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머레이의 기도 응답의 비밀
앤드류 머레이 지음, 유정희 외 옮김 / 두란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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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기도 응답의 비밀! 십자가, 성령, 중보기도!

"나는 영의 사람입니다!"라고 세상에 알리고 싶다. 눈에 보이는 현상, 물질 세계만을 전부인 것으로 알고 사는 사람들에게 나는 다르게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고 싶다. 내 안에 살아 있는 영, 그 영으로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영으로 기도하는 그 비밀스러운 감격과 기쁨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앤드류 머레이의 <기도 응답의 비밀>을 읽을 때, 내 마음에는 간절한 소원이 있었다. 그 소원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기도 응답의 비밀>이라는 책의 제목이 눈앞에 크게 확대되어 다가왔다. 소녀시대의 노래처럼 주님이 내게 "소원을 말해봐!"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설레임과 기대감 가득 안고 책을 펼쳤다. 마치 모든 소원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역시! 내가 구하는 것에 비해 아바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해놓으신 것은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무엇, 내가 전혀 기대하지 못한 그 무엇이었다! 내 안에 간절했던 소원은 어느새 흔적도 없고, 내 영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 가운데 잠겨 영의 세계의 비밀을 알아갔다.

앤드류 머레이의 <기도 응답의 비밀>을 여는 열쇠는 세 가지이다. 십자가의 능력, 성령의 능력, 중보기도의 능력! 이 세 가지는 기도 응답을 받는 비밀 열쇠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바로 기도 응답이다! 그렇다.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 성령의 능력, 중보기도의 능력을 알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이미 응답을 받은 것이다! 너무나 명백한 진리이지만, 눈에 보이는 것에, 현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만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바로 그 영적 진리의 비밀을 이 책은 말하고 있었다.

"십자가가 전하는 구속의 메시지는 이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가장 깊은 기쁨의 근원이다"(p.15). 십자가의 은혜 아래 엎드려 기도하는 자는 이미 가장 깊은 기쁨의 근원을 맛본 자이다.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기쁨이 내 안에 넘치는데 내가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십자가는 우리가 이미 세상에 대하여 못 박힌 자이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소원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 나를 완전히 맡기는 삶을 살고 있는 주의 자녀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 이 깨달음은 나의 기도를 바꾸어놓았다. 불평하는 입술 대신 감사가 넘치는 입술로, 욕심껏 부르짖던 입술 대신 찬양의 입술로 바꾸어놓았다.

"이 세대는 하늘의 것들을 가볍게 여긴다"는 경고의 메시지에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는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 즉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영으로 기도할 수 없다. 앤드로 머레이는 위로부터 임하는 능력이 바로 '나'를 위해 예비되고 약속된 것임을 강력하게 전한다. 그렇다. 우리는 영의 사람이다. 기도는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영으로 기도하는 우리는 확실히 알게 된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말이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자는 "한 번에 하루씩 산다!" 나는 이 말씀 안에 담긴 영적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매일 기도하는 영의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내일에 대한 염려와 불안으로 두려워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뼈가 아프도록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비로소 분명하게 마음에 새겨진다. 주여, 내일의 염려까지 안고 살았음을 회개합니다. "당신을 오늘까지 인도하신 분이 내일도 인도하시리라 확신하며 안심하라"(p. 139).

기도의 가장 큰 비밀은 기도에는 엄청난 영광의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믿기는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일하신다. 기도는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이다. 

우리의 소원을 이뤄주실 분은 소녀시대도 아니고, 요술 램프 안에 사는 지니도 아니고, 바로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시며, 전지전능하신 나의 하나님이시다! 바로 그분이 내게 귀 기울이시고, 나의 간구에 신실하게 응답하신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께서 중보기도를 기뻐하시며, 우리에게는 교회와 세상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능력과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의 범위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녀에게 주신 기도의 특권과 위력의 위대함을 깨달을수록 스스로를 나약하고 비천한 존재로 여겨왔던 나의 소심함이 부끄러워진다.

세상은 "소원을 말해봐"라고 노래하지만, 소녀시대도, 요술램프 안에 사는 지니도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줄 수 없다.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우리의 기도에 귀기울이시며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나는 오늘도 그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영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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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최고봉 365 묵상 캘린더 - 오스왈드 챔버스의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5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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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십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책상 위 정면에 컴퓨터 모니터가 놓여 있고, 모니터 주변으로 성경 말씀을 적어놓은 포스트잍이 붙어 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기억하게 하는 성경 말씀도 적어 놓았고, 나에게 힘과 위로가 되는 성경 말씀도 적어 놓았고, 필요한 은사를 구하는 성경 말씀도 적어 놓았다. 시시때때로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며, 때때로 지치고 낙심되는 마음에 힘을 얻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싶어서이다. 눈에 잘 띄는 곳에 성경 말씀을 적어놓으니, 시선이 성경 말씀에 가 닿을 때마다 마음으로 기도하며 수시로 새 힘을 얻는다.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기독교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하는 <주님의 나의 최고봉>이 예쁘고 아담한 크기의 상자에 담겨 내게로 왔다!

