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방일기
지허 지음, 견동한 그림 / 불광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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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일이 뜻대로 안 풀리고, 온 세상의 불운이 모두 자신에게 향한다고 느낄 때 한번 쯤 머리 깎고 산에 들어가 ‘중’이나 되버려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부지기수다. 나만 해도 그랬다. 사는 것이 고달프고, 산사의 생활이 유유자적하다고 철없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지허스님의 <선방일기>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선방일기>는 제목 그대로 어느 해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 오대산 상원사에서  동안거(冬安居)라고 부르는 선방의 수행의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낸 책이다. 안거란 바깥세상과 인연을 끊고 오로지 산사에서 극한의 육체적인 고통이 뒤따르고, 기본적인 욕구를 거칠게 절제해야 하는 수행에 전념하는 일을 말한다. 더구나 극심한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강원도 산골에서의 동안거(冬安居)는 일상적인 인내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리라.


새벽3시부터 시작되는 고된 수련과 무려 일주일동안 잠을 자지 않고 결코 눕지 아니하고 꼿꼿이 앉은 채로만 수행하는 (장좌불와) 용맹정진에 이르러서는 산사의 생활이 결코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기겁을 했었다. 그렀다고 이 책이 거창하고 심오한 불교의 원리나 말씀을 애써 가르칠 생각으로 가득찬 것은 아니다. 그저 묵묵히 선방에서의 생활을 이야기 할 뿐이다.


산사에서의 수련생활에 대한 환상은 접게 만들었지만 이 책은 의외로 재미나기까지 하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아끼고 곁에 두면서 몇 번 이고 읽는 까닭은 스님들의 고매한 수련과정의 대단한 때문이 아니라 지허스님의 유머스러운 필체가 주는 읽은 즐거움 때문이다. 1973년 월간 신동아에 연재되었고, 유려한 필체덕분에 서울대를 졸업한 재원이라고 알려진 지허스님의 유머스러한 글은 언제 읽어도 즐겁고 배꼽을 쥐고 웃게 만든다.


1970년대에 그것도 스님이 누구나 고된 일이라고 여기는 ‘선방’의 일상을 이토록 재미나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심지 중간 중간에 불교의 심오한 가르침을 알려주는 일을 놓치지 않고서 말이다. <선방일기>를 읽는 즐거움의 압권은 ‘뒷방’이야기를 꼽고 싶다.


11월 3일 



선방의 역사는 뒷방에서 이루어진다. 

뒷방의 생리를 살펴보자. 

큰방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기다랗게 놓인 방이 뒷방(혹은 지대방)이다. 

일종의 휴게실이다. 

개인 장구가 들어 있는 바랑이 선반 위에 줄줄이 담을 쌓고 있어서 누구나가 드나든다. 

휴게시간이면 끼리끼리 모여앉아 법담을 주고 받기도 하고 잡담도 한다. 

길게 드러누워 결가부좌에서 오는 하체의 피로를 풀기도 하고 요가도 한다. 

간병실과 겸하고 있어 병기가 있으면 치료도 한다. 

옷을 꿰매는가 하면 불서를 보기도 한다. 

편지를 쓰기도 하고 일기도 쓴다. 


어느 선방이거나 큰방 조실이 있음과 동시에 뒷방 조실이 있다. 

큰방 조실은 법력으로 결정되지만 뒷방 조실은 병기와 구변이 결정 짓는다. 

큰방에서 선방의 정사(正史)가 이루어진다면 뒷방에서는 야사가 이루어진다. 


선방에서는 뒷방을 차지하는 시간에 의해 우세가 결정되기도 한다. 

뒷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많은 스님은 큰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적고 

큰방을 차지하는 시간이 적은 스님은 점차로 선객의 옷이 벗겨지게 마련이다. 


상원사의 뒷방 조실은 화대(火臺)스님이 당당히 차지했다. 

