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2019년 1월 3일 오전 10시 불쾌한 아침이었다. 간밤에 높은 나무에서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데 아래에는 늑대를 닮은 맹수가 아가리를 벌리고 나를 노리고 있는 꿈을 꾸었다. 꿈이 하루의 몸 상태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전의 중간쯤 전화가 울렸다.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 번호였다.

 

 

내심 반가웠다. 드문 경우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요양원에 계신 자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정서인데 뜬금없이 요양원에서 오는 전화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요양원 직원에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문자로 연락을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을 만큼 놀라게 되는 전화다.

그날 예외적으로 요양원에서 오는 뜬금없는 전화가 반가웠던 이유는 조만간 요양원 거주자의 방을 옮기게 되면 예전에 어머니와 친하게 지냈던 할머니들과 같은 방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부탁하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요양원 직원은 어머니께서 식사하시고 토하셔서 약을 드렸는데 ...약마저 토하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통화하는 도중에 숨은 쉬시는데 의식이 없으셔서 119에 연락했다고 한다. 하도 차분하게 말씀을 하셔서 그다지 큰일이 아닌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연수를 받고 있던 청주의 모 대학에서 어머니에게 달려가려고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는 중에 119 응급 대원의 전화를 받고서야 어머니가 매우 위중한 상태라는 것을 실감했다. 심폐소생술 시술 여부에 대한 의사를 물었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어머니를 소생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구급대원이 말했다. 고마웠다. 

 

 

어머니가 수송된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머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셨다. 이마에 손을 대니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데 어머니는 눈을 질끈 감고 계셨다. 얼굴은 평온하신데 이 세상이 몸서리가 나게 싫어지셨는지 눈에 힘을 세게 주고 감아야 나올 수 있는 깊이로 감겨 있었다.

어머니 생애가 참 고단하시긴 했지만, 마지막으로 자식 얼굴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셨는가 생각되어서 서운한 생각마저 들었다. 좋은 대학에 합격한 딸아이 자랑을 듣고 싶지 않으셨나. 햇볕이 따뜻한 봄날 딸기 그릇을 받쳐 들고 나와 함께 산책하고 싶지 않으셨나.

 

 

아버지 제사상에 올렸던 배추전과 파전을 주섬주섬 챙겨서 어머니를 뵌 것이 마지막이 되어 버렸다. 어머니를 뵙고 오는 길에 배추전과 파전을 담았던 플라스틱 용기를 빠뜨리고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고민을 했지만 역시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으로 결정을 했다.

금방 다시 올 텐데 그때 가지고 오면 된다고 편하게 생각했다. 그때 다시 돌아갔다면 어머니를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었을 터라고 후회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보다 더 앞선 가을쯤이었다. 요양원에 찾아간 어머니는 나를 보더니 항상 머리맡에 두고 지키던 소지품 함을 한참이나 뒤적거리시더니 5만 원짜리 지폐를 건네주신다. 어머니를 찾은 지인이 주고 간 돈을 나를 주시려고 챙겨둔 것이었으리라. 손녀에게 줄 용돈이냐고 여쭈었더니 나에게 주시는 것이란다.

 

 

어쩐지 그 지폐는 아껴두고 싶었다. 지갑에 넣어두고 돈을 현찰을 쓸 일이 생겨도 현금지급기를 찾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지폐는 간직했다. 그러다가 어찌하다 보니 지갑 안에 5만 원짜리 지폐가 한 장 더 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지폐를 지갑 안에 넣어 버렸던 것.

2장의 지폐 중에 어느 것이 어머니께서 주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심 끝에 그 2장의 지폐를 사용해버렸다. 언젠가는 또 어머니께서 이번처럼 또 지폐 한 장을 주시겠거니 생각했다. 그 지폐가 살아생전 어머니께서 내게 준 마지막 돈이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다는 상상조차 하기 무서웠고 어머니는 오래 사실 줄 알았고 오래 사시기를 고대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야 알았다. 내가 어머니를 보살핀 것이 아니고 내가 돌아가시는 그때까지 내가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살았다는 것을.

 

 

오늘 장을 본 아내가 어린아이 주먹만 한 딸기를 사 왔다. 그 딸기를 먹으면서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맛나게 잡수셨겠느냐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온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눈물이 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눈물이 난다. 어머니가 맛보지 못하는 음식을 먹고, 보지 못하는 풍경을 보는 것이 힘들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03-15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5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9-03-15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뵙는 동안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래도 편히 가시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은 때가 되면 떠나는 존재들이잖아요.
살아있는 사람 좋자고 떠나실 분을 못 떠나가 막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저 그곳에서 편히 계실 거라는 것에 위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산사람은 또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인생이구요.
힘내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균호 2019-03-15 15:10   좋아요 0 | URL
네 편히 가셨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따뜻한 위로의 말씀 정말 고맙습니다. 스텔라님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19-03-15 18: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5 2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니 2019-11-26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따뜻합니다. 알라딘에 책 구매하러 들어왔다가 님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모르는 분이지만 글이 좋아서 남깁니다. 좋은 글 많이 쓰세요^^

박균호 2019-11-26 20:04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고맙습니다.