단행본으로 발간된 <주님은 나의 최고봉>을 읽을 때마다 주님의 보혈이 흐르는 십자가 앞에 얼마나 많이 꿇어 엎드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꿇어 엎드려 길고 긴 침묵 속으로 젖어들었다. 예민한 영적 감각을 가진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날카로운 가르침이 가슴 깊이 파고들 때마다 내 속이 투명하게 비쳐지는 것 같았다. 교만하면서도 교만인줄 모르고, 잘못 가고 있으면서도 잘못된 줄도 모르고, 허공을 치고 있으면서도 열심을 내었던 나의 영적 무지를 깨달을 때마다 십자가 앞에 엎드리고 또 엎드렸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싶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나의 영은 끊임없이 회개의 자리로 나아갔고, 더불어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함과 사모함을 가지고 은혜의 자리로 나아갔다. 십자가를 통해 부어지는 보혈의 은혜, 성령의 도우심에 얼마나 목말랐는지 모른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 365일 묵상을 위한 탁상용 캘린더로 제작되어 나왔다. 단행본 <주님은 나의 최고봉>에 실린 가르침 중에 핵심적인 메시지를 묵상하면서 달력으로도 활용 가능한 묵상 캘린더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1월부터 ’하나님보다 앞서지 마십시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주님께로 인도하며 옳은 길을 일러주는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 365 묵상>은 연도와 관계 없이 1년 내내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영적인 가르침과 성경 말씀 묵상이 가능하도록 제작되었다. 영어 성경도 함께 기록되어 있어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암송하는 카드로 활용해도 좋을 듯 하다.

내가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을 반복하여 읽는 이유는 중요한 영적 진리들을 명확한 개념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은 강력하면서도 단호하다! 어떠한 타협도, 논쟁도, 망설임도 없다. 그 강력한 확신이 믿음의 뿌리를 든든히 하며, 우리의 걸음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준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주님은 나의 최고봉 365 묵상> 캘린더를 책상 위에 올려놓으니 "한걸음 한걸음 주 예수와 함께 / 날마다 날마다 우리는 걷겠네"라는 찬양이 절로 나온다. 이 묵상 캘린더를 선물하고 싶은 얼굴들이 많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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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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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가 생각나 가사를 찾아보았다.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 방울들
빗줄기 이들을 찾아와서 음 어디로 데려갈까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음 어디로 가야 하나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모두가 사라진 숲에는 나무들만 남아 있네
때가 되면 이들도 사라져 음 고요만이 남겠네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음 이들을 데려갈까


선생님이 가르쳐준 이 노래를 한참 불렀던 시절에는, 그저 가사가 동화처럼 예쁘고 참으로 건전하다고만 생각했지, 제목과 노랫말이 전해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제목은 '아름다운 것들'인데 노랫말이 참 슬프다. 아름다운 것들이 때가 되면 사라지니 말이다. <가스미초 이야기>를 읽으니 이 노래의 의미가 비로소 조금 이해되려 한다.  <가스미초 이야기>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꼭 이 노래를 닮아 있다. 아름다운 것들은 때가 되면 사라진다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 평범한 생(生)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자주 잊고 사는 까닭에 '사라질 때'가 느닺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충격을 받지만, 알고 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사라질 때가 오리라는 것 말이다. 어쩌면 아름다운 것은 사라지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라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름다운 것들에 눈을 뜰까. 사라진다는 사실보다 더 슬픈 것은 너무 늦은 때에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가을에 너무도 멋지게 어울리는 노란 은행잎 가득한 표지, 그 표지에 이끌려 <가스미초 이야기>를 읽었다. 의미나 줄거리가 어림도 되지 않는 다소 낯선 제목의 소설 책 <가스미초 이야기>, 가스미초는 '안개마을'을 뜻한다. 저자는 주인공 '이노'를 중심으로 하여 모두 여덟 편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려한 장미빛이 아닌, 은행잎처럼 수수한 인생들의 이야기가 영원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남기며 안개처럼 조용히 흩어지고 있다. 그들의 인생이 조용히 흩어질 때,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차오르며 나는 어느새 내게서 조용히 사라져간 아름다운 것들을 마음으로 헤이고 있었다. 언제나 별로 말이 없으셨던 외할아버지, 전화로 '어린왕자'를 읽어주던 친구,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해 내 앞에서 주정을 했던 선배 언니에 대한 추억,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던 시절의 아빠와 엄마의 모습과 꼬마였던 나. 어쩐지 모든 것이 그리워진다. '그리움', 참으로 오랫만에 맛보는 감정이다. 치열하고 바쁜 일상이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삼켜버렸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정신 없이 살아온 세월이 느껴진다. 

