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 파워라이터 24인의 글쓰기 + 책쓰기
경향신문 문화부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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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글쓰기는 작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책이나 신문 잡지 같은 전통적인 글쓰기의 터전이 아니더라도 글을 쓰고만 싶다면 누구나 블로그, SNS 등에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서 '글을 잘 쓰는 방법' 또한 작가의 독차지가 아닌 우리 모두의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글쓰기 강좌, 글쓰기 방법론을 다룬 책이 인기를 모으고 있는데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는 인문. 사회. 자연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기작가 즉 우리시대의 '파워 라이터' 24인의 글쓰기 방법론을 담았다는 점에서 다른 글쓰기 관련 책과 차별성을 확보한다.



시나 소설보다는 다양한 전공분야의 특수성과 독특함을 살려 자기만의 개성 있는 책으로 성공한 파워라이터들의 글쓰기 비법을 배워보자는 의도다. 강신주(철학자), 김두식(법학교수), 김종대(군사평론가), 박찬일(셰프. 음식칼럼리스트), 선대인(경제연구인), 신형철(문학평론가), 전중환(진화심리학자) 등의 면면만 봐도 이 책이 담으려고 노력한 다양성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파워라이터 24인이 알려주는 글쓰기 팁은 모호하거나 어렵지 않다. 직관적이며 실제적이다. 공부잘하는 친구의 비밀 노트를 훔쳐보는 것처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적용가능한 팁을 선사한다. 애초부터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았다든지, 글쓰기에 대한 재능이 특출한 것이 아니고 오롯이 스스로가 글쓰기라는 전투에서 습득한, 노하우로 성공한 글쟁이가 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파워라이터들의 전공이나 직업이 다양한 만큼 그들이 보유한 글쓰기 노하우도 다양하다. 각자가 독특한 글쓰기 노하우를 갖추고 있는데 그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적인 분모를 찾는다면 다음 9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글쟁이가 되려면 '비만'과 '변비'를 경계해야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독서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읽기만 하고 '배설'을 하지 않으면 글쓰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설'이라 함은 독서를 하고 나서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글쟁이가 될 수 있다. 일기도 좋고, 개인 블로그도 좋다. 독서가 숨을 들이쉬는 행위라면 글쓰기는 숨을 내쉬는 행위다. 숨을 들이키기만 하고 내쉬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글쟁이는 곧 '메모하는 사람'이 이어야 한다.  

글쟁이가 가지고 있는 '머피의 법칙'이 있는데 중요한 아이디어는 꼭 운전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하다 못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떠오른다는 것이다. 수첩을 휴대하기 번거롭다면 스마트폰의 메모기능을 이용하더라도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는 꼭 기록을 해야 한다. 글쓰기 아이디어는 마치 여름날의 소나기와 같아서 예고 없이 찾아와서 불현듯 사라지기 때문이다.


셋째, 고통스럽게 쓰되, 쉽게 읽혀야 한다.

고통스럽게 글을 쓴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상황을 의미한다. 한 권의 저서를 쓰기 위해서 수백 권의 관련서를 탐독한다든지, 도서관에서 몇 달을 죽치고 앉아서 자료를 수집한다든지, 수없이 퇴고를 반복한다든지 등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어야 한다. 물론 자신의 글을 이해할 수 있는 연령을 한 살 낮추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작가는 모름지기 노인과 어린아이의 입맛을 모두 만족시키는 요리사가 되어야 한다. 나라와 취향을 넘나드는 퓨전 요리사면 더욱 좋겠다. 그래야 제대로 된 글쟁이다.


넷째, 자료조사에 가급적 많은 시간을 투자해라.

어떤 글이고 간에 자신의 경험이 밑바탕 되지 않고 머릿속의 상상만으로 쓰기는 힘들다. 그런 글들은 책으로 나온다고 해도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자신의 경험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조정래의 대하소설은 철저한 자료조사에 의한 팩트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답사여행과 자료수집에 가장 철저한 작가 중의 한 명인 그는 '태백산맥'이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의 성공시대는 이뤄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자인한 바 있다. 글쓰기의 8팔은 자료수집이 차지해야 한다.


다섯째, 자신만의 색깔이 중요하다.

