비드 웹이 비밀 요원 제이슨 본이 된 것도 사실 애국심 때문이었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는 ‘국가를 위해 몸 바친 영웅’이라는 위대한 역할 모델들이 숨 쉬고 있는 걸까. 최고의 엘리트이자 촉망 받는 인재였지만 ‘애국심의 함정’을 알지 못했던,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의 진상을 알지 못했던 제이슨 본에게 한때 애국심은 정말 ‘좋은 것, 멋진 것, 폼 나는 것’이었을 것이다. 트레드스톤처럼 국가의 미명 아래 모든 폭력을 정당화 하는 사람들, 그들은 아무런 명분이 없을 때, 사실은 철저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서도, ‘국가의 안보’를, ‘국가의 위기’를, ‘국가의 미래’를 전면에 내세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는 제이슨이 아직 ‘데이비드 웹’이었던 시절, 그가 비밀 요원으로 거듭나는 결정적인 장면이 회상 신으로 등장한다. 애보트와 대화하던 중 이제야 제이슨 본의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 그때 그는 무려 72시간 동안 한숨도 못 잔 상태였으며 잔혹한 물고문까지 받은 상태였다. 그들은 고문인지 훈련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 혹독한 인성교정프로그램 속에서 제이슨이 내린 결정을 ‘바로 네가 내린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너의 선택이었다고. 그러니 우리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애보트 : 데이비드 웹. 설명은 다 듣고 온 건가?
    제이슨 : 네.
    애보트 :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자네 임무는 미국 국민을 구하는 거야.
    제이슨 : 압니다.
    애보트 : 넌 이제 더 이상 데이비드 웹이 아냐 .
    제이슨 : 뭐, 뭐든 따르겠습니다.
    애보트 : 넌 오랫동안 잠을 못 잤다. 이제 결심이 섰나? 더 끌 순 없어. 결심해야 돼.
    제이슨 : (자신의 눈앞에 ‘암살대상’으로 나타난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누구죠?
    애보트 : 같은 걸 되묻지 마.
    제이슨 : 그가 뭘 잘못했나요?
    애보트 : 그건 전혀 안 중요해! 넌 네 발로 왔어! 자원했다고! 미 국민을 구하기 위해 뭐든지 한다고 했지? 거짓말을 한 거였나? 아니면 힘드니까 마음이 변한 거야? 결심해! 데이비드 웹은 잊어! 오직 네 임무만 생각하라고! 넌 더 이상 데이비드 웹이 아냐! 이제부터 넌 제이슨 본이야! 이 프로그램의 일원!
 (그 순간, 탕! 총소리가 들리며 이제는 ‘제이슨 본’이 된 데이비드 웹의 첫번째 암살이 끝난다. 그는 이렇게 제이슨 본으로 ‘개조’된 것이다.) 


   꿈 많은 젊은이 데이비드 웹은 천신만고 끝에 제이슨 본이 되었지만 이제 그가 가장 벗어나고 싶은 인물이 바로 제이슨 본이 되어버렸다. 그는 애보트에게 외친다. “난 이제 제이슨 본이 아냐.”  

   
 

아마도 애국자라면 이렇게 말하리라. “옳든 그르든 내 나라.” 그러나 그는 자기 조국이 옳다거나 진정한 도덕은 조국의 편을 드는 것이라고 단언할 필요성을 더 자주 느낄 것이다. 진실의지는 그렇게 강력하다. (……) 우리는 우리 선택에 따라 진실을 판단하지, 진실에 따라 선택하지 않는다. (……) 스피노자가 가르쳐 주었듯이, 우리는 어떤 것이 좋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91~192쪽.