슬픈 첫사랑을 간직한 할머니, 이노에게 한 장의 졸업사진을 마지막 선물로 남겨주신 할아버지, 넙죽 엎드린 자세로 은행을 줍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찍어 '노스승'이라 이름붙인 사진으로 그랑프리를 수상한 아버지, 할아버지의 유골을 안치하며 "아버지, 다녀오세요"라고 인사하는 어머니. 이노의 인생과 연결된 이분들의 삶이 이노의 인생에 차지하는 자리를 생각하니,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의 2절에서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작은 새'가 얼마나 가엾은지 절절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가스미초 이야기>,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는 착한 이야기, 아름다운 것들이 사라지는 슬픈 이야기, 안개처럼 가득 피었다가 조용히 흩어지는 인생에 관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 책을 읽은 기념으로 은행나무로 가득한 가로수 길을 찾아 걸어야겠다. 하늘로 고개를 들고 은행잎 가득한 틈새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가을 햇빛을 보려면 서둘러야겠다. 조용히 사라지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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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돌한 심리학 - 자기주장을 위한 표현의 기술
허버트 펜스터하임.진 베어 지음, 이양희 옮김 / 말글빛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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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이 없는 태도를 보이거나 공격적인 성향이 있다면,
당당하게 자기를 주장하는 법을 훈련하라!


마음은 '아니오'를 말하고 싶은데, 왜 우리는 '아니오'를 말하지 못할까? 어렸을 때, 큰 며느리였던 엄마가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할머니와 고모들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난 한마디도 직접 말하지 못했다. 직장 내에서도 부당한 대우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지만 내 권리를 직접 주장해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 '아니오'라고 말하고 싶을 때, '예'라고 말한 뒤, 속으로 부글부글 끓다가 한계에 부딪히면 결국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만다. 다툼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상대에 대한 미움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외톨이로 사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할 만큼 관계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요즘 독서치료라는 말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당돌한 심리학>은 읽는 것만으로도 직접적인 치료 효과를 스스로 느낄 수 있는 심리학 서적이다. 행동요법을 바탕으로 한 ’자기주장훈련’(AT)이 목적이다. <당돌한 심리학>이 목표하는 자기주장훈련을 한마디로 말하면, "아니오"를 말하고 싶을 때, "아니오"라고 분명하고 배려 있게 말하는 훈련이다. "아니오"라고 하고 싶을 때 "예"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돌한 심리학>에는 자기를 주장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굴복하게 되는 여러 가지 사례와 원인 분석, 그리고 그것의 피해와 치료를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동양인에 비해 미국인들은 상대적으로 자기표현이 자유로운 문화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의 직장생활, 결혼생활, 이성교제, 사회생활, 가족관계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예절과 배려라는 이름으로 거절해야 할 때 제대로 거절의 의사를 표시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도 때로는 교만해 보일까 걱정되어, 또 때로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없어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참고 지나가는 사례들이 우리의 생활과 많이 닮아 있다.

자기주장훈련(AT)은 한마디로 자신감 있는 반응을 훈련하는 일이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은 갈등 상황에서도 속으로 불만만 키우다가, 결국 불만이 쌓여 분노가 극에 달하면 공격적인 대응을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과 의견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당돌하게 말이다! (당돌하다를 사전으로 찾아보니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올차고 다부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책의 제목이 정말 딱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동요법을 바탕으로 하는 <당돌한 심리학>의 자기주장훈련(AT)은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유익이다.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느라 늘 과거만 헤집는 다른 심리학과는 달리, 바꿔야 할 구체적인 행동 목표를 설정하여 준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이 바뀌면 삶이 바뀐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니오"를 말하고 싶으면서도 "예"하게 되는 것처럼 행동을 바꾼다는 것은 그리 녹녹한 과제가 아니다. 행동을 바꾸는 일에는 마음 안에 있는 장벽을 제거해야 하고, 원하는 행동을 '훈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돌한 심리학>은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주는 고마운 책이다. 마음 안에 있는 장벽을 제거하고, 구체적인 행동 요령을 알려 준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그때마다 필요한 행동 지침을 알려주는데, 그중에서도 10장 다이어트 방법이 흥미로웠다. <당돌한 심리학>이 제시하는 다이어트 행동 요법은 식습관을 바꿔주는 것이다. 음식을 먹는 몇 가지 규칙을 정해서 실천하는 것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이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음식량을 조절하려 애쓰기 보다 음식은 반드시 식탁에 앉아서 먹는다는 규칙만 지켜도 다이어트 효과를 볼 수 있다. 원하는 목표와 행동을 통제한다는 의미에서 이것도 건강한 자기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요구에는 굴복하면서도 자신의 욕구는 주장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이제 당돌해지자!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너'를 위해서도 우리는 당돌해질 필요가 있다. <당돌한 심리학>은 나를 주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욕구를 거절하고 무시하는 심리학이 아니다. 건강한 자신감을 회복하여 진정한 소통의 장으로 나아가게 한다. 내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결국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고 관계는 파괴되고 만다. 내가 건강하게 반응해야 상대방도 건강하게 반응할 수 있다. 내가 변해야 상대방도 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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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바뀐 딸
마크 탭 외 지음, 김성웅 옮김 / 포이에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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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가혹했지만 믿음으로 일궈낸 행복한 결말!


