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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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며칠동안 나의 일상을 지배한 책이다. 허삼관이라는 인물의 인생에 흠뻑 빠져 몇 날 며칠 웃음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지냈다. 어찌 보면 그냥 그런, 평범하다기 보다 오히려 우매하기까지 한 중국인 한 사람의 고단한 인생이 내게 왜 이리 큰 의미로 다가오는가...왜 이렇게 가슴이 아프게 느껴지는가...싶다가도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느낄 때마다 그냥 속없이 몰두하게 되었더랬다.

허삼관이란 사람. 피를 판 돈으로, 결혼을 하고 아들이 때린 아이의 병원비를 대고 한번 잔 여자에게 선물을 하고 흉년에 가족들에게 맛난 음식을 먹이고 아들의 상사에게 대접할 끼니와 선물을 사고 그리고 아들에게 용돈을 준다. 그리고 자기 자식도 아닌 큰 아들이 중병에 걸리자 삼개월동안 너댓번이나 피를 팔며 병원까지 간다...그리고 그는 늘그막에 다 편해졌는데 노인 피는 사지 않겠다는 신참 혈두의 말에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매혈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제는 자신의 피를 아무도 원하지 않다니.... 집에 무슨 일이 또 생기면 어떻게 하나?" 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런 사람이다. 

중국의 급변하는 근현대의 역사 속에서 가난하고 배운 거 없고 평생 공장 다니고 농사 지어봐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어려운 상황을 이 어리석은, 하지만 마음결 고운 허삼관은 자신의 피를 팔며 위기를 넘기곤 한다. 척박한 민중의 삶에서 믿을 거라고는 내 몸 하나요 퍼도 퍼도 마르지 않을 것 같은 피 뿐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수는 이러한 어려운 생활을 매우 유머러스하면서도 정감어리게 그린다는 데 있다.

가장 아끼는 큰 아들이 사실은 부인이 엉겁결에 잠자리를 한 동네 아저씨의 아들임이 밝혀지면서 질투와 배신감에 사로잡혀 비아냥 거리기도 하고 아들에게 친아들이 아니다 주문처럼 외곤 하지만, 가출했던 큰 아들을 찾아내자 쉴새없이 욕을 퍼부으면서도 들쳐 업고 국수 집으로 향하는 모습은 입가에는 웃음이 배이고 눈에는 눈물이 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 우리 지금 국수 먹으러 가는 거예요?"
허삼락은 갑자기 욕을 멈추고 온화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그래."

부인인 허옥란이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결혼 전 있었던 잘못으로 비판을 받게 되고 급기야는 집안 내에서도 비판을 해야 한다고 하자 아들과 허삼관이 모여 자리를 만든다. 허삼관은 아내의 죄를 낱낱이 알리게 하면서도 자신도 한번 실수를 했음을 말하며 "너희들이 만약 너희 엄마를 증오한다면, 나도 마땅히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도 너희 엄마랑 똑같은 놈이니까." 이렇게 감싸안는다. 그 착한 마음 씀씀이가 내 마음 속 깊이까지 스며들어 온다.

많은 굴곡이 있은 후에 인생은 흘러 흘러 육십이 된 허삼관이 피를 팔러 갔다가 냉대를 당하고 아들들에게서도 핀잔을 당하자 그의 아내 허옥란이 남편 손을 끌고 음식점에 가서 먹고 싶다는 황주와 돼지간볶음을 푸짐히 시켜놓은 채 병원의 신참 혈두를 욕해대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멋진 마무리가 아닐 수 없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온 부부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늘그막이 이렇게 잘 그려질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의미심장한 허삼관의 마지막 대사는 압권이었다.

이 말을 들은 허삼관이 허옥란에게 근엄하게 한마디 건넸다.
"그걸 가리켜서 좆털이 눈썹보다 나기는 늦게 나지만 자라기는 길게 자란다고 하는 거라구."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겨운 것이고 늙어간다는 것은 슬픈 일일 게다. 하물며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민중의 삶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다. 예전 '아큐정전'이란 책을 읽었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더랬다. 그러나 허삼관이라는 인물이 우리에게 무겁게만 다가오지 않는 것은, 마음 여리고 가족 사랑할 줄 알고 원칙에 따라 살아가려 애쓰고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바로 우리 주위의 그 누군가와 엇비슷한 느낌을 주어서이고 또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페이소스를 안겨주기 때문인 것 같다.

난 이번 가을, 허삼관 아저씨를 만나, 그 가족들 허옥란 아줌마,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세 형제와 그 동네 사람들을 만나 정말 오랜만에 울어 보았다. 불쌍해서도 비참해서도 아니고 우리네 인생이 주는 그 고달픔과 쓸쓸함이 가슴 저미게 느껴져서였다. 아마도 그건 그들을 생각해서라기 보다는 그들을 통해 나를, 지금의 우리 인생들을 돌아보게 되어서인지도 모른다...많은 사람들이 이 느낌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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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10-20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잘 읽고 갑니다..