 
   


   데이비드 웹은 ‘국가에 충성’하는 멋진 임무를 맡기 위해 요원이 되었고, 트레드스톤은 이제 ‘국가 비상사태’의 명목으로 제이슨 본을 죽이려 한다. 도대체 ‘국가’를 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애국의 명분이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이 기이한 자기정당화들. 푸코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철저히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믿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곧 ‘진실’이라고 믿는 인간의 습성을 ‘진실의지’라고 했다. 우리는 치밀한 반성과 시행착오 끝에 가장 진실에 가까운 신념을 고르기보다는 수많은 우연과 감정적 변수와 비합리적 취향에 의해 삶의 방식을 결정하곤 한다. 거기에 ‘진실’의 갑옷을 입히고 만족한다.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찾아 떠난 끝에 간신히 부여잡은 소중한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고 편안한 것, 혹은 아주 어릴 때부터 습득된 주변 환경이 만들어낸 습관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특히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가면이다. 실은 철저히 자기 이익을 위해 달려왔으면서도 궁지에 빠졌을 때 그들은 ‘옳든 그르든 내 나라’라며, ‘내가 한 일은 모두 나라를 위한 것’이라며 당당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트레드스톤이 애국의 미명 하에 모든 부정부패를 정당화했다면, 젊은 시절 데이비드 웹은 ‘애국’이라는 환상의 그물이 얼마나 지독한 환멸을 품고 있는지 모른 채 순진하게도 그 그물에 포획되어버린 셈이다. 

   제이슨의 결백을 믿는 CIA 요원 파멜라 랜디는 그의 진짜 이름과 생일을 가르쳐준다. “데이비드 웹. 자네 진짜 이름이야. 자넨 미조리 주 닉사에서 1971년 4월 15일에 출생했네.” 하지만 이제 자신을 이렇게 만든 트레드스톤 프로그램의 전모를 알게 된 제이슨은 더 이상 자신의 출생이나 기원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바로 여기서부터 내가 만들어가야 할 삶인 것이다. 이 모든 물고 물리는 살인의 게임을 끝내기 위해 제이슨 본은 트레드스톤과 블랙 브라이어에 관련된 일급 기밀 서류를 빼내어 파멜라 랜디에게 전달하고 이 사건을 스스로 매듭짓는다.
    “대통령은 각료 회의를 열고 블랙브라이어란 암살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미국 시민마저 표적이 됐던 이 프로그램을 승인한 국장은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실험소장 알버트 허슈와 총괄 책임자 보슨 부국장 등 두 명의 간부 요원은 체포됐습니다. 한편 블랙브라이어의 음모를 폭로한 데이비드 웹, 일명 제이슨 본은 총을 맞고 10층 건물에서 강으로 추락했으나 3일간의 수색 끝에도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푸코와 나는 그의 작은 텔레비전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에 관한 르포를 보고 있었다. 두 진영 가운데 한 진영에 속한(어느 쪽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투사 한 사람이 화면에 나오더니 이렇게 공언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나의 대의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는 만들어졌고, 그에 관해서는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마침내, 바로 저거야”, 푸코는 소리쳤다. 기껏해야 레토릭과 프로파간다로서나 쓸모 있었을 장광설을 듣지 않아도 되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이 미학적 선호에 대해서 만큼이나 거대한 이상에 대해서도 논쟁하지 않는 사회를 잠시 상상해보자.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91쪽.

 
   

   푸코는 ‘내가 누구인가’를 결정하는 변수들을 수학공식처럼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왜 이런 취향과 왜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 하필 왜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지, 하필 왜 이런 직장을 다니고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푸코는 당신들이 어떻게, 누구를 향해, 무엇을 위해 싸워야하는지 콕 집어 가르쳐주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푸코는 조용히 속삭였다. 지금 우리의 삶이 충분히 행복하지 못하다면, 지금 우리의 삶이 너무 많은 제약과 차별과 억압으로 찌들어 있음을 우리 스스로 느낀다면, 그 ‘장애물의 지형도’를 그려드릴 수는 있다고.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인체의 모세혈관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 치밀한 장애물의 지형도를 그려준 푸코. 그 지도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 지도를 소중하게 몸에 지닌 채 우리가 ‘어떻게 싸울 것인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선택이 아닐까.  