우리에게 영원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좀 달랐을까? 내가 아는 한 분은 군대에 보낸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아 몇 년을 소위 ’밤 문화’라는 것에 취해 보냈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잃어버린 아들 생각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고.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이었던 선생님은 1년 후 나와 동갑이었던 큰아들이 돌연사한 아픔을 겪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갑자기 화려한 옷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하고 나타나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살아갈 의욕을 잃었다고 하는 선생님 때문에 혹시 선생님이 잘못되시지는 않을까 모두가 긴장하며 지켜보았던 기억이 난다. <뒤바뀐 딸>을 읽으니 그런 질문이 생긴다. 우리에게 영원을 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좀 달랐을까?

<뒤바뀐 딸>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제 이야기이다. 어느 날, 갑자기 빛나는 청춘의 나이에 아름다운 꿈을 간직한 사랑하는 딸이요, 동생이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테일러 대학교 학생과 교직원을 태운 승합차가 졸음 운전을 하던 트럭과 충돌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났다. 어떤 가족은 슬픔 속에 딸의 장례를 치뤄야 했고, 어떤 가족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딸을 극진히 간호하며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사고 소식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은 그렇게 한 달하고도 또 한 주가 지나고 있을 때였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로라'를 간호하던 가족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로라'가 '로라'가 아니었던 것이다. 신원 파악을 하는 과정의 실수로 로라와 휘트니의 신원이 바뀐 것이다! 

뒤바뀐 딸, 어쩌면 사고보다 더욱 가혹한 현실이었을지 모른다. 나의 기쁨이 고스란히 다른 사람의 아픔이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딸의 장례를 치뤄야 했던 '휘트니'의 가족은 '휘트니'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시 딸을 잃어야 하는 '로라' 가족의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얼마전 그렇게 '휘트니'를 보냈으니까. 나에게 기쁨이 다른 사람에게는 끔찍한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떻게 전적으로 좋을 수만 있겠는가. 끔찍한 사고에서도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로라'를 돌보며 감사했을 '로라' 가족은 뒤늦게 자신이 돌보던 환자가 '로라'가 아니었음을 알고 더 큰 충격과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로라'는 이미 죽고 '휘트니'가 살았다고 해서 그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슬픔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큰 기쁨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슬픔 가운데서도 함께 위로하며 기뻐했다. 그들의 감동적인 사랑 앞에 숙연해진다.

휘트니 가족과 로라 가족이 크나큰 시련 가운데서도 서로를 부둥켜 안고 그렇게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원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하늘 소망, 즉 천국을 바라보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대상을 잃고 상실의 아픔이 덮칠 때, 그곳에서 나를 구원해준 유일한 밧줄은 바로 하늘 소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산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만큼 절실하게 천국의 실존에 대해 생각하고, 그곳에 대한 살아있는 소망이 나를 채웠던 적이 없다. <뒤바뀐 딸>의 이야기는 나에게 그것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믿음과 온 마음과 온 몸으로 부딪혀내야 하는 시련의 고통, 그 사이의 긴장!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으로 눈에 보이는 세계를 살아내야 하는 신앙인들에게 ’시련’은 참 많은 의미를 내포한 그 무엇이다. 시련에 임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이기도 하고,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 믿음을 통해 더욱 큰 축복을 가져오는 복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시험이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믿음의 크기와 순도는 오직 시련으로 측정되는 듯 하다. 

시련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실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 바로 그러한 고통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거절과 배신의 상처가 더욱 큰 것이다. 그 쓰라림은 절망의 무게를 넘어선다.

그러나 <뒤바뀐 딸>은 순도 100%의 정금 같은 신앙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뒤바뀐 딸>의 이야기를 통해 이 아름다운 두 가정이 세상에 증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그리고 장차 우리가 가게 될 천국에 대한 소망이다. 영원을 볼 수 있는 사람의 삶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아름다운 두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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