SNS가 일반인들의 주된 글쓰기 창구라서 생긴 현상이겠으나 패션뿐만 아니라 글쓰기에도 트렌드가 있다고 투덜거리는 사람을 봤다. 무슨 말인고 하니 모두들 문투가 비슷하고, 사용하는 어휘가 비슷해서 분명 수백 명의 다른 사람의 글인데 읽고 나면 한 사람이 쓴 글인 줄 착각하겠더라는 이야기다. 우리 눈에는 똑같이 생긴 수천 마리의 야생 영양 떼가 귀신같이 자신의 새끼를 알아보는 것처럼, 좋은 작가는 설사 이름을 가리더라도 자신의 글임을 알아보는 독자가 많아야 한다. 글쟁이는 모름지기 자신만의 독특한 문투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을 끊임없이 찾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 과정 속에서 만나는 타인의 불평이나 비판을 참아내야 한다.


여섯 번째, 자신의 책의 독자를 3천명쯤으로 설정해보자.

적어도 책을 내는 작가라면 누구나 베스트셀러 즉 수만 또는 수십만 명의 독자를 생각한다. 딱히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이 다수의 독자를 꿈꾸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잘못된 생각도 아니다. 다만 너무 소수나 다수의 독자가 아닌 3천명쯤의 독자가 자신의 책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독자들의 반응이 계산이 된다고 한다. 투수가 본격적으로 게임에 나가기 전에 가상의 타자를 세워두고 피칭 연습을 하듯이 작가도 반응이 어느 정도 계산 가능한 숫자의 독자를 수를 설정한다면 좀 더 흥미진진한 글쓰기 작업이 되리라. 적절한 비교인지는 가늠이 안 되지만 서재 장서의 수를 특정 한다면 더욱 독서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가령 무턱대고 책을 사고 무더기로 쌓아두기보다는 500권정도로 자신의 장서를 정하고 한 권을 새로 사면 자신의 장서 중에서 한 권을 빼내는 식이다. 이런 식이면 책 한 권을 사더라도 좀 더 신중해지기 마련이고 더욱 효율적인 독서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일곱 번째, 글쟁이에게는 스승이 필요하다.

스승이라고 해서 학교 선생님을 반드시 의미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다보면 글솜씨가 너무 훌륭해서 내 것으로 훔치고 싶은 글을 만나게 된다. 또 한 편이라도 이런 글을 쓸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은 작가를 만난다면 그가 바로 글쟁이에게는 롤모델이요 스승이다. 산 자일수도 있고 죽은 자일수도 있다. 그러나 생사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남긴 가장 훌륭한 교과서 즉 저서를 반복해서 읽고 흉내 낸다면 그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나 진배 없다. 자신이 감탄한 문장을 흉내 내 보고 자신의 것으로 조금씩 소화시키다 보면 글쓰기 실력도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글쓰기의 왕도가 있다면 이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덟 번째, 당신이 어떤 책을 집필하겠다고 작정을 했으면 '서문'을 먼저 써 볼 것을 권한다.

실제로 4권의 졸저를 낸 나의 경험은 이렇다. 책을 집필할 때 가장 큰 난제는 '서문'이었다. 서문 또는 머리말이란 한마디로 '당신은 왜 이 책을 썼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희한하게도 원고를 마무리하고서도 서문을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렵더라는 이야기다. 필자 자신이 왜 이 책을 쓰려고 하는지 이유를 스스로 정리해야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당연한 것이겠지만 글쟁이는 다독가이어야 한다.

글이라는 집을 지을 때 아무리 재료가 풍부하고, 집을 설계하는 재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독서량이 부족하다면 그는 '연장통'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초등학교때 문예반에 들어갔다가 함양미달로 하루만에 쫓겨난 나로서는 너무 늦게 만난 이 책이 아쉽고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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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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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희귀본 수집에 여념이 없을 때였다. 당시 헌책매니아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must have item인 <최순우 전집>을 구할려고 사방팔방으로 나대고 있었는데 용케도 그 보물을 선뜻 양도하겠다는 수집가를 만났다. 놀랍게도 그는 다른 사람은 구경도 못하는 그 보물을 하드커버와 소프트커버 두 종류를 모두 소장하고 있었다. 나름 그 바닥에서 내로라하던 나도 하드커버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어쨌든 그와 거래를 마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헌책방 마니아의 자격증쯤으로 여겨지던 신영복 선생의 옥중 서간집 <엽서>가 화두로 떠올랐다. 2003년 개정판이 나오기 전의 일인데 어쩐 일인지 그도 그 책 만큼은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엽서>가 언젠가는 반드시 재출간되리라 예상하였고 그는 그때 그 책을 사서 읽으면 되지 비싼 돈을 들여서 당시 희귀본인 헌책으로 애써 구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의 지론은 그랬다. 책이라는 것은 콘텐츠만 향유하면 되지 굳이 희귀본 버전을 구하려고 시간과 돈을 낭비하지 않겠단다.