   
 

나는 여러분에게 자, 여러분이 수행해야 할 투쟁은 이것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토대 위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 반면 나는 여러분에게 권력의 현재 담론을 기술하려 합니다. 마치 여러분 앞에 전략지도를 펼쳐놓듯이 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투쟁하고자 한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어떤 전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지도에서 저항 지점들은 어디인지, 가능한 통로들은 또 어디인지 보게 될 것입니다.
 푸코는 자기 청중과 마치 군주와 그 조언자 같은 관계를 맺었다. 군주가 말했다. “나는 인민의 행복을 원한다.” 학자-조언자는 그에게 말한다. “당신의 결정이 그렇다면, 당신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채택해야 하는 수단은 바로 이렇습니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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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12-0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이제 마직막이군여^^
그동안 하루하루 많은걸 생각하게 해준 우리의 본,아니 푸코,아니 여울님,아니 데이비드 웹?
아무튼 또다른 작품으로 또 저에게 양질의 영양분 쫘악~~아셨져^^

맨손체조 2009-12-03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듀~, 본!! 습관은 진실이다??? 오늘 오후의 화두!

훈남 2009-12-03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생각없이 본 액션물 이였는데ㅋㅋ

love hurts 2009-12-0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푸코의 멋진 강의를 '쌩'으로 들었을 사람들이 어찌나 부러운지...

하이킥 2009-12-06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가면이다!^^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⑫

 

12. 나를 지워야 내가 될 수 있다 (1)

   
 

한마디로, 푸코의 저작은 전부 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의 연장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영원하다고 믿는 모든 개념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변전된’ 것이며, 그 기원들에는 숭고한 것이 전혀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산책자, 2009, 173쪽.

 
   

   언제부터 사람들은 ‘신분증’이 없으면 중요한 일을 하나도 처리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일까. ‘내가 바로 나다’라는 것은 증명할 수 있는 서류가 필요해진 순간, 인간은 더욱 효과적으로 관리되고 통제되기 시작했다. 때로는 우리들 자신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소소한 과거의 행적들이 어디선가 관리되고 어디선가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오싹해지는 순간이 있다. 이 모든 ‘근대적 정체성’의 관리 시스템이 진정한 효력을 발휘하게 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우리의 출생과 이사와 여행과 출산과 사망을 관리하는 주민등록의 절차에 의해 우리는 때로는 ‘세금을 내는 시민’으로, 때로는 각종 통계 수치의 머릿수를 채우는 ‘국민’으로 호출된다. 

    제이슨 본이 지우고 싶은 것은 바로 CIA산하 비밀요원 양성 프로그램 트레드스톤에 입력된 자신의 기록이었다. 그는 과거를 찾으려는 ‘단순한’ 희망이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깨닫고,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이제 과거의 나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완전히 사라지더라도, 지금-여기 내가 새롭게 시작하는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기억하는 한 여자와 살아갈 수만 있다면, 잃어버린 과거 따윈 되찾지 않아도 좋다. 마리를 찾아낸 제이슨은 하얀 셔츠를 입고 나타나 이제야 자신이 모든 어둠의 기억에서 ‘깨끗하게’ 해방된 듯한 가뿐한 표정을 짓는다.
    “멋진 가게군요, 찾아내기는 좀 힘들었지만……. 스쿠터를 하나 빌릴 수 있을까요?” 마리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반가워 미칠 것 같은 표정을 애써 억누르고 새침하게 대꾸한다. “신분증 있어요?” 제이슨은 이제 난 아무 것도 궁금하지 않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런 것 없는데요.” 그들은 그렇게 모든 ‘신분증’을 지운 자리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그들만의 파라다이스를 시작하려 했다. 내 모든 것을 버리고 너에게 왔어. 이제 나는 내가 아니냐. 그러나 이제야말로 나는 진짜 내가 될 수 있어.   