위궤양과 10년을 벗하고 

해인사와 범어사에서도 뒷방 조실을 차지했다는 경력의 소유자이고 보니 만장일치의 추대다. 


사회에서는 고등교육을 받았고 불가에서는 사교(四敎)까지 이수했고 절밥도 십년을 넘게 먹었고, 

남북의 대소 선방을 두루 편력했으니 뒷방조실로서의 구비요건은 충분하다. 

금상첨화격으로 달변에다 다혈질에다 쇼맨십까지 훌륭하다. 

경상도 출신 이어서 그 독특한 방언이 구수하다. 

낙동강 물이 마르면 말랐지 이 뒷방 조실스님의 화제가 고갈되지는 않았다. 

때로는 파라독스하고 때로는 페이소스하다. 

때로는 도인의 경계에서 노는 것같고 때로는 마구니의 경계에서 노는 것같다. 


제불조사가 그의 입에서 사활을 거듭하는가 하면 

현재 큰 스님이라고 추앙되는 대덕스님들의 서열을 뒤바꾸다가 

때로는 캄캄한 밤중이나 먹통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무불통지요 무소부지인체 하면서 거들먹거리지만 

그의 천성이 선량하고 희극적인 얼굴 모습과 배우적인 소질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버림받지는 않지만 추앙 받지도 못했다. 

천부적인 뒷방 조실감이라는 명물로 꼽히고 있다. 


그런데 이 뒷방 조실이 가끔 치명적으로 자존심에 난도질을 당하고 

뒷방 조실의 지위를 위협당하는 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원주스님 때문이다. 

선방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원주스님은 대중들의 생필품 구입 때문에 강릉 출입이 잦았다. 

강릉에 가면 주거가 포교당인데 포교당은 각처의 여러 스님들이 들렀다가 가는 곳이어서 

전국 사찰과 스님들의 동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더구나 요즈음처럼 교통이 발달되고 보면 신문보다도 훨씬 빨리 그리고 자세히 알 수 있다. 


원주스님도 꽤 달변이어서 며칠동안 들어 모은 뉴스원을 갖고 돌아오면 

뒷방은 뒷방조실을 외면하고 원주스님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그때 뒷방의 모든 헤게모니를 빼앗기고 같이 경청하고 있는 

뒷방조실의 표정은 우거지상이어서 초라하다 못해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뉴스가 한토막씩 끝날 때는 막간을 재빨리 이용하여 

뉴스에 대한 촌평을 코믹한 사족(蛇足)을 붙이거나 독설을 질타하는 것으로 

체면유지를 하다가 원주스님의 뉴스원이 고갈되자 마자 

맹호출림의 기상으로 좌중을 석권하기 위해 

독특한 제스처로 해묵은 뉴스들을 끄집어 내어 재평가를 하면서 

일보통[뉴스통]의 권위자임을 재인식 시키기에 급급하다. 

면역이 된 대중 스님들은 맞장구를 치지도 않지만 삐에로의 후신인양 지껄여댄다. 


어디 이뿐인가? 허기진 배를 채울려는 욕심으로 상원사의 부식창고에서 감자를 훔쳐내서 구워먹다가 부식창고를 책임지는 ‘계량심의 천재“ 원주 스님에게 응징당하는 대목도 뭇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수행자들에게는 수행의 거울이 되며, 일반인들에게는 불교의 기본 덕목을 쉽게 알려주며, 책 읽기의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웃음을 주는 이 책은 종교와 세대를 초월하는 가치를 지닌다.


단행본으로 나온 1993년과 2000년 당시에도 지허스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 조심스럽게 출간이 된 이 책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허스님은 서울대를 나왔다거나 1975년에 이미 입적했다거나하는 소문 또는 진술이 있긴 했지만 모두 확실치는 않다고 2010년에 나온 재출간본의 편집자들은 밝히고 있다.


