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 산다는 것
카를 게바우어 지음, 심재만 옮김 / 예담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지난 내 생일 때 우리 회사 사람이 선물로 준 책이다. 사실 받아들고 조금 황당하긴 했다. 나는 어머니가 되었으면 되었지 아버지가 되지는 못할 거니까. 선물한 사람이 두 아이의 아버지이고 그래서 아마도 자신의 고민의 화두 끝에서 읽은 책을 준 것이겠거니 하고 대충 구석에 두고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리고 지금에서 펴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 아빠가 편챦으셨기 때문이고 힘들어하시는 아빠를 보며 과연 아버지라는 이름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며 아버지로서의 삶을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 하는 갑작스러운 궁금증이 생겼다는 데에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이런 때를 대비하여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느껴졌었다.

독일 사람이 지은 이 책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부는 아이의 성장과정에 따른 아버지의 역할이고 2부는 열 여섯사람의 아버지에 대한 얘기, 마지막 3부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요건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아무래도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진 열 여섯 사람의 남자들이 기억하는 아버지와 자신의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인터뷰한 내용일 게다. 폭력적인 아버지,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도 있고 일찍 돌아가셔서 그다지 기억에 없는 아버지, 애정 표현에 서툴러 늘 멀리 느껴졌었던 아버지도 있다. 아버지의 태도에 의해 아들의 인생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고 제대로 된 아버지의 상을 그리지 못한 사람은 자신도 그런 아버지와 비슷한 모습이 되어 있기도 하며 또는 아버지 이외의 남자들로부터 정체성을 획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가까이 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공통적인 것은, 누구나 어렸을 때 아버지가 자신에게 해주었던 섬세한 애정표현들, 자상한 보살핌, 친근감 등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것이고(자주이든 가끔이든 간에) 아버지와의 제대로 된 소통을 늘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분석들은 비단 독일 사람에게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세대에나 다 통하는 얘기들인 것 같다.

어머니이기 전에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자존을 가져야 올바른 어머니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아버지도 한 사람의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만 자식에게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요즘 명퇴가 밥먹듯이 일어나고 기러기 아빠라는 새로운 풍조가 대두되면서 남성이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한없이 보여줌으로써 자식은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롭게 클 수 있다. 누구 하나의 역할이 비대해지거나 왜소해질 경우 아이에게 가는 영향은 지대할 것이다.

읽으면서 우리나라 아버지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아버지 세대들은 6.25를 겪었거나 전후의 가난하고 헐벗었던 시절을 겪어내었고 잘 살자는 모토 아래 직장과 나라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열심히 일했던 세대이다. 그래서 어쩌면 자식에게 주어야 할 애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법도 잘 모르고 바깥에서 인정받기 위해 애썼던 시간동안 훌쩍 커 버린 자식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근대의 몇 십년 동안은 너무나 커다란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세대차라는 문제가 매우 커서 아버지와 자식 세대가 서로를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기도 하다. 이제 세월의 풍파 속에 늙어버린 아버지들은 덕분에 가족으로부터 심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소외된 채 외롭게 지내게 되곤 한다. 이게 사회의 문제라고는 하지만 기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 지 알 수 없이 시간은 자꾸만 가고 있는 듯 하다.

