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소개하기 위해서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10년 전의 그나마 순수했던 디씨인사이드 ‘도서갤러리’를 먼저 이야기할지, 아니면 적어도 내게는 북스피어출판사를 대표하는 저작으로 기억되는 <아발론 연대기>를 우선해서 이야기해야 할지 , 그도 아니면 지독한 난독증에 시달리던 지난 한 달간을 제일 먼저 이야기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러니까 대략 10년 전 당시까지만 해도 디씨인사이드의 도서갤러리는 서로 도타운 정을 나누던 따뜻한 도서 커뮤니티였다. 오순도순 책에 대한 이야기와 정보를 나누는 따뜻한 공간이었고 책에 대한 고수도 상당히 많았다. 우리가 책에 대해서 티격태격하거나, 도저히 해결 못하는 궁금증이 생겼을 때 , 불쑥 나타나 위기에 빠진 중생들을 현란한 책에 대한 지식으로 우리를 열광케 한 gksrud이란 유저가 그 대표적 인물.
그러니까 2006년 조용하던 도갤이 떠들썩할만한 빅뉴스가 떴는데 기존에 <아서왕 이야기>라고 알고 있던 대작이 <아발론 연대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서 새로 나온다는 소식. 아서왕의 일대기를 켈트신화를 바탕으로 완성한 판타지 소설이다. 이 8권으로 구성된 이 대작을 ‘아웃사이더’라는 출판사가 무리를 해가면서 겨우 겨우 4권까지 내다가 결국 두 손을 들고 폐업을 해버렸다.
당시 아웃사이더의 직원이었던 김홍민과 직원 몇 몇은 의기투합하여 <북스피어>라를 회사를 차리고 그 대업을 계속 이어가는 패기를 발휘했다. 외부에서 투자를 받는 한편 악전고투를 벌인 끝에 결국 <아발론 연대기>로 이름을 바꾼 8권 전집을 완전히 발간하기에 이른다. 그러니까 망한 출판사가 완성하지 못한 대업을 직원들이 회사를 새로 차려서 완성한 희귀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도서갤 유저들은 화려한 장정과, 멋진 표지 디자인을 가진 완성된 <아발론 연대기>에 열광했고 모두의 로망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북스피어>라는 출판사는 내 머릿속에 깊게 각인되었다. 개인적인 기준이긴 하지만 그리고 과학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아발론 연대기>는 시대를 앞서가는 화려한 디자인과 장정을 자랑했다. 뿐만 아니라 새로 설립된 <북스피어>가 책임이 질 이유가 없는 <아웃사이더>판 <아서왕 이야기 1권~4권>을 구매한 독자를 위해서 새로 나온 <북스피어>판으로 보상업그레이드 해주는 보기 드문 미담을 과시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북스피어>의 대표인 김홍민씨가 교정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말이 이벤트지 실상은 독자를 공짜로 부려먹기’위해서 기획한 ‘독자 교정자 제도’에도 열광을 했고 실제로 많은 도서갤의 유저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스스로 무급 교정 일을 하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제 8권 말미에 이른바 ‘독자 교정자 제도’에 참여했던 이름을 기재해준 꼼꼼함과 교정에 참여한 답례로 <아발론 연대기>를 선물한 배려는 <북스피어>를 여느 다른 출판사와는 차별되게 인식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출판계의 인사들은 자주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불평과 하소연을 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면 그에 대항해서 더 재미난 책을 만들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이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을 비롯한 책이 그나마 잘 나갔던 시절에 없던 경쟁자와 맞서서 싸울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며 어찌되었던 살아남기 위해서 책을 더욱 매력적이고 재미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지난 한 달간 나는 소설 한 권을 항상 지니고 다녔지만 당체 읽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복잡한 사정도 있었거니와 어쩐지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스마트 폰과 인터넷에 열중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라는 책을 발견했고 이 책의 저자가 10년 전 우리를 열광케 한 <북스피어>출판사의 사장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과학소설을 즐기지 않아서 <아발론 연대기>도 감탄과 경외만 했을 뿐 그 비싼 가격에 대한 부담도 되고 해서 사지도 못한 처지였다. 더욱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 때 그’ <북스피어>가 여태껏 살아 있다는 게 신기했고 반가웠다. 10년 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었던 게다. 그러나 10년 전 출현할 때부터 이미 범상치 않은 출판사와 그 사장이란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출판인생과 주변이야기를 담은 책이라니 1초의 주저함도 없이 주문을 했고 받자마자, 들고 다니던 소설책을 집어 던지고 이 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나절 만에 다 읽어내려갔다. 역시 기대대로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내용이 가득했다. 인터넷과 스마트 폰보다 더 재미났다. 그의 말대로 앞으로 책이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재미’를 중요한 가치로 인정해야만 한다. ‘재미’라는 것이 굳이 ‘고급지지 못한’것과 동일선상에서 볼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하는 나는 늘 아쉬웠던 것이 정작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문것이었다. 그래서 ‘열린책들’의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를 보석처럼 아끼는데 실로 오래간만에 책을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를 만나니 감개무량하다. 이 책에서 ‘야매 출판인’ 김홍민은 매우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계층에게 자신의 생각과 경험 그리고 비전을 이야기 한다.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가 대형출판사 사장의 진솔한 출판이야기라면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책과 관련된 모든 계층을 향해서 자신의 ‘험난한’경험을 통해서 얻은 ‘영업비밀’을 과감없이 ‘재미나게’ 말하는 책이다.
