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그림책 - 부모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의 호소문 에듀세이 2
이희경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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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성처받은 아이들의 호소문


얼마 전, 기르던 강아지가 새끼를 낳고 이 세상을 떠났다. 새끼를 낳는 중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았는데, 그때 홍역에 감염되어 버렸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온몸을 덜덜 떨다 나중에는 마비 증세까지 왔다. 그런데 강아지가 그렇게 아파하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보다 더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 것이 있었다. 목조차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강아지가 배고파 끙얼거리는 제 새끼에게 젖을 물리러 가려고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자꾸만 일어서려고 정말 죽을 힘을 다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모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난다. 

우리는 한낱 짐승이라고 하지만, 짐승들도 제 몫숨보다 새끼를 더 아끼고 돌본다. 우리는 이것이 부모님의 숭고한 사랑이요, 갚을 길 없는 은혜라고 배웠다.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우리에게 주는 존재, ’부모’란 모든 생명체에게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데 심리학이라는 학문의 영향 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호소하는 소리가 높다. 전에는 부모에게 상처를 받아도 그것을 모른 채 살았던 것인지, 아니면 유독 현대의 부모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갈수록 부모의 은혜를 노래하기보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치료하느라 분주한 분위기이다. 각종 치유 프로그램이 성행하는 것을 볼 때마다, 인간의 내면이 점점 더 허약해지고 병들어가고 있는 듯한 의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마음속의 그림책>은 심리치료 전문가인 이희경 선생님이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그림치료 사례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그대로 투영된 아이들의 그림은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자녀에게 가해지는 부모의 학대와 폭력, 일방적인 사랑, 가족 간의 불화 속에 신음하며, 그 영향으로 왜곡되고 뒤틀린 채 성장하는 상처난 아이들의 고통 소리가 애처롭다. 이들의 성난 목소리,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가 더욱 절망적으로 들리는 것은 그 상처의 대상이 바로 (사랑하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인 부모의 품! 그 품을 잃어버렸다면, 아니 그 품에서 오히려 더 지독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그 아이는 어디로 피해야 한다는 말인가.