책을 덮고 아빠의 뒷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빠의 지난 시간들을 상상해본다. 사진 속의 젊은 남자는 누군가를 몹시 사랑했던 적도 있었을 테고 직장에서 살아남고자 고민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갓 태어난 딸과 아들을 보며 아버지로서의 뿌듯함과 책임감을 느꼈을 테고 커가는 자식의 모습에 뭐라 따뜻한 애정표현은 못해도 가슴 그득한 자애감을 가지기도 했을 것이다. 또는 지금의 나처럼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애쓰던 시간들도 있었겠고 한 줄 두 줄 늘어가는 주름에 시름섞인 표정을 지어보이기도 했을 테다...이런 생각들을 하니 아빠가 그냥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남성'으로서 살았을 인생을 보게 되고 그래서 애틋한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각각의 사연들이 마음에 많이 와 닿지는 않았으나(반복되는 회상들과 특징없는 구술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나와 아버지의 관계, 내 아버지의 인생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할 수 있는 모티브를 제공하는 데는 나무랄 데 없는 책이다. 아버지가 될 혹은 된 남성들과 그들을 남편으로 아버지로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 모두 읽어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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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그릇의 행복 물 한 그릇의 기쁨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7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철수라는 판화가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이 책을 샀다. 그래서 책을 펼친 순간, 살짝 당황했음을 인정한다. 그저 소소하게 적은 엽서들이 윗칸을 채우고 그 내용들을 다시 옮겨놓은 아랫칸을 보면서 굳이 읽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일었다. 짤막짤막한 말들이 촘촘히 메워진 엽서들을 보면서 한동안 고민했다.

편지 쓰고 싶은 날이 많아서,
편지 받고 싶은 날이 많아서,
제 손으로 쓴 엽서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제 안에 있는 그리움이 제 '나뭇잎 편지'의 시작이었던 셈입니다.

작가의 머릿말을 보고서야 시간을 들여 읽을 것을 결심할 수 있었다. '제 안에 있는 그리움'이라는 그 말에. 

망설이며 시작한 첫 장이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땐 왠지모를 따스함이 가슴에 배여 잘 읽었다 이런 심정보다는 이 책이 내게 다가온 것도 인연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문득 나도 내 손으로 직접 고른 엽서에 손수 펜을 들고 자잘한 글씨로 적어서 우표를 붙여 보내고 싶다는 바램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하루하루가 참 무료한 우리네 삶일 수 있겠다. 매일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며 피곤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온종일 이사람 저사람에게 치이며 이 일 저 일에 내키지 않게 끌려다니다가 머릿 속이 무언가로 꽉 채워져 더 이상 뭔가 들어갈 공간이 없음에도 가슴 한가운데는 뻥 뚫린 채 집으로 들어와 대충 마무리하고 이불 속으로 괴롭게 들어가는 삶이 자주 내 생활을 파고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지키고자 하는 것에 매몰되어 지내면 아마 이런 생활은 점점 더 흔하게 나와 맞부닥칠 것이고 나는 점점 더 지쳐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엽서들을 보면서 주위의 작고 사소한 것들을 둘러보게 된다. 계절의 변화를 조용히 알려주는 작은 변화들, 억압된 일상 속에서도 온기를 잃지 않는 이웃들, 언제나 나를 믿고 지켜주는 가족이 보인다. 매일 쳐다보는 밥상머리의 모락모락 김 올라오는 밥과 반찬들이 새롭고 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들이 다사롭다. 손으로 꾸욱 쳐서 생명줄 끊어버리기 일쑤인 벌레들도 한 세상 함께 살아가는 동지로 보이고 인연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실타래로 바라보게 된다...이런 감상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스치듯 지나갔다.

'마중물'이라는 말 아시나요? 모터나 펌프로 샘물을 길어올릴 때 공기 압축을 위해 처음 부어 넣는 바가지 물 한 그릇을 이르는 말입니다. 물 내려가 버린 '뽐뿌질'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깊은 샘에서 물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때쯤은 펌프 지렛대를 고르게 눌러도 수월하게 물이 쏟아지지요. 첫물은 대개 더러워서 못 쓰고 한 소끔 쏟아버리고 나면 먹을 수 있는 맑은 물이 나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들의 작은 목소리, 힘겨운 참여가, 다음 세대나 더 긴 앞날을 위해 쏟아 붓은 마중물일지도 모릅니다. 이건 우리들 몫입니다. 천천히, 지혜롭게, 그러나 분명하고 단호하게!
아직은 마중물입니다.