   현대인은 자유의지의 힘을 믿도록 교육된다. 내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이 세상의 기회는 균등하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어갈수록 우리는 그 패기만만한 자유의지의 환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결코 선택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인종, 국적, 가족, 유전자 등 우리를 ‘규정’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들) 우리의 선택은 철저히 제한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행동했다고 해서 모두 나의 욕망이었는가, 내가 선택한 것이 진정 나의 의지였는가, 그렇게 의심되는 상황들이 곳곳에서 발생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이 정말 자율적이고 자발적인가.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과연 어디에, 어떻게, 누구를 위해 쓰일지 진정 알고 있는가.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에서 제이슨 본은 그렇게 ‘자유로운 나의 선택’이라는 것이 사실은 원천 봉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과거는 그가 도망치거나 삭제할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꼭 제이슨 본처럼 무시무시한 비밀요원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없고, 우리 자신의 모든 행동의 기원을 밝힐 수 없으며, 우리가 ‘난 이제 자유롭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장기간의 ‘무의식적 부자유’가 축적된 치밀한 과정의 결과였음을 깨닫곤 한다.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에서 제이슨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살인자로 몰려 추격당하게 되고, 이제 스스로 저지르지 않은 행동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자 했던 그 숨 가쁜 여정 속에서, 자신을 추격하던 요원의 총격으로 의해 마리를 잃고 만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끔찍한 죄책감까지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

   마리를 눈앞에서 잃자 제이슨은 더 이상 숨어서만은 살 수 없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시작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먼저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밤마다 꿈속에 나타나 나를 괴롭히는 환상. 내가 죽인 사람들. 내가 ‘처리’한 사람들의 끔찍한 환영들. 자신이 죽인 사람들에 대한,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속죄. <본 슈프리머시>에서 제이슨은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첫번째 ‘임무대상’이었던 러시아 정치인 네스키의 딸을 찾아간다. 네스키의 딸은 엄마가 아버지를 직접 살해한 것이라는, 언론의 조작된 보도를 믿고 살아가고 있다. 부모를 한날한시에 잃은 것도 모자라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기사’를 ‘사실’로 믿고 살아온 소녀가 이제는 어엿한 숙녀가 되어 제이슨 앞에 앉아 있다.

    소녀 : 난 돈도 없고 마약도 없어요. 원하는 게 그거 아닌가요?  
    제이슨 : (러시아어로) 좀 앉지. 그 의자에 앉아.  
    소녀 : 영어 할 줄 알아요.
    제이슨 : 난 널 해치지 않아. 겁낼 것 없어. 생각보다 많이 컸구나. 더 어릴 줄 알았는데. (자신이 죽인 네스키 부부의 사진을 가리키며) 저 사진, 너에게 소중한 거겠지?  
    소녀 :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다는 듯, 무심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별로요, 그냥 사진일 뿐이에요.
    제이슨 : 아니. 그건 네가 진실을 모르기 때문이야.
    소녀 : 알아요.
    제이슨 : 아니, 넌 몰라. 나라면, 알고 싶을 거야. 나라면, 엄마가 아버지를 죽이고 자살한 게 아니란 걸 알고 싶을 거야.
    소녀 : 네?
    제이슨 : 네 부모님은 그렇게 돌아가신 게 아니야……. 내가…… 죽였다. 내가 죽였어. 그게 내 임무였어. 내 첫 임무였지. 네 아버지가 혼자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네 엄마가 갑자기 나타나셨지. 난 계획을 수정해야 했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모든 게 달라지지. 안 그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는데…… 진실을 알아야지. 미안해…….  
   소녀 :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제이슨은 국경을 몇 번이나 넘고 넘어 온갖 정보기관들의 추격을 따돌리며 결국 자신의 과오가 시작된 맨 처음 그 자리로 찾아간다. 그는 마치 잘 훈련된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내가 왜 죽여야 되는지도 모르고 ‘주인’의 명령에 따라 암살대상을 처리하곤 했다. 그러나 그에게 기억상실증이라는 ‘시간의 단절’이 일어나자, 결국 그들의 교정 프로그램이 결코 바꾸지 못했던 한 인간의 내면의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을 만들어가는 ‘행동(doing)’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 모든 행적을 지우는 ‘원상복귀(undoing)’임을 알게 된다. 발설된 것은 철회될 수 없고, 시행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죽은 네스키 부부는 결코 살아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속죄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천지차이다. 적어도 네스키의 딸은 ‘엄마가 아빠를 죽이고 자살했다’는 끔찍한 오명을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소녀는 엄마가 아빠를 죽이는 소름 끼치는 환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본 얼티메이텀>에서 드디어 제이슨은 자신을 만든 권력의 실체와 정면승부하게 된다. 인간 병기 제조 기획 ‘트레드스톤’을 만든 사람들. 트레드스톤이 실패하자 ‘블랙 브라이어’라는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들. 그들은 제이슨 본처럼 ‘우수한 인간병기’를 만들어, 그들이 ‘애국’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대단한 권력의 게임을 완수하기 위해, 영원히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숨은 희생양’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이 성공적인 인간병기들은 그들이 배운 기술을 단지 그들의 ‘상사’를 위해서만 쓰지는 않는다는 것을. 제이슨 본은 자신을 만든 바로 그 창조주들을 향해, 그들로부터 습득한 모든 지식과 능력과 기술을 실험한다. 그들이 살해대상을 제거하기 위해 가르친 프로그램은 정확히 그들의 조직 자체를 뒤흔드는 ‘역습의 무기’로 사용된다. 지식은 권력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식이 쓰이는 용법이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비로소 제이슨 본은 자신을 인간병기로 만든 사람들로부터 배운 모든 지식을, 자신을 파괴한 바로 그들을 향해 눈부시게 휘두른다.    