2020-08-06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12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김종삼정집
홍승진.김재현.홍승희.이민호 엮음 / 북치는소년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나는 독서와 책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출간했다. ‘시집 읽기를 권함’이라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실상은 나 자신조차 시집 읽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시집 읽기를 권함’은 나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닌가 싶다. 시에 대한 좁은 지평 탓으로 내가 낸 여러 권의 독서 에세이에는 시집을 이야기하는 꼭지가 드물다. 재미난 것은 그래도 유독 내가 좋아하는 시가 있고 그 시를 2권의 책에서 연이어 인용했다는 사실이다. 김종삼의 시가 좋아서 2번이나 인용을 했다.


  장편(掌篇)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 상밥집 문턱엔
 거지 소녀가 거지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 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 짜리 두 개를 보였다


이 시의 제목 장편(掌篇)은 장편소설을 말할 때 사용하는 장편(長篇)이 아니고 ‘짧은 이야기’를 뜻한다. 과연 짧은 시다. 길이가 짧다고 해서 여운이 짧은 시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김종삼의 시는 비정(hard-boiled)처럼 보인다. 도무지 시인의 감정을 표시하지 않는다. 무심하게 관찰자 시점에서 보이는 광경을 기술하는 마치 사관처럼 ‘기록’할 뿐이다. 그런데도 한번 읽으면 도무지 잊히지 않는 것이 김종삼의 시다. 한눈에 들어오는 짧은 몇 줄의 시로 수십 년을 붙잡는 여운과 공감 그리고 감동을 주는 것이 김종삼의 시다. 
 
 김종삼의 시를 읽다 보면 시라는 문학 장르가 어디까지 위대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여운을 줄 수 있는지, 어디까지 공감을 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이 겪는 유혹 즉 내가 지금 얼마나 슬픈 이야기를 하는지, 내가 지금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를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시도가 김종삼의 시에는 보이지 않는다.


장편(掌篇)

어지간히 추운 날이었다

눈발이 날리고 한파 몰아치는 꺼먼 날이었다

친구가 편집장인 아리랑 잡지사에 일거리 구하러 가 있었다

한 노인이 원고를 가져왔다

담당자는 맷수가 적다고 난색을 나타냈다

삼십이매 원고료를 주선하는 동안

그 노인은 연약하게 보이고 있었다

쇠잔한 분으로 보이고 있었다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고료를 받아든 노인의 손이 조금 경련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노인의 걸음거리가 시원치 않았다


이십 여년이 지난 어느 추운 날 거리에서 그 당시의 친구를 만났다 문득 생각나 물었다

그 친군 안 됐다는 듯

그분이 方仁根씨였다고. 



이 시를 읽고 나서도 김종삼과 그의 친구가 안타까워한 방인근(方仁根)이 누군지 몰라서 검색을 해봤다. 그의 생애에 관한 설명을 읽을 것도 없이 말년으로 보이는 그의 사진만 보아도 김종삼이 오랫동안 기억에 담아 둔 소설가 방인근의 궁핍함이 체감되었다. 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식당을 찾은 어린 소녀를 말하는 시가 늘 낮은 곳과 서민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은 최민식의 사진을 떠올리게 하듯이 말이다. 시인 김종삼은 이 시를 통해서 방인근 개인의 궁핍함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개인으로서 빛나는 청춘이 있었고, 문인으로서 발자국을 남긴 방인근이라는 개인의 처연한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비롯한 문인과 문학의 어려움을 말하고자 함이었다고 믿는다. 셀 수 없는 기록물과 문학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문인의 삶이 순탄치 않다는 것을 들어왔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저술도 김종삼의 이 시 만큼 궁핍한 문인의 삶을 사실적으로 서술하지는 못했다. 시라는 것이 이토록 힘이 센 장르인지 김종삼의 시를 통해서 새삼 통감한다. 
 