그렇듯 소소한 일상이나 논하고 있었다면 끝자락쯤엔 지루할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중간 중간 사회라는 것, 행동한다는 것, 그리고 참여라는 것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말하고 있는 엽서들을 보면서 내 머리와 가슴에 새벽 찬물이 끼얹어진 듯, 서늘함을 끼치곤 했다. 시골에서 판화를 만들고 농사를 지으며 무심하게 사는 듯 해도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지내는 큰 공동체의 방향성과 그 속에서 개개인이 해야할 작은 발걸음들에 대해 늘 인식하며 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나하나 큰 부담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임에도 읽고 나면 알 수 없는 묵직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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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1-2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분의 판화 참 좋아해요.. 간결한 그림과 간결한 글귀가 어찌 그리 와 닿던지.. 오늘은 이 엽서가 메일로 도착했더군요..




비연 2005-01-27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엽서를 메일로 받으시는군요....'내가 소중한 것은 내가 깨닫는 길밖에 없습니다'라는 말, 평범한 말인 듯 하면서도 가슴에 메아리를 치게 하는 말입니다. 감솨~
 
향랑, 산유화로 지다 - 향랑 사건으로 본 17세기 서민층 가족사
정창권 지음 / 풀빛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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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 어떤 사건이나 일어난 현상만 떼어내어 돋보기로 쳐다보듯 들여다보면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관계와 개인적인 성격 등의 요인들만을 고려하기 쉽다. 특히나 이혼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한 것 같다. 신문에 자주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이혼을 다룬 기사들과 그것을 보며 말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략 그러한 관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남자가 여자를 때렸다거나 여자가 남자를 구박했다거나 남자 혹은 여자가 바람을 피웠다거나 도박을 해서 돈을 많이 잃었다거나 하는 단편적인 일면들로 그들의 관계를 좋았다 나빴다 그럴 만 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입소문들을 내기 마련이다. 17세기 조선의 어느 한 여인의 자살 사건을 역사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매우 감칠 맛나게 재조명한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다.

향랑이라는 여성은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은 양민 출신으로 무능한 아버지와 겉으로 보아선 아주 성질이 고약한 계모 밑에서 고생하다가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떠밀리다시피 부자집 철없는 남자에게 시집을 가야 했다. 남편은 게으르고 포악하고 여자를 밝히는 매우 견디기 힘든 사람이었고 견디다 못해 이혼을 한 후 친정으로 돌아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데다 시집에서도 내침을 당하여 결국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 여인이다. 그녀가 재가를 거부하고 자살이라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했기에 동시대의 인물들은 (많은 논란이 있기는 하였지만) 열녀라는 칭호를 주어 후세에 기리게 하였다 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녀가 자살한 것은 다른 남자와 재혼을 할 수 없다는 수절심에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정황상 희생되었다고 보았고 이에 대한 관련 자료와 역사적 배경들을 일일이 찾아내어 고증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여전히 현대에도 이혼이라는 것은 여성에게 굴레인 것을 감안할 때 주자학의 영향으로 남존여비 사상이 매우 강했던 조선 중후기의 역사에서 여성이 감내했어야 할 많은 고초들을 생각할 수 있겠다. 그저 얌전하고 순종적으로 고분고분한 여성만을 요구했을 그 시대에 자기 주장이 강한 편이고 영리한 향랑과 같은 여성이 남성이라는 이유로 쏟아붓는 그 폭력과 폭언, 멸시, 학대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기에는 너무나 한계가 많았던 정황에서 몰리다 못해 자신의 목숨을 끊을 도리 외엔 다른 방도가 없었던 그 여인은, 즉 사회적인 타살의 대상이었음이 맞을 것이다.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다 비슷할 것이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그러나 사회적인 수용의 폭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그가 하는 행동에 대한 댓가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개화기 나혜석 화가는 이혼을 당하고 아이를 빼앗긴 채 방황하다가 어느 행려병자를 수용하는 병원에서 쓸쓸해 죽어가야 했지만, 이제는 그 이혼이라는 것이 여성에게 일면 주홍글씨처럼 박혀 따라다닐 지라도 경제적인 자립기반만 있다면 당당하게 살아가는 데 아주 큰 장애가 되지는 않는 시대가 왔다. 결국 향랑과 같은, 나혜석과 같은 사람들이 우리 전 시대의 억압으로 희생당했던 역사가 오늘의 변화를 일으켰을 수도 있겠다.