나 역시 그의 주장에 동의를 했고 우리는 희귀본이라고 하면 사족을 못쓰는 뭇 수집가들의 행태를 비난하면서 대화를 마무리 했다. 


그날 밤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개인과 개인간 헌책거래 사이트에서 내가 오매불망하던 신영복 선생의 <엽서>가 매물로 나왔다. 그것도 무려 초판이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헌책 마니아라면 누구나 탐내는 보물중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그 책을 사겠다는 댓글이 우수수 달렸는데 그 중에서 낯익은 아이디를 하나 발견했다. 그날 낮에 희귀본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수집가들의 행태를 나와 함께 신랄하게 비판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너무 급하게 남기는 바람에 오타가 여럿 보이는 그의 댓글은 이랬다.


"서울인가요? 저도 서울인데 지금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결론은 어찌되었을까? 최종승자는 그가 아닌 나였다. 나의 댓글은 간단 명료했다. "입금했습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희귀본 수집가들은 집요하며(절판본을 구하겠다고 출판사를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탐욕스럽다(자기가 구하던 책도 아닌데 다른 사람이 구하려고 노력하면 일단 그 책을 사 놓고 본다). 그러나 여기에 소박한 수집을 하면서도 다른이에게 감동을 주는 착한 수집가의 이야기가 있다.


 <채링크로스 84번지>는 책을 사랑하지만 가난한 뉴욕의 소설가 헬렌 한프와 영국 런던의 고서점 직원 프랭크 도엘이 주고 받은 편지를 모은 글이다. 희귀 고서적을 좋아하지만 가난했던 헬렌 한프는 우연히 광고를 통해서 고서적을 전문으로 다루는 런던의 마크스 서점을 알게 되었고 평소 자신이 구하고 싶었던 희귀본 목록을 보냈다. 


첫 거래에서 자신의 희망목록 2/3를 해결한 헬렌 한프는 무려 20년간 런던의 조그마한 고서적 전문 서점 마크스의 직원 프랭크 도엘과 편지를 주고 받는다. 말이 편지지 엄밀히 말하면 헌책을 거래한 내역에 지나지 않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은데 정감이 넘치고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가령 다음 대목들이 그렇다.




햄도 유대 율법에서 금하는 음식에 들어가나요?

지금 입안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어요.

어떡하면 좋아요. 1949년 12월 9일. 헬렌 한프.


크리스마스 선물로 좋은 것을 보내주셔서 고마워요.

헬렌,

당신은 참 친절한 사람이에요!

내년에 당신이 왔을 때 마크스 서점 사람들이 

잔치를 열어 주지 않았다면,

흠 총을 맞아도 싸죠. 1952년 12월 17일. 프랭크 도엘


이 모든 책을 내게  팔았던

그 축복 받은 사람이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서점 주인 마크스 씨도요.

혹 채링크로스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시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뉴욕의 가난한 독자와 전시를 겪으면서 궁핍했던 런던의 헌책방의 눈물겨운 우정은 편지를 주고 받은 당사자인 프랭크 도엘이 사망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20년간의 우정을 인연으로 런던을 방문해달라는 서점 직원의 제안도 가난한 뉴욕의 작가는 끝내 응하지 못한 채로 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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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붉은 사랑 - 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그대가 있었다
림태주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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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담대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애끓는 모정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이미륵을 꼽아왔다. 그의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는 서정적인 한국의 풍습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나는 자식을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보내면서 마지막으로 남긴 어머니의 작별인사로 이 소설을 기억한다. 