지허라는 법명도 사실 필명일 가능성이 높고, 조계종에서도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의 말처럼 ‘책만 남기고 사라진 사람’인 것이다. 이 책을 되살리려는 불광출판사의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선방일기 저작권 조회 공고>를 내고, 각처에 지허스님의 행방을 문의하였지만 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서 결국 ‘한국저작권위원회의 법정허락 제도(공탁)’을 통해서 간신히 출간을 했다.


수행자들에게는 ‘귀감’을 그리고 독자들에게는 ‘감동’과 ‘웃음’을 주는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구절은 따로 있다. 


우리는 월정사 층층계 밑에서 헤어졌다.

“성불하십시오.”

“성불하십시오.”

남방행인 그 스님은 월정사로 들어갔고 나는 월정사를 뒤로 한 채 강릉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


뭇 독자들의 관심을 뒤로 한 채 지허스님은 다만 수행의 길로 나가 갔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두고두고 읽고 가까이하며 붙잡아 둘려는 독자들이 많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은 글의 분량이 너무 적어서 아껴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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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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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유혹하는 글쓰기>을 보면 우리나라 출판가들의 제목 뽑기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하게 한다. 이 책의 원제목은 소박하게도 ‘On Writing’ ‘글쓰기에 관하여. 도저히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얄궂은 제목으로 독자를 유혹하려는 욕심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이야말로 자서전적인 글쓰기에 관한 책이다. 두 권의 책이 이 책을 구성하고 있다. 그 중 첫 번 째 책은 스티븐 킹의 살아온 이야기이고 두 번 째 책은 물론 그의 유머감각이 가미된 글쓰기 방법이 되겠다. 일부 독자는 그의 자서전적인 내용이 글쓰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니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 자서전적인 내용을 읽어본 독자는 알겠지만 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기 힘든 주로 고단했던 그리고 아픈 사생활이다. 그런 내용을 독자들에게 공개한 이유는 어찌됐든 그런 고단했던 삶의 경험들이 자신의 글쓰기에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서전적인 요소는 그의 글쓰기의 밑바탕인 동시에 그에게 많은 영감을 준 경험이기 때문에 글쓰기와 따로 떼어서 생각하지 못한다.

 

스티븐 킹이 이 책에서 말하는 글쓰기의 방법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 가능하다.

첫째, 많이 읽어야 한다. 글쓰기는 독서의 최종 종착역이며 글쓰기의 출발역은 독서다. 독서를 하지 않고 글을 쓸려고 하는 사람은 쌀 없이 밥을 짓겠다는 겪이다. 아무리 현대가 정보를 자신의 머릿속에 두지 않고 정보의 출처를 찾아서 사용하는 시대라지만 기본적인 지식이 없이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는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글을 쓰기 위한 영감은 머릿속에서 생기지 않고 경험 속에서 생기고 그 경험의 대부분은 간접 경험 다시 말해서 독서를 통해서 얻는다. 독서를 강조하지 않는 글쓰기 교재는 세상에 없다. 둘째 수동태를 가급적 사용하지 마라. 정작 우리말보다는 영어가 수동태를 더 빈번히 사용하는 언어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수동태는 상당부분 영어의 번역어법에서 비롯된다. 영어를 오랫동안 공부하고 가르쳐온 필자 같은 경우는 더욱 더 피해가 심해서 급기야 능동태를 쓰면 뭔가 대담한글을 쓴 착각이 들 정도다. 수동태가 좀 더 안전한 느낌은 들지만 자신의 메시지에 자신이 없어 보이고 글의 힘이 확실히 떨어진다. 필자가 영어를 전공하면서 가장 폐해가 심한 부분이 바로 수동태의 남발이다. 이제는 완전히 몸에 체득이 되어서 고치기 힘들다. 그러니 이제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수동태를 장마철의 빗방울처럼 피해 다녀야 한다.