지은이의 '향랑의 계모'에 대한 해석도 새롭다. 콩쥐 팥쥐나 장화 홍련전 등에서 우리의 인식에 깊이 뿌리박힌 '계모'에 대한 나쁜 감정 또한 역사적인 배경을 가진 것으로 그 '계모'도 한 여성으로서 희생자에 불과할 것이다.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하고 그래서 상처한 남자의 둘째부인으로 시집가는 것이 불평등한 관계의 소산이거나 사회적인 멸시의 대상일 경우 '계모'로서의 정체성은 자신이 규정하는 것보다는 타인에 의해 정해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따라서 친모가 살았으면 했을 일을 계모가 해도 그 저의를 나쁜 방향으로만 몰아가는 것은 그렇게 쉽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한 가지 사건에 의문을 가지고 수많은 자료를 통해 이를 확인하고 찾아나가며 없는 자료는 메꾸어가면서까지 하나의 잘된 스토리를 만든 작가에게 존경심을 보낸다. 자신의 마음에 불현듯 드는 의혹에 최선을 다하는 자가 사실은, 업적이라는 것을 이룬다고 볼 때 작가는 하나의 멋진 역사극을 완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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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1-1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비연 2005-01-17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오랜만에 글 남겨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희망은 길이다 - 루쉰 아포리즘
루쉰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이철수 그림 / 예문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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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읽다보면 이건 곁에 두고 계속해서 읽어야겠다 싶은 책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수가 많든 적든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그런 책 한권 떠올리지 못한다면 제대로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다. 그런 점에서 루쉰의 글들이 한데 묶인 이 책은 내게 있어 두고두고 소장하고픈 생각을 절로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아포리즘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글이라고 모아두면 질리기 쉽고 내용에 흐름이 없으니 집중도 잘 안된다. 그리고 그렇게 내 맘에 콕콕 와박히는 글들만 모아두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루쉰의 이 아포리즘(물론 이건 루쉰이 직접 엮은 건 아니지만)은 보는 내내 다른 생각없이 보았고 그렇지 그렇지 하는 깨달음까지도 느껴졌더랬다. 예전부터 루쉰의 글을 좋아하고 찾아 읽는 편이긴 했으나 이번에 아주 잘된 책을 다시 만난 듯 하여 가슴마저 뻐근하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 있을까. 글이나 말이나 풍기는 이미지만으로 그 사람을 속단하는 건 원래 경계하는 나다. 허나 루쉰이 이 시대의 닮고 싶고 존경할만한 인물이라는 데에는 이의를 달기가 힘들다. 그는, "내 설익은 열매가 나의 과일을 편애하는 사람들을 독살하고, 나를 증오하는 이른바 성인군자들의 힘을 북돋워주지는  않을까 우려한다" 라고 오히려 말하면서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남기고 있지만.

아마도 루쉰의 글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와닿는 글은 희망에 대한 그 유명한 단락일 것이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희망만을 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지식인 계급의 약점을 비판하고(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두고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안 된다고 말하곤 한다) 노예가 되는 것을 경계하며(우리는 아주 쉽게 노예로 되며, 노예로 된 뒤에도 아주 좋아한다) 혁명을 낭만이 아님을 경고한다(혁명은 고통스러운 것으로, 필연적으로 더러운 것이며 피가 섞이게 마련이다).

또한 민중의 힘과 혼에 대해 강조하고(민중의 혼만이 소중하다. 그것을 드높여야 중국에 참다운 진보가 있다) 혁명과 투쟁을 해야 함을 역설한다(구사회, 구세력과의 투쟁은 반드시 단호해야 하고 부단히 계속해야 하며, 실력을 키워야 한다).그리고 무엇보다 중국의 문화 우월감을 엄중히 질책하고 문명의 참혹한 역사, 여전히 저열한 수준의 의식구조, 노예성, 어리석음 등을 글자 하나하나 또박또박 박으며 비판하고 있다.