"너는 종종 낙심하는 일이 있었으나, 그래도 네 일에 충실했었다. 나는 너를 크게 믿고 있다. 그러니 용기를 내거라. 너라면 국경을 쉽게 넘고, 결국 유럽에도 도착할 수 있을 게다. 내 걱정은 하지 말아라. 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다. 세월은 빨리 가느리라. 비록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너무 서러워 말아라. 너는 나에게 정말 많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자, 애야! 이젠 네 길을 가거라!"


올해 나는 아들에 대한 사랑은 깊지만 의연한 어머니의 내면을 노래한 또 다른 책을 만났다. 시인이자 페이스북 스타인 림태주의 <그토록 붉은 사랑>이 그 주인공이다.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 못했다. 호미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면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이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의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단 말이냐.


(중략)


세상 사는 거 별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어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더없이 좋은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은 참지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세상 것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이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줄 것이다. 별것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blockquote> 



산문집 [그토록 붉은 사랑] 봄편 맨 첫 장에 수록된 림태주 시인의 '어머니의 편지'를 강원도의 서양화가 백중기의 작품을 배경으로 성우 정남이 애틋한 목소리로 낭독했다.



<그토록 붉은 사랑>의 저자 림태주는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 번듯한 시집이 없는 이른바 무명시인이다. 그러나 그는 수천명의 팬클럽을 보유한 유명작가이자 대중적인 인문서를 표방하는 소신 있는 출판인이기도 하다.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홍보할 목적으로 시작한 페이스북에서 그가 스타가 된 이유는 자명하다. 책의 홍보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생각했고, 특유의 명랑한 필체와 감성적인 언어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앞부분에 소개된 어머니의 편지가 수백만 명의 네티즌들의 눈시울을 적시고 공감을 얻어냈지만 정작 내가 림태주 시인의 글 중에서 내 것으로 훔치고 싶은 글은 따로 있다. 



저번에 네가 나에게 책 한 권 보내 달라고 했다. 요즘 가계 지출이 많아서 내 책을 못 샀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나는 책을 사서 정성스럽게 사인까지 해서 너한테 보냈다. 그런데 너는 그날 여직원들이랑 떼거리로 앉아 광고 사진처럼 비주얼 쩌는 팥빙수 먹방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놓았더구나. 여직원들이 너를 최고라고 치켜세운 댓글도 수두룩 달린 걸 봤다. 아무렴, 네가 사정없이 쐈으니 최고였겠지. 그날 나는 결심했다. 올여름이 아무리 푹푹 찌고 졸라리 더워도 팥빙수는 절대 입에 대지 않기로.


이 대목은 예전에 시인의 페이스북에서 이미 봤다. 웹상에서 본 글을 종이책으로 다시 만나면 일반적으로 '아, 그 이야기구나'라고 생각하고 페이지를 빨리 넘기기가 보통이었던 나는 예외적으로 이 글은 마치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고 정겨움이 느껴져서 한참 동안이나 머물렀다. 평범한 일상을 그린 이야기도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재미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림태주 시인 때문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글은 항상 탐나고 잠시 동안이나마 나의 글로 훔쳐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산문으로 풀어 쓴 시라고 생각되는 그의 글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으로 나뉘어 실려있다. 이 책에 실린 글을 굳이 산문이라고 가둘 필요는 없다. 독자에 따라서 시로도 읽히고, 코미디 프로그램의 대본으로도 여겨지고, 첫사랑에게 보내는 연서라고도 느껴지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그가 써온 19편의 시를 별도로 실었는데 남다른 것은 '시인의 말'의 형식으로 자신의 시에 대한 친절한 안내를 덧붙였다는 점이다. 시는 일반적으로 비평가나 독자들에의 해서 해석되는 것이지 점잖지 못하게 시인 자신이 자신의 시를 안내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면 관례인데 개인적으로 신선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시의 속삭임을 '진짜로' 들려주기 위해 성우 정남의 목소리를 빌려 시낭송 음원 12편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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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한국의 발견 1
임재천 지음 / 눈빛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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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따돌림과 억누름을 받으면서도 청구도와 대동여지도 그리고 인문지리지 대동지지를 편찬한 이 나라 지리 연구의 외로운 선구가 고산자 김정호 선생에게 바칩니다"


지금은 사라진 뿌리깊은나무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의 발견>시리즈의 첫 장을 넘기면 나오는 말이다. 군사정권의 절정기에 소외되고 희생된 평범한 사람들을 조명한 이 출판사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우리 시대의 문화와 지리를 기록으로 남기자는 의도와 '택리지' 이래로 최대의 인문지리서를 내놓겠다는 목표로 1983년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이 세상에 내놓았다.