   
 

 소송 절차는(……) 필연적으로 자백을 구하는 경향이 있다. (……) 피고인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방식, 진실이 완전히 힘을 발휘하기 위한 유일한 방식이란,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증거 조사에 의해 교묘하면서 애매하게 조립된 사항에 서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악인이 정당하게 처벌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가능하다면 악인은 스스로를 재판하고, 스스로에게 유죄선고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자백은 피고인 없이 행해지는 증거 조사를 자발적인 의사표현으로 변화시킨다. 자백에 의해서 피고인은 형사상의 진실을 생산하는 의식 속에 참여하게 된다. (……) 자백에 의해서 피고인은 소송 절차와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증거 조사에 의해 만들어진 진실에 자기 이름으로 서명하는 것이다. 
 

 -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74~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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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2-0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앗, 다행. 계속되는 군요^^* 서서히, 뭉클 상쾌한 결말이 기대됩니다.

friends 2009-12-02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본 시리즈가 피날레를 향해 달려가고 있군요. 본 얼티메이텀 뒤에 또 속편이 나와도 좋을 것 같은데. 본 시리즈는 첩보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감각적인 요소들이 많은 듯^^

둥이 2009-12-02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뭐야?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아니 생각들 아무튼 모든것!)이
다 내가 아닐수도 있다는?
나도 이 사회에서 훈련된 한 개체일 뿐인가?
어렵다 그래서 난 떠난다....

훈남 2009-12-04 00:0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동감이요. 어렵네요;;

니모 2009-12-02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둥이님, 저번에도 떠난다고 하시더니 또 오셨군요ㅋㅋㅋ

doingnow12 2009-12-0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얼른떠나세요 둥이님..크흣..
점점 나이가 들면서 느끼게 되는 세상과의 괴리감은 결국 배운것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건가봐요..그래서 저는 오늘도 그 사이에 낑겨서 허우적대는가봅네다..흐흑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⑪

 

11. 모두 너였어! 널 만든 건 너야! (2)

   
 

우리는 진실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우리가 그것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최고의 방법은 결국 잃어버린 나를 깡그리 지우는 것이었다. 제이슨 본이 잃어버린 기억의 창고를 열기 위한 열쇠를 발견하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나를 버리는 것이 나를 찾는 유일한 길임을. 과거의 나를 모조리 삭제할 수는 없을지라도,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나를 만든 자들’의 게임 프로그램 속에서 그들의 통제를 받는 인간병기로 머물게 될 것이다. 콩클린의 말처럼, 제이슨은 미국 정부의 소유물이었으므로. 통제 불능의 삼천만 달러짜리 무기, 빌어먹을 실패작이었으므로. 
 