셋째 부사를 가능한 사용하지 말라. 글을 장황하게 길게 쓰면 어쩐지 유식해보이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라는 이미지를 준다는 미신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능한 문장을 길게 늘여서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다. 그러나 명문장은 짧은 문장이지 긴 문장이 아니다. 같은 뜻을 전달하면서 길게 늘여 쓸 이유가 없고 그렇게 못한다면 자신의 문장력에 대한 무능을 광고하는 겪이다. 넷째는 역시 많이 써봐야 한다. 습작을 거치지 않은 위대한 작가는 없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습작과 연습은 낭비되는 노력이 아니다. 그 습작이 명작은 되지 못하기도 하지만 명작의 좋은 밑거름은 된다. 거름 없이 자라는 좋은 농작물이 없듯이 습작이라는 양분이 없이는 결코 명작은 탄생하지 않는다. 이 책이 자서전적인 요소가 많지만 어쨌든 스티븐 킹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알려줄 방법은 다 알려준 셈이다.

 

본인의 저서 <아주 특별한 독서>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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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 보통 엄마의 거창고 직업십계명 3년 체험기
강현정.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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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이셨던 나의 부모님은 늘 '커서 농사꾼은 되지 마라'라고 가르치셨다. 부모님의 그런 조언이 없다 해도 뜨거운 여름날에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 밭에서 웅크리고 일을 해야 하는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대학진학을 앞둔 고등학교 시절, 나는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사람'이 되기만을 원했다. 주변 어른이나 선생님들도 나의 꿈이나 적성을 묻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안정되고 돈을 많이 버는 직업군이 언급되고 찬양될 뿐이었다.


대학을 선택할 때도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은 '내 점수로 갈 수 있는 곳인가'였지 '내가 어떤 적성을 가졌고 뭘 좋아하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적성 따위는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지역대학의 영문과에 '영문'도 모르고 입학을 했다. 내가 20년째 일하는 교사라는 직업도 솔직히 '적성을 고려한 진로 찾기'의 소산이기보다는 '어쩌다보니' 가지게 된 경우에 더 가깝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어색함이 역력했던 초임교사 시절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십계>을 접했다.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누구나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은 가지기 마련이지만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직업 선택의 십계>를 따르도록 훈육되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던 것으로 기억한다. '힘들고 돈 안되는 농사는 절대 짓지 말아라'라는 분위기와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네가 좋아하고 보람 있다면 농사꾼이 되어봐라'라는 가르침은 큰 차이가 있지 않는가?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십계명'이 어떻게 현실 세계의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되짚어 보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거창고등학교는 애초에 '겨울철 토끼잡이'로 대표되는 인성교육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인성교육이란 용어만 있을 뿐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학교가 드물었던 당시라 거창고등학교는 전국의 학교관계자가 한번쯤은 순례를 해야 할 성지로 부각되었다.


당시 큰 화제가 되었고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의 주제이기도 한 '직업 선택의 십계'으로 다시 넘어가보자. 좋은 말이고, 존경스러운 태도이긴 하지만 실제로 자신의 제자나 자식들에게 저 길을 걸으라고 권한 교사와 부모는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학문의 장인지 취업훈련소인지 분간이 힘든 대학, 오로지 수치적인 성과로만 학교를 평가하는 교육행정기관, 어쩌면 적성을 따지는 것이 사치로 여겨질 수 있는 절박한 취업준비생에게 '직업 선택의 십계'를 권하는 것은 꽤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거창고 재학생이나 졸업생 그 누구라도 선뜻 '십계'를 준수하며 살겠다고 맹세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거창고 학생조차도 '십계'가 적힌 액자를 벽에서 바닥으로 내팽개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누가 봐도 본능적으로 더 안락한 삶을 지향하기 마련인 사람이 무턱대고 따라갈 길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직업 선택 십계명'이 단지 구호에만 머무른 것은 아니다. 거창고 아이들에게 스며든 '직업 선택 십계명'은 어느새 그들의 자랑이 되어 있었다. 거고인(거창고 졸업생) 건축가가 세운 다리는 무너지지 않고, 거고인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며, 거고인 판사가 내린 판결은 믿을 수 있고, 거고인 관리는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자부심은 역시 '직업십계명'으로 무장된 교육의 힘이라고 거창고 아이들은 믿는다.


