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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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의 독서 방식은 간단치 않았다. 먼저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음식 맛보듯 음미한 뒤에 그것들을 모아서 자연스런 목소리로 읽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단어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었고, 역시 그런 식으로 문장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다. 이렇듯 그는 반복과 반복을 통해서 그 글에 형상화된 생각과 감정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p.45)

어디선가 본 위의 구절 때문에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오! 이렇게 재밌고 좋은 책이었다니.. 물론 마냥 재밌다고만 할 내용은 결코 아니다. 노인이 연애소설만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순수한 아마존의 세계를 넘보려는 양키들이 벌이는 소동과는 대조적으로 가장 단순하며 사람을 온순하게 해주는 사랑이야기. 뜨거운 키스와 곤돌라, 베네치아가 상상이 안 되서 다른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는 이야기는 어쩜 이렇게 귀여운지. 어쩌면 독서에 가장 처음 재미를 붙이게 만든 것은 중학교 시절 읽었던 어느 고전의 사랑이야기가 아닐는지. 노인이 양키와 암살쾡이를 어떤 식으로 물리쳐 가는지 보는 것도 재밌지만 책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요즘의 나의 독서를 뒤돌아보게 했다. 읽을 수 있다는 것은, 게다가 읽을 책이 지천에 널려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가!

나는 글을 읽을 줄 알아.
그것은 그의 평생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었다. 그는 글을 읽을 줄 알았다. 그는 늙음이라는 무서운 독에 대항하는 해독제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읽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읽을게 없었다.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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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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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의 특이할 것 없는 장례식으로 부터 이야기는 시작한다. 그의 인생을 더듬더듬하다가 맞이하는 말년의 이야기는 번역자의 말대로 공포 자체이다. 죽음은 그 자체로 공포일까? 사람들에게 죽음이 낯선 이유는 우리가 평생을 함께한 삶이라는 것의 끝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정말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단 삶을 맛보고 나면 죽음은 전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삶이 끝없이 계속된다고 생각해왔지요. 내심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p.175) 

 죽음과 가까울 때 사람들이 흔히 맞이하게 되는 병은 의존, 무력감, 고립,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 통증이 주는 이질감으로 벗어나고자 밀리선트와 같은 이는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말년에 위의 모든 것을 다 맛본다. 그의 주위에는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없다.  

 성공하지 못한 아버지, 질투심에 찬 동생, 한 입으로 두말하는 남편, 무력한 아들이 그의 말년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은 평판이다. 나름대로 항변을 하기도 하지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들은 모두 주인공을 떠났기 때문이다.  

소설의 말미에 그는 묘혈을 파는 흑인과 마주친다. 자신의 무덤이 되기도 할 무덤을 파는 일. 그 안에 침대를 놓을 정도로 평평하고 편안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사람의 말이 공포감과 동시에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아.. 이런 장면을 묘사한 소설은 처음이지 않은가. 아직 살아서 할일은 많은데.. 뭔가 억울한 것 같은데 그는 이 생을 뒤로 한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죽음을 앞에 두고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죽음을 생각하고 다시 생을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생은 그 생각을 하기 이전의 생과는 다른 것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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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트
가쿠다 미츠요 지음, 양수현 옮김, 마쓰오 다이코 그림 / 문학동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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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선물을 통해 인생의 어느 정점을 되돌아보는 형식의 12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읽는 동안 나는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 또 내가 누군가에게 주었던 선물은 무엇인지를 떠올리며 읽었다. 기억에 남는 선물은 병원에서 아파 입원해있을 때 친구에게 받았던 커다란 곰인형이었다. 곰인형 하나에 그렇게 감동할 나이는 한참 지났건만 그 순간 곰인형을 안고 들어오는 친구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아는, 그 친구는 어렸을 때 부터 지금까지 내게 둘도 없는 존재이다. 또 처음 귀를 뚫었을 때 아빠가 사가지고온 조금은 촌스러운듯한 귀걸이도 떠오른다. 반대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선물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그나마 기억나는 것들은 책들이다. 누군가에게 무슨 책을 주었는지까지 또렷이 기억난다. 내가 준 책들은 그들의 책장속에 아직도 존재할까..  