   제이슨은 이제 ‘이런 일’은 그만 하고 싶다고, 더 이상 살인의 게임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고 밝힌다. 콩클린은 코웃음을 친다. “그건 네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야!” 천하무적의 인간 살인병기, 제이슨 본을 탄생시킨 것은 미국의 국방부 산하 트레드스톤 프로젝트였지만 제이슨 본이라는 ‘대 실패작’으로 인해 이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들이 창조한 인간병기 제이슨 본으로 인해 거꾸로 그들의 조직이 역습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이슨 본이 원하는 것은 그렇게 거창한 조직의 소탕작전이 아니라 그저 ‘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일 뿐이다. 이제 그가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삭제하는 길뿐이다. 제이슨은 콩클린에게 총구를 겨누고 마지막 다짐을 받으려 한다. 모두에게 내가 죽었다고 말해줘. 아무도 날 찾지 않게. 아무도 날 기억하지 않게. 



   제이슨 : 이제 제이슨 본은 죽었어, 내 말 알겠어? 그는 2주 전에 익사했어. 사람들에게 제이슨 본은 죽었다고 발표해, 알아듣겠지?
   콩클린 : 그러면 넌 어디로 갈 건데? 
   제이슨 : 몰라. 하지만 만약 누구든 내 뒤를 미행하면, 난 하늘에 맹세코, 너에게 복수할 거야. 난 이제 내 편일 뿐이야.

   하지만 제이슨이 ‘나는 사라질 것이다’라고 홀로 굳게 결심한다고 해서 이 모든 상황이 종료될 수는 없다. 제이슨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이 일에 연루된 사람은 엄청나게 많고 투자된 자본은 엄청나다. 제이슨 제거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콩클린은 결국 ‘조직의 논리’에 따라 제거당하고, 제이슨은 이제 더 강력한 추격자와 맞서게 된다. “트레드스톤의 작전은 사실상 종결되었습니다. 애초에 그것은 고도의 지능 훈련프로그램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훌륭한 기반으로 자리 잡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 막대한 투자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관련 작전을 철회합니다.” 트레드스톤의 책임자는 국방부에 트레드스톤 작전의 종료를 선언한다. 그러나 트레드스톤의 종언은 곧 더욱더 ‘업그레이드’된 트레드스톤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럼 다른 작전은 준비 됐습니까?” “네, 바로 블랙 브라이어 작전입니다. 국방부와 합작하여 계획된 이 작전은 성공적인 장기 훈련 방법이 될 것입니다.”

   제이슨 본이라는 실패작으로 인해 좌절된 트레드스톤은 결국 블랙 브라이어라는 대체제로 바뀐다. 블랙 브라이어 프로젝트는 제이슨의 실패를 통해 ‘오류 가능성’을 대폭 줄인 더욱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인간병기 제작 기획이 될 것이다. 컴퓨터처럼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자유롭고 유연한 두뇌를 장착한, 기계-인간을 만들어내는 것. 아마도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고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을, 저마다 사연이 파란만장한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그의 원래 삶을 빼앗고 외관상 매우 멋진 비밀요원의 임무를 맡기는 것. 결국 트레드스톤이나 블랙 브라이어나 동시에 한 인간이 가진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제거해 ‘국가장치’의 아이덴티티를 이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닌가. 그들은 언제든 ‘제이슨 2, 제이슨 3’를 만들어낼 것이고 트레드스톤보다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대체 제를 만들어 ‘그들이 원하는 세계’의 밑그림을 차곡차곡 완성해나갈 것이다.   