거창고 아이들이 원칙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며, 돈을 좀 더 많이 벌고, 출세가 빠른 길을 애써 쫓지 않고 바른 길을 가려는 태도가 몸에 배게 된 비결은 거창고 교사의 솔선수범이 주효했다. '직업 선택의 십계'의 주인공인 전영창 전 거창고등학교 교장이 우선 대학의 부학장 자리를 마다하고 폐교 직전의 시골학교인 거창고등학교 부임한 자체만 봐도 그 자신이 <직업 선택의 십계>에 충실한 삶을 산 분이었다. 그뿐인가? 군사정권의 3선 개헌에 반대하다가 미운털이 박혀 폐교에 버금가는 제재를 받고서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학교를 지켜냈다.


최근 학교교육에서 중요시되는 '진로 및 직업교육'의 밑바탕에는 수십 년 전의 거창고등학교식 직업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모두가 '서울대 입학하기'에 골몰할 때 그나마 '직업 선택의 십계'를 액자에 담아 학생들에게 주지를 시키려고 노력했던 거창고등학교의 선견지명이 지금의 진로 및 직업교육에 큰 힘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은 자식을 특목고에 보내기 위해서 고분분투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주부인 저자 강현정이 '직업 십계명'을 정리한 거창고 전성은 교장의 설명과 추천대로 '직업 십계명'을 충실히 따르면서 살아가는 거창고 졸업생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되짚는 작업이다.


더 나은 대우를 마다하고 시베리아 호랑이 촬영에 빠져서 '월급이 더 적은 쪽'을 택하고, 평생을 시골에서 평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하는 한가운데가 아닌 '가장자리'를 걷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적 존경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농부가 된 사연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낸다.


이 책에서 소개한 거창고 '동문회' 모임에 참석한 졸업생들의 '증언'들이야말로 '직업 십계명'이 실제로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잘 알 수 있게 한다. 졸업생들조차도 '직업 십계명'은 현실 사회에서 따르기 힘들고 무엇보다도 자식들에게 그 내용을 지키라고 권할 자신이 없다고 토로한다. 거창의 다른 고등학교에 비해 큰 부자가 된 동창생이 턱없이 적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는데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출세와 부를 쫓기보다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에 충실하도록 '직업 십계명'이 자신들의 마음속에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출세가 보장된 길을 스스로 버리고 오직 자신의 신념과 흥미에 맞는 외로운 길을 걸어가는 거창고 아이들의 삶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자식이 나은 사람보다는 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부모도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찾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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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새 책 - 절판된 책에 바치는 헌사
박균호 지음 / 바이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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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11년 9월에 출간된 <오래된 새 책>은 나의 첫 책은 아니다. 첫 단독 저서다. 공저자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 이름이 오른 첫 책은 오마이뉴스에서 나온 <아버지를 팔아 산 핸드폰>이다. 간혹 나를 두고 글을 참 잘 쓴다고 칭찬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약 그 칭찬이 아주 립서비스가 아니라면 오마이뉴스에 올린 260건의 기사로 글쓰기 연습을 한 덕분이다. 나의 세 번째 책 <그래도 명랑하라 아저씨>를 내면서 오마이뉴스에 올렸던 글을 몇 개 넣었는데 당시의 글을 완전히 다시 써야 했으니, 오마이뉴스에 글쓰기를 즐겼던 15년전에 비해 진전이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오마이뉴스는 나의 훌륭한 글쓰기 연습장이었을뿐만 아니라 나의 첫 단독 저서인 <오래된 새 책>을 내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다. 출판사에서 내 글을 보고 책을 내자고 제의를 해왔기 때문이다. 애초에 출판사(바이북스)에서 내게 제안한 기획은 ‘위인’에 관한 것이어서 고심 끝에 전공부야가 아니니 못 쓰겠고 다만 내가 책읽기와 헌책수집을 좋아하니 ‘헌책 수집’에 관한 책을 내면 어떻겠냐고 제의를 했고 고맙게도 나의 제의를 수락해주어서 <오래된 새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오래된 새 책>은 희귀본을 사냥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와 그 책의 소중함을 말하는 책이었다. 희귀본을 자랑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좋은 책’을 소개함으로서 그 책들이 ‘새 책’으로 다시 부활하기를 기대하면서 쓴 목적이 더 크다. 제법 괜찮은 제목이라고 생각하는 <오래된 새 책>은 사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 서평꾼으로 유명한 <로쟈>님의 인터넷 서재 속의 게시판이름중의 하나였다. 물론 그 게시판은 절판되었다가 다시 재출간된 책들을 소개하는 코너였으며, 우선 로쟈님께 허락을 구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어 부탁을 드렸는데 고맙게도 <오래된 새 책>이란 말에 특허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라며 흔쾌히 허락해주셨다.