루쉰은 중국의 근대화라는 격동의 시기에서 어쩌면 중국에 대한 철저한 해부와 비판을 앞세우고 구사회와 미래에 대한 깊이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주위에 그 사상을 전파했던, 어찌 보면 굉장히 '어두운' 사상가일런지도 모른다. 당시의 상황은 극히 암울했었고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던 루쉰의 눈에는 이 모든 몽매함이 견디기 힘든 것들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루쉰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힘들고 불행하고 진창같은 현실일지라도 끊임없이 긍정적인 에너지와 희망을 찾고자 애썼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그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래도 우리가 위안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다. 희망이란 존재와 한 몸으로, 존재가 있으면 희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면 빛이 있다."라는 말로 우리에게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아울러 "마귀의 손일지라도 빛이 새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니 빛을 다 가릴 수는 없다." 라는 말로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어둠보다는 빛을 항시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루쉰이 지향하는 방향은 이것, 희망이 있으면 길이 있으며 그 길은 현재에도 있고 과거에도 있었으며 미래에도 계속 있을 거라는 데에 있었던 것 같다. 우리에게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보게 하고 그러나 현실을 꿈결처럼 아룽거리는 눈으로 보기보다는 철저히 해부된 채 받아들이게끔 했던 그는 정말 진정한 이 시대의 선각자였다고 감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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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1-14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은... 기계에서 뽑아내는 솜사탕 같은 것... 뽑아내고자 한다면 설탕을 넣고 형체로 만들어내는 그 신기함 같은 것... 비연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미래란 말 속에는 희망이 제일 먼저 들어있는 것 같아요. 희망을 가져볼까요? ^^ 추천합니다.

잉크냄새 2005-01-14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망이 길이요,

그 길로 나아가고자 희망함이 또한 진정한 길일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비연 2005-01-14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추천 감사합니다. 희망이 솜사탕 같다는 말씀이 매우 인상적이네요. 우리모두 희망을 가져야겠지요...오늘 하루도 희망어린 하루이시길.

잉크냄새님...그렇지요..희망이 길임과 동시에 그곳으로 가고자 희망함도 또한 길이라는 말씀, 너무나 공감갑니다...^^
 
검의 대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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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공부하는 작가를 좋아한다.  가끔 우리나라 어떤 소설들이 무료하게 느껴지는 건 개인적인 경험을 너무도 많이 써먹어서 이 책이 저 책 같고 저 책이 이 책 같은 느낌이 들 때이다. 비슷한 배경, 비슷한 사유, 비슷한 인물들...그리고 비슷한 문체. 처음에 작가로 데뷔할 때는 누구나 자신의 지난 경험들, 그리고 거기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처녀작을 내기가 쉽다. 한동안은 그럴 수도 있겠다. 경험에서 느꼈던 숱한 상념들을글로 다 풀어내어야 끝내는 자신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어느 순간은 도약이 필요하다. 그 때부터는 관심있는 분야에 대한 폭넓은 정보수집과 독서, 연구, 생각 등이 덧붙여져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사설이 길었지만, 나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일견 흡족함을 느꼈었다. 작가는 스페인의 19세기 말의 시대적 배경과 정통 검술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토대로 한 편의 멋진 추리극을 완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은 1860년대 후반, 이사벨 2세 여왕의 치세하에 있던 스페인이다. 왕정에 대한 반감들, 공화정을 지지하는 움직임들이 끓어오르는 남비뚜껑처럼 덜그럭대던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작가는 정통 검술이라는 분야를 파고든다. 이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진부함이라던가 골동품처럼 기억되어가고 있는 정통 검술을 직업으로 삼아 한 때는 영광스런 시절을 지냈으나 지금은 초로의 검술교사일 뿐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예와 전통을 지키고자 애쓰는 한 인물,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음모와 야욕, 배신, 그리고 사랑을 참으로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평온하게 여생을 보내며 최고의 검술 공격법에 대한 고민만이 일상을 지배하는 그에게 우연히 나타난 한 여자가 있었고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생활에 출렁임이 일어난다. 그리고 뒤이어 일어나는 끔찍한 살인사건, 비밀 문건, 뒤이어 밝혀지는 진실들이 박진감있게 펼쳐진다.