"잘 기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 최소한의 양육도 못할 사람은 부모가 되지 말라"(189)는 아이의 외침이 이 땅의 모든 부모된 자들에게 어떻게 들려질지 궁금하다. 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부모가 된다고 한다면 몇이나 부모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부모에게 받은 상처와 그 아픔이 자녀의 평생을 괴롭히는 파괴력을 지닌 것을 생각하면 ’부모 됨’에 대해 부모 스스로 자기 반성적인 성찰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모는 자녀의 숨소리만 들어도 자녀의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부모가 부모이기를 거부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인류의 타락은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사랑, 그것은 인간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일 것이다. <마음속의 그림책>에 담겨 있는 자녀의 신음소리에 모든 부모가 진심으로 귀 기울여 주기를 소망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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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 - 오스왈드 챔버스의 도전 오스왈드 챔버스 시리즈 6
오스왈드 챔버스 지음, 스데반 황 옮김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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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나는 사역자이다. 사역자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를 읽었다. 이 책은 그야말로 내게 '도전'이다! 내가 쓰는 이 글이 사역자에게만 공개되는 서평이었으면 좋겠다. 책을 읽으며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었던 순간을 솔직하게 공개하기가 망설여진다. 사역자로서 내 자신의 부족한 모습이 부끄럽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쉽게 비판할 수 있는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 나와 같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나, 새로운 교훈을 얻으면, 그 문장에 밑줄을 긋고 책의 모서리를 접어 놓는다. 언제든 그 페이지를 쉽게 찾아 읽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를 읽으면서는 모서리 접는 일을 그만 두었다. 그렇게 모서리를 접어가다가는 책의 전부를 접어야 할 판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가르침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사역자에게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가르침을 준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온전한 사역자가 되기 위해, 사역자가 해야만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얽매여야 할 것과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한 선포를 한다. 언제나 그렇듯 논쟁이나 타협은 없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는 어찌 보면, 어느 시대에나 적용가능한 일반적이고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사역자 상을 그려주는데, 밝은 조명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처럼 나의 구석구석이 환한 빛 가운데 드러나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고자 결단하며 분토와 같이 내어버린 세상 것들을 주섬주섬 다시 주워 챙기고 있는 나의 모습. 사람의 칭찬에 귀 기울이고, 하나님이 아닌 '사역'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나를 위한 자기계발을 목표로 삼고, 성경을 좀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지적 훈련에 열중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장 많이 회개한 부분은 '공평하신 하나님'을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억울함을 호소했던 일이다. 하나님 앞에 서러워 울던 날도 많았는데,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칼날 같은 말씀 앞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나님의 공평을 구하는 호소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전적으로 '나를 위한' 간구였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하나님께 다시 꿇어 엎드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평을 하며 자신을 위한 공평을 구한다. 억울하고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당신이 복음의 사역자로서 자신과 관련한 공평을 구한다면 당신은 곧 자기연민이나 낙심에 빠져 가방을 싸고 주님의 제자도의 길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절대로 자신을 위해 공평을 구하지 말라. 억울한 일이 발생하면 당하라"(p. 122).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영적 통찰력에는 영적 생명력이 충만하고, 미묘한 간극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예리함이 있다. 열심이 열심이 아니며, 잘못이 잘못인줄도 모르고 행할 수 있는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주실 때마다 놀랍고도 시원하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는 특별히 '설교(학)'를 위한 가르침을 얻기 위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자칫 범하기 쉬운, 또는 이미 범하고 있는 오류와 잘못이 무엇인지 진단할 수 있으며, 사역자가 반드시 마음에 새기며 놓쳐서는 안 될 설교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웅변가는 청중의 마음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켜 어떤 일을 하게 한다. 그러나 복음의 설교자는 청중이 끝까지 안 하려고 버티는 것을 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자신들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설교자의 사명은 죄를 드러냄과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드러내는 것이다"(p. 44).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역자>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가르침은 성경적 영감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명문장가라는 사실이다. 일부러 멋을 낸 흔적도 없는데, 그 힘 있는 가르침과 선포가 읽는 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불꽃을 일으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뜨리시고 잘라내시고 다듬으시는 이유는 오직 단 한 가지 목적, "이 사람이 바로 내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이 내게 말할 수 없이 큰 위로를 준다.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너는 내 종이니라"(사 44:21) 하시며 나를 부르신 그날의 주님 음성이 다시 나를 가득 채운다. 오직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되기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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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노스케 이야기 오늘의 일본문학 7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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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찬란한 빛은 그것을 지나온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가 보다.
그렇게 찬란한 청춘을 살았던 요노스케 이야기, 나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



어렸을 때, 어른들은 내게 "넌 아직 어려서 잘 모르지만 어른이 되면 저절로 알게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난 그럴 때마다 억울한 마음으로 ’나도 이미 다 안다고요!’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내가 그때 정말 몰랐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다 안다고 자신했던 내가 얼마나 어렸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주어진 길을 그저 걸었다. 똑같은 목표와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똑같은 생활을 했던 또래 친구들과 함께 그렇게 한 방향을 향해 걸었다. 그 길만이 바른 길이라 믿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길을 걷지 않는 친구들의 삶을 ’탈선’이라 이름 붙였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대학교에 입학했던 그 봄날을 기억한다. 그것은 일종의 ’단절’이었다. 늘 똑같은 모양이었던 고등학생과 급격히 단절되면서, 내던져지듯 시작된 대학 생활. 틀에 꽉 짜인 생활에서 놓여나 한꺼번에 모든 강제가 풀려버리자 나는 넘쳐나는 자유 시간을 주체하지 못했었다. 헐렁해진 생활 사이사이로 문득문득 엄습해오는 불안감! 그 불안감은 우리의 청춘을 더욱 열에 들뜨게 만들었지만, 결국 그렇게 열에 들뜬 채로 흘러가버리고 말았다. 열에 들뜬 채 했던 사랑, 열에 들뜬 채 떠들어 댔던 모든 말들, 열에 들뜬 채 빠져들었던 모든 것, 그 어설펐던 시절을 거쳐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열여덟 청춘 <요노스케 이야기>는 내일에 대한 불안함 속에,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모른 채 무심코 흘려버린 대학 시절을 돌아보게 해준다. 특별히 똑똑하지도 않고, 특별히 착하지도 않고, 특별한 고민도 없는 다소 어수룩한 ’요노스케’가 주인공이다. 하루하루는 성실하지만 특별한 목적 없이 흘러가는 그의 일상이 지나온 나의 일상과 많이 닮아있다.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어디쯤에서 우연하게 만난 사람들과 크고 작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조금씩 요노스케의 인생이 채워지면서 방향을 바꿔간다. 우연한 계기로 물줄기를 바꾸며 흘러가는 <요노스케 이야기>는 모든 것은 우연에서 시작되며, 우연은 곧 필연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요노스케 이야기>는 자극적이지 않고 강렬하지 않아 더 짠- 하면서 슬프다. 어느 한 시절, 요노스케와 함께 청춘을 보내며 성장한 주변 인물들이 20년의 세월을 지나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다시 요노스케를 회상하는 장면은 따뜻하면서도 쓸쓸하다. 청춘의 찬란한 빛은 그것을 지나온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빛인가 보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을 지나 조금씩 세상에 눈뜨며 성장하는 <요노스케 이야기>. 특별한 주인공의 특별한 영웅담이 아니어서 내 친구처럼 느껴지는 요노스케이다. 그러나 그를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을 선물해준 평범한 요네스케야 말로 어쩌면 가장 특별한 영웅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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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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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애를 생각하다!