비연 2004-10-20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홋! ^^; 올리자마자 글 남기셨네요~

플레져 2004-10-21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나면서도 슬픈 이야기죠. 황주와 돼지간볶음도 엄청 먹고 싶었어요. 추천합니다!

비연 2004-10-2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주와 돼지간볶음이 어떤 맛일까...소설 읽으면서 계속 궁금했던 거였죠^^
아직도 여운이 많이 남는 이야기인 듯, 가슴 한구석에 뭉게뭉게 아릿함이...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지미 지음, 이민아 옮김 / 청미래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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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은 몹시 추웠고
축축한 공기가 온 도시를 짓눌렀다.
하늘은 우중추했고, 햇살 환한 날은 좀처럼 없어
걸핏하면 알지 못할 우울함에 젖어들곤 했던 나.
길을 걷다가 문득 울고 싶은 마음에 화들짝 놀란 적도 많았다...

이 책은 이러한 글로 시작한다. 예쁜 그림들에 혹해서 이 책을 고른다면 그건 오산이다. 많지 않은 글들과 그림으로 가득찬 얇은 책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 도시인들의 생활 구석구석을 아주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어 아..이거 내가 늘 느끼던 거쟎아 하는 공감을 계속 지닌 채 책장을 넘기게 한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어느 새 새어나오는 한숨. 참 쓸쓸하지만 참 아름답기도 하네...싶다.

항상 왼쪽만 향하는 여자와 오른쪽만 향하는 남자.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대를 누리고 있지만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이다. '도시의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줄곧 같이 살면서도 평생을 서로 알지 못하고 지내는 것은 아닐까..' 생계를 위해 약간의 일들을 하고는 있지만 그 속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멍하니 혹은 공허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외로운 짐승들과의 대화로 적적함을 달랜다. 아무 재미없는 삶 속에 벌어진 하나의 이벤트는 나와 마음이 닿는 서로를 스쳐간 것. 잠시의 행복감이 그들을 지배하지만 다시 멀어진 간극 속에서 더 외로움 속에 침잠하게 된다...그 쓸쓸함이 너무 커서 문득 길거리를 걷다가도 그 무거움에 휩싸여 슬퍼지고 울고 싶어진다.

같은 숲을 거닐고 같은 아기를 어루만지고 같은 땅을 밟고 다니면서도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 우리네 도시인들. 소통하는 사람이 없는 도시생활은 마치 동굴같고 담장없는 감옥과 같다..그리고 그들은 훌쩍 여행을 떠나고자 한다. 가진 것을 놓아두고 훨훨 날아오르려는 찰나 우연의 일치로 마주치는 그들. 긴긴 겨울을 마감하고 쾌청한 날씨에 뭉글뭉글 하얀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이 봄을 가져다 준다...

소통의 어려움. 함께 하는 이들에 대한 무지. 그래서 함께 하나 늘 혼자인 외로움. 그 막막함. 쓸쓸함. 해결할 길 없는, 끝닿은 데 없는 절망감 속에서 우리를 구제하는 것은 늘 한 사람의 빛이다..라고 작가는 말하는 것 같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그 느낌이 이 도시의 삭막함 속에서도 눈동자처럼 빛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라고...구태여 어려운 말 쓰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어투로 어여쁜 그림으로 얘기하고 있다. 그래서...이 책이 내게 소중하게 느껴지는 듯 하다.

외로움을 얘기하고 있으나 또 그 외로움에서 해방시켜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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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구두 2004-10-18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해요. 비연님! 리뷰를 통해서만큼은 비연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듯 해서 좋습니다.

비연 2004-10-18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구두님..감솨합니다~^^*
 
홀로 사는 즐거움
법정(法頂) 지음 / 샘터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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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때면 그렇다. 사람들에게 부대끼는 게 힘들고 일년의 사분지 삼을 보내며 느껴지는 허무감 같은 것들도 속내에 배이고 그래서 훌쩍 뭔가 혼자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다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기에는 용기가 부족하고...그래서 고른  책이 이 책이다. 그리고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몸이 떠나지 않아도 마음의 해방감과 자유를 얻을 수 있어....행복했다.

