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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평점 :
돌아가신 어머니를 어느 도시에서 만난다.
죽은 사람들은 자신이 머물 수 있는 곳을 선택할 수 있다는데 어머니가 선택한 곳이 리스본이었다.
리스본이란 도시는 <세익스피어 베케이션>과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만났던 도시인데
그곳이 어떤 곳인지 마구마구 상상이 된다.
리스본이 눈에 보이는 세계와 관계를 맺는 법은 다른 어떤 도시와도 다르다. 이곳은 게임을 한다. 이곳의 광장과 거리는 흰 돌과 색 돌로 무늬를 넣었기 때문에 길이라기보다는 천장 같아 보인다. 벽은 안팎을 막론하고 전부 그 유명한 아줄레조스 타일로 덮여 있다. 그리고 이 타일은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멋진 것들에 대한 얘기를 담고 있다. 피리 부는 원숭이, 포도 따는 아낙, 기도하는 성자, 바다의 고래들, 배를 타고 가는 십자군, 바실리카 양식의 교회당, 하늘을 나는 까치, 포옹하는 연인들, 길들여진 사자, 표범 무늬 곰치. 이 도시의 타일은 가시적인 세계, 볼 수 있는 것들로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리스본 사람들은 감정이나 기분에 대한 얘기를 자주 하는데, 여기 말로 사우다드(슬픔과 애수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깃든 포르투갈의 독특한 정서)라고 하는 이 말은 보통 향수로 번역되지만 그건 정확하지 않다. 향수는 편안함, 심지어 나태의 뉘앙스를 품고 있는데, 리스본은 한번도 그걸 누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향수의 중심지는 베니스다. 향수에 빠지기에 이 도시는 너무나 많은 바람에 시달려 왔고, 지금도 그렇다.
엄마는 다음에는 이 도시의 어디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사라진다.
죽은 사람을 너무 그리운 사람을 이런 식으로 만날 수 있다면.... 존 버거의 상상력에 가슴이 애틋해진다.
글쎄다. 이 책은 그냥 읽고 느끼고... 말로는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은 책이다.
그리고 이 문장들..
존, 인생이라는 건 본질적으로 선을 긋는 문제이고,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인지는 각자가 정해야 해. 다른 사람의 선을 대신 그어 줄 수는 없어. 물론 시도는 해 볼 수 있지만, 그래 봐야 소용없는 일이야. 다른 사람이 정해 놓은 규칙을 지키는 것과 삶을 존중하는 건 같지 않아. 그리고 삶을 존중하려면 선을 그어야 해. p.16
인생이라는 건 정말로 모든 일에 있어서 선을 긋는다는 아주 단순하지만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