몇 해 전 방송된 드라마 중에, 재방송까지 다시 챙겨보며 그 드라마의 폐인이기를 자처했던 홈드라마가 있다. 배우 공효진 주연의 <고맙습니다>라는 드라마이다. 미혼모인 주인공 영신이는 에이즈에 걸린 딸과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부양하며 살아가면서도 밝고 씩씩하다. 남들은 에이즈에 걸린 딸과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는 영신이를 불쌍하게 생각하지만, 영신이에게 딸과 할아버지는 살아가는 이유이고, 삶의 유일한 행복이다. 언제 자신의 곁을 떠날지 모르는 딸과 할아버지에게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영신이 가족을 바라보며 가슴이 먹먹하도록 울었다 웃었다 했던 기억이 난다.

IMF는 국가 경제뿐만 아니라, 한국의 ’가족’에게도 커다란 위기를 몰고 왔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가장은 집안에서 고개 숙인 아버지가 되고, 집에서 나와 노숙자 생활을 하고,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이혼을 하는 등 가족이 급속도로 해체되면서 가족관계가 재조명 되어야 할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이후로 선거에서도, 광고에서도, 학계에서도 ’가족’이 하나의 중요한 코드로 떠올랐다. 때로는 감동을 주고, 때로는 감성을 자극하면서 ’가족애’가 강조되는 분위기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오 해피 데이>는 부부를 중심으로 한 여섯 가족의 이야기이다. 여섯 가족 모두 흔하게 만나볼 수 있는 이웃 같이 친근한 부부들이다. <오 해피 데이>는 이 여섯 가족의 ’보통의’, 그러면서도 조금은 ’남다른’ 일상을 그리고 있다. 

재미로 시작한 인터넷 경매에 빠져 남편이 아끼는 물건을 몰래 경매에 올리는 아내, 
아내가 짐을 챙겨 집을 나가자 필요한 물건을 하나 둘 사들이며 점차 자신이 꿈꾸던 공간으로 자신만의 집을 완성해가는 남편, 
낮에 잠시 스친 영업 사원의 꿈을 꾸며 황홀감을 느끼는 아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어 집안 살림을 맡게 된 남편과 남편 대신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
대책 없이 사업을 벌이는 남편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남편에게서 영감을 얻는 아내,
로하스에 열광하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놀려주려다 식은땀을 흘리게 되는 남편 등.

<오 해피 데이>는 가족으로 살아가며 겪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가족의 일상사가 얼마나 잘 묘사 되는지, 가족이 함께 먹는 음식의 이름만 다를 뿐 국적이나 문화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친근하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여섯 가족 모두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문제적 요소를 안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독특하고 유쾌하게 그려지는 ’가족애’를 통해 아슬아슬 위기를 잘 극복해간다. <고맙습니다>라는 드라마에서 영신이가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가족에게 감사할 때, 에이즈에 걸린 딸도,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처럼, 그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들이다.