 ‘북 치는 소년’출판사에서 나온 <김종삼 정집>은 시집치고는 엄청난 분량과 가격이라 설명이 좀 필요하겠다. 우선 정집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전집이 아니고 정집이라고 제목을 붙인 이유는 기존 김종삼 전집 시집에서 빠진 작품을 보완하였고 작가의 작품을 모두 모은 것에 만족하지 않았으며 원전 비평적 작업, 주해와 함께 낱말 풀이까지 더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이 1000쪽이 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종삼 시인의 원문을 찾아서 온갖 대학 도서관을 찾아 헤맨 14명으로 구성된 편찬위원들의 노고가 무색하지 않게 이 책의 장정과 디자인 그리고 내지의 품격이 훌륭하다는 점은 장서가인 나에게는 큰 매력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사들이 시험문제를 낼 때는 ‘이원목적분류표’라고 해서 구체적인 문제출제계획서를 우선 작성해야 하는 것이 권장된다. 어떤 단원에서 어떤 능력을 알기 위해서 어떤 난이도로 출제할 것인지를 사전에 정하고 그에 따라서 문제를 내는 것이 좋은데 사실 이를 준수하는 교사는 많지 않다. 우선 시험문제를 내고 그에 맞춰서 이원목적분류표를 사후에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나로 말하자면 출제를 먼저하고 이원목적분류표를 사후에 작성하는 부류에 속한다. 반성하면서도 여간해서 이를 바로잡기가 어렵다. 책을 집필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생각에는 기획서와는 별도로 ‘작가의 말’이 원고에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장군이 전쟁에 나서기 전에 출사표를 던지듯이 작가는 원고를 집필하기 전에 작가의 각오나 계획을 밝히고 그대로 원고를 써나가야 한다고 본다. 
 
 역시 불행히도 작가로서의 나도 ‘작가의 말’을 사후에 작성한다. 여러모로 ‘야매’ 인생이다. 오늘 연말에 나올 신간에 대한 최후 일정으로 ‘작가의 말’을 썼다. 한 권의 책을 내면서 최악의 ‘창작의 고통’을 겪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제목과 작가는 기억나지 않지만 ‘머리말’만 따로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나온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새 책에 대한 <작가의 말>을 소개하면 이렇다. 



보물찾기 놀이를 좋아했다. 기민하지 못해서 보물을 한 번도 발견한 적이 없지만 보물찾기 놀이는 언제나 즐겁고 작은 스릴이 넘쳤다. 평소에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한적한 모퉁이가 보물찾기 놀이가 시작되면 그곳은 보물섬이 되었다. 보물을 숨겨둔 사람도, 보물을 발견한 사람도 모두가 행복해지는 놀이다.
 
 나는 고전 읽기를 보물찾기 놀이로 생각한다. 고전이란 주로 남들이 좋다고 해서 읽는 책이다. 선생님이 숨겨둔 보물을 발견하기 위해서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야산의 한 구석을 자세히 살펴보듯이, 우리는 고전을 읽으면서 이 책의 어떤 점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감동하였는지를 찾게 된다. 시작은 수동적이었지만 고전을 읽으면서 부모 세대가 느낀 감동을 고스란히 발견한 독자도 있을 터이고,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지 못했던 나처럼 남들이 좋다는 고전에서 감동이나 공감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남들이 다 찾은 보물을 찾지 못했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다. 세상에는 고전이 많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고전이 태어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자기에게 맞는 고전을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한 번의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지 못했다고 다시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다. 또 다른 보물섬이 언제 어디라도 우리에게 나타나니까 말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고전에 대한 정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리의 재료가 요리사에 따라서 다른 요리로 태어나듯이 고전은 독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 다른 감동과 공감이 발견된다. 이 책은 내 개인적인 경험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저 딱딱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운 고전이 이토록 다양한 형태와 시각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 책 읽기에 정답과 정도가 있다면 얼마나 시시한 일인가?
 
 가능한 각 고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고 싶었다. 흔한 요리 재료로 남다른 요리를 선사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이 책을 이런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신선한 자극이면 충분하겠다는 생각에 될 수 있는 대로 토론이나 논의의 주제가 될 만한 주제를 끌어내려고 애썼다. 독서의 다양성을 고려해서 잘 알려진 고전과 낯설게 생각될 고전의 목록을 안배했다. 누구나 알 법한 고전에서 흔치 않은 주제를 끌어내고 싶었고, 아는 사람이 드물 것 같은 고전에서 누구나 알 법한 주제로 친근함을 주고 싶었다. 이 책으로 한 권의 고전이라도 더 읽고, 한 가지 생각이라도 더 해진다면 저자로서 더 바랄 나위가 없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8-10-01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거 장정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위대한 서문>인가 하는...
작년인가 읽어 봤는데 생각 보다 별로더라구요.