소설에서 등장하는 많은 선물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학생이 되어 처음 집을 떠나 생활하게 될 딸아이를 위해 엄마가 선물하는 냄비세트였다. 그 냄비와 함께 딸아이는 이십대를 지나게 되고 음식과 관련되는 일까지 하게 된다. 음.. 이 부분을 읽으며 엄마가 주고 간 압력밥솥이 떠올랐다. ㅋㅋ 결혼한 이후에 무료한 일상을 꾸역꾸역 이어가거나 배우자의 외도 혹은 이혼 등의 이야기등이 많이 나온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인생이 꺾이는 지점, 그것이 좋은 쪽으든 나쁜 쪽으로든 그 지점을 결정짓는 것은 많은 것이 있겠지만 선물 또한 그런 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작가의 섬세함을 발견한다. 여행, 독서, 선물, 만나는 사람들... 한 사람의 인생의 행로를 결정짓는 것들, 참으로 별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선물은 물건이지만 결국은 나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빼놓고는 선물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다.  딸아이의 결혼 후에 이혼하기로한 부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마지막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평범한 타인으로 만나 삼십년을 함께 살았다는 것만큼 기적인게 또 있느냐고.. 나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 위대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도 같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관계들로 결국은 결정된다는 믿기 싫기도 한 이 결론에 여러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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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금 100만 달러
너새네이얼 웨스트 지음, 장호연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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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두개의 단편이 들어있는데 <거금 100만 달러>와 <발소 스넬의 몽상>이 그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읽은 것이 괜찮았다. <거금 100만 달러>에 등장하는 우리의 주인공(소설에서는 이런 식으로 우리의 주인공...이라는 서술이 많이 나온다.) 렘은 뉴욕으로 거금을 벌기 위해 출발한다. 이유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집이 넘어가게 생겨 집을 되찾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그앞에 펼쳐지는 기구한 일들은 허무맹랑하다 못해 우스꽝 스럽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 하나 밖에 없는 이 젊은이는 이를 몽땅 뽑히고, 눈 하나를 잃었으며 손가락이 잘려나간다. 머리가죽이 찢기고 다리가 하나 잘린다. 불구를 가지고 공연까지 하는 배우가 되지만 끝내 총알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다. 기회의 땅이라는 미국에서 젋은이가 거금 100만 달러가 버는 것은 식은 죽먹기라고 하는데 어째서 그에게는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일들만 펼쳐졌던 것일가. 그의 삶과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고? 그의 순교로 말미암아 미국은 국가혁명당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고? 개인을 희생양으로 국가라는 거대한 대상이 유지된다고 하기에 한 생명이 감내해야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는다. <미스 론리하트>를 읽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으..  그가 살았던 1930년대 미국을 특유의 냉소와 풍자로 담아냈다는 것이 옮긴이의 말에 나와있다. 또 자주 비견된다는 볼테르의 <캉디드>와도 정말 매우 닮아있다. 한 개인의 하찮은 목숨쯤이야 도처에 널려있다. 하지만 그러한 소중한 죽음에 주목하지 못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이다. 그 역할을 문학이 맡아야 하는가? 어느 정도는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 뒤에 나오는 <발소 스넬의 몽상>은 앞의 단편과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발소 스넬이라는 시인이 트로이 시를 걷다가 그리스 목마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여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내용이다. 목마의 내부기관에 있는 사람들은 황당한 얘기들을 제각각 꺼내는데 그 이야기를 주목해보는 것이 재밌다. 인생은 결국 여행이라고 말했던 베르고트의 말처럼 발소는 목마의 내부를 여행하는 것이다. 현실인가 몽상인가. 헤깔린다. 다분히 환상적이다. 안타깝게도 너새네이얼 웨스트는 서른일곱이라는 젊은나이에 요절했다고 한다. 그의 이전작을 찾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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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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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더듬이인 주인공은 자신의 불우한 환경에 대한 대체물로 아름다움의 상징인 금각사에 모든 증오를 투사한다. 하지만 이 절대미의 대상은 그가 어떤 일을 하려는 순간에 나타나 주인공이 그 행동을 하는 것을 방해한다. 결국 주인공은 이 대상을 파괴하는 행동을 통해 자신이 자신의 인식안에 갇혀있음을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 방화를 저지르고 담배 한대를 피우고 나서야 비로소 살아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말더듬이라는 장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가정형편때문에 절에 맡겨지는 주인공의 방황이 단아하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그려진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뒷부분에 주인공이 방화를 결심한 순간 얼마전 불에 탄 숭례문이 생각났다. 이 소설을 읽고 행여나 금각사를 태워버리겠다는 사람이 나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은 이 책의 해설을 읽는 순간 해결되었는데, 1950년에 금각사 방화사건이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미 이 소설이 탄생하기 전에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만든 인식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자신에게는 빛과 같은 존재인 쯔루가와는 유서에서 구김살없는 햇살을 끝내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 자신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말이다. 가시와기가 말했듯이 삶을 견뎌내기 위한 인식이란 것은 인간의 무기가 되었지만 사실 그것 자체로는 고통이 경감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무기로 이 고난한 생을 견뎌내야 하는 것인가. 주인공은 그것을 아름다움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 환영의 대상을 없애고 난 뒤에야 비로소 정말 자신으로 살아갈수 있으리라는 결심에 방화를 단행하게 된다. 내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작가의 문체 그리고 이책에서 풍겨지는 조금 예스러운 듯한 느낌이 매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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