생각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고 ‘재미나다’라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 사실 부족한 점이 많아서 늘 남들에게 선뜻 내세우기가 부끄러웠기도 했는데 ‘희귀본의 부활’이라는 대의를 따지고 보면 절반이상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희귀본의 상당수가 독자들의 염원에 따라 재출간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선물은 <살구꽃 봉오리를 보니 눈물이 납니다>가 <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최근 재출간되었고 일약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일이다. 권정생 선생과 이오덕 선생이 수십년동안 주고받았던 눈물 겨운 사연과 우정이 가득 담긴 이 책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몇 년을 찾아 헤매야 했다. 희귀본을 간신히 구했는데 재출간되는 경우 소장가의 심정은 그리 나쁘지 않다. 물론 극소수의 소장가중의 한명이라는 뿌듯함이 다소 사라지긴 하겠지만 좋아하는 책의 버전을 더 추가한다는 기쁨과 좋은 책을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가 좋지 않은가?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간신히 구한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구한 판본은 새로 출간된 새 책이 따로 있다고 해서 그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딸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집을 가는 그날 까지 소소한 일상을 사진으로 꼼꼼히 기록한 <윤미네 집>은 장정과 사진을 덧붙여 새로 나왔고 이 역시 사진집으로서는 드물게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이 사진집의 저자인 전몽각 선생은 순전히 아마추어 사진가이며 심지어 삼각대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이 땅의 모든 ‘아빠 진사’의 조상쯤 되는 분이다. 놀라운 사진기술도, 예술적인 가치도 미미한 이 사진집이 이토록 오랜 사랑을 받는 것은 순전히 자식에 대한 지극한 아빠의 사랑이 깊게 스며있기 때문이다. 원래 판본이 소프트 커버였는데 포토넷이란 출판사에서 하드커버로 멋지게 재탄생시켰다.


너무나 구하고 싶어서 다른 수집가가 구했다는 소식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 벌렁거렸던 이윤기 선생의 <하늘의 문>은 원래 3권으로 구성되었는데 두툼한 단 권으로 다시 나왔다. 이 소설을 이윤기 선생이 다시 손을 봐서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결국 개정을 하지 못하고 이윤시 선생은 세상을 떠나셨다. 어쨌든 더 좋은 장정으로 세상에 다시 나왔고 소설가로서의 이윤기의 모든 역량이 동원된 이 책을 많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어를 유려하게 가장 잘 쓴다고 소문난 고종석의 <기자들>은 <빠리의 기자들>이란 제목으로 바뀌어서 다시 세상에 나왔다. 고종석 본인이 신문사 재직시절 프랑스 파리로 연수를 간 경험을 살려 쓴 소설인데 당시 유럽의 정치 경제적 상황과 연수생 기자들의 로망스가 고종석의 글 솜씨가 어우러진 멋진 책이다.