특히 ‘버려지는 띠지에 숨겨 놓은 것’, ‘독자들이 빌려준 5000만 원’ 이야기 등과 같은 북스피어만의 독특한 마케팅방법뿐만 아니라 심지어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반드시 4의 배수인 이유와 판권 페이지에 대한 설명까지 포함하는 책과 관련된 스프레이식 지식의 향연를 자랑한다.
출판이나 독자들을 위한 제언뿐만 아니라 과거 편집자로 일하는 재미난 일화도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그렇다.
모 잡지사에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첫 직장이었고, 나는 경력이 전무한 편집자였다. 모든 일에 미숙하던 시절,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대목은 필자들의 원고를 받아내는 일이었다. 엄연히 마감 시한이 정해져 있건만 열에 두셋은 당연하다는 듯 시한을 넘기기 일쑤였다. 대개 유명한 필자들이라 나로서는 감히 독촉 전화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집부로 전화가 한 통 왔다.
상당히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체면을 좀 지켜드리자는 차원에서 이분의 이름은 생략하는 게 좋으리라 생각하는데, 글쎄 이러시는 거다. "홍민 씨. 홍민 씨는 왜 나한테 독촉 전화를 안 해? 나는 독촉 전화를 자꾸 받아야 글이 써지는데 당신이 가만히 있으니까 한 글자도 안 써지잖아. 앞으로는 나를 좀 못살게 굴어줘. 제발. 내가 전화하지 말라고 해도 무시하고 전화해야 돼."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당시의 나는 그런 사고방식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김홍민씨가 북스피어 독자 잔혹사라고 부르는 독자 교정이벤트는 사실 독자들에게는
환장하게 참가하고싶었던 재미난 기회였다. 2005년 당시 <아발론 연대기>교정작업에 ‘운이 좋게’ 참가했던 도갤러 <후훗...>씨의 참가 소감을 읽어 보자. 물론 10년전에 작성된 글이다.
<교정 작업 체험기>
제목대로 교정작업 다녀왔습니다. (휘잉~~~) 아마 제가 가장 마지막에 교정보는 사람이 될 것 같더군요. 이번에 이 책을 내는 '북스피어'라는 출판사, 범우사 바로 '위'에 위치해 있더라구요. 서울 안이고 지하철 역에서 가까이 있기는 한데... 찾아가기에는 좀 까다로웠습니다.
제가 맡은 부분은 7권이었습니다. 8권 전질에 일곱번째라. 그닥 큰 임팩트가 가는 부분은 아니었는데, '성배'와 관련된 부분이었습니다. 읽고 교정할 부분 찾아 기록하고, 물어보고... 정확히 한답시고 국어사전, 옥스포드 영영사전 등 이것저것 꺼내들고 들이대보기는 했는데... 휴우... 완성된 책이 아니라 출력된 원고로 하는 것이라 몰입도가 떨어져서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찾기가 엄한 오류 몇 개를 잡으니 뿌듯함까지 느껴지는게... 한 권 분량 잡고 아홉 시간 가까이 걸리더군요.
(두 번 보느라) 책은... (스포일러는 생략하고...) 상당히 잘 나왔더군요. 일단 표지야... 짤방 보시는 대로 상당히 럭셔리하고... 잘 모르실 '내용' 부분으로 넘어가자면... 울나라 번역본의 가장 큰 문제가 쓸데없이 문장이 길어지는 '만연체'와 번역자의 '문어적 어투' (~한 바이다.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쓸데없이 어려운 '한자어 차용'이라고 생각하는데... 원전이 있느니 만큼 중반부 이후 조금 늘어지는 듯한 인상은 있었습니다만, 문장이 정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최소한 '반지의 제왕' 류의 번역으로 뒷통수 맞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문장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도 흐름이 유지될 정도로 짧게 배치되어 있더군요. 그리고 본문 중에도 문어체 사용을 줄이고 구어체를 구사하여 처음 접하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겠더군요. 한자어는, 정말로 대용할 것이 없는 몇몇 단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쉬운 한자어로 바꾸어 표현하였구요.