언젠가, 가족관계를 재조명하는 어떤 논문에서 이런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내게 가족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일본인은 비교적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방식으로 답을 한다. 그들은 ’가족은 곧 나와 일체이다’라는 식으로 답하기보다는 ’가족은 내가 사랑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고 답하는 편인 것 같다.> 유쾌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는 전혀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내게 가족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주고 있는 듯 하다. "가족은 내가 사랑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고 말이다. 그러한 사랑은 모두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지라도 마음으로 느끼고, 일상 안에 가득 차서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소중한 ’가족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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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 : 전쟁편
류펑 지음, 김문주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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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통해 새롭게 쓰여지는 인류의 역사,  
이제는 전쟁 욕구와의 전쟁을 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누가 가르쳐주었는지는 모르지만 내 편, 네 편을 갈라 한창 '전쟁 놀이'에 열중했던 어린시절이 기억난다. 그러나 곧 '전쟁'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배웠다. 무엇보다 소중한 생명을 앗아가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전쟁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가장 나쁜 악 중의 악이라는 학습된 이미지가 내게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치뤄지고 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전쟁'이 없었던 시기가 있었을까? 인류의 역사는 어쩌면 끊임없는 전쟁의 역사인지도 모르겠다. 인류는 전쟁을 근절하기는 커녕, 막대한 자본과 세계적인 두뇌를 쏟아부어가며 더 끔찍하고 더 파괴적인 전쟁 무기를 생산해내고 있다.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말이다. '문명화'된 인간 사회에서 전쟁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 자체가 문명화되고 있는 것이다. 진화하는 사회만큼 전쟁도 진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류는 무엇 때문에 끊임없이 전쟁을 할까? 다시 말해, 전쟁은 대채 왜 일어나는 것일까? 시그마북스에서 발간한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 중 <전쟁편>은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본다. 첫째는, 권력 추종자들 간의 게임, 둘째는 부(미인 포함)에 대한 유혹, 셋째는 피와 맞바꾼 문화 전파(종교, 이데올리기 등)의 야욕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을 통해 전쟁이 발발한 원인을 살피며 전쟁의 역사를 돌아보면, 실로 허무하기 그지없다. 어릴 때, 친구들과 땅 따먹기 놀이를 하다가 해가 지고 때가 되면 모두 버려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어차피 모두 두고 빈손으로 떠날 인생들이 참으로 치열하게도 싸웠다. 잔혹한 종교전쟁이나 이데올로기 전쟁도 아이러니하기 그지 없다. 전쟁을 통해 사랑을 실현하려 하고, 전쟁을 통해 이상적인 평화를 이루려고 하나, 과연 진정한 사랑과 평화가 전쟁으로 얻어질 수 있을까.

'인류의 운명을 바꾼'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전쟁'은 그야말로 인류의 운명을 삶의 밑바닦부터 꼭대기까지 흔들어 갈아 엎어버리는 가장 강력한 기제일 것이다. 그러나 끔찍하고 파괴적인 전쟁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초보적인 가르침의 단계를 지나 전쟁이 인간 삶에 유익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불균형한 남녀의 성비를 맞춰주기도 하고, 또 여성은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전쟁이 억압된 여성의 삶을 해방시켜 주는 역할도 한다는 사실을 비교적 최근에 알았다. 그러나 전쟁의 유익을 논하기에는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희생을 생각한다면, 그 대가가 너무 크지 않을까.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 중 <전쟁편>은 중국인 저자의 시각에서 전쟁이 발발한 원인을 기준으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대표적인 전쟁 사례를 선별해 실었다. 전쟁의 발발과 과정을 다층적으로 살펴보며, 다소 주관적인 코멘트도 덧붙인다. (그런데 왜 이 책의 저자는 저자가 아니라 '엮은이'로 소개되는지 궁금하다. 중간 중간 Tip으로 제공되는 백과사전적 정보 때문인지, 객관적인 자료에 대한 각주가 없기 때문인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 책의 엮은이 '류펑'은 '들어가는 글'에서 "전쟁의 핑계를 찾는 대신 전쟁 욕구를 통제할 수만 있다면 평화는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적고 있다. 인간이 벌이는 그 어떤 전쟁도 그것이 아무리 의로운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이 땅에 전쟁이 그치기 위해서는 류펑의 말대로 전쟁 욕구와의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그것이 실현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 공허한 말로 들리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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