아무도 없는 고적한 산중에 삶의 터를 잡고 홀로 정진하시는 스님은, 우리가 못 보는 혹은 잊고 지내는 세상을 보고 계신다. 꽃이며 나무며 굴러다니는 잎새 하나에서까지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 중에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고마움을 느끼시고, 한밤의 텅빈 고요 속에서 오히려 삶의 향기를 음미하시고, 팍팍하게 밟히는 흙에게서 건강의 소중함을 되살리신다. 너무나 바쁘고 쫓기듯 살아가느라 정말 중요한 것들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나에게(어쩌면 우리에게) 진실로 기억해야 할 게 무엇인가를 참으로 진중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주옥같은 글들이 날 평온하게 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것도 더 알려고 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더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지식으로부터의 자유, 소유로부터의 자유를 말하고 있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 따뜻한 가슴을 잃지 않으려면 이웃들과 정을 나누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 등 살아있는 생물들과도 교감할 줄 알아야 한다.

자연을 잊고 살아간 게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소음과 먼지와 냉정한 사람들 속에서 늘 허전함을 느끼나 사람이 제일인 줄 알고 주위를 더 둘러보지 않은 나를 탓하게 된다. 화분 하나에서도 느껴질 수 있는 것이 교감이요, 정이 아니겠는가. 요즘처럼 돈에만 집착하는 세상 풍조에서 더욱 잊지 말아야 할 게 아닌가.

혼자서 살아온 사람은 평소에도 그렇지만 남은 세월이 다할 때까지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늙어서 자기 자신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면 그 인생이 초라하게 마련이다. 꽃처럼 새롭게 피어나는 것은 젊음만이 아니다. 늙어서도 한결같이 자신의 삶을 가꾸고 관리한다면 날마다 새롭게 피어날 수 있다. 화사한 봄의 꽃도 좋지만 늦가을 서리가 내릴 무렵에 피는 국화의 향기는 그 어느 꽃보다도 귀하다.

비단 홀로 사는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일까. 누구나 주위에 많은 사람을 두고 살지만 결국 귀착되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나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그 어느 누구도 소중하게 생각하기 힘들다. 나이들수록 나이듦에 슬퍼 젊음에만 집착하려 하지 말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은은하게 늙어갈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삶은 순리대로 살아야 함을,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향기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다 옮겨적고 싶으리만치 마음에 울림이 있는 책이다. 서늘해지는 날들과 더불어 나를 돌아보고 가슴 깊은 곳까지 따스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스님께서 하시는 일의 표제인 '맑고 향기롭게'라는 문구처럼 내 생을 맑고 향기롭게 정화시킬 수 있는 기회였음에 감사한다...마음에 감옥 하나 두어 홀로 틀어박힐 곳 하나 마련해두고 살라던 선배의 말이 기억난다. 그것은 혼자 있어 음습하고 쾌쾌한 공간이 아니라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는 나만의 공간이며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는 공간이리라. 아마도 스님은 그렇게 몸은 좁은 공간에 벗없이 계셔도 마음은 더 넓은 곳과 더 많은 영혼들과 접한 채 다른 사람들이 수이 누릴 수 없는 즐거운 삶을 보내고 계신 모양이다...그게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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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0-2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만의 공간이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많은것으로부터 자유로와질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말이 맘에 와 닿네요. 법정 스님의 글은 언제나 맑고 향기롭죠 님의 리뷰 또한 맑고 향기롭네요.잘 읽었습니다.

비연 2004-10-22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정 스님의 글을 읽고 제 msn 아뒤도 '맑고 향기롭게'로 바꾸었지요...
그러니까 정말 저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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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로는 세번째로 읽는 작품이다. 원래 한번 좋은 작가를 발견하면 그의 작품 세계를 탐구한다는 명목으로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을 다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라 급기야 고른 책이다.

베로니카라는, 젊고 예쁘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가 있고 경제적으로도 나쁘지 않고 배울 만큼 배운 한 아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수면제를 과다복용하고 나서 깬 곳은 정신병원이었고 그 곳에서 일주일밖에 못 산다는 일종의 사형선고를 받는다. 내 의지가 아닌 죽음에 임박해지면서 자기의감정에 충실하게 된 베로니카는 불현듯 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게 되고...그렇게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진 한 아가씨를 바라보며 정신병원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병원에서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누렸던 보호막을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 책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숱한 사람들이 그 시대에는 기인이었으며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기도 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결국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에 따라 사는 사람은 사회에서 용인받기 힘들다는 측면에서 '미친' 거지만 인간은 그렇게 살 때에야 비로소 존재의 의미를 깨닫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진정한 자아라는 게 도대체 뭐죠?" 베로니카가 그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남자는 느닷없는 질문에 놀란 것 같았지만 곧 대답했다. "사람들이 당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죠."