'역사물'이라 은근히 긴장했는데, 의외로 술술 읽혀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야, '로마제국 쇠망사' 읽고 나서 긴장한 탓도 있겠지만, 일반 판타지나 무협 소설 읽을 정도의 reading skill만 있으면 수월히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역자의 햏력이 상당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전과 1:1 비교를 해보고 싶을 정도로. gksrud님께서 이미 이전 글에 (목요일) 리뷰를 하셨지만, 각주가 정말로 참신하였습니다.
원전의 각주에 역자주를 첨가한 형태였는데, 심리학 부분까지 건드린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고무적이더군요. 교정 보면서도 '이런 부분이 참 재미있다'는 식으로 의견을 주고받고... 이미 '아더왕 이야기'의 형태로 이전에 읽어보신 분도 각주 하나만 보고서도 따로 구매할 만 하겠더군요. 내용 중에도 많지는 않지만 삽화가 첨가되어 있습니다. 이런 글에다가 책의 장점만 주구장창 늘어놓으면 괜히 '~빠' 다, 뭐다 할 것 같아서 조심스럽기는 한데... 사실, 그닥 큰 단점은 보이지 않더군요.
'대충대충' 나오는 요즘 책들에 비하자면 노력의 흔적도 보이고, 그닥 좋지는 않은 환경인데도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주인공급(?) 기사의 수가 많다 보니 이름 외우기가 아햏햏하다는 점과 주인공따라 사건이 왔다갔다 해서 조금 정신없던 점, 중반부 이후에 지루하게 전개되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건 원전에서 먼저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이므로 살포시 무시하고요. (아, 혹여나 하는 이야기지만, 제가 보기에는 참 좋았다는 겁니다.
주관 뚜렷하신(?) 도갤햏자님들께서 훗날 책 접하고서 '나 후훗이한테 낚시 당해써' '후훗, 왜 그진말해써' 라고 하면 저, 자방합니다. ㅡ.-;;;) 그런데, 아더왕 이야기에 상당한 양의 기독교적 색채가 입혀져 있었습니다. 원전을 미리 접하지 못한 터라 몰랐는데- 제가 맡은 부분이 성배와 관련한 부분이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천축국에 불경 얻으러 가는 손오공 일행의 모험담같은 느낌이 들어버리니... 권선징악적인 내용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문맥 속에 숨겨진 (역자주에 자세한 설명이 첨가되어 알게 되었지만)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 거세(ㅡ.-;;;)하는 부분에선 섬찟함이 살짜쿵 느껴지더군요.
(본문에서는 '넓적다리를 찔렸다' 정도로만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적 사관에 의해 윤색된 것이라고 하네요. 에구... 스포했다 ㅡ.-;;;) 이번 도서가 이 출판사의 첫 사업이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이벤트를 계획하고 계시더군요. 이것도 스포일 수 있으므로 말씀드릴 수는 없구요. 아이디어가 참신했습니다. 완성본은 12월 12일 경에 일반 출시될 모양입니다. 권당 가격은 잠정 만 천원. 조금 비싼 감이 있기도 하지만 무려 권당 400페이지 이상인데다 소장가치로 따지자면 저 가격이 과히 비싸겠다 생각이 되지는 않더군요.
시집 한권에도 칠천원씩 하니... 아, 첫 물량 방출 때 할인계획 있다네요. 찜하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그리고 기존에 발행되었던 '아더왕 이야기' 소장하신 분은 교환 및 별도 할인 계획도 있다고 하니...충전 200% 요 사업이 잘 되면 이후 그걸 종잣돈으로 SF 등으로 출판 범주를 확대할 계획도 가지고 계신 것 같더군요. 에셉 팬이라면 제목을 알만한 마이너 소설도 재발간 계획 있다니까... 기대충만. 마지막으로... 저는 먼저 나왔는데, 늦은 시간까지 작업하실 관계자 분, 수고하시라는 말도 못해드렸군요. 혹여, 이 글 보시면 수고하시라는 말 꼬옥 전합니다.
세줄 요약... 1. 아발론 연대기 교정작업 갔었다. 2. 표지깔쌈. 내용양호, 각주왔다, 삽화뽀샤시, 이벤기대, 12월 12일 발간예정 3. 아더왕과 엑스칼리버에 목마른자, 질러라... 지름신은 이럴 때 도래하는 거시다. 문제제기!!! '할게요' 가 맞나요, '할께요'가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