   트레드스톤으로부터 도피하느라 아직 블랙 브라이어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제이슨은 일단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기로 한다. 내가 무엇이었든, 내가 누구였든, 이제 상관하지 않겠다. 그는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아내진 못했지만 과거의 삶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다. 그는 트레드스톤을 가까스로 따돌린 후, 굳이 곳곳의 서류와 증인을 찾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굳이 나를 찾을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나의 육체가 이미 나의 과거를 말하고 있다. 내가 지나온 시간과 공간이 나의 육체 곳곳에 아로새겨져 있다. 나를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굴레도 육체지만, 내가 이 삼엄한 권력의 감시망을 뚫고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도 내 육체 위에 나 있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무기이자 희망, ‘내 몸’이라는 최고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길로 떠나기로 한다. 이 세상에서 내가 아는 유일한 사람, 그녀에게로.  

   
 

푸코는 생전에 깊은 영향력을 갖지는 못했고, 다만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성공은 그의 스타일이 지닌 독창성에서 비롯되었는데, 덕분에 <말과 사물>처럼 어려운 저작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철학 수업에 관계하는 내 여자 친구 한 명은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사르트르 한 페이지, 레비스트로스 한 페이지, 그리고 푸코 한 페이지를 읽어준다. 그런데 푸코의 페이지를 들을 때만 학생들은(……) 그의 글쓰기 때문에 깜짝 놀라 침묵 속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그의 강의가 거둔 성공(강의실이 꽉 차서 청중들은 바닥이나 통로에 앉기도 했고, 일부는 다른 강의실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서 강의를 들어야 했다) 또한 그 강의의 내용보다는 그 스타일에 기인하는 바가 더 컸다.    

 - 폴 벤느, 이상길 역, <푸코, 사유와 인간> , 산책자, 2009,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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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ndltkdtm 2009-11-30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우구스티누스의 명언이 가슴을 후벼파네요.ㅋㅋ 애써 진실을 직접 찾아내어 믿기보다는 내가 믿는 것이 곧 진실이라 믿는 것이 속 편하기에....

맨손체조 2009-11-30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 벌써 끝나는 건가요??? 이제 본과 이별하는 건가요?? 2탄, 3탄은요? 음, 여하튼 다음 영화를 기대할랍니다.....

someday 2009-12-0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직 안 끝난 것 같은데요? 마지막회 표시가 없는 듯^^ 슈프리머시와 얼티메이텀도 이야기해주셔야죠!!

doingnow12 2009-12-03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럼 모두 버려야, 모두 가지게 되는 건가..?
 

 


영화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 ⑩

 

10. 모두 너였어! 널 만든 건 너야! (1)

   
 

그러니까 그렇게 멀고도 높은 곳에서 다른 이들의 담론을 기술하고자 하는 당신은 대체 어디에서 말하고 있다고 자처하십니까? 


 - 미셸 푸코

 
   

   감옥 아닌 곳에서 인간을 감시하는 가장 효과적인 시스템은 ‘신이(혹은 카메라가) 언제나 너를 보고 있다’는 환상을 주체의 무의식에 기입하는 것이다. 특히 카메라가 제이슨 본의 ‘등 뒤’를 비출 때, 관객은 바싹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제이슨 본의 목숨을 노리는 그들의 시선은 마치 신처럼 전지전능하여 언제든 바로 그의 등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 총구를 들이댈 것만 같다. 제이슨의 기억을 상실하게 한 사건도 바로 그의 등 뒤를 쏜 두 발의 총성 때문이지 않았는가.   

   트레드스톤의 행동대장 격인 콩클린을 직접 독대함으로써 제이슨은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에 한층 가까이 가게 된다. 제이슨은 콩클린과의 섬뜩한 조우로 인해 더욱 확실하게 깨닫게 된다. 제이슨 스스로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나는 트레드스톤 요원이었다’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내가 누구이든, 내가 누구였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문제임을.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금부터 다시 만들어갈 수 있다.
   내가 누구였든 지금부터의 결정 하나하나에 따라 나의 미래는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구였는가’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고, 그 진실의 참혹함이 나를 평생 추격할 것이라는 점이 문제이다. 그는 콩클린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진실’의 파편에 맞아 휘청거린다. 그제야 ‘내가 한 짓이 무엇이었는가’를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누구였는가’라는 필생의 화두는 ‘나의 과거로부터 어떻게 탈주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바뀐 것이다. 
  