총 11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지역 출신 인사들의 헌신적인 참여로 각 시도의 풍물과 문화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많은 사진 자료와 함께 담은 시대의 역작이다. 


한편 월간지 <뿌리깊은나무>가 이 땅의 소외된 민중을 집중 조명하여 군사정권의 눈엣가시가 되어 핍박을 받으며 고분 분투하던 1978년, 미국의 저명한 포토저널리스트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미국의 영웅이자 전 세계에서 성자로까지 추앙받던 사람이다. 슈바이처 박사마저 성자가 아닌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담고자 자신의 안락한 커리어를 보장하는 거대 매체라는 보금자리를 내팽개친 인물이다. 대신 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객관적 시선으로 거대권력의 희생양이 된 평범한 인간들의 삶과 고통을 조명하는 사진을 찍고자 외로운 가시밭길을 택했다. 〈미나마타 Minamata〉(1975)의 작가 유진 스미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2015년 5월, 고산자 김정호와 30년 전 <한국의 발견>시리즈의 정신을 계승하고, 유진 스미스의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는 사진의 본질을 닮은 임재천의 <제주도>가 세상에 나왔다. 사진집 <제주도>는 9년간 한국의 5개 도와 4개 시를 총 9권에 담는다는 기획인 한국의 발견 시리즈 제 1권이다. 이 거대 프로젝트가 오로지 임재천이라는 사진가 한 명에 의해서 주도되고 실행된다는 것도 놀랍지만 국내 최초로 50명의 후원자들이 1점씩 사진을 예약 구매하는 형식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사진의 객관성을 지키고 이 땅의 가장 낮은 사람의 시선으로 기록하는 인문지리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유진 스미스가 그러했듯이 사진가 임재천은 그 어떤 거대 매체나 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사진집 <제주도>를 몇 장만 넘겨봐도 임재천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고, 아름다운 풍광 뒤에는 우리네 아버지와 어머니의 피와 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나치게 풍경만을 과장한다든지, 위압적인 산업의 발전상을 내세우는 사진을 그는 담지 않는다. 오히려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기만 한 우리네 삼천리강산이 사실은 민중들의 고달픈 삶의 현장임과 동시에 고단한 노동의 터전임을 알리는 사진이 많다. 


따돌림과 억눌림을 감내하면서 걸어서 한반도를 실측한 고산자 김정호 선생이 밟았던 그 길을 사진가 임재천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문지리서를 펴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다시 걷는다. 2000년부터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것이라도 좋다"라는 한 시인의 절규에 동의하며 우리나라의 다양한 읍, 면 지역에 자리 잡은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는 풍경을 사진으로 재해석하고, 사라지고 변해가는 한국적 풍경에 몰입해온 임재천 작가가 "제주도"를 첫 번째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가장 사랑받는 국내관광지로 주로 알려져 있는 제주도지만 기실 멀게는 유배지였고 가깝게는 많은 양민들이 학살된 4.3사건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아픈 현장과 민중들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의 제주도는 돈벌이 수단인 관광지로 여겨지고, 개발되며 옛 모습을 가파르게 잃어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제주도를 첫 번째 촬영지로 선택한 것은 그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옛 모습을 급격히 잃어가는 다급함 때문이리라. 그래서 임재천의 제주도 사진이 더욱 귀하고 절박하다. 사진집 <제주도>를 펼치면 제주도의 멋진 풍경이 우리를 맞이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제주도의 속살 겹겹이 스며있는 우리 이웃의 삶의 현장이 독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험난한 노동과 풍습 그리고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람냄새로 꾹꾹 눌러 쓴 임재천의 사진은 아름답고 애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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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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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똥>의 작가 권정생 선생과 이오덕 선생의 편지를 모아서 엮은 책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 납니다>는 출간된 당일로 전격 회수 및 폐기처분되었다. 권정생 선생이 이 책의 출간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본 사람은 알게 되겠지만 두 분의 20년간의 눈물 겨운 우정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두 분의 '고달픈' 인생살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다 프라이버시에 해당하는 내용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어서 권정생 선생의 결정이 이해가 된다. 