이 책은 많은 얘기들을 담고 있다. 우선, 민중이 힘이 되는 세상의 목전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일상들, 그리고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야기되는 대립들이 매우 리얼하고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 당시 스페인이 어떠했겠는가를 그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여서 그 어수선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어찌 보면 매우 촌스럽고 어찌 보면 매우 순수한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정치적인 정세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검술에만 몰두하고, 없이 살지만 품위와 명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올곧은 사람이다.  "권총은 무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뻔뻔한 도구일 뿐이지요. 만일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그리고 인간이라면 서로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해야 합니다. 저만치 떨어져서, 마치 골목길에서 툭 튀어나온 불량배가 하듯이 그렇게 처리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칼에는 다른 어떤 무기에도 없는 칼만의 윤리가 존재합니다...그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글쎄, <신비>라고 해야 할까요...검술은 기사들의 신비 철학입니다. 오늘과 같은 시대에는 더욱더 그럴 겁니다" 이 말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숨겨져 있지 않나 싶다. 작가는 아마도 정체성이 점점 없어져 가는 오늘날 무언가 지켜야 할 것들을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런 말들을 해주고 싶은 지도 모르겠다. 고집스런 노인네의 자존심이라기보다는 누군가는 고수해야 할 그 무엇 말이다.

아름다운 한 여인의 등장으로 돈 하이메의 고뇌는 시작된다. 이제 그런 '사랑' 같은 건 다 잊어버리고 늙어가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했던 그에게도 가슴 한 구석 꺼지지 않은 열정이 있음에 놀라한다. 나이듦에 대한 쓸쓸한 감회가 곳곳에 잘 살아난다. 여성 고객인 아델라 데 오테로의 젊음과 아름다움 덕분에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하루하루 건강한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어느새 그녀가 자기 집 문 앞에 나타나는 시간을 갈수록 조바심을 내며 학수고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녀의 시신 앞에서 그 여자를 사랑했다고 고백하는 그의 모습에서 홀로 늙어가는 외로움이, 고뇌가 느껴져왔다. 하지만 반역의 소동 중에 일어난 살인 사건은 그를 혼비백산하게 하고 결국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자신을 존중하게 된다. 마지막 장면...의 검술 대련에 대한 묘사는 완벽했다. 그건 단순한 진검승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돈 하이메가 자신이 그리도 추구하는 것을 찾는 과정임과 동시에 일순 일어났던 뜨거움을 식히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었다.

한 작품 속에서 이렇게 많은 얘기들을 절묘하게 버무려내는 아르투르 페레스 레베르테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 이 책을 통한 가장 큰 수확이었던 것 같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검술 용어의 의미를 알아내고자 뒷부분의 설명을 연신 들춰보아야 했던 것은 번거로운 일이었긴 하나 그런 낯섬조차도 이 책의 매력을 경감시키는 데 일조를 하진 못했다. 시대와 인생에 대한 회한의 심정으로 대했던 책이 중반 이후로는 살인사건이라는 급박한 계기로 추리소설화되고 있어 한번 들면 놓지 않게 하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돈 하이메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다. 과연 정신없이 변해가는 세상의 소용돌이 중에 자신의 정체성을 미련하리만치 고집스럽게 사수하는 그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과도한 욕망과 서슴없이 저질러지는 배신행위 가운데에서도 스스로를 잃지 않는 그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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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1-05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슬비님..꼬옥 읽어보세요..^^ 글고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