   “케인이란 존재를 만든 건 너야! 움보시와의 미팅을 주선한 것도 경비 회사를 찾은 것도 너야! 사무실에 침입한 것도 너지! 젠장맞을, 암살 장소를 그의 요트로 정한 것도 바로 너잖아!” 이제야 생각난다. 모두 나였다. 모두 내가 계획하고 내가 실행하고 내가 실패한 것이었다. 누군가 나의 정체성을 일부러 지우려 한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세상 속에서 삭제한 것도 나 자신이었다. 더욱 훌륭한 암살 기계가 되기 위해, 그 모든 ‘자아의 삭제’ 프로그램 또한 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트레드스톤의 임무는 ‘살인의 주체’를 철저히 영원한 비밀에 부친 채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대상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제이슨 본은 이 비밀 임무 수행에 가장 적합한 최고의 ‘인간병기’였던 것이다. 

   트레드스톤의 시스템은 마치 한 명의 암살대상을 죽이기 위해 수십 명의 저격수에게 총을 쏘게 하는, 그리하여 ‘누가 쏘았나’라는 질문에서 모두를 회피시키는 ‘주체의 삭제’ 전략과 비슷하다. 저격수는 ‘설마 내 총에 맞아 죽은 것은 아니겠지’라는 위안 속에 죄책감을 씻어버리는 것이다. 모두 ‘조직의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단지 그 조직의 일원이라는 이름만으로 죄도 죄책감도 책임도 조직에 돌아간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벌거벗은 자아와 만나고 나서야 제이슨은 깨닫는다. 살인의 죄책감은 온전히 자신의 ‘개별적인’ 육체로 쏟아지는 고문임을. 과거의 그가 트레드스톤을 스스로 택한 것이라 해도 지금의 그는 그 고통스러운 살인의 게임을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제이슨은 콩클린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런 일은 이제 그만 두고 싶어.” 제이슨은 이제야 기억났다. 왜 움보시를 쏘지 못했는지를. 5일씩이나 움보시가 타고 있던 배에 잠복하고도 움보시를 차마 쏠 수 없었던 이유. 그를 쏘려고 했던 순간 그의 가슴 속에서 꼬물거리던 아이들의 눈빛 때문이었다. 두려움에 가득 차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제이슨을 바라보던 그 아이들의 눈빛. 제이슨은 아이들이 뻔히 보는 앞에서 차마 아빠를 쏠 수 없었던 것이다. 아직 뼛속 깊이 속속들이 조직의 기계부품이 되지 못한 제이슨이라는 한 인간의 아킬레스건. 악명 높은 트레드스톤의 훈육 프로그램도 미처 길들이지 못한 제이슨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렇듯 너무도 나약해서 더욱 아름다운 아킬레스건이 있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말한 모든 것들의 무게 아래에서 신(神)을 죽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들이, 당신들이 말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서, 신보다 더 오래 살 한 인간은 만들어내리라고 생각하지는 말라. 


 - 미셸 푸코, 이정우 역, <지식의 고고학> 민음사, 1994, 290~2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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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체조 2009-11-26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 티비 드라마 보다가 다음 날 지각하기, 멍때리기!!!

둥이 2009-11-26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아이의 눈빛은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져,
전 매일 매일 그 위력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자 그럼 한번 빠져~~봅시다~~~

니모 2009-11-26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의외였죠. 천하의 제이슨 본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아이들의 그 까만 눈 앞에서 무너지던 그 모습!^^

doingnow12 2009-12-03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시리즈 안봤었는데 꼭 봐야겠어요.. 이상하게 손이 안가는 영화들이 있자나요ㅋ 이제 손이 갈것 같아요 ㅋ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