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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아트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번역자의 이름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었다. 예전에 '뉴요커'란 책을 재밌게 읽었고, 그 책에서 잠시 나왔던 호퍼의 얘기가 몇년이 지난 지금에도 기억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호퍼의 책을 번역하고 싶었는데 별로 팔리지 않을 꺼란 출판사의 말에 안타깝다고 했던게 기억난다. 그런데, 그 책이 나온 것이다!
이 책은 사실 어떤 특정 화가에 대한 책이지만 그 흔한 작가의 이력도 그림그리는 방식도 소개되지 않는다. 이유는 마크 스트랜드라는 시인의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호퍼에 대한 얘기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장을 읽어가다보면 쉽게 그의 해석, 표현에 매료된다. 호퍼 그림의 특징을 정말로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호퍼 그림의 특징을 몇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우리는 볼 수 없는 어떤 곳을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 그곳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림을 보는 이의 상상력에 맡긴다. 이런 표현이 그림에 서사성을 부여하기도 하나, 그렇지 않은 것도 많다. 그냥 텅빈 공간을 응시하고 있는 그림 속의 인물들 속에서 공허함을 마주 하게 된다.
호퍼의 그림 속의 숲, 자연은 숲이 가지는 원형적 의미의 그것이 아니다. 숲은 굉장히 어둡게 한 덩어리인 것처럼 표현된다. 자연의 푸근함을 안겨주는게 아니라 어딘가 모르게 암울하고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많다.
<빈방의 빛>이나 <바다 옆의 방>등의 그림에서 우리가 없는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있었으나 이미 떠나온 장소나 우리가 아직 다다르지 못한 그곳은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 공간이 그려진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생의 무상함, 찰나의 허무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고독이나 우울함으로 규정짓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 것이다. 시인의 언어가 어떤 과학적인 언어보다 정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번역자의 말처럼 나 또한 저자의 시선에 매우 공감했고, 호퍼의 좋은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빈방의 빛>이라는 아래의 그림은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그림이었다.
Edward Hopper, Sun in an Empty Room, 1963. Private Collection. Image courtesy Museum of Fine Arts, Bos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