내 인생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준 유일한 책이라고 볼 수 있는 영어어휘 학습서<Word Power made easy>의 번역서도 다시 세상에 나왔다. 영어단어가 무의미한 철자의 나열이 아니고 인간의 역사와 맞물려진 ‘작은 세계사’라는 기본 틀에 입각한 책인데 어휘를 설명한 글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철학의 문구처럼 깊고, 유려해서 굳이 영어공부를 하지 않고 해석 판만 읽어도 훌륭한 독서가 되는 놀라운 책이다. 


<오래된 새 책>을 읽고 ‘읽고 싶은데 읽을 수 없는 책’으로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냐며 질타를 한 분이 적지 않았다. 이제는 그 노여움을 조금은 풀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아직도 <오래된 새 책>에는 ‘새 책’이 되기를 기다리는 귀한 책들이 적잖이 남아 있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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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이해인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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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4년 내내 개신교 서클 'IVF'에서 활동했다. 그런데 스스로 생각해도 웃기는 것은 현재도 그렇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방과 후에 강의실에 모여 예배도 드리고, 초빙 간사의 '말씀'도 듣고, 교제의 시간까지 가진 4년 내내 나는 '믿는 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고향마을에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짐을 싸들고 올라탄 기차 옆자리의 늙수그레한 학생이 '좋은 서클'이니 입학하거들랑 가입해보라는 충고를 듣고 덜컥 가입한 것이 개신교 서클이었고 '주님을 영접하지는 않았지만' 대학시절 내내 그 동아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당구와 술에 탐닉하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보다는 건전하고 배울 것이 많겠다라는 생각으로 무신론자이면서 무려 4년간 정기적인 예배와 끊임없는 도제식의 일대일 개신교 강의를 참아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럭저럭 독실한 개신교 서클과 '예수를 믿지 않는 불순한 회원'간의 불안한 항해는 항구를 눈앞에 두고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났다.


졸업을 앞둔 추운 겨울 새벽, 그 개신교써클 내에서 나의 훈육을 담당했던 동기 놈이 요란스럽게 기숙사 내 방 문을 열고 나를 깨웠다. Q. T에 가잔다. 그게 뭐냐고 되물었더니 Quiet Time이라는 새벽 기도 모임이라고. 나는 잠을 잘 때 코를 골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충분히 '침묵의 시간'을 가지고 있으니 그냥 내버려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융통성 없는 동갑 훈육선생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나를 아직 어둠기가 채 가시지 않은 교정의 소나무 밑으로 소환해갔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날이 내가 기도를 인도할 차례란다. 그러니까 모태신앙으로 단련된 개신교 고수들은 가만히 눈을 감고 손을 모은 채, 불순물처럼 섞여 있는 엉터리 개신교 흉내쟁이의 기도를 음미하겠다는 말이다. 그날 나의 기도 인도는 그네들에게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최악이었겠지만 그날의 기도는 나로서도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 중 하나였다. 내가 정작 간절히 진심 어린 마음으로 기도를 한 순간은 따로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나머지 공부를 밥 먹듯이 하던 시절, 집 뒤뜰에 나가 교회에서 구경한 대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제발 내일 구구단 검사를 하지 않도록 해줍십사'라고 통성기도를 했었다. 물론 평소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답답한 일이 생겨서 갑자기 기도를 해서 미안하며, 만약 이번 기도를 들어주시면 앞으로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겠다는 다짐도 잊지 않았다. 오늘 문득 이해인 수녀님의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을 읽다가 '환자의 기도'라는 시에 눈길이 멈춘다.