실제로 파울로 코엘료는 정신병원에 세차례나 입원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에뒤아르라는 인물이 아마도 그의 모델이리라 생각되는데, 부모님이 원하는 엘리트 코스를 마다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용기있게 얘기했을 때 그(혹은 에뒤아르)는 정신병자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이 되기 위해 교육과 지원을 받고 그러한 과정을 순응하며 따라갈 때에야 '정상인'으로 간주되곤 한다. 만약 일탈이나 반항이 있을 때는 사회 부적응아 내지는 실패자로 낙인찍히게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쩌면 그것이 무서워 그냥 주어진 길을 따라가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극단적으로 정신병원이라는 곳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설정했다 뿐이지 이 사회 내에서도 보이지 않는 감옥이 얼마나 많은가. 그 속에 사람들을 가두어 두고 정죄하고 외면하는 일들이 다반사이다.

아마도 요즘 기라든가 명상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대두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 아닌가 싶다.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의 시스템 속에서 '자아'를 잃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세상에서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이제는 지쳐 이렇게 자신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 붐처럼 일어나는 거라고 감히 말한다. 남과 '다르기' 보다는 '닮기'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몸부림.

이 책을 읽는 동안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것, 그리고 지금의 생활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이 흐름이 맞는 건가에 대해서, 내가 나 자신에게 순종하여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많이, 많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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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0-12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사람들이 당신이라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이죠 ]
류시화 시인이 지구별 여행자에서 말한 [ 다른 사람들이 세워놓은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질서를 발견하는 것, 그것을 나는 자유라 부른다 ]이 문득 생각나게 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비연 2004-10-12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시화 시인이나 파울로 코엘료나 모두 느끼는 것은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파울로 코엘료만큼이나 류시화 시인의 글을 좋아하구요...^^
잊고 있었던 글귀,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종종 뵈요~

당할수가없다 2005-01-20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편의 시가 되어라 ... 뭐그런 뜻???

비연 2005-01-2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그런 뜻일 수도 있을 듯..^^;; 어쨌거나..당할수가없다님..반갑슴다~^^
 
살인자들의 섬 밀리언셀러 클럽 3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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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소설이다.  읽고 나니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그냥 소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미스틱 리버' 라는 소설 혹은 영화를 접해보지 않아서 이 작가(데니스 루헤인)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되었는데 매우 인상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레스터 시핸 박사의 일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Shutter island라는 곳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테디 대니얼스의 회상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연방보안관으로 강력범이자 정신이상자인 죄수들만을 수감해놓은 이 애시클리프 병원에서 한 여자가 실종된 사건을 조사하러 파트너인 처크와 함께 들어가는 길이다. 단 나흘동안 벌어지는 일들이 두꺼운 책 한편에 면면히 흐르면서...테디의 회상과 정신병원의 음모, 그 내면에 숨겨진 의혹들이 교차로 나타나게 된다. 테디는 2년 전 아내를 불의의 화재로 잃었고 그 화재를 낸 범인(앤드류 레이디스)이 이 병원에 수감되어 있다는 정보를 듣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 사건에 뛰어든 것이다.

정신의학에서 치료라는 것. 예전에는 사람 뇌의 일부를 잘라내기도 하고(이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도 묘사된다) 심한 약으로 환자를 무력화시키기도 했지만, 서서히 상담 혹은 role play 등을 통한 과거의 상처 치유라는 부분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결국 후천적인 정신병에는 대부분 드러나든 드러나지 않든 '과거'라는 부분이 개입되는 것이고 이것을 어느 선까지 치유하느냐를 결정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배경이 정신병원이자 수용소인 만큼 이 책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많이 담아낸다.

끝부분의 반전은 어느 영화가 불현듯 떠올려질 정도로 비슷했고...또한 역시 충격적이었다(여기까지. 더이상 얘기하면 spoiler가 되므로...^^;). 끝부분까지 다 읽고 나서 다시 한번 앞부분을 뒤적여야 할 정도로. 그리고 그 이어짐이 참 몽환적이고 유려해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읽어보기를 적극 권한다. 인간의 정신과 심리를 다룬 대중소설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훌륭한 책이다.

책을 덮으면서...이 책의 맨 앞장에 쓰인 한 줄이 기억에 남아 옮겨본다. "....우리가 꼭 꿈을 꾸고 꿈을 가져야 하는가?" -엘리자베스 비숍(여행자에 대한 질문 중) 책을 읽고 나면 어느새 이 질문을 내게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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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8-31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진짠지 가짠지 좀 혼동되고 마지막까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 미스틱 리버의 아쉬움을 한방에 날린 작품이었습니다...

비연 2004-08-31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끝까지 읽고 나서 결말 부분은 다시 한번 읽어야 했슴다..이게 어떻게 된건가..해서요.
정말 잘 만든 작품이었던 것 같슴다...^^ 추천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