결국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가 서점에서 팔린 것은 단 하루에 지나지 않는다. 하루 만에 팔려봐야 몇 권이나 팔렸겠는가? 자연스럽게 이 책은 희귀본 애호가의 표적이 되었는데 구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책이었다. 나만 해도 이 책의 존재를 알고 구하려고 동분서주를 했지만 겨우 5년 만에 구했더랬다. 책을 낸 측에서 회수를 했는데 굳이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구해서 읽어보겠다고 동분서주한 이유는 간단하다. 편지를 주고 받은 두 당사자들의 20년간의 걸친 눈물겨운 우정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하늘이 내려준 선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귀하게 여겨진 만큼  헌책 수집가들에게는 '로망'이었고 존재조차도 희미한 '신기루'에 가까웠다. 그런데 개인 간 헌책거래사이트에 이 책이 매물로 떴다. 더구나 판매가격이 기절초풍할 만했다. 단돈 500원에 팔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사이트가 생긴 이후로 가장 짧은 순간에 가장 많은 댓글이 달렸을 게다. 희대의 희귀본을 단돈 500원에 팔겠다는 그 판매자는 졸지에 슈퍼 울트라급 엔젤로 숭상되었고 헌책수집계의 '간디'로 인정되었다. 자기에게 이 책을 팔아 주기만 하면 매년 명절 때마다 문안인사를 드리겠다는 사람도 나타났다.


그러나 그 판매자의 영광은 굵고 짧았다. 판매리스트의 간략정보가 담긴 초기 화면에서 500원이란 환상적인 가격만 확인하고 폭풍 클릭한 그의 잠재적인 고객들이 판매자에게 연락을 하고, 판매게시판에 자신에게 팔아달라고 읍소를 하는 글을 남기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책 사진 옆에 위치한 깨알 같은 판매조건에 대한 설명을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흥분한 고객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한 상세 설명을 그나마 살펴본 것은 이미 너무 늦어서 그 책을 사지 못할 것이라고 포기한 소수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판매자가 공지한 상세설명을 요약하면 이랬다. 가격이 500원이 맞긴 하지만 보통의 500원짜리 동전이 아닌 반드시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를 구하기 위해 자신도 많은 공을 들였으니 귀하디귀한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을 구한 노력과 바꾸고 싶다는 것이다. 판매자에 따르면 1998년산이면서 상태가 상급이면 30만원 정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판매자는 500원이 아닌 30만원에 책을 팔겠다는 말이 된다.


현금 30만원보다 몇 갑절 구하기 힘들 것으로 보이는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을 어디서 구해서 그 책과 바꾼단 말인가? 그의 모든 잠재 구매자들은 이 험악한 판매조건에 절망을 했고 그 절망은 판매자에 대한 비난으로 탈바꿈했다. 


구매자들의 온갖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뚝심이 천하장사 이만기에 못지않았던 그 판매자는 그 이후에도 그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았고 그는 또 다른 이유로 '살아 있는 전설'로 기억된다. 물론 거래가 성사되었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그 사건이 있었던 지 수년 후 나는 다양한 분야의 수집가를 소개한 책 <수집의 즐거움>을 집필하면서 운이 좋게도 부산의 화폐수집가를 인터뷰하게 되었다.


김천에서 부산까지 내려가 그 분을 만나서 내가 던진 첫 번째 질문이 뭐였겠는가? 그렇다.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이 정말 그렇게 귀하고 비싼가요"였다. 그 양반의 대답은 당연히 'Yes'였다.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설명을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매년 수백만 개가 제조되고, 많게는 한 해에 1억 2천만 개가 나온 적도 있는데 유독 1998년에는 8천개만 생산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유통용이 아니고 기념품 용도로만 나왔다는 것이다. 상태가 완전하다면 120만원에 거래가 되었다고.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를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으로만 판매하겠다던 그는 헌책방계의 기부천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에겐 올해 나쁜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 납니다>의 개증보판격인 <선생님 요즘 어떠하십니까>가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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