주님 

제가 아프기 전에는 

당신을 소홀히 하다가

이렇게 환자가 되어서야 

열심히 당신을 부르는 제 모습이 

비겁하고 부끄럽고 염치없어

숨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1967년 종신 서원 이후 수녀원 입회 50년을 맞은 이해인 수녀가 낸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이토록 인간적이며 소탈하다. 구구단을 외우는 코흘리개들이 하는 순진무구한 하느님에 대한 '양심'을 입회 50년을 맞은 일흔의 노 수녀님의 시에서 만난 반가움이란 어찌 표현할까 모르겠다.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50년간 하느님을 모신 신앙심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다는 의지로도 읽히지만, 적어도 내게는 코흘리개들의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을 노년까지 잃지 않는 이해인 수녀님의 꽃 같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2008년 암 발병 이후 두 번째로 나온 시집이고, 시의 내용이 '투병 생활'에 관한 것들이 많지만 굳이 '투병 시집'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투병을 다룬 시가 많지만 우울하지 않으며, 태어나고 자라는 이야기보다는 늙고 죽어가는 사연이 많지만 절망적이지도 체념적이지 않다.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의지하지만 주변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돋보인다. 그래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와 산문은 어둠속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는 촛불이고 허전한 공간을 향기로 채워주는 꽃이다. 그래서 나는 '투병 시집'이 아니고 '동백꽃 시집'으로 부르고 싶다.


'꿈에 본 어머니'라는 시는 이해인 수녀님의 어머니에 대한 그림 움이 사무치게 느껴져서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지게 한다.




하늘나라 가신 어머니가

꿈속에 나타난 날은 

꿈에서도 행복하여 

깨어나기 싫어


생전보다 

더 통통하고 동그란 모습으로 

은은한 웃음 머금고

딸을 축복하는 엄마의 모습



12년 전 나의 어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가 눈에 선하다. 눈을 감고 의식이 없는 어머니 곁에서 꾸벅꾸벅 조는데 갑자기 어머니께서 '엄마'라고 외마디를 내셨다. 그제야 나는 나의 어머니도 몸서리치도록 그리운 누군가의 '딸'이라는 생각을 했다. 고단하디 고단했던 생을 마감할지도 모르는 순간에 보고 싶었던 사람은 어머니의 '엄마'였구나.


몹쓸 병을 얻어 이년 전 세상을 뜬 누이의 마지막 모습도 눈에 그려진다. 갑잡스러운 쇼크로 얼굴이 퉁퉁부어서 힘겹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맞는데, 깊은 잠보다 더 깊은 의식불명의 상태라는데, 미처 뜨여지지 않는 눈으로 뭔가를 찾는 의지가 역력했다. "지금 엄마를 찾는 거지? 엄마 보고 싶은 거지?"라고 묻는데 누이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의 어머니와 누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엄마의 모습은 "은은한 웃음 머금고 딸을 축복하는"모습이었을 터이다. 


그렇게 누이를 보내고 홀로 화장터의 뜨거운 화구에 들어갔을 때 우리 가족은 자동차 안에서 추위를 달랬었다. 이해인 수녀님은 당신도 암과 싸우면서도, 수녀원의 동료 수녀님과 친구를 떠나보내면서 가족보다 더 한 진한 아쉬움을 토로하였다. 가령 '떠난 벗에게'라는 시가 그렇다.




친구야 얼마나 쉬고 싶었으면

흔적도 없이 그렇게 부서져

하얀 가루가 되었느냐?

네 어여쁜 몸이

불가마 속에서 타오를 적에

겁이 많은 너는 얼마나 뜨거웠느냐?

혼자만 갑갑한 곳에 갇히어

얼마나 외로웠느냐?



사람에 대한 사랑이 기초하지 않은, 신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무의미하고 폭력적이다. 아픈 것을, 슬픈 것을 애써 신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도 공감하기 힘들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모든 평범한 사람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 수녀님을 하느님의 곁으로 더 향하는 징검다리가 되었음을 알겠다. 이해인 수녀님의 시 100편과 생활 이야기 100편이 담긴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은 사람에 대한 사랑과 소소한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는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의 넘치는 사랑을 감당키 어려워 '사랑받는 것도 힘든 일이야'라는 탄식을 자아내는 수녀님은 사실 매서운 추위에서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꽃피우는 동백꽃처럼 사람을 사랑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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