그나저나 책이 또 나오는가 봅니다.
참 부지런하십니다.
이번엔 고전에 관한 책인가 보죠?
부럽습니다.^^

박균호 2018-10-02 11:21   좋아요 0 | URL
아...스텔라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역시 책에 관한 지식이 아주 풍부하세요.
고전에 관한 책이긴 한데 재미난지는 모르겠습니당..
 

세상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종종 실존한다. 선도부 활동으로 고생하는 학생 5명을 데리고 고기를 먹으러 갔다. 일부러 불러냈는데 된장찌개를 먹을 수는 없다. 삼겹살을 주문했다.

한 참 많이 먹을 나이라 마음속으로는 세 판까지는 각오하였다. 고기를 구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는데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길 들었다. 한 아이의 말이 한 친구가 무한리필 고깃집에서 주인에게 ‘인제 그만 좀 먹지’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단다. 

마침 당사자가 일행 중에 있어서 직접 물어봤다. 무려 사실이란다. 그 친구의 말이 이랬다. 전에 한번 간 적이 있는 무한리필 고깃집에 갔는데 마침 사장이 와인을 많이 마신 터라 본인의 정체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입장을 시켰다. 

4시간째 고기를 먹는데 이제야 정신을 차린 주인 양반이 어깨를 두드리며 ‘학생, 인제 그만 먹어도 되지 않나?’라며 통첩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 녀석은 놀랍게도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를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길 듣고 나니 손이 떨리고 입맛이 달아났다. 

나라에서 정한 그날의 식사비는 4만 8천 원이다. 애써 진정을 하고 고기 대신 공깃밥과 밑반찬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된장국도 원샷을 하다시피 했다. 내 입으로 들어올 고기는 없다. 헛기침을 두어 번하고 나서 아쉽게도 5교시 수업이 있어서 나는 먼저 들어갈 테니 너희들끼리 먹고 오라고 했다. 

계산대로 가서 삼겹살 세 판분을 계산했다. 법인카드로 4만 8천 원을 내 개인카드로 4만 6천 원을 결재했다. 5교시 수업이 없으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천천히 꽃비가 내리는 면 소재지거리를 걸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ransient-guest 2018-05-08 1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한창 아이들에게 고기를 쏘면 정말 큰일이 일어납니다 ㅎㅎ 저도 중2때 무려 고기 두 근을 앉은자리에서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ㅎㅎㅎ

박균호 2018-05-08 10:51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씨름부가 아닌 것만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해야죠.

2018-05-08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8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내는 처제와 여행을 갔다. 톰과 제리처럼 다툼을 주고받는 나와 딸아이만 집에 남았다. 이제 고3이 되는 딸아이는 독서실을 오간다. 밥을 해놓고 운동을 다녀오다가 딸아이 생각이 났다. 마트에 들러서 딸아이가 좋아하는 딸기와 마트 앞에 있는 노점상 할아버지가 파는 군고구마를 샀다. 딸아이는 어느새 제 혼자 밥을 차려 먹고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금방 다시 독서실에 갔다. 딸아이를 위해서 요리를 할 자신이 없어서 딸기를 씻고 군고구마를 챙겼다. 늦은 밤 독서실에서 돌아오는 딸아이를 위해서다. 

문득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끓여준 라면이 생각난다. 45원짜리 삼양라면은 누구에게나 별미였다. 언제였나 모르겠다. 코흘리개였을 때가 분명하다. 라면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어머니는 가마솥을 동원하셨다. 부엌 아궁이에 걸린 가마솥에 불을 지펴가며 라면을 끓이셨다. 조리 도구가 여의치 않으셨던 모양이다. 아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석유를 사용해야 하는 곤로를 사용하기가 편하지 않으셨던 것이 아니겠나. 

어머니께서 무심한 표정으로 부지깽이를 부지런히 이리저리 놀리시던 장면만 기억으로 새겨졌다. 가마솥에 끓여주신 라면을 먹었던 풍경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면 맛이 어땠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일 슬픈 것은 어머니에게 라면을 권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태우스 2018-03-22 0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님이 벌써 고3이 됐군요. 어린 시절 정말 삼양라면 많이 먹었죠. 그렇게나 맛있었는데....ㅠㅠ 요즘 좋아하는 라면은 부대찌개라면입니다. 글구 어머니, 지금 혼자 사시는데 어제 어머니 댁에 가서 자고 왔어요. 늦게 가서 잠만 자고 아침일찍 나왔는데도 그렇게 좋아하시네요 ㅠㅠ 맘아파요.

마태우스 2018-03-22 01: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구 이벤트 당첨축하드립니다. 주소랑 전번 알려주세요. 글구 받고픈 책도요

2018-